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연구

애초의 양성원, 이대로가 ..합리인가_

작성자
(평)신도
작성일
2020.10.31
전체 22

  • 2020-11-01 09:36
    하나의 양성원으로 내려 오면서 비록 규모는 작아도 한국 교회에 큰 빛이 되었던 시절을 복구하자는 호소로 읽었습니다. 현재 양성원은 각 공회가 별도로 운영하면서 학생이 전혀 없이 몇 년을 비우는 곳도 있고, 교수 1인에 학생 1인으로 몇 년을 가는 곳도 있습니다. 부공2와 대구공회가 비교적 운영이 잘 되고 있다 해도 교수 몇 명에 학생 10명이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모여도 버티기 어려운데 그마저 모두 흩어졌기 때문에 살아 날 수 있는 불씨조차 꺼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아마 양성원의 교수들과 학생들이 타 교단을 만나 자기 양성원에 대해 떳떳히 말하는 경우가 있을까? 공회의 안수를 받아야 목회 길이 열리기 때문에 마지 못해서 과정을 밟고나 있지 않을까? 각 공회에서 가장 인재라고 치는 분들이 타 신학교의 정규 과정을 다 밟고 학위까지 받는 경우를 보면 타 신학교가 본업이고 양성원은 곁업으로 보입니다.

    양성원들이 하나로 모이면 교계의 평균은 될 수 있습니다. 공회의 노선도 선언도 실제 걸어 가는 것도 거의 다 비슷하다는 점에서 하나로 모이면 좋겠습니다. 교수 자리라는 이해 관계가 가장 큰 장벽일 듯합니다. 현재 교수로서 통합 후에 교수직을 유지 못하는 분들은 당연히 반대할 것으로 보이고, 교수직에 아예 희망이 없는 이들은 교수직을 가진 목사님들의 세 확보를 그냥 보지 않을 듯합니다. 지난 30년을 지켜 본 결론입니다. '(평)신도'의 성함으로 양성원이 성경이라는 특별계시와 자연계시의 이치로 볼 때 하나 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심을 심각하게 들었으면 합니다.

    이런 발언들이 허공을 맴도는 일이 잦아 지면 한국 교회사에 하나님의 혹독한 시련이 닥친 사례가 우리라고 비켜 가겠습니까? 적장자를 내세우는 우리에게는 더 강하게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미 많이 지나 갔고 지금도 지나 가고 있다고 보입니다.

  • 2020-11-01 17:47
    (백영희가 전한 것)
    약간 다른 방향입니다. 전체적으로 발제자의 글과 연관도 좀 있다고 생각하며 적습니다.
    백 목사님이 우리에게 남긴 것을 '①노선 ②교훈 ③교리 ④주경 ⑤교인 ⑥생애'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노선
    어느 쪽으로, 어떤 식으로 믿어 가야 하느냐는 것을 '노선'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백영희 신앙노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하겠다. 우리 주변에 달리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재건파 고려파 근본주의파 오순절파처럼 특별한 장점과 역사를 가진 좋은 노선들이 많다. 그러나 이 노선을 꽂을 정도는 아니다.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오른 팔과 왼 팔 정도의 차이라면 조금 불편해도 맞춰 보겠다. 그러나 눈과 발의 차이라면 밀어 넣을 정도는 아닐 듯하다.

    2. 교훈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노선을 교인 전체가 가야 할 방향 제시라 한다면 교훈은 그 속에 담겨 있는 흐름이라고 하고 싶다. 정형외과와 내과는 구별할 만한 것처럼.

    3. 교리
    시대와 장소와 사람과 교회와 어떤 환경에도 불구하고 바뀔 수 없는 최소한의 요약이 있다면 교리가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노선의 외형 속에 교훈이 내면을 채우고 내면을 최대한 간추린 것을 교리라 하고 싶다.

    4. 주경
    그 어떤 것도 성경에 직접 연결 시키지 못하면 한 사람의 꿈일 뿐이며 자기 공산일 것이다. 66권의 성경 한 글자씩 그 전부를 성경만으로 해석하며 그 성구의 그 표현에 담은 뜻을 살피는 것을 주경이라 하고 싶다. 주경은 성경 표현을 그 성구 중심으로 살피는 것이고 성경 전체로 넓히면 성경신학이 되고 성경 표현에 매이지 않고 읽는 우리 입장에서 요약하면 교리라 하는 조직신학이 된다.

    5. 교인
    백영희는 노선을 보여 줬고 교훈으로 채웠으며 역사적 정통 교리의 빈 곳과 부딪히는 곳을 확실히 해결했다. 그리고 그의 성경 해석은 차원이 다르고 세계가 다르다. 성경을 성경답지 않게 흩어 놓은 것이 거의 모든 역사적 정통 교회의 주경이었다면 백영희는 성경을 성경으로 설명했다. 이런 면을 보고 심지어 교회를 다니던 이들까지 모여 들었으니 이들이 공회 교인들이다. 출애굽 때 잡족도 섞여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12지파 이스라엘 민족이었듯이 공회 교인은 백영희의 이런 면 때문에 왔거나 이런 면을 가졌다. 민족적으로 특성이 있고 구별 되는 면이 있듯이 교회도 그러하다.

    6. 생애
    백영희는 남에게 전하고 본인은 다른 생을 형성하는 일반 지도자와 달리 그의 생애에 그의 노선, 교훈, 교리, 주해를 담았고 교인들에게 채우고자 했던 것을 본인이 먼저 담기도 했고 만들고 있었다.


    (백영희의 4대 기관)
    위에서 살펴 본 것과 기준을 조금 달리 잡아 본다. '기관적'으로 그가 세우고 간 것은 4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총공회, 서부교회, 기도원, 양성원, 연구소가 되겠다. 서부교회라는 말은 전국 교회가 다 그렇지만 서부교회가 가장 대표적이기 때문이다. 기도원이란 대구와 거창의 집회를 말한다. 지방 별 교역자 기도처는 공회와 교회가 서로 겹치고, 양성원은 공회 내에 있으나 특별한 면을 고려해서 분리해 봤다.

    ① 총공회
    현재 5곳으로 나뉘어 있다. 서울공회는 총공회 재산만 관심이 있고 내면 외형 역사까지 모두 벗었다. 둘 정도로 나뉘는 것은 역사적으로 피하기 어렵다. 좁은 길과 넓은 길,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다, 가인과 아벨의 성경과 함께 천주교와 기독교까지 따지다 보면 이런 둘을 하나로 만드려 한다면 바른 것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둘 이상으로 분리 될 때는 혼란스럽다. 제3의 길은 없기 때문이다. 제3, 제4, 제5의 공회가 출현할 때는 제 길을 찾기 전에 일시 전란의 혼란이다. 현재 이 연구소를 운영하는 부공3 외의 공회들은 조금씩은 다르나 크게 보면 한 길이다. 어느 쪽이 맞고 좋은지는 따로 살피고 싶다. 길은 둘이다. 총공회가 분열된 것은 남북 이스라엘처럼 그럴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하나가 되려면 북조 이스라엘이 없어 져 버리든지 아니면 둘째 아들처럼 돌아 와야 한다. 대화해서 하나로 만들기는 어렵다. '애초의 양성원, 이대로가 합리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이제 비로소 서론적으로 적어 보는 중이다.

    ② 서부교회
    백 목사님은 전국의 교회들을 당대 모든 교회들고 비교할 때 더욱 교회답게 만들었다. 그 중에 서부교회는 가장 대표적이었다. 서부교회의 보이는 분열은 4층이 소멸 되어 눈에 띄이지 않게 되어 이제 하나처럼 보인다. 그러나 백영희 사후 이재순 재임 1년을 거치며 남정교회가 대구공회 노선으로 분리 되었다. 총공회의 분열을 피하지 못하듯 서부교회도 그렇다. 서부교회는 '서부교회, 남정교회, 서진교회, 성남교회'로 나뉘었고 남정은 '남정, 성광, 서정'으로 나뉘었으며 성남은 '성남, 모덕'으로 발전적 분리를 한 다음에 성남이 오늘 동천교회로 유지 되고 있다. 그러면 '서부, 남정, 성광, 서진, 모덕, 동천, 서정'으로 최소 7개의 분리를 볼 수 있다. 이 중에 서진 모덕 동천 3개는 부공3의 노선에서 장소만 달리 했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 돌아 보면 서부 남정 성광 서정 4곳은 왜 다른지 모르겠다. 외관적 7개지만 실제로는 2개 교회이다.

    ③ 기도원
    기도원은 1년 2회 대구에서 봄 집회를 하고 거창에서 8월 집회를 개최한다. 공회의 내부 기관이나 의미가 특별하여 별도로 적고 있다. 성격상 각 공회와 함께 운영이 된다. 다만 시설은 대구공회가 운영하다 부산공회1이 운영했고, 2019년부터 대구는 부산공회3이 운영하며 거창도 포함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집회 장소의 출입 때문에 부공1, 부공2, 부공3, 대구공회가 각각 다른 장소에서 따로 운영을 하지만 크게 보면 이 역시 둘로 모아 질 것으로 본다. 현재 뚜렷이 그렇게 되어 있다.

    ④ 양성원
    이제 '(평)신도' 성함으로 적은 발언에 대하여 의견을 드릴 순서가 된 듯하다. 양성원도 총공회 내부 기관이다. 운영과 시설이 특별하여 항목을 따로 적어 봤다. 양성원의 건물은 목사님 사후 줄곧 부산공회1이 독점하고 있다. 1995년경으로 기억 되는 시점에 서영호 목사님을 제명하는 과정에 시설을 폐쇄했고 지금은 최소 만 20년 이상 건물이 묵혀 있어 사용을 다시 하려면 내부 단장에만 몇 억이 들 정도라 한다.

    '애초의 양성원'을 거론하셨다.
    양성원 건물은 공회들의 숫자만큼 나누어 사용하는 것이 '합리'다. 어느 날 양성원도 둘로 합해 질 가능성은 있다. 부공3 외에는 양성원의 과목과 교수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부산공회2 서영호 목사는 비공개로 대구공회에서 오랜 세월 강의를 했다. 그런데도 합하지 못한다면 이유는 '교수직'이라는 이해관계 외에 더 있을까? 부공3은 1명이 가도 백영희 원 노선을 지킬 공회다. 다른 공회들은 이미 공회의 노선을 변경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렇다면 부공3과 다른 공회들이 합의할 수 있는 분야는 양성원 건물의 공간 사용뿐일 듯 하다.

    ④연구소
    현재 부산 연구소와 신풍 연구소 2곳만 남았다. 그 동안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성경연구소'가 제3의 연구소로 시도 되었으나 저절로 없어 졌다. 다른 곳은 기관이라기 보다 개인의 활동 공간으로 보인다. 부산 연구소는 저작권을 확보하기 위해 수백 건의 고소까지 동원했다. 신풍 연구소는 막히는 담에 이마가 닿을 때까지는 원래 가던 길을 가고 있다.


    (애초의 양성원과 합리,合理)
    앞 서 발언하신 분의 연구 제목이 너무 감명 깊다. 합리! 세상의 불신자가 말하는 합리가 아니라 진리의 세계에 변치 않는 이치에 맞는 면을 강조했다고 읽었다. 또한 자연과 사회의 세상 이치도 내면을 들여다 보면 진리를 찾고 참고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자연계시로 주셨다. 그렇다면 제목을 적은 분의 '합리'란 성경과 공회는 물론 양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불신자의 시선까지 생각하며 어떤 것이 '애초의 양성원'이며 '현재 양성원'은 어떤 상태이며 '앞으로의 양성원에 대한 기대'까지 포함했다고 읽고 싶다.

