발언

윗글 댓글에 대한 답변 (양이 많아 댓글로 처리하지않고 별도 항목으로 처리함)

작성자
총공회사랑
작성일
2019.05.22
윗글 댓글 중 회원님의 의견에 근거하여
백도영목사님의 고소는 신풍연구소가 백목사님설교록 출판권 행사를 중단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신풍연구소가 출판권 행사를 중단하지 않는 이유

중단 요구에도 불구하고 신풍연구소의 출판권 행사를 중단하지않고 계속한 이유에 대해서
본인이 알기로는 신풍연구소의 뜻인 즉 어떤 연구소나 백목사님 설교를 전할 수 있다는 논리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은 출판권을 목회연구소에만 준 것을 기록으로 알기에 신풍연구소의 주장을 취소할 것을 본인이 권했습니다. 그런데 답변으로 신풍연구소의 의견은 사실 관계로 말하면 그것이 아니고 백도영목사님이 설교록과 모든 자료를 조건없이 전해야 된다고 사정했는데 백도영목사님이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해서 신풍연구소에서 중단없이 계속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실관계라 하니 받아드립니다. 물론 백도영목사님도 이 사실관계에 동의한다는 가정하에 진행합니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신풍연구소의 입장을 정리하면
1. 어떤 연구소나 출판권을 가지고 있다.
2. 그것이 아니고 백목사님의 뜻대로 출판권은 목회연구소에만 있다.
3. 그러나 목회연구소가 조건없이 전하지 않으면 어떤 연구소라도 전할 수 있다.
이렇게 됨을 이해합니다.

본인이 지금까지 신풍연구소의 입장을 들어보고 읽어서 알기로는 1번으로만 들었지  2,3번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고 처음 듣습니다. 그래서 1번을 근거로 해서 의견을 드렸습니다. 2, 3번은 발표한 적이 있는지요? 어디가면 기록으로 발표되어 있는지요? 1번은 이전부터 상식으로 알고 있었고 지인에게 전해 듣기도 하고 이 게시판에도 얼마전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설교록을 바로 전해지도록 하기 위하여 출판권을 목회연구소에만 있도록 했다고 한 발언에 대한 답변으로
‘ (입장) 백 목사님은 교회에 독점을 없앴다. 연구소는 전적 전하라는 것이지 연구소만 전하라는 것은 아니다’ 라고 신풍연구소에서 답변을 했습니다. 이 것은 위의 1번에 해당되는 답변입니다.
그러니 본인도 당연히 1번에 근거하여 의견을 드렸습니다. 어디에도 신풍연구소의 입장은 1번 이었지 2,3번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며칠 전에는 연구소 입장이 1번이었다가 며칠 후에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2,3번이 되었습니다. 서로 반대되는 입장인데 하나를 택한다면 사실관계가 그렇다고 하니 후자가 맞다고 받겠습니다. 생명님의 의견에 신풍연구소가 2,3번을 발표했다면  제 의견도 이에 근거하여 드렸을 것입니다. 그 답변은 취소하시고 2,3번의 답변이 맞다고 확인하시면 혼동이 오지 않겠습니다. 이제 2,3번의 이유로 의견 드리겠습니다.

====2,3번의 이유로 신풍연구소가 출판권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2. 그것이 아니고 백목사님의 뜻대로 출판권은 목회연구소에만 있다.
3. 그러나 목회연구소가 조건없이 전하지 않으면 어떤 연구소라도 전할 수 있다.

백목사님의 뜻인 아무 연구소나 출판권을 주면 훗날 잘못 전해질 수 있는 폐단과 신풍연구소의 뜻인 조건 없이 전하지 않음으로 인한 폐단을 함께 생각해 볼 때
두 폐단을 동시에 없앨 수는 없습니다. 두 폐단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기 때문에 선택한다면 백목사님이 특별히 언급하신 전자 페단을 없애는데 우선해야 할 줄 압니다. 후자 폐단에 대해서도 백목사님이 고려를 하셨을 것인데 특별히 언급하시지 않음은 전자 폐단이 더 큼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자 폐단을 위한 백목사님의 뜻을 먼저 관철시키고 후자 폐단은 후발적으로 해결 되도록 하는 것이 순리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처리가 되어야 순리

즉 신풍연구소가 보기에 목회연구소가 조건없이 출판을 하지않는다고 할지라도 출판권은 일단 목회연구소에 두어 신풍연구소에서 출판 관련 일을 중단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백목사님의 뜻은 미래에 잘못 전해지는 이 폐단이 너무 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언급을 하셨을 것이고 그 조치로 목회연구소에만 출판권을 주신 뜻을 존중해야했습니다. 그 다음 신풍연구소 보기에 목회연구소가 조건없이 하는 것이 보이지 않으면 그 부분만 요구해야했습니다.

조건없이란 말은 어느 정도 조건을 말하는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백목사님 계실 때 출간한 설교록, 소선집, 메모, 찬송가 등을 목회연구소가 출간하고 이미 2012년에 사이트에도 발표하고 있었으므로 기본 조건은 충족하니 신풍연구소는 일단 백목사님의 뜻인 목회연구소에만 출판권을 둔 것을 존중하여 설교록 관련 출판을 중단하고 그 후에 목회연구소에서 조건없이 다 전하지 않으면 신풍연구소가 목회연구소에 권면, 설득하고 그래도 조건없이 전하지 않으면 (조건없이 전하지 않은 부분만 - 다시말해서 이미 목회연구소에서 전하는 부분외의 것)을 신풍연구소에서 전하면 일단 백목사님의 뜻을 먼저 지키는 것이고 조건없이 전하는 것도 이룰 것이라 판단합니다.
과거 목회연구소에서 신풍연구소에 중단 요구하기 전까지 한 때 목회연구소가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 동안이 있었는데 그 때 신풍연구소가 출판 행사를 계속했고 그 때는 목회연구소에서는 중단 요청이 없었습니다. 이와 같을 것이라 여깁니다. 이 때 목회연구소에서 이에 반발해도 소송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윗 글의 댓글로 인한 연구 분위기 문제

첫째 회원님의 댓글은 연구적인 자세로 계속 의논과 연구가 되겠다고 판단하였고

둘째 목회자님의 댓글은 앞부분 제목변경 건에 대해서 역시 의논과 연구가 되겠다고 판단하였으므로 받아들여 인정한다고 표시해서 제목 변경을 했고, 그러나 뒷부분은 좌파 운동식이라고 공격을 하므로 의논과 연구가 아니라 성토를 하였으므로 앞으로 의논과 연구를 못하게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좌파식 운동을 하니 더 이상 입을 봉하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발언을 못하게 했습니다. 여기는 연구소인데 연구분위기를 성토 분위기로 바꿔버리니 이것은 연구소의 힘이 아니라 큰 약점입니다. 좌파로 몰아 성토하는 분위기는 목회자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목회자의 이름을 가졌다고 이런 발언이 권위를 더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목회자이면 앞부분 자세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셋째 외부회원님의 댓글은 본인을 대적으로 삼아 성토하는 것은 이미 연구나 의논의 자세는 보이지 않고 피켓 들고 외치는 울분식 성토이지 더 이상 입을 봉하라는 분위기입니다.
연구소는 이런 분위기를 통제 않으면 연구 자세로 의논할 사람은 여기에 올 수가 없습니다.
울분식 성토도 연구의 하나라고 한다면 연구소의 앞 날은 어둡습니다. 목회자님처럼 한 손은 의논 자세 한 손은 성토 자세 이중의 자세는 연구소의 이름을 무색하게 합니다.
외부 회원님은 외부 회원답게 외부에서는 그렇게 했을지라도 울분식이 아니라 공회연구소에서는 연구와 의논 자세를 조용히 배우시기 바랍니다. 외부회원이 이름을 가졌다고 울분식 성토가 면죄부가 되는 것 아닙니다.
익명 뒤에 숨지 말라는 이 연구소의 주장처럼 의논식이 아니고 성토식이면 실명으로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본인도 필요한 때가 오면 실명을 밝히고 발언을 할 것입니다.

연구와 의논의 자세란 내가 유리하는냐 불리하는냐를 먼저 계산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옳으냐 옳지 않냐를 먼저 계산하는 것입니다. 옳은 것을 먼저 두지 않으면 옳은 의견이라도 불리하면 의논을 중단하고 힘으로 성토식으로 나가서 불리하지 않는 방향을 취하게 됩니다. 이런 자세는 의논과 연구는 실종됩니다.

소송 중단을 위한 의논과 연구를 하자는데 더 이상 연구와 의논식이 아니고 이런 식의 성토가 계속 된다면 진주를 던질 수가 없으니 앞으로의 발언 중단을 고려하겠습니다.
전체 42

  • 2019-05-23 00:56
    총공회 사랑님, 양심에서 찾지 마시고, 내가 착각을 하고 있지 않는지 지식부터 점검하며 근원부터 다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토론과 의논은 좋습니다. 그러나 토론과 의논의 대상과 주제가 무엇이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6.25의 상처를 해결해보자, 6.25가 누구 탓이냐부터 따져보자. 자 남한 탓이냐? 북한 탓이냐?' 이런 토론은 가급적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하여, 전쟁 예방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다면, 북한의 공격으로 남한에서 사람이 죽었고, 그 피 눈물을 지금 흘리고 있다면, 피해국인 남한에 가서 이런 질문을, 해결책 의논이란답시고 하기 쉬운데, 이것은 대단한 실례이며, 하는게 아닙니다. 북한의 공격으로 남편이 죽고 아들이 죽은 그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욕 먹고, 매장당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해결책 운운은, 가해자에게 가서 '네가 일을 일으켰으니, 이거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고 따져 물어야지, 피해자에게 와서 '왜 전쟁이 일어났냐? 엄밀하게 원인을 따져보자. 너도 책임이 있지 연구해보자'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이것은 연구와 의논이 아니고, 이건 피해자에 대한 모욕이고 무시고, 모멸임을 분명하게 아셔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소송 때문에 부공3 교인들이 얼마나 괴로운지 혹시 아십니까? 저는 그 상처가 깊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그 고통과 눈물은 쉽게 치유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한번이라도 이 눈물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을 해보셨다면, 이런 글을, 이곳에서, 그것도 1년동안 아이디를 바꿔가면서, 사실과 다르니까 제발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해달라는 부탁을 무시하면서,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고, 계속 자기 말만 고집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양심 문제는 아니신 것 같고, 지식의 근원이 문제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 착각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셔야 합니다. 저는 무식해도, 공회는 때와 장소에 가려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매우 엄격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면으로 볼때, 이 착각 속에서 벗어나지 않으신다면, 이미 답은 다 나와 있는 이 문제를, 끝도 없이 계속 이해를 못하실 것이고, 똑같이 괴상한 방법으로 같은 질문하실 것이고, 그로 인해서 이곳 당사자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분노로 고통을 겪게 되오니, 부탁드립니다. 이제 더 이상은 그만 해주십시오. 이런 착각의 발언, 이런 착각의 진주는 사양하겠습니다.

  • 2019-05-23 10:32
    위 외부회원님의 댓글에 대하여

    ====6.25로 인한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원인을 따지는 것은 무례하다는 발언에 대해서

    6.25로 인한 고통은 대단히 크지만 이미 종결이 되었습니다. 연구소 소송문제는 종결되지 않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현재 고통이 크지만 앞으로도 계속 고통이 올 수 있으니 이 고통을 종결짓자는 뜻입니다. 그래서 본인 글제목으로 “소송을 종결하는 제안을 올린다”고 했습니다.
    6.25 예는 이미 종결된 경우이며 현재 이 경우와 다르니 이 상황에서 이 예를 드심은 부적절합니다. 앞의 글의 댓글 중에 목회자님의 좌파운동식 예나 북한과 남한의 예나 이 글 중 6.25예는 알기 쉽게 하기위해서 사용하나 남북한의 대립 구도를 만들어 예를 드는 입장을 남(옳은편)이고 상대방은 북(잘못된편)으로 이미 정해 놓고 하는 예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하나님의 옳은 뜻인가를 찾아가는 데는 적절치 않는 예입니다.

    소송으로 인한 고통 중에 있는 눈물을 외면하는 처사라 하시지만 세상 법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잘잘못을 따져 해결을 지어 눈물을 멈추게 하자는 것입니다.

    ====가해자에게 가서 해결하도록 하라고 하심에 대하여

    세상에서는 누구나 분쟁이 생기면 쌍방은 서로 “나는 잘못이 없는데 상대방이 잘못이 있으니 내 잘못은 언급을 하지도 말고 상대방에게 가서 따져라 합니다. 서로 상대방을 가해자라 합니다.” 그래서 세상 해결책은 결국 법정에서 가서야 서로 잘잘못을 따져 해결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잘잘못을 따져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을 법정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해결하자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대로 순종하면 해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찾는 과정은 쌍방의 잘못된 것이 있는지를 살피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을 지금 거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라도 자기에게 흠이 있다면 그것부터 고치자 하는 것이 성경이기 때문에 자기 점검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잘못이 100개가 있고 내 잘못은 한 개가 있으면 1개의 내 잘못부터 고쳐야 해결된다는 것이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1년 동안 아이디를 계속 바꿔가면서 자기 고집을 주장한다고 하심에 대하여

    본인은 이 사이트(pkists.net)에 글을 적은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짧은 댓글조차. 본인이 이 번에 처음으로 글을 적었습니다. 거짓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실명으로 적는 것이 본인의 소신이지만 글의 내용을 읽기 전에 선입견으로 받을 것 같아서 익명으로 적었으나 추후에는 실명으로 적을 때가 있으면 그렇게 하겠다고 이미 언급했습니다. 왜 아이디를 계속 바꿔가면서 글을 적어야 합니까? 그런 사람을 뭔가 사람을 현옥하는 술수를 부리는 일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어 자기를 좇게 하려는 사람일 뿐입니다. 어떤 명분을 갖다 대어도 진실함이 없는 간사함입니다.

    ====착각 진주를 던진다고 하심에 대하여

    본인은 값진 진주라고 생각하고 던지나 받는 사람이 착각 진주라고 여기면 진주를 던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 진주를 받아 밟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목걸이로 걸 사람도 있겠는데 이 홈의 대표자가 착각 진주라 하시면 발언을 중단하겠습니다. 외부회원님의 발언에 대표자님의 생각이 같으시면 댓글을 달지마시고 그러면 대표자님의 생각도 착각 진주로 본다고 보고 더 이상 발언을 중단하겠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글에 비판이 있으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해명을 하겠습니다.

    • 2019-05-23 11:21
      1. 6.25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죄송하지만, 6.25는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것습니다. 북한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고, 북한 국민들은 굶어 죽고 있고, 6.25때 피해 입은 국민들도 아직도 살아 있고, 그런데도, 북한은 사과 한마디 없고, 이제는 핵무기를 만들어 다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있고, 당시에는 드러난 적군이었다면, 지금은 남한 국민들에게 수십년간의 좌파 교육을 주입하여, 자기 정체성, 국가관을 모르게 만들어, 엄연한 반국가적 행위를 양심적이라고 착각 속에 빠지게 만들는, 더욱 은밀하고 치열하게 전쟁 중인데, 6.25가 끝났다니요? 이런 인식 차이가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2. oak이라는 이름으로 이전에 글을 쓰신 적 없으십니까?

