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양의문교회 탐방기 - 박익천 고신학원 이사

작성자
회원
작성일
2018.11.18
원문보기1 (출처:온생명교회 카페)

양의문교회 탐방기


박익천 장로


세 번째 교회 탐방기이다.
휴무를 시작하면서 자주 뵐 수 없는 교우들에게 어느 교회에서 예배하였는지
홈카페에서라도 인사하기 위해 처음에는 무심코 한 일이다.
그냥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말았어야 했는데, 오지랖 넓게 보고 들었던 것을 엿가락 늘이듯 길게 풀었으니, 꼰대 소리 듣기 딱 좋을 만하다. 나이 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 된다는데 나이 탓인가? 요즘 눈팅도 지루해 하는 시대에 누가 관심 있게 보아주고 읽는다고 연이어 하는지 나도 잘 모를 일이다.
굳이 변명하자면 다른 교회를 찾는 나를 심드렁하게 여기는 아내가, 가서 어땠느냐고 자꾸 물어보는 통에 매번 친절하게 대꾸하기도 그렇고 해서 글로써 답할 터이니 보라고 했던 거였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탐방기 시리즈로 이어질 줄은 미처 몰랐다.
주일이면 그간 지켰던 자리와 시간들 그리고 사역과 관계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아무런 미션이 없는 평온한 상태에서 진정으로 ‘예배하는 나’를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과제를 떠안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한 바가 아니었다. 아니 스스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은 어느 교회냐”고 묻는 다른 이들이 생기는 바람에, 글쎄 그게 안부 인사인 줄도 모르고 짐짓 과대(?) 해석했다. ‘자뻑했다’라는 말이다. 순진함을 넘어 착각과 이 자뻑이 만들어낸 결과물로 인해 어찌 되었건 안 해도 될 고생문이 훤하다.^^
내가 자초한 일이어서 누구를 탓하기에는 이제 물 건너갔다.

여하튼 주일에 다른 교회를 찾아 예배하는 게 쉬울 줄 알았는데, 이게 여간 보통 일이 아니다.
맛나는 대박집을 찾아 가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속한 교회는 아니지만, 주일이기에 그리고 삼위 하나님을 진실로 예배해야 하는 곳이어야만 하기에 발길 가는 편한 대로 허투루 정할 수만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기에 주일이 되면 별 고민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교회가 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사랑하는 교우들과 함께 회중이 되어, 그 교회에 속하여 있는 자들에게 특별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잠잠히 받으며 교제할 수 있는 ‘내 교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마치 순례자(아버지)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립니다. 나는 주의 말씀을 바랍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립니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십니다” 라는 그 노래와 외침이 나의 고백이 되어, 주일마다 올라가는 시온성과 같은 교회가 늘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눈물 나게 감사한 일인지 말이다.
휴무하고서 깨달은 일상(日常)의 감사이다.


[어느 교회로? 왜?]


