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박윤선 가정사, 자녀들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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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작성일
2018.04.08
박윤선 가정은 자녀들의 장단점이 그대로 공개 되어 박윤선을 연구할 때 도움이 됩니다.
백 목사님 가정은 흠도 티도 없습니까? 예수님 12제자의 부끄러운 이야기도 우리 구원에 참고하라고 적어 주셨고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의 부모인데도 그들의 엉뚱하거나 잘못된 점을 기록했습니다. 왜 이곳 연구소는 백 목사님의 장점만 비추므로 그 분의 단점을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을 막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 자녀들이 수없이 고소를 하고 그 내용도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데 연구소는 두리뭉실 넘어감으로 미화를 하고 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의 가족 이야기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박 목사님의 자녀가 목사님을 비판했거나 사회적으로 흠이 많다고 해서 우리가 박 목사님을 배우는데 지장을 받지 않습니다. 인간적 약점 때문에 오히려 존경합니다. 백 목사님의 자녀들은 어느 교파 교회에 출석합니까? 백 목사님은 총공회 교회 외에는 출석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자녀들의 거의 대부분은 타 교파를 다닌다면 이런 통계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요? 설교에서 서로 번역을 해서 세계에 할아버지 설교를 전한다고 싸움?이 붙었다는 행복한 고민까지 있는데 지금 모두 30대에서 50대라는 절정의 연령에서 세계 최고의 길을 향유하는 분들이 번역을 한다는 이야기가 없습니까? pkist의 설교 제공조차 막고 나선 것이 실제인가요 연구소의 허위 선전인가요?




<가족 이야기는 '6번'부터 나옵니다.>




정암(正岩) 박윤선 목사

박윤선과의 만남
안만수 목사(화평교회 원로)

서론

필자는 정암 박윤선을 선택하였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한국 교회의 선택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세 권으로 편집된 『박윤선과의 만남』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을 출판하기 위해 필자는 오랜 기간 한국 교계에서 열심히 활동해 온 140여명의 인물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입니다. 이 가운데는 현재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필자는 두 가지 유익을 얻었습니다. 첫째, 필자가 일평생 존경하고 닮고 싶어 하던 정암을 좀 더 객관적이며 다채로운 관점에서 조명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정암의 목회와 신학 그리고 (심지어는) 가정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가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이 한국 교회에 적지 않은 유익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차례

1. 죽으나 사나 성경
2. 평생 재미 붙인 건 기도
3. 불덩어리 설교
4. 가장 성도다운 모습
5. 주님사랑 이웃사랑
6. 가정과 사명
7. 정암의 영향력

1. 죽으나 사나 성경

● 박윤선 목사님 하면 한마디로 딱 연상되는 것은 성경, 죽으나 사나 성경입니다. 오직 성경입니다. (오병세 총장 / 만남 2 / 221쪽)

● 박윤선 목사님이 주석에 미쳤으니까 그걸 해내신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의 광인이 생명의 장인이 된다’ 하는 게 저의 강연인데. 예수에 미쳐야 생명이 살아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여튼 그런 면에서 상당히 존경할 만한 분이고, 따라갈 만한 분이 없다고 봅니다. (권성수 목사 / 만남 1 / 192쪽)

박윤선 박사


● 박 목사님은 “죽었다가 깨어나 다시 한 세상을 산다고 해도 나는 목사가 되어 성경을 증거하겠노라”고 자주 말씀하셨고 “내가 평생에 힘써온 중요한 일은 신학 교육과 성경 주석 저술이었다”고 말씀했어요. 나는 지금도 박 목사님의 주석들은 세상의 여러 책들 중에서 가장 귀중하게 여기며 가까이에 두고 자주 읽습니다. 그리고 설교할 때마다 자주 “박윤선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토를 달곤 합니다. 박 목사님은 성경을 성경신학적으로 체계화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먹고 말씀의 깊은 뜻을 발견하는 것을 최대의 기쁨으로 삼으셨습니다. 박 목사님에게 있어서 성경 말씀은 양식이요 생명이요 기쁨이요 보화요 등이요 빛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주석과 설교에는 항상 새로운 영감과 통찰력이 나타나 있습니다. 박 목사님은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나타내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김명혁 목사 / 만남 1권 / 65-66쪽)

● 제가 1979년에 이 교회에 부임했는데, 1985년에 새로 장로가 임직하면서 한 장로님이 책을 한 질 사드리고 싶다고 하시길래, 제가 박윤선 박사의 성경주석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 그때부터 성경주석을 보니 그 양반의 삶이 그 말씀과 설교 속에 다 묻어나오더군요. 성경 주석도 있고 뒤에는 설교가 또 있지 않습니까? 성경도 아주 무리 없이 풉니다. 하나님 말씀 중심이라서 신비주의 같은 것은 많이 배제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 따라서 제 신앙과 신학을 많이 재편성을 했습니다. 재편성을 하면서 제 생활 자체를 그렇게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목회를 40년을 했습니다. (전병금 목사 / 만남 2 / 260-262쪽)

● 성경이 멈추라는 것에서는 멈춰라, 내가 인간적인 유추를 하면 모든 이단이 거기에서 난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상상력이나 철학으로 덧붙이지 말라,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말하지 말라. 이런 말씀들은 평생 제가 설교하면서 넘어가지 않게 한 힘이었습니다. (이문식 목사 / 만남 2 / 71쪽)

● 주석에 완전히 일생을 바침으로써 마침내 한국 교회에 유산을 남겨서 대대손손이 박 목사님의 신앙과 신학을 후대들이 배울 수 있는 이런 역사가 있었지요. 심지어 자기 가족마저도 희생한 그 부분이 느껴지는데,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김상복 목사 / 만남 3 / 19쪽)

2. 평생 재미 붙인 건 기도

● 1984년 9월 24일 화성교회 11시 주일 예배 설교에서 “제가 평생 재미 붙인 것은 기도밖에 없고 또 하나님 말씀밖에 없습니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현식 목사 / 만남 2 / 319쪽)

