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연구

남단에서 글을보고 앞의 쓴글을 회상하며 말합니다.

작성자
주여어찌하오리까
작성일
2021.06.17

총공회 라는 교단에 속하였고, 백영희 목사님 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순간.

왜 이 노선을 사후 30여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도 고수하고 있는지, 신앙이 무엇인지 알려고 할때쯤 이해하게 되었다. 

최신식 기계와 문명의 발달로 생긴 많은 구조물들. 편리하고 실용성이 좋아 보이지만, 

자연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창조물 앞에서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위대함이 숨어있다.

늘 고민하였던 것은.  이러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성장할수 있는가?

하는 고민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던 것이였다. 

묻고 싶었고, 조언을 듣고 싶었다.  물어보기전에 이분에게 물을수 있을지 내스스로 살펴보고 질문을 해보기로 한다.

막상 살펴보니. 결국 세상 불신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내 또래들은 많은 문화들과 세상지식의 다양성으로 인해

눈이 어두워져 있었고, 적당히 타협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이 어쩔수 없었다는 듯이 설명한다.

큰 문제는 아니다. 배려와 인사성의 문제다. 라고 설명하신 글을 보며 생각한다.

그 문제도 해당사항이 되겠지만, 본질적인 것은. 누구보다도 많은 신앙인들을 만났고, 백영희 목사님의 교훈을 사모하고

그게 신앙생활이요.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예배생활을 하며 전도를 하는것이 어떤 의미와 목적이 있는지

수없이 되새기고 본인의 신앙의 주관으로 삼고 있을거라 믿는 평신도의 의구심과 실망감이..

오늘의 글이 생기게 된 배경이라 하겠다.

큰 문제는 아니다. 라고 하셨지만,  나에겐 큰 문제라 보여진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라는 세상적인 속담이 있다.

단순한 배려와 인사성의 문제 였다면, 이 글을 작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갈림길을 올바르게 가게하거나 어긋나게 가게 할수있는 중요한 문제가 될수도 있다.

이제는 일반 교회다닌다는 사람들을 보면, 주일 안지키는것 술마시고 이성간에 생기는 문제도 당연하게 되어가고있다.

불신자가 어느날 나에게 물었다. 

너는 교회 다니면서 술도 안먹고 담배도 안피고, 이성하고 놀지도 않고 무슨 낙으로 사나? 물었다.

나는 속으로도 확실하게 주관을 가지고 있었고, 말로도 표현 했다.

내가 배운 성경과 교훈은. "자기 자신을 잘 단속하고 불신자에게 덕이 되는 생활을 해야 한다." 라고 말을했고

그 불신자는 정말 대단하다. 요즘 이런 사람이 있나? 하며 혀를 찼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교회다닌다고 하면서 목사님 자식이라고 하면서 술먹고 담배피고  다 잘만 하더니..

대단하다 대단해. 라고 말을 했다.

오늘날의 총공회를 만든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분들에게 내가 질문을 던지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것은.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성경으로 비추어 보아 옳고 그름을 판단할줄 아는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하는것은.

자랑할게 아니라 생각되었기에 말을 한것이다.

배려와 인사성. 불신자들도 그것이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라 한다. 그래서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된다고 한다.

내가 말한것이 배려와 인사성 같은 기본적인 것으로 질문과 잘못된 것을 이야기 하였을까?

회계를 맡고 교회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직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혹은 목회자라고 해서.

밑에 있는 신앙후배의 말을 무시하고 천하게 취급하는게 옳은 행동일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어거지로 세상에 연륜좀 있고 사회 경험이 있다고 해서. 나이로 직분으로 아랫사람을 굴복시키고,

정복하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의 말이라도 그것이 성경적으로 옳은것이고, 자신이 성경과 그사람의 말을 구별해서 생각했을때

잘못된게 있다면, 겸허하게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언제부터 세상적인 것으로 아랫사람을 다루려 한것인가? 성경 말씀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권위주의 교회가 되었는가?

언제부터 연보많이 한사람 적게 한사람.  많이 한사람은 교회에서 대우받고, 적게 하거나 못하는 사람은.

천하게 대우하기 시작했는가? 

결국 종합하여 볼때 세상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면, 하나님이 만드신 성경과, 백영희 목사님의 교훈과 교리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묻고 싶었다. 

