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연구

태생적인 일장일단

작성자
교인
작성일
2022.06.20
사람은 자라면서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특히 어떤 가정 환경에 노출되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성, 성품, 성격, 품성, 말투, 인상 등이 평생 따라 다니는 면이 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무슨 장단점이 있을까?
극단적인 가정에서 자랐다면 무슨 장단점이 있을까?

예사롭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면 ...
극단적인 가정에서 똑같이 자랐어도 한명은 아버님 기념관을 지키고 또 한명은 무당 굿 하다가 평생을 마귀 노릇한 자도 있다.
왜 이런 결과의 차이가 있을까?
극단적인 가정에서 마음 한번 잘못 먹으면 폐인되기 쉽다.
반면 극단적인 가정에서 자랐어도 주님이 붙드시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뭄에 콩나듯 간혹 가끔 의인도 존재한다.
수달로 만드는 성전 웃덮개처럼 극단적인 그 환경이 들어 극한의 모든 환경을 초월하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자도 있다.
잠자는 것, 밥 먹는 것, 잠자리 이런 것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들이다. 본능이다.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까?

금식을 15일 이상 해 본 사람, 밥을 하루에 6끼 이상 폭식해 본 사람, 둘 다 해 봤다면 극단적인 사람이다.
잠을 한 숨도 안 자고 3일 이상 버텨 본 사람, 잠을 하루에 12시간 이상 계속 자 본 사람, 둘 다 해 봤다면 극단적인 사람이다.
설교록에도 보면 부부 잠자리를 두고 조절의 필요성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평생 한 두번이 아니라 일정 기간동안 지속적으로 해 본 사람에게 해당되는 단어(극단)일 것이다.

원수에 대한 원한이 생기면 밥도 잠도 성욕도 사라지는 법이다.
자녀를 감금, 폭행,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부모가 그 살인자를 보면 이를 갈 것이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주님이 흘리신 눈물의 의미에 비할까마는,
극단은 원한에서 기인하는 면도 많다.
왜 그런 극단적인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었을까? 사연을 듣고 나면 손가락질 대신 불쌍히 여기는 긍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것을 본인 스스로 방향만 살짝 바꿔서 사람에게 대한 원한이 아닌 마귀에 대한 원한으로 바꾸어서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 무기 재료로 삼는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여름 땡볕에 진흙은 더욱 단단하게 굳고 얼음은 녹아 버리듯
어려움을 만나면 폐인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욱 강해지는 사람도 있다.
근본, 씨, 종자가 달라서 그런 것일까?
가정 환경, 형편의 단점이 들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배경의 장점이 들어 그 사람을 망칠 수도 있다.
주님의 선택 역사와 주님이 전적 결정하시는 주권의 현실관을 바로 알고 나면
우리 집에 돈이 없어서 나는 못 배웠다. 부모 탓이다. 돈 없는 가정 탓이다. 못 배워서 가난해서 이 모양 이 꼴이다.
아버지가 술주정뱅이라서 어머니가 도박 노름에 집안을 안 돌아봐서 지금 내 신세가 이렇게 파탄났다.
내가 못 나서 내 자식들은 지금 요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하는 이런 말들은 할 수가 없는 법이다.


극단적인 소리를 자주 듣는다면 그 극단極端이 극진極盡(시편48:1) 또는 극한極限(고후8:2)으로 바뀌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럼 주의 은혜가 들어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고 성신이라는 신의 경지에 이르러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히11:37-38)


시편48:1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송하리로다
고린도후서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히브리서11:37-38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전체 23

  • 2022-06-20 12:47
    환경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변하면 환경이 안 변해도 상관 없다.
    환경이 변하기를 바라기 보다 내가 변하는 것이 더 빠르고 쉽다.

  • 2022-06-20 13:35
    가정 형편이나 주변 환경을 통해 '나'라고 하는 사람을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로 만드시려는 주님의 사랑.

  • 2022-06-21 06:06
    돈을 악착같이 벌어 갑부가 되어 본 사람
    번 돈을 연보로 구제로 전부 흩어본 사람

    천국과 지옥이 극과 극이듯이
    사람과 하나님도 극과 극인데

    이런 양 극단은 하나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 증거가 바로 신인양성일위의 주님이시다

    평범 속에서 성자 성녀가 나고
    극단 속에서 시대를 감당하는 극진의 종들이 탄생한다

    극한 환경 속에서 그런 한계를 극복하는 사람 만드시려고 주님이 허락하신 현실이다
    인간 한계의 끝이라 할 수 있는 극한極限 속에서 그 한계를 극복하는 극한克服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은 사람인데 하나님 같은 사람 만드시려고 그 과정 속 비밀은 극단極端 을 뛰어 넘는 극한克服 이다
    극한極限 은 극한克服 을 가능케 한다

    그런고로 재림전 환란은 우리 기독자들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필수 과목이다
    지금의 어려움은 앞으로 닥칠 본시험에 대한 연습일 뿐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지금의 고난을 즐겨라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 2022-06-21 06:10
    한자를 정정합니다.