● 웨스트민스터에 가니까 박윤선 목사님의 새벽기도는 이미 전설이 되어 남아 있었습니다. 미국에는 새벽기도라는 게 없는데 박 목사님 혼자서 그렇게 기도하시고 떠난 뒤 그때까지 유명한 전설로 남아있어서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또 그런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교회나 한국 신학생들에 대한 웨스트민스터 교수들의 인상도 결정을 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때 우리가 지지리도 가난해서 완전히 장학금을 받아서 공부를 했지만 그래도 별로 무시당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박 목사님의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내 일생에 오늘의 저를 만든 데는 박 목사님의 위치가 엄청나게 중요했습니다. (손봉호 교수 / 만남 1권 / 69쪽)

● 학교(고려신학교)에 늘 나오셔서 아침마다 기도하시는데, 내가 한 가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며칠 동안은 다른 말 한마디 안 하시고 ‘죄인입니다’ 하는 말만 쭉 반복을 하시는 겁니다. (허순길 총장 / 만남 2 / 229쪽)

● (1983년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할 때의 이야기) … 식당에 들어가면서 목사님께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시는지 여쭈었더니, 젊을 때 산 기도를 워낙 열심히 해서 건강하다고 하셨습니다. 산에 가서 기도를 하면서 그냥 꿇어앉아서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 엎드려서 하는 것도 아니고, 일어섰다가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앉았다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기도를 했더니 지금 이렇게 건강하다고, 지금 건강한 것이 다 산 기도 덕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헬스를 한 것도 아니고 조깅을 한 것도 아니고 수영을 한 것도 아니고 산 기도 해서 건강을 유지했다는 분은 처음 봤습니다. (강영안 교수 / 만남 2 / 109쪽)

● 기도 없이는 그렇게 은혜로운 강의도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다른 교수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그 은혜 충만한 영향력은 박윤선 박사님의 기도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볼 때는 인간의 잔꾀 가지고는 그냥 안 돼요. 절대 그건 안 돼요. (정필도 목사 / 만남 3 / 102-103쪽)

● 제가 신학교(총회신학교) 다니면서 유일하게 정말 좋은 즐거운 시간이, 박윤선 목사님 강의하는 그 시간이 제일로 나는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제가 그 은혜를 많이 받았죠. (정필도 목사 / 만남 3 / 99쪽)

●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기도가 막히면 열릴 때까지 기도해라, 기도가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해라, 기도가 하기 싫으면 하고 싶어질 때까지 해라, 그러시면서 이렇게 기도할 각오가 없으면 목회할 생각하지 마라, 그렇게 얘기하셨습니다. (박삼열 목사 / 만남 1 / 319쪽)

● 기도를 할 때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마치 낭떠러지에 뿌리를 박고 있는 나무에 매달린 자의 그런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놓치면 난 이제 죽는다. 그런 절박함에 대해서 목사님께서 강조하셨는데 그 말씀에 제가 큰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영무 목사 / 만남 1 / 378-379쪽)

● 박 목사님이 체류하시는 기간 동안 암스테르담 한인교회에서 주일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때도 한국에서 오신 스물다섯 분 목사님들은 다 참석하셨습니다. …… 그날 목사님 설교가 한(恨)을 품고 기도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에서 과부가 한을 품고 재판관을 찾아가서 요구했듯이 우리도 한을 품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한’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한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권위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그 현실에 대해서 한을 품고 기도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성도들도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강영안 교수 / 만남 2 / 109-110쪽)

● 박윤선 목사님이 저한테 개인적으로 자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여보게 임자”, 저보고 김 목사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임자, 사람은 그저 기도한 만큼 되네. 더도 되지 않고 덜도 되지 않아. 꼭 그만큼 되네.” (김수흥 목사 / 만남 2 / 302쪽)

3. 불덩어리 설교

● 저는 주님을 향한 박 목사님의 열정, 그 열정에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학생이었을 때 그분의 설교는 불덩어리였습니다. 6·25 직후에 회개 운동이 일어나고 학생 운동 할 때 완전히 불덩어리여서 그 불덩어리가 학생들의 영혼을 다 태우는 겁니다. 불을 질렀어요. 그래서 그분의 신앙적 열정이 첫째입니다. (김상복 목사 / 만남 3 / 19쪽)

● 설교할 때 그분은 정말 피를 토해내는 열정, 가슴을 막 쏟아내는 열정을 보이셨습니다. 장경재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언젠가 한번 설교하실 때 강대상을 치셨는데 강대상이 부서질 만큼 그렇게 설교하셨다고 합니다. (조봉희 목사 / 만남 2 / 360-361쪽)

● 제가 목회자요 설교자로서 설교를 준비하고 설교를 하는 데 있어서 제가 좀 목숨 걸고 한다는 그런 마음이 늘 있습니다. (그 이면에 뭐가 있었느냐 하면) 제가 어린 대학생 시절에 보았던 박윤선 목사님의 열정적인 설교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노 목사님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그 열정 …… 설교할 때 목숨 걸고 하는 것 말입니다. (이광태 목사 / 만남 1 / 174쪽)

● 제 서가에 두 종류가 있는데, 항상 언제든지 볼 수 있게 중요한 책들은 주변에 둡니다. 바로 손이 닿는 곳입니다. 거기에 박윤선 목사님 설교집들을 따로 모아놓습니다. 그래서 어떤 설교를 하든지 항상 먼저 찾아보고 있습니다. 또 박 목사님 육성 설교를 제 스마트패드에 넣어서 여행할 때면 몇 편씩 듣습니다. 목사가 설교 듣는 자리에 있기가 쉽지 않은데 박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정신이 바짝 나더라고요. …… 제가 보기에 최고의 설교학 교과서입니다. (이재훈 목사 / 만남 3 / 210, 218쪽)