 

 

전체 22

  • 2021-06-17 22:57
    남단에서 답글을 보고 말씀드립니다.
    제가 쓴 글은 각자의 받은 은사와 사명과 달란트가
    다르다는 것을 부정하는것도 아니고.
    연륜과 경험이 쌓인 신앙을 부정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역시 똑같은 오류를 범하시는데.
    연륜이 부족하고 신앙이 어리면 그 앞을 보지 못한다
    하셨는데. 그건 속단이고, 나이와 연륜과 경험치로
    그사람을 부족하다 평가하는 것은 제가 지적한
    부분에 해당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것
    같아 부공3도 다르지 않음을 느끼며,
    앞에 했던 이야기가 또 나오는데 그만큼 연륜이
    생기고 신앙의 경험이 있다면 조금더 어리고 부족한
    신앙인을 잘 지도하려는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데
    나이와 연륜으로 아랫사람을 누르려고 하는
    세상의 모습을 다르지 않기에 글을 쓴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인물들이 각자 받은 달란트와 사명이
    다르고 직진하는 사람도 있고 우회하는 사람도 있다
    말씀하셨는데 그 다름이 책임감을 면피하는 말이
    될수 없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각자 받은 사명과 길이 다르고 달란트가 다르다 하여
    책임감을 회피 할수는 없습니다.
    오늘날의 총공회로 만들어 진것은 분명 책임감을
    잊어버린 모든 분들에게 잘못이 있을 것이며.
    어린 사람은 짐작하지 못하고. 각자의 받은것이
    다르다는 내용으로 책임을 피하는 것은 비겁하다
    생각됩니다.

    • 2021-06-17 23:06
      그리고 오래 산사람은 그럴 기회가 없다 라고 주장하시는데. 그럼 젊은 사람은 기회가 많아서 언제든지 하면 되고. 나이든 사람은 기회가 적어서 어쩔수 없는 것입니까? 나이로 비겁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관점의 문제고 생각의 차이 입니다. 우리에게 건설 구원을 주신 것이지. 나이 성장배경 부모님으 신앙생활 유무 교회사 등으로 그사람과 자신의 차이는 부정할수 없겠지만. 책임감은 필수조건으로 보기에 그런 이유 등으로 피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고 직분이 있고
      더 나아가 많은 식구들 혹은 교인들을 지도하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책임감은 중요하다 생각됩니다.
      오늘날의 총공회는 그런분들의 책임감이 망각되었기에 그렇게 된것입니다.

  • 2021-06-17 23:18
    지금 사회 문화를 보면 개인주의가 심해지고, 책임 지는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책임 진다는 것은 본인은 손해를 보아야 하고 힘든것을 감수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좀 더 어른이라면 희생하고 감수해야 아래 사람들이 보고 배우지요. 세상과 똑같이 가면 어떻게 백영희 목사님의 교훈을 보고 배우면서 자란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백영희 목사님 생전에 계실때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단순히 지도를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 백영희 목사님이 직접 지도하는 비중이 커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위에 있으신 분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덕을 끼치는데 아주 조심하고 신경쓴 깨어있는 사람이 많았기에 200여개의 교회 성대한 인원의 집회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가 가능한 것입니다.
    책임감을 망각한 그 어떤 집단도 잘된 사례는 없습니다.

  • 2021-06-18 02:46
    공회의 좋은 방향과 역사가
    오늘 공회를 앞 서서 걸어 가야 하는 목회자들과 공회의 1세대 교인들이 바르게 걸어 가지 않음으로
    공회 내 교인들에게도 실망을 안긴 것은 입이 몇 개라도 할 말이 없도록 부족하고 잘못 된 일입니다.

    이 연구소는
    그런 면이 없도록 모두가 고민하며 현실은 갈수록 더 어려워 지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바르게 살지
    과거 자료를 제한 없이 제공하고 주제와 대화에 제한 없이 함께 연구하고 노력해 보자는 의미입니다.

    '주여 어찌하오리까' 라는 성함으로 적어 주신 글에 대하여
    공회 노선을 아는 모든 분들이 다 함께 자책을 느끼고 모두 자기를 돌아 볼 기회로 삼을 것으로 봅니다.
    우선 억울하다 할 분도 있지만 이 노선 오늘의 우리 부족이지 달리 할 말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노선을 잘 살펴 보면
    과거 은혜롭던 공회의 신앙 생활을 모두 되 살리지는 못할지라도 그래도 일부 조금이라도 소망은 있고
    또 더 부족한 우리가 더 어려운 오늘을 헤쳐 나가 보려고 노력하면 이런 노력을 충성으로 보실 듯합니다.