우리 교회가 잠실중앙교회로부터 분립하여 개척된 지가 올해로 8년 되는 해이다.
바로 엊그제 같은데, 난 아직도 그 시작의 어간에 있었던 놀라운 기억들에 매여있을 때가 많은데, 세월은 나 모르게 자기 갈 길만 간 모양이다. 너무 빨리 가서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아들이 벌써 결혼까지 해서 아이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어찌 어지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적은 무리들과 함께 떨어져 나와 교회 개척에 참여하면서,
특별하다고 여길만한 무엇도 없는 가련하고 작은 교회라서 그저 믿음의 선진들이 물려준 보배로운 개혁신앙의 실질이 살아 구현되는 교회가 되기만을 간절히 바랬었다. 그런 교회에 속하여 주님의 목회 안에서 경건하고 단정하게 예배적 삶을 내 자녀와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분투하면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소망했었다.
그 바램과 소망이 비록 지금의 세대가 아니고 우리 자녀의 세대에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씨름하면서 어깨동무하면서 가보자고 굳게 다짐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개혁신앙의 실질, 이게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시작부터 지금까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부끄러워서 겉으로 표방한 적은 없지마는, 누가 봐도 어설픈 개혁교회스러웠기에 안팎에서 의심과 확신이 오가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깊이 돌아보아 주셔서 이제는 제법 믿음의 역사가 쌓여가고, 소망의 인내와 사랑의 수고가 힘듦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가 될 만큼 주님의 교회를 여기까지 잠잠히 자라게 해주셨다. 아직 갈 길이 먼데, 주위에서 개혁교회라고 찾아와 주는 이들이 있어 감사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 별종스러움(?)은 곳곳에 묻어나기에 주변에서는 아직도 모범적인(exemplary) 교회 혹은 유니크(unique)한 목사와 장로라고 에둘러 평가해주기는 하지만, 저들의 시각에는 어느 정도 하고 말 실험적인(experimemtal) 것으로 여김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개혁교회는 한번 실험해보는 교회가 아니다. 대안교회는 더더구나 아니다.
개혁교회는, 개혁신앙은 역사적인 주류의 교회요 신앙이다. 교회 역사를 통하여 믿음의 선진들이 그리고 개혁자들이 오직 말씀과 성령에 붙잡혀서 그 말씀이 가리키는 대로 믿으며 고백한 신앙이요, 또 삶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실천적으로 살아낸 신앙이다. 우리는 그런 신앙의 후예들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믿어야 할 바가 무엇이며, 어떻게 예배하고 살며 교회를 세워가야 할지를 ‘역사적인 개혁교회의 전통과 개혁주의 신앙’을 따라 파수하고 전수하며 간구해야 할 책임이 마땅히 있는 것이다. 비록 소수파가 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특별한 교회도 별종도 아닌, 원래의 교회를 제대로 하는 것이 맞다고 여긴 것이기에, 실험도 아니요 대안도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날 모두가 개혁교회임을 자처하지만, 개혁신학에 입각한 예배, 설교, 목회, 찬송, 예식, 교회정치, 요리문답 등 그 실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 길이 옛적길 곧 선한 길이라 여기며, 시대가 변해도, 아무리 상대주의(relativism) 다원주의(pluralism) 실용주의(pragmatism)가 판을 쳐서 인간에게 유용하며 선한 것이라 대세몰이 하여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붙잡고 외쳐야 하지 않겠는가!
신학적으로는 개혁교회답게! 교회정치적으로는 장로교회답게!
그러면서 예배답게! 신자답게! 직분자답게!

그래서 휴무하면서 이 소중하게 허락 받은 시간들을 통하여,
이 교회다움을 밖에서 찾아 보쌈이라도 해서 훔쳐오고 싶었다.^^
무척이나 궁금하고 별종스러운 교회들이 있었다. 설교로써 또 크기나 특출 난 사역으로써 유명한 교회들을 찾고픈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니나, 솔직히 가장 찾고픈 교회는 우리처럼 개혁교회로 씨름하는 교회였다. 이미 그 좁은 길을 헤쳐 걸어간 세월이 겹겹이 쌓여 이제는 흔들리지 않고 굳세어진 교회나, 조그만 변화에도 온통 교회의 존망을 걱정해야 하는 여전히 연약한 교회나, 사서 고생하는 거 뻔히 알면서도 호기롭게 개혁교회 한답시고 맨땅에 헤딩하듯 개척의 문을 열고 있는 교회나, 어찌 되었든 용(?)을 쓰는 교회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말했듯이 궁금했고, 배우고 싶었고, 그리고 격려와 위로를 받고 싶었다.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얼까? 어떻게 자라가라고 조언 받을 수 있을까?
목사가 아니기에 신학적으로나 교계적으로 시야가 좁을 수 밖에 없어서,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교회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교단불문, 거리불문, 친소불문……
양의문교회(고려개혁), 일산현산교회(합신), 안양강변교회(독립개신), 흥덕나그네교회(합신), 포항샘터교회(고신), 솔리데오글로리아교회(?), 한마음개혁교회(대신), 마곡장로교회(고신), 언약교회(합신), 의정부한마음개혁교회(독립개혁), 대구로뎀교회(고신), 실로암교회(독립), 그리고 가까운(?) 광교장로교회나 다우리교회 등등.
과연 몇 교회나 찾아 볼 수 있을까?


[이 교회는…]


양의문교회(고려개혁, 김준범 목사, 서울시 사직동 소재)
개혁교회 중에 이 교회를 가장 먼저 찾고 싶었다. 왜?
무엇이든 배우려면 좋은 선생, 좋은 교재, 좋은 친구가 처음부터 중요한 법이다. 운동도 잘 하려면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전에서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폼을 처음부터 어떻게 잡고 길들이느냐가 관건이다. 자세를 잘못 잡아 놓으면 실력은 도통 늘지 않고 개고생(?)만 하다가 끝나기가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이 교회는 좋은 선생 혹은 좋은 선배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권법으로 치자면 무슨 도장(道場) 무슨 파(派)인지는 잘 몰라도 말이다.ㅋㅋ
우선 오랜 시간 고군분투하며 개혁교회로서의 선도 역할을 자임하며 걸어온 길과 역사가 예사롭지가 않아서이다. 그 용틀임과 몸부림으로 만들어낸 진주와 같은 산출물들을 통해 우리와 같은 병아리 교회들에게 선물하면서 자극하고 도전하고 있는 교회이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는, 왠지 심정적으로 가깝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보통 개혁교회라고 표방하거나 목표하여도 한국적인 상황 속에서 적용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저마다인 경우가 많아 놀랄 때가 있다. 아마 자기 고집, 자기 신학이 만들어낸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럴 게다.
근데 이 교회는 그럴 것 같지 않고,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징표가 도드라지기에 그렇다. 우리가 사용하는 시편찬송(고려서원)도 이 교회가 주도하였고, 또 최근 기독교보 2면에 김준범 목사님의 시편해설이 매주 실리고 있음이다. 더욱이 1991년까지는 원래 같은 교단 서울노회 소속 교회이었다. 이제 많은 세월이 흘렀기에 최근 고려측도 다시 합치게 되었고 해서, 고려개혁 교단의 중심 교회로서 일말의 기대감(?)이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언강생심인가?

