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양성원 -현실적으로 합리적인가 비합리적인가-

작성자
평신도
작성일
2018.12.01
(더 정확하게 읽으시려면 '첨부' 파일을 사용해 주십시오. - 관리, 18.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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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성원, -현실적으로 합리적인가 비합리적인가-

<애초에 세워졌던 역할을 되새기며>

여태껏 난관을 극복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어떤 성경적 논리로 양립되어 있는지와 그 깊은 내막은 잘 모릅니다. 익히 아는 사안이고 여러 면으로 숙고한 결말인데 뭘 안다고 어리석게 새삼스럽게 이러느냐..며 나무랄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그럴 위치에 있거나 입장도 아니며 또한 행함이 없어 심히 부끄럽고 미약하고 부족하기만 합니다.

다만, 애초설립에 따라 기능적으로 활용되지 못한 채 여태 방치되고 있는 양성원을 떠올리며, 그 시초의 동기와 목적 면을 중심으로, 대단히 외람되지만 주님의 뜻을 그르칠지 나름 조심스럽게 두서없이 적어보게 됩니다.

성경말씀과 교리적으로 맞지 않거나 미숙한 표현 있으면 송구하며, 짧은 소견의 자문(自問)식일 뿐, 토론목적이나 주장으로 관철하려거나 혜안도 판단도 아닌 것이므로 오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한편에서 논쟁을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며, 단지 밝은 미래사를 떠올리며 긍정으로 이해해보려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으로나 온 교회나 서로 지체된 모두의 마음에 해(害)가 되고 근심되게 하는 비난이나 기대감을 비켜간 글, 일체 없기만을 정중히 부탁드리며 행여 있으면 관리자님 재량으로 즉시 삭제하셔도 무방합니다.

의문부는 표현일 뿐이며, 미숙하여 길어졌음을 혜량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옳을까]

아침햇살이 그곳을 여전 밝게 비추고는 있지만 (비유로) 긴 세월 적막에 싸여 쓸쓸히 서있는 모습을 떠올리며 나름 적어봅니다.

개괄적면으로, 이 현상을 두고 주님께서 칭찬하시어 양편의 손을 다 들어 주심인지, 어느 한편만인지 아니면 다 안 들어 주실지, 이 해결을 깊이 관여된 세대에 두심인지, 다음세대인지, 전혀 목격하지 않은 세대로 넘기심인지..,
이 현상이, 성경에 나타난 분쟁과 동격(질)인 것이 맞으면 참 평안에 놓여있다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비록 논쟁할 수는 있으나 주님 허락 없이하는 표시는 결국 주님 판단하심에 반(反)하고 온 지체의 영적정체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해하면 옳을지,

또한, (조금 비켜가지만) 용서와 관련하여, 지금껏 현상이 처음부터 무조건 서로용서를 전제하고 지속이라 이해하면 되는지, 그런데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말씀했는데, 문제가 나(한편이)아니라 상대 탓(다른 한편)에 있는 경우, 상대편이 잘못을 시인해야만 용서되는 것인지 아니면 분별은 하되 멈추어야하는지, 상대편이 잘못을 시인해야 용서되는 것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지 못했으니 그때까지 우리 죄 또한 용서하지 마옵소서” 라 하는 반어(反語)적 표현과 견줄 적엔 어떻게 이해하면 옳을지,

이 해결에 있어, 서로가 제시한 일정기준에 부합해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상대편이 변화하지 않는 한) 후대로 이어져야만 하는지, 그렇다면 가령 어느 후대에서 앞서 기준과 달리 어떤 선한합의를 도출해낼 경우, 죄가(잘못이) 되는 것인지,

분분한 틈새로 (본의가 아니어도) 무엇이 교회공동체에 맹렬히 표적하여 요동과 흩어지게 하고 오염시키려들고 있지는 않는지, 온 교회의 기도에 선대하시어 세워진 곳이 마치, 무엇에 단단히 유린되고 속박되고 버려짐 같아 본래의 아름다움사라진 현실이 정녕, 성령의 기뻐하시는 역사에 기인됨인지,

