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솔리데오글로리아교회 탐방기 - 박익천 고신학원 이사

작성자
회원
작성일
2018.11.18
원문보기1 (출처:온생명교회 카페)

솔리데오글로리아교회 탐방기




박익천 장로


네 번째 교회 탐방기이다.
연이어 탐방기를 쓰다 보니 조금씩 고민이 생긴다.
고민이라기 보다는 부담이 더 솔직한 속내가 아닐까 싶다. 처음부터 조금 딱딱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교회의 속성이라고 하는 통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에 비추어보면, 지상의 모든 교회는 서로 다를 것이 없는 주님의 교회이다.
그래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발견하고 경험하여, 그것을 매번 다르게 새롭게 그리고 다음이 기다려지게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부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여느 여행기나 맛집 탐방기처럼 그곳만이 특출하거나 유일하여 지금껏 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했던 무엇을 끄집어내거나 감별하여 ‘다름’을 선전할 수만 있다면, 그냥 그냥 하겠는데….교회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해야 하니, 이게 영 죽을 맛인 게다.^^
그래서 눈에 쉽게 띄는 외면적인 양태들만 사진 찍듯 이어간다면, 꼭 유럽 패키지투어 하고 와서 나라 구분 안 되는 사진 배열하는 꼴이나 다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고 방문하는 교회 그 존재의 이유와 심연을 알아차리고 드러내어 향유할만한 신학적 담론이나 설교비평을 하기에는 여러 한계와 무거움이 있고, 무엇보다 그럴만한 위치나 내공에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아둔한 사람이기에 더욱 그렇다.
또 이 탐방기로 굳이 교회소개 정도하고 말 것이라면 얼마든지 훌륭한 도구와 안내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세상이다. 그러기에 버려지는 전단지 신세 같이 되지 않으려면, 뭔가 다른 뽀인트(?)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뽀.인.트!!!


다른 포인트가 무얼까?
조금 불경스런 표현이기 하지만, 목사같이 쓰면 뻔하다.ㅋㅋ
흔히 “또 설교하고 있네” 라고 단정짓는 내면에는 목사님들의 말과 글에 대해서는 간혹 회피적인 기제가 선입견적으로 작동됨을 알 수 있다. 이는 목사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신성(神聖, 또는 新性)함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뻔한 식상함도 있다는 것이다. 신성함은 거룩하고 새로운 것이기에 당연 받을 만하지만, 식상함은 곧장 외면 당한다. 따라서 최소한 식상함이라도 면하려면, 뻔하지 말아야 한다. 뻔하지 않으려면, 철저하게 수용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고민한 흔적이 질펀하게 묻어나야 하지 않을까? 설혹 그것이 단회적이고 투박하고 어설퍼라도 말이다.
그나저나 보통 장로들은 글을 잘 쓰지 않는다.
이건 순전히 내 자의적인 판단이요 경험치인데, 장로가 글이라도 써서 기고를 하거나 SNS나 여타 매체에 올리면 다소 주목을 받게 된다. 왜 그럴까? 장로의 글에는 묘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어중간한 입장이어서 그러지 않을까 싶다. 장로라는 직분이 말씀을 책임지고 또한 말씀을 받는 경계선에서 늘상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장로의 글은 드물기도 하지만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가에 따라 주목과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 어찌 여기든 고민하지 말자.
비록 신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나 수준에 이르지 못하여 흡족한 소개나 안내가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내재적인 전통과 외형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봄날 산책하듯 여유로이 읽을 수 있는 산문 형식이면 제격이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평소 목사마냥 정형화된 나의 말과 글에 익숙해서 시큰둥함이 하늘을 찌르는 듯 하는 시크한 아내와 딸만이라도 잼났다고 티~익 톡! 해줄 정도이면 되겠지 하고 다시 맘을 고쳐 먹었다.
날씨가 풀리면 날 것들의 향연이 사방에서 충동질할 텐데, 쓸데없는 고민으로 자칫 느슨해질 수 있음을 경계하면서 즐~탐방하기를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교회로? 왜?]


벌써 3월 중순, 아직은 애매한(?) 봄 날씨이다.
그간 속 터지는 탄핵 정국에 몸과 마음이 어딘가 눌려 있다 보니, 많은 것을 놓치고 산 듯하여 찜찜하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몇 달 사이에 내 주거지 근처가 천지개벽할 정도로 몰라보게 바뀌어가고 있는데, 난 여전히 그대로다. 잠실에서 살다가 여기로 이사온 지 17년째다. 내 인생에 이렇게 한 지역과 한 집에서 오랫동안 살 줄은 정말 전혀 몰랐다.
남양주시. 내게 있어서는 애증(愛憎)이 교차하는 지역이다.
입시지옥 탈출과 맑은 공기와 조금 넓게 살겠다고 서울 강남을 등지고 시대를 앞서는 개척자처럼 젊은 날 호기를 부려 정착한 땅이다. 아니, 땅이라 그래서 무슨 풍광 좋고 넓은 전원주택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정확하게는 변두리 아파트이다.^^
그때는 같은 가격으로 퉁 치면서 왔는데, 이제는 네 배를 더 주고도 다시 서울의 그 자리로 입성하기에는 종쳤다. 이런 걸 두고 ‘위성도시 난민’이라 하는 얘기를 들을 때면 엄청 씁쓸하다 못해 아리기까지 하다.ㅜㅜ
아내하고도 자주 이런 결정을 한 것에 대해 얘기할라치면, 난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고 싶은 죄인마냥 말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저 가만히만 있어도 네 배로 재산이 증식되는 이 기가 막힌 한국적 자본주의를 난 너무 순진하게 받아들인 죄 말고는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목적했던 것들과 재산 증식에는 기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하여 남양주가 미울(憎)지라도, 여기로 왔기에 이루어진 삶의 흔적과 열매들은 기쁘고 감사한 것이 얼마나 많았느냐고 항변하면, 아내도 딱히 아니라고는 못한다.