    극한極限 은 극한克限 을 가능케 한다
    이는 극복克服이다

  • 2022-06-21 08:23
    돈을 악착같이 벌어 갑부가 되어 본 사람
    번 돈을 연보로 구제로 전부 흩어본 사람

    천국과 지옥이 극과 극이듯이
    사람과 하나님도 극과 극인데

    이런 양 극단은 하나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 증거가 바로 신인양성일위의 주님이시다

    평범 속에서 성자 성녀가 나고
    극단 속에서 시대를 감당하는 극진의 종들이 탄생한다

    극한 환경 속에서 그런 한계를 극복하는 사람 만드시려고 주님이 허락하신 현실이다
    인간 한계의 끝이라 할 수 있는 극한極限 속에서 그 한계를 극복克服하는 극한克限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은 사람인데 하나님 같은 사람 만드시려고 그 과정 속 비밀은 극단極端 을 뛰어 넘는 극한克限 이다
    극한極限 은 극한克限 을 가능케 한다

    그런고로 재림전 환란은 우리 기독자들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필수 과목이다
    지금의 어려움은 앞으로 닥칠 본시험에 대한 연습일 뿐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지금의 고난을 즐겨라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 2022-06-21 22:48
    천성 말고는 힘든일인데,
    강요하는것은 아닌것 가타.
    1사람이 1만명을 먹이는 사람이
    있을수 있으나, 그것은 많치를 못하다.
    괜한 오해와 반문만 있을뿐이다.
    극단이 본론이고, 원론적이나
    선지자의 길이라는 것이 서론이라면,
    결론은 순교겠지만,
    첨부터 빵점을 때리면 누구든지
    추스리기 어렵고,강하면 부러지는게
    요 30년 일까 보다.
    설교는 전하는 것이요.
    가르치는것이지만 아들들은
    내꺼라 할것이니 어찌할까!
    귀신은 빈틈을 노리는듯 하다.

  • 2022-06-22 04:39
    극단의 미학.

    우리를 위해 40일 금식하신 주님
    말씀을 굶어본 자들의 심정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실 주님이시다

    하나님 자리에서 인간의 자리로
    인간에서 죄인의 자리로

    위치적으로 하나님 자리에서 죄인의 자리까지
    저 지옥 밑층까지 가셔서 우리를 건지신 주님

    죽으시고 삼일동안 음부에서 우리의 형벌을 대신 받고 계셨던 주님
    인간은 인간인데 인간을 초월한 존재 하나님 다음 위치

    우리는 천국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까? 왕노릇!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가 할 일은 만물 통치

    다스리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다양한 현실을 만나게 하사 그 통치 실력을 마련케 하신다.

    항상 기뻐할 수가 있는가?
    사랑하는 아내가 병으로 생을 마감하고 금쪽같은 자녀들이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 한다면 그래도 감사할 수 있겠는가?

    왜 나를 택하셨나이까? 목적의식
    왜 나를 구속하셨나이까? 대속의식
    왜 재림하시나이까? 재림의식

    매순간 지식이 뚜렷하면 마귀에게 빈틈을 주지 않게 된다
    성내는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화가 날 때는 잠시 그 자리를 떠나 억울하게 죽으신 주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라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동안 그리고 부활 이렇게 시간적으로 주님의 사활 대속의 행적을 찾아가다 보면 미움의 살인도 면한다

    죽기 살기로 사활을 건 신앙 전투에서의 진정한 무기는 뭔가?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데서 모든 극단적인 상황은 초월하게 되고 우리 구원 양식과 밑거름이 된다

    겨자씨 한 같은 믿음처럼 외부의 그 모든 것은 내 구원을 위해 다 필요하다
    심지어 마귀까지 내 구원에 이용물이다

    이를 안다면 부모는 가장 존경스러운 분이고
    내가 자라온 가정 환경은 지나고 보니 주님이 만들어 주신 천국이었다

    비록 아버지가 일 못하는 폐인이고 어머니가 알콜 중독에 도박으로 밖으로 겉돌았어도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릴 때부터 고아였어도
    남편이 일찍 돌아가 일찍부터 과부로 고생했어도
    지나고 보니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 주님을 더욱 간절히 찾게 된, 그 때가 바로 하늘 나라 천국이었더라

    극단에서 주님을 만나고 천국을 경험하다
    (살아 생전)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마음이 다 가) 있으리라

    생과 사의 사활은 극단이다
    자의적으로 미화시키려는 극단이 아니라 주님이 그렇게 만드신 미학이다

    극단의 미학.


    에베소서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 2022-06-22 06:02
    므리바 물가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의 완고함을 보고 화냄으로 가나안에 못 들어갔다
    모든 불의, 죄악의 잔혹함, 구원을 손해케 하는 아말렉 같은 세력들을 볼때마다 어떻게 그런 죄악들을 이길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피동, 영향을 안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무자비한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님의 사활 대속이라는 사랑이다.
    제 아무리 극심한 고문 고형이라도 사활 대속이라는 다이몰핀만 맞으면 그 모든 극단의 고통은 주님이 깨우시는 간지럼에 불과하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선이다.
    선으로만 악을 이길 수가 있다.

    주님이 죽으시고 삼일, 그리고 부활.
    다시 한번 더 깊이 십자가 사활의 대속을 시간적으로 또한 전체적으로 연구해 보자

    안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다
    믿음, 소망, 사랑처럼 아는 지식도 무한으로 자라가는 법이다.

  • 2022-06-22 06:32
    극단에서 폐인이 나오기도 하고
    극단에서 시대를 감당하는 종이 나기도 한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
    일제시대와 6.25 전쟁이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기도 하고 더욱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평범한 일상과 극단적인 상황을 통과하면서 사람은 하나님 같은 초인의 존재가 된다
    신인양성일위의 주님처럼 말이다.