    양성원의 '건물적 입장'으로 말하면 지금 서부교회 골목 맞은 편에 지어 놓은 5층 건물은 백영희 신앙 노선이 추구한 원래 양성원의 '위치'에는 맞고 그 외에는 전부 빗 나갔다. 대구공회와 분리 과정 또 백 목사님 사후에 공회 주도권을 위해 부공1의 지도자 2명이 뜻을 합하고 주변에서 건물로 인해 혜택 볼 몇몇 분들이 찬성한 후 과거 공회 기록을 들추어 마치 여호와증인이 성경 안에서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교리를 만들 듯 그렇게 해서 구현 된 것이다.

    양성원의 '운영적 입장'으로 말하면 현재 각 공회들의 양성원 강의 내용은 일반 교단화로 절반 나갔다고 보인다. 공회 양성원은 양면을 본질로 한다. 일반 신학은 구경만 간단히 하고, 성경만 공회 입장으로 연구한다'였다. 그러나 일반 신학은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저하게 일반 신학을 일반 신학답게 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성경 과목'조차 함께 그렇게 따라 가게 된다. 현재 양성원의 강의는 '부공2' '대구공회' '부공3'으로 분리 운영 되고 있다. 건물은 폐쇄 되어 있다.

    부공1과 부공2와 대구공회는 비록 공식적 절차는 밟은 적이 한 번도 없지만세월을 통해 벌써 서로의 의견은 주고 받았다. 양성원 운영의 일원화다. 교수 교류를 먼저 하고 이후 운영을 함께 하고 건물의 사용은 별도로 진행을 한다는 것이 대체로 각 공회의 지도부 내의 생각이다. 물론 지도부가 누군지 특정할 수는 없고 다른 생각을 가진 회원을 쉽게 끌어 갈 수는 없다. 분열 초기에는 광란에 휩싸여 허위 정보와 그럴 듯한 공약에 공회들이 휩싸였으나 세월 속에 이제 그렇지는 않다. 양성원이 1개이면 교수가 몇 명뿐일 것인데 양성원이 많아 져서 교수가 되기 어려운 분들이 교수가 되거나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양성원의 단일화는 생각처럼 쉽지 않을 듯하다. 공회나 집회는 단일화가 어려워도 양성원의 단일화는 참으로 쉬워야 하는데 겉으로는 여러 명분이 나오나 속에는 이미 교수가 될 준비를 끝 마친 이들의 입장이 그렇게 만만치 않을 듯하다. 여기에 교수가 될 리가 없는 이들은 신앙의 선명성을 선 보이며 양성원 통합을 반대하고 있다. 여기까지 오다 보면 이미 세상이 된 지 오래다.

    애초의 양성원, 어떤 면을 두고 '애초의 양성원'이라고 하셨는지 발제하신 분께 여쭙고 싶다.
    애초의 양성원에 대한 기준과 표현이 비록 다르다 해도 이제 설명한 내용은 '양성원'을 두고는 파악해야 하는 사실들이나 고려 요소로 생각하고 적었다.

  • 2020-11-11 18:30
    어느 일에, '한편'은 한사람, ' 다른 편'에선 여럿과 동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을 떼어 놓았습니다.
    다른 편에서 서로 이견이 있는 나머지, 함께 시작했던 동업을 계속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 생산 끊어진 것을 바라보는 '한편의 심정'이 어떨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애초 양성원이) 복음위한 목적일진대, 이 현상의 이유가, 잘 믿어 보려는 성경말씀으로 걸러진 양방의 근거가 나름 뚜렷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후대에 가서도 이대로 (각기 기준대로) 지속해야만 하는지. 가령 맞는다면, 주님의 백성들이 이 면에 확실한 분별과 가난한 자의 지혜와 바른 신앙관을 지니고 살도록 적극 계도해(일깨워) 주실 계제라는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진대는, 밝히 알아야 (성화)구원에 유익되지 않겠는지 하는 점이며, 믿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대단히 외람되고 자신 부끄럽습니다만,

    지금은, 강력한 '화합과 회복의 길에 초점' 맞출 때란 생각이듭니다. 인위적 방법은 온전한 이룸 아닌 것이며 이론에만 매여선 안 됨이라는 생각이듭니다.

    하나님의 통치아래 완성될 것을 믿고서, 주님면전에 나아가도록 적극 이끌어 주실 계제라는 생각이듭니다. 주님의 목적에 일치하고 성령의 역사하심의 인정과 관용과 도와주심바라며, 성령께서 열어주심에 적극 반응하여 효과 있게 이루기를 소원하는 기도와 간구가 급히 요청됨이라는 생각이듭니다.

    논쟁을 훌훌 털어버리고 모든 것 주님께 맡기고서 다만, 기쁨 되게 서로사랑함이 풍성하며 밝은 미래의 지향이 합당함이란 생각이듭니다.

    (배운 대로) 차이 있는 게 거룩이며, 회복이 지체될수록 그만큼 손해며 혁신변화개혁위한 계제를 급히 밟아야함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위복의 기회를 진보로, 이룸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야함이라 생각이듭니다.
    (아시다시피) 응답이어야 복인 것이며, 그 발전적 지향에 全공동체집중의 필요성을 개인적으로 절실히 느낍니다.


    두 면의 내용을 주셨습니다.

    ‘회원’님이, ‘교수자리라는 이해관계가 가장 큰 장벽일 듯합니다.’ 하심에 있어서,

    성경과 지식을 (총 공회의 교리신조에 부합되게) 더 잘 가르칠 수 있다하는 선한욕심 외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각 공회입지를 대의와 본질에 맞추면 충분히 지혜를 도출해낼 수 있음이라 여겨짐입니다. 최고최선을 표방하(려)는 총 공회의 격에도 걸맞음이라 생각됩니다.

    (아마 목회자이신 듯) ‘부공3’님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신 느낌을 받습니다. 내용 중, ‘합리’란 성경과 공회는 물론 양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불신자의 시선까지 생각하며 어떤 것이 '애초의 양성원'이며 '현재 양성원'은 어떤 상태이며 '앞으로의 양성원에 대한 기대'까지 포함했다고 읽고 싶다.‘ 하셨는데, 잘 짚어주셨습니다.

    복음위한 대의의 관점에서 난제를 풀어가야 함이라 생각이듭니다. 목회자양성총본산의 역할을 명실 공히 이루기 위해, 애초를 깊이 회상하며, 이를 견주어 현실을 냉철히 목도하며, 소소한 부분은 대의에 흡수시켜 주님께서 역사를 벌이시려는 기대에 큰 설렘으로 전진해야함이 온 지체의 공감됨이라 여기고 싶습니다.


    (대단히 외람되며 엉뚱함인지 모르나) 차제에 한낱 개인적인 짧은 생각임을 전제로 덧붙이면,

    각 공회합동으로, 목회자양성본연의 저변확대와 더불어 온 교회에 기여되는 중추적 역할과 그 확충(확대)의 필요성이 제기됨입니다.

    _교단이 커졌음으로 이에 걸 맞는 ‘명칭변경’도 고려해봄직 하며, (단순생각으로) 당장 학과신설은 여의치 않더라도, 해외나 타 신학교와 연계한 인터넷청강이나 단기적 과목이수 등, 지경을 넓히는 다양한 방안의 강구도 유익됨이란 생각이며,
    _해외선교를 절감하여, (필요하다면 초 교파적으로) 널리 모집 엄선하여 양성의 필요를 느끼며, 실무적인 것은 이미 해외에서 활동하는 곳과 연계하면 되는 것입니다.

    _부설로서, 지금도 있는지 모르나 타교단의 평신도신학원 같은 '(가칭)평생(일반)신학원'을 두어,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우고자하는 신도들과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하고자하는 자에게 기회를 제공하며, 일정한 심사로 전담전도사(인)자격을 부여하고, 각 교회의 전도 사역자와 심방자, 사회기관단체대상의 전도자로 헌신케 하며, 교회중직 피 택시 일정한 혜택을 줌입니다.

    실 수업은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지역별로 지정된 교회들과 때론 각 공회양성원, 인터넷을 십분 활용하며, 필요시 목회자양성원과목을 청강하게 함. (서부교회의 ‘성경아카데미’ 등) 기존의 성경공부를 일원화하여 발전시키면 가능하지 않겠는지 생각이며,


    또한, 날로 다변화하는 세상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증진에 요긴한, [양육교재를 통합편찬]하여 각 교회가 그 자원을 기반으로 체계적인 양육의 필요성을 가집니다.

    _'(가칭)교육국'을 두어,
    요리문답, 기독교교리 포함한 기본적이고 다양한 부문별 초중고대학생교재, 년 공과 및 계절별 성경학교 교재발간, 또한 (예로, 서부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성경아카데미’과정을 발전시킨) 성경통신(대학)과정, 교사자질향상위한 교사통신(대학)과정의 교재발간과 운영은 각 교회단위로 하되 일정심사를 거쳐 ‘총공회명의의 수료증’을 줌.

    찬송가와 복음송의 보완, 공회 간 (집회)강사의 교류, 년2회 全공회집회형식의 연구와 준비 등을 감당하며.

    _'(가칭)선교국'을 두어, 국내외 선교업무를 강화 통괄 지원하며,

    _[백영희목회연구소]를 일원화하고 서적관과 기념관을 두며 일괄관리운영과 공동연구 함입니다.

    명실공히 산실로서 언제든 와서 기도하고 연구하며 명실상부한 역할을 감당하기위해선 규모가 확대될 수밖에 없으며 이 따른 증축(또는 신축)의 필요성이 제기됨이란 생각이듭니다.

    • 2020-11-11 21:59
      대단히 좋은 의견입니다만, 말씀하신 바로 그 일을 하다가 어제 전과 6범이 되었습니다. 사이트 대문의 이 소식을 보고도 이 글을 올리셨다면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아직 공회를 모르시는 어린 신앙이거나
      다 알면서 이곳을 조롱하는 것.

      제발 부탁드립니다. 어린 신앙이시라면 먼저 배우셨으면 하고, 일부러 이러시는 것이라면 정말 이러시면 안되는 것입니다. 착각하신 것이라면 다시 한번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무제한으로 이 복음을 전해왔으며 끝까지 전하려다가 당하고 있습니다. 공회는 하나요 분리될 일은 거의 없었으니 잘못된 점은 회개하여 하나가 되자고 아무로 외쳐도 저들 스스로 담을 쌓고 십자가에 매달고 있으니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설득해야 하는 것인가요?

      저들 스스로 모든 것을 다 막아버렸습니다. 막은 것은 막힌 것은 저희가 아닙니다. 잘못 글을 올리셨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양성원등 모든 총공회 재산도 전부 부공 1, 2에 있습니다. 이곳에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제발 부공 1, 2로 가셔서 그들을 돌려 세워주십시오.

      (위 입장은 제 개인의 입장임을 밝힙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모습을 볼 적마다 가슴이 쓰리고 아파서 이런 글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 2020-11-12 12:14
      '(평)신도'의 글에 공감합니다. '부공3회원'의 댓글도 이해를 합니다.

      '(평)신도'의 글은 일반적으로 공회를 아끼며 공회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분들의 마음을 거의 대변했다고 봅니다.
      '부공3 회원'의 글은 일반 공회 교인들이 잘 모르는 공회의 내막을 좀 아시기 때문에 좀 격하게 적었다고 봅니다.