개인적이고 가정적인 그런 것은 탐방기에 적절한 것이 아니기에 접어두지만,
교회에 대해서는 할 말이 무지 많다.
실로 오래 전, 인생 자체가 교회사랑으로 충일하셨던 아버지를 따라 뽕나무 밭이었던 잠실의 중앙 지역에서 ‘잠실중앙교회’의 개척에 참여한 이래로, 나에겐 왠지 대물림적으로 교회개척 내지는 교회 재생산의 DNA가 항상 꿈틀거리고 있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목사가 아닌데도 말이다.
거주지를 옮긴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남양주시는 여러 모로 기회의 땅이었다. 뉴밀레니엄을 시작하는 해였으니까, 새로운 시대가 곧 도래할 것만 같은 환상에 젖어, 여기다 또 개척을 하면 교회도 그리 될 줄 알았다. 서울은 두 말할 것 없고 이미 수도권에서는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이 난망(難望)하였지만, 적어도 남양주시만큼은 개척의 여지와 시도가 무모하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죽 했으면 이사한 아파트 거실에서라도 개척교회를 시작해도 되겠구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실제로 그 당시 상당히 넓은 평수로만 구성된 7000여 세대의 아파트에서는 곳곳의 집에서 여러 교회가 개척되어 모판 구실을 톡톡히 하였었다.
그런 고민과 생각으로 늘상 지내다 보니, 교회를 할 수 있는 자리와 그 기회를 위하여서는 무슨 일이라도 어떤 힘든 섬김이라도 감내할 각오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2009년 잠실중앙교회가 또 다시 분립개척을 결정하였을 즈음에는 이미 개척을 위한 지역 리서치와 결심이 끝났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걸음이요 이주라고 굳게 여겼기에, 33년간 정든 교회였지만 개혁교회의 일원이 되리라는 일념에 뒤돌아보지 않고 온생명교회로의 개척에 일로매진(一路邁進) 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교회에 대해서는 남양주가 어찌 사랑(愛)스럽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당초 예상과 달리 이 지역은 수도권 남부보다 발전 속도가 무척 느리다.
안보적인 관점이나 자연 경관과 환경을 훼손하는 점들을 따지다 보니 늦을 수 밖에 없었으나, 얼마 전부터 개발 바람이 뒤늦게 가히 광풍급이다. 교통망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고, 수도권 남부나 서부 지역에 버금가는 신도시급 개발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그 위용이 대단하다. 이미 안정화된 별내, 덕소, 평내, 호평, 그리고 한참 개발 중인 오남, 진건, 진접, 마석, 퇴계원 지역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교회와 인접한 다산신도시 개발은 이 주변 일대를 통째로 탈바꿈시키고 있으니, 2년 뒤쯤에는 어떤 신세계가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하지만, 지역의 이런 거대한 흐름과 변화에 비해 이에 대처하는 교회들의 모습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간혹 세간에 알려진 대형교회들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 개발된 지역에 그들의 지교회나 그 브랜드를 추종하는 교회들을 종교부지에 화려하게 세울지라도 겉만 번드르르한 것 말고는 버티기 신공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하물며 대부분 우리 같은 작고 연약한 신생 교회 혹은 토착 교회들은 그저 바라만 볼 뿐 다가올 교회의 미래를 위한 아무런 역동적 대비나 조처들을 가시적으로 수행할 그 어떤 여지조차도 없는 가여운 형편이다.
이곳만이 아니라, 이제는 그 어느 지역에서나 기실 교회가 개척은커녕 살아남기가 정말 어려운 교회 쇠퇴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 최근 통계적으로는 기독교 교인이 증가하였다지만, 이는 교회 없는 기독교 신앙을 자기의 종교나 신앙으로 변명한 종교적 허세에 불과할 뿐, 오히려 교회와 교인은 실로 처참한 위기라는 것을 누구나 직감한다. 이러한 시대에서는 교회의 건강성 회복마저 현실 안주와 사치로 여겨질 뿐이다. 이제는 그것도 잘 안 먹히니, 요즘은 교회의 공공성(公共性)이 화두이다.
여하튼 이 지역은 예측 가능하지 않고 안정되지도 않아, 교회의 존립은 생각보다 훨씬 고도의 결단과 오랜 인내가 요구될지도 모른다.
건강성 공공성 개혁성 등을 아우르는 아니 그보다 더 원초적인 교회의 교회됨으로 돌아가야 하는 절박성이 아니고서는 이미 교회가 비고 남아 돌기에, 또 하나의 교회가 더 존재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번 탐방기에 뜬금없이 남양주 지역을 앞서 이리도 장황하게 언급한 이유가 있다.
다름 아니라, 이번에 찾아간 교회가 우리 교회와 인접한 이 지역의 관내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 지역사회 주변에 어떤 교회들이 있는지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고 다닌다. 그저 내 교회가 평안하고 잘 되기만을 바라는 것도 벅차서, 다른 교회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교단 소속의 교회조차도 서로가 어떠한 지를 살피는 것마저 조심스러워한다.
근데 난 확실히 오지랖이 넓기는 넓은가 보다.^^
얼마 전도 아니고 무려 6년 전부터 이 교회의 태동과 시작 그리고 변모와 진전에 대해서 스토킹 하듯 추적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동안 방심한 사이에 이 교회가 마침내 남양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놀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추적을 다시 발동시킨 계기가 되었다.
평소 개혁교회에 대하여 지나친 관심을 두고 있는 나로서는 내 나와바리(?)에 이렇게 소중한 개혁교회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셀프 격려가 될 정도였다. 우리는 무지 어설프지만, 긴 추적과 소문으로는 어설픈 구석이 없이 당차게 전진하고 있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기도 하여(실은, 지난 번 양의문교회의 두 목사님과도 이 교회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근거리는 방문을 몹시도 기다려왔던 차였다.
이 남양주에 우리처럼 별종스러운(?) 개혁교회 한답시고 호기롭게 뛰어든 모양새가 예사롭지가 않기에, 또 어찌 보면 가장 가까운 곳에 동무할 수 있는 교회를 두고서, 괜시리 멀리까지 찾아 나설 필요는 없겠다 여겨졌다.
그래서 공인된 특사(?)는 아니지만 파견 받은 셈 치고 찾아간 교회는
솔리데오글로리아교회(Soli Deo Gloria Presbyterian Church, 김병혁 목사, 합신)!