이 교회는 이름부터가 독특하다. ‘양의문’
아마 처음 들어본 이들은 남대문 동대문처럼 서울에 양의문이 있어 그 주변에 있는 교회인가 여길 테다. 아니다. 정확하게 ‘양(羊)의 문(門) 교회’가 고유명사로 ‘양의문교회’가 된 것이다. 근데 양의문교회가 서울에만도 여럿이다. 이름이 함의하는 귀한 무엇이 있기에 그럴 것이다.
교회의 홈페이지에서도 맨 먼저 교회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나는 양의 문이라”(요 10:7)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며 세워가시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하여, 그리고 우리 교회를 통하여 택하신 백성들이 양의 문이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여, 교회의 명칭을 “양의문교회(Yanguimoon Presbyterian Church)”로 정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교회는 청교도 개혁신앙(Puritan Reformed Faith)의 신앙노선을 따르는 장로교회라고 분명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 6:16)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 교회도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바른 신앙고백을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고백하면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옛적 길을 교회 역사상 가장 분명하고 아름답게 걸어갔던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자취를 따르기를 소원하면서 그 길을 더듬어 걸어가고자 힘쓰고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단순히 그들의 신앙고백과 교리만을 받아들인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복음적 삶과 예배, 곧 그들의 경건의 실제를 닮아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이 교회는 이를 위하여 세상과 싸우고, 이단과 싸우고, 교권과 싸우면서
인위적으로 교회의 부흥을 도모하지 아니하고 외롭게 이 길을 걸어왔음이 분명하다. 긴 역사만큼이나 고난도 고심도 깊어 그걸 뚝심 있게 견디어낸 교회이기에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지 않나 여겨진다.
이 교회는 내가 태어난 해인 1959년 백영익 전도사가 성은교회라는 이름으로 개척한 교회이다. 몇 년 후에 사직동교회로 개명하면서 신도범 목사님이 9년간 목회한 교회이다. 그 뒤로 2명의 목사가 시무를 하였고, 1982년에 송용조 목사님께서 부임하셨다.
개인적으로는 두 분의 백 목사님(백영익, 백태영)과 신 목사님은 인연이 있다. 나와 같은 거창 출신들로 백목사님들과는 총공회(소위 백파 교회)로, 신목사님과는 서울강남교회와 내 숙부의 친구 되심으로 인하여 교제하였던 터라 이 교회가 전혀 낯선 교회는 아닌 것이다.
송목사님 부임 이후 1988년 이 교회는 주변의 여러 목회자들과 장로들이 함께 소속 교단인 ‘한국총공회’를 탈퇴하여 독노회를 결성하였고, 같은 해 근처 당시 체신부 교육센터로 쓰이던 건물(지하2층, 지상7층)을 매입하여 이전하면서 교회 이름도 양의문교회로 변경하였다. 이듬해 독노회 안에 있던 교회들이 고신의 각 지역 노회에 가입함에 따라 양의문교회도 고신의 서울노회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소송사건으로 인하여 1992년에 여러 교회가 고신을 이탈하여 이 교회를 중심으로 한 고려개혁 총회를 설립하게 되었고, 2007년 송목사님이 원로목사로 은퇴를 하면서 김준범 목사께서 위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양의문교회는 한국교회 내 청교도적 개혁교회의 맏형으로서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교회 중 하나이다. 교회 역사에 있어 어느 시점부터 그러기를 자각하고 준비하며 출발하게 되었는지 또 왜 그렇게 결심하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나중에 송목사님이나 김목사님을 만나면 꼭! 물어볼 참이다), 그 자태를 견지하며 걸어온 길은 실로 고난의 길이었을 것임에는 틀림 없다.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길을 만들며 가야 했으니, 오죽 했으랴.
우리는 그에 비할 바 아닌 짧은 세월이었지만 선진들이 지나간,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자니 허둥댈 수 밖에 없었고 천천히 갈 수 밖에 없었다. 먼 다른 나라의 개혁교회의 신학과 목회와 생활을 책으로 익히고 들으면서 말이다.
이 교회가 붙들고 있는 요지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교회의 회복과 갱신이다. 다시 말해 성경적 신앙가치와 개혁신앙의 전통을 보수하고 회복하기를 고대한다.
이를 위하여 바르고 신실하게 예배하기를 힘쓰고, 역사적 개혁교회의 모범을 따라 성경과 교리교육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라가도록 힘쓰고, 복음이 땅끝까지 증거될 수 있도록 교회에 맡겨주신 선교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개혁신앙으로써!