      정말 처음 이곳에 방문하시고, 글을 적으신 분이라면, 제가 실례했습니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 앞에서 묻겠습니다. oak이라는 이름이라거나, 그 밖에 다른 여러가지 이름으로, 이곳에서 자기 생각을 발언 하시거나, 이런 질문을 해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글을 올리신 적이 진정 없으십니까?

      진정 없으시다면, 처음이시라면, 얼마든지 공회에 대해서 오해와 착각을 하실 수 있으시니, 담당자와 더 대화를 나눠보시고, 말씀하신 의논과 토론을 통해 전후관계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만하겠습니다.

  • 2019-05-23 13:16
    (사실 관계)
    1. 설교록의 출간권
    '총공회사랑'께서는 부산연구소에만 출판권을 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부산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이 연구소는 백영희 설교 외에 다른 일을 하지 말라고 금지를 시켰지, 이 연구소 외에 다른 곳에서는 설교록 출간이나 연구를 하지 말라고 '연구 출간'의 독점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미 공개 된 '연구소의 규약'을 보시면 잘 나와 있습니다. 참고로, 백 목사님 생전의 철칙 중 철칙은 어떤 경우도 독점권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주교 반사제도, 목회자 시무투표의 정신이 그렇습니다. 독점권, 특권, 자격제한... 이 것이 교회를 천주교화 했고 공회는 아예 그런 개념이 없습니다. 2018년 1월까지 운영된 구 사이트에 관련 내용과 증거를 한도 없이 공개했습니다.

    2. 사명의 분담
    부산연구소가 설교록을 연구하고 출간했다면 신풍이 할 일은 조직신학과 총공회노선 연구 등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녹음 듣고 타이핑하여 출간하는 이런 단순한 일을 두고 왜 경쟁에 나서며 시간과 힘을 낭비하겠습니까?

    3. 독점권이 낳는 무서운 함정
    '총공회사랑'의 글에서 공회와 복음을 아끼는 중심만은 십분 이해합니다. 그런 뜻에서 '독점'을 나쁜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잘 할 수 있도록 '관리 차원'에서 적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이 문제가 나올 때마다 늘 '성경출판권'을 가지고 설명합니다. 천주교 1천년 그토록 타락한 이유는 성경을 신부나 신학자만 읽게 하고 일반 교인에게는 함부로 읽다가 이단이 된다고 성경 자체를 접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요즘 이단들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고 성경 자체를 막은 것은 천주교라는 더 큰 괴물 이단을 만들었습니다.

    백영희 설교록을 부산연구소가 마음만 먹었다면 1993년까지 끝을 내 버렸을 것이고, 이런 문제 자체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설교록 자체의 출간은 1년이면 바로 끝이 납니다. 본 연구소는 1998년에 데이타로 무제한 배부를 해버렸기 때문에 이후 소장용을 원하는 분들 때문에 설교록 출간을 보충했으나 부산연구소는 1998년에 설교록을 냈다고 고소를 했고 이후에 설교록 1권 출간에 걸린 시간을 보면 어느 지경인지 아실 것입니다.

    4. 파생적인 문제
    녹음으로 타이핑 한 설교록 외에 '소선집' '메모' 등의 모든 활용 연구서는 전부 신풍에서 만든 것입니다. 부산의 저작권 논리로 말하면 부산연구소가 도둑질 한 것이 됩니다. 지금 고소인은 공회 찬송가까지 형사처벌을 해 달라고 발분하고 있습니다. 설교록 출간뿐 아니라 주일학교 공과까지도. 그 것은 총공회 교리 요약인데. 백영희 조직신학서를 보셨습니까? 설교록을 배낀 것이 있던가요? 그 것도 처벌하라고 고소했습니다.

    부친이 평생 설교록에서 외친 것도 세계10대 교회의 공동의회에서 전원일치로 결의한 것도, 목사가 종교 설교 시간에 덕담으로 한 것이며, 오로지 대한민국의 민법 저작권법에 따라 아버지 설교는 자녀만의 사유재산이다. 이 것이 고소의 본질입니다. 설교록 출간 문제가 아닙니다.

  • 2019-05-23 14:12
    위 외부회원님의 댓글에 대한 답입니다.

    1.

    6.25가 지금 종결되었느냐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냐 하는 문제는 신앙연구를 하는 마당에 세상 역사학적으로 나갈 일은 아닙니다.
    다만 1950년대의 6.25의 대포전쟁은 끝났고 그 이 후 지금까지도 그런 50년 대포전쟁은 끝났지만 다른 형태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고 정리하겠습니다.
    6.25 종결 여부는 본질 문제가 아니므로 이 정도 하겠습니다.

    다만 6.25를 하나님의 뜻을 찾는 연구 과정에는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옳은 뜻을 찾는 것이 연구이며 의논입니다. 지금 의논은 하나님의 옳은 뜻을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면 하나님이 모든 옳은 것의 기준이 되어야합니다.
    너의 뜻 나의 뜻을 두고 제3의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뜻도 틀릴 수 있고 네 뜻도 틀릴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내 뜻은 옳고 네 뜻은 틀렸다는 확정한 전제하에서는 연구와 의논은 출발할 수없습니다. 남북의 6.25나 좌우파의 예는 이미 남한과 우파는 옳다는 전제하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의논과 연구장에서는 예를 들 수가 없습니다. 상대는 이미 마귀고 우리는 하나님의 편이다 하는 상황에서는 성토와 울분과 전투만 남았지 의논과 연구는 이미 없습니다. 여기는 연구소요 지금 연구의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성토와 울분과 전투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확정이 되었으면 의논하고 있을 것이 아니고 성토와 울분과 성토가 있어야 합니다. 다만 혈육의 전투가 아니고 선한 전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옳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장소기 때문에 대체로 옳다고 판단되지만 그래도 나도 틀린 것이 하나라도 끼어 있을 수 있고 상대방도 그러하다 그러니 6.25나 남북이나 좌우파 예는 연구장에서 사용할 예는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전투장에서나 필요한 예입니다. 여기서 계속 이런 예를 들어 전투하는 자세로 나간다면 이 곳은 신앙연구소가 이미 아닙니다.


    2.

    oak이라는 이름으로 이전에 글을 쓴 적이 없습니다. 어떤 이름으로도.
    처음 글을 적는 다고 했습니다. 본인은 이름을 바꿔가면서 하는 그런 짓거리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 안되는 인간적 술책입니다. 처음 방문했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 2019-05-23 19:26
    위 담당님에 대한 답변입니다.

    ====목회연구소의 중단 요구에도 불구하고 신풍연구소가 계속 출판한 이유

    2번이나 변경되었습니다.

    1.아래 항목의 생명님의 글에는
    백목사님께서 사후에도 설교록이 바로 전함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출판권을 목회연구소에만 두었다. 한 발언에 대한 답변으로
    신풍연구소의 답변은
    아니다 목회연구소에 독점권을 주지 안했다. 연구소만 전하라는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전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2. 그 뒤 본인의 첫 번 째 발언은
    1988.11.28.월 백목사님이 주관한 5층 회의실에서 있었던 연구소 관련 일지기록에 의하면
    “잘못 전해지는 일이 없도록 설교록 출판권 위임.” 에 근거하여 개인.교회.공회 차원에서는 누구나 전할 수 있으나 연구소 차원에서는 목회연구소에만 출판권을 주었지 다른 연구소에는 주지 안했다 라고 장문으로 발언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신풍연구소의 답변은 사실관계는 그것이 아니고 신풍연구소가 조건없이 전하라고 사정을 했지만 목회연구소가 그렇게 하지 안해서 신풍연구소가 출판을 계속했다고 했습니다.

    3. 그 뒤 본인의 두 번째 발언은
    목회연구소가 조건없이 전하지 않는다고 해도 신풍연구소에서 출판권을 가져서는 안되고 조건없이 전하지 않는 부분만 신풍연구소에서 전해야 함을 장문으로 발언을 했습니다.
    그에 대한 신풍연구소의 위 댓글의 발언은
    사실 관계는 그것이 아니고 어떤 연구소도 전할 수 있다고 신풍연구소의 출판 중단안한 이유를 발언했습니다.

    이와 같이 신풍연구소의 출판 이유가 2번이나 변경이 되었습니다.
    2번째 변경은 맨 첫 번째 이유로 다시 복귀되었습니다.
    --------------------------------------------------
    첫 번째 발언 - 어떤 연구소도 설교록 출판할 수 있다.
    두 번째 발언 - 출판권이 목회연구소에 있지만은 조건없이 전하지 않으면 어떤 연구소도 출판권이 있다.
    세 번째 발언 - 어떤 연구소도 설교록 출판할 수 있다.
    --------------------------------------------------
    왜 두 번이나 변경이 되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목회연구소외에 어느 연구소라도 출판권이 있다는 근거

    위 담당님의 댓글에서 이 근거를 여러 가지로 발언하셨습니다.
    - 연구소의 규약
    - 백 목사님 생전의 철칙 중 철칙은 어떤 경우도 독점권을 허락하지 안했다.
    - 주교 반사제도, 목회자 시무투표의 정신, 독점권, 특권, 자격제한
    - 성경출판권의 독점으로 천주교 타락
    - 신풍연구소의 수고

    위의 항목 중
    - 백목사님의 철칙이나 복음 정신이나 교회 제도나 독점권 없이 조건없이 누구나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것을 다 알고 있고 인정합니다.
    - 역사적으로 성경출판권의 독점의 폐해가 천주교의 타락으로 이어진 것도 알고 인정합니다.
    - 신풍연구소의 수고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런 포괄적 의미로 모든 연구소가 설교록 출판권이 있다는 근거로 보기에는 명백성이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1988.11.28.월 백목사님이 주관한 5층 회의실에서 있었던 연구소 관련 일지기록에 의하면
    잘못 전해지는 일이 없도록 설교록 출판권 위임. 했다고 한 기록은 너무나 명백하게 목회연구소에만 출판권을 둔다고 했고 그 이유까지도 명백하게 기록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록은 누가 봐도 잘못 됨이 없도록 관리를 잘하라는 관리 차원이나 주의 차원은 아니고 이 지시대로 구체적으로 실행해서 훗날의 시대가 바뀌면 잘못 전해질 수 있는 위험이 있음을 영감적으로 느껴 말씀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현재는 그런 일이 없지만 더 훗날에 영리를 목적으로 억센 자가 설교록 전한다고 잘못된 내용을 전하면 통제할 길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아시고 중요하게 느꼈었음을 짐작이 되는 이유는 구체적인 이유와 구체적인 지시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관리 잘하라는 차원 같았으면 구체적인 지시는 없었을 것이라 여깁니다.

    - 그리고 연구소의 규약 중 제4조 1항,2항의 (연구소 사업)을 보면 “설교록 연구 정리의 반포” 라고 되어 있는데 이 조항은 목회연구소가 해야할 사업 방향을 표시한 것이지 어느 연구소나 출판권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백목사님이 지금 계신다고 가정한다면 출판 사업을 목회연구소에, 조직신학은 신풍목사님에게 맡겨서 하도록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출판 사업은 설교록에 애착있고 열심만 있으면 되지만 조직신학연구는 그 위에 특별한 점이 있어야 하므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 가치는 설교록은 국내에 필요한 복음이라면 조직신학은 세계에 후대에 미치는 가치가 더 있지 않나 판단됩니다.

    지금이라도 본인이 첫 위 발언한 내용 중
    백도영 목사님과 이영인 목사님에게 바라는 조처(각각 4가지씩)대로 하셨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소송이 다 취하가 되기를 바랍니다.

  • 2019-05-23 21:36
    일지는 전부를 기록하지 않았고 전부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일지를 신뢰하고 이렇게 발언을 하실 분이면 그 일지로 이렇게 글을 적기 전에 사실 관계를 이 곳에 먼저 물었으면 좋았습니다. 일지가 전부냐, 일지에 이런 출판권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충분히 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연구소 규약은 백 목사님 생전에 '초안'이 있었고 '최종안'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평생 행적을 면밀히 보시면 '찬양대는 하지 못한다' '찬양대를 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상반되는 기록과 처리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공회는 성문법이 아니라 불문법이라 하는 것은 그 내려온 내력과 대처 방향을 살피고 나서 새로운 현실을 다시 맞서는 것입니다. 시무투표 제도가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아십니까?

    서부교회에서 1990년 11월에 불신임을 당한 이재순 목사님이 1986년 이전의 기록 중 '시무투표 결과는 참고'라는 표현을 제시하며 서부교회에서 가지 못한다고 버티고 서부교회는 한 주간 큰 혼란과 분쟁에 휩싸였습니다. 당시 이재순 목사님을 위해 젊은 청년들이 몰려 다니며 난리였습니다. 서부교회 행정 책임자가 이러다가 큰 일 나겠다 하면서 어떻게 되느냐고 연구부장에게 질문을 했고 연구부장이 그 자료는 1986년 이전 것이고 1988년 자료를 가지고 이의용 아드님과 대화를 하면 바로 해결 될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이의용 현재 목사님과 연구부장은 1976년 사직동교회에서부터 서로 신뢰할 정도의 관계였습니다. 그 서류를 보여 드리며 향후 사태를 전망해 드리자 바로 그 날 간다고 발표하고 바로 떠나셨습니다. 이런 문제까지 있었기 때문에 이재순 목사님이 서울로 올라 가면서 김포공항에서 탑승 절차를 밟으러 검색대를 통과하자 환송 나온 이 목사님의 지지자 모든 분들은 돌아 갔고, 모두 돌아 가자 바로 이재순 목사님은 다시 나와서 연구부장과 공항 로비에서 대화를 좀 했습니다. 아무 이 기록은 일지에 비공개가 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어떤 것을 보시든, 발언을 할 때는 지뢰밭을 한 걸음씩 헤쳐 나가듯이 했으면 합니다.

  • 2019-05-24 00:50
    조심스러운 글입니다. 옳은방향의 글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총공회사랑'님의 글을 보면서

    만약에 백목사님이 타연구소에는 출판권을 주지 않은것이 사실이라면(담당님의 글 나오기전까지)

    '저는 백목사님이 잘못 판단' '백목사님이 그부분은 틀렸다' 라고 생각했을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설교록출간이나 공회노선연구는 여러연구소에서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저는 만약 백목사님이 "타연구소에선 출판권이 없다" 라고 말했다면, 다른 맥락이나 우리가 모르는 어떤부분이 있기에, 타연구소에서도 당연히 출판권이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대화토론을 할 때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서 성경구절을 근거 삼는데, 본인에게 유리한 성경근거구절을 삼습니다. 반대되는 성경구절도 있는데도...

    공회노선에서 대화토론을 하면 많은부분 나의 주장을 하기위해서 '백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로 근거를 삼습니다.

    그런데 저는 '백목사은 이렇게 말했다' 전에 제가 먼저 상식적으로 판단을 해봅니다.

    백목사님이 신은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정말 백목사님이 출판권은 한연구소에 둔다' 라고 초지일관 그렇게 말했다면, 저는 백목사님의 그 판단은 틀렸다 라고 생각했을겁니다.

    담당님도 예로 드셨는데, 성경연구를 사제들만 독점해서 결국 천주교의 폐단이 나타난것은 역사적으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않습니까?