    지극히 작다 해도 '충성'으로 봐 주시면
    더 부족한 우리에게 사도행전 2장 1절의 '홀연히 하늘로부터' 내려 주시는 은혜의 시기가 올 수 있고
    그래도 '주여 어찌하오리까'라는 글로 애타는 마음에 위로의 시대를 주실 것을 함께 소망하면 좋겠습니다.

    • 2021-06-18 21:04
      밑에 있는 반사 님의 댓글과 담당해주시는 분들 댓글에 감사드리며,

      저는. 비판평가에 이골이 나고 그로 인해 갈등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머리가 아픈 사람입니다.

      이 노선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기에 그 혼돈과 갈등속에서도 주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지만,

      괴리감이 엄청나게 들때가 많습니다.

      지극히 작은 충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충성이 헛되지 않기를. 많은 분들이 그럽니다.
      pkist 들어가서 글 보지 말라고 합니다.

      이 시대에 이 노선을 굳게 지키려고 연구하고 자신의 반성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 홈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며, 이 홈에도 분명한 단점은 존재한다 생각되며
      우리의 신앙의 연구는 끊임없이 계속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부공1234, 대공, 서울공회 등등 으로 나뉘고 있는것이 과연. 오늘날의 말세지말에 우리가
      해야할 신앙생활의 모습인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하였고, 점점 세상과 같이 속화되어져 가는
      총공회가 그렇게 하지 않아야 된다는 신념을 가진 저에게는 힘이 빠지고 신앙생활의 기로에
      서있기에 드리는 말씀이였고,

      어떠한 분들은 이것을 보고 울컥하고 억울해 하시는 일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억울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개인교회, 가정교회, 사회교회, 국가교회 그 어느 누구라도. 백영희 목사님이 걸어오신길
      주신 교훈과 노선의 원초적인 뿌리가 무엇인지 돌이켜 볼 때라고 생각됩니다.

      너무나 좋은 말씀을 받아서 그런지, 기본적인 것들은 당연히 하고 있겠지 생각하는 안일함이
      혹은 잘하고 있다는 교만과 착각이. 오늘날의 총공회를 만든것 같아 안타까웠고,

      말로써 성경말씀 빗대며 우리는 그렇지 않다. 잘하고 있다. 라고 외적으로 보여주시기 보다.
      정말 그게 맞고 잘하고 있다 생각된다면. 결과로. 표적으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존재하고 말로써 우리는 그렇지 않다. 잘하고 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
      지금 총공회를 보면 결과만 봐도 표적이 있는지 없는지 봐도. 잘못된 것으로 가고 있는게 맞는데.
      결과가 표적이 없는 비어있는 신앙생활인데. 당당하게 말씀하시니.

      책임감은 사라지고 변명과 비방으로 가득찬 신안인들이 증가하며, 다른 사람의 말은 아예 귀를 닫고
      나 자신이 먼저다. 하는 세상의 이기주의와 다를게 없기에 글을 쓴 것이고.

      결국은 모든사람이 환경에 지배 받는것이 아니라 . 한사람 한사람 개인교회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하고 실행으로 고쳐나가는 사람이 하나 둘씩 많아진다면,

      오늘날의 총공회가 사람을 구원하는 교단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같이 공유하고 기도하고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 큰 힘이 되고
      나아가 코로나가 퍼져있는 이시대에 우리가 말씀으로 다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 2021-06-18 04:31
    주여 어찌하오리까 님
    공회에 이 정도 글을 쓸 정도라면
    분명 본인도 공회인이며 공회 소속 교인이라 짐작됩니다.
    나와 상관없다면 어찌되든 상관할 바 아니라 하실 텐데
    계속 말씀을 하신다는 것은 아직 소망을 두신다는 말씀이신데

    그렇다면
    책임감에 대한 문제점은 지적 하셨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 책임감의 무지, 혹은 부재에 본인도 포함되어 있고
    우리가 다 실수가 많고 자기중심의 악한 부분이 다 있는데
    주님께 기도응답을 받으셨거나 그 해결책이 있으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2021-06-18 12:41
      본인이 타인의 말에 반박을 하고 싶다면,
      본인이 어떤분인지 소개를 하고 총공회의 노선을
      정확하게 구별하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되짚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짜고짜 반박하고 해결책 내놓으라고 하시지
      말고 신중하게..