  • 2022-06-22 06:42
    집중과 분산

    요한계시록의 사도 요한처럼 집중해서 글을 적을 때가 있고
    글쓰기를 잠시 내려 놓고 마음을 분산시켜 가끔은 정원을 둘러볼 필요도 있다
    분산은 집중을 위한 재충전이다

  • 2022-06-22 07:23
    전교 1등 하다가 전교 꼴찌로 추락.
    둘 다 해 봤다면 그는...

    그는 신앙 걸음에 있어서 주님이 어떤 현실을 주시든지
    잘 나갈 때 우쭐대지 않을 것이고
    비참할 때 낙망하지 않을 것이다

    가난은 부자보다도 더 큰 자산이 될 수도 있고
    꼴찌는 1등보다 더 큰 자산일 수도 있다.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할 수 없듯이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마음 한 가운데 중심, 전심 전력을 다하는 충성이 있는가?
    죽도록 있는 힘 다하는 극진은 어디서부터 발원되는가?
    평범이라는 일상과 특수 상황의 비상 속에서 사람은 만들어진다


    빌립보서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2022-06-22 08:51
    일상의 기록

    부공3 교인이라면 누구나 남단의 담당님 글을 닮고 싶을 것 같다
    내게는 없는데 남에게 있는 것, 독서라는 공유를 통해 얼마든지 내 것 삼을 수가 있다
    큰바위 얼굴 예화처럼 나는 아니라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내가 큰바위 얼굴이 되었더라는 교훈이다

    모세 후계자는 여호수아 그 다음은 사사 시대
    칼빈에서 그 제자가 아닌 총공회 백영희로 그 다음은 부공3 그 다음은 내부인가? 외부인가?

    정통 촛대의 이동은 끊임없이 변하고 변하지 않는 보수와 개혁의 경계 선상에 서 있다
    일상의 기록, 지나친 기록의 의인도 지나친 침묵도 때로는 독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글을 읽는 독자일 때와 글을 쓰는 필자일 때의 감이 다르다.
    교인이라면 설교자로 섰을 때와 설교를 듣는 청중자일 때의 태도와 마음 자세는 같을 수가 없다

    한 가정교회의 목회자라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강단에 서 보기를 추천한다
    긴장감은 사람을 조심하게 만들고 순간순간 두려움의 경외로 하나님 앞에 서게 만들어 나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약재료가 된다

    인생 계산도 필요하나 직접 몸소 해 보고 걸어가 보지 않고 머리로만 계산해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세계,
    이를 우리는 항상 두길, 오직 한길의 노선이라 부른다.

  • 2022-06-22 09:25
    듣고 보고 따라해 보는 모방이 사람을 자라게 한다
    자생적인 독립신앙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앉은뱅이 캥거루족에게는 번개 같은 특단의 조치로 필요하다
    내 속에 우리 속에, 현실에서 안주하고 싶은 누룩을 제거해 본다

  • 2022-06-23 06:03
    속에 담아 둬야 할 말, 겉으로 드러낼 말

    3살 옹알이는 말 연습이다 그럴 때 부모는 내비 둔다
    10살이 되었는데도 옹알이 같은 유아스런 말투로 징징 대면 야단을 듣는다

    할 말, 안할 말. 쓸 말, 안 써야될 말 가려서 하는 것이 규모가 있는 사람이다
    회의를 하면 다양한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

    다양함 속에서 전원 일치를 도출해 내는 것은 초월이다
    그냥 따라가는 것 마음에 안 들어도 나서지 않는 독백은 초절이다

    가만 있어야 하는데 나서는 것도 팔불출이다
    말해야 하는데 침묵하는 것도 외식이다

    가만 있으면 중간은 가는데 그러다가 통채로 마귀밥이 될 수도 있다
    자꾸 나서다 보면 돼지 뒷 발톱처럼 이단성 기질이 몸에 밸 수도 있다

    발언과 침묵
    가정에서 부부가 무슨 말을 주고 받는가?
    교회에서 교인간 무슨 대화를 이어 가는가?
    공회에서 교인들의 주된 발언 주제는 무엇인가?
    교제가 답답해서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떠나는 사람의 부족은 마음에 접어 두고 우리의 부족과 고칠 점을 돌아본다

    교인간 교제하다 보면 마귀 노릇만 한다고 하여 침묵만 일관하는 것도 탈
    두서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속에 담아 둬야 할 말까지 해서 물을 흐리는 것도 탈

    참된 교제의 모습은 무엇이겠는가?
    발언을 조심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교제
    교제가 부족하니 외부에서 내부로 사람을 유입시켜 주시는 면도 전혀 없다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다가 또 빠져 나가고, 밀물과 썰물처럼 들어왔다가 나가는 반복을 통해 우리는 또 자라간다
    잠시 물만 위에서 아래로 내려 갔다 싶은데 쑥쑥 자라는 콩나물 시루처럼 말이다

    들어오는 사람도 반갑고 나가는 사람도 반갑다
    나간 사람과 지속적으로 교제하면서 배우려고 애쓰는 것 쉽지 않지만 가능은 하다

    집중과 적중에 손해 같으나 반면 득도 만만치 않다
    한번 공회 물을 먹었으면 그 좋은 점은 끝까지 간다
    이런 식의 전파를 우리는 사람을 통한 교리 전파라 한다

    내부에서 결혼할 사람이 없다면 외부에서 찾아봐야 한다
    외부에서 찾아보고 내부로 유입시키는데 총괄할 사람 그 누군가?
    이제 공회 30대 결혼을 위해서라도 외부 안테나는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해져야 한다

    결혼관. 뭘 바꿔야 하며 뭘 지켜야 하는가?
    이 아침에 자문자답 해 본다.