    그러면 설교록출간과 공회노선연구도 한곳만 하게 된다면, 그 한곳이 썩어버리면 설교록출간과 공회노선은 사장 되어 버리지 않습니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총공회사랑님을 비판하는 글이 절대 아닙니다.
    제가 공회에서 대화토론해보면 백목사님발언을 인용 하지 않더라도 상식적인판단으로 해보면 해결될 부분이 너무 많은데..제가 보기에 저 주장은 도저히 말이 안되는데 '백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 하면서 자기주장을 펴는 상황을 몇번 경험해보아서..

    제 글의 방향이 틀렸을수도 있습니다. 제 글에 잘못된부분이 있으면 고치고 수정하겠습니다.

    저도 누구보다 백목사님의 발언에 큰 권위를 둡니다. 오해 안하셨으면 합니다.

  • 2019-05-24 05:58
    실명으로 글을 적기 원하는 총공회인 중에 한명입니다 실명으로 적기 원하나 본인 실력이 안되어 못 적기도 하고 본인은 적을 수 있으나 듣는 청중이 준비가 안되면 때를 기다려야 함이 또한 우리의 지혜일 것입니다. 저 또한 연구인의 자세로 총공회사랑님께 질문드립니다 글을 읽고 보니 외부인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
    신 게시판 pkists.net 에 글을 처음 적으신다 하셨는데 그렇다면 구 게시판 pkist.net 에는 글을 적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지금은 선입견이 먼저 생길까 하여 자신을 밝힐 수 없지만 나중에 밝히신다 하셨으니 자타구원에 손해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실 말씀을 다 하시도록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 홈 운영자님께 사회자님께 부탁드립니다 대화가 계속 이어지도록 여러 의견을 나누는 것은 좋으나 물론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논쟁하다 보면 감정이 격해질 수도 있지만 그 감정 때문에 마음의 문을 서로 닫아 버리면 이 또한 총공회적으로 연구소적으로 연구인의 자세로 볼 때는 큰 손실이라 생각됩니다 열띤 논쟁은 환영하되 인신 공격적인 발언은 조금 자제하고... 지금까지 댓글을 다셨던 분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는 제가 부족해서 자꾸 속에서 뭔가 악한 감정이 올라와서 그럽니다 우리가 다 부족하니 이런 글과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자라가는 면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 또한 연구인의 자세로 총공회사랑님께 질문드립니다 글을 읽고 보니 외부인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
    신 게시판 pkists.net 에 글을 처음 적으신다 하셨는데 그렇다면 구 게시판 pkist.net 에는 글을 적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 2019-05-24 11:04
    <담당님의 의견에 대한 답변>

    ====총공회 자료는 추후에 내용의 변동이 있을 수 있다. 에 대하여

    한 자료의 추후 변동까지 살펴보아야 그 자료를 바로 평가할 수 있다. 에 대한 의견에 동의합니다.
    찬양대 문제, 시무투표문제 등도 계속 변동된 적이 있기 때문에 최종안 보아야 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덧붙여 전체를 볼 때 추후에 변동된 것도 있고 추후에 변동없이 계속된 것도 있으니 자료를 살펴보는 것이 먼저 이겠습니다.

    일지에 기록된 백목사님의 회의시 말씀은 추후에 다른 일지를 다 봐야 알 수 있다. 후에 변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88.11.28 이후에 내용이 변동된 다른 일지나 자료를 소개해 주시면 살펴서 의논하겠습니다.

    연구소 규약도 초안과 최종안이 있다고 하셨는데 최종안을 소개해주시면 이와 같을 것입니다.


    ===============================================================


    <총공회인님에 대한 답변>

    익명으로 적은 뜻을 이해하시고 실명 공개시 답변하겠습니다.

    • 2019-05-25 19:51
      진행 중인 소송에 복 되지 않고 죄 되는 방향에 사용 될 것이어서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단 이 곳은 1998년부터 사이트를 개설한 이후 단 1회의 실수가 있다 해도 초기화면에 전면 '수정' '사과'를 하며 운영했습니다. 이 곳의 사실성 정확성은 200만 조회를 넘기면서도 이의가 거의 없었고 몇 건의 이의는 도중에 상대방의 잘못으로 밝혀 졌습니다. 이 곳의 신뢰성을 강조하면서 안내할 수 있는 것은

      * 백 목사님 생전에 이영인 부장은 백 목사님 사후를 대비하기 위해 부산연구소의 독점 출간권을 건의했습니다.
      * 그러나 최종 결제 때 백 목사님은 부산연구소의 설립과 운영은 무조건 '백영희 연구 출간만 전념' 조건을 붙이면서
      * 부산연구소와 함께 신풍연구소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별도 연구소의 규정을 확정 짓고 가셨습니다.

      따라서 굳이 목사님 생전의 마지막을 기준으로 사실과 규정과 조처하신 내용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부산연구소와 신풍연구소의 백영희 연구와 출간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다만, 두 연구소 외의 3자가 연구하고 출간하는 문제만 사람에 따라 따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 2019-05-28 12:14
        <위 담당님의 글에 대한 답변>

        88.11.28 백목사님의 말씀에 잘못 전해짐이 되지 않도록 출판권을 목회연구소에 위임한다고 하신 말씀이 그 후 부터 백목사님이 떠나시기 전까지 (89.8.27)
        변경한 말씀이 있으면 그 변경된 그 말씀이 백목사님의 뜻이고,
        변경된 말씀이 없으면 그 처음 하신 그 말씀이 백목사님의 뜻이 됨을 앞에서 언급을 했습니다.



        ====담당님의 다음 글을 인용하면
        88.11.28일 후
        ----------------
        * 백 목사님 생전에 이영인 부장은 백 목사님 사후를 대비하기 위해 부산연구소의 독점 출간권을 건의했습니다.
        * 그러나 최종 결제 때 백 목사님은 부산연구소의 설립과 운영은 무조건 '백영희 연구 출간만 전념' 조건을 붙이면서
        ----------------
        담당님은
        윗 글이 백목사님의 연구소 출판권 위임(독점) 말씀을 변경하는 근거로 발언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백목사님에게 연구소독점을 건의했지만 그에 대한 연구소독점 대답은 안하시고 연구소 일에만 전념하라고만 말씀하셨다.
        그래서 백목사님의 이 말씀을 해석하면 88.11.28 연구소 위임 말씀은 연구소 일에만 전념해라는 뜻이지 정말 위임한다라는 뜻은 아니다, 라고 지금 발언하십니다.

        이에 대한 본인의 의견은
        담당님의 해석은 잘못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연구소독점을 건의 했고 그 이후 그에 대한 최종 결제로 된 연구소 규약(최종안)에 연구소 전념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 것은 독점 건의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이유는

        시점상으로 볼 때,
        건의 한 시점과 최종 결제 시점이 차이가 있어 한 자리에 바로 주고받은 대화가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독점 건의 후 시간적으로 얼마 흐른 후에 전념하라는 말씀이 최종안으로 나왔기 때문에 인과성이 없는 경우입니다. 단지 나중에 최종 연구소 규약에 전념하라는 말씀은 독점건의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그와는 인과성이 없는 별개의 백목사님 말씀입니다. 그와 상관없이 연구소에 대한 일반적 충성 자세를 말씀하셨다고 봐야합니다.

        그리고 문백상 언맥상으로 볼 때,
        “잘못 전함이 되지 않도록 출판권을 목회연구소에 위임한다”는 말이 “전념 차원”로 해석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차원 같으면 출판권 위임이라는 구체적 표현을 쓸 수가 없습니다.
        앞 글에서는 관리 차원으로 백목사님이 하셨다고 하셨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백목사님의 출판권 위임 말씀이 전념 차원, 관리 차원의 말씀이지 실제는 출판권을 위임한다는 말씀이 아니다 라는 해석은 일반적으로 상식적으로 문맥 상 언맥 상 이해할 수없는 해석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그것이 88.11.28일 연구소위임에 대한 추후 변경된 근거라고 볼 수 없습니다.




        ========담당님의 다음 글을 인용하면

        * 부산연구소와 함께 신풍연구소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별도 연구소의 규정을 확정 짓고 가셨습니다.

        에 대하여 연구소 규약 (최종안)에 신풍연구소는 특별히 함께 일할 수 있게 하셨다는 규약이 있다면 신풍연구소도 같은 일을 해라는 것을 일단 인정합니다.

        그러나 둘다 연구 일은 하되 출판권에 대한 언급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연구소 일은 연구만 전담하는 일과 출판을 위주로 하는 일로 구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 다 출판권을 준다는 내용이 있는지 있다면 두 군데 다 출판권이 있다는 백목사님의 뜻으로 알고 더 이상 신풍연구소에 대해서 토를 달지 않고 전적 인정하겠습니다. 그 규약에서 그 내용을 최종 확인하는 순간 본인이 앞서 전하겠습니다. 이 소송의 선제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그로 인해 야기된 후발 문제를 이제 목회연구소에 간곡히 부탁을 할 수 있습니다. 확인하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 2019-06-07 11:40
        <담당님의 글에 대한 추가 답변입니다>

        공회인들이 다 알 듯이 연구와 의논의 회의장은
        일정한 주제에 대해서 각자가 연구한 것을 서로의 제한 없는 의견 제시하는 과정을 거쳐서
        상대방의 의견을 다 들어보고 최종 인정은 개인신앙양심자유로 서로 각자가 하는 것이며 그 인정한대로 각자 걷는 것이다. 이럴 때 개인신앙양심자유에 반하는 강제성은 없어야 한다. 그 인정함이 전원이 똑같으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나 인정함이 다르면 권유와 설득과 기도와 기다림의 과정을 거친 후 그래도 인정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으면 하나로 모아질 때까지 당분간 각자 방향으로 걷게 된다 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연구소에만 출판권이 있다는 의견과 신풍연구소에도 출판권이 있다는 의견이 서로 다르나 지금까지 제한 없는 많은 의견이 강제성 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인정을 위하여는 세 가지 이치인 상식적으로, 신앙양심적으로, 성경적으로 상대방 의견을 판단하여 인정을 할지 안할지 결정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가지 이치에 맞다고 판단 되면 저절로 인정을 하게 되고 세 가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인정이 안되는 것입니다.

        현재 이 시점에서 본인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연구소규약 최종본에 목회연구소와 함께 신풍연구소도 출판권이 있다고 하셨는데 본인이 연구소규약최종본을 찾아서 확인해 본 결과 그런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신풍이라는 말이나 출판권이라는 말이나 이와 같은 의미의 말은 없었습니다. 전념이나 그런 의미의 말도 없었습니다.
        확인한 연구소규약은 89.9월에 공증 받은 규약입니다.




        둘째,
        담당님의 윗글 중에
        ------------
        부산연구소와 함께 신풍연구소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별도 연구소의 규정을 확정 짓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진행 중인 소송에 복 되지 않고 죄 되는 방향에 사용 될 것이어서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
        이 글에 대해 본인의 생각은
        신풍연구소에도 출간권을 주었다는 규약이 있으면 공개하는 것이 소송에서 죄 되는 방향이 아니고 복되는 방향으로 바로 소송이 종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공개안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셋째,
        신풍연구소의 출판 이유가 3번이나 변경이 되었습니다.
        --------------------------------------------------
        첫 번째 발언 - 어떤 연구소도 설교록 출판할 수 있다.
        두 번째 발언 - 출판권이 목회연구소에 있지만은 조건없이 전하지 않으면 어떤 연구소도 출판권이 있다.
        세 번째 발언 - 어떤 연구소도 설교록 출판할 수 있다. (다시 1번으로 복귀)
        네 번째 발언 - 부산연구소와 함께 신풍연구소가 출판권을 주었다는 규정을 확정 짓고 가셨다
        --------------------------------------------------
        왜 세 번이나 변경이 되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출판권이 신풍연구소 있다는 규약을 제시 전까지는 없는 것으로 알고
        본인의 맨 첫 글에 있는 신풍연구소에 네 가지 간곡한 부탁을 선제적으로 드립니다. 만약 부탁대로 하시거나 혹은 공개가 되어 신풍연구소에도 출판권이 있다는 것이 확정되면 후속적으로 목회연구소에 네 가지 간곡한 부탁을 드릴 것입니다.

  • 2019-05-24 11:17
    <지켜보다..님에 대한 답변>

    반대되는 의견인데도 불구하고 의논과 연구 분위기로 발언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백목사님이 타 연구소에서는 출판권을 두지 않으신 것에 대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며 끝가지 그렇게 하셨다면 백목사님이 틀렸다고 판단하심에 대해서

    (상식적으로) 본다면 복음은 누구나 누구에게나 조건없이 전하는 것이고
    (성경도) 그러하고
    (기독교 역사도) 누구나 성경을 보지 못하고 전하지 못하게 해서 구원을 절단나게 한 천주교의 역사를 익히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볼 수 있는 자와 전할 수 있는 자를 제한한 천주교 역사는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성경을 보고 전하는 일을 개혁한 루터나 칼빈의 공로가 큼니다. 누구나 전하는 것이 기독교의 큰 축의 하나입니다.
    기독교의 역사의 두 축이 있는데 또 다른 한 축은 누구나 전하되 바른 성경, 바른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하지 못하게 하는 천주교의 마귀 역사 이전에 잘못된 성경을 가지게 하는 역사가 먼저 있었습니다. 성경이 확정되기까지의 마귀의 이단 역사는 맹렬했습니다. 성경이 확정된 후 성경 깨달음인 신인양성일위의 예수님에 대한 교리가 확정되기까지도 마귀의 이단 역사가 역시 끈질기고 맹렬했습니다. 즉 마귀의 성경 혼잡 역사와 교리의 혼잡 역사로 인해 구원을 박멸시키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후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가 확정된 후 마귀는 누구나 성경을 보지도 전하지도 못하도록 하고 바로 믿지 못하게 하는 성경 차단 역사와 행함으로 구원 얻는다는 믿음 혼잡 역사를 타락한 천주교를 붙들고 구원을 훼손한 마귀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로 볼 때 누구나 전하는 것도 중요하고 바른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순서는 바른 복음을 먼저 세우는 것이요 그 다음 그 바른 복음을 힘있는대로 누구나 전하는 것입니다.

    백목사님께서 누구나 복음을 전해야 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더 먼저 힘쓰야 할 것은 잘못된 설교록이 전해지는 이 위험한 면을 염려해서 누구나 전하는 중요성보다 바른 복음을 전하는 중요성을 우선 순위에 두셔서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목회연구소에만 출판권을 두신 줄 판단됩니다.



    ====대화토론을 할 때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유리한 성경구절을 근거 삼는다. 반대 성구도 있는데.

    자신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서 세상 이치나 예를 드는 것 보다 성경구절을 예를 드는 것이 훨신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이치나 세상의 예도 자기의 유리한 세상의 이치나 예를 듭니다. 불리한 세상 이치도 있는데도. 조건은 똑 같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세상의 예보다 성경의 예를 드는 것이 훨씬 하나님의 뜻에 가깝게 착오없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성구를 들면 그 반대 성구로 응수하면 성경에 진실한 사람은 그 반대되는 성구를 보면서 자기의 생각이 일방적인 것을 알고 반대 성구 준 것에 대해 고맙다 이것도 성경이니 하면서 그 성구를 존중하여 내 생각을 다시 살펴보겠다고 할 것이고 그러면 모든 성경에 모순없는 사람으로 자라는데 유익이 되리라 여깁니다.
    진실치 못한 사람은 반대 성구를 배척할 것입니다. 더 이상 그 사람은 온전함을 가지지 못합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자료로 의견을 개진할 때 자기가 몰랐는 반대 자료를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후는 하나님에게 맡기고 기도할 일인 것 같습니다.