[이 교회는…]


우선, 교회 이름이 참 거시기(?) 하다.ㅋㅋ
여간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이런 네이밍(naming)이 어찌 가능하리요.^^ 그렇다. 이름만 딱 봐서는 둘 중 하나인 게 틀림없다.
무던하거나 무모하거나, 혹은 무조건 개혁교회이거나 무늬만이거나
남의 교회 이름 가지고 시비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요즘 세상에 느낌 팍! 오는, 다른 말로 취향저격인 듯하나, 솔직히 많이 튄다. 조금 기니까 줄여서 솔데글교회? 아님 SDG교회? 굳이 약칭으로 부른다면, 이 교회는 SDG교회로 불러주길 희망한다.
Soli Deo Gloria! 라틴어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이)’이다.
이 교회가 무얼 목표하고 어떤 자태와 행보를 견지할지는 교회를 형용하는 앞글자로써 모든 걸 시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같이 라틴어를 모르는 무식자라도 이 표현은 종교개혁의 핵심적 가르침의 총체적 표현이자 개혁교회와 개혁신앙을 대표하는 슬로건임을 알기에, 짐작으로도 오로지 개혁교회를 제대로 해볼 심산으로 단단히 작정하지 않고서야 서울 강남도 아니고 이 촌구석에서 이런 혀 꼬부라지는 교회명을 내걸고 한판 승부해보겠다고 덤벼들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예정과 구원의 목적, 교회의 시작과 끝, 그리고 교회의 존재 이유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임을 현저하게 증시(證示)하는 교회로 뚝심 있게 나아가기 위하여, 우직하게 그대로를 고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필시 이렇게 네이밍한 것에는 그 유별난(?) 역사가 있으리라.
앞에서 추적했다고 했는데, 오래 전에 웹 서핑을 하다가 찾게 된 게 계기였다.
그 당시 내가 몹시도 천착하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 교회의 분립개척 어간에서 짐 지워졌던 모든 준비와 실행의 원리와 근거가 되는 개혁파 신학과 신앙의 실제적인 ‘적용’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그저 내가 속해 있던 고신 교회마저 시대적 사조를 따라 회중교회적인 복음주의의 양상으로 치달아 가지 않도록 그 기승에 방어하고 저항해야 할 수단으로서의 신학적 ‘탐구’였었다. 그러니까 목사를 도와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탐구에서 적용으로의 현실적 전환이 절박한 시점이었었다.
지금이야 그나마 개혁교회의 저변이 조금씩 확장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개혁교회의 생태계는 아주 척박했다. 내가 알기로는 고작해야 독립개신교단의 교회들, 그리고 보수 장로교 교단들에서 어찌어찌 교회와 신학의 독립을 외치며 뛰쳐나와 변두리에서 목사 중심의 고고한(?) 신학적 변증만으로 버티는 작은 교회들 몇몇뿐이었다.
그래서 그 탐구와 적용에 대한 갈급함과 허기짐을 채우는 데에는 교회의 교사인 신학교 교수들과의 사귐과 지도가 큰 힘이 되었었고, 한편으로는 역사적인 개혁신앙 주류의 내용들을 제대로 다루고 있는 서적과 자료와 논문들에 도움을 받을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지도와 도움이 실제적인 것이 되는지를 확인하는 중에, 몇 블로그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나를 매료시켰다.
그 중에서 ‘캘거리개혁신앙연구회’가 내 눈에 들어 왔다.