주님 뜻하심대로 이루실 줄을 믿는 전제로, 이 현상을 후대에 반면 거울로서 여전히 두어짐인지, 함께 어두움을 걷어내야 하는 것이면 벗어날 기한 언제인지, 이러한 지속이 온 지체에 평안과 안심 아닐 진대는 거룩한 근심을 해 볼 공통과제가 아닐지,

가치적면으로, 세상적 가치관은 하나님의 가치관과 충돌하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주님께 붙잡혀 살기를 힘써야한다 했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절실히 드러내고자 함께 일구어 경영코자 기쁜 출발이었던 것이면, 실행에 역행(거스름)이며 실행적 가치관에 변화라고 이해하면 옳을지,

어린아이는 사탕1개보다 천원1장이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잘 이해 못합니다. 양성원과 격으로 비할 바 전혀 아니나 다만 그곳이 오늘에 주님 영광위한 어떤 지대한 값어치가 있는지를 영적분별력으로 평가해봄이 합리인지,

레위기에서 보듯, 하나님께서 인정치 않은 헌신(헌물)이 무슨 소용 있겠으며, 당시 모두에 쌓인 선을 주님의 것으로 구별하여드렸고 거룩한 헌신이었던 것이면, 지금껏, 멍에 꺾임 같음이 어떤 즐거운 표적(表迹)이겠으며 최후수단으로서 최적의 귀결현상인지,

주님의 소유 삼으시고 경영케 하심이 엄연한 증거일진대, 후대교단(교회)사에 어떻게 기억되겠으며 자라나는 세대들이 이에 어떤 하나님의 지식으로 반응하겠는지,

이미 그곳에 생산이 끊어졌기에 한낱 공허한 건물에 불과하며, 이러한 현상이 단지 서로(양편)만의 문제가 아니라 본디 하나님 영광위한 사업의 대원칙과 규범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부정되고 있음이 더 큰 문제라 이해하면 옳을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사역자 양성위해 순전한 우물 격으로 예비되고 주님 안에서 후대로 물려줄 자랑으로 견고히 세워졌던 것이면, 주님면전에서는 상황이 달라져야함이라 이해하면 옳을지,

정도(정칙)따라 어떻게 분별해야 옳은지 개인적으로 생각이 조밀해집니다.

[정상화된 경우를 전제한다면]

양성원은 자신의 마음과 의지로 세운 것이거나 또한 그 지위가 각각으로 가기위한 과정으로 구성된 것이거나 있어도 없어도 그만으로 세워졌던 게 아니라, 함께, 오직 하나님 영광위한 발견으로 땀으로 쌓은 선의 표출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님 뜻하심대로 이루실 줄로 믿지만, 총공회적 절실한 필요를 기초로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자랑하고자 중심점으로 심고 기쁘게 출발했던 것이면,
온 교회의 머리되신 우리주님께서 분명코, 처음언약과 그 걸음을 기억하시지 않겠습니까?
맞는다면, ‘복된 장마 비로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음처럼,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하기 위한 근실한 지속이어야 하는지를 숙의에 숙의를 거듭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현상이 그간 과정에서 피동적 연단(훈련)의 은혜라 할지라도, 무산된 통합성의 회복과 근실한 운영정상화가 비교될 수 없을 만큼 큰 가치로서 은혜인지를 면밀히 살피는 능동적(영적)분별력이 절실히 요구됨이라 생각합니다.

‘교회의 개혁은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되게 함이며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일 진대는 하나님중심으로 하나 되는 게 합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더 참된 교회공동체의 성숙위한 개혁신앙완전성의 공동(共動)운동으로, 주님의 능력으로 덮음 받아 일행 전진하도록 적극 이끌어 주실 적에,

이미 유심히 보고계신 우리 주님께서 급해지시지 않겠습니까?

또한 서로 지체된 마음에 평안과 안심이지 않겠습니까?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말씀하신대로, 진정한 회복은 내 의로는 일어날 수 없고 주의 이름만 주셨으니 주님만이 답이시며,
따라서 전심으로 주님만을 붙들고서 함께, 새 부대를 준비하면 금방이라도 갈급함을 채워주시지 않겠습니까?