    ====백목사님이 신은 아니지 않습니까?

    백목사님은 신이 아니고 사람입니다. 사람을 따라가면 구원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앙의 앞 선 사람을 따라갑니다. 그 분도 하나님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따라가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따라가라 할 때 그 사람을 따라가면 겉은 사람을 따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한 사안에 있어 이 사안에 대한 바른 뜻이 백목사님의 뜻이고 동시에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할 때는 그대로 따른다면 이 사람은 겉으로는 백목사님을 따르는 사람이고 실제로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 사안에 대한 바른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다고 판단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백목사님의 뜻을 따르면 사람을 따르는 것이라 판단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생각지 않고 백목사님의 뜻만 생각하고 따라간다면 역시 사람을 따르는 것이라 판단됩니다.

    백목사님도 사람이기 때문에 틀릴 수 있고 어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틀린 면이나 어린 면이 우리보다는 비교도 못할 만큼 적다는 것을 인정을 하고 최우선적으로 존중하고 고려하고 참작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합니다.


    ====설교록출간과 공회노선연구도 한곳만 하게 된다면, 그 한곳이 썩어버리면 설교록출간과 공회노선은 사장 되어 버리지 않습니까?

    그 면도 커기도 큼니다. 제대로 전함이 안되니까? 그러나 잘못 전해지는 면의 문제가 더 크다고 백목사님은 보셨다고 판단됩니다. 기독교 역사를 고려하면 이해가 되는 면도 있습니다. 목사님 걸어오신 걸음을 봐도 바른 것부터 먼저 세우신 것을 생각합니다.
    일지기록을 보면
    2.이 연구소가 '계속되다가 없어지면 그대로 방치하도록 하여 고유재산으로‘ 할 것.
    목회연구소가 없어질 수도 있음을 예상하셨음을 알수 있고 그런 염려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3번에 잘못 전해지는 일이 없도록 설교록 출판권을 목회연구소에만 위임하신 그 중심을 보면 전함보다 바른 설교록을 우선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봅니다.

  • 2019-05-24 12:49
    1. 신앙의 선구자 한교단의 창립자를 존중하고 그들신앙과 생각 사상을 배우는것은 지극히 좋은것이고 정상적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제1원리는 오직성경 입니다.
    아무리 권위있는 신앙가의 발언이라도, 사도바울의 해석이라도 신구약66권보다 권위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제 말을 오해하신것 같습니다. 백목사님의 발언이 안중요하고 신뢰성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만큼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기준은 오직 성경이지 백영희의발언이 아닙니다.


    2. 기독교에 수많은 교파와 교단들이 있습니다.
    총공회사랑님의 논리데로라면 '내가 만약 장로교라면' 타교단은 출발하면 안됩니다.장로교가 가장 바르게 성경을 해석하교 교리정립을 하고 안정적이기에, 어느교회가 감리교 침례교 순복음노선의 교회를 세우려 한다면,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반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땅에 여러교단을 세우셨고
    서로 자기교단의 단점과 부족한점을 타교단을 통해서 서로 배우고 고쳐가도록 하셨습니다.

    신구약66권정립과 교리정립과정을 이야기 하셨는데, 이 부분도 바른해석신앙과 이단사설들이 섞여있었기에 교리가 더욱 명확하게 정립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백영희신앙노선의 설교록 출간과 연구도

    여러교단들이 있는 것처럼
    바른신앙 잘못된신앙이 있어 더욱 명확하게 바른교리가 정립된것처럼

    여러출판사와 여러연구소가 있을 때
    서로 배우고 고치고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ps:두서없이 스마트폰으로 작성했습니다. 이해바랍니다. 생각나는 부분이 더 있으면 글을 쓰겠습니다.

  • 2019-05-24 17:49
    제가 자동차정비소도 두곳을 함께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곳은 크고 한곳은 개인한사람이 운영하는 곳인데, 가보면 두곳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어떨때는 큰곳에 가서 정비받고, 또 다른 상황에서는 작은곳에 가서 정비를 받습니다.

    암에 걸리면 최소2~3곳 병원을 가보고 오진이 아닌지 확인하지 않습니까?

    백영희신앙에 대한 출판사와 연구소는 여러곳있는것이 저는 당연하게 생각이 되어집니다.

  • 2019-05-25 06:03
    불신자에서 예수님을 믿게되면 전도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믿어서 교회를 다니게 되면, 당연히 나의 가족도 친구도 회사동료도 예수님 믿기를 바라며 전도하게 됩니다.

    그러면 처음엔 신앙이 어려서 부족한부분 모난부분 거친부분이 있어서 믿지않는 주변사람들과 마찰도 되고 여러과정을 거치며 신앙이 자라가며

    나중엔 전도를 지혜롭게 잘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에 예수님믿어 전도를 처음 하려는 사람에게, 총공회사랑님의 논리데로 위험성이 있으니
    신앙이 장성한 목사급만 전도하라 그러는 것은
    있을수 없는일이지 않습니까?

    설교록출간과 백영희신앙연구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어느출판사가 어느연구소가 처음부터 안정적으로 출판을 잘하고 연구를 바르게 하겠습니까?

    처음엔 어느 출판사나 어느연구소나 부족한부분 어린부분 단점들이 있겠으나, 출판하면서 연구하면서
    점점 좋아지고 안정적이 되고 불안요소는 줄어들어
    시간이 갈수록 좋아지고 온전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한출판사만 안정적으로 설교록을 출간할 수 있다의 논리는(이 한곳도 처음엔 부족한점 불안정한점이 많을 것이고) 맞지 않다 생각합니다.

  • 2019-05-25 06:37
    저는 성경적으로 아무리 살펴봐도

    성경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서로 배우며 고치며 권면하며 함께 자라가라고 수없이 말씀하고 있으니: 다른출판사와 연구소를 내가 소속된 출판사와 연구소보다 더 좋게보며 서로 배우며 서로 교정해주며

    또 상식적으로(일반계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천주교의 폐단, 여러교파가 있고, 전도를 누구나 해야하며, 중고차를 사러가도 최소 몇군데는 가보고 비교해보고 구입하고

    백영희신앙에 대한 출판사와 연구소는 여러곳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백목사님의 발언은 다른맥락이 있거나 제가 모르는상황이 있거나, 담당님이 이야기 한 이유로 인해서, 백목사님도 저처럼 '백영희신앙에 대한 여러출판사와 여러연구소'를 두는것을 당연하다 판단하셨을거라 생각합니다.

    실례로 백목사님생전에 침례교회에서 백목사님교리를 가지고 교회자체내 성경교제를 만든적이 있습니다. 그교제를 보시면서 백목사님이 '잘한다, 우리공회보다 낫다, 우리는 왜 이렇게 못하냐?'며 그 교제를 가져오신 공회교인분에게 '탄식 질타 부러움' 등의 이야기를 하신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이 한곳만 안정적으로 출판하고 연구하기를 바라셨다면, 침례교회에서 출간한 자료에 대해서
    '이러면 안된다고, 그 침례교회에 전화해서 교제 만들지 말라고 ' 하셨을거라 봅니다.
    하지만 백목사님은 그 침례교회의 성경교제를 보고 '우리공회보다 더 낫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 2019-05-25 10:53
    <지켜보다님에 대한 답변>

    지켜보다님의 의견 1.

    ====하지만 기독교의 제1원리는 오직성경 입니다.
    아무리 권위있는 신앙가의 발언이라도, 사도바울의 해석이라도 신구약66권보다 권위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제 말을 오해하신것 같습니다. 백목사님의 발언이 중요하고 신뢰성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만큼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기준은 오직 성경이지 백영희의 발언이 아닙니다.

    에 대하여 답변하겠습니다.
    이 글의 의견과 본인의 의견을 동일합니다. 백번 동감합니다. 제 글을 다시 자세히 읽어보시면 아실 겁니다. 본인이 앞에 쓴 글도 같은 뜻입니다.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지켜보다님의 글을 오해하지 않았고 처음부터 이런 중심인 것을 알았습니다.
    백목사님은 사람일 뿐 백목사님을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인 성경만 따라가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유리하니 참고할 뿐입니다. 백목사님의 뜻이라면 덮어놓고 무조건, 절대적으로 따른다면 하나님을 대신하는 개인 우상숭배가 됩니다. 외부인들이 외부에서 볼 때 공회인들이 백목사님을 특별히 따르는 것을 보고 다른 교단 창립자를 우상처럼 따르는 것을 많이 보므로 염려하여 그런 지적을 하는 분들의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신천지 이만희나, 통일교 문선명 같이 이단의 모양을 연상하여 그리로 가지 않도록염려하는 뜻으로 좋게받았습니다.
    이미 앞의 본인글에 있는 글로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백목사님도 사람이기 때문에 틀릴 수 있고 어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틀린 면이나 어린 면이 우리보다는 비교도 못할 만큼 적다는 것을 인정을 하고 최우선적으로 존중하고 고려하고 참작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위배된다면 백목사님의 뜻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누가 성구를 들고 백목사님의
    뜻이 이 성구에 위배되지않느냐 하면 정말 위배된다면 백목사님의 뜻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 뿐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갈 때 엘리사가 엘리야 사람만 보고 따라갔다면 엘리사는 하나님하고는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이제 없어졌으니 많이 낙망하고 슬퍼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엘리야 승천 후 광야에서 돌아올 때 낙망이나 슬퍼하지 않은 것은 엘리야의 겉옷을 받았기 때문이며 기뻐 돌아 왔습니다. 겉옷은 엘리야에게 함께한 하나님의 영감으로 이 영감은 하나님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른 것은 하나님의 영감을 보고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결국 엘리야라는 사람을 따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백목사님을 따름도 이와같이 따르면 따라야하고 신앙의 앞선 분을 따를 때도 이런 자세로 따라야 하지 그렇지 않음은 사람을 따르는 우상 숭배가 됩니다. 성경대로 하지않는 어떤 지도자도 따르면 않된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하는 지도자는 따라야 합니다. 그 때는 겉으로는 사람을 따르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아니라 어린 아이(육체나이.신앙나이)라도 성경대로 하면 따라가야 합니다.


    ====기독교에 수많은 교파와 교단들이 있습니다.
    총공회사랑님의 논리대로라면 '내가 만약 장로교라면' 타교단은 출발하면 안됩니다.장로교가 가장 바르게 성경을 해석하교 교리정립을 하고 안정적이기에, 어느교회가 감리교 침례교 순복음노선의 교회를 세우려 한다면,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반대를 해야 합니다.

    에 대한 답변입니다.
    타 교단을 반대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얻는 길은 성경대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즉 66권 성경을 참 성경으로 인정하고 신인양성일위의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은 대체로(더 많은 기준이 있지만) 이단으로 취급하여 상관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로교, 침례교, 성결교, 순복음 등은 같은 조건 안에 있음으로 서로 인정하고 교류를 합니다.
    그러나 각 교단마다 기본 66권 성경관과 예수관은 같아도 어떻게 믿어야 하느냐하는 믿음관과 어떤 구원이 있느냐 하는 구원관은 각 교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는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처럼 경주 방식의 차이일 뿐이기 때문에 이 차이에 대해서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이 차이를 서로 비교하여 장단점을 살펴보기도 합니다. 각 교파는 이 차이점을 각각 그 교파의 특색이라 하여 각 교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각 교파 선택의 중요성
    각 교파는 각자 스스로 자기 교파가 제일 낫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집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이치 문제입니다. 자기 교파의 깨달음이 구원을 얻는데 비교적 양심에 제일 낫다고 여기는 곳을 선택합니다. 교파 선택 문제는 아주 중요한 이유는 구원과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양심에 다른 교파가 낫다고 여기면서 다른 세상 조건에 메여 그 쪽으로 가지 못하면 구원을 제일 우선으로 여기는 신앙 양심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 각 교파 교리 보존의 중요성
    또 자기 신앙양심으로 자기 교파를 제일 낫게 여기기 때문에 자기 교파의 교리를 잘 보존해야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장로교는 장로교대로 침례교는 침례교대로 총공회는 총공회대로 당연히 잘 보존해야합니다. 제일 낫다고 여기는 교리가 변질되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그 교파의 장점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교파의 존립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 각 교파의 교회 세움의 기준
    각 교파에서 교회를 세울 때 기준은 제일 낫다고 여기는 자기 교파에 소속할 수 있는 교회를 세우지 다른 교파의 교회를 세울리는 없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합니다. 다른 교파가 잘못 되어서가 아니라 다른 교파 보다 자기 교파가 제일 낫다고 여기는 자기 교파를 세워야하는 것이 신앙양심입니다.



    ======여러교단들이 있는 것처럼 바른신앙 잘못된 신앙이 있어 더욱 명확하게 바른교리가 정립된 것처럼 여러출판사와 여러연구소가 있을 때 서로 배우고 고치고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에 대한 답변입니다.
    바른 신앙을 위해서 여러 연구소가 있을 때 더 낫다는 말씀은 일부는 동의하나 일부는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서로 비교하여 더 나은 것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순기능도 있지만 혼잡이 돼서 바로 보존 못하는 역기능도 있음을 동시에 생각을 하셨으면 합니다. 두 면을 함께 해결해야 문제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지켜보다님의 두가지 예를 보면
    한 곳의 정비소보다 두 곳의 정비소가 있을 때가 더 좋다.
    한 곳의 병원보다 두 곳의 병원이 있을 때가 더 좋다.
    답변도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 예로 답변한다면
    순기능을 인정합니다. 역기능도 함께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편리면에서 여러 정비소가 좋지만 무면허 정비소가 처음에는 한 두 군데 생기다가 점점 많이 생기면 무면허로 인한 차량의 심각한 손상 문제가 될 수 있는 역기능이 있기 때문에 면허된 정비소만 두어야하는 면도 같이 살펴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병원도 많을수록 환자에게 좋은 면도 있지만 무면허 병원의 난립으로 환자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올 수 있는 역기능도 함께 살펴 면허받지 못한 병원을 통제하고 면허 받은 병원만 허용해서 병원 수가 적어 불편하지만 저 면허된 병원에 가면 확실히 의료사고 없는 암수술 받을 수 있다고 안심하도록 하는 면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면을 함께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예수님믿어 전도를 처음 하려는 사람에게, 총공회사랑님의 논리데로 위험성이 있으니 신앙이 장성한 목사급만 전도하라 그러는 것은 있을수 없는일이지 않습니까?

    에 대한 답변입니다.
    전도의 중요성 문제와 바른 복음의 중요성 문제를 본인도 지켜보다님도 같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둘 다 해결해야 합니다. 한 가지가 아니고 둘 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을 어느 것을 먼저 해결해야 하느냐의 순서 문제는 반드시 판단해야 합니다.
    순위로 본다면 바른 복음이 먼저입니다. 그 바른 복음을 전할 때 구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복음을 전하면 아무리 많이 전해도 한 사람도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이단의 전도는 정통보다 전도의 열정과 노력과 그 결과인 더 많고 교회의 덩치도 더 큰 천주교나 통일교나 신천지는 한 사람도 구원이 안되는 몰살이지만 정통교는 부족해도 하나라도 전도하면 하나라도 삽니다. 둘 전도하면 둘이 삽니다. 전함이 중요하지만 먼저 바른 성경, 바른 예수님을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처음 믿는 사람이 해야할 일은 바른 성경을 가지게 하고 바른 예수님관을 가지게 하는 것이 먼저지 이것이 안되면 전해도 소용없습니다. 어린 신앙이라도 이것을 먼저 세우면 그 신앙 정도에서 그 신앙을 전하는 것입니다. 처음 믿는 교인에게 전도를 권하지 않고 성경공부 부터 시켜서 기본적인 신앙을 가지게 한 후 가족 이웃에게 전하도록 해야 되지 않습니까?