운영자가 ‘주나그네’라는 것만 알았지, 캐나다에서 어떤 신분으로 개혁신학을 공부하며 개혁교회에 속하여 경험하는지는 등재되는 글들과 느낌으로만 짐작할 뿐이었던 해외 블로그였었다. 회원으로 가입하지는 않고 들고 나기를 반복하던 중에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2011년 귀국을 전후하여 ‘SDG개혁신앙연구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본격적으로 커뮤니티가 형성되었고, 더불어 시작한 오프라인 ‘독토모임’(독서토론)과 주일모임이 발전하여, 그것이 모태와 동력이 되어서 교회를 세우게 된 걸로 추정할 뿐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시작한 교회도 역사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그 커뮤니티의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기에, 교회의 이름도 그렇게 귀결되는 것이 가장 무던하고, 무조건 개혁교회임을 드러내고 다짐하는 필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이 교회는, 역사적인 개혁신학에 근거한 개혁신앙이야말로 과거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 가운데 가장 성경적인 신앙이라는 한 개인의 확신을 하나님께서는 시발(始發)로 쓰셔서, 이어진 커뮤니티의 사역과 열매를 통하여 경이롭고 섬세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주나그네’가 바로 김병혁 목사의 필명이었다.


김 목사님은 고국으로 돌아온 후에 한국의 개혁된 교회를 찾아서 탐방을 시작했다 한다. 그 탐방을 통해서 한국 교회 안에 움트고 있는 개혁신앙의 적극적 가능성과 참된 교회의 보편적 연합에 대해 위로와 확신을 얻게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보다 의미 있는 사역을 위해 기도하던 중, 2012년에 김목사의 가정에서 몇몇 지체들과 SDG주일모임을 가지면서 예배와 교리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역사적 개혁교회의 가르침에 모두가 설득되었고, 합신 교단에서 즐겨 쓰는 표현대로 바른 신학과 바른 신앙에 근거한 바른 교회 세움에 대해 적실한 공감에 이르게 되어, 2013년 1월부터는 공동체의 이름을 ‘솔리데오글로리아교회’라 하여 공적으로 교회의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예배의 회집 장소를 강남 치과의료선교회에서 지금의 현 위치(남양주시 진건읍)로 옮긴 때는 2014년 11월이었고, 교단적인 포지셔닝은 2015년 10월 합신 북서울노회로의 가입이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비록 얼마 지나지는 않았지만, 이 교회는 개혁교회와 개혁신앙이 진리 안에서 가장 활력 있는 교회와 신앙임을 여전히 굳게 확신하면서, 진리 안에서 성숙하게 자라가기를 소원하며 씩씩하게 전진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말씀으로 항상 개혁해가는 교회들과 연합과 연대(담장너머교회, 양의문교회, 일산현산교회 등)에도 적극적일 만큼 제법 뚝심이 생겨났음을 교회역사의 발자취 곳곳에서도 엿볼 수 있을 정도로 놀랍게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교회의 역사는 비록 우리처럼 일천하지만,
교회에 맡겨주신 말씀(복음)을 그 어느 것보다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나아온 흔적들은, 이 교회를 도무지 작은 개척교회라고 여길 수 없을 만큼 실로 야무지고 대단하다.
이는 처음부터 ‘교회는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가’에 집중한 결과로 볼 수 밖에는 없다. 바르게 선포되고 해명되는 복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와 성도의 자태가 곧 하나님의 뜻이요 교회의 존재 이유임을 확실히 붙잡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개척교회의 최대 과업이요 목표인 전도와 자립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궁구(窮究)한 가시적 성과이자 선물로 따라오게 됨을 확신하며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중에 있다. 그러기에 모든 신생교회는, 개척교회는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말씀에 사활을 걸어야 함이 더욱 분명해진다.. 바르고 확실한 말씀이 먼저 교회와 성도를 제대로 세우고, 전도와 부흥은 이를 통해 인도된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작은 교회에 보배로운 목회자와 성도들을 불러 주셨다. 그리고 그들을 쓰셔서 웬만한 교회들로서는 이루어내기 벅찬 수준의 말씀의 산물과 실천이 드러나도록 역사해 주셨다.


우선 목사님부터 확실한 개혁 신학자요 목회자이시다.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교회와 바른 정통 교리의 기초 위에 세워진 역사적인 개혁교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과 실천에 대해서 실력과 영성과 열정을 겸비하여, 그것을 사랑으로 풍성하고 따뜻하게 풀어내기를 진력하는 모습이 교회의 모든 영역에서 발견된다.
예배에서, 강설에서, 교육에서, 출판에서, 그리고 감독에서까지.
그리고 그런 성경적 가르침과 목회적인 돌봄에 순복하며, 그리스도의 지체로 또한 개혁교회의 교인으로 살기를 작심하며 결단하여 모인 성도들 또한 범상치가 않다. 목회자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개혁교회의 성도와 직분자로 산다는 것은 이 시대에 각오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여간 쉽지 않은 결단이다. 그런데 변두리 외진 이곳까지 마다하지 않고 기쁘게 모여들어, 언약의 자녀들과 함께 주님께 자신의 심장을 신속히 그리고 진실하게 드리기를 기뻐하면서, 오직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서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받으시기를 소망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힘차게 세워가고 있다.
아직 목사 외에는 직분자가 없는 미조직교회여서 임시로 ‘운영위원회’라는 조직을 통해서 교회가 운영되고는 있지만, 어느 하나 허술한 구석이 없이 개혁교회의 원리와 생활을 한국적인 상황에 맞게 토착화시키는 일에 전심전력하고 있다.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라 자체적으로 제정한 ‘교회규약’은 경건하고 단정한 대오를 이루어 가는 데에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교회는 신학의 현장이요, 신학은 교회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과, 그러한 확신에서 나오는 목회와 섬김의 산물과 실천은 우리 교회와 어쩜 이리도 같은지…..
시편 해설과 찬송, 공예배의 요소와 순서, 자녀와 함께 하는 예배, 풍성한 신앙고백(공교회의 신조들), 언약의 자녀들에 대한 신앙교육(부모중심, 성경중심),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교리교육(정통 장로교회의 표준문서들, 역사적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 말씀으로 나누는 성도의 교제 등 주일에 행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거룩한 공교회(그리스도의 보편교회)에 대한 간절한 소망, 그러한 교회가 마땅히 지녀야 하는 표지와 속성에 대한 강조, 교회 회원권 강화, 경건한 신행(信行)의 일치, 문화명령과 영역주권의 바른 이해와 실천, 그리고 계속적인 개혁(Semper reformanda)으로의 나아감, 심지어는 당면하고 있는 목회적 고민과 간절함마저 너무나 닮아 있다.
그러니 어찌 이 예쁜(?) 교회를 찾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출발, 도착, 첫인상]