  • 2022-06-23 09:06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갯벌에서 생명 공존과 탄생이 활발하다.
    사람이 들어올 때, 사람이 나갈 때 그 사람들의 언행을 면밀히 듣고 최우선으로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들어올 때는 솔직한데 나갈 때는 방송용 멘트뿐이다
    우리의 전적 실수요 허물이라 말하고 싶다

    나간다고 복 없다는 말보다는 이제 배웠으니 외부로 나가서 공회 교리를 전파해 줄 선교사로 보면 고마운 사람이다
    안 그렇게 나가도 우리는 그러기를 기도할 때 이를 두고 우리는 영생의 소망이라 말한다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는 말씀
    실제 공회 내부보다 외부에서 배울 점을 찾아 보는 것
    이를 본인은 단일교회로 들어가기 위한 완전 작업이라 말하고 싶다

    겸손은 천국과 지옥, 낙원과 음부, 최고와 최저, 최선과 최악을 다 맛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오늘의 최고(지상낙원의 천국)를 내일의 최저(생지옥)로 만들 수 있는 분이 주님이시다

    만사 살얼음판 조심이다

  • 2022-06-24 06:04
    압력 밥솥에 밥을 하다가 압력추를 잘못 건드려 솥 안에 압력이 다 빠져 버리면 밥이 설 익는다.
    이처럼 본인의 일상을 글로 적는 것이 본인에게는 백해무익인 면이 좀 많은 것 같다.

    남단 글처럼 객관의 글로 잘 적으면 참 좋겠는데 아직까지는 실력이 안되니 걸음마 과도기 수준이다
    자기 비하, 고등 교만이 아니라 내가 봐도 그렇고 객관에서 들리는 소리가 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적어 보는 것은 담당님을 흉내내 보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다르니 일률적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좋은 것을 따라 해 보고 싶은 욕심은 좋은 것이다.

    절제도 필요한데 현재 본인은 글을 좀 많이 절제해야 하는 사람이다. 일주일에 한번도 많은 듯 하다.
    공회는 좀 글을 써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간절해 본인이 요즘 오버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주일에 한번 강단을 서 보면 시야가 달라진다.
    이런 목회적 시야가 들어 담당님 사후 공회를 지키는 자들이 다 될 수도 있다.

    백목사님 사후 누가 후계자였던가?
    휴지통에 버린 메모까지 찾아내 정리하는 그 열정과 열심이 들어 다음 신앙 계대를 가능케 했다.

    부공3 사후는 누가 맡을 것인가?
    각 교회 사택 자녀들이나 그 손주들에게서 나왔으면 정말 좋겠다.

    정 안되면 그 사위들 중에서나 손주 사위들 중에서라도 나왔으면 ...
    신앙 계대(繼代)를 잇는 윤(胤)은 평범한 일상 속,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부모의 오늘, 지금의 말과 행실을 통해서 말이다.

    무심코 생각없이, 화나서 급하게 한 말이 자녀의 인격을 말살할 수도 있다.
    한편 부모의 경우에 합당한 말은 거목을 만들고 한 시대를 감당하는 종(후계자)이 되게 할 수도 있다.

    참된 열매인 진실은 속이지 못한다.
    열매는 반드시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어 있다.

  • 2022-06-24 10:56
    신앙세대의 인수인계

    1세대는 가고 또 1세대는 오고
    세대 교체 과정 중에 신앙이 끊기지 않고 잘 이어지도록
    걱정되는 면을 주님께 맡겨 기도함으로 신앙의 인수인계가 잘 되도록 기도하게 되는 오늘 하루입니다.

    신앙 계대를 위해 가정은, 각 교회는 공회는 구체적으로 어찌 할꼬?

  • 2022-06-24 11:00
    새벽 예배 말씀을 듣고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해 보고 교인간 차 한잔 하면서 토론하고 대화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성도간 교제요 교통이 아니겠는가!

    • 2022-06-29 07:57
      너무 좋은 의견입니다.
      이 시대 우리의 환경에서만 가능하며 오늘의 풍요에 붕괴 되는 상황을 눈 뜨며 당하는데 이를 막아 줄 참으로 쉽고도 간단하며 그리고 자연스러운 신앙의 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비법은 일반인이 모르는 치료법이 아니라 모두가 알 수 있는데도 놓치는 치료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인끼리 차든 커피든 일단 그 것은 알아서 하고, 그런 기회를 통해 새벽이든 어제 저녁이든 지난 주일의 말씀이든 그 내용 중에 한두 가지로 느낀 것, 생각해야 할 것을 진지하게 주고 받는다면 너무 좋겠습니다. 성도의 교제와 교통이라는 그릇에 말씀과 전혀 상관 없는 세상만을 담고 주고 받으면 겉으로는 교제와 교통이 되고 그 뒤는 함께 무너 지는데 교제와 교통이라는 그릇에 제일 가깝거나 아주 가깝게 지나 간 말씀을 하나 넣고 둘이서 또는 두엇이 마주 앉아 자연스럽게 주고 받게 된다면 에덴동산의 타락 전이 재건 될 듯합니다.