구체적으로 이 교회는 말씀을 바르고 깊고 풍성하게 해명하고 산출하기 위하여 또 그것을 온전히 받기 위하여 목사와 성도들이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것이다. 목사는 제대로 공부해서 선포하고 쓰고 가르치며, 성도는 그것을 알아듣고 깨닫고 읊조리며 실천하기 위해서 마음과 정성을 다한다.
교회 내 신학 전문과정(M. Div.)인 학교(고려개혁신학연구원)에서 목사를 배출해내고, 교인들과 자녀들에게는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신조와 신앙고백과 요리문답들을 설교하고 가르치고 외우게 하면서 말씀이 가르치는 바대로 믿고 예배하고 살도록 돕는다.
또 받은 말씀으로 올려드리는 헌상인 기도와 찬양이 어떠해야 함을 특별히 시편찬송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깨운다. 이 시편찬송을 자신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에 보급하기 위하여 기울이는 노력은 이만한(300명 정도) 교회가 감당할만한 능력이 아닌데도 가히 그 결과물은 수준급이다. 그 노력이란, 고려서원을 통한 시편찬송 편역과 개발과 보급이다. 작년 7월에는 시편찬송 개정증보판(330곡)을 내면서 많은 교계 사람들이 서울 모테트합창단과 함께 시편찬송의 진수를 흠뻑 맛보게도 하였다.
그나저나 우리 교회도 이제 이 증보판으로 바꾸어서 찬양했으면 좋겠다.^^

또 놀라운 것이 있다.
소유하고 있는 교육관(파주)과 수양관(양구)이 이 교회됨을 위하여 총체적으로 쓰여지는 모습이 옹골차다.
교회 성장과 부흥의 시기에 많은 교회들이 앞다투어 자체적으로 마련한 부속 시설들이 이제는 흉물 내지는 골칫덩이가 되어버린 형편과는 너무나도 딴판이다. 오래 전에 매입한 파주 삼학산 자락 부지에 7년 전에 아름다운 교육관을 건설하여 ‘샘마을’이라 칭하고, 이곳을 개혁교회의 실전 도량으로 삼고 있다.
한 마디로 영적 충전소 역할이다. 목회자들의 말씀연구와 기도처소, 성도들의 경건훈련과 신앙단련소, 학교(고려개혁신학연구원)의 신학수업과 영성훈련소, 개혁주의청교도도서관, 선교사와 신학자들의 연구와 안식처, 개혁목회 아카데미….
현재적으로도 성경통독 및 기도모임이 매달 공지되어 성도들이 모이고, 말씀사경회가 연례적으로 개최된다. 이런 일들이 어찌 하루 아침에 이루어졌겠는가? 이런 영적인 토양과 환경에서 어찌 성도들이 성경을 통독, 정독, 다독, 묵상, 공부, 기도, 실천, 변화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훈련 가운데서 어찌 훌륭한 말씀의 사역자가 배출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그 좋은 열매, 본보기 하나가 김준범 목사이다.
김목사님은 이 교회가 배출한 신학자요, 교수요, 목회자이다. 어릴 때 이 교회로 와서 학창과 청년 시절에 말씀의 훈련을 잘 받고, 스코틀랜드(자유장로교회대학)와 미국(그린빌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한 후에 교회로 돌아와서, 2007년에 송목사님의 뒤를 이어 담임 목회하고 있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기뻐하고 감사할 일들이 많겠지만, 말씀의 사역자인 목사를 만들어내는 것만큼 더 귀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좋은 목사를 말이다.