사도바울이 거듭난 뒤에도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하심이, 반드시 곤고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처럼, 서로 마음을 무겁게 멈추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 지혜의 충족으로 난관을 기어코 벗어나야만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본 글에 덧붙인 짧은 소견]

순전히 개인적 짧은 소견일 뿐이며 외람됩니다만,

비록, 주님 앞에 바로하려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들이 있(었)다하여도, 당시 목회자양성위한 중추거점으로 출발했던 맥락으로 볼 적엔, 총공회적 가치와 이에 따른 목표지향점이 하나였기에 즐거운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쟁점이, 예수님의 보혈로 구속받았음을 굳게 지키려는 것과는 성격상으로 다름입니다. 따라서 방치와 경영의 두면 중, 대의와 명분과 가치로서 어느 게 우위우선인지를 주님 앞에 거룩한 근심을 전심으로 거듭할 적엔 반드시 해결점이 있음이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여야 참되고 그 속에 불의가 없다’말씀했는데, 그곳에 우뚝 세워졌던 게 참된 것이었을 진대는, 이곳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여전히 드러내어져야 온당하다 여겨집니다. 주님 움직이심이 지체에 달려 있다 봄으로, 오늘에 등불 꺼지지 않는 산실로서 빛나는 성취위해 결정적인 알맹이(열쇠)를 찾아내는 게 급선무라 보며,
따라서 전 인격을 동원하여 주님을 함께 붙들게 되면 이미 좋은 것으로 준비하시고 돌아보시지 않겠습니까?

지금이 밝은 미래향한 성찰과 안목을 넓혀야하는 절실한 때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할 목적으로 세웠고 기쁘게 출발했던 것이면, 오직 심판은 주님께 있으시니 주님께 맡기며,
문제해결에 선(善)을 도와줄 관용과 용서와 화평을 굳게 하여 함께 손 내미심이면, (여타문제 더불어) 금방이라도 그 실마리가 풀리지 않겠습니까?

‘산 제물로..’하신 말씀과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의 심정으로, 주님 때문에 서로 선대하면 ‘주의 오른 손‘이 능력으로 덮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을 위한 모세의 강력한..발로의 심정이 어떠했을지(출32:32)..,

정 아니면, 이견(異見)이 있고 힘들고 고통이 따를지라도, 살리시고 싸매주시고 일으켜주시는 주님만 의지하고, 받은 은혜에 감사의 증표로서 주님의 선한사업위해,
어느 한편이라도 주님 때문에 기꺼이 손 내미심이면, 주님 앞과 온 공회 앞에 얼마나 큰 아름다움이겠는지를 새삼 떠올려 보게 됩니다.
(장차 심판대엔 혼자서야 하나) 교회공동체로서 칭찬이나 책망도 함께 받는 게 아니겠습니까?

바울사도의 고백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김’같이 주님 앞에 은혜와 감사의 고백으로, 다함께, 긴 분쟁을 훌훌 털어 버려야만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적에 온 지체의 마음에도 평안과 안심이지 않겠습니까?

다 아니라면, 마냥 묵혀 두기보다, ‘심어야 거두는 법’이며,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지 않도록’..말씀했는데, (예로서) 범 총공회적이나 초교파적으로 용도에 맞게 선대하거나, 장기적으로 국내외 선교사업...등, 받은 큰 부요를 가난한 심령으로 그 선용을 모색함은 격이 달라 부당한지...,

다 놓고서 우선 하나만 말해보라하시면, ‘주님의 신으로’된다 말씀하셨으니, 즐거운 공통분모를 기어코 세우고자 그곳에서 의논하시는 모습을 지체들이 볼 수 있었으면..하는 바람 간절하며, 바로 총공회적 품격(다움)이라 감히 새겨보고 싶습니다.

오늘에 귀한 가치를 영적분별력으로 찾아냄에 있어선 양편구분이 따로 없다고 보며 그러실 적에 온 지체와 자라나는 후대들도 힘이 날 뿐더러 모두의 마음에 한시름 놓여 지리라 여겨집니다.

(이 현상과 무관치 않는다고 보기에 덧붙이면, 한 장소이면서 하나님께 따로 예배함은 반쪽예배라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성탄과 부활절기예배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니만큼 연합으로 드림이 온당하다 생각합니다. 또한, 믿음의 후대들이 한자리에서 예배하고 축하하며 주안에서 기쁨으로 교제하며 더욱 주님 안에서 아름답게 자라나도록 세심한 배려와 선처가 필요하다고 보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서로 지체된 동질성에 매여 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속히 분쟁을 털어버리고 함께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도록, 온 교역자님과 은사위치에 서신 분들께서 적극 이끌어 주시기만을 심히 고대함이 온 교회의 공통적공감이고 싶습니다.