      잘 아는데도 다시 읽어 보니 오늘에 너무 필요하게 느껴 졌습니다.
      오늘부터 주변에 부탁해 보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어떤 글의 표현 하나는 한 주간의 말씀을 넘어 서기도 합니다.

  • 2022-06-24 13:06
    ※ 기록 보존을 위해 글을 정리해서 남겨 봅니다.

    1.,주제 : 사활간삼일(死活間三日)
    2. 부제 :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전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



    ※ 성구 근거.

    1.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2. 마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3. 요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4. 롬10:6-7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 설교록 근거.

    1. 지옥 밑층까지 내려 가셔서 우리를 건지신 주님.

    87.10.30 금새벽
    설교제목: 주님,나,믿음 생각할 것¨
    성경본문: 요한계시록03:18상

    셋째로는 주님의 뭐입니까? 부요. 이래서 자꾸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생각하는 데에는, 주님을 이래 생각하는 데에는 크심을, 사랑을, 부요를 생각하는데 생각하는 데는 제일 중요한 게 뭐이냐 하면 시간적으로 생각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시간. 시간을 빠짐 없이 계속해서 생각하는 게 제일 중요해.
    시간으로 생각하는 거, 깊이로 생각하는 거, 주님의 사랑을 깊이로 생각하는 거, 넓이로 생각하는 거, 주님의 사랑이 어데까지 광대해서 어데까지 뻗쳐 나갔는가? 주님의 사랑이 어데까지 깊은가? 저 지옥 밑층에 저 끝에도 주님이 나를 사랑한 사랑이 거기 가 가지고 있어. 당신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거게까지 가셨어.
    지옥 밑층까지 가셨어. 가셔 가지고 나를 거게서 건져냈어. 주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와 길이, 이것보다 시간적으로 생각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2. 오늘이라는 살아 생전의 현실 동안 네 마음이 낙원에 가 있으리라.

    89.08.09 수새벽 (89.8월 집회)
    설교제목: 하나님의 계약
    성경본문: 요한계시록02:08-11

    그래서, 회개하면 이기는 자에게는, 요 다시 재연결하는 자에게는 어디 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낙원에 있다 했는데 어제 어떤 사람이 여게 낙원을 묻는데 낙원은 '오늘 너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에 낙원을 말씀하셔서 이 낙원을 무궁세계가 이루어지기 전 무궁세계를 소망하는 대기소라고 그렇게 우리들이 다 생각을 하고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면 낙원은 예수님과 그 강도가 세상을 떠나서 무궁세계를 대기하고 있는 그 대기소라고 말했는데 그 대기소를 말합니까? 또 딴 대기소가 있습니까? 그래 물었습니다. 그 진실한 성도요. 이거 똑똑히, 요래도 저래도 되는 게 아니라. 왜? 그 아는 거게다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막 쏟아서 지금 투자해야 될 터인데 잘못 알면 자기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잘못 투자하는 것 안 되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교리와 신조는 자기 생명보다 가치 있어. 교리와 신조에게 자기 생명을 투자할 것이기 때문에 생명보다 귀중한 것이라. 내가 생명을 다 바칠 그것이기 때문에 잘못 알면 큰일 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낙원을 물었어. 그 좀 내가 그 말을 들을 때 하도 고마와서, 다른 사람 볼 때는 '목사님이 그 질문하는데 저거 이 대중을 위해서 지금 거석하면서 거기 만나 가지고 뭘 얘기를 해?' 내가 여기 주저 앉았어. 내가 주저앉으면서 그분을 만나 가지고 얘기를 내가 어북 좀 장시간 얘기를 해서 말을 했어. 내가 기뻐서. 즐거워서.
    제자들이 '여게 이거 떡 잡수러 오시오' 이라니까 '너거끼리 먹어라 나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여게 있다.' 이라니까 '뭐 갖다 줬는가?' 뚱딴지같애. '사마리아 여인이 갖다 줬는가?' 이랬는데 사마리아 여인에게 지금 당신의 할 일이 있고 아버지의 보내신 뜻이 있기 때문에 말한 것입니다.
    낙원은 예수님이 가실 그 낙원인데 그 낙원, 죽은 다음에 가는 그 낙원, 죽은 다음에 가 가지고 거게서 기대하고 있을 그 낙원. 대기하고 있을 낙원. 그러면 대기하고 있으면 대기할 때에 거기서 뭣을 하고 있겠소? 그 대기한, 거게 있는 강도가 지금 대기하고 있는데 대기하고 있는 그 강도가 뭐 생각할까요? 서원균 목사? 뭐 생각하겠어? 그 낙원에 있는 강도는 '아이구, 이거 사업을 어찌 해 볼꼬? 취직을 어떻게 해 볼꼬? 어디 지금 내가 권세를 잡아 볼꼬?' 그런 것 땅의 것은 생각 하나도 없어. 땅의 거는 생각 하나도 없어. 순전히 무궁세계의 것과 무궁세계의 주인공되는 하나님만 생각하지 딴것 생각은 하나도 없어.
    이랬는데 낙원에 있는 생명과실을 먹는다 말은 이 세상에 죽기 전 낙원이나 그 낙원이나 내나 한 낙원인데 죽고 난 다음에 낙원에 가서 대기하는 것은 아무라도 다 할 수 있지만 죽기 전 낙원에서 대기하는 사람, 그 사람은 낙원에 있다 말은 일편단심이 하늘나라 영원한 무궁세계만 소망하고 그 일만 하고 있다 그 말이오. 내나 다른 성경에도 그래 말해 놨어요. 이렇게 모든 체질이 불에 타서 녹아지리니 너희들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져야 되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거게만 소망을 가지고 사모하는 자 돼라. 간절히 사모하는 자 돼라. 그러니까 소망도 거게 있고, 마음도 거게 있고, 거게 소망하고 거게서 생각한 것을 이루기는 이 현실이라는 세상에서 이루지만 자기의 심신은 다, 다 거게 기울여져 가지고 있다 하는 그말이오. 그 말이 내나 여기 낙원에 있다는 말 한가지입니다.