      • 2021-06-18 13:13
        반박으로 비춰졌다면 일단 사과드립니다.
        반박이 아니라 저는 님과 대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공회를 알게 된 신앙 연수가 10여년 정도 밖에 안 되었고
        공회 노선이 뭔지 배우고 있는지라
        노선을 구별할 단계 정도로 영안이 밝지는 못합니다.

        신중은...

  • 2021-06-18 05:00
    문제점 지적으로 끝나지 말고
    그 다음인 해결책도 함께 제시해 주셨으면.

    행237-40

    • 2021-06-18 12:39
      해결책 제시 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디 까지나 발언이고, 참고용 이라는것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짜고짜 소속과 어떤 생각을 가지신
      분인지 밝히지도 않고 제글에 반박하듯이
      글을 쓰시는 것은 제글을 비방하고자 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신중하게 글을 쓰시면
      좋겠습니다. 업무중이고 집에가서 생각 정리후에
      글을 따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 2021-06-18 13:37
        신중 없음은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반박이나 비방하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단지 책임감 말씀을 하셔서 제가 늘 고민하고 있는 주제라...


        저는,

        가정에서는 부모로서 책임감 부족을 많이 느끼고 있고
        직장에서는 직원으로서 책임감 부족을 더욱 느끼고 있으며
        교회에서는 주일학교 선생으로서 책임감 부족을 한없이 느끼고 있는데


        주여 어찌하오리까 님은
        공회가 책임감 없는 원인을 아시고
        그 해결책도 아시니 말씀하신대로 그리 살고 계실 것 같고
        님의 가정, 교회, 직장에는
        책임감의 부재가 없을 것 같아
        그 비법을 배우고 싶어 글을 적었습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반박, 비방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님처럼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배우고 싶어 댓글을 달았습니다.
        오해는 마셨으면 합니다.


        신중한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 2021-06-18 19:30
          글로 작성 하고자 하였으나, 답변을 하고자 합니다.
          저도 사람이기에, 무지하고 연륜이 부족하여 도움이 안될수도 있으니,
          성경에 비추어 보아서 구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공회가 책임감 없는 이유는, 신앙의 갈급함이 없어서 입니다.
          1970년대 80년대는 못먹고 사는 시대라, 그져 가족들이 배부르고 등따시게
          자기이름으로 된 집에서 사는게 성공이고 큰 행복이였습니다.

          서로의 처지를 잘 알고 있고, 나와 별반 다르지 않기에 공감할수 있고, 같이 어려울때
          도와주고 조언도 할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시대에 와서 그때와 다른 환경, 책임감이 없다고 의견을 제기한 데에는.
          성경의 많은 인물들을 생각해보시면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들이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하여, 받은 달란트가 크다고 하여 본인이 제일 인정받는다고
          하여 교만하고 다른사람들을 아래로 보는 사람들이 였는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항상 어떠한 사건이 있던지 어떠한 자리에 있던지 부족한 사람이던지 남들이 보기에
          다가진 사람이던지. 나이가 많던지 적던지. 그러한 상황이나 처지를 전제조건으로 보지 마시고
          그 속에 있는 내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수 있는지, 그것이 신앙생활의 덕이 될수 있는지
          없는지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단순해 보이고 뭐 별거 없네?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런 단순한 것들이
          난 문제없이 잘 하겠지. 라는 안일함을 불러 올수 있습니다.

          세상을 보면 지금의 교회의 모습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잘 보입니다.
          남을 짓밟고 그 사람을 비방하여 그사람을 뒤쳐지게 하고, 내가 위로 올라가서 나의 공을
          높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그런 욕심들이 각박하고 개인주의가 심한 오늘날의 세상이 된것입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같은 사회학 적인 이야기로 제 의견을 피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바랬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교회가 세상과 똑같이
          그사람의 세상적인 모습으로 신앙인격이나 신앙의 행보를 보고 판단하는것 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더 깨닫고 행위로 하는 모습으로 판단하길 바랬지만,

          그사람이 전도를 몇사람 해서 구역 식구가 얼마나 되나? 그 구역 식구가 연보는 얼마나 하나?
          그 구역식구가 교회에서 어떤 일들을 하느냐?
          이런 면을 더 살피고 그것들이 신앙의 잘하고 못하고를 살피는 기준이 되는게
          내가 책임감 있게 교만하지 않고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 녹아져야 되는데,
          소금의 역할은 망각하고, 소금은 짜니까 짠 역할 밖에 없으니까. 소금에서 설탕이나 간장으로
          변해버려야 겠다는 한곳만 바라보는 신앙생활이 책임감이 결여된 신앙 생활입니다.