      2가지 글을 종합해 봅니다.
      * 총공회를 위해 '(평)신도'의 글은 무조건 반영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한꺼번에 당장 해결은 어렵지만 각 공회가 함께 할 수 있는 부분들이라도 우선 하나씩 모아 가면 좋겠습니다. 부산에 비어 있는 양성원 건물은 5층에 7백평입니다. 모두가 동시에 각자 사용해도 공간은 충분합니다. 개강식 예배만 함께 해도 되고, 이미 대구공회와 부산공회2처럼 10년 이상 교회사 과목은 서영호 목사님이 동시에 맡고 있는데 이런 과목을 2개 공회가 함께 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동시에 '부공3회원'의 의견을 반영한다면, 각 공회에 이런 우려를 '(평)신도'께서 제안하거나 파악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도저히 상종 못할 단체들인가? 아니면 대화가 가능하고 또 극히 일부라도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을 그렇게 할 수 있는지.

      현재까지만 두고 말씀을 드린다면
      이 연구소가 운영하는 부공3과 부공3 양성원을 제외한 각 공회들은 타 공회와 타 공회 양성원을 아예 인정조차 하지 않습니다. 부공2는 그들 외에 양성원의 존재와 주소와 연락조차 전부 상종 못할 대상으로 못을 박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영호 목사님이 대구공회 양성원에 교회사 과목을 오랜 세월 가르쳐 왔으나 이 연구소에서 공개하기 전까지 부공2에 비밀이었습니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가니까 부공2가 막지 못할 뿐입니다. 이런 왕래를 이 곳에서 공개한 것조차 아주 나쁜 일이라면 이 곳의 방문과 이용조차 금지 시키고 있습니다. 대구공회는 부공2 교수를 모셨다는 점에서 자세가 아주 전향적인 듯 보입니다. 문제는 과거 대구공회가 전체 총공회를 주도할 때는 부공2보다 더 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유리하면 항복하고 들어 오라는 자세가 되고, 불리하면 대화를 하자는 식으로 오랜 세월 밀고 당기며 왔습니다.

      '(평)신도'께서는 이 정도의 안내를 바탕으로 현재 각 공회의 입장을 현실적으로 파악하시고, 그리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현실 파악에 나설 입장이 안 된다면 '부공3 회원'의 거친 표현을 잘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각 공회들은 공식 홈에 다른 공회와 교회의 존재조차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교회'인데, 그래도 '공회'를 함께 했고 앞으로 하나가 될 소망이라도 있다면 집 나간 둘째를 향해 문을 열고 쳐다라도 봐야 하는데 큰 아들은 둘째가 돌아 올까 걱정을 했습니다.

      • 2020-11-14 18:37
        ‘부공3'님이 올리신 내용을 잘 읽었습니다.

        (제가 처음 올린 내용에서도 그러하듯) 어느 한 공회를 지칭하여 올린 게 아닙니다. 다만, 비교적으로 활성화 높다 여겨져 양해를 바라며 이 홈을 빌려, [총공회 앞]으로 올렸던 것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심이라 여겨졌습니다. 처음 글의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직간접 읽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람으로, 대단히 외람됨을 무릅쓰고 한낱 짧은 생각을 올렸던 것입니다.

        ‘현실 파악에 나설 입장이 안 된다면 '부공3 회원'의 거친 표현을 잘 이해...’하신 부분에 있어서, 처음엔 솔직히 적이 당황스러웠으며, ‘천국소망’님의 글 앞부분(전반부분)도 전혀 이해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공회공동체와 지체들을 사랑하는 나름의 표현이신 줄로 이해하겠습니다.

        ‘부공3 회원’님의 글을 몇 번 읽었습니다. 어떤 문제에 큰 아픔을 겪고 있으심이라 느껴지며 잠깐이나마 짧은 기도라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나, 주님의 은혜로 잘 풀어지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제도 실행이 어렵긴 하지만 (누가 옳고 그르다함이 아니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말씀했는데, 예수님이시라면, 주님의 양떼를 먹이고 친, 과거 백목사님이면 어찌 했을 지 잠깐 생각에 잠겼습니다.

        ( ‘부공3’님께 양해를 구하며, 이 란을 빌어 ‘홈 관리자님’께 요청합니다. 두 분(부공3회원님, 천국소망님)의 내용을 나름의 의사표현이라 이해하고 싶으나, 생산적인 본질에 초점을 맞추고자한 제 취지에 비추어서는 비켜남입니다. 주제에 본질을 벗어난 내용은 취지의 초점이 흐리게 되며, 이 내용들이 긍정으로 승화시키기가 그리 쉽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또한, 저와 사실적으로 전혀 이해되지 않음이 대부분이며, 애초의 글 서두에도 짧으나 부탁드린바 있습니다.

        따라서, 두 분 글의 삭제를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부공3’님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셨는데,

        더구나, 목회자 양성원 문제를 일반교인 입장에서 언급하기가 매우 어려운 부분인 것입니다. 또한, 그럴 직분이거나 위치에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총 공회 울타리에 있는) 한낱 교인의 생각을, 이 홈을 빌어 ‘총 공회 앞’으로 나름 표현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관심이 있는 모든 분들은 각 나름의 생각이 있을 것이며, 가령, 총 공회적대안제시의 어떤 공지가 있을 경우, 이에 의견과 그 집약이 나올법한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애초 양성원이 주님의 소유이심이 전 공회의 인정’이 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맞는지 잘 모르나 사람관계로 비유해서) 주님께서 애초 양성원에 주님의 양떼들과 동업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님을 떼어놓았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사역자양성위해 순전한 우물 격으로 예비 되고 또한 주님 안에서 후대로 물려줄 자랑으로 견고히 세워졌음일 진대는, 또한, 하나님영광위한 발견과 땀으로 쌓은 선의 표출로서 총 공회적으로 주님의 뜻 마음에 품고 지어 드린 게 모두의 엄연한 인정이시면,

        개인과 공동체의 구원에 어떤 절단(?)이 나(겠)기에 저렇게 황폐함 같음이 여전함일까하는 점입니다.

        부모가 서로 다투면 아이들의 마음이 결코 편할리 없습니다. 이 현상이 자꾸 쌓이게 되면 자칫, 가족단위는 물론, 이들의 성장에 크고 작은 장애와 혼란이 야기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온 공동체가 이의 이룸에 있어, 하나님의 의지에 실로 어떻게, 얼마나 매여짐인가에 따라 다양한 양상과 효과의 정도가 드러남이라 생각됩니다.

        위 언급하심에 있어서, (어느 한편에서의 말이 아니기에 모두가 오해 없으시기를 바라는 전제로서, 대단히 외람되고 너절하며 한낱 짧은 생각이지만 차제에 덧붙이면),

        ‘회원’님이, ‘교수자리라는 이해관계가 가장 큰 장벽일 듯합니다.’ 하심에 있어서,
        이 부분이 실제적 문제라면, 쉬운 방법으로서, 전 공회공동체의 일정규정 하에 ‘제비뽑기’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온 교회에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을 물어보면 아마도 많은 건설적인 의견들이 있을법합니다.
        이 문제의 발단이 (소위 일반)신도들에게서 비롯됨이면, 일단 그 책임이 신도들에게 있음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근본해결이 (일반)교인들에게 있다기보다 온 공회공동체의 목회자와 이 문제 관여된 은사위치에 계신 분들에게 (더 비중적으로)있음일 진대는,

        그 선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셔야할 심각한 과제라는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로선 도무지 해결에 별진전이 없다면, 성령의 능력으로 풀고자, 온 공회목회자님이 먼저 베옷을 입는 심정으로 주님 앞에 엎드리심이 급선무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적에, 신도들이 마냥 가만히 앉아 보고만 있겠습니까. 더불어 그 기도에 동참할 수밖에 없음이라 생각됩니다.

        아니면, 전 공회 공히, 교회공동체에 ’회개와 기도와 간구의 기간을 선포’ 함입니다.

        이마저 아닐 진대는, 어린신앙의 소치로서 어느 성경말씀을 적용으로 풀려져야함인지 나름 생각이 복잡해짐입니다.

        또한, 이렇게 줄곧 지체될 바에야, 차라리, 그 실제적인 열쇠방안을 총 공회의 교회신도들에게 그 의사를 물어봄이 어떠할 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전 공회공통(통합)’으로서, 양성원 건물공간의 사용 포함하여, 단일이 안 되면 몇 가지를 성안하여 그 합의된 대안을 총 공회의 특색인 ‘권찰 회’에 (또는 공동회 포함) 설명하고 신도들의 의사를(의향을)물어 적극 반영함은 어떠합니까.

        나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다 있지를 않겠습니까. 또한, 애초 양성원 건물이 몇몇 분의 연보 가 아닌, 온 교회신도들의 크고 작은 헌신과 연보로 모여져 세워진 것이기에 (성경에 분명히 배치되지 않으면) 이를 물을 수도 있음이라 생각이 됩니다.

        아니면, 아주 초보적 단계로서, 온 공회가 원만히 타결될 때까지, ‘애초 양성원에서 전체모임을 가져도 좋은지’를, 전 공회교회의 권찰 회에 (또는 공동회 아울러서) 그 의사를 물어보고 다수의사를 적극 반영함이 어떠합니까.

        ‘최소 만20년 이상’이라 그러셨는데, 여전히 이 현상인 만큼, 궁여지책으로 이렇게라도 해보는 게, 해결에 우선 조그만 물꼬라도 트는 한 방편이란 한편의 생각을 미련스럽게 해봄입니다.

        너절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안에서 크신 은혜와 평강하심을 기원합니다.

  • 2020-11-13 04:19
    평신도님 속셈을 알고 싶습니다. 예전에도 신풍교회 목사님께서 전과자가 됐다고 소식을 올리고 난 후 이와 비슷한 내용을 올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말 이게 소원이라면 부공3님 말씀대로 모든 자료, 통계, 방법등을 총공회 모든 교회에 하나되어 운영하자고 대안을 제시하시면 더 좋을 듯합니다.

  • 2020-11-18 17:52
    며칠 전, 아래 내용들의 말을 들으며, 마음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가 그리 쉽지 않음을 공감했었습니다. (잘 옮겼는지...대략 나름 정리해보면,)

    < 글을 쓰거나 말을 내 놓을 때는 마구 내 놓을 것이 아니다. 이 말이나 글이 어떤 반응을 보이며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특별한 어떤 일에 있어서 말을 하게 될 때에는 한 번 더 숙고하게 된다.
    우선 지켜야 될 일정한 틀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특정한 이유가 사실이라 해도 이를 보는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한다.
    강요하듯 밀어 붙이게 되면 마음이 상하게 되고 상대가 당혹스럽기도 하고 일련의 지향점이라 해도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사실적이 아닌 것을 가지고 옳은 양으로 빗대는 듯 한 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그 글을 보고 사람마다 다양한 시각이 있겠지만, 너무한다는 표현이라 느껴지기 때문이다.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고 사실과 다른 것을 설정해놓고 사실이 아니면 그만이다하는 식의 고집스러운 듯 한 표현은, 그 글을 보는 이에게 마치 강요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생략)..여하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며 나무라는 듯 한 어감을 주는 것은, 다른 한편에서는 불편한 것이며 좋은 감정이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고 옹고집적인 주장을 펴게 되면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 부분만 빼내가지고 반복하게 되면 비꼬는 듯 한 말이 나오기 쉽다. 좀 더 객관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된다.

    어떤 내용의 말이나 글은 자기 권한에 있는 것이며, 상대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할 의무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저런 면을 찬찬히 살피지 않으면, 자칫, 다른 국면으로 전개되고 모두에 해가 될 수 있다. 어떤 의견이나 주장을 펼치기 이전에, 내용의 본의(의도)를 살피고 판단하고 전망해야함이다.>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라’는 성경말씀에 비추어볼 적에, 제 자신 실수가 많고 매우 미숙함을 실감합니다.


