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연구

‘한 규빗’의 소망과 사명

발언
작성자
공회원1
작성일
2024.06.30

1. 특별하게 다가온 말씀 ‘한 규빗’

5월 집회 에스겔 성전의 말씀에서 척량의 잣대인 ‘한 규빗’을 배웠습니다. 과거에도 배웠지만 이번에는 실제 와닿는 느낌이 좀 달랐습니다. 누구나 그렇고 모든 말씀이 그러하듯이 같은 말씀이라도 상황에 따라, 주시는 은혜에 따라 느낌의 강도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말씀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그러합니다.

성경을 읽으며 줄을 긋는 사람을 두고 백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읽으면서 은혜가 되고 느낌이 달라서 줄을 그었는데, 성경을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말씀이 그렇게 은혜되고 느껴져서 줄을 긋게 되고, 다음에 읽으면 또 다른 말씀이 그렇게 되어 줄을 긋다 보니까 나중에는 성경 전부를 줄을 그어야 될 정도가 되어 더 이상 성경에 줄을 긋지 않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배우는 과정, 말씀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며 바른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2. ‘한 규빗’의 해석

성경의 한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자’ 라고 명문되어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치수를 잰다고 43cm~53cm까지를 mm까지 계산하면서 정확한 치수를 제시하며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뭔가 그럴듯한 근거를 찾으면 그것이 정확한 해석인 양 자랑스럽게 주장합니다. 이런 모습들을 두고 이번 집회 말씀 중에 ‘정확한 치수를 말하는 주장일수록 가짜’일 확률이 높다고 했습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성경에 한 규빗은 정확한 치수를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두 학자라는 사람들의 추측이고 추론이며 좁은 인간의 주관일 뿐입니다.

성경 해석을 정확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렇게 해야 하지만, 성경의 한 규빗은 분명하게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자’라고 명문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니 그대로 생각하고 해석하면 될 일입니다. 그 해석을 이번 집회 때 배웠고, 배운 그 말씀이 평소와 달리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한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한 규빗의 해석은 ‘각 사람의 자기 몫’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받은 자기 분량, 폭으로 말하면 ‘자기 몫’이고, 걸어가는 길이로 말하면 ‘자기의 한 걸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배워서 알고 보니 어렵지도 않습니다. 알고 보니 상식입니다. 원래 진리는 상식입니다. 모르면 한없이 어려운 것이고, 알고 나면 상식이 되는 것이 세상의 모든 지식이며,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도 그러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래서 사람으로서는 그 어떤 천재도 석학도 알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계시로 주셨기 때문에 알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계시로 주시되 특별한 특정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 보통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내용으로, 보편적인 언어로 주셨기 때문에 상식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자연 계시라고도 합니다. 지극히 상식으로 보통으로 주셨는데, 그런데 그 속에는 하나님의 완전하고 영원불변하고 무한한 구원의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참 심오한 것이 성경이고 하나님의 말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다 이러합니다.


3. 한 규빗의 소망과 사명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자가 한 규빗인데, 그 해석은 각 사람의 자기 분량 자기 몫, 자기 걸음이라고 했습니다. 팔꿈치와 손가락과 손바닥은 사람마다 길이와 넓이가 다릅니다. 큰 사람은 길고 넓을 것이고 작은 사람은 좀 짧고 좁을 것입니다. 팔꿈치와 손가락, 손바닥이 사람마다 다르니, 사람마다 받은 분량이 다르고 감당할 자기 몫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한 규빗은 척량하는 잣대의 단위인데, 주신 분량이 다르고 감당할 자기 몫이 다르니, 같은 한 규빗의 잣대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된다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적용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며 이렇게 심판하실 때 그 심판은 공의로운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주신 자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요구하셨습니다. 두 달란트 주신 자에게는 두 달란트만 원하셨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한 달란트만 마련하면 되는데 그것조차 안 했기 때문에 있는 것까지도 빼앗겨 버렸습니다.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 찾으실 때도 주신 만큼만 찾으시는데, 그래서 자기가 받은 분량만큼만 충성하면 되는데 악하고 게을러 그조차 안 했기 때문에 다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한 규빗의 적용 원리가 이러합니다.

한 규빗을 이렇게 해석하면 그 어떤 사람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됩니다. 많이 주신 자에게는 많이 찾으시고, 적게 주신 자에게는 적게 찾으시는 원리입니다.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찾으실 때도 그렇게 척량해서 찾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불리한 입장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고, 동시에 어떤 경우에도 낙망하거나 핑계를 대거나 교만할 수 없게 됩니다.

한 규빗의 바른 해석, 못나고 불리한 사람에게는 낙망과 핑계를 벗어나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받은 것이 많고 잘난 사람에게는 사명을 감당할 겸손과 충성을 가지게 합니다. 한 규빗의 소망과 사명입니다. 바로 깨닫고 보면 성경 말씀의 바른 해석 하나가 많은 사람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며, 이것이 퍼져나가면서 많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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