주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식구들 잠 깨라고 CD를 크게 틀었다.
작년 7월 양의문교회에서 발표한 시편찬송 증보판을 서울모테트합창단이 부른 노래이다. 언제 들어도 좋다. 특히 주일 아침에는 딱 제격이다.
주일 전날 집에 온 아들 부부와 함께 가정예배(가족경건회)를 하면서 말씀을 묵상했다. 내심 오늘 찾을 교회를 염두하면서, 요즘 들어 종교개혁의 역사와 의미에 대하여 부쩍 관심을 가지는 아들에게 한마디 했다.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요약한 ‘5대 오직’은 칼빈이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진리를 다시 발견했을 뿐이라고. 그러면서 세 군데 성경을 찾았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곧,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이며, 이를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 밝힌다. 그리고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고 말씀한다. ‘오직 은혜’(Sola gratia)이며, ‘오직 믿음’(Sola fide)이다. 따라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빌4:20)”. 아멘!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다.
아들 부부에게 “내가 너희에게 꼭 물려주고픈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개혁신앙’이다” 라고 마무리하면서, 오늘 찾는 교회는 솔리데오글로리아교회라고 했더니, 며느리가 뭘 생각했는지 글쎄? 웃.는.다.^^


한 주일 전쯤에 김목사님의 메일로 교회방문과 예배참여에 대한 목적을 인사말로 전하면서 ‘예배와 성찬 참여 청원서’를 첨부했었다.
메일과 톡으로 온 회신은, 그리스도의 보편교회의 관점에서 반기며, 주일예배와 모임 그리고 교제에 대하여 친절한 안내와 더불어 만남이 기대가 된다고 하셨다.
사실 규모가 있는 교회로 가면 누가 왔는지도 모르고, 이런 절차나 도리가 굳이 필요치 않아서 나도 한결 몸과 마음이 편할 터인데, 작은 교회에서는 들고 남이 눈에 확 띄기 때문에 주목이 될 것이고, 언행을 조심스러워해야 하기에 영 부담이 된다. 긴장도 된다. 하지만 어쩌랴. 부담과 긴장이 가져다 주는 것마저 즐기고 감사하게 여기며 기다려왔던 거 아닌가?


오전 10시부터 자녀모임을 시작으로 주일의 모든 일정이 진행된다.
집에서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에, 가족들을 교회로 10시까지 데려다 주고 출발하더라도 여유가 있겠다 싶었다. 어디쯤 교회가 위치하는지는 성도들의 심방으로 평소 자주 왕래하는 지역 근처라 대충 알 것 같아서 모처럼 조바심을 내지 않고 느긋하게 목적지로 향했다.
전철 경춘선의 사릉역 주변이다. 전철역이긴 하지만 주거지와 제법 동떨어져 있어 주변 일대는 나대지와 곳곳에 임시로 세워진 창고형 임시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도착 지점 근처에 와서는 비슷한 창고형 건물들 때문에 입구를 찾지 못하여 이리저리 헤맸다. 10시 20분쯤에 도착해 보니 사릉역에서도 충분히 걸어와도 되는 접근성이 좋고 조용한 곳에 교회가 자리해 있었다.
어찌 이런 좋은 곳에 예배할 수 있는 장소를 구했을꼬? 상가 꼭대기 층에 8년째 있으면서, 주위에 방해 받지 않고 단독으로 작은 가건물이라도 지을 수 있는 땅 가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우리 교회로서는 여간 부러운 게 아니다. 우리도 처음부터 이런 방식으로 시작했었더라면 어떠했겠나 하는 아쉬움이 참 많다.
교회 홈페이지 사진에서 본 외관 모양새하고는 분위기가 달라 보여, 교회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바깥에서 두리번 두리번 살펴 보았다. 여러 용도로 쓰이는 창고형 가건물들이 즐비한 사이에 교회도 동일한 형태의 한 곳을 차지하여, 입구에 교회의 간판과 작은 십자가를 부착해 놓고 있었다. 옆에는 이미 도착한 교인들의 차량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려는데 한 분이 혹시 장로님 아니냐고 묻는다. 내가 목사님의 얼굴을 모르기에, 먼저 목사님이시냐고 물었는데 아니란다. 여기서 살짝 당황!^^
빠른 직감으로 장로 한 사람이 주일에 올 것이라는 것이 알려졌나 보다 생각하니, 어이쿠! 부담 만땅!