    읽혀질지 모르나, 편리로 택했음을 양해 바라며, 이 홈을 빌려, ‘총 공회’ 앞으로 올렸던 것입니다. (이 홈 게재를) 배려해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부공3회원’님과 ‘천국소망’님의 글에 있어서는, 그 심정과 깊은 내용의 의미를 십분(충분히) 알지 못하지만, 공회공동체와 지체를 사랑하는 한 면의 표출(표현)이신 줄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애초 양성원’의 생산적인 목적에 비추어 생각해보고자한 것에 견주어선, 좀 비켜난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큰 틀에서나 단적인 면엔 간접(적)으로 맞는다 해도, (짧은 생각의 글일지나) 제 글의 취지와 본질의 초점이 흐려지며, 다른(엉뚱한) 방향으로 기울어져 혼동이 야기될 수 있음입니다. 이를 보는 분들이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기가 그리 쉽지 않음이라 생각하며, 자칫, 오해로 인해 서로 간이나 이웃에 해가 되고 자타의 구원에 덕이 안 될 우려가 있음입니다.

    더구나, (이른바) 20년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는 난제에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글을 올리기도 힘든데) 더구나 그 초점이 흐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로서, 홈 관리자님께, 위 ‘부공3회원’님의 글과 ‘천국소망’님의 글의 삭제를 요청합니다.

    처음 글 서두에서도 그 취지로 언급했으며, '부공3'님 글의 답 글에서 올린바 있습니다.
    불가하다면, 제 글들을 삭제해도 무방합니다.

    주님 안에서 크신 은혜와 평강하심을 기원합니다.

  • 2020-11-18 18:11
    (글의 관리 원칙)
    연구소의 모든 글은 1998년에 처음 개설할 때부터 한 번 올려 진 글은 단순 오타 외에는 원 글을 손대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글이 이어 진 글은 오타조차 고치지 않을 만큼 관리해 왔습니다. 이 곳의 연구 기능과 함께 공회 분쟁을 대화로 돌려 놓기 위해 꼭 필요한 원칙입니다.

    이 곳은 1998년 순수하게 연구하는 기능과 함께 백 목사님 사후 전국 공회 교인들이 주먹이나 험한 말로 서로 맞붙어 싸우던 상황을 끝내는 방법으로 이 곳에서 글을 적게 했습니다. 이 곳을 운영하면 안 된다는 공회는 예외 없이 현장에서 주먹과 막말을 쏟던 곳이었고 이 곳이 몇 달 운영에 들어 가며 현장의 주먹과 막말을 공개해 버리자 이후 공회 내 육체 투쟁이 거의 사라 졌습니다. 이렇게 된 중심에는 한 번 올린 글은 누구의 글이라도 손을 대지 않게 하면서 모두가 발언을 조심했고, 그러다 보니 사실 윗글처럼 소중한 글이 아니라 화가 나서 일단 쏟는 글은 거의 사라 져 버렸습니다.

    개인의 신상 비판을 실명으로 심각하게 적는 경우 등의 극단적인 글에 실명은 관리자 직권으로 비실명 처리를 했습니다. 아마 1년에 두어 개나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윗 글은 공회에 좋은 발언을 하셨고 이 발언이 옳고 그른 것을 떠나 누구든지 제기해야 할 글이고 또 반론도 이 정도 표현은 남겨 져야 이 표현이 훗날 떳떳할지 죄송할지 드러 나게 되면서 우리 모두를 좋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 2020-11-22 00:20
    평신도님을 읽을때마다 의구심이 가시질 않으니 무슨 뜻일까요? 저의 글을 삭제를 요구하신 것을 보니 더 확실해지네요. 실명으로 쓰시면 제가 쓴 글을 삭제 요청하겠습니다.
    아직 남북통일이 안되었네요. 대통령과 정치인들 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원하고 원하고 노력하지만 안되는 것을 어찌 우리 인간의 힘으로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목적안에서 주권섭리역사 하시는데 총공회도 하나되지 못하고 하나되지 못하니 그에 따른 나머지 일들 또한 안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총공회가 목사님 순교후에 어떻게 되었는지요? 목사님 생전에 목사님께서 많이 말씀하셨지요. 내가 죽으면 총공회는 어떻게 될 것을..
    하나님 앞에 떳떳하면 실명으로 작성하심이 어떠신지요? 한 10년전엔가 누군거가 총공회가 하나되어야한다고 외치고 다니신 분이 있었는데 아마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열심히 기도하고 공회마다 다니면서 화합하자고 선으로 돌아가니시겠죠? 그 속은 알 수 없지만... 그 후 행하시는 일들 또한 실망을 주지 않길 바랄뿐입니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온 물을 흐리지나 않는지... 저 또한 조심히 글을 올려봅니다.
    하나님 앞에 한몸된 우리들 각 지체로써 하나되길 소원합니다. 백목사께서 마지막 우리에게 '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어디까지든지' '감사, 기쁨, 충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라고 애타게 외치셨는데.. 그렇게 살길 소원하며 은혜를 간구합니다.
    이런 일들은 더더욱 실명으로 하셔야 더 밫을 발하고 백마운동이 되지않을까 싶어서 저 또한 평신도님의 실명을 요청합니다.

  • 2020-11-28 16:38
    ‘애초 양성원’의 문제해결에 고심이 많으신 온 목회자님과 이에 관련된 분들께,

    주님 안에서 인사 올립니다.


    (평)신도위치에서 대단히 외람됨을 무릅쓰고 처음 글을 중심으로 거듭 올려봄입니다.

    이 홈에 올리게 된 이유는, 이의 해결위해 전공회적으로 어떠한 협의체가 있음이라 짐작되지만 전혀 모르며, 또한, 안다 해도 한낱 교인위치에서 더구나 믿음생활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이저리 올리기가 퍽 주저됐던 것입니다. 또한, 총 공회목회자이면 누구나 다 아실정도이며 이 홈이 비교적 활성화 된 곳이라 편리로서 이 홈을 택했던 것입니다.
    무례이면 대단히 송구하오며, 모쪼록 널리 혜량하여 주시면 대단히 감사할 따름입니다. 미련 떨며 한낱 짧은 생각일 뿐이며, 혼잣말형식인 것입니다. 답을 바라서거나 토론목적이거나 주장으로 관철하고자함이 전혀 아니며, 처음 글 중심하여 떠올려볼 뿐입니다.

    ..............................................................

    _이 현상과 해결에 있어서도, 주님의 세밀하신 섭리와 계획하심에 품어진 것임을 분명히 믿습니다. 이러한 관점의 생각도 성령님보다 앞서는 것일 진대는 필히 거두어야함입니다. 그 전제로서 다만, 그곳이 (물적 자산이 큰 비중이 아닌) 주님과 복음 위함이 그 목적된 것일진대, 여태껏 (기능적으로)활용되지 못한 현상이(현실이), 온 교회공동체의 어떤 기쁨 됨인지, 어떤 응답의 결과이며 복인 것인지, 그리고, 무엇에 집중하고 시선을 두고 해결에 뿌리를 찾아야함인지를 이해해보고자 한 것입니다.

    _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말씀했습니다.

    새싹이(새살이)돋아남은 주님만이하십니다. 그런데, 기도는(믿는 자의)필수인 것입니다. 히스기야왕의 통곡의 기도가 하나님을 시원케 해드렸고 급기야 복을 받았던 것을 (성경에서)봅니다.

    여태껏 현상이 외부적인데서 온 게 아니라 지체의 각 부분된 형제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럴진대 (이 문제를 두고)양방의 기도제목이 어떠함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잘못 봄이면 송구함을 전제로서) 설령, 제목이 같을지는 모르나 나름, 성경말씀으로 잘 걸러진 양방의 기준에 영향되어진 기도제목이 아니겠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이른바) 20년 이르도록 (해결에 대한) 접점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위 말씀에서 ‘거룩한 손을 들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한, 온 교회공동체가 주님 앞에서 실로 어떠한 기도의 자세와 기도제목이어야 하는지 이해해보고자 한 것입니다,

    _(자신 매우 부끄럽습니다만) 말의 응답이어야 복인 것입니다. 진정한 회복은 내 의로는 일어날 수 없고 ‘주의 이름’만 주셨으며 주님만이 답이심이라 배웠습니다.

    양방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다만, 여태껏 현상의 이유가 한마디로, 그 기준격차가 크기 때문이라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전 이러한 견지로 지속해야함인지, 각기의 기준을 벗어나면 죄가 되며 나아가 자타의 구원에 해가되며 장차심판대에서 책망 받고 부끄럼 당함인지, 또한, 믿음의 후손대대로 이러한 지속이어야 함인지,
    (가령)후대에 가서 당 세대(해당세대)의 기준과 달리 어떤 합의를 도출해낼 경우, 죄가 되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_마음에 감사함으로..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 하였느니라,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말씀했습니다.

    애초의 양성원이, 주님의 은혜로 특별히 예비 된 것일 진대는, (비유로서) 주님의 눈과 마음과 귀가 그곳에 쏠려 있으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즐거워한 왕래 없고 경영이(생산이)끊어져 견고함 잃었으며 본래의 감사가 사라지고 어둡고 싸늘하며 적막하고 황무함 같은 현상이, 어떠한 긍정의 결말인 것이며 응답된 결과이겠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현상도, 선을 이룸에 내공을 만들고 키우는 연단(단련)의 한 과정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 심히 부끄럽지만) 감사가 사라지면 영적으로 병들게 마련입니다. 원망은 마음을 딱딱하게 하며 (원망을)바꾸어 놓으면 감사인 것입니다. 애초양성원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총 공회공동체의 감사인 게 정녕 맞는다면, 그 감사가 채워져 가야함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방치하면 할수록 그 감사가 더 비움 됨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음인데, 20년의 골에 무엇이 채워져 있겠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 틈새로 무엇이 달라붙겠는지.. 마귀에게 틈을 보여서는 안 됨이라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 부끄러우며, 미련 떠는 것인지 모르나) 이 어두운 현상이 애초주심에 대한 감사의 결여가 그 한 원인 아니겠는지 (한편으로)생각하게 됩니다. 그 감사로서 공동경영의 회복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정 아니라면, (소극적이나마)한편에서라도, 그것도 아니면 다른 선한 데에 그 활용이 있어짐이어야 그 주심에 대한 감사의 표출됨 아니겠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해결의 알맹이를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그 뿌리를 찾아야함인지 생각할 적에, 양방의 기준이 성경적으로 매우 확실하다하여도, (다른 한편으로) 애초 양성원 주심에 무조건감사에 초점을 맞춤이, 해결의 한 열쇠 아니겠는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_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말씀했습니다.

    애초 양성원이, 온 공동체의 기도에 선대하시어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일 진대는, 뜻을 합하며 한마음으로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야함이라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은혜로 받아 하나님영광과 복음위해 즐거운 출발이었던 게 온 공동체의 인정이시면, 즐거운 합의로서 무산된 통합(성)의 회복과 건설적 전진으로의 집중이 매우 필요 됨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을 빼놓고(제쳐두고)서의 의미가 아니며, 오직심판은 주님께 맡기고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면 금시해결 됨이라는 생각을 (한편으로)하게 됩니다.