    설교 3. 주일 새벽 부활 직전까지 음부에서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세가지 대속을 감당하시고 계셨던 주님.

    870614주전(요한계시록 1장 10절∼13절)
    1987. 6. 14. 주일오전
    본문:요한계시록 1장 10절∼13절

    오늘은 지난번에 증거한 주일에 대해서 또 증거할 필요가 있고 주일에 대해서 아직까지 모르기 때문에 주일에 대해서 다시 증거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번 주일 증거하는 데에서 제가 증거하는 그 말이 그 말에서 모순되게 제가 발표한 게 있어서 그것을 고쳐서 여러분들 앞에 발표를 하고 사과를 합니다.
    주일날은 예수님의 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신 이 구원에 완성된 이 구원과 또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완성시켜 주신 구원과 이 두 가지 구원은 주일날 완성을 이루었다 하는 것을 제가 증거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죽으심으로써의 이 구속도 또 부활하심으로써의 구속도 둘 다 주일날 완성을 했는데 제가 그 시간을 너무 죽으심으로써의 구원과 부활하심으로써의 구원을 이것을 그만 구별하는 데에 거게 너무 열중해 가지고서 선이 넘어갔습니다. 넘어간 그것을 지금 고쳐서 여러분들에게 말을 합니다.
    어떤 것인고 하니 예수님의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구속한 것은 금요일부터 시작해서 토요일 열두시까지라고 그렇게 말을 했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주일날 영시부터라 이렇게 열두시 영시 하는 그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그 대속과 부활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대속의 이 경계를 토요일 열두시 주일 새로 영시 거게다가 경계를 둔 그것을 제가 잘못 발표한 것을 여러분들에게 다시 고쳐서 말하면서 사과를 합니다.
    한편은 제가 증거하기를 죽으심으로써의 대속하신 구원도 주일날, 또 부활하심으로써의 구원도 주일날, 주일날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우리에게 주시는 날이 주일날이라 말씀한 그 말은 옳게 했는데, 그러니까 죽으심으로 대속한 그 대속도 주일 안에 들었고 또 부활하심으로 대속하신 구원도 주일 안에 들었다 하는 말로 한 그 말은 옳은데 그것을 날짜를 구별하면서, 죽으심으로의 대속은 토요일날 열두시 마지막까지고 부활하심으로써의 대속은 주일날 새벽 영시부터라 이렇게 그 경계를 그래 둔 그것을 잘못됐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경계를 두면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이 구원이 주일날 완성된 것이 아니고 죽으심은 토요일날로 완성되고 또 부활하심의 구원은 주일 완성이 됐기 때문에 한 날 속에 다 드는 게 아니고 두 날로 갈라지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 발표됐다는 것입니다.
    제가 주일을 말할 때는 사활의 공로가 요 주일날 한 날에 포함됐다는 그말은 맞은데 그래 놓고 나중에 또 나눠서 말할 때에는 토요일과 주일날을 두 날로 나누니까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은 주일날 다 된 게 아니라 부활하심으로써의 대속은 주일날 됐고 죽으심으로의 대속은 토요일날 됐다 하기 때문에 죽고 사신 사활의 대속은 다 주일날 됐다 하는 그 말과 서로 모순된 말을 했는데 주일날 사활의 대속은 다 이루어졌고 우리에게 주셨다는 그 말이 맞고 열두시까지 영시까지 한 고거는 잘못 구별해서 착각한 것입니다. 제가 그때 계산을 잘못해 가지고 착각한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일날은 예수님께서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거게서부터 시작해 가지고,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또 그리스도가 사람되어 오시고, 또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해방시키는 대형의 사죄의 공로를 베푸시고, 또 하나님의 공심판에 완전타 인정하는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을 완전 이행한 하나님의 의에 대하신 일과,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원수된 것을 완전히 화친시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이런 이 지극히 큰 화친의 구원을 주님이 이루셨습니다.
    그 이루신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이루셨는데 그 죽으심은 언제까지 죽으셨느냐 하면 늘 당신이 희생하신 것은 계속 희생을 하셨고 이제 마지막으로 희생하는 그 죽으심은 금요일날부터 죽으시기 시작해 가지고서 주일날 새벽까지 죽으심 속에 음부 아래에 계셔서 우리를 대속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대속하신 것은 어데서부터 시작됐느냐?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그때부터 시작돼 가지고 대신 형벌받아 대형으로 사죄하시고, 대신 행함으로 칭의를 베푸시고, 대신 화목 제물이 돼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게 하는 요 일에 완료는 죽으심을 받아 가지고 삼 일 동안 무덤 속에 들어 계시는, 그러면 삼 일 동안 무덤 속에 들어 계신 것은 곧 주일날 새벽까지 무덤 속에 계셨습니다. 그러면 금요일날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토요일날, 주일 새벽까지 사흘을 걸쳐서 무덤 아래에 사망 아래에 계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를 완전히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을 이루셨습니다.
    이 세 가지 죽으심으로 세 가지 대속을 완료하셨습니다. 이 완료가 금요일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주일날 새벽 미명까지 무덤 속에 들어서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죽은 가운데서 삼 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은 주일 새벽이면 삼 일 만이 됩니다.
    또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일으키시리라는, “성전을 헐면 삼 일 동안에 다시 일으키리라”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당신의 몸이 그들에게 해를 당해서 죽으시고 죽은 지 삼 일 만에 다시 부활하셔 가지고서 참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겨 구원을 이루는 그 실상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약 시대에 성전에서 짐승 잡아 제사드려 가지고 구원 얻은 것은 실상이 아니고 예표 예약의 구원이 되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을 때에 그때 성전 휘장이 갈라지고 또 바위가 터지고 모든 그런 역사들이, 땅이 진동하고 하는 그런 역사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구원을 주셨는데 한 가지 구원은 기초적인 구원, 근거가 되는 구원을 주셨습니다. 근거가 되는 구원의 터를 우리에게 줬습니다. 구원의 기초를 우리에게 줬습니다. 구원의 근거 밑절미를 줬습니다.
    구원의 밑절미, 자본, 밑천, 기초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이 기초냐? 예수님이 우리가 죄 지어서 마귀와 죄와 사망에 종되어 있는 데에서 당신이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죄에서 해방, 마귀에게서 해방, 사망에서 해방하는 자유를 주신 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속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하나님의 공심판을 우리가 행하지 못한 것을 대신 행하시기 위해서 역사하셔서 우리 대신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키시기 위해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그 대속하신 것이 우리에게 칭의를 주신 대속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와 원수된 것을 화친시키기 위해서 죽기까지 하여 화목의 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화친이 되게 하셔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된 것이 이것이 세 가지 문제로 죽으신 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의 대속이니 이 일은 언제까지 완료했느냐? 금요일날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주일날 새벽까지 그 일을 완료하셨는데 그 완료하시기까지 무덤 아래에 있었고 사망 아래 있었고 사망 권세 아래에 대속을 하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 주장들 정리.
    1. 죽음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음부의 고통을 당하셨거나 일순간 음부로 가셨다가 죽으신 그날 낙원을 가셨다.
    2. 죽으신 그날 낙원을 가셨다가 이후 다시 음부로 가셔서 형벌을 받으시고 부활 후 천국을 가셨다.
    3. 죽음 직후 음부는 안 가셨고 오직 낙원에만 계셨다가 부활하시고 그 이후 아버지가 계신 천국을 가셨다.
    4. 죽음 직후 음부에서만 삼일동안 남은 형벌 받으시고 부활 이후 낙원 또는 아버지가 계신 곳에 올라 가셨다.