모든 면으로 정도(정칙)따라 어떻게 분별해야하는지 조밀해집니다.

[공동체 일원으로서 소망]

비록 서로 견해차 클지라도 당시 분명한 목적이었고 최선이었다면 심원으로 해석을 같이하여서 혼미한 역사를 바로 세울 적에 모두의 승리됨이며 참 안도와 평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푯대를 향해 즐거이 전진하도록 적극 이끌어 주시기만을 한지체로서 간절히 원합니다.

속히 흡족함 회복으로 주의 길 예비함과 화평과 평안의 만족 넘쳐나며,
속히 주님이름 경외함의 지혜와 영감으로 찾은 마음에 지각으로 막대기들이 하나 되듯 무너짐 일으켜 주님 마음 시원케 해드리며,

함께, 주님께로 받은 칭찬을 머리에 이고 기쁨과 감격이 충만할 날 속히 이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 우리를 생각하시고 복을 주시옵소서(시115:12~15)..아멘’



부족한 글 읽어주심에 감사드리며, 주님 안에서 크신 은혜와 평강하심을 빕니다.





[관리자님께 부탁드림]
본 글은 짧은 소견으로 오래 게재될 이유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댓글유무를 떠나서 ‘내년 3월까지 게재’ 바라며 이후에는 삭제요청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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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4 08:31

    (발언을 읽기 위해)
    무겁고도 참으로 긴급한 문제를 던져 주신 글입니다. 그런데 양성원의 사정을 모르는 분들도 방문하는 곳이어서 '양원에 대한 발제'를 읽는 데 도움이 될 정도로 양성원에 대한 몇 가지 기초사실만 덧붙여 보겠습니다. 현재 양성원을 운영하는 각 공회들은 목회자 이동조차 평양처럼 극비에 붙이는 정도여서 대략의 자료로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래의 양성원)
    1976년 설립된 양성원은 타 교단의 신학교와 비슷하나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타 교단은 신학교에서 신학 체계로 목회자를 만들어 내고 공회는 교인을 바로 목회자로 파송한 후 목회자로서 최소한의 신학 상식 정도를 접할 기회만 제공하는 것이 양성원입니다. 양성원의 진정한 가치는 성경 100독을 제대로 읽게 만드는 데 있지만, 신학의 수준이 낮다는 비판을 방어하기 위해 교수진은 타 교단의 교수 수준을 맞췄습니다. 1989년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시며 백 목사님 사후의 공회 방향을 놓고 공회는 5곳 정도로 나뉩니다.

    (현재 5곳의 상황)
    이 글의 첫 발제자께서 적은 글은 5곳으로 운영 되는 양성원의 상황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간단히 소개를 드리면

    ① 부산공회1
    100명이 출석하는 학장교회를 중심으로 몇십 명 수준의 10여개 교회가 백 목사님의 장녀 백순희 사모님을 지도자로 30여년 모셨고 류정현 목사님이 양성원을 도맡고 있습니다. 성경 과목은 다른 분이 분담해도 신학 분야는 달리 강의할 분이 없는 곳입니다. 양성원 학생은 한두 사람이 있을 때도 있고 아예 학생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② 부산공회2
    1천명 출석의 서부교회와 1-200명의 5개 교회를 포함한 55개여 교회가 부공2입니다. 대략 10명 학생이 유지 될 듯합니다. 교수진은 일반 신학교의 정상급인 서영호 목사님과 그를 앞서는 송종섭 목사님이 일반 강의 과목을 맡았고, 성경을 맡은 김응도 이진헌 목사님은 교계에는 없을 분들입니다. 문제는 모두 80에서 90대이며 2016년에 송종섭 목사님이 별세한 후 교수 전체의 세대 교체가 시급하고 또 실력 있는 인물도 많으나 서로 견제하는 묘한 분위기 때문에 아까운 교수급 인물들이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우선 '성경'과 '신학' 양면에서 기존 모든 신학자를 능가할 김영채 목사님은 혼자 양성원을 맡아도 될 정도이나 아마 소리 없는 견제로 후보 이름에도 오르지 못하는지 싶고, 이병철 양옥규 박사님과 윤봉수 목사님 등 인재들이 많습니다.