[출발, 도착, 첫인상]


이 교회를 가기로 정한 후에 주중에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지난 탐방(서울광염교회)에서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이번 여기에서는 해야 될 것만 같았다. 누구든 예배에 참석하는데 오지 말라는 교회가 있겠냐 마는, 그렇다고 불쑥 찾아 가서 낯선 이로서 예배와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어떠하든 그 교회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무엇보다 공교회적인 처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예배 한번 참석하는데, 무슨 공교회적인 처신까지 얘기하느냐고 물을 수 있겠다. 이것은 예의와 처신 이전에 개혁교회(혹은 장로교회)의 관례를 따라 견지하고 있는 치리적 존중과 배려 차원이다.
다름 아니라, 예배와 성찬 참여에 대한 사전 청원과 허락이다. (참 별종스럽죠? ㅋㅋ)
우리 교회도 이런 청원과 허락을 문서로 혹은 사전 연락을 받고, 목사와 장로가 이에 대하여 살핀다. 그러기에 나도 청원함이 마땅하여 준비를 해야 했다.
청원서를 마련하여 우리 교회 당회에 알리고, 주중에 이를 김목사께 알리며 전달할 참이었다. 문서를 전달하자면 카톡이 유용할 것 같아서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보냈다. 바로 답변이 왔다.
태국이다!!!!! 태국 치앙마이 신학센터에서 집중 강의 중이어서 주일까지 머무는데, 언제든 환영한다고 하시면서 이번 주일에는 송목사님께서 설교하신다고 하셨다. 난 연거푸 세 주일을 참석할 참이어서 송목사님의 설교와 강설도 들을 수 있는 것이 내심 기뻤다.

주일 오전예배는 11시, 오후예배는 오후2시30분이다.
두 예배에 모두 참석하려고 마음 먹고, 전날 가족들에게 시간 계획을 알리며 준비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계속되는 주일 아침이다. 이런 날씨에 연로하신 어머니와 가족을 편안하게 예배당 안까지 인도하지 못함에 심란하다. 내부순환도로를 따라 시내를 관통해서 사직동까지 찾아가자면 어림잡아 1시간은 각오해야 하기에, 하차를 시킨 후에 득달같이 달렸다. 독립문과 사직터널을 지나 마지막 근처 지점 교회 입구 도로에서 좀 헷갈렸다.
교회 앞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30분. 입구 도로까지 벌써 주차된 차들로 만원이다.
아뿔싸! 낯선 티 안 내려고 일찍 온다고 왔는데, 예의 이런 교회의 스멀스멀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으리라. 겨우 주차를 하고, 교회 건물을 올려다 보았다. 7층인데, 사직터널 위의 언덕에 높이 솟아있다 보니, 그 위용은 주변을 호령하는 듯했다. 가끔 지나 다니는 길이지만, 언덕 위로 올라와 보기는 처음이다. 바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지난 밤 ‘촛불’의 광화문이 있고, ‘태극기’의 청와대가 있다. 어찌 이런 기막힌 장소가 예배당이 되었을꼬?

예감 때문에 더 지체할 것 없이 바로 본당이 있는 2층으로 직행했다.
보통 교회가 예배 시작 전에는 안내하는 분들이나 일찍 오신 분들이 담소하거나 왔다 갔다 하면서 준비하는 모습이 일반인데, 주위가 완.전.조.용.하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주보를 들고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와우!!!!! 20분전인데, 안을 거의 메운 성도들이 저마다 고요히 예배를 기다린다. 우리는 교회 오자마자 인사하며 시끌시끌하기 바쁜데, 여기는 뭐하나? 예배 전에 무슨 교육이나 모임이나 찬양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각자 무얼 하나? 기도한다. 성경을 읽는다. 책을 본다. 생각한다.
(나는 이 ‘생각한다’가 굉장히 중요하다 생각한다. 예배 전에 적어도 홀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Thinking & Rethinking! 남들과 인사하며 얘기하다가, 차를 마시다가, 어찌어찌 하다가, 멍하니 있다가 황급히 임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어느 자리가 좋을지 두리번거리다가 왼쪽 세 번째 열 뒤편쯤 자리했다. 잠시 기도 후에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내부 구조와 배치를 힐끗힐끗 살폈다. 느낌적 느낌으로^^그냥 이게 교회구나! 싶었다. 화려하고 웅장한 공간과 현대적이고 세련된 장식과 번들거리는 첨단의 기물들로 압도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 크지 않는 공간에서 어찌 이토록 교회의 전통과 기품을 소리 없이 정갈하게 드러낼 수가 있을까 싶었다. 바로 칼빈 선생이 저쪽에서 걸어 나와서 강설을 할 것만 같았다.
회중석과 4계단 위에 위치한 중앙의 짙은 밤색 나무 강단. 강단 아래 양 옆으로 전자오르간과 피아노. 강단 뒤쪽에 긴 의자와 정면으로 아무 장식 없는 투 톤의 격자 문양의 벽. 2~3층 공간을 터서 한 홀로 만든 예배실. 4열 250석 정도의 장의자 좌석. 그리고 열마다 4권씩 놓인 시편찬송가. 오직 말씀의 강단에만 집중하도록 내부 공간에는 그 어떤 것도 눈과 마음을 앗아갈 만한 소위 성물(聖物)이랄 만한 게 전혀 없다. 꽃도 화분도, 심지어 티끌도 없는 듯하였다.^^ 이게 개혁교회의 강단이구나 바로 접수했다.
이내 마음이 가라앉고 평온해졌다. 낯섦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찾아오심을 잠잠히 기다리자.
그래서일까? 예배가 어떨지 더욱 궁금해졌다.