    어느 주장이 확실할지 시간이라는 세월, 이 다음 후세대가 증명할 것 같다.

    • 2022-06-29 08:27
      어떤 해석과 교리는 당장에 막지 않으면 신앙을 벼랑으로 밀어 갈 수 있습니다.
      성경의 정확무오, 예수님만 구원.. 이런 교리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천년왕국처럼 죽어 봐야 알 수 있는 별세 이후의 우리 모습은 소망의 교리이니 약간 혼선이 있다 해도
      현재 신앙의 상황에는 살펴 볼 여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른 소망의 교리는 소망에 더욱 큰 힘을 주고 바른 소망을 인간이 이해를 하지 못해서 믿지 못한다면 그 교리가 주는 힘을 받지 못해 연약해 질 수는 있으나 그런 교리를 믿지 못하는 그 사람의 전체 수준이 기본적으로 문제기 때문에 초자연의 세계를 믿게 되면 천년왕국을 부인하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어린 신앙에서 점점 그 날을 소망하거나 또는 당장에 자기 생활을 천년왕국적으로 만드는 일에 매진하는 힘 있는 신앙으로 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애매한 문제는 내일과 그 다음의 세대로 지나 가면 점점 또렷해 지면서 교회사는 성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바르게 정확하게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가질 신앙의 실상을 손해 본 것은 해결하지 못하고 그 세월을 보낸 것이 손해입니다. 공회의 교리는 시작하던 순간부터 주변과 기존의 상식에 다른 것을 꾸준히 제기해 왔고 그 때마다 무수히 조롱과 비판을 받아 왔으나 세월 속에 거의 전부가 명확히 옳다고 입증 되었습니다. 이 교리 등 아직 몇 가지 명확하게 드러 나지 않은 것도 마25장의 열처녀 비유처럼 그리 오래 가지 않아 명확해 질 듯합니다.

      저는 평생에 명확하지 않을 때, 그 중 하나를 일단 마치 확정 된 것처럼 붙들고 당장을 살아 갔습니다. 그리고 반대 의견이 완전히 해소 될 때까지 제 속의 양심이 마치 정부의 감사 부서처럼 또는 수사 기관처럼 조사를 해 왔습니다. 어떤 확신은 단정이 되어 반대 의견을 넘어 섰고 어떤 확신은 반대로 뒤 집어 졌습니다. 이렇게 뒤 집어 지는 사례가 하나 생기면 이후에 많은 과제를 풀 때마다 미리 신중하게 결정하는 유익을 봤습니다.