안내를 받아 입구 문을 열고 들어 선 1층에는 작은 현관이 있어, 바로 예배실로 입장할 수 있는 문과 2층으로 올라가게 만든 작은 계단이 보인다. 어렴풋이 2층에서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서 자녀모임임을 생각하면서 예배실로 들어섰다. 와우!!!!!!!!!!!
바깥에서 보여지는 분위기로 나름 예상했던 내부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다. 어디 잘 지어진 예배당 건물의 내부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이렇게 해도 교회로서, 예배의 회집장소로서 손색이 없구나! 강단이 위치한 정면에는 베이지톤의 아트 벽돌 같은 것으로 담백하게 처리하고, 중앙에 짙은 브라운색의 강대상과 양 옆으로 우리 교회마냥 회중의자 2개가 놓여있다. 그리고 정면 한 쪽 벽에는 주보를 대신한 예배의 순서와 내용들을 게시한 판넬이 고정되어 있고, 반대편에는 신디와 빔프로젝터가 위치해 있다. 회중석은 3열 90여석 정도이며, 회중석 뒤편에는 방송실과 작은 유아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2층으로 구조하였기에 조금 낮은 천정에는 환한 조명과 시스템에어컨이 설치되어 있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방음 방풍 단열이 충분할 것 같은 아늑한 내부 구조로 잘 시공되어 있었다.
이제는 어딜 가더라도 교회 내부 공간은 한눈에 스캔될 정도로 확 감이 온다.^^
예배 시작 30분 전인데, 벌써 30여명의 성인들이 저마다 조용히 앉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어디를 앉을까 하고 주춤거리는데, 한 분이 여기가 방문교인석이라 하면서 안내한다. 방문석이라? 일전에 안양강변교회에 갔을 때와 같다. 어떻게 생각하면 좀 멀뚱스럽지만, 별도로 이런 자리를 갖게 하는 데에는 교회적인 배려와 의도가 있으리라.
두 권의 책을 가져다 준다.
시편찬송(고려서원 증보판)과 개혁주의 신앙고백서 모음집(솔리데오글로리아교회 출판부)이라고 하는 제법 두꺼운 책이다. 건네 주면서, “오늘 예배 중에는 ‘니케아-콘스탄틴노플 신조’로 고백합니다” 라고 한다. 헉!!!! 이거 제대로 걸렸구나. 한 눈에 딱 봐도 예배를 어찌 드리게 될 지가 눈에 선하다.^^


[오전예배]


오전예배는 11시이지만, 10시 30분쯤에 시편찬송 부르기로 시작한다.
딱 봐도 성악가(?) 포스를 지닌 남자분의 탁월한 리더에 따라 모든 회중들이 예배 중에 부를 시편찬송 네 곡을 오늘 말씀과 순서를 생각하면서 연이어 힘차게 부른다. 시편찬송을 부를 때 나는 느낌적으로 안다. 성도들이 이 찬송의 생소한 가사나 음악적 선율에만 매여서 끌려 가듯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잘 훈련되고 기쁘게 부르고 있다는 것을.
찬송 후에 자녀모임에서 가르치고 오신 김목사께서 나와서 시편24편으로 시편해설을 하신다. 예배와 예배하는 자에 대하여 간단하게 말씀하신다. 매번 경험하는 것인데도 예배 전 시편찬송과 해설은 예배로의 준비와 예열에 최고다.
2층에서 자녀모임을 가졌던 아이들이 우르르 내려와서 부모 곁에 앉는다. 그러고서 확인해 보니, 예배하는 회중이 60여명이나 되었고, 거반 젊은 가정이 주류를 이룬다. 그래서인지 자녀들도 의외로 많다. 가정집에서 개척을 시작하여 이제 5년을 지나고 있고, 그 동안 두 번이나 장소를 바꾸면서 이 멀리까지 옮겨 왔는데도 불구하고 얼핏 봐도 교인들의 구성이 제법 탄탄해 보였다. 예상 밖이었다.

이 교회는 주보가 없다.
이미 홈페이지를 통해서 주일의 예배순서와 말씀과 교회소식은 공지가 되었으리라 판단했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정면 판넬 속에서 알리고 있는 예배 순서와 내용들이 주보를 대신할 뿐이다. 이 모습은 네덜란드 캄뻔에 있는 개혁교회의 예배에 참여하였을 때나, 독립개신교단 교회들의 예배에 참여했을 때에 경험한 일이다.
오래 전에 우리 교회도 이런 식으로 주보를 대체하는 방법을 강구하기도 했었는데, 여러 가지 고려 사항으로 인해 계속 보류 중이다. 난 지극히 찬성하는 입장이다.
11시 정각. 김목사께서 강단에 서신다.
예배로의 부름과 기원으로 거룩한 예배가 시작된다. 이 내용은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로 불러 주시면서, 나아온 우리를 향하여 인사하심이다. 그리고 이 예배가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과 교제 가운데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로 차고 넘치도록 송영하는 기도이다.
이어서 온 회중들이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삼위 하나님께 경배의 찬양을 올려 드린다. 시편117편으로. 찬송 후에 십계명이 말씀에 있는 그대로 목사님을 통하여 경건하게 낭독된다. 이 계명의 말씀으로 자신과 교회를 돌아보며, 이 계명을 우리 위하여 완전하게 지키어 주신 예수님을 내세우며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잠잠히 하자고 하신다.
죄고백의 기도 후에 다함께 ‘니케아-콘스탄틴노플 신조’로 신앙을 고백한다. 그렇다. 나와 우리 교회 교인들은 니케아신경까지는 외워서 한달에 한번 정도 예배 가운데 고백하지만, 이 신조로 고백하기는 나도 처음이다. 공교회의 신조들, 그러니까 고대교회의 신조들은 동방교회 서방교회 가릴 것 없이 그 고백하는 내용은 참으로 진실되고 풍성한 신앙고백이다. 믿음의 선조들이 우리에게 보배롭게 물려준 신앙의 유산으로서, 개혁교회만이 가지는 귀한 보화이다. (예배 전에 건네 준 600p에 달하는 두꺼운 책에는 고대신조 5가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 벨직신앙고백서, 도르트신조,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제네바요리문답, 제2스위스신앙고백서가 들어 있다. 이는 이 작은 교회가 자체 출판한 것이다. 대.단.하.다^^)