[오전예배]


주보는 A4용지로 출력하여 반으로 접은 형상이다.
교회가 기품스러워 보이니, 주보도 간단하지만 무겁다. 1,2면에는 지난 주일 설교가 요약되어 있고, 3면에는 교회소식과 오후예배 시에 강설할 요리문답과 안내 및 봉사위원이, 4면에는 주일 오전예배 순서가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다. 우리 교회의 주보도 이와 비슷한 형상으로 최근에 바꾸었다.
예배 시작 15분전쯤 이미 회중석은 가득 찼다. 작은 기침이라도 송구할 것만 같은 정숙감이다. 아까부터 오늘 예배인도와 설교자이신 송목사님께서는 강단 아래에서 기도하고 계신다. 나지막하고 은은하게 오르간 연주가 시작된다. 잠시 후 10분전쯤 찬양 인도자(전도사)가 강단 한쪽 옆으로 나와서 찬송을 인도한다. 처음에는 일반찬송가로 한 장, 뒤이어 시편찬송가로 3장. 정갈한 인도로 모든 성도들이 저마다 힘있는 소리를 합하여 찬양하니, 시편찬송이 예배를 위한 찬송임에 새삼 놀라고 벌써 그 참된 고백에 은혜롭다. 마지막 찬송을 부르는 중에 찬양대가 회중석 앞쪽으로 자리하면서, 송목사님도 강단으로 향하신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시30:4)
예배로의 부름과 기원을 하신다. 평생을 말씀과 기도로, 목회로, 신학연구로, 교회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살아오신 노(老) 목사님이 하시는 부름과 기원은 느리지만 힘있는 그 한마디 한마디는 정말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로 부르셨구나를 전율하며 알아, 그 부르심에 화답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신다.
다같이 일어서서 시편찬송으로 그 부르심에 전심으로 화답하며 영광의 찬송을 높이 올려드린다. 온 회중의 찬송 소리가 청아하고 드높아 예배당 안이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한 것 같았다.
찬송 후에 십계명(출 20장)으로 교독하고, 이어서 그 계명의 말씀으로 자백과 사죄를 위한 기도를 각자가 한다. 개인적이고도 공적인 죄의 고백의 시간인데 좀 전의 그 우렁찬 찬송과 교독과는 전혀 딴 판이다. 옆 사람에게 도무지 방해가 안되도록 인도자는 물론 모든 성도들이 전심으로 조용히 기도한다. 인도자가 사죄의 말씀을 선언하니, 자연스럽게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이 이어진다.
이후 다같이 앉아서 시편찬송으로 감사의 찬송을 더욱 힘차게 드린다. 앞의 찬송이 ‘영광송’이라 한다면 이번의 찬송은 ‘감사송’인데, 여기까지의 예배 흐름은 그야말로 삼위 하나님과의 영광스러운 주고받음이다.