      이 건을 두고 저희 교역자회는 오래 전에 많은 면을 검토하면서 죽음과 동시에 주님은 시공을 초월한 존재가 되어 낙원에 계셨고 그 범위 안에서 음부의 형벌이 포함 되었다고 결론을 지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존재는 음부에 부존재가 아니라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는 무소부재입니다. 다만 지옥의 존재에게는 은혜를 끼치는 하나님이 아니라 심판의 하나님으로 계시기 때문에 지옥이 지옥입니다. 낙원에 계시겠다 했으니 그 말씀은 맞고 또 우리를 해결하시려면 우리와 같은 인체를 포함한 인성만으로는 영원한 형벌을 대행할 수가 없으니 그 인성이 음부의 고통을 겪어야 했음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시공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한 곳에 있으면 다른 곳에 있을 수 없으나, 죽음 너머 존재는 하나님이 천국과 지옥으로 분리를 해 버리면 여기서 그리로 넘어 갈 수 없고 그 곳에서 이 곳으로 넘어 올 수 없지만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 주님의 인성과 신성은 분리가 되었습니다. 신성은 무소부재하시고 인성의 시체눈 묘소에 두고 인성의 마음과 영은 우리를 위해 음부의 고난을 당했다면 주님은 묘소 안에 계셨고, 동시에 주님은 음부에 우리 위해 고난을 당하셨고, 동시에 주님은 낙원에 계셨다고 생각할 수 있을 듯합니다.

      갯가에 일하러 간 엄마의 눈과 손발과 몸은 갯가에 조개를 캐고 있고, 엄마의 마음은 두고 온 섬마을 방 안에 아이에게 갈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이는 것이 크면 마음은 안절부절이나 갯가에 머물 것이고, 집에 둔 아이 걱정이 51%를 넘어 서면 그 때는 손에일이 잡히지 않을 것이고 아이 걱정이 90%를 넘어 서면 일은 되지 않고 불안한 마음이 그 몸을 끌고 집으로 갈 듯합니다. 일하던 순간의 엄마 표정과 일손을 보면서 '갯가 여기에 있다'고 사진을 찍어서 증명할 수 있고, 그 사진을 보는 할머니는 '그 엄마는 지금 집에 가 있네' 라고 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우리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비교를 통해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 갈 수 있어 보입니다.

  • 2022-06-29 13:02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 주님의 인성과 신성은 분리가 되었습니다. 신성은 무소부재하시고 인성의 시체는 묘소에 두고 인성의 마음과 영은 우리를 위해 음부의 고난을 당했다면 주님은 묘소 안에 계셨고, 동시에 주님은(주님의 인성은) 음부에 우리 위해 고난을 당하셨고, 동시에 주님은(주님의 신성은) 낙원에 계셨다고 생각할 수 있을 듯합니다.

    위 부분에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신 예수님을 말할 때 우리가 보통 신인양성일위라 정의하고 뜻은 참하나님 참사람으로 이해합니다. 왜 사람이냐? 사람의 죄의 대속은 죄없는 사람이어야 하고 모든 택자의 죄를 대속하려면 전능의 하나님이어야 가능하기에 신인양성일위로 계신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고 십자가에 죽을 때까지 분리가 안 되었는데 죽음 직후 신성과 인성이 분리가 되면 인성만으로 음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했다면 하나님의 전능의 요소가 없어 모든 택자 대속에는 한계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 생전이나 사후나 신성과 인성 분리 없이 대속을 감당해야 한다면 삼일동안 신성과 인성 분리 후에 음부와 낙원에 동시에 계셨다는 주장은 부정하고 십자가 상에서 대속의 형벌을 끝내고 낙원에만 계셨다든지 아니면 음부에만 계셔서 대형을 받고 계셨다고 둘 중 하나로 접근하는 것은 어떨까 하고 의견을 적어 봅니다.

    갯가로 나간 엄마를 예로 드신 것처럼 몸은 조개를 캐고 있지만 마음은 방 안에 있는 아이들 걱정에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다는 말씀처럼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도 죽음 이후 너는 택자니 낙원에 간다. 나도 너와 함께 낙원에 간다는 기본구원적인 뜻으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몸은 지금 십자가에서 죽어가고 있지만 마음은 낙원을 소망하여 낙원에 먼저 가 있어, 죽기 전 단 몇 십분만이라도 건설구원을 이루라는 이치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격려의 말씀은 아닌가? 이런 관점도 살피며 가능성을 열어 두고 백목사님 설교를 참조하여 한번 더 연구해 보겠습니다.

  • 2022-06-29 13:17
    사후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은 분리되고
    우선 예수님의 신성은 무소부재니
    예수님의 신성은 낙원에 가 계시고
    또한 분리되었던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은 다시 합하거나 또는 같이 함께 음부로 가셔서 대속을 감당했다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
    제가 바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성이 낙원도 계시고 음부로 계신다는 무소부재 같은 표현상의 한계는 서로 인정하고 이 면도 거듭 고민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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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1 | 교인 | 2021.11.26
교인 2021.11.26 0 403
11049
대통령 출마를 준비하는 부공3 출신의 한 교인 이야기 (2)
11049 | (부공3) | 2021.11.23
(부공3) 2021.11.23 0 476
10980
절대 범죄할 수 없고 주님의 안보를 덧입게 되는 근거. (3)
10980 | 교인 | 2021.11.11
교인 2021.11.11 0 344
10886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31)
10886 | 교인 | 2021.10.20
교인 2021.10.20 0 732
10793
전쟁이 일어난다면 (4)
10793 | 교인 | 2021.09.27
교인 2021.09.27 0 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