    여태 이 현상지속의 이유가, 양방이 정한 기준을 벗어나면 개인을 물론, 온 공동체의 구원에 절단(?)날만큼의 심각한 해가 되기 때문인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풍부한 화평의 회복과 하나님영광위한 진보를 위해, (양방이)합리적 양보로서 해결할 경우, 성경말씀에 비추어 어떤 면으로 배치(위반)됨인지, 또한, 양방의 기준이 총 공회 교리신조행정에 근거함이 있다면 무엇인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_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케 하느니라, *무릇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니..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 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마음에 쌓인 선과 (말씀으로)잘 걸러진 최선의 평가(처방), 즉, 성경말씀에 근거된 (양방의)기준이 어떠한지는 모릅니다.

    긴 세월 여전히 접점이 없는 바에야, (심령을 감찰하시는 여호와께 다 맡기시며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신뢰하며) 제비뽑기로 해결할 경우,
    성경말씀에 위반(위배)되는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날개가 없으면(접점 없으면)주님께서 (날개를)달아 주시면 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_*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음이며 시비를 그치라, 완전히 행하는 자가 의인이며 그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주님의 일에 네 편 내편이 어디 있겠는지.. 오직예수님편입니다. 여태껏 양방이 문을 높이고 있는 사이, 풍부한 화평이 무너지고 이 현상이 후손에게 복이 되겠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시며 악령은 분리되게 합니다. (견해가 양립되어) 이 적막 같고 어두운 현상이, 성령님의 기뻐하심인지를 영적분별로 점검해보아야 함이라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게 아닐 진대는, 심령의 부흥으로 흑암의 권세를 파하고 온 공동체가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적극 이끌어 주실 (전공동체의) 절실한 계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며 지체의 각 부분된 형제이기에 서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긴 세월, 비교우위의 지속으로 굳어지게 되면 주님의 몸 된 한공동체이면서도 (본의 아니게) 이원화 될 수 있음입니다. 이런 대립의 양상은, 자칫, 배타적인 무덤에 빠질 수도 있음에 대해 (그 유무에 따른)이해를 해보자 한 것입니다.

    _*..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제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 하였음이니라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또 다툼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어리석은 변론과..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 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 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생략)..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 무엇 즐기시려 이 현상을 허락하셨을 리 만무합니다. 그런데, (가령)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것과 동질(또는 같은 성격)인 것일 진대는, 온 교회와 공회공동체의 심각한 근심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비록 논쟁할 수는 있으나) 주님허락 없이하는 표시일 경우, 주님 판단(칭찬)하심에 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진대는, 총 공회울타리에 있는 주님의 양떼들이 (크고 작은) 해를 입게 되고 급기야 온 교회공동체의 영적정체성에 커다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결말에 이를 수도 있는바, (그 유무에 따른)이해를 해보고자한 것입니다.

    또한,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다,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말씀했습니다.

    이 현상의 지속이 전공회공동체와 (소속되어진)개 교회에 참 평안이겠는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_애초 양성원이, 온 공동체의 기도에 선대하시어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일 진대는, 양방의 쟁점을 훌쩍 넘어, 하나님영광위한 애초의 엄정적인 생산적사역의 대의와 목적과 규범도 결코 간과할 수 없음이란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이 현상을 깊이 헤아려 볼 적에 성령의 기뻐하심에 연유된 것이면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이면 (본의 아니게)무엇에 요동되어진 것이 됩니다. 이 면에 생각을 하게 됩니다.

    _하나님을 여호와인줄을 전파코자 모두에 쌓인 선과 거룩한 헌신이 어우러져 주님의 것으로 즐거움으로 구별하여드렸던 게 맞음이면, 결과적으로는 애초의 동기와 목적이 존중되지 않음이란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쓰지 않으면 잃어버림과 같다했습니다. 받은 부요를 마냥 묵혀둠은 복음의 빛 강화를 약화시킴이며, 그 목적된 가치에 소용없는 셈이란(?)엉뚱한 오해의 소지가 야기될 수 있음입니다.

    (자신 부끄럽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가치관에 매여 살아야한다 배웠습니다. 하나님영광을 절실히 드러내고자 공통된 가치로 출발했음에 비추어 볼 적엔, 이 정체(停滯)의 지속은, 생명을 더 풍성히 얻기 위한 근실한 지속에 반하며 그 가치(관)에 변화인 것이라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영광위해, 오늘날에 아름답게 체질화될 결정적인 타당성과 선한수단 되는 값어치가 무엇인지 이해해보고자 한 것입니다.

    _물론, 하나님과의 (수직적인)관계가 절대이며 우위우선입니다. 그런데, (제 자신 부끄럽고 한낱 피상적인 견해에 불과한지 모르지만) 오늘날 공회공동체의 현실(현상)을 냉철히 보아야함이라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수평적으로 주님의 몸 된 공동체가 서로 멀어져 해(害)로 미쳐지게 되면 주님의 성품에 힘써 참예함에 미흡한 결말로서 근심 될 수 있기에 이 면을 결코 간과할 수 없음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며 지체의 각 부분된 형제간의 포용성과 절제(력)의 조정에 있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면을 이해해보고자 한 것입니다.

    _(배운 대로) ‘주의 신’으로 됨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자랑하고자 즐겁게 출발했던 것일진대, 온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그 공동의 걸음을)분명코 기억하시지 않겠습니까. 그 필요를 절실히 한 기초로 즐거운 공통분모를 세우고자 주님의 소유된 그곳에서 지혜를 모으시는 모습을 보게 되면, 온 교회공동체와 후대들이 우선 안도함 있지 않겠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총 공회의 긍지에 따른 저력을 믿고 싶습니다.



    외람됨을 거듭 혜량 바라오며, 너절하고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표현이 서툴러 길어졌으며, 말씀적용미흡은 성경지식이 짧아서이며, 잘못된 점 있으면 지적해 주셔도 무방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
    <홈 관리자님께,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이 글과 함께 제 글 전부를, ‘20.12.15’까지만 게재된 후, 모두삭제해주시기를 정중히 요청합니다. 이미 해결됐으면 물론 그 안에 해결된 경우에도 즉시삭제를 바랍니다.

    정 불가하다면, 우선, 이 글을 즉시삭제 바랍니다.

    그 이유는, 처음서두에서도 언급했듯, (홈에)양해를 구하며 단지, 이 홈을 경유하여서, 총 공회 앞으로 한낱 짧은 소견을 밝히는 것일 뿐입니다.

    (이 홈에서) 답을 바라서거나 토론목적이나 주장으로 관철하고자함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내용이 자기위주의 선입관으로, 성령님보다 앞서선 안 되기에 매우 조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럴진대 제 믿음생활에 결정적 손해이며 사랑하기도 심히 부족하여 부끄러운데 (자신은 물론) 이웃의 (성화)구원에 해를 끼쳐선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서로 지체 간에 덕을 세움에 있어서도 해가 될 수 있음입니다. 총 공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부문이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올리게 된 것이며, 사실 이런 제하의 내용은 바깥으로(교계나 세상 적으로) 덕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미련 떨며 올려둘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십분 양지해주시기를 긴히 바랍니다.>


    <위 내용을 보시는 분들께 긴히 부탁드립니다.

    이 글에 대해, ‘댓글’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위 언급한대로 이 홈 경유로서, (총 공회 앞으로)한낱 짧은 소견을 밝히는 것일 뿐입니다. 이에 답을 바라서거나 토론목적이거나 단정하여 주장하려거나 어느 한편에서 논쟁을 만들려는 게 결코 아닌 것임을 십분 양지해 주시기를 거듭 바랍니다.>

    • 2020-12-15 09:59
      (삭제 원칙)
      12월 15일까지 게재 된 후 모두 삭제를 부탁해 주셨으나, 이어 진 글들이 등재 된 이상 삭제가 곤란합니다.
      이 곳은 이어지는 글이 있으면 앞에 글을 삭제하지 않는다고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과거 사례)
      이 곳은 자유롭고 끝없는 '연구'를 소원했습니다. 사람이 실수도 하기 때문에 글에 '수정'도 필요하고, 또 윗글처럼 한시적 발표만 원할 수도 있기 때문에 1998년 개설할 때부터 모든 글에는 삭제와 수정 기능을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토론 과정에 불리하게 되면 앞 글을 수정하거나 삭제를 하여 뒷 글이 이상하게 되거나 우습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 수정과 삭제는 자기 자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글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수정'과 '삭제'는 관리자를 통해서만 가능하게 했습니다. 관리자의 글조차도 뒷 글에 영향을 미치는 수정이나 삭제는 하지 않습니다.

  • 2020-12-09 15:57
    (바른 적용인지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 인용하여 두서없이 혼잣말로 짧은 생각을 적어봄입니다.)

    애초 양성원이, 구원을 선파하고 양육코자 기업으로 세웠음이며, 뭇 심령의 소원으로 신청되고 이에 총 공회적으로 참예하여 그 의의 문을 열었음이며 그 부요와 존귀를 주님께로부터 받았음이라 생각함이다. 그 의를 구하여 생명과 영광을 얻고자한, 주님의 은혜로서 엄위를 자랑할 만큼 획기적인 일이라 생각됨이다.

    그런데, (까닭 없음 아니겠으나 본의 아니게) 공동체의 입술로 지키고자했던 애초의 행보와 율례가 즐거움 되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주님께서 이미 그 일을 기쁘게 받으셨음이 온 공동체의 인정이심이 맞을 진대는, 주님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며 주님을 향해 (공동체가)함께 손을 편 애초의 즐거운 모사와 열성의 회복이 매우필요 됨이라는 생각을 해봄이다.

    그 이름이, 생명의 샘 역할해내고자 세워졌음일진대 경히(소홀히)비쳐져서는 안 됨이라는 생각을 해봄이다.
    이유는, (맞는 생각인지 모르나)마치 캄캄함에 덮여 아름다운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듯, 그 공통이었던 사모함이 분외의 영광인 것처럼 되어져선 안 되기 때문이며, 이 현상이, 양방각기 (애초의)그 길을 굽게 함이 아니라하여도, 이 현상을 두고서 서로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한 연유가 마땅함이어도,

    이 현상은 반드시 거두어 내야할 전공회공동체의 과제가 아니겠는지를 생각해봄이다.


    그곳이 마치 객이 되어 짐 같은 형상이 되어져선 안 됨이라 생각해봄이다.

    (본의 아니게)애초의 그 목적과 공동규례가 이동되어져있음이다. 빛이 비쳐지지 아니한 듯, 광야로 유리하는 듯 같음 되어져선 안 됨이며, 즐거운 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당초의 의롭고 순전함의 지속으로 이웃에게도 즐거움 받는 결말이어야 함이 전 지체의 공통된 공감됨이라 생각해봄이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바른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말씀했다.

    의사에 상충 있다하여도 공동체의 경내에 참 평안이 여전해야함이라 생각함이다. 이는 공동체의 기쁨과 형제사랑으로 실상의 풍부한 소산과 화평의 즐거움이 온 공동체의 소망인 것이기 때문이다.

    상처가 점차 깊어지면 악취가 나고 썩기 마련이다. 절대로 없어야하기에 온 공동체의 앞에 놓인 번뇌를 (예방적으로)끊어야 함이며, 이럴진대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상처를 싸매 주시는 주님 앞에 온전히 나아가도록 적극 이끌어 주실 계제가 아니겠는지에 대한 생각이 조밀해짐이다.


    애초의 경영에 그 사모함의 지속이 이어져야함이라 생각이 듦이다.

    그곳이 주신은혜에 감사인 것이라 생각함이다. 그럴진대 그 은혜의 표징인 터(기초)가 결코 흔들려선 안 됨이다.
    이유는, 주님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고자 선한기업으로 예비 되고 (공회공동체의)규례로 간직했던 것이며, 온 공동체의 공통된 그 선한 목적과 규례가 보전되지 못할 경우, 그 그림자만 짙게 드리울 따름이며, 온 공동체의 지향점이 주님이 주재하시고 보증하심에 부합이어야만하기 때문이다.