    ====바른 복음보다 전도를 더 우선시하는 일반 교계, 공회 안의 대구공회노선, 서울공회노선

    장로교 안에서 간단히 볼 때 전도보다 바른 복음을 더 중요시 하는 순서로 본다면
    총공회> 고신> 합동>통합 순이고
    통합은 전도 제일 주의로 방편에 제한이 없습니다. 어떻게 믿는냐 보다 어떻게 전도하느냐를 가장 큰 덕목이 됩니다. 합동은 일반 보수, 고신은 반신사참배 보수, 총공회는 극보수.
    교회와 교인과 재력의 덩치는 역순입니다.

    공회 안에 순서로 본다면
    부산공회>대구공회>서울공회 짐작을 합니다.
    대구 공회는 전도를 위하여 찬송가를 바꾸고, 서울공회는 전도를 위하여 찬송가와 총공회 간판까지도 총공회를 떼고 예수교장로교로 바꿨습니다. 이렇게 외부를 바꾸는데 총공회 교리신조야 얼마나 변경되었겠습니까? 대구공회가 나눠질 때부터 덩치가 부산공회보다 3분의2나 컸고 지금도 더 큰 줄로 짐작합니다.

    바른 복음보다 전도를 더 크게 여기는 속 중심은 교인과 교회와 재정의 덩치가 커야 그것이 구원이라는 중심이 깔려 있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중심 가진 자들은 덩치를 언제나 자랑거리로 앞서 세우고.
    전도보다 먼저 바른 노선을 지키는 것을 더 크게 여기는 속 중심은 바른 것을 믿어야 구원이 된다는 중심이 깔려있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중심 가진 자들은 바른 것을 자랑거리로 앞서 세웁니다.


    ====백목사님 떠나시기 까지 2-3년전 분위기
    몇 교회의 총공회노선 이탈과 내부 노선 이탈분위기로 인한 노선을 훼손 분위기로 집회 말씀은 오직 교리 신조 행정을 지켜야 된다는 더욱 강한 외침의 분위기였습니다.
    평소 뿐만 아니라 떠나실 때도 그 만큼 전도보다는 바른 노선을 우선으로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켜보다님은 공회분위기를 잘 모른듯해서 잠깐 소개했습니다.
    지켜보다님은 두 면의 중요성을 인정하시고 계신 점을 알고 있고 총공회 내부의 바른 노선 우선하는 경향을 이해해 주시라는 뜻입니다.

  • 2019-05-25 11:09
    시간을 내어 답변해주서 감사합니다.
    질문입니다.

    1.총공회사랑님은 식당도 단 한곳만 가시는지?
    자녀가 있다면 한 학원만 보내시는지?
    중고차 사러 가거나 물건을 사러 갈 때 단 한곳만 가시는지?
    교회도 한교회를 평생 다니셨는지?
    아내나 자녀가 있다면 그분들도 함께 한교회만 평생 다니고 있고 다니실 것인지?

    2. 바른복음 바른노선의 기준이 어디인지?
    한출판사만 백목사님 설교록을 출간해야 한다면
    어느교파의 어느교단만 내야 하는것인지?
    총공회만 백목사님설교록을 출간해야 한다면
    현재 어느공회만 출간을 해야 하는지?

    3. 만약 한곳에서만 출판에서 책을 내는데
    그 출판사가 쇠퇴하거나 타락한다해도
    다른곳은 설교록을 출간하면 안되는지?


    총공회사랑님의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

  • 2019-05-25 11:13
    4. 실제 전도를 해보셨는지? 저는 예수님 믿고나서
    4년을 일주일에 한번씩 매주 전도했고 어린이도 불신자전도를 몇년을 매주 해보았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고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고
    전도는 영혼의 힘입니다.

    그러면 전도는 예수님믿고나서 그사람이 신앙이 어리던 장성하던 누구나 자기현실에서 노력해야 하는것입니다.

  • 2019-05-25 11:17
    순기능 역기능..

    사람들이 교회에 떠나는 몇가지 이유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10가지라면
    그러면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100가지도 넘습니다.

    제가 보기에 현재 총공회사랑님은
    한곳에서만 출판해야하고 여러곳에서 출판하면 역기능이 있어서 안된다는
    논조로만 계속 글을 쓰고 있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여러곳에서 출간해서 생기는 역기능보다
    여러곳에서 출간해서 생기는 순기능이
    10배는 더 많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여러곳에서 출간하는것이 맞습니다.

    저보고 공회를 잘모른다고 하셨는데
    총공회사랑님은 공회외에 타교단은 잘모르는 것이
    아니신지?

    저는 제가 공회와 공회외에 교단에 대해
    누구보다 잘알고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 2019-05-25 11:30
    요즘 결혼을 안하려는 추세가 많습니다.
    결혼하게 되면 이런불편 저런불편 이런역기능 저런역기능이 있어서 결혼도 안해도 되고 자녀도 안낳아도 된다고 합니다.

    이 말이 맞는 말인가요?
    말은 맞죠. 분명 결혼과 자녀출산에 대한 역기능이 있으니 결혼을 안해야 하고 자녀도 안낳아야 한다.

    하지만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결혼하고 자녀낳으면 역기능이 있어도
    그것을 모두 감수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야 하지 않나요?

    출판소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 2019-05-25 12:24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칼빈의 집필서적들을
    오직 한곳에서만 출간해야 한다'

    이 주장을 가지고

    공회던 공회외던 목회자 신학자 성도들
    나아가 불신자에게까지

    한번 물어보셨으면 합니다.

    뭐라고 대답할지?

    제 판단으로 100에 100명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 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총공회사랑님이 공회던 어디던
    누구나에게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한출판사만 출간해야 한다' 라고 이야기 했을 때

    그말이 너무 맞는말이다
    라고 누군가 답변한다면

    저에게 이야기 좀 해주셨으면...

  • 2019-05-25 12:40
    제가 아는 분은 공회를 최근에 접하고 나서

    공회에 대해서, 총공회내부에서 나온 책 말고
    공회외 타교단에서 백목사님과 공회노선에 대해서
    출간한 책만 알아보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 말씀이 '어짜피 팔은 안으로 굽는다. 그러니 총공회내부에서 나온책은 객관성이 떨어진다'
    그러니 공회외부에서 공회를 평가한 책을 봐야 한다.

    이 이야기는 학문이던 신앙이던 무엇이던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이야기 입니다.

    그러면 공회외에 고신 합신 통합 침례교 순복음 등 교단에서 백목사님설교록을 출판하고 노선연구를 한다면

    객관성을 유지하고 복음전파에 큰 힘이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쓴 글들은 저는 당연히 이치적인 방향인데..

    '총공회사랑님은 자꾸 트집을 잡아서 제 글이 맞는부분도 있으나 역기능도 많으니 안된다'
    라고 제가 계속 느껴집니다.

    박정희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깔려고 했을 때
    야당에서 온갖 역기능이 있다고 반대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역기능도 실제 역기능이 아니었고
    순기능이 너무 컸고 지금 우리나라가 이만큼 사는데 일등공신을 했습니다.

    백목사님설교록을 타교단도 함께 출간하고
    함께 연구하면 이것만큼 좋은일이 어디있습니까?

    제가 무슨 잘못된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저는 별로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학력도 직장도 좋지 않습니다. 그저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당연하고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무면허정비소 무면허병원..지금 이 말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무면허정비소와 무면허병원은 안가야죠.

  • 2019-05-25 12:52
    기독교와 관련된 이단신앙이 많습니다.
    그 이단들은 모두 신구약66권을 보고 나왔습니다.

    총공회사랑님의 논리데로라면
    아담이후 6000년기독교사에 수많은 이단신앙이 있었고, 신구약66권에서 이단신앙이 나왔으니

    이 세상에 기독교신앙은 출발도 하지 말았어야 했고, 하나님이 신구약66권도 절대 주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단신앙이 나올건데 왜 기독교가 나왔고
    왜 신구약66권을 주셔서 이 고생을 해야 하는것인지?

    제가 방금 한 이야기가 지금까지 총공회사랑님의
    '역기능때문에 한곳에서만 출간해야 한다'의 여러 논증과 근거와

    다른것이 무엇이죠?

    저는 제가 방금 적은 '기독교와 신구약66권은
    이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된다'의 논리와
    총공회사랑님의 '역기능이 있으니 한곳에서만 출간해아 한다'의 논리가 같다고 봅니다.

    어짜피 기독교신앙이 출발하면
    이단신앙들이 우후죽순 생길것이고
    어짜피 신구약66권이 정립되면
    이단신앙들이 자체해석을 할 것인데

    왜 이런 불안요소가(역기능) 있는데도

    하나님은 기독교신앙을 출발하게 하셨고
    우리에게 신구약66권을 주셨을까요?

  • 2019-05-25 13:41
    총공회사랑님은 혹시 직장생활을 하신다면
    직장생활하면 분명 역기능이 있으실건데
    왜 직장생활을 하시는지?

    총공회사랑님은 혹시 자녀가 있다면
    자녀가 학교에 다닌다면 분명 역기능이 있는데
    왜 자녀를 학교에 보내시는지?

    총공회사랑님은 결혼을 하셨다면 결혼생활에
    역기능이 분명 있을것인데 왜 결혼생활을
    하시는지?

    총공회사랑님은 우리가 계속 인생을 살아가면
    역기능이 분명 있을 것인데, 왜 죽지 않으시고 계속
    살아가시는지?

    (총공회사랑님을 비판하는 질문이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위의 질문은 말이 안되는 질문이지 않습니까?

    제가 느끼기로는 총공회사랑님의 논리는

    여러출판사가 있고 여러연구소가 있으면 역기능이
    있기에 한곳만 출판하고 한곳만 연구해야 한다는
    논리인데

    그렇다면 역기능이 있는데

    왜 우리는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야 하며
    왜 우리는 혼자살지않고 결혼하여 가정이 이루고
    왜 우리는 백수로 안지내고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지?

  • 2019-05-26 20:32
    저희가 알고 믿기로, 백영희목사님의 건설구원교리는

    기독교 교리사적으로
    신구약66권 - 삼위일체 - 신인양성일위 : 초대교회때 기독교의 기본교리로 확정된 것들.
    기본구원(이신칭의) : 종교개혁때 기독교의 기본교리로 확정된 것.

    그리고 교회사에서 이신칭의(기본구원) 다음 교리로 주신 것이
    백목사님의 건설구원교리가 아닙니까?

    초대교회때 삼위일체교리는 모든성도가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하는 교리이지 않습니까?

    종교개혁당시 이신칭의교리(기본구원)는 모든성도들이 반드시 믿어야 할 교리였지 않습니까? 당시에 기독교인이 이신칭의교리를 믿지 않으면 로마카톨릭교인이 되는 것이었으니, 그시대에 이신칭의 교리를 믿는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시대에 백목사님의 건설구원교리는 우리가 알고 믿기로 전세계에 모든성도들이 알고 믿어야 하는 너무나 중요한 교리이지 않습니까?

    일반교단에 제가 아는 복음운동이 하나 있습니다.
    매년 한달에 한번씩 전국적으로 각개교회 교인들이자발적으로 집회로 모여서 은혜받고, 자기교회로 돌아가 자기교회성도들에게 소개하고 소개받은성도들이 다시 집회에 가고, 각개교회에서 그 복음운동으로 은혜받은 분들중심으로 기도-연구-소개모임이 만들어져 계속 소개하고, 그 복음운동의 은혜가 전국개교회에 계속 퍼집니다.

    백목사님의 건설구원교리는 우리시대모든성도들이 알아야 할 교리라면
    대한민국 전국5만여 개교회들에서 백영희노선연구모임이 만들어져야 하는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각개교회에서 백영희신앙노선에 대한 "연구 기도 소개" 모임이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백목사님이 그것을 저는 너무나 바랬을거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고 믿기로 백목사님 설교록은 6000년기독교사에 가장 성경적으로 바르고 깊고 은혜가 되는 설교이지 않습니까?

    종교개혁당시 개혁노선에 소속된 모든교회들에게 칼빈의기독교강요가 가장 기본적인 도서이고 전유럽에 소개되고 알고 믿었듯이

    백영희목사님의 설교록도 대한민국 전국5만개교교회에서 개교회자체적으로 매주 백사모(백영희를 사모하는 모임)가 만들어져서 함께 재독하는 모임이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백목사님 설교록들이 전국5만여교회의 교회서재에 가정서재에 개인서재에 있는것이 저희모두의 소망이고 기도제목이 아닙니까?

    지금 제가 적은 글은 총공회교인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 2019-05-27 12:06
    <위 지켜보다님의 연속9개의 댓글에 대한 답변>

    많은 댓글에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먼저 역기능과 순기능의 말은 세상 예를 드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본질적이고 쉬운 말로 바꾸면
    순기능 (좋은 점, 장점, 이점, 유리한 점, 이익)
    역기능 (나쁜 점, 단점, 폐단, 불리한 점, 손해, 문제점, 위험성) 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상 경제수입 논리나 신앙수입논리도 이치는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단체(가정, 회사, 교회 등)든 무슨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일을 시작하면 그 목적을 이루는 방편에 있어서 여러 가지가 있고 그 방편들이 각각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회의를 해서 단점은 최소하고 장점이 최대함이 되는 방편을 정하기 위해 테이블 위에 여러 방편들을 올려놓고 심사를 합니다. 심사 과정에서 각 방편에 대한 장단점의 평가가 여러 명의 판단이 똑 같으면 바로 한 방편을 의논없이 정할 수 있지만 다르면 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회의에 들어갑니다. 한명 한명에게 장단점에 대한 평가가 다른 이유를 각각 들어보고 최종 판단을 하여 결정을 합니다. 이 때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단점이 더 많으면 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단점이 많아도 장점이 더 많으면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최종 결정은 장점이 더 많으냐 단점이 더 많으냐에 따라 결정을 하게 되는데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방편을 취해야 합니다. 두 방편 중 하나를 결정할 때 그 방편의 장단점의 대소를 먼저 평가합니다. 그 평가가 각각 다르면 하나를 결정을 못합니다. 결정을 못하면 세상 단체는 힘센 자의 평가대로 결정이 되고 추진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따르는 교회는 결정될 때까지 결정을 안하고 서로 권면하고 설득하다가 그래도 안되면 하나님게 맡겨서 기도하고 기다리고 기다려도 안되면 각각의 방편으로 따로 할 수 있는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라도 바로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 때 신사참배 문제로 총회에서 결정할 때는 반대하는 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결로 의견을 누르고 결정하므로 전체가 결정대로 가므로 다 죽는 그런 결과가 되었지만 총공회는 개교회 주의를 제일의 원칙으로 삼아 최종 결정은 공회가 아니라 개교회에 두므로 이 폐단을 없앴습니다. 이 폐단을 가능하게 했던 다수결 결정을 없애고 전원일치 결정을 둔 것도 이 이유입니다. 전체가 잘못된 길로 못가게 일부라도 살 자는 살라는 제도입니다.