이어서 그 주고받음, 즉 영광과 교제의 절정이 펼쳐진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교훈의 말씀이 인도자를 통해서 각각 낭독될 때에 말씀의 약속과 그 성취가 확실히 이루어짐을 예배에 참여한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믿음직하신 분이심을 진실로 알게 한다. 이어서 이 믿음으로 목회기도와 헌상기도를 동시에 인도자가 하신다. (헌금은 예배 전 입구에 있는 헌금함에^^)
기도를 마치니, 바로 모든 회중이 주기도문으로 함께 기도한다.
여기서 몇 가지 짚어보고 넘어가자.
개혁교회의 예배예전과 순서에 보면, 예배 가운데 신구약 성경을 각각 낭독하는 순서가 있다. 그 의미를 바로 앞에서 나름대로 간단하게 언급했는데,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또 목회기도를 목사가 하는 것은 원래의 모습이고 바른 것이라 하겠다. 목회기도의 내용과 위치와 그 의미를 제대로 안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한국의 교회적인 상황에서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장로가 대표로 기도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모든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공예배 시의 기도를 장로가 맡는다고 한다면, 사적인 기도와는 분명 달라야 한다. 이것은 장로의 기도가 더 잘 준비되어 철저하게 성경적이며 신앙고백적이어야 하고, 예배적이며 송영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와 같은 장로들이 한참 더 분발해야 하겠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예배 가운데 고백(사도신경)과 감사(십계명과 주기도문)가 풍성하다는 점이 놀랍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것들을 줄이거나 해서 효율적이고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쌈박한 예배를 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기도를 마친 송목사님께서 오늘의 설교 본문을 봉독하시고, 주보에 있는 교회소식을 아주 간단하게 전하신다. 뒤로 물러 앉으니, 회중석에 있던 찬양대원들이 강단 앞 계단으로 나와서 회중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선다. 까운을 입은 찬양대원은 대략 30명 정도이다. 역시 시편찬송이다. 시편찬송을 편역하고 개발하고 보급하는 교회답게 적은 규모이지만, 현란한 기교를 섞지 않은 4부 합창은 자신들만의 찬송에 국한하지 않고 회중들을 함께 찬송으로 인도한다. 아니나 다를까 간주 후에는 지휘자가 돌아서서 회중이 함께 찬양대와 찬양하도록 이끈다. 나도 베이스 파트로 힘있게 불렀다. 시간이 조금 흐른 것 같았는데, 시계를 보니 여기까지 딱 40분이다.
찬양 후에 송목사께서 나오셔서 설교에 앞서 자녀들을 향하여 해당 주일 요리문답(하이델베르크) 한 문을 질문하시니, 자녀들이 소리 내어 또박또박 그 답을 말한다.
그리고 설교 전 기도를 하시고, 말씀을 선포하신다. (설교 내용은 생략)
말씀을 마치니, 다같이 일어서서 시편찬송을 부른다. 이 찬송을 ‘고백송’이라 할까? 은혜의 방도인 말씀으로 우리를 대접하신 하나님을 향한 예배자의 고백, 이 말씀으로 세상에 나가 감사하며 읊조리며 분투하겠다는 우리의 고백을 다시 말씀으로 찬송하며 올려드리는 것이겠다.
말씀의 내면화와 실제화를 다짐하며 결단하는 시간이다.
이 고백을 받으신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통하여 삼위 하나님의 복을 무리에게 선언하신다.
예배가 끝났다.
예배의 모든 순서가 다음에 무얼 하겠다는 멘트가 일절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순서마다 그 위치와 내용이 살아 있어서 엄숙한 예배임에도 역동적이다. 또 시편찬송을 거듭 얘기했지만, 지난 8년간 시편찬송을 부르고 예배하다 보니 참 좋다고 느꼈는데, 여기서 함께 부른 시편은 왜 예배찬송이 시편이어야 하는가를 실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시편은 교회가 가진 가장 좋은 찬송이자 기도라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심히 회중석을 살폈는데, 글쎄! 희한하게도 1열은 전부 남자, 2열은 반반, 3-4열은 전부 여자이다. 어릴 적 내가 다녔던 교회의 풍경이 2017년 서울 한복판 여기에서 말이다. 요거 재미진 풍경이네.ㅋㅋ
예배를 마치니, 그제서야 서로들 반갑게 악수하고 인사하고 질펀하게 담소한다.

[성도의 교제, 오후예배]


아! 어느 교회나 처음 가면 이 상황이 가장 쭈뼛쭈뼛 할 듯하다.
서로들 반갑게 인사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혹시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하나? 오후예배까지 참석할 작정인데, 점심은 주나, 어디서 먹나? 그러고 멈칫멈칫 있는데, 남자 한 분이 빠져 나오는 나에게 말을 건다. 어떻게 오셨고, 식사 같이 하자고 말이다.
지하 2층에 내려가니, 식당이 넓고 깔끔해서 흡사 레스토랑 분위기이다. 줄을 서 식사를 받아 탁자로 가는데 저 쪽에서 오라고 안내한다. 웬걸! 남자 두 분이 송목사님도 오실 테니,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잔다. 그렇게 해서 뜻하지 않게 송목사님과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는데, 송목사님께서 먼저 나를 아시는 척 하시는 거다. 태국에 있는 김목사로부터 연락을 받아, 내가 오면 살펴달라 부탁을 하셨단다.
식사를 마치고서도 교회와 송목사님에 관한 얘기들을 잠시 듣고 나누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점심 후에 이 교회는 남녀 성도들이 각각 소속된 전도회로 흩어져 모여서 오후예배 전까지 별도의 모임을 갖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헤어졌는데, 홀로 남게 된 나는 예배 전까지 교회를 안팎으로 둘러보면서 사진도 찍고 내부 공간들을 돌아볼 참이었다.
밖으로 나가 주차장에서 교회 전경들을 다시 감상하고 있는데, 저 위에서 4층 창문을 열고 송목사님께서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부르신다. 생면부지의 낯선 장로를 이렇게 챙겨주시니 감읍할 따름이었다.^^