    (까닭 없음 없겠으나 한편으로) 애초에 함께 소망한 날의 회복이 매우긴요 됨이라 생각해봄이다.

    당초의 양성원이 주님께서 축복하시고 베푸신 증거임이 온 공동체의 인정일 진대는, 확실한 일심모사로 아름다운 결말이 있어져야 마땅함이며, 그 소망이 보자기에 에워싸인 듯 그 소망이 나무 뽑듯 뽑힘 당한 듯 현상의 지속이면 애초의 자긍과 소망된 것이 온 지체에 증명되지 않음이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 경영으로 올릴 소산을, 전공동체의 입에 확실히 두어져야함이라 생각해봄이다.

    맞는다면, 애초의 아름다움을 지속으로 이어가야 마땅함이라 생각됨이다. 이유는, 주님의 의가 정체됨은, 올릴 소산을 업신여김(하찮게 여김)이 되는 것이라 (한편으로)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맞는 말인지 모르나)양방각기, 선을 간절히 구하여 (해결에)은총을 얻으려하심일지나, 결과적으로 이 현상이, 마치, 총 공회가 주님위해 그곳에 세워진 도리를 즐겨하지 않음같이 비쳐져선 안 되기 때문이다. 애초의 설립이 진리로서 교훈하심과 그 증거에 따라 으뜸으로 정한 산업으로 받은 증거가 (공동체적으로)확실함이면, 어두운 형상을 속히 벗어나야만 하는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 생각해봄이다.


    그곳이 마치 외인 취급당한 듯 되어져선 결코 안됨 이라는 생각을 해봄이다.

    양방의 심중에 분명한 까닭이 있겠으나 이 현상으로 인해 애초의 목적이 함몰되어진 느낌을 주어선 결코 안 됨이라 생각함이다.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음인데도 손이 풀어지게 되면 주신보배를 놓치기가 십상이듯, 하나님의 영광이 벗기운 듯 형상은 자칫, 흑암에 대한 두려움의 결여(또는 상실)에 연유됨일 수도 있기에 예방적 차원으로서 매우 유의해야할 부문이라 생각하며 분별에 조밀해짐이다.

    안으로 온 공동체가 환난에 잡힘 되고, 밖으로 세상이 기롱하며 수군거리며 조소하며 말거리가 되는 업신여김과 오해를 아예 불식해야함이며 혹시라도 빌미가 되는 경우가 있어선 결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을 벗어나, 주님의 풍성하신 구속에 매여져 있음이란 그 명분을 항시라도 찾을 수 있어야함이라는 생각을 해봄이다.

    양방각기 도와주심을 바라며 주님 향해 채워 주시기를 원함에도 가뭄에 여전 목마름 같은 형상임에 따라 여전 이 현상으로 굳게 닫혀 있게 되는 경우, 그 명분이 애초의 대의와 목적에 견줄 적에 우위우선으로 무엇이겠는지에 생각이 조밀해짐이다.

    주님을 필경 바라보아야함에 있어서, 가령, 주님은 오른편에서 일하시(려)는데 왼편에서(다른 방향에서)찾음이면 주님의 일을 제대로 찾기가 어렵다.
    주님의 목전에서 물으실 적에 명쾌한 답이 무엇이겠는지, 문제를 어떤 각도로 잡고 푸느냐에 따라 그 양상이 크게 달라짐이라는 생각이 조밀해짐이다.


    주님께서 걸음을 감찰하시고 다 세고 계심이신데, 애초의 목적된 본질이 퇴색되고 요동되어져선 안 됨이라는 생각을 해봄이다.

    당초, 전공회적 소원의 기도로서 주님으로부터 받은 증거임이 확실함일 진대는 붙잡아야만 도리이며,
    이유는, 주님의 산업에 권위와 충실이 끊어지게 되면 그 분깃(주어진 부분)대로 값을 내는 대신, 마치 황폐함으로 잡풀만 나고 광야같이 황무한 현상이 되기 때문이라 생각해봄이다.

    뿌리를 근본으로 결실함이다. 양방각기 통일성으로 우리의 눈과 의향과 걸음이 주님을 결코 떠나지 않았음이며 옳은 대로 다 행하였음이라하여도, (수평적으로 볼 적엔)당초의 전체적이며 본질의 통일성에 견줄 적에 뿌리 채 뽑힘 같음 됨이면 주님께 드릴 소산 없게 되는 결말에 이르게 되는바 그 유의에 대한 생각이 조밀해짐이다.

    그러기에, 그 산업과 소득위한 위주중심으로 귀 기울임에 있어서 양방의 의향으로 상대를 이해시키려는 개체의 통일성에서라기보다 당초의 전체적인 형상과 본질의 통일성으로 성경적 변증이 필요하지 않을지에 대한 생각을 조심스레 해봄이다. 그럴진대 주님께 실로 증명됨이 아닐지, 이 경우, 성경말씀에 위반되는지에 대한 생각이 조밀해짐이다.

    (미련 떠는 생각인지 모르나)가령, 서로지체 간, 다른 한편이 승리한다한들 주님 안에서 어떠한 순수한 감격이겠는지, 참 승리라 할 수 있음인지, 주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 모두의 승리됨이어야 진정 승리됨이라는 생각을 해봄이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오히려 다툼에서 건지시며 그 주관하심대로 의를 회복시키심이라 믿어지기 때문이며, 주님의 교회공동체를 통해 선하신 목적을 이루시어 영광 받으심이며, 그럴진대 극히 어둡고 불화된 어려운 형편에 처하고 머물도록 (당초 양성원을) 허락하셨을 리 만무하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타작마당에 곡식을 모으듯) 주님께서 그 일을 위해 총 공회공동체에 의탁(의뢰)하셨음이라 생각해봄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기업이 (불가항력적 경우 아니면) 환난에서 보전되어야함이라 생각해봄이다. 그 보응에 주목하지 못하여 애초의 정로가 혼동되고 생산이 핍절되면 선한 아름다움을 기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마치 곤고함의 올무에 매여 환난당하고 있음 같음이 되며 이럴진대 정녕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심인지에 생각이 조밀해짐이다.

    (한낱 미련 떠는 생각인지 모르나) 애초양성원이 뭇사람의 구원에 유익 위한 것임이 분명하면, 주님께서 지난 것이어도 여전 찾고 계심이라 생각됨이다. 온 천하가 다 주님의 것이며 애초의 양성원도 소유로 취하셨기에, 애초, 주님위한 (공동체의)입의 말을 분명기억하시고 버리지 않으시며 그 위한 온 공동체의 도모와 그 수고와 헌신도 분명히 기억하심이라 생각을 해봄이다.

    (공동체가) 곤고케 되었어도, 주님께서 이미 다 보고 계심이며 분명 아껴보시지 않겠는지, 주님께서 조성하셨음일 진대 저울질하시며 보지 않으실 리 없고 본디의 기업을 여전히 떠나지 않으심이라 생각을 해봄이다.


    맞을 진대는, 장래를 두고 등불을 켜야 함이라 (한편으로)생각해봄이다.

    당초의 정한 것이 무익한 노고되지 않고 허사경영 아니어야하기에, 즉, 주님의 백성의 구원위한 산업에 복을 주시고 세상을 복음으로 진동시켜 주님의 백성 된 자를 장중에 모으시고자하심에 실로 부합됨이라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 법도 따라 권능을 베푸시고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하심에, 광야같이 업신여기듯 황무하고 공허하며 왕래 없는 땅을 연속으로 두지 말아야하는 이유가 됨이며,

    맞는다면, 즐겨 복종하며 깊은 샘물 길어 내게 하시려 그 수고의 일을 기꺼이 이루도록 맡기셨음에 집중되어져야하는 결말에 이르게 되는 계제가 아니겠는지에 생각이 조밀해짐이다.


    주님의 때를 기다림과 동시에, (한편으로) 온 공동체 간, 우선 해소시켜야할 것이 무엇인지의 분별(구분)이 요긴함이라는 생각을 해봄이다. 양방의 기준이 실로 합리로서 허물이 없다하여도, 정작, (다른 면으로)교회공동체에 심적 고통과 상처가 깊어지게 됨이 무엇을 유익하게 할 뿐인지에 생각이 조밀해짐이다.


    주님께서 길을 정하시고 그 일정으로 울을 주심이 공동체의 인정일진대, 당초조성하신 그 일 따른 직무를 진리로 도모함이면, 이를 분명 기억하시는 주님께서 이 단련과정의 앞길에 필경 밝은 빛을 비춰주심이라는, 어린신앙의 짧은 생각을 성경말씀을 인용하며 해보게 됩니다.

    • 2020-12-09 18:37
      세상이 기이합니다. 양성원 만이 아니라 모든 공회가 하나되기를 소원하는 것은 총공회 교인이라면 소원하는 것이 아닐까요? 백목사님을 통해 교훈하신 말씀을 듣고자 어렵게 따지면서 말씀지켜 구원의 완성을 위해 살려고하는데 누군가는 배가아파서 백목사님을 통해 주신 교훈의 말씀을 자기의 재산이라고 신풍목사님, 동천목사님 등 부공3의 목회자들과 연구소 직원들을 고발하고 정과자로 만드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분은 양성원 하나되기를 소원할까요? 소원한다면 그 속에 품고 있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두 잣대로 항상 볼 수 밖에 없는 저의 시야가 잘못 되었을까요?
      평신도님쎄서 그렇게 소원하시고 안타까워하시는 그 마음은 저 또한 공감합니다. 그러나 현재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이 현실에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껍데기만 추구하지 말고 속을 채워라고 하시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정력을 쏟아야하는 것은 어디에 쏟아야할까요? 현실에서 해야할 일이 너무 많은데 ...
      도고일장 마고일장 방해물은 우는사자같이 많은데 평신도님께서 앞장 서셔서 흩어진 공회를 모아 하나되게 하심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부공 3에서는 충분이 노력하신 줄 압니다.
      그저 홈을 통해서 말씀하시지 말고 하나님의 참사랑을 가지고 공동체를 위해 전파하심이 어떨런지요. 애가타서 저 또한 평신도님께 부탁드려봅니다.

  • 2020-12-12 18:27
    그 발전적 지향에 全공동체집중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주님의 목적하심에 일치한 진보로 이룸의 역사가 필히 일어나야함이라 생각합니다. 손맥이 풀어지면 안 되기에 성령의 인정하심과 도와주심바라며, 성령께서 길을 가르쳐주심에 온전히 반응하여 필경 효과 있게 이루길 소원함이 온 지체의 공감이시라 믿고 싶습니다.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말씀했습니다.
    말의 응답이어야 복인 것이며, 온 공동체가 크게 기뻐하며 감격 충족할 날 속히 이르도록, 온 교역자님과 은사위치에 서신 분들께서 적극 이끌어 주시기를 심히 고대함이 온 교회공동체의 공감이시라 굳게 믿고 싶은 심정입니다.