 

사죄의 말씀이 선포된 후에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시편24편으로 올려드린다.
찬송 후에 김목사께서 목회기도를 간절하게 하신다. 그리고 성경(엡5:3~7)을 낭독하신다. 주일 오전예배의 설교는 지난 해 시편강설에 이어 에배소서 강해로 오늘이 서른 번째 강설이다.
제목은 ‘빛의 자녀로서의 삶(1)” 이다. 이전 주일은 교회 안에서 성도로서의 바른 삶에 대한 교훈이었다 하셨고, 오늘 5장의 말씀은 세상 가운데서 빛의 자녀로서의 삶에 대한 강설이라 하셨다. 특히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으로 자신을 지키며 살아야 할지를 말씀하셨다. 여간 준비되지 않고서는 강단에서 전하여지기 쉽지 않은 뜨거운 말씀이요 실제적인 권면이다. (설교 요약은 생략)
목사님의 글은 익히 좋은 줄 알았지만, 말씀도 참으로 깊고 풍성하다. 그리고 전달력 그러니까 스피치도 유려하다.
1시간 여 설교 후에 기도하고, 헌상의 찬송을 시편113편으로 부른 다음, 헌상기도를 하신다.
이후 다같이 일어나서 시편찬송가에 수록된 계시록7장으로 송영 찬송을 한다. 그리고 목사님의 축도로 예배를 마친다. (축도 역시 강복선언으로 해석하여 목사님이나 성도들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임한다)
거의 2시간 정도의 예배였지만, 의외로 아이들이 비교적 예배와 말씀에 임하는 자세가 산만하지 않고 잘 훈련된 듯하여 보기에 기특했다.
축도를 마친 목사님께서 회중석을 돌며 일어서 있는 교인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반갑게 살갑게 인사를 나누신다. 나도 그제서야 긴장을 풀고 목사님과 그리고 성도들과 인사했다. 그런데 인사를 다 끝낸 후에 다시 강단으로 가서 성도들을 앉게 한 다음에, 오늘 방문 교인을 소개한다고 하면서,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어떤 인사말을 해야 할지 조금 망설였는데, 이렇게 말한 것 같다.
“오늘 그리스도의 보편교회인 이 솔리데오글로리아교회에 와서 삼위 하나님을 진실로 예배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교회가 여기로 왔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기뻐서, 빨리 찾고 싶었으나 이제서야 휴무를 하면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교단 소속은 다르지만, 말씀에 충실하고 진리 안에서 자라가는 역사적인 개혁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데는 같은 소원과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함께 개혁교회다운 자태와 행보를 뚝심 있게 견지해가기를 노력하고, 주 안에서 더 진전된 사귐이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미리 준비해 간 것은 절대 아님!!^^ 근데, 엄청 딱딱하고 쌩뚱하죠?)


[예배 후 교제]


예배를 마치고 나서는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고 이제는 의도적으로 애를 쓴다.
하지만, 작은 교회이기에 그럴 수도 없다. 외인이 나 혼자이고, 소개까지 했으니 대놓고 다음 안내를 받았다. 목사님의 인도로 예배실을 나와, 현관에서 연결된 2층으로 식사를 위해 올라갔다. 올라가니, 생각지도 못했던 공간들이 나타났다. 넓은 공간을 가운데에 두고 목양실, 주방, 작은 룸들 몇 개가 깔끔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식사 전에 목사님께서 목양실로 안내하셔서, 그제서야 통성명하고, 온생명교회에 대하여 그리고 이 교회와 목사님에 대한 나의 추적 전력(前歷?)에 대하여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목사님께서도 우리 교회를 알고 있고, 언젠가 한번 교제해야지 하셔서 기뻤다.
식사를 하면서 더 얘기 하기로 하고, 나와서 줄을 서서 점심을 챙겼다. 짜장밥과 김치와 야채샐러드이다. 맛이 기막히다. 다시 말하지만 교회에서 먹는 밥은 언제나 옳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성도들이 상에 둘러 앉아서 맛있게 식사한다.
식사하면서, 그리고 마치고 그 자리에서 목사님과 더 진전된 얘기를 나누는 중에 세 분의 남자분이 자연스럽게 합석하셨다. 운영위원회를 섬기는 성도들이라 하였다. ‘성도님’이라 호칭하는 이분들과 목사님은 당회가 세워지기까지 대부분의 교회 업무를 총괄적으로 담당한다 하였다. 참 귀한 분들이다.
그렇다. 이제 이 교회도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시는 선물인 직분 특히 직분의 꽃인 장로를 세울 시점이 된 것 같았다. 이를 위해 지난 세월 동안 그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였겠으며, 깊고 바르게 풍성하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개혁된 신학의 유산인 다양한 신앙고백서들을 강설하고 해설하며 출판까지 하면서 신학하였겠는가 생각한다. 그래서 오후예배 때는 ‘교회정치’와 ‘직분’에 대하여 설교하고 배운다고 한다.
어느 교회이든 완전하게 개척이 종료되었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은 재정적 자립이나 건물의 완공이나 회중의 규모가 아니라, 장로가 세워져서 장로에 의한 참된 교회의 표지(標識)를 따라 회(會)의 치리가 시행되는 시점이다. 그러기에 이 교회도 이러한 복과 기쁨을 하나님께로부터 넘치도록 받았으면 참 좋겠다.
속히 좋은 장로, 좋은 집사가 꼭 세워지길 바란다.