4층으로 들어서니, 제법 너른 공간에 한 쪽은 담임목사, 한 쪽은 원로목사의 공간으로 구분된 듯했다. 쇼파로 나를 안내하시더니 친절하게 여러 가지를 물으시고 또 말씀하신다. 난 속으로 이 참에 궁금했던 것, 들었던 것, 보았던 것, 다 물어봐야겠다고 심산했다.
약 1시간 남짓 묻고 나눈 꼭지들은 대개 이러했다. (내용은 생략^^)
개혁교회의 결심과 동기, 컨콜디아 신학교에서의 신학(참고로 고 오병세 박사님도 여기서 수학), 고 김홍전 목사의 저서들과 목회, 고 허순길 목사의 개혁목회,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와의 관계(참고로 송목사님은 현재 82세로 매달 1회 오전/오후예배 설교 담당), 신학교수로서의 근황(고려개혁신학원,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고려개혁교단의 현재, 설교계획(칭의 성화 선행), 교회건물 매입과정(1988년에 6억으로 매입, 현재는 아마 세자리 억단위???), 주변 개혁교회들의 상황과 우리의 형편, 자녀 등등
이 소중한 가르침과 나눔에, 나는 횡재했다.

오후예배를 위해 같이 일어섰다.
알고 보니, 점심 이후에는 모든 교인들이 저마다 소속된 연령별 모임에 흩어져서 지지고 볶은(?) 후에 오후예배에 참여한다. 개별 공간들이 충분하여 무얼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여건이 참 부럽다.
오후예배는 오전예배의 축소판이었다. 시편찬송을 더 진하게 부르고, 요리문답 설교를 들었다.
오후예배에 참석한 회집수는 노장청 할 것 없이 오전 그대로 변함없다. 주일에 교회에서 온전하게 주일을 성수하기 위하여 집을 나설 때부터 작심하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겠다. 주차된 내 차가 제일 앞 쪽에 있었는데도, 그 때까지 빼어달라는 소리가 없었던 것 보면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얘기다. 참 잘 훈련을 시킨 목회자도 대단하고, 기꺼이 그 권면과 지도를 성도의 바른 자태로 받아 순종하는 성도들은 더 대단하다.
개혁교회의 힘이다.


[돌아오면서]


시계를 보니 오후 4시이다.
오늘 하루 이 교회에서 지낸 시간이 평소 우리 교회에서와 대동소이하다. 보낸 시간들은 물론이고 그 내용 또한 판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예배가 삼위일체적이며 언약적이고 공교회적임에 그럴 것이고, 예배를 통하여 연결되는 성도의 교제가 말씀 중심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언덕 아래로 교회를 빠져 나오면서 집으로 향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그런데 이 행사가 성(城) 안에서 빠져 나오는 듯한 기분이 뜬금없이 드는 것은 왜일까?
교회와 교인들을 ‘산 위에 있는 동네(마5:14)’라고 한다. 그렇다면 위치 상으로도 산 위에 있는 동네에서 내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일까? 운전을 하고 가면서 내내 생각해보았다.
언덕 위에 높이 솟은, 성 같은 교회 안에서 말씀으로 대접받고 찬양으로 기도했던 영적 충전. 오늘 주일 하루의 이 놀랄만한 종교적인 파토스(pathos,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아 생기는 정념(情念))를 어찌 할꼬!
신앙생활은 세상에서 하는 것이기에, 다시 나의 삶이 있는 가정과 일터와 세상으로 나아가 이 개혁신앙의 진수와 영적인 실력을 보여주며 살아야 하는데…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늦은 오후의 서울 길이 막힌다.
우리 교회로 가서 가족들을 픽업하기에는 늦었다. 밀리는 차 안에서 노래가 나온다.
‘너의 의미’(아이유와 김창완의 콜라보)
정말 감미롭다. 대체불가한 음색과 조합이다. 오늘 이보다 더 아름답고 귀한 콜라보를 보고 들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한국교회에 흔치 않은 원로와 후임의 이상적인 동역, 양의문교회의 두 목사님.
(그 다음 주일에 김준범 목사님을 반가이 만났다. 그리고 한 주일 더 예배에 참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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