    새롭게 길을 예비하고 대로를 수축하며 단장위한 적극적 모색이 주님 원하시는 지혜라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진정한 회복은 내 의로는 일어날 수 없고 ‘주의 이름’만 주셨음이며 주님만이 답이심이기에,

    만백성을 통할하시는 주님 앞에 절실히 부르짖어 시간과 기회를 잡도록 적극 이끌어 주실 과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해결이유로서,

    애초양성원이 기도의 응답으로 인정되어져 주님의 것으로 드린 것일 진대는, 이견의 첨예함 벗어나 ‘주의 길’ 예비함에 부합하여 경영케 하신 하나님을 존경해야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아래 완성하여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님위한 목적됨에 해석을 같이함으로 혼미한 역사를 바로 세우며 푯대 향해 모두의 승리로 즐거이 전진하여야함이 온 지체의 공감이시라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주님 판단하심을 찾아, 온 지체의 각 부분된 형제간의 화평과 평안의 만족 넘쳐남과 영적정체성에 흡족의 회복 있어져야함이며, 영감과 찾은 지각으로 막대기들이하나 되듯 함께 무너짐 일으켜, 주님께 받은 칭찬을 머리에 이고 크게 즐거워할 날 급속히 이르기를 소망함이 온 지체의 공감이시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온 지체의 기도에 선대하시어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일 진대는, 뜻을 합하며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야함이기 때문이며, 은혜로 받아 하나님영광과 복음위해 즐거운 출발이었던 것이면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함이며 즐거운 합의로서 무산된 통합(성)의 회복과 건설적 전진에의 집중이 매우 필요 되기 때문입니다.

    온 공동체의 기도에 선대하시어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일 진대는, (쟁점을 훌쩍 넘어) 하나님영광위한 애초의 엄정적인 생산사역의 대의와 목적과 규범을 결코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여호와인줄을 전파코자 모두에 쌓인 선과 거룩한 헌신이 어우러져 주님의 것으로 즐거움으로 구별하여드렸음일 진대는 그 동기와 목적이 존중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할 뿐이시기에 온 지체 또한 서로사랑 함이 풍성하도록 힘씀이며 주님만이 공동체의 전부 되시기에 기어코 주님께로 초점 맞추는 게 그 해결이라 생각이 들기 때문이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서 다만 기쁨 되게 밝은 미래의 지향이 합당함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며, 차이 있는 게 거룩이기에 회복이 지체될수록 손해일 진대는 혁신변화개혁위한 계제를 급히 밟아야함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 마음에 품고 지어 드린 게 엄연한 인정일 진대는, 주님의 소유로 경영케 하심인지(또는 아닌지)를 분별해야함이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사역자양성위해 순전한 우물 격으로 예비 되고 또한 주님 안에서 후대로 물려줄 자랑으로 견고히 세워졌음이면 애초의 하나님영광위한 발견과 땀으로 쌓은 선의 표출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의 기저가, 성령의 기뻐하심에 연유된 것이면 기쁜 일이지만 (본의 아니게)무엇에 요동된 것이면 안 되기 때문이며, 당초에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일 진대는, 하나님영광위한사업의 대의와 규범이 흔들려선 안 됨이며 엄정적이고 생산적인 사역의 대의와 목적에 따른 부합이 무엇인지를 기필코 찾아야함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나름 표현으로)양방이 (말씀으로)잘 걸러진 최선의 평가(처방)에 따른 무거운 심정의 부득이한 표출이 있었을 진대도, 이 현상이 성경에 나타난 분쟁과 동질(동격)이면 심각한 문제이며,
    그럴 진대는, (비록 논쟁할 수는 있으나) 주님허락 없이하는 표시일 경우, 주님 판단(칭찬)하심에 반한 것이 되며 (맞을 진대는)급기야 온 교회공동체의 영적정체성에 커다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결말에 이르게 되는바 이에 분별이 필요 됨이라 생각이 됩니다.

    (본의 아니지만) 주님의 권속이며 서로 지체에 마귀가 (교회공동체를) 마치 뱅뱅 돌리려하고 휩싸이게 하려는지, 가만히 공동체에 틈을 타고 스며들어 맹렬히 표적하여 요동과 흩어지게 하고 오염시키려들고 있(었)지는 않는지, 아니면(그 반면으로) 주님의 이름을 실로 어떻게 드러낸 수입이 있었는지, (온 공동체에)어떤 기쁨 되었는지 (영적)분별해 볼 계제라 생각해봄입니다.

    원망과 방관과 어두움의 지속이면 화석화 될 수도 있음이며, 또한 후대에게 선례 되어 지게 되면 어떤 면으로 질서와 모본과 유익 되겠는지에 분별이 절실히 필요 됨이라 생각이 됩니다.

    주님의 때가 있으시겠지만 (한편으로) 주님면전에서 공동 해결해야할 시점도 있는바, 주님께서 오늘날 온 공동체에 어떤 신호를 보내고 계시는지를 유심히 듣는 게 중요함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미리 계획하심아래 양성원도 여전히 품고 있으심이 맞음이면, 주님영광위한 수입 얻고자 서로를 품고 하늘나라 세움에 합동하여 일로매진하는 믿음의 진보가 시급히 요구됨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정체의 현상이 일면, 연단(단련)의 한 과정일지언정, 하나님께 영광돌리고자 했던 애초의 대의와 목적이 결코 경시되어서는 안 됨일 진대는, 무산된 통합(성)의 회복이 긴히 요청되기 때문이며, 주님경외함의 지혜와 완전한 지혜로 하나님의 말씀이 하수같이 흐르며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기 위한 공동합의의 진보가 시급함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소유로 받았음이 엄연한 인정일 진대는, 비록 견해차 크고 가득 찼어도 심원으로 해석을 같게 하시어 무너진 기초를 재건해야함이며, 그럴 적에 모두의 승리이며 참 안도와 평안이 있음이 온 지체의 공감이시라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애초 양성원이 하나님의 세밀하신 계획아래 준비시키시어 쓰시고자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산업으로 받았음이 모두의 인정일 진대는, 주님의 성호를 실로 나타내어야하는 한 목적에 부합됨이어야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여호와인줄을 전파코자 모두에 쌓인 선과 거룩한 헌신 어우러져 주님의 것으로 즐거움으로 구별하여드렸음일 진대는, 결과적으로 이러한 정체는 경영케 하신 하나님을 존경하지 아니하였음이란 결말에 빠지게 되는 것이며 (온 공동체가)민첩히 애초의 흡족함을 회복해야함이라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신으로 된다고 말씀했으며 이에 따라 쌓여진 최고의 교리신조행정을 토대로 이를(이 현상을 두고) 건설적 면으로 어떻게 (구원에)유익 삼을지, 온전성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저력을 보일 절호의 계기라 생각하며, 그럴진대, (교계가) 그 쌓아놓은 것에 대한 신뢰와 유익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행실마저 크게 닮으려(본받으려)할 것이라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애초의 목적대로이면, (비록 상충이어도)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따르듯, 복된 장마 비로 가지를 내고 열매 맺음같이 기어이 주님의 것임대로 함께 행하고 지켜져야 함인지, 즉, 주의 이름 경외함으로 하나님 말씀이 (그곳에)하수같이 흐르며 주님의 마음 시원케 해드리는 흐름이어야 합당한지, 아니면 여전 이 정체(停滯)가 합당함인지에 분별이 절실함이라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 2020-12-14 17:59
    애초 양성원이, 온 공동체적 기도의 응답으로 세워졌음이면 그 운영이어야 마땅함이며 그 부흥으로 주님께 영광돌림이 당연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초 공동체의 입에 복음위한 원함이었음에 견줄 적엔 그 공동규례가 깨어지지 않아야함이며,
    하나님영광위한 목적에 견줄 적에 기도로서 이룬 언약이 깨어지기 않아야함이
    온 지체의 공감이시라 여겨봄입니다.

    하나님영광위한 책무를 감당키 위함이실진대, 애초의 목적에 거치게 되는 현상이 아니어야하며
    상당한 대립이어도 복음전파위한 대의와 목적에 장애가 되어져선 안 됨이라하는 점도 이미 다 아심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애초의 정도를 떠난 현상이 그 세워진 조건에 부합인지, 주님께서 선대하심에 순종된 의미로서 어떻게 부각되고 있음인지(아닌지)에 대해 생각이 조밀해짐입니다.

    주님께서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는 재물’을 염려하심이 아니라, 전혀, 주님의 백성 된 공동체를 염려하고 계심이라 생각합니다.

    애초에 생명의 역사를 이루고자 택한 것일진대, 이 현상에서 속히 벗어나야함인지 아닌지, 함께 이룰 소망이 지체된 현상이 주님의 눈에 합당함인지 아닌지, 그럴 진대는 공동체가 함께 기뻐해야 마땅하며
    그게 아닐 진대는 떨어야함이기에 이에 대한 생각이 조심스레 조밀해짐입니다.


    행여 라도,
    자칫 이 지속의 틈새로 마귀가 스며들지 않도록,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서로지체 간에 참 평안이 깨어져 (공동체간)괴롭게 되고 멍에가 더욱 무겁게 되지 않도록, 세상이 무슨 까닭으로 이 같음인지에 이야기꺼리가 결코 되지 않도록,

    적극 이끌어 주시기를 원함이 온 공동체의 공감이시라 믿고 싶습니다.

    (대립의 명제를 훌쩍 넘어) 양방의견이 하나님영광위한 대의와 목적에 인내로서 흡수됨이면
    금방 해결될 줄로 믿고 싶습니다.

  • 2020-12-15 00:07
    평신도님은 총공회전체가 양성원을 함께 하자는 것이죠? ... 고신 합동 통합 기장이 함께 신학교를 운영할 수 있나요? 없지 않습니까?

    현재 총공회는 장로교노선이 고신 합동 통합 기장으로 나누어졌듯이, 나누어져 있다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총공회는 양성원을 함께 할 수 없는 것은 기정 사실입니다.

    각 공회마다 서로가 가장바른 정통총공회라고 상대방은 정통에서 어긋났다고 보지 않나요?

    그런데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이 토론내용이 이렇게 길게 이야기 할 내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2020-12-15 10:26
    남북이 한 형제니 하나 되었으면 하는 소원과 노력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것이 없다면 너무 비정합니다.
    그런데 하나 됨을 지나 치게 노력하다 북한에게 먹혀서 하나 될 바에는 분단 상태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전 인류가 하나님 앞에 손에 손을 잡고 찬송하려는 염원과 노력은 끊임 없이 이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련의 세계 공산화가 서방 사회를 점령하도록 길을 여는 하나됨은 철저하게 막아야 했습니다.

    WCC라는 이름의 세계기독교협의회가 세계의 모든 교회를 하나로 만드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교회를 아주 짓밟아 버렸습니다. 알고 보니 광명의 천사를 가장한 사단이었습니다.

    총공회는 이런 국제와 남북의 관계를 자연계시로 파악했고 교회사에 나타난 일치 운동을 조심했습니다.
    앞 글에 몇몇 분들의 우려는 공회의 경험과 역사를 통해 늘 조심해 온 마음을 표시했다고 보입니다.
    '(평)신도'의 글은 세상과 교회사의 오류를 알고 피하면서 공회 범위 내를 전제로 적었다고 보입니다.
    적화나 교회 속화를 위해 던져 진 '일치' 운동이 분명히 아니지만 공회 안에서도 그렇게 될까 걱정입니다.
    1989.8.27.부터 총공회는 모든 면으로 늘 두 길이 있었고 때마다 일치를 외치고 호소한 분들이 있었으며
    '(평)신도'의 글 외의 지난 날의 노력은 발전적 좋은 하나보다는 대충 버무려 함께 망할 노력들이었습니다.

    현재 거의 모든 분들이 잊고 있지만
    1990년 3명의 중도에 계신 목회자들이 주선하여 총공회와 양성원의 양 편을 한 자리에 모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 연구소 대표는 그 자리에 갔으나 거의 모든 양 쪽 목회자들은 참석조차 하지 않고 거부해 왔습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것은 당시 자리를 주선한 분들이 지금은 함께 모이는 것을 극구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신도'의 호소처럼 분명히 옳고 바른 제안을 두고 부산공회 대구공회 2백여 개 교회들 중에 이 글에
    공감은 한다 쳐도 이 글이 부탁한 행동에 나설 분들은 계실까? 부공3뿐일 듯합니다.