          소금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짠 맛만 있습니까? 소금이 다른 음식과 만나면 밋밋한 음식에
          간을 해주기도 하고,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합니다.
          한 면만 바라보고 나의 역할은 한정되고, 가치가 없어! 자신의 역할을 제한하고 가치없게 만드는
          이 모습이. 내가 소금의 역할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것으로 바뀌어 인정받아야 겠다
          하는 마음가짐이 욕심으로 바뀌고,

          눈이 어두워 져서 정작 중요한 본질은 망각하고, 다른 사람 구원에 유익주는 말이나 행동보다
          자기의 위치 직분 교회의 중대한 일을 결정할수 있는지 그러한 역할을 하는것이 자신의 신앙을
          그런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이 신앙생활 잘한다고 착각을 하는것이 책임감이 결여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을 몸을 입고 오신 또 다른 하나님 이신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앙행보를 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분이라 모르시는게 없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니 못할것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나 어떤 사람이고 어떤 역할을 할수있고, 그것이 이만하면 잘했다 라고
          안일하게 자랑하고 다니신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내가 사람이 되어 천하다고 생각하시지도 않았고,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셨다 하여
          다른사람 앞에서 교만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박해를 받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억울한 일을
          당하셨다 하여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신앙의 행보는 죄가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어떠한 상황, 처지,
          본인의 위치와 직분을 먼저 생각하여 나의 보여지는 모습으로 신앙생활 하신 것이 아니라.
          소금과 같이 녹아지고 죄가 많은 사람들의 죄를 사하고 구원할수 있는지 항상 그 생각 뿐이였습니다

          그것이 책임감 입니다.

          세상에 보여지는 부분으로 사람들 앞에서 으시대고 아랫사람을 누르는게 아니라 이말입니다.

          먼저 선행하셨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굳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하지
          않아도 예수님이 어떻게 하라고 교훈하시는지 보였습니다.

          자랑도, 교만도, 권위적인 것도 없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자랑과 교만과 권위적인 모습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모습이 너무나 많이 보입니다.

          세상이 변했으니, 그에 맞게 교회를 운영해야 살아 남는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세상과 타협하고 보여지는 외적인 모습에 신앙의 잘함과 못함이 나뉘어지고
          있는 것이 성경 말씀과 백영희 목사님의 교리와 교훈에서 말하는 인간 구원의 모습은
          없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각자 다른생각 찬송을 불러도 각자 다른 생각. 회의를 해도 기도회를 해도 각자
          다른생각.

          물론 존중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속에 어떠한 마음가짐 성경의 말씀대로 하고 있는지 살펴 보셨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면, 저렇게 하지 말아야 되겠다 확신이 들고 마음가짐이 생겼습니까?
          마음가짐이 생겼는데, 왜 행위로 나오지 않는 것일까요?

          성경말씀을 배우고 교훈을 알고 10년 20년 30년 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 세상을 보니, 내가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수 있는 요소도 유익될만한 요소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타협하는것은 자기 자신의 문제 입니다. 책임감 결여, 이만하면 됐다는 안일주의.

          말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어떻게 해야 될지 방법을 찾고 있다. 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담당하시는 분도 말씀 하셨지만,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고 우리가 다 배웠고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행위로 하지 않았고, 그 행위가 나의 신앙생활의 성장과 또 다른 깨달음이 되고, 그런 것들을
          전해 주어야 겠다는 사명감도 없고 책임감도 없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은 상황에 따라서 지킬수도 있고 못지킬수도 있는 내용이 되었습니다.
          다하라 말씀하셨는데, 왜 다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저학력자 가난한 사람 병이 있어 정상적으로 생활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변화하지 못하겠습니까? 가치가 없습니까?
          그런 사람은 다른사람을 구원하지 못하는 처지나 상황입니까?

          그져 세상이 각박하고 개인주의 이고, 재미있는 문화들이 많다고, 경쟁이 심한 경쟁사회라고
          그 세상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것이 성경에 말한 신앙 생활입니까?
          그것과 타협하면서. 책임감은 무슨 책임감이고. 지금 시대에는 적당히 타협하고 사는게
          스스로에게 타협하고 자기자신을 무지하고 무능하다 생각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는 합니까?

          전지전능 하나님의 능력! 어디로 갔습니까?

          글을 마무리 해보려고 합니다.