● 불도저같이 모든 것을 다 이렇게 쏟아 붓는 겁니다. 언젠가 그런 말씀을 들은 적이 있는데, 비누처럼 닳아지는 인생, 낭비하는 인생이 아니고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서,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정말 닳아지는 인생을 충만하게 살고 가신 분이 아닐까 싶어요. 그 열정이 부럽고 저도 남은 목회 기간 동안에 저분처럼 저렇게 그런 걸 다 쏟아 붓고 갔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박완철 목사 / 만남 3 / 203-204쪽)

4. 가장 성도다운 모습

● 박 목사님에게서 가식이 없고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발견하는데 그게 가장 성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손봉호 교수 / 만남 1 / 75쪽)

● 안만수 아무튼 박윤선 하면 친구로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래 교제하신 친구로서 박윤선 하면 뭐가 먼저 떠오르십니까?방지일 무자기(無自己)한 겁니다. 어린 아이입니다. 어린 아이 (방지일 목사 / 만남 1 / 28쪽)

● 어린아이 같은 순전함이죠. 그건 누가 흉내도 낼 수 없을 겁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순전해지시더라고요. (홍정길 목사 / 만남 1 / 103쪽)

● 안만수 이제 한국교회의 목회자나 한국교회 성도들이 그분한테서 본받아야 할 것을 얘기하신다면 무엇을 말씀하시겠어요?김명혁 그분의 삶과 인격이겠지요. 명예에 붙잡히지 않고, 인기에 붙잡히지도 않고, 세상이 알던 모르던 하나님 한 분을 바라보고 진실하게 사신 분입니다. 그래서 평생 기도와 말씀에 붙잡힌 분이십니다. 이것을 본받아야 되겠죠.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듯이 박 목사님은 참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죠. 그리고 마음에 긍휼이 있고 따뜻함이 있고 사랑이 있고 모두를 품으려고 하는 그런 삶이죠. 진실한 인격과 삶입니다. (김명혁 목사 / 만남 1권 / 66쪽)

● 그분의 순수함입니다. 권모술수가 없고 인간적인 판단이 없고 그저 하나님 앞에서 직선적으로 그대로만 하고 그대로 생각하시고 그대로 사시는 그 모습에 제가 많은 감명을 받았어요. (김상복 목사 / 만남 3 / 19쪽)

● 박윤선 박사님은 본인이 옳다고 여기게 되면, 본인이 어떤 누명을 쓰시게 되더라도 감수하고 침묵정진 하셨습니다. 한번 옳다고 결정하고 나면 그 결정을 번복하시지 않는 것이 그분의 특징입니다. (양영학 선교사 / 만남 2 / 93쪽)

● 1985년에서 6년 어간이었는데, 그때 제가 공과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윤선 목사님이 제 사무실로 전화를 하셔서는, “양 목사, 내가 오늘 밤에 어느 교회 주일학교 헌신예배를 가는데 뭐라고 설교해야 할지 모르겠어. 설교 하나만 가르쳐 줘” 그러시는 겁니다. 대학자가 손주 같은 제자에게 이렇게 묻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 같아도 자존심이 상해서 안 할 얘깁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님 앞에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겠느냐고 말씀 드렸더니,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아. 나한테 좀 주게”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쓰는 설교 본문을 가지고 줄거리를 말씀드렸습니다. (양승헌 목사 / 만남 1 / 198쪽)

● 가르치다가도 누가 물으면 “그거 나 모르갔다래” 그럽니다. 그것이 더 신통합니다. 그래서 인기도 더 있었습니다. 막 물어보면 “어느 학자가 말했나? 그거 나 모르갔수다” 하고 마는 겁니다. (방지일 목사 / 만남 1 / 17쪽)

● 제가 박 목사님께 신사훈 박사님이 한국에는 신학자가 한 명 반 있는데, 한 명은 자기 자신이고 그 반은 박윤선 목사님이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어릴 때 들은 적이 있다고 박 목사님께 말씀드렸더니, “참 고맙네요. 저를 그래도 반 명에라도 쳐 줬으니 말이요.” (강영안 교수 / 만남 2 / 113쪽)

● 그분의 삶 속에 그의 신앙과 신학이 녹아 나 있으십니다. 철저히 겸손하시고 진실하시고, 과장이나 가식적인 것이 전혀 없는 신앙인의 ‘참 모습’을 나는 그분에게서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 나는 그런 분하고는 너무 거리가 멀구나 하고 어떤 의미에서 양심의 가책을 많이 받습니다. (손봉호 교수 / 만남 1권 / 73쪽)

● 제가 영적으로 흐려질 때마다 이런 분도 이렇게 겸손하신데 감히 네 주제에 건방지면 안 되지 않겠는가! 하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려오곤 합니다. (이유환 목사 / 만남 3 / 66쪽)

● 아무튼 박윤선 목사님을 생각하면 또 그분의 목소리를 대할 때마다 울컥하는 것이 제 안에 있습니다. 그분이 당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 같고 토해내는 것 같은 그런 부분을 대할 때는 제가 너무 부끄러운 것을 느끼게 됩니다. … 어떤 진실성 같은 것이 그냥 그 자체로 와 닿는 듯한 그런 느낌을 솔직히 받습니다. 그리고 꾸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런 부분들에 압도당하는 느낌, 그래서 그 앞에서 너무 부끄러운 제 모습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황규민 장로 / 만남 1 / 292쪽)

● 박윤선 목사님의 삶과 신앙과 신학을 보면, 그분에게서 한국 교회가 받을 수 있는 것은 순수함입니다. 코람데오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박 목사님이야말로 코람데오의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예를 들어 그분이 권력을 구하거나 인기를 구하거나 사람을 보거나 허황된 생각을 하거나 이런 게 없어요. 그냥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거예요. 순수하고 깨끗한 그 신전(神前) 신앙과 삶이죠. …… 코람데오를 그대로 사신 분이라고 저는 느껴요. …… 우리나라 초기에 개혁주의 신학을 소개하신 박윤선 목사님이 어떤 인본주의적인 지식이나 사변화된 신학 체계를 소개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에 근거한 바른생활, 바른 경건의 모델을 함께 소개했다는 사실을 참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상복 목사 / 만남 3 / 20-21쪽)