    지금 같은 문제를 두고 지켜보다님의 장단점의 평가와 본인의 장단점에 평가가 다릅니다. 그러니 그것을 테이블에 함께 올려 놓고 같이 평가하여 일치가 되면 좋으나 안되면 이 문제를 여러 면으로 생가하면 상대방의 의견이 맞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시간을 두는 좀 더 따로 생각하는 시점으로 판단이 됩니다.

    지켜보다님의 의견이 정리된 인용 글을 들어보면
    여러 곳에 출판하는 순기능(장점)이 한 곳에 출판하는 역기능(단점)보다 10배가 많다.
    그래서 모든 곳에 출판권을 두어야 한다. 한 곳에 출판권을 두어서는 안된다.

    본인의 의견을 정리하면 그 반대입니다. 즉
    한 곳에 출판하는 순기능(장점)이 여러 곳에 출판하는 역기능(단점)보다 훨씬 더 많다.
    그래서 한 곳에 정해서 출판권을 두어야하고 모든 곳에 출판권을 두어서는 안된다.

    두 의견은 두 의견 다 장단점은 인정하지만 장단점의 대소 평가가 다릅니다. 그래서 동시에 둘을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만 결정해야 합니다.


    ======여러가지 예에 대해서

    여러 가지 예를 드셨는데
    연구소도 여러 곳이 있음이 유리하다는 예를 드셨는데 학교, 식당 , 병원, 정비소, 교회
    예 장점을 인정합니다. 본인의 주장은 단점도 같이 계산하자는 것입니다. 단점이 장접보다 크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단점(역기능)이 있으면 일을 안해야 되는가 역기능이 있어도 해야된다 하면서 드신 예가
    단점이 있다고 학교를 안가야 되느냐 단점이 있어도 가야되지않는냐. 해답은 학교갈 때오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작으면 다녀야되고 단점이 더 크면 안다녀야 합니다.
    결혼도, 직장생활도, 고속도로 공사도 역기능이 있다고 안하는냐 하는 질문의 답도 마찬가지입니다.

    역기능이 있는데 사람이 왜 살며 하나님이 66권 성경을 왜 주셨냐는 문제는 예를 잘못 드셨습니다. 66권 주심은 하나님의 목적에 반드시 역기능도 순기능도 다 필요하기 때문이며 자살하지 않고 살아야하는 것도 역기능 순기능이 다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두 의견의 출판권 문제의 (장단점의 평가의 근거)를 이미 발언된 것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두 의견의 요약

    <지켜보다님의 의견 - 출판권을 여러 곳에 두어야 한다는 장점의 근거는>
    - 백목사님의 설교가 많이 전해 질수 있다.
    - 많은 연구소가 서로 배우고 하므로 더 온전해지고 안정적 일 수 있다.
    - 한 곳이 썩어지고 없어져도 다른 곳에서도 계속할 수 있다.
    - 객관성을 유지 할 수 있다.
    - 비유로 식당도 여러 곳이 있으면 더 좋다. 학교도, 교회도, 자동차정비소도, 병원도,
    - 기독교 역사에서 천주교의 박해는 다 성경을 보지 못하게 해서 구원이 훼손된 일과 같은 일을 방지할 수 있다.
    - '만약 정말 백목사님이 출판권은 한연구소에 둔다' 라고 초지일관 그렇게 말했다면, 백목사님이 신은 아니기 때문에 백목사님의 그 판단은 틀렸다.
    - 많은 출판사에서 출판할수록 전국 서점에 전국 교회 서재에 더 보급될 수 있다.(마지막 댓글 부분)

    <본인의 의견 - 출판권을 한 곳에 두어야 한다는 장점의 근거는>
    - 여러 곳에서의 전함의 장점이 크고 많음을 부인하지 않고 다 인정한다. 그러나 설교록이 잘못 전해지면 아무리 많이 전해도 전함의 의미가 없다. 잘못된 설교록 100을 전함보다 바로된 설교록 1을 전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바른 설교록을 보존해서 보존된 바른 설교록을 전하는 것이 더 순서이기 때문에 순서상 필연적이다. 전함이 부족해도 먼저 해결해야하기 때문이다. 그 방편으로 한 곳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 기독교 역사를 보면 누구나 전하지 못하게 한 천주교의 탄합 이전에 바른 성경, 바른 예수님교리를 가지지 못하게 한 탄압이 먼저 있었다. 바른 성경, 바른 교리의 탄압을 이기지 못했다면 천주교 탄압을 이겨서 누구나 성경을 보게되고 전하게 되어도 잘못된 성경을 보므로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바른 셩경, 바른 예수를 전해야지 구원이 된다. 신앙 세계에서는 순서상 바름이 전함보다 선제 조건이다. 바른 성경, 교리 보존이 먼저이다.

    - 백목사님이 직접 구체인 이유와 구체적인 지시를 하셨다. 잘못 전함이 되지않도록 목회연구소에 위임하신다고 하셨다. 여러 명이 있는 곳에서 하신 발언이다. 직접 하신 발언이다. 떠나시기 9개월 전이다. 성경에 특별이 반대된 것이 없으면 최대한 그 영감을 존중한다.

    - (성경 근거1) 막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소금의 특별한 기능은 2가지다. 짠 맛과 녹는 것이다. 짠 맛은 복음, 녹음은 전함(희생으로)(다른 해석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즉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것은 비유하자면 생선에 소금을 치라는 것이다. 짠 맛이 생선에 배어들게 해라. 그래야 생선이 썩지않고 먹으면 맛도 있고 힘도 난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이 복음을 짠 맛에 비유했다.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하리요 한 것은 짠 맛이 없으면 아무리 녹아서 생선에 배어들어도 소용이 없다. 녹는 기능 보다 짠 맛 기능이 우선이다. 아무리 수고와 희생의 전함이 있어도 바른 복음이 아니면 소용없다. 전함보다는 바른 복음이 우선이다.

    (성경 근거2) 고전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 몸을 불사르게 희생을 해도 사랑(대속의 사랑-복음)이 없으면 안된다. 복음의 중요성을 말한다. 불사르는 희생으로 전해도 참 복음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니다. 전함보다 복음의 중요성을 말한다. 아무리 전해도 사랑이 없는 경우가 있다. 헛 일이다. 복음의 우선성을 보여 준다.

    성경의 성구 해석은 한 성구에는 한 뜻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중의적인 뜻을 가진 경우도 많습니다. 다른 뜻도 복합적으로 되어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합적인 뜻이 있더라도 주된 뜻이 먼저 있고 부수적인 뜻도 있습니다. 본인의 해석은 주된 뜻이라 나름대로 판단합니다. 지켜보다님의 앞의 댓글에 보면 성경을 자기 유리한 것만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 데 혹시 이와 반대되는 성구를 알려주시면 편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 수 있으니 진심으로 감사히 받겠습니다.

    - 공회 내 노선의 분리는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
    총공회 노선인 백목사님 교리, 신조, 행정을 보존하는데 더 중요성을 가지자 하는 노선과 노선보다 전함에 더 유리하게 하자하는 노선이 있었고 그래서 갈라졌고 지금도 그러하다.

    전함에 불리해도 조금도 변동없이 노선을 지키자.(부산공회)
    노선을 좀 수정해도 교회 문턱을 좀 낮추자.(대구공회)
    노선을 대폭 수정해서 교회 문턱을 대폭 낮추자.(서울공회)
    30년 지난 지금은 그 차이가 훨씬 더 큽니다.
    찬송가, 남녀혼석문제, 총공회간판 이런 외부적인 것이 나타났고 교리, 신조, 행정은 이미
    서울공회는 일반진영과 거의 차이없고 오히려 더 앞서 간 면이 있고, 교리,신조 행정의 내부는 거의 흔적이 없고
    대구공회는 찬송가는 모두 처음부터 바꿨고 남녀혼석은 그런 교회, 그렇지 않는 교회 섞여있고, 백목사님의 교훈을 따르는 면에서는 연로한 선배 목회자는 그것을 보존하려고하고 젊은 목회자 중에는 공개적으로 백목사님이 틀렸다고 하는 정도라고 들음.
    부산공회는 대체로 외부(찬송가, 남녀혼석금지, 총공회간판, 집회모습)나 큰 차이가 없고, 내부교훈도 대놓고 백목사님이 틀렸다고 하는 정도는 아님.


    ==== 이제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지켜보다님의 9개의 댓글이 너무 단호해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시점보다는 서로 상대방의 장단점을 살펴보는 시점이 온 것 같습니다.
    이제 본인과 지켜보다님의 의견을 그 장점의 근거를 한 테이블에 함께 나열했으니 테이블에 앉아서 자료 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서로 비교하여 스스로 다시 한 번 서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상대방의 장점 근거를 시간을 두고 살펴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 한 가지 부탁할 것은
    이렇게 의논으로 시작하다가 서로가 단호해지면 감정으로 나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서로 격화되어 나중에는 서로 비방하는 단계로 나가다가 대적하는 데까지 가는 일을 많이 봅니다. 앞의 댓글의 외부회원님과 목회자님처럼 성토장과 울분식 전투식으로 변모되는 일이 없으면 합니다.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같은 소원과 목적을 가졌고 같은 일을 하는 동역자입니다. 서로 복음 전하는 방식의 차이를 의논했을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동역자임을 잊지맙시다.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 전함에 있어서 마가 문제로 심히 다투었지만 따로 나누어 복음 운동을 했어도 서로 비방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 후 마지막 까지 바나바를 훞륭한 동역자로 발표했고 로마 감옥에서도 마가를 찾았고 마가를 골로새교회로 추천하는 일을 한 것을 보면 앞 성구 소금을 두고(복음 전파에 있어 서로 다툼이 있어도 서로 비방하지말고) 화목하라 는 예수님을 말씀을 실천했다고 봅니다. 약4:11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 2019-05-27 12:42
    비방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울분 탄식이 있을만큼 신앙수준도 되지 않습니다.
    여기는 발언방이니 저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의 의견에 단호하다 하셨는데, 전혀 단호하지 않다 생각합니다. 제 발언은 기본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그것을 단호하게 느껴진다 하시면...'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 이 이야기를 너무 단호하게 들린다 하면 그 사람은 타종교에도 구원은 있다 라고 믿는사람이라 봅니다.

    총공회사랑님의 논리는 백목사님설교록은 '주일성수철저히 하고 주일에 돈안쓰고 선보고결혼하고 예배11번충실히 드리고 예배때 피아노외에는 다른악기는 안사용 등'는 노선에서만 전해져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다른말로하면 백영희목사님의 공회성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곳에서만 출간해야 하고 연구해야 한다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말이 안되는게, 총공회사랑님의 논리데로라면 성경도 바른노선을 가진 사람들만 출간하고 연구하고 전해야 한다는 논리와 같습니다.

    드럼기타치는 곳에서는 성경도 보면 안되고 불신자에거 성경도 선물로 전하면 안됩니다.

    물론 바른노선을 지키고 있는 분들이 성경을 출간하고 연구하면 좋지만
    어떤노선이던 어떤교파던 성경은 출간할 수 있어야 하고 연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신자도 성경을 구입해서 읽다보면 믿음이 생긴다는것이 기독교신앙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설교록출판과 연구도 드럼기타치는 교회에서고 당연히 출간하고 연구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청교도책들을 출간하고 연구하고 또 구입하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드럼치고 기타치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교회들입니다.
    하지만 그 교회들이 청교도책을 출간하고 연구하고 전하면서 청교도신앙으로 조금씩 성장합니다.

    백목사님설교록도 드럼치고 기타치는 교회에서 읽히고 연구되면 그노선에서 설교록으로 인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당연히 있는 것인데..

    제가 아는 일반교단분이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너희죄를 용서안한다' 는 말씀을 보고 지옥에 갈까봐 무서워서 용서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용서하지 않은 마음의 요소가'지옥에 간다 라고 전해주자 '바로 이해하고 감사했습니다' 그 일반교단분이 다니는 교회는 악기 엄청사용하고 방언하고 율동하지만..그 교회목사님도 구원론을 '신분의구원 - 수준의구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신자에게 백목사님설교록을 전하면 그사람 현재 현실신앙수준에서 도움이 되듯이, 노선이 어떻던 백목사님의 교훈과 교리가 들어가면 도움이 크게 될거라 믿습니다.

    노선이 약한 일반교단에서 백목사님의 교리와 교훈을 접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를 정죄할 의도나 공격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학교가서 공부하면 단점이 있어도 학교가서 공부하는것이 맞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총공회사랑님은 '단점이 많으니 학교가면 안된다'라고 이 논리로만 전개해나가는 느낌이 강합니다.

    결국은 방향성인데...저는 제 방향성이 상식적이고 성경적이고 너무 당연한데..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어쩔 수 없지만 말입니다.

  • 2019-05-27 15:19
    1.사람이 살아가는데 역기능이 있으니 사람은 살 필요가 없지 않는가?

    2.여러연구소와 출판사가 있으니 한곳의 연구소와 출판사만 있어야 하지 않는가?

    두 논리가 무엇이 다르죠?

    "하나님이 살게 하셨으니 살아간다" 이 답변은 제 질문을 잘못 이해하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하나님이 여러연구소와출판사들을 이땅에 존재케 하셨으니(기독교에 수많은 연구소와 출판사가 지금 전세계적으로 있으니)
    당연히 백영희노선의 출판사와연구소도 여러개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님의 뜻은 백목사님노선에 대한 출판사와 연구소는 여러개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런 대답을 들으려고 질문한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위의 질문에서 하나님뜻을 물은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 그러면 지금 저희토론의 point와는 전혀 무관한 답변입니다.

    총공회사랑님은 역기능이 있으니 무조건 여러연구소와 출판사는 안된다는 논리아닙니까?

    그러면 총공회사랑 논리데로 라면 당연히 사람이 살아가는데 역기능이 있으니 살필요가 없습니다.
    기독교도 역기능이 있으니 출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총공회사랑님의 제글에 대한 답변은 제 질문의 의도에서
    Point를 약간씩 빗겨나가서 이야기하는 느낌이 이습니다.(그렇지 않다면 죄송합니다. 제 느낌은 그렇습니다)

    질문드립니다.

    총공회사랑님의 가족들은 지금까지 모두 한교회만 다니십니까? 총공회사랑님은 지금까지 한교회만 다녔습니까? 앞으로도 지금 다니고 있는 한교회만 다니실 것입니까?

    총공회사랑님의 논리데로라면 한교회만 다녀야 하는것이 (타교회에 가면 역기능이 있으니) 맞지 않습니까?