  • 2020-12-15 18:35
    마치 커다란 망에 씌워진 듯 현상이 당초에 의거된 결말 아닌 것임이, 공회공동체의 기도로 응답되어 주님의 선대하심으로 세워져 주님께 드림과 그 목적됨과 규례가 이미 증명하고 있지 않음인지,

    그런데, 여전히 복음전파위한 산실에 어두움이 짙게 덮여져 있음입니다.

    (20년간이라 한)이 현상은 양방의 이견만 드리울 뿐, 하나님과 성경말씀이 크게 부각되지 아니한 듯 모습으로 (미련 떠는 생각인지 모르나 개인적으로는)느껴짐입니다. 애초 공동체의 입에 주님께서 준비시켰음이라는 인정이심이면, 서로 양보하는 한이 있어도 주님의 면전에선 서로의 기준을 마냥요구하지 않음이 합당함이라는 생각을 조심스레(개인적으로)하게 됩니다.

    어두운 현상의 지속이, 하나님의 복음전파위한 애초의 언약과 규례를 파한 것이나 다름없음이라 느껴짐입니다. 그 정도를 떠남은 주님의 선대하심에 순종이 아님을 의미하며 그럴진대 주님의 노가 격동될까 실로 (공동체가)근심해야 함인지에 조심스런 생각이 조밀해짐입니다.

    왜냐면, 이 어두운 현상은 애초의 공회공동체의 소망에 따른 (응답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음이라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생각이며 표현인지 모르나)양방의 명제를 훌쩍 뛰어 넘어야하는 이유는, 애초 주님위해 그 목적과 규례가 신실히 지켜져야 할 기별로서 주님께 바쳐지고 경영에 소산을 내도록 다만 위탁받았던 것일 뿐, 주님 앞에서 전진 없이 언왕설래로만 되어져선 안 되기 때문이라 (개인적으로)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 정체의 지속이, 주님의 선대하심으로 택해졌던 것이 부정됨이라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139:1)하나님께서 늘보고 다 아심이며,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 끊어진 듯 무용지물 된 현상입니다. 복음위한 목적이 엎드러진 곳에 무엇이 모여 치부되고 있음이며 교회공동체가 어떤 기쁨의 모양으로 사무침 되겠으며 선한 일로 기억되겠습니까.

    주님이 주신 근본 알지 못하여 마음에 두지 아니하고 헤아리지 못하면 큰 손해인 것입니다. 하나님영광을 나타내어야할 마땅히 행할 길임에도 무용지물로 둠은 (본의 아니게)오늘날 주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함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슬픔같이 누임되고 사람이 없고 하수가 광야 같음 되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민에게 복음의 빛을 나타내도록 세워진 것이면, 복음위해 기초를 정하신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만 (주님 앞에)도리이며 합당함이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의는 폐하지 아니하심입니다. 애초(공동체의)기도응답인 것이면 (지체와는 물론)주님과 다툴 수 없음입니다. 기초를 정하신 것이면, 황폐함으로 기근 당함과 곤비함과 그물에 걸린 것 같음을 (주님 앞에서 공동체가)슬퍼해야하지 않겠는지에 대한 생각이 조밀해짐입니다.

    (그 양성원이) 만민의 영혼 살리려 주님으로부터 받은 기업이며 받은 의가 아니겠습니까. (외관으로)우뚝서있으나 복음을 가리고 보이지 않음 같아 멸시함 당한 듯 귀히 여기지 않음같이 되어져선 결코 안 됨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곳이 주님과 복음위해 언약으로 세워진 것일진대 이 현상이 결코 아름다움 아닌 것입니다.
    (본의가 아니어도) 멸시함 받아 싫어 버린바 되고 비틀거림 같음 현상일 진대, 주님의 견책이 가득한지의 유무를 (온 공동체가) 면밀히 분별하고 살펴야할 계제가 아니겠습니까.

    형제(공동체)간에 매인 줄을 스스로(때론 함께)풀어 주님 면전에서 기쁜 소식을 발하여야하고 함께 노래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성경말씀대로) 주님의 길과 생각은 사람의 의사보다 높음입니다. 주님의 의와 언약을 기쁨으로 잡아 (마음의 길 아닌) 주님의 길에 서서 주님을 위한 의의 소산을 일궈내야 함이 합당함이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말씀했습니다. 입술의 열매를 짓고자함에 있어서 다투며 기도하며 금식해도 상달되지 않음이 성경말씀입니다.

    애초대로면, 온 공동체적으로 처음규례와 그 목적이 지켜져야 함이며, 땅에 묻어 놓음 같지 아니하고 주님의 의를 행함이어야함이며, 파괴된 기초를 다시 쌓고 황폐함을 다시 복원해야함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어져야함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공동체)간 정녕 화목 있음인지 이 어두운 현상을 서로전가하고 있음인지를 떠나,
    공동체 간의 화목과 기꺼이 이룸 있도록 동기부여를 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대의 이루기 위해 (자신 매우 부끄럽지만)희생을 감수하는 방향이 큰 믿음이라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애초가 공동체적으로 인정됨이면 오늘날에도 (공동체적으로)여전히 마음에 인정 되어져야함이라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그릇의 역할로서, 주님의 선대하심과 원하심을 잊음 되지 아니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그 황폐함을 복구시킬 능력이 없으시겠습니까. (공동체에)인내하시며 기다리고 계심이라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시며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신데 여전히 인내하시며 기다리심이라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급속히, 어두운 형상을 벗어나야만할 때이며 주님의 의가 가까이 서고 성실이 세워짐이어야만할 때이며, 주님의 영광이 온 공동체의 위에 나타나도록 황폐함을 다시 쌓고 버리지 않는 곳 되어져야만할 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해가 더 지기 전, 그곳을 통해 하나님영광위한 포도원지기 역할과 성실로 갚으며 후손대대로 언약을 세우며 공동체의 화평과 의를 세우며 뿌려서 새싹이 돋음이 사방에 발생하게 하며 하나님영광이 나타나는 일컬음을 받아 주님께 받은 상급과 보응 있으며,
    또한, 복 받은 총 공회라 인정됨이 공동체의 행복일진대 (온 공동체가)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께 온전히 나아가도록 적극 이끌어 주실 시급한 계제인 것이라 (성경말씀 인용하며) 짧은 생각을 해봄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0-12-15 19:09
    '(평)신도'의 절절한 글은
    주님께는 기도가 되어 언젠가 이루어 질 것으로 소망합니다.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이 글에 담은 기도가 주님의 외침이 되고 주님의 탄식이 되다가 종내 주님의 징계로 돌아 와서라도 우리 전부에게 잊지 못할 말씀이 될 것으로 봅니다.

    일단 이 곳은 다른 공회들이 공식적으로 표면적으로는 보지 못하게 하고 모두가 안 보는 듯이 언행을 해도 지도자들로부터 일반 교인들까지 모두 잘 읽고 있습니다. 옳은 말씀은 주님의 감동으로 나온 것이며 적히는 순간 모두의 양심을 찔렀을 것이며 모두에게 늘 과제로 남아 자문자답하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경험으로 보면, '(평)신도'의 이름 때문에 이 글을 직접 인용했다고 말은 하지 않을 듯하고 또 표현도 조금 다르게 할 것이나 각 공회 안에서는 양성원과 총공회의 바로 된 하나를 위해 한꺼번에 해결은 하지 못해도 뭔가 한 걸음을 딛자는 노력이 시도 될 듯합니다. 이미 그렇게 하는 곳에는 힘을 보태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글에 담긴 진심, 전심, 정심을 감사합니다.
    양성원뿐 아니라 공회적 우리의 모든 사안을 두고 자주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2021-02-09 09:50
    답답 하네요.
    지금같은 목사의 성경적 근거가
    있지도 않고 직분은 열매가 아니고 도구일 뿐이고 천국에는 교수가 없고 지금 같은 목사도 없다.
    무슨 교회랍시고 타고 앉아
    돈이나 걷는게 예수님을
    따르는 길인가.
    건물은 예배당이지 교회가
    아니다. 건물이 성화되고
    건물이 휴거하냐.
    그나마 성경적으로 어마어마한
    보배같은 자료를 이곳에서
    그냥 주었는데 그 마져도
    못하게 만든자들이 적그리스도
    아니고 뭐란 말인가.
    공회 재산을 사유화 시키는
    자들이 마귀당아닌가.
    그들과 결별 하는것이
    구별을 두는 삶이다.
    빛으로 구별하신것을
    인간의 논리로 자꾸 혼합시킬려고 하니 혼돈이 오고
    혼란만 일으키는 것이다.
    백목사님을 끝으로
    총공회도 끝난것 이다.
    계대를 계승할 제자하나
    바르게 못키워 놓고.
    자식이 열매인데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백목사님을 통한 취사선택이
    있어야 한다.
    맹목적 무조건 추종이
    아니다.
    백목사님이 그런 길을
    원하신 것이 아니다.

  • 2021-02-09 09:57
    양성원 규모나 키울려고 하다
    망합니다.
    한명이라도 십자가를
    지고가게 양성 해야지요.
    규모나 키워서 돈을
    1원이라도 받는 순간
    성령님의 역사는
    없습니다.
    진리의 영이 인간의 상행위에
    놀아 날수 없고
    돈을 받는거 자체가
    하나님의 전능성을 부인하는것으로 하나님을 못믿으니
    돈받아서 돈으로 할려고
    하는짓 입니다.
    그냥 양성하여
    제자를 만드는데
    하나님이 방관 못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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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 2021.04.22 0 95
10039
오늘 우리의 겸손과 자랑 (1)
10039 | 공회원 | 2021.04.20
공회원 2021.04.20 0 155
10019
설교시 필기를 하는 이유와 장점
10019 | 학생 | 2021.04.16
학생 2021.04.16 0 98
10025
설교 집중을 위한 필기
10025 | 담당 | 2021.04.18
담당 2021.04.18 0 131
10004
개혁주의 구원론 인간론과 머스크의 '뇌공학' (1)
10004 | 회원 | 2021.04.14
회원 2021.04.14 0 134
9882
(세상소식)관망만 일삼는 여러분들의 태도가 옳은 것인지 되돌아봐야 할 때
9882 | 공회인 | 2021.04.01
공회인 2021.04.01 0 292
9853
주일과 예배의 역할에 대해서
9853 | 묵상 | 2021.03.29
묵상 2021.03.29 0 165
9772
관점(觀點) (38)
9772 | 교인 | 2021.03.25
교인 2021.03.25 0 582
9765
나의 현실은 정말 에덴동산인가? (1)
9765 | 공회원 | 2021.03.23
공회원 2021.03.23 0 297
9713
값이 있을 때 파는 것이 지혜 (1)
9713 | 교인 | 2021.03.17
교인 2021.03.17 0 190
9527
목회연구소 사이트 리뷰 (1)
9527 | (독자) | 2021.03.04
(독자) 2021.03.04 0 339
9492
세상의 주인은 인간일까, 세상일까?
9492 | 공회 | 2021.02.25
공회 2021.02.25 0 144
9468
개혁신학과 공회신앙 - 중생, 회심, 성화를 중심으로 - 1
9468 | (신학) | 2021.02.21
(신학) 2021.02.21 0 158
9396
시대 변화의 조류, 성도의 견집 할 것
9396 | 공회 | 2021.02.18
공회 2021.02.18 0 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