● 박윤선 목사님이 얼마나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정말 죽을힘을 다한 거죠. 죽을힘을 다 하니까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하는 말씀을, 지금도 세상을 떠나셨지만 우리에게 하고 계시지 않나, 나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이종윤 목사 / 만남 3 / 419쪽)

5. 주님사랑 이웃사랑

● 그때 내가 예배당을 지으려고 윤선이보고 와서 설교하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손목시계 같은 것은 일본 사람이나 가지고 있었던 거고 윤선이한테는 회중시계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 누가 시계 찬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그때 일본 돈 2원짜리 큰 시계 하나를 윤선이가 가졌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은 찾기도 어렵습니다. 그때 윤선이가 와서 한 100명 조그만 방에 가득 모였는데, “자! 나는 이것밖에 없수다!” 그러고는 그 시계를 툭 내놨습니다. 그때 그걸 내놓은 겁니다. 그래서 좌우간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서 우리가 자립해서 그 교회당을 지었습니다. (방지일 목사 / 만남 1 / 25쪽)

● 언젠가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는데, 5분 내로 식사 하시고 가시는 겁니다. 박 목사님이 집요하게 말씀을 파고들어 연구를 하신 것처럼 우리가 한다면 목회 현장이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분의 그 집요한 연구는 결국 하나님에 대한 헌신이고 정성이었습니다. …… 성경 사랑이 바로 주석을 집필하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 미래를 내다보시고 작업을 하신 겁니다. …… 그만큼 성경을 사랑하셨고, 성경 중심의 교회를 만드시려고 주석을 쓰시면서 애쓰셨습니다. (권성수 목사 / 만남 1 / 191쪽)

● 목회하면서 개인적으로 박 목사님한테 받았던 사랑이 있습니다. 신학교 졸업을 하고 지방에
서 교회 개척을 했다가 서울에 있는 한우리교회로 올라왔습니다. 그때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제 막둥이 아들 언약이가 폐렴에 걸렸습니다. 병원에서는 폐렴이니 빨리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저희 집사람이 애기를 데리고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의사가 입원하라고 했으면 입원을 시켜야지 왜 데리고 나왔냐고 하니까 제 아내가 하는 말이 입원시킬 돈이 있어야지요,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제 가슴이 너무 많이 아팠습니다. 그만큼 그때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박 목사님께서 그 초기 힘들 때 오셔서 가끔 설교해 주셨고 위로도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와서 보시고 교회가 참 어렵게 시작을 하는구나 생각하셨는지 관심을 많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한번은 안 목사님을 통해서 백만 원인가를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님 이 돈 무슨 돈입니까, 물었더니 안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이것은 박윤선 박사님이 박발영 목사님한테 이렇게 전해 주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교회에다가 이렇게 무명으로 목사님이 주신 적이 있습니다. (박발영 목사 / 만남 1 / 321쪽)

6. 가정과 사명

● 결정적인 약점은 가족을 돌보지 못하셨다는 겁니다. 첫 번째 부인의 자녀들이 받은 일생의 충격과 고통과 눈물이 있습니다. 두 번째 부인의 아이들은 잘 돌본 거 같아요. 첫 번째 다섯 자녀들은 그 속에 말할 수 없는 상처와 한들이 있습니다. 얼마 있으면 그러한 책이 나올는지도 몰라요. 딸이 책을 썼더라고요. 그 딸의 얘기는 자기 아버지를 성자로 만들어 놨는데 우리 얘기를 들어야 균형이 잡힌다는 겁니다. …… 나도 그 말을 들으면서, 아 우리가 박 목사님에게 두 가지를 배워야 되겠구나. 하나는 먼저 말씀드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에 대한 겁니다. (김상복 목사 / 만남 3 / 21-22쪽)

● 이분의 고난이라는 것은 이분의 인격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분은 가정적으로도 고난이 너무 심해서 사실 어떤 면에서는 교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고난 중에 겸손하실 수밖에 없었고 엄청나게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 아무튼 그 자손들로 말미암은 고난이 많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모님도 전 사모님이 있고 후 사모님이 있잖습니까? 전 사모님에게서 난 다섯 분이 다 그렇게 박윤선 목사님을 향해서 어려움을 준 것은 아니고 그중에 둘 내지 셋이 그랬습니다. 제일 큰 고난을 준 한 자녀는 술 먹고 집에 들어와서 행패를 많이 부렸습니다. 아버지를 막 쓰러뜨리고 뒤로 잡고 막 그랬습니다.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또 고신측에서도 유명하다는 분을 찾아가서 이렇게 개판인 내가 박윤선 목사 아들이다 이랬던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에 대해서 무슨 나쁜 얘기를 한 게 아니라 그냥 자기가 이런 사람인데 이런 자기가 박윤선 목사 아들이다 그랬던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님도 소식을 듣지 않았겠습니까?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그러니까 그저 죽었다 하고 사시는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그 자녀가 예수 믿고서) 박윤선 목사님 사모님 앞에 와서 잘못했다고 큰 절을 했습니다. …… 그렇게 뉘우치고 이분도 돌아가셨습니다. 또 목사 안수 받은 따님이 아버지 앞에 와서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율법적이다. 아버지가 옳지 않다. 뭐 이런 말을 하면서 대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줬습니다. (김수흥 목사 / 만남 2 / 302-304쪽)