  • 2019-05-28 12:16
    <지켜보다님의 위 댓글에 대한 답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미 앞 글에서 다 했는데 본인의 글을 다 읽었으면 질문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본인의 글이 너무 길어서 빠뜨린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글은 본인도 읽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윗 글에서 찾아서 복사하여 여기에 붙여넣기 하겠습니다.
    --------------------------------------

    ======여러가지 예에 대해서

    여러 가지 예를 드셨는데
    연구소도 여러 곳이 있음이 유리하다는 예를 드셨는데 학교, 식당 , 병원, 정비소, 교회
    예 장점을 인정합니다. 본인의 주장은 단점도 같이 계산하자는 것입니다. 단점이 장접보다 크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단점(역기능)이 있으면 일을 안해야 되는가 역기능이 있어도 해야된다 하면서 드신 예가
    단점이 있다고 학교를 안가야 되느냐 단점이 있어도 가야되지않는냐. 해답은 학교갈 때오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작으면 다녀야되고 단점이 더 크면 안다녀야 합니다.
    결혼도, 직장생활도, 고속도로 공사도 역기능이 있다고 안하는냐 하는 질문의 답도 마찬가지입니다.
    ---------------------------------------

  • 2019-05-28 15:21
    발언방이니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1. 백영희노선의 설교록출판과 연구소운영은
    교리노선에 무관하게 전국의 모든교회에서 이루어 질 수 있다 생각합니다.

    2. 한곳에서 출판소와 연구소를 운영하는 것은
    장점은(순기능) 10이고 단점은(역기능) 90이라 생각되어지고, 여러곳에서 출판소와 연구소가 운영되는 것은 장점은 97이고 단점은 3정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3.하지만 전부 차치하고, 한곳에서 출판과 연구가 이루어진다 했을 때..제가 그 출판소와 연구소가 마음에 안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사람마다 기호도 다르고 성향도 개성도 모두 다른데

    총공회사랑님의 주장데로 한곳에서만 출판하고 한곳에서만 연구소를 운영하게 되었는데, 모두가 그 출판사와 연구소를 좋아하고 또 옳은방향이라고 확신할 수 없지 않습니까?

    북한과 중국은 정부의 지도아래 단일한 교회만 둡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마음에 안드는 수많은 성도님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교회가 틀렸다고 믿는 수많은 성도들이 있지않습니까?
    그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마찬가지로 단일의 출판소와 연구소가 존재할 때
    도저히 그 출판소와 연구소가 노선이탈 같고 타락했는것 같고 내 기호에도 맞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백영희노선의 단일의 출판사와 연구소가 있다면
    10%기독교인은 좋아하지만 90%의 기독교인들은 안좋게 느껴져서 도저히 그곳에서 나온 설교록과 연구자료들은 수용이 안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종교가 왜 여러개 있습니까?
    교파가 왜 여러개 있습니까?

    사람마다 다양성을 가지고 있고 선호가 다르고
    신앙의확신이 다르니 그렇지 않습니까?

    • 2019-05-29 08:50
      <지켜보다님의 위 댓글에 대한 답변>

      논의의 내용을 잠간 떠나서 논의의 자세에 대해 언급하고자 합니다.

      ====질문 형식의 어투 보다는 자신 입장 표명의 어투로 발언하심이 더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위 댓글 내용 중에 문장의 어미를 “생각합니다.” 라고 끝맺는 문장은 1번과 2번 두 개가 있고
      그 이후 나머지는 모두 10번이나 ∽까? 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글 모두 이렇게 질문 형식의 어미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두 어미의 속 뜻의 차이는

      “생각합니다”는 자신의 생각과 뜻은 이러하니 상대방께서는 내 생각을 생각해 보시고 다시 한 번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라는 속 뜻이라 생각합니다.

      “왜 ∽해야 합니까?“를 해석하면 발언자가 정말 몰라서 묻는 말이 아니고 내 생각은 이렇게 확실한 데 이에 대해 의견이 다른 상대방의 생각의 답변을 요구하는 답변요청식의 분위기가 되며, 내 생각을 인정해야 되지 않습니까? 인정할 것을 요청하는 인정요청식의 속 뜻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논의 목적은 상대방을 인정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 뜻이 맞는지 상대방의 뜻이 맞는지 일단 두 생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의견 제시) , 두 의견을 서로 번갈라 보면서 비교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자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면 의논이 필요가 없습니다. 내 의견과 상대방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를 두어야 하고 그래서 서로의 의견을 제시하는데 까지만 하고 어느 것을 인정하는냐 하는 문제는 서로 본인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는 의견 제시이고(테이블에 올려놓는 것), “∽까?“는 상대방에게 이것이 옳으니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 인정하기 바랍니다. 라는 속 뜻이 있기 때문에 인정하는 문제는 각자에게 맡기자는 뜻입니다. 제시된 두 의견을 생각해보고 그 후 옳다고(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면 인정 요구가 없어도 저절로 인정을 하게 됩니다.
      지켜보다님이 발언한 예를 들면 “학교에 다닐 때 역기능이 있는데 왜 학교에 다닙니까?”
      이것을 바꾸어서 “나는 학교에 다닐 때 역기능이 있어도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기의 생각을 그냥 제시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판단과 인정은 각자의 범위이지 요구할 범위가 아닙니다. 위 1, 2번처럼 “생각합니다” 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합니다. 한 두 번 하는 것은 강조의 뜻으로 받을 수 있으나 너무 많으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본인의 글은 한 두 개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종류의 예는 많이 나열할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 두 예를 들어 그 의견이 전달되면 판단하고 인정하는데는 충분합니다.
      한 두 예 이상으로 나열하는 것은 의견 제시에서 나아가 상대방을 내 뜻이 옳음을 인정시키는데 유리하겠다고 생각되어 같은 종류의 예를 많이 듭니다. 제시한 하나의 예의 이치가 맞다고 생각하면 그 뒤에 아무리 많아도 똑 같고, 제시한 하나의 예의 이치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 뒤에 아무리 많아도 똑 같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학교, 식당 , 병원, 정비소, 교회, / 결혼도, 직장생활도, 고속도로 공사
      학교 하나만 이치에 맞으면 그 뒤는 다 같기 때문에 같은 주제의 예는 한 두 개면 충분합니다. 같은 종류의 예를 많이 든다고 이치다 더 옳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글을 충분히 읽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상대방의 글을 많아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빠짐없이 시간을 두고 몇 번을 일고 생가할 시간을 두고 난 후에 답변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이미 답변을 답변했는데도 같은 질문을 또 할 수 있기 때문이며 상대방이 언급한 내용의 뜻을 정확히 몰라서 다시 중복하여 논의를 해야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위 글은 자세히 보면 이미 본인이 발언한 내용 안에 있고 지켜보다님이 이미 발언한 내용 안에 있는 내용입니다.

      =====현재 상황은 논의의 주제에 대한 의견이 나올만큼 나왔고 둘을 비교할 수 있도록 정리하여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더 이상 같은 종류의 의견은 제시할 시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서로 살펴보고 판단하고 각자 인정할 시점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다른 주제가 있으면 예외가 되겠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왜 내 의견이 이렇게 맞는데 상대방은 인정을 안하는냐 하는 정도로 나가면 의논은 저절로 끝이 납니다.
      그 뒤는 단호한 발언이 나오고 이어서 감정이 묻혀 나오고 그 뒤는 성토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인이 이 말을 재차 언급하는 것은 많은 의논 끝에 이렇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지 않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언급했지만 바울은 심한 다툼이 있었어도 그 후 바나바를 훌륭한 동역자로 평가한 것은 이 시대에도 동역자 간에 바울처럼 그럴 수 있는 심한 의견 다툼이 있어도 조심하라는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부탁 말씀으로 보입니다.

      고전10장 6-9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 2019-05-29 10:21
        총공회 사랑님의 논의의 자세와 교인 20님의 논의의 자세가 다른 점은 도대체 뭐지요?

        제 3자인 제가 보기에는, 양쪽 다 똑같이 자기 생각을 굳건히 갖고 계신 것이고, 둘 다 일리가 있고, 다만 합리성, 타당상에서 무엇이 더 하나님의 뜻에 올바른 토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은 참 부드럽게 말씀하시고, '말을 너무 부정적으로 하지 말아라. 강압적으로 하지 말아라'고 충고하시지만, 사실 누구보다 강압적이고, 부정적인 분 또한 총공회 사랑님으로 보입니다.

        생전 백영희 목사님 생전에 가장 가까이 모셨던 담당자의 '연구소 출간과 저작권에 대한 백 목사님의 뜻은 이렇다'고 사실에 기초한 설득에도, '부분적인 사실은 믿을 수 없다'고만 하시고,

        지켜보자님의 상식과 양심에 따른 설득에도, '내 생각은 다르다'고 계속 평행선을 긋고 계십니다.

        총공회 사랑님도,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찾자고자 하지만, 사실은 이미 답을 내리고 계시고, 거기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고 계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게 틀린 것이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주관이 있어야, 그게 진리로 믿어질 때에, 크게 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만이, 내 생각이, 내 해석만이 옳고, 상대방이 그리하는 것은 틀렸다고 하는 아집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하나님의 뜻을 찾는 자세를 바로 하라는 그런 말씀은 이제는 그만 해주시고, 서로 나눈 말씀에 대해서만 깊이 생각해주세요.

        혹시, 총공회 사랑님만이, 총공회 사랑님의 표현만이, 총공회 사랑님의 논리만이 하나님의 뜻을 찾고 계시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점점 아쉬워집니다. 저도 처음에는 총공회 사랑님의 진심을 오해했습니다. 대단히 죄송했고, 어느 현실이든지 진심 속의 희망을 바라보아야 했기에, 주님 앞에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토론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론이 진행되는 것을 보니, 실제 총공회 사랑님은 사실 하나님의 뜻을 객관적으로 찾으시기 보다, 답을 미리 내려놓으고, 이미 정해진 답을 이곳에 강요하고자 하시는 것은 저의는 아니었는지? 의심이 안들래야 안 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의 오해가 오해로, 저의 회개로 저의 불찰로 마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2019-05-30 10:00
          <외부회원님에 대한 답변>

          1.
          --------------
          말씀은 참 부드럽게 말씀하시고, '말을 너무 부정적으로 하지 말아라. 강압적으로 하지 말아라'고 충고하시지만, 사실 누구보다 강압적이고, 부정적인 분 또한 총공회 사랑님으로 보입니다.
          --------------
          에 대한 답변은
          “부정적으로 하지 말아라. 강압적으로 하지 말아라” 라고 본인이 발언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충고한 발언이 어디 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바랍니다. 알려주면 성실히 답변하겠습니다.
          다만 의견 제시 방식에서 답변을 요청하며 인정을 요청하는 (상대방에게 질문 방식) 보다는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는 (자기 의견 발표식)방식이 바람직하다고 하였습니다.
          상대방 발언 원문을 자기대로 왜곡 해석하는 일은 해서는 안됩니다.



          2.
          -------------
          생전 백영희 목사님 생전에 가장 가까이 모셨던 담당자의 '연구소 출간과 저작권에 대한 백 목사님의 뜻은 이렇다'고 사실에 기초한 설득에도, '부분적인 사실은 믿을 수 없다'고만 하시고,
          -------------
          본인은 누가 설득해도 자료에 기초하지 않으면 심정적으로는 믿을 때는 있지만 최종은 다 믿지 않습니다. 백목사님 사후 공회간 대립과 싸움에서 거짓말에 너무 많이 속아 왔기 때문입니다.


          3.
          ------------
          지켜보자님의 상식과 양심에 따른 설득에도, '내 생각은 다르다'고 계속 평행선을 긋고 계십니다. 총공회 사랑님도,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찾자고자 하지만, 사실은 이미 답을 내리고 계시고, 거기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고 계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
          평행선을 긋고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본인이 판단되어서 인정을 안하는데 당연히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고 상대방 쪽으로 발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본인도 상대방에게 상식과 양심으로 발언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평행선을 긋고 발을 움직이지 않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입니다.

          4.
          ----------
          혹시, 총공회 사랑님만이, 총공회 사랑님의 표현만이, 총공회 사랑님의 논리만이 하나님의 뜻을 찾고 계시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
          (상대방에게 질문 방식) 보다는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는 (자기 의견 발표식)방식이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낫다는 의견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유일한 방법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더 낫다는 뜻입니다. 인정을 하고 안하고는 지켜보다님의 범위입니다. 의견만 제시 했을 뿐입니다.


          5.
          -----------
          답을 미리 내려놓으고, 이미 정해진 답을 이곳에 강요하고자 하시는 것은 저의는 아니었는지? 의심이 안들래야 안 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
          정해진 답을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어떤 면이 그런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셔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발언 하지 않으면 지어낸 말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답을 정해놓고 의논하려면 상대방의 의견을 아예 안들어야 하는데 상대방의 의견을 일일이 요약해서 빠짐없이 테이블에 나열했습니다. 상대방에게 인정시키도록 강요를 했다고 하셨는데 강요를 할려면 무력의 힘이 있어야 하는데 무력 힘도 없고 상호 익명으로 온라인 상에서 무력 행사할 환경도 아니고 상대방이 강요당할 만한 입장도 환경도 아닌데 강요했다는 것은 억지일 뿐입니다.

          강요하고자 하는 저의가 의심 된다 라고 하심은 논의하는 논의의 범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상호 의견을 제시하는 논의를 하다가 갑자기 저의가 의심된다는 발언은 의견 제시와 상관없는 상대방이 잘못하고 있다는 공격적 발언입니다.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이 불쑥 나타나 의논자의 저의가 의심된다는 발언은 회의의 분위기를 일시 성토장으로 바꾸는 발언입니다. 저의가 의심되니 논의자의 입을 막아야한다 뜻이 됩니다. 이런 공격적 발언에 그렇지 않다고 싸워 전투장을 만들어야 합니까? 전투장을 만들 수 없으니 이런 회의를 더 진행하지 못하도록 관리자가 강제 조치를 시키든지 약속을 받든지 해야할 상황이라 여깁니다. 이런 의견 제시를 해야하는데 의견 제시는 하지 않고 의견자의 저의가 의심된다는 공격적 발언은 연구소가 아닌 전투장에서 가서 해야합니다. 앞에서도 외부회원 이름으로 발언하신 분이 같은 분인 것인 것같습니다. 거기서도 6.25 남북전쟁을 언급하며 본인을 대적인 북으로 비유하여 성토 분위기로 가더니 여기서도 저의가 의심된다고 공격 분위기로 바꿈니다. 스스로 물러가는 것이 의논을 위하는 길입니다. 지금까지 담당님과 지켜보다님과 아래 교인20님은 의논을 하는 의논자이어서 의논을 계속 잘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부회원님은 의논자가 아니라 전투자로 나타나셔서 주제에 대한 의견을 제시를 하지 않고 의논자를 향해 공격을 하므로 회의를 중단케 하므로 이 문제는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제법 계속 의견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 2019-05-29 11:50
        본인이 댓글다는 방법이 서툴러서
        위의 본인의 글(논의의 내용을 떠나서 라고 시작하는 글)을 지켜보다님의 아래에 달아야 하는데 모르고 맨 아래 달다보니 그 사이에 교인20님글이 끼어 버렸습니다. 위치가 잘못되었습니다. 관리자님께서 혹시 지켜보다님의 글아래로 답글로 옮길 수 없으신지요? 그러면 혼동성이 없겠습니다. 그 아래 글을 단 외부회원님이 본인글이 교인20님에 대한 댓글인 줄 착각한 것 같습니다. 지켜보다님에 대한 댓글인데...

        • 2019-05-29 11:58
          요청에 따라 댓글 위치를 이동하였습니다.