    ③ 부산공회3
    부공3은 1-200명 3개 교회가 중심이고 몇십 명 교회를 합하여 10여개 교회로 구성됩니다. 백영희 설교록과 연구서 출간만 30년을 주력했고, 공회 형성도 연구소를 목적으로 삼았고 그 운영의 결과입니다. 규모는 가장 작지만 연구소 운영 때문에 교계의 인지도는 가장 높을 것이고 외부 교인의 출입이 많은 편입니다. 학생은 2-30여명이며 이영인 교수 1인으로 운영했으나 부공3의 양성원은 연구소의 연구 과정과 겹치기 때문에 다른 양성원들과 그냥 비교하기는 무리로 보입니다.

    ④ 대구공회
    전국 200여개 공회 교회들의 절반인 100여개 교회로 구성되었고 2-300명 2개 교회와 1-200명 10여개 교회가 있습니다. 의외로 양성원 교수진은 부공2에 비해 못하나 출중한 소장파들이 활용되지 않고 있어 좀 의아합니다. 역시 견제라는 묘한 분위기가 느껴 집니다. 학생은 10여명 정도일 듯합니다. 일반적으로, 전체 공회들 중에 대구공회 양성원이 가장 잘 유지 된다고들 합니다.

    ⑤ 서울공회
    1천명에 미치지 못하는 잠실동교회를 중심으로 10여개 교회가 사실상 일반 교단화를 했기 때문에 양성원 차원에서 소개할 정도는 아닐 듯합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한 때 신학교를 설립하고 의욕적으로 운영했습니다.

    (양성원의 건물)
    1976년부터 서부교회 4층을 양성원으로 사용하다 1980년대에 서부교회 앞에 일반 가정 주택을 매입하고 양성원을 운영했으며 당시 학생은 보통 2-30여명이었습니다. 백 목사님 사후 부산공회와 대구공회의 분리 과정에 부산공회가 양성원 재산을 확보했고 5층 건물로 신축을 했습니다. 그러나 서영호 목사님 문제로 부산공회가 갈라 지면서 양측의 수백 명이 각목으로 난투하다 부공1이 점거에 성공을 하자 오늘까지 20년 넘게 건물을 폐쇄했습니다. 몇년 전에 건물의 재사용을 의논한 적이 있었고 내부 청소나 수리 등의 견적만 억대가 넘어 간다할 정도입니다. 이 건물의 상황이 백 목사님 사후 총공회이며, 양성원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백 목사님의 장남 백도광 장로님이 1998년에 총공회 전체의 통합을 위해 양성원 건물의 공동 사용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2007년에 장남을 이어 막내 백도영 박사님이 그렇게 하겠다고 10년을 활동했으나 현재까지는 전혀 진전이 없었습니다. 다만 점거를 하고 있는 백순희 사모님이 2013년부터 백도영 막내와 힘을 합했고, 백 사모님이 올해 86세의 고령으로 건강을 자신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백 박사님이 백영희 설교와 일체 기록을 사유재산이라고 고소를 해서 2심까지 승소를 한 상황이므로 백 목사님의 교훈을 기반으로 삼거나 중요 자료로 가진 공회들에게 양성원 건물을 함께 사용하거나 통합 운영을 시도하면서 저작권이라는 법적 수단을 동원한다면 부공3 외에는 실제로 통합은 가능할 수도 있는 시점입니다.

    대구공회는 백 박사님을 지도자로 삼았거나 삼을 수 있을 것이고
    부산공회1은 이미 힘도 없고 어떻게 해 볼 도리도 없으며
    부산공회2는 자체 조직을 유지하기 원하지만 백 박사님이 만일 저작권을 대법원에서까지 인정을 받게 되고 이어 민형사 고소가 몰아 치면 견딜 교회는 없다고 봅니다. 이미 부산공회2와 대구공회는 양성원 교수를 교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합하지 못할 이유도 사실 없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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