이들을 통하여 더 알게 된 것은, 이 교회가 여기로 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와 현재적인 상황이었다.
교회에 속한 한 성도의 귀한 헌신과 섬김으로 이 땅과 건물이 교회에 주어지게 되었다 한다. 그때까지는 강남에서 모였는데,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 지역과는 상관이 없었는데도 한 가정도 떨어지지 않고 이 멀리까지 흔쾌히 오게 됨은 진실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감사하였다. 주일이 되면 자녀들은 학교에 온 듯하면서 온 성도들이 이 곳에 모여 오후 늦게까지 한바탕 잔치(?)하고 돌아간다 하였다.
그러면서 이제는 지역교회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과제라고 하였는데, 이는 우리 교회도 동일한 숙제를 안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그리고 더 나눈 내용은,
주변 개혁교회의 현실과 과제, 시편찬송의 실제, 장로로서의 직무적 고민, 양 교회의 기도제목 등등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개혁교회와 개혁신앙의 확장을 위하여 서로 격려하고 또한 도전을 받은 귀한 만남이요 교제이었다.


그러나 오후예배까지 당연 참여해야 했으나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두 번째 방문기에서 밝혔듯이, 휴무하면서 선교훈련과정을 이수하겠노라고 결심한대로 일을 저질러 버렸기 때문이다. 주일마다 교회탐방으로 시간적 제약이 있겠으나, 미루면 안되겠다 판단했다. 그래서 3월 첫 주부터 주일 오후마다 고신세계선교위원회에서 주관하고 서울서문교회에서 열리는 12주 과정에 서둘러 가야 했다.
김목사님께는 미리 양해를 구했던 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쉽다. 계속 오후예배에 참여하여 배우고, 교회와 성도들을 더 깊이 알아가며 교제하고 싶었었는데…..
근데, 목사님께서 다음 주일에 성찬식이 있다고 하셔서 참여 허락을 확인 받았으니, 그 아쉬움이 상쇄되리라 여기면서 나왔다.


[돌아오면서, 그리고 그 후]


운전을 하고 서문교회로 가면서 생각했다.
이 교회는 분립개척한 우리 교회와는 교회의 출발과 설립이 태생적으로 다르다. 분립개척하였다고 주위에서는 우리더러 복된 출발이고 행복한 목사 장로 성도들이라고 쉽게 간주함을 받았으나, 지나온 걸음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솔리데오글로리아교회도 그리고 목사님도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주권을 이해하고 받드는 일에 있어 말할 수 없는 은혜를 경험하며 여기까지 지나온 줄로 여긴다. 무엇보다 바른 신학이 실종되어 말씀이 흐려지고 혼탁하여지며, 바른 성도 참된 직분자가 희귀하여지는 총체적인 교회적 위기 상황 속에서 두 교회가 분투하며 나아갈 길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이다.
그러기에 개혁교회를 향한 걸음과 당면 과제에 대한 각자의 고민도 다를 수 있겠지만, 이 길을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동일하게 송영하며 간구하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계7:12) 아멘!


주일로부터 이틀 후,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참담한 소식이 전해졌다.
3/19 명성교회와 새노래명성교회의 합병과 김하나 목사의 청빙 결정!
목회세습이다. 변칙이요 반칙이다. 지금까지 목회세습이 여러 교회에서 있어 왔지만, 충격과 당혹감은 이번 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교회에 이 새봄에 조종이 울렸다. 교단과 교회들이 그리고 소위 교회 지도자들이 개혁을 한답시고 제 아무리 뻑쩍찌근한 행사와 돈을 쳐들여서 몸부림을 쳐본들, 이로써 종쳤다.
더군다나 사순절을 지나면서 부활절을 기다리는 이 경건한 시간들에 치밀어 오르는 화로 주체할 길 없다. 예수님처럼 죽어야 산다는 부활의 그 신앙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개신교회에서 제일 큰 교회가, 제일 유명한 목사가 지난 3년간 만지작거리던 오물을 한국 교회와 사회에 투척했다.
그러면서 김삼환 목사가 교인들을 향하여 “성도들은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담임목사 중심으로 살되, 특히 담임목사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모두들 공동의회에서 찬성표를 던져라 설교했다 한다. 기가 막힌 일이다.
교회를 규정하는 것이 말씀이다. 그래서 말씀을 맡은 목사가 중요하여, 칼빈은 “목사가 교회이다”라고 까지 했었지만, 이건 정말 정말 아니다. 교회를 처음 개척할 때의 초심은 어디 가고, 돈과 명예 그리고 교권을 움켜잡고 놓지 못하는 저 제국주의적 행태는 유독 저분만 저러할까 하는 자괴감으로 더욱 참담할 뿐이다.


아들아!
개혁신앙 밖에 물려줄 것이 없는 이 못나고 가난한 아비는 진정 어찌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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