● 1952년 아마 9월쯤에 그 맏딸 춘란이하고 맏아들 춘호 그 두 아이가 미국 유학 준비를 하던 때예요. 박윤선 목사님이 찾아와서 날 보고 유학 수속을 좀 하라고 그래요. …… 그렇게 수속하다가 어려운 문제가 있어서, 목사님 이게 좀 어렵습니다, 하니까 “그래? 가보자!” 하시는 거예요. 내가 거기에 놀랐어요. 수속하다가 애로가 있으면, 나 같았으면 거참 큰일 났구나 어떡하지 그럴 텐데, 어려움이 있으면 “그래? 가보자!” 하시고 앞장서시거든요. …… 그분 딸도 그렇게 얘기해요. “우리 아버지는 그저 태산이라도 뚫고 나가요. 무슨 어려움이 있든지 가보자! 하고 앞장 서 뚫고 나가지요.” 이것이 오늘의 박윤선 목사님을 만들었구나, 제가 그걸 좀 느꼈지요. (박희천 목사 / 만남 3 / 506-507쪽)

● 아까 말한 딸(은란)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첫 사모님이 1953년에 교통 사고로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화란에 가서 계실 때에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결국은 공부를 반 년 하다가 들어오신 일이 있고, 또 딸이 그렇게 되고 나서 하나님 앞에서 그런 일들에 대한 괴로움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또 아시겠지만 아들로 인해 참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대신동에 살면서 어떤 때에는 이 아들이 밤에 술을 먹고 와가지고는 문을 두드리고 어떤 때는 부수고 그랬습니다.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저렇게 기도를 하시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허순길 총장 / 만남 2 / 229쪽)

● 안만수 목사님이 생각하실 때 한국교회 목사들이나 성도들이 그분에게 특별히 본받을 점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방지일 나다나엘과 같이 솔직한 면에 큰 감화를 받았습니다. 세브란스에 입원해 있어서 둘째 딸인 혜란이가 찾아가니까 “그저 진실해라. 충성해라” 그렇게만 말했답니다. 혜란이가 “아버지, 우리 오빠에게 한마디 좀 해주세요” 했더니 “난 하나님 앞에 몸 바쳐서 일한 사람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만 충성했지, 아들에게는 못 한 거 많다. 그러나 내가 뭐 아들에게 잘못했다고 해서 …… 하나님께서 지켜줄 거야” 하는 그 말을 했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몸 바쳤는데, 난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너희들 다 지켜주지 않겠냐, 하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 좌우간 내가 둘째 딸 혜란이에게 너는 새어머니한테 신세졌지 않았냐고 말했습니다. 혜란이가 서울대학에 갔을 때 후모한테 월사금 받아서 졸업했습니다. (방지일 목사 / 만남 1 / 27-28쪽)

● 자녀에 대해서 뭘 자랑하거나 하지 않고 그냥 말씀만 연구하고 전하니까 자녀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줄 압니다. 물론 상황이 중요하다 보니까 조금 소홀함은 있지만, 사실은 그게 다가 아닙니다. 제가 청년 때 본 기억이 있는데, 한번은 박 목사님이 뭔가를 이렇게 불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보니까 풍선이었습니다. 그때가 50년대 후반이니까 옛날인데, 아무튼 그때 그 자녀가 보낸 풍선을 불고 계셨던 겁니다. 자녀들이 미국에서 보낸 것입니다. 그때는 그게 다 희귀한 것 아닙니까? 그것을 보고 제가 학자의 자녀 사랑이 참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얘기는 잘 안 하시는데 그걸 불고 계셨습니다. 웬만하면 애들이 보낸 그런 풍선 같은 것은 그냥 무시할 텐데, 그걸 불고 계셨던 겁니다. 물론 미안한 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늘 기도하신 것은 사실 아닙니까? 하나님께 다 맡겼던 겁니다. 자녀들이 그걸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윤영탁 교수 / 만남 2 / 243쪽)

● 덴버에 온누리교회를 개척해서 1년 쯤 목회를 하고 있었을 때 박 목사님 큰 따님이 오셨어요. …… 둘째 따님인 박혜란 집사님도 몇 번 오셨어요. 그래서 덴버에서 박 목사님 가정을 만나게 됐어요. ……한 삼사 년 쯤 됐는데 어느 날 박혜란 집사님이 갑자기 저한테 찾아오셔가지고 “목사님, 저희 가정에 좀 심방을 해 주세요” 그러는 겁니다. … 막내 동생이 지금 어려우니까 목사님이 기도 좀 해주십시오 하는 겁니다. …… 그분은 저하고 나이가 같던데 암으로 투병을 하면서 말기로 사실 사형선고를 받고 기다리고 있더군요. …… 그 댁에 갔는데 ‘오직 믿음’이라고 쓴 박윤선 목사님의 서예 액자를 다 꺼내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가는데 들어가는 시간부터 저를 붙잡고 우는 겁니다. 그분이 그때 나이가 벌써 마흔이 넘었을 땐데 제가 단지 박 목사님의 제자라는 것 때문에 그렇게 마음을 주고 울면서 “목사님, 전 죽일 놈입니다. 전 죽어야 됩니다.” 그러면서 “저 아버지, 저렇게 좋으신 아버지의 말씀, 저 액자를 사십 평생 제가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저 나쁜 놈입니다.” 그러면서 계속 회개하시고 우시는 거예요. 지하실에 쳐 박아 놓고 있었답니다. 자기 말로, 보기도 싫었습니다 그래요. …… 그분이 그러더라고요. “목사님, 나 주일에 예배드릴 때 우리 아버지 방해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설교하려고 하는데 지붕에 올라가셨대요. “아버지 사탄 노릇하려고” 그랬어요 하는 겁니다. …… 자기는 죽일 놈이고 이렇게 못된 놈이고 하시는 겁니다. 그 회개 가운데 “나는 정말 아버지한테도 그 교인들한테도 정말 못할 짓을 했어요. 정말 나는 나쁜 짓을 했어요”라고 하시면서 어렸을 때 그 아픔을 말하고 아버지에 대한 불효를 회개하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병이 나서 철이 드니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가, 아버지께서 남기신 그 말씀 하나 하나 자기 가슴에 생각이 난다는 겁니다. 이제야 내가 깨우치게 되었는데 말할 수 없는 후회와 죄송한 마음뿐이다 하면서 회개를 다 하시더라고요. …… 그렇게 제가 만나고 나서 한 달 정도 있다가 세상 떠났어요. 제가 신학교 1학년 때 총신 뒷동산에서 박 목사님이 저의 손을 잡고 “우리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셨는데 …… 그 기도를 우리 박 목사님이 꾸준히 하고 계셨고 결국은 그 기도가 상달되어 응답되는 하나님의 큰 은혜와 역사를 보는 개인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참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 박 목사님을 크게 쓰시려고 이러한 아픔도 주셨지만 또 그런 축복도 주셨다. 역시 영적인 거목으로서 이런 큰일을 하셨다 이런 체험을 했습니다. (정봉채 목사 / 만남 3 / 527-530쪽)