        • 2019-05-29 14:31
          지켜보다님에 대한 댓글이었다 하여도, 제가 받은 느낌과 드리고 싶은 말씀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면 의논이 필요가 없습니다. 내 의견과 상대방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를 두어야 하고 그래서 서로의 의견을 제시하는데 까지만 하고 어느 것을 인정하는냐 하는 문제는 서로 본인에게 맡겨야 합니다.
          =========================================================

          =======================================================
          자기의 생각을 그냥 제시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판단과 인정은 각자의 범위이지 요구할 범위가 아닙니다.
          =======================================================

          저는 이런 자세로, (죄송하지만,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이런 주제로 토론을 시작하셨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어떤 생각도 강요하지는 말라고 하면서, 이런 토론 자세를 정해놓고 누구보다 더 강요하고 있는 것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대화 중에 죄송합니다만은, 더는 진행될 것 같지 않아서, 이 토론에 대한 저의 소감을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저의 의견 제시일 뿐입니다.

          • 2019-05-30 10:01
            <외부회원님에 대한 답변>

            ---------------------
            ==================
            자기의 생각을 그냥 제시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판단과 인정은 각자의 범위이지 요구할 범위가 아닙니다.
            =================

            저는 이런 자세로, (죄송하지만,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이런 주제로 토론을 시작하셨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어떤 생각도 강요하지는 말라고 하면서, 이런 토론 자세를 정해놓고 누구보다 더 강요하고 있는 것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



            회의는 의견이 다를 때 시작합니다. 의견이 같으면 시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 의견을 제시하고 서로의 의견을 참작하고 최종 결정은 하나이기 때문에 전체가 다 같은 뜻이면 일단 그 뜻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추진하다가 다른 하나님의 뜻이 발견되어 전원일치로 결정되면 그 뜻대로 실행합니다.
            서로의 뜻이 달라 전원일치가 안되면 세상에서는 다수결로 하거나 억센 자나 우두머리의 결정대로 따라갑니다. 인정이 되지 안해도 강제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공회는 전원일치가 안되는 경우에는 다수결로 해서 찬성(인정)을 안하는 자에게도 강제로 인정하게해서 따라가게 안합니다. 일단 결정을 보류하고 반대자를 위해 기도와 설득과 권유를 거쳐서 그래도 안되면 후에는 자기가 인정한대로 각각 행하게 합니다. 이 것이 개교회주의요 전원일치제도입니다. 몰살 보다는 일부라도 살아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공회는 인정은 누구도 강제하지않고 본인이 한 대로 하게 하는 것입니다. 외부교인님처럼 무책임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이것이 옳는 것이다. 하면서 강제로 인정시키는 일을 하지않습니다.
            이런 공회대원칙이 있고 그 아래 별도로 어린 신앙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은 이 원칙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즉 양육 차원은 아직은 어려서 잘 모르니 인정을 못해도 달래가면서 끌고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무책임을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공회의 대원칙하에서 의논하는 데 인정을 본인에게만 두어야 함이 마땅한데도 무책임하다고 하는 것은 양육 차원을 여기에 갖다 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공격하는 잘못을 행하는 것입니다.

            공회대원칙 - 본인에게 인정을 강요하면 안된다. 개인양심자유 (각자 자기 인정- 자기 책임)
            양육 차원 - 본인이 어릴 때는 달래가며 강요해야할 때도 있다. (어린 신앙을 책임지고)
            이것을 섞어 혼동하면 안된다.

            의논 자세에 대해서 본인이 강요를 요구했다고,
            다른 논의자들에게 본인이 강요를 요구했다고 외부회원님이 발언하시는데
            그 말은 거짓말이라고 윗글에서(1번과 5번) 이미 설명했습니다.

  • 2019-05-29 07:25
    지켜보다님과 다른분들께서 많은 말씀하셨지만, 동조하는 차원에서 저도 글을 적어봅니다.

    총공회사랑님께서 제일 처음에 주장하신 말씀 중에 인용합니다.
    -------
    잘못 전해지는 일이 없도록 설교록 출판권 위임.

    맨 마지막 줄로 보건데 백목사님의 뜻을 알 수 있고 백목사님께서 미래에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로 목회연구소에만 출판권을 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회연구소 외의 다른 연구소는 출판권을 배제시켰습니다. 우리의 신앙 양심과 상식으로도 하나님의 뜻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됩니다.
    ------
    이 말은 백목사님은 목회연구소는 잘못 전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셨다라는것을 전제로 한 말씀입니다. 신앙양심과 상식적으로 그럴 수는 절대 없는 일입니다. 백목사님의 영안이 어두워지셨던가, 저희는 모르는 뒷이야기가 있겠죠. (사실, 저 글만 읽어도 해결이 됩니다.)

    총공회사랑님은 만약 연구소의 수장이 백목사님 생전 설교록을 난도질 하던 사람이였다면, 그래도 이런 주장을 하셨을련지요?


    면허 없는 정비소를 가면 안된다 하셨습니다. 누가 면허를 주지요? 제가 사는 동네에 한 할아버지는 면허가 없으나 주변 의사선생님들이 어려운 수술있으면 조언받으러 옵니다. 좋은 의사를 나라가 막아둔겁니다.


    설교록은 녹음되어 있고 앞뒤 문맥과 다른 모든 설교록을 보면 수정된걸 눈치챌 수 있습니다. 설교록은 조작될 문제가 없습니다. 조작되는 순간 (조작된걸 모르고 보더라도) 다 떨어지고 없어집니다

    총공회사랑님은 바른 교리가 서지 않은 사탕 받으러 교회가자는 어린 아이는 전도하면 안된다는 말씀이신데,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시는 겁니다. 한국어 성경도 번역이 잘못된 부분이 많은데, 성경 번역은 하지 말라는 것인가? 말씀을 알려주는 분은 바로 번역된 성경이 아니라 그 속에 성령이 가르쳐주는 성경입니다

    • 2019-05-30 10:03
      <교인20님의 댓글에 대한 답변>

      교인20님의 댓글 중
      ------------------
      이 말은 백목사님은 목회연구소는 잘못 전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셨다 라는 것을 전제로 한 말씀입니다. 신앙양심과 상식적으로 그럴 수는 절대 없는 일입니다. 백목사님의 영안이 어두워지셨던가, 저희는 모르는 뒷이야기가 있겠죠. (사실, 저 글만 읽어도 해결이 됩니다.)
      ------------------
      에 대하여 답변합니다.

      “백목사님은 목회연구소는 잘못 전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셨다라는것을 전제로 한 말씀입니다.” 이 이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이유는
      (잘못 전해지는 일이 없도록 목회연구소에 설교록 출판권 위임한다)는 백목사님의 말씀은 목회연구소가 잘못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 아니라 목회연구소가 어느 단체처럼 완전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 전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만 목회연구소에 위임하는 것이 아무 단체나 출판권을 행사하는 것보다 잘못 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적은 가능성을 때문에 목회연구소에 위임한다는 것입니다.
      이 것은 신앙양심과 상식에 맞다고 판단합니다. 백목사님의 영안이 어두워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한참 위에 있는 담당님의 글에도 이영인목사님이 백목사님에게 목회연구소 독점을 건의하셨다고 했습니다. 영안이 어두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신앙양심이고 상식입니다.

      “, 저희는 모르는 뒷이야기가 있겠죠. ” 이런 뒷이야기가 있으면 여기에 제시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굉장한 것이 있는 것처럼 암시하는 말로 혼란을 주는 것보다. 제시안하고 이런 암시만하면 없는데 있는 것처럼 말한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교인20님의 댓글 내용 중
      -------------------
      총공회사랑님은 만약 연구소의 수장이 백목사님 생전 설교록을 난도질 하던 사람이였다면, 그래도 이런 주장을 하셨을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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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대해 답변합니다.
      만약 연구소의 수장이 백목사님 생전 설교록을 난도질 하던 사람이었다면, 하는 주장을 하기 전에 그 자료를 먼저 제시하는 것이 맞습니다. 의견 제시는 일반적으로 근거와 함께 의견을 제시해야합니다.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만약에 있다면” 이라고 하면서 근거 자료를 제시 않고 의견을 제시하면 나중에 그 근거자료가 없거나 거짓이라면 의논은 헛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있다면 제시하시고, 없다면 “만약에 있다면”이란 말은 사용하지 말아야합니다.
      연구소의 수장이 백목사님 생전 설교록을 난도질한 경우가 있다면 자세한 구체적 사실을 알려야 근거 자료가 됩니다. 공개를 못하면 공개할 수 있는 때에 이 발언을 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사실 관계에 근거하여 의논이 출발이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근거 제시가 선제 조건이 되지 않으면 의논은 헛 일이기 때문입니다. 상호 똑같은 조건입니다. 난도질한 자세한 구체적 내용 제시하면 답변하겠습니다.



      교인20님의 댓글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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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허 없는 정비소를 가면 안된다 하셨습니다. 누가 면허를 주지요? 제가 사는 동네에 한 할아버지는 면허가 없으나 주변 의사선생님들이 어려운 수술있으면 조언받으러 옵니다. 좋은 의사를 나라가 막아둔겁니다.
      ---------------------
      지켜보다님의 예를 본인도 같은 예로 답했고 교인20님도 같은 예로 발언하셨으니 같은 예로 답변하겠습니다.

      면허 없는 정비소, 면허 없는 병원은 가야하느냐 안가는 것이 맞느냐
      면허 있는 정비소만 가야하느냐, 면허 있는 병원만 가야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두 예는 같은 종류이기 때문에 한 예만 가지고 설명하겠습니다. 맥락은 동일하니까.

      면허 없는 병원과 면허 있는 병원, 어느 곳을 가야 되느냐 하는 문제로 요약되겠습니다.
      이 때 면허는 국가가 허용한 의사(의사면허증 있는 의사), 국가가 허용한 병원(국가가 설립인가한 병원)을 말합니다.

      당연히 일반적으로는 면허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면허 없는 동네 할아버지 의사가 면허있는 병원보다 실력이 더 좋습니다.
      그러면 좀 생각을 해야할 문제입니다. 당연히 치료를 위해서는 실력이 좋은 할아버지에게 가야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것도 계산해야합니다. 그 할아버지가 소문이 나니 이 소문을 듣고 무면허 의사가 이전보다 더 많이 우후준순처럼 생깁니다. 더 많이 생긴 무면허 의사(병원) 중에 할아버지와 같은 실력이 없을 수도 있고 돌팔이 의사가 생겨 생명에 막대한 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이 피해가 너무 클 경우에는 국가에서도 생각하기를 그 할아버지 무면허 의사를 생각하면 무면허라도 모른척하고 있어야하지만 그 이후 우후준순처럼 생겨 무면허 의사를 막지 않으면 안되는 차원에서 면허를 받은 의사에게만 진료권을 주고 무면허 의사에게는 진료권을 주지 않는 조치를 합니다.

      그럴 때 할아버지가 국가에 항변하기를 요즘 면허받은 의사의 기술 부족이나 잘못된 면을 지적하면서 나에게도 진료권을 주어야 한다고 항변하면 국가에서는 무면허 의사에게 진료권을 줄 때 오는 장점과 페단을 생각하고 면허 받은 자에게만 진료권을 주는 장점과 폐단을 생각해서 장점이 단점보다 더 많다고 판정되면 면허받은 의사에게만 진료권을 주어야한다라고 결정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이 두 장단점을 충분히 더 멀리 넓게 고려한다면 비록 면허 받은 의사가 실력면에서 더 낫지 않 할 수도 있어도 면허 받지 못한 의사의 실력의 장점이 있어도 면허받은 의사에게만 진료권을 준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출판권을 한 곳에 두는 것이 단점이 없는 절대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여러 곳에 출판권을 두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라 판단합니다. 장기간 안목으로 넓은 안목으로 장단점을 살핀 처사라 생각합니다.

      이 때 무면허 할아버지의 바람직한 행동은 비록 실력은 낫고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무면허로 인한 많은 폐단이 발생하고 이 단점의 크기가 장점보다 너무 크니 이것을 없애는 것이 최우선으로 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무면허를 통제하는 것이 맞겠다. 나는 무면허이니 진료권이 통제받아야 한다. 내가 할 일은 실력이 부족한 면허받은 의사를 도와서 진료를 잘 보도록 협조하는 일을 해야겠다 하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연구소가 부족해도 실력이 더 좋은 자가 있으면 따로 출판권 요구보다 목회연구소에 적극 협조하면 백목사님의 뜻을 따르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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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도가 좀 다르지만 비슷한 예 하나만 더 들겠습니다.
      열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자기 사업을 큰 아들(장남)에게 물려 주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다른 아들보다 사업 실력도 덜하고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생들이 형에게 항의하여 형보다 우리가 실력이 더 낫다. 형은 부족한 면이 너무 많다, 잘못한 면도 있다. 그래서 우리도 이 사업을 똑같이 하겠다.
      그러나 막내 동생이 다른 형제들에게 말하기를 큰 형이 부족하고 제대로 사업을 못하고 잘못이 있더라도 우리가 따로 사업을 차리는 것는 보다는 아버지 뜻을 생각해보자 생전 아버지는 형의 부족한 실력과 우리의 더 나은 실력을 모르고 큰형한테 물려 주었겠나 우리가 헤아리지 못하는 더 길고 넓은 안목으로 큰 형한테 물려 주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여 우리가 부족한 큰 형의 사업을 도와서 사업도 완성하고 형제 우애를 더 가지라고 하신 뜻으로 받다. 이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 생각한다. 큰 형을 앞세우고 부족한 면을 우리가 그 것을 메꾸자.



      교인20님의 댓글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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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공회사랑님은 바른 교리가 서지 않은 사탕 받으러 교회가자는 어린 아이는 전도하면 안된다는 말씀이신데,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시는 겁니다. 한국어 성경도 번역이 잘못된 부분이 많은데, 성경 번역은 하지 말라는 것인가? 말씀을 알려주는 분은 바로 번역된 성경이 아니라 그 속에 성령이 가르쳐주는 성경입니다
      ---------------
      “바른 교리가 서지 않은 사탕 받으러 교회가자는 어린 아이는 전도하면 안된다“ 본인은 이렇게 말하지 안했습니다. 이 말은 본인이 발언한 원문을 왜곡 해석을 해서 올린 것이지 원문이 아닙니다. 인용을 하실려면 본인 발언의 원문을 인용하면 이런 일이 없겠습니다. 원문왜곡해석 능력이 위 외부회원님과 동일합니다.
      구원은 누구나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예수를 믿는 이것을 먼저 가르쳐서 그것을 전할 때 구원이 된다고 했습니다. 구원의 도리를 말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전도하면 안된라고 하는 말과는 주제가 다른 말입니다. 그러면 처음 교회에 사탕 먹으러 온 아이에게 전도부터 가르쳐야 하는냐 예수부터 가르쳐야 하는냐 예수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부처나 옥황상제나 똑 같다고 여기며 사탕먹으러 왔다면 내일은 절에 갈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사탕을 주면서 우리의 목적인 예수를 믿어야 구원얻는다 라고 가르치고 다음 주에는 절에는 가지말고 꼭 교회로 와야된다. 이것을 안가르치면 그 아이가 이런 말을 하면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절에 갈거예요 거기는 더 많은 사탕을 준대요. 절이나 교회나 같은 곳 아니에요?”라고..
      이런 발언이 처음오는 어린 아이가 전도하면 안된다고 하는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구원 원리로 말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전도한다면 이미 예수를 들었고 믿었기 때문에 교회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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