● 안만수 그러면 박 목사님의 가정은 어떻게 느끼셨어요. 홍정길 아, 우리 교회 박 목사님의 따님인 박혜란 씨한테 들었는데 우리는 존경하는 박윤선 목사님이지만 박혜란 씨는 사랑하는 아빠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하고 견해가 다른 게 많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사과를 했어야 했다고 말입니다.안만수 그건 타당성이 있는 얘기도 됩니다. 유명한 목사님인데 들어가 보면 그 자녀 중에 불행하게 집을 나간 경우도 있습니다.홍정길 그건 나도 이해합니다. 내 아들이 결혼할 적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안 하고 시카고에서 했습니다. 사람들 찾아오는 것도 그냥 부담이 되고 그래서 아주 간단하게 후배 교회에서 양가 내외하고 미국에 사는 친지들이 간단하게 한 30여명 모여서 결혼식을 했습니다. 전날 밤 내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너, 나하고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뭐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내가 아빠 얼굴을 어릴 적에 본 기억이 없어요” 하면서 울더라고요. 그때 내가 놀란 겁니다. 나는 새벽기도 갈 때 보고 또 들어와서 새근새근 잠자는 그 머리맡에서 기도해주고 들어갔으니까 나야 봤지만 걔가 나를 못 봤다는 걸 내가 그 날에서야 알고 사과했습니다. (홍정길 목사 / 만남 1 / 102-103쪽)

● 박 목사님이 우리가 3학년 때 아까 말씀드린 문제로 속상하시기도 하신 측면이 있었지만, 또 우리한테 당신이 젊었을 때 가족들을 돌보지 못하신 것에 대해 솔직히 드러내시면서 이제 남은 시간은 가족들과 같이 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이라고 하면 하나님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희생하고 내놓는 그런 이미지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었는데, 이런 말씀들을 통해 박 목사님도 인간적인 측면이 있으시다는 것이 우리 세대한테는 또 도전이 되었습니다. (강경민 목사 / 만남 1 / 285-286쪽)

● 1988년 1월 1일에 미국에서 제가 목사님 댁에 세배를 갔습니다. 세배를 드리고 목사님이 해삼탕을 좋아하셔서 오렌지 카운티에 있는 한국계 중국식당에 가서 대접을 해드렸더니 식사를 마치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일생 동안 한 번도 가족을 데리고 피크닉을 간 일이 없다. 그리고 영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I regret!” 내가 그거를 후회한다. 한국말로 하기는 힘드셨는지 영어로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너 열심히 공부하고 또 신학자의 길을 가지만 나같이 그런 실패는 하지 말아라 그런 말씀입니다. 아버지로서 나는 너무 부족했다. 또 가장으로서 집안 식구들을 돌보는 일에 내가 너무너무 약점이 많다. 이런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루도 피크닉을 간 적이 없고 하루도 휴일을 가진 적이 없고 오직 불철주야 시간을 집중해서 주석을 하셨던 것 아닙니까? (김재성 부총장 / 만남 2 / 166쪽)

● 사실상 교역자만 가정을 소홀히 하는 게 아니고 웬만한 직업을 가진 모든 아버지들은 가정적이면서 또 직장의 일까지 잘하기는 어려워요.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어느 정도 희생되기도 합니다. 또 아버지의 역할이 있는 거고 어머니 역할이 있는 것이죠. 제가 볼 때 지금 현재의 교역자들이 너무 가정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면서 오히려 목사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는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홍민기 목사 / 만남 3 / 90쪽)

●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박 목사님이 여러 번 어려움을 겪지 않으셨습니까? 고신에서도 그랬고, 총신에서도 그랬습니다. 박 목사님이 반응하는 방법은 맞서질 않고 밀려난 데서 일하시는 것이지 않습니까? 저쪽으로 떠밀어놓으면 거기서 일을 하십니다. 보복하거나 되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떠밀려 간 데가 그저 하나님이 보내신 데라고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사람이란 분노하는 게 천성이요 남이 한 것에 슬쩍 편승하는 게 인간의 본성인데 어떻게 극복하셨나 싶습니다. (박영선 목사 / 만남 1 / 109쪽)

7. 정암의 영향력

● 제 신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개혁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는 좁은 의미에서의 신앙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바쳐져야 한다는 사상이고, 바로 이런 사상이 어떤 의미에서 제 일생 동안의 활동에 핵심이 되었습니다. 기윤실 활동이나 지금 하고 있는 여러 가지 활동이나 시민운동을 할 때에도 이런 활동이 제 신앙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의 신앙이 바로 활동의 일부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바로 개혁주의 사상이고 그 개혁주의를 나에게 알려준 분이 박윤선 목사님입니다. 그런 점에서 박 목사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겁니다. (손봉호 교수 / 만남 1권 / 73쪽)

● 그때(미국 필라델피아에 있을 때) 난 박 목사님을 통해서 가르치는 사역과 목회 사역을 겸할 수 있다는 것을 본 겁니다. 그러니까 현재형 목회자가 신학교의 교수가 될 수도 있고, 또 그래야 된다고 봅니다. 또 교수도 현재형 목회자가 될 수 있고, 그래야 온전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확증을 갖게 되는 겁니다. (이종윤 목사 / 만남 3 / 408쪽)

● 저는 박윤선 목사님의 영력이라고 그럴까, 영적 파워가 기도를 통해서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고 또 그 성품 자체가 참 은혜 충만하신 분에게서 흘러넘치는, 너무너무 존경스러운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모습, 그런 것이 아주 눈에 선하고 너무너무 본받을 수밖에 없는, 본받아야겠다고 하는 그런 아주 간절한 마음이 그때부터 있었어요. (정필도 목사 / 만남 3 / 103쪽)

● 여기 신앙 기초로 말하면 아무래도 박윤선 목사님과 박형룡 목사님이 그 기초지요. 여기 서탑교회(심양 소재)도 그 뿌리입니다. 아직까지 그 뿌리인데, 공산당이 들어오고서 교회가 여러 가지 많은 곤란을 받긴 받았지만 신앙의 뿌리는 박윤선 목사님의 신학이에요. (오애은 목사 / 만남 3 / 370쪽)

● 박윤선 목사님이 계속 강조하셨던 것은 영광 받는 자리가 위험한 자리다, 영광 받는 자리에서 철수해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평생 지론입니다. 그래서 제가 목회하면서 제 생일을 일부러 숨겼습니다. 생일을 알게 되면 큰 교회 같으면 그 날에는 황제 취급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가 세상에서 이런 영광을 받고 가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해서 생일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게 한 겁니다. …… 이런 것이 전부 박윤선 목사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뼛속에 스며들어 있는 좋은 교훈입니다. (권성수 목사 / 만남 1 / 194-195쪽)

● 저는 어떤 것보다도 박윤선 목사님의 계시의존사색, 거기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순근 목사 / 만남 3 / 143쪽)

● 박 목사님의 가르침이 제게는 선교 지향적인 목회를 하도록 하는 데 아주 큰 영향을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인석 목사 / 만남 3 / 155쪽)

● 저는 구제와 선교를 목적으로 목회하는데, 그 이유는 박 목사님이 늘 수업 시간에 하신 말씀이 그 두 가지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너무 뿌리 깊게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에 지금도 실천하고 있습니다. (장덕만 목사 / 만남 3 / 376쪽)

● 교회를 위해서 목사가 있는 것이지 목사를 위해서 교회가 있는 게 아니다. 그거는 제 마음속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허태성 목사 / 만남 3 / 438쪽)

● 목사들은 돈 조심, 명예 조심, 여자 조심해야 한다. 지금도 그 메시지 때문에 돈에 대해서 철저히 투명하게 합니다. 손봉호 이사장님이 박윤선 목사님의 영향을 받으신 것이 저에게까지 영향을 미쳐서 샘물호스피스가 투명성에 대해서는 신용이 대단합니다. 제가 외부에서 강의를 하면 한 달에 오백만원에서 천만원 사이로 강연비를 받는데 다 후원으로 처리합니다. 작년 한 해 동안에 한 1억 정도를 후원 처리해서 다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 샘물호스피스의 모든 동역자들은 강사비를 받으면 다 후원 처리합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지 돈 중심으로 살면 안 된다 하는 것을 제가 박윤선 목사님에게서 배운 가장 큰 가르침입니다.제가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고 결국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니 자랑할 것도 없고 잘 된다고 자랑하지도 말고 안 된다고도 낙심하지도 말라는 그 뜻이 그렇게 기도하라는 속에 들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도록 공부하고 싱싱하도록 기도하라가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서 제일 크게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원주희 목사/ 만남 1 / 3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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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발제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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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아들'이 읽은 박윤선 목사 딸의 <목사의 딸>

박혜란의 <목사의 딸>...한국 기독교의 태생적 한계와 오늘날의 과제





<목사의 딸>(박혜란, 아가페북스) '故 박윤선 목사의 딸이 말하는 아버지의 신앙관과 가슴 아픈 가족사'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목사의 딸'이란 책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슬픈 가족사'란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는 한국교회가 존경해마지 않는 박윤선 목사의 딸로 박윤선 목사의 삶을 어쩌면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생생한 증인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 그려 주는 박윤선 목사의 민낯은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과연 딸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하여 이렇게 적나라하게 글을 쓸 수 있을지 한국적 마인드라면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에서 지내면서 한국적 온정주의에 빠져 있지 않고, 부모라 할지라도 사랑으로써 진실을 말할 수 있는(speaking the truth in love) 성경적 관점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아내와 함께 먼 길을 가면서 운전대를 잡은 아내에게 이 책을 읽어 주었다. 아내는 내가 책을 읽어 줄 때 책의 내용에 놀라움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어머나… 이럴 수가…" 문장 하나하나를 읽어 나갈 때마다 어쩜 그렇게 박윤선 목사가 매정했을까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박윤선 목사는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분이었다고 저자는 증언한다. 아내에게 매정하게 대했고 자녀들에게도 전혀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보여 주지 않고, 오직 연구하고 책을 쓰는 일과 교회의 일을 하는 일에만 매어 달렸던 분으로 그리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성경적인 세계관보다는 육과 영을 구분하고 육적인 차원은 무가치하고 더러운 것으로 보는 비성경적인 이원론적 세계관에서 나온 행동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모습이 한국교회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데, 거슬러 올라가면 목회자들의 스승이었던 박윤선 목사에게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하긴 박윤선 목사가 원래 유교적 전통에 깊이 뿌리박힌 상태에서 복음을 받아들였으니, 당신 스스로 유교적 전통을 벗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저자는 박윤선 목사에게서 율법주의 신앙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면을 지적한다. 박윤선 목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기보다는 죄를 지으면 엄벌에 처하는 무서운 하나님이었고, 따라서 하나님의 벌을 피하기 위하여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율법주의적 신앙으로 일관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박윤선 목사가 선교사를 배웅하기 위하여 택시를 탔다가 결국 교단으로부터 교수직을 박탈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박윤선 목사가 그때 택시를 탄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게 저자의 증언이다. 박윤선 목사는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하는 것을 생명으로 알고 지켜야 했으며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알려 주는 데에는 실패했던 분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얼마 전 우리 가족의 경사가 있어서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예전에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단벌 신사였던 나의 선친이 양복 윗도리를 큰집에 놔두고 오는 바람에 어머니는 주일날 동생인 나의 외삼촌에게 자전거를 타고 가져오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다른 외삼촌이 나의 어머니를 향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고 한다. "누나만 혼자 지옥을 갈 것이지, 왜 동생에게까지 일을 시켜서 동생도 지옥 가게 해?"



그렇다. 당시에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은 주일 성수는 하나의 가장 중요한 율법이었고 주일을 범하면 지옥을 가는 줄 알았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결국 신학교에서 가르치던 박윤선 목사에게로 그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율법주의적 신앙에는 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야 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구원파를 비롯하여 수많은 이단들이 발호하는 것은 결국 한국교회의 율법적인 신앙관에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는 철저하게 율법주의를 배격하고 있지만 왜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율법주의적 신앙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더 나아가 박윤선 목사는 샤머니즘적 기복주의에 사로잡힌 분이었다.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여 복을 얻는 것이 신앙의 기조였던 것이다. 그가 네덜란드에서 보낸 편지를 보면다. 우리가 흔히 듣던 철저하게 물질주의적이고 기복주의적인 생각이 별로 공부를 하지 못한 부흥사들의 하나님을 잘 믿은 국가였기 때문에 화란이 잘 사는 나라이며 선진국이라는 천박한 생각이 나타난 입에서만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그래도 당시에 가장 많은 학문을 했다고 생각되는 박윤선 목사의 생각에서 나왔다고 하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 한국교회 안에 깊게 뿌리박혀 있는 샤머니즘적인 기복주의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임을 잊게 만들고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화를 내고 정성을 다하면 축복해 주는 샤머니즘적 신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김성수 목사의 말대로 한국 안에는 양복 입은 무당들이 가득하게 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박윤선 목사는 시대의 아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철저하게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사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가족들을 돌보지 않고 그저 태연한 척 하는 것이 선비라고 생각되는 문화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아무리 복음을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비판보다는 안타깝게 생각하며 동정하는 마음이 있다. 사실 나도 목사의 아들인데, 나의 선친도 박윤선 목사보다는 좀 더 나은 것 같았지만 크게 보면 다르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몇몇 부분에서는 나의 선친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했다. 아니 아직까지도 내 안에 들어 있는 나의 단점을 읽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회개한다. 좀 더 철저하게 복음으로 변화되는 내가 되기 위해서 기도한다.



박윤선 목사가 한국교회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은 분명 무시할 수 없다. 박혜란은 자신의 아버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남편 욕을 하는 아낙네들이 은근슬쩍 남편 자랑을 일삼듯, 박혜란의 글 속에서는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박윤선 박사의 장점들도 여기저기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시대의 아들로 태생적 한계를 지닌 분이었다.



박혜란의 책 '목사의 딸'은 한국교회의 갱신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바로 이때에 타이밍을 잘 맞추어 등장했다. 나는 이 책이 단순히 전처의 딸로서 아버지에게 맺혀 있던 한풀이를 악의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한국교회가 더욱 복음으로 갱신되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우리에게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시의적절하고 한국교회의 현재를 고민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할 책이다. 아픈 가족사를 들추어내면서까지 한국교회의 갱신을 걱정해 준 박혜란 목사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나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더더욱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깨닫는다. 한 없이 부족하고 자격이 없는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2014.12.8.뉴스앤 조이/ 이국진 목사)



이국진

대구 남부교회 목사. 저서로 <예수는 있다>, <사랑>이 있다.



뉴스앤조이 http://www.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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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2 16:39
    위대한 종들은 시대의 바람을 홀로 맞으며 끝까지 견딘 분들입니다. 그 과정에 가족들은 가지들처럼 찢겨 집니다. 위대한 종들은 위대하나 그 가족들은 대개 그만큼 위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다가 센 바람을 맞으니까 위대한 종은 더욱 찬연히 돋보이나 주변의 가족은 대개 그 옆에 서 있어 대비가 되니 상대적으로 어두워 보입니다.

    마태복음 5장 14에서 '산위에' 동네가 되어 모두에게 너무 밝게 잘 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흠이 잘 보이는 겁니다. 적어도 우리보다는 위대한 종들의 가족들이 더 나은 편인데 옆에 있다 보니 착시현상 때문에 우리보다 덜해 보입니다.

    20여명의 손주분들이 모두 세계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각자 자기 갈 길이 바쁘다 보니 옛 결의를 잊었겠지요. 솔로몬도 다윗에게 나라를 이어 받을 때의 초심이 훗날 흐려 졌는데 솔로몬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은 좀 그렇지요? 분명한 것은 1994년쯤 번역물이 잠깐 보여서 기대를 했는데 이후 영영 소식이 없습니다. 손주들의 번역은 종료인 듯하지만 손손주에 가서라도 벌떼처럼 일어나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며 기도해봅니다만 최근 고소건을 보면서 그 싹을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이미 한국에는 넘치게 전했고 지금 고소해서 여기를 막는다 해서 부산이 나아질 리는 없습니다. 저부터 부산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예전에 받은 자료로 충분하고 주변에 전화하면 모두 서로 교류합니다. 손주들이 전부 이 노선의 최일선에 서서 굶어가며 이 복음을 전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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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는 '하나님에 대한 명예훼손' - 잇따르는 언론보도 이미지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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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생의 '사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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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삼키는 좌익 원수의 접근법과 교회의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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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한글 - 설교록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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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을 투표소로 사용하는 문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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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만 하면 교만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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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과 반거짓말 어느게 더 위험한가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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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에 대한 인격 평가 - 1988년, 백영희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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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연구서들을 '음성화' 경험담 (2)
독자 | 2018.05.20 | 추천 0 | 조회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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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공3집회 말씀 재독 - 파일 요청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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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 유다의 구원을 연구하면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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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의 사경회 교재 (요청)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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