          책임감의 문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세상에서 신앙생활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단순히 복받고 직분이 생기고
          전도하여 나의 구역 식구가 늘어나고. 오랫동안 신앙생활 해서 목회자의 길로 가거나
          장로님 권사님의 직분을 받아. 아랫사람에게 존경 받는것이 신앙생활의 목표입니까?

          결국은 자기의 외적인 모습이 다른사람에게 나타내는 신앙의 기준이 되고, 그사람을 변화시켜
          성장하게 하기보다. 자기의 외적인 모습을 위해 동원된 사람들 아닙니까?

          세력다툼하는 세상의 모습과 다른점이 무엇입니까?

          저의 가정은 부모님이 늦게 성인이 되어 신앙생활을 시작한 분들이라. 제가 고민된 부분을
          답변해주고 인도해주실수 있는 분이 아니였습니다.
          저는 항상 기도했습니다. 눈물로.
          하나님 아버지 저희 가정이 말씀으로 된 가정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가정에게 유익을 끼치는
          가정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내가 배운 성경 말씀과 총공회의 교훈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적용시켜 살아보려 하니, 갈등이 많았습니다. 나도 힘든데 세상도 각박해지고
          경쟁이 심해지는데, 어떻게 남을 구원하고 내가 소금의 역할을 할수 있을까?
          아 괴롭다. 그만할까? 세상도 힘든데 어떻게 신앙생활도 같이 잘 할수 있겠나?
          그럴때 마다 기도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분명히 성경 말씀대로 세상에서 살아가려 하다보면 온갖 어려움과 갈등과 낙심하는
          상황이 올수 있습니다. 그럴때 마다 하나님 아버지가 포기하고 내려놓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했습니다.

          간절하게 나의 신앙생활의 깨달음과 가치관이 확고했을때. 어떠한 상황이 와도 넘어지려 하지 않고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책임감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자 수천번 수만번 수억번 이라도 또 다짐하고
          돌이키려 애썼습니다.

          저의 학창 시절의 가정과 지금의 성인이 된 가정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말씀으로 살려고 굳게 신앙생활 하려고 하시고, 믿음이 없는 아버지는 예배생활도
          잘하려고 노력하시고, 안읽으시던 성격도 읽기 시작하셨습니다.

          제자신도 진로에 대한 고민과 사람들과 부딫히는 어려움속에서도 직장생활을 하게 하시고
          아르바이트도 경험하게 하시고, 학창시절에는 다른 사람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사회성도 부족했지만
          이제는 직장도 다니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말도 잘합니다.

          저의 가정은 부재가 없다 생각됩니다. 교회나 직장은 아직도 책임감이 부재합니다.
          교회나 직장에서도 책임감 있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갈등과 포기하고 싶고 제 마음대로 살고 마음 편해지면 안되나
          고민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책임감이란. 이겨내고 계속 그 말씀대로 실행하기 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과 실행있는 분들이 많다면 이 교훈의 노선을 따라가는 사람이 많이 생기고.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이 어려운 시기에 변질될 세상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신앙생활 잘 할수 있는 힘이 되고, 계대하는 총공회가 될것입니다.

          세상적인 부분은 신앙의 척도가 될수 없습니다. 간절함이 없고 안일주의가 오늘날의
          총공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 합니다.


          잘하고 있는거지. 어떻게 해야하겠노? 어쩔 도리가 있나. 이렇게 사는거지.

          • 2021-06-18 19:32
            마지막 한줄은 작성중 글이 밀려 오타가 생겼습니다.

          • 2021-06-18 19:46
            해결방법은. 윗분들의 직분을 감사할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임감이 무엇인지 설명은 드렸으나, 해결 방법을 물으셨지요.

            직분을 감시할수 있는 제도. 잘못된 부분을 고치려고 하지않고.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직분의 강등이나. 직분의 박탈 이라는 제도가 필요하다 생각되며,

            신임투표도 중학생 이상 누구나가 아니라. 성인이고 신앙생활을 어느정도 한 사람에게
            투표권을 부여해야. 위에 있으신 분들이 조심해서 스스로 책임감 있게 신앙생활 하리라
            생각됩니다.

            제도적인 부분을 없는것은 만들고 있는부분은 수정하여
            말씀드렸던 세상적인 모습으로 신앙의 잘함과 못함을 나타내려는 모습들을
            제지해야 책임감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고. 고치리라 생각됩니다.

            • 2021-06-19 06:27
              저도 중학생은 너무 어리다 생각했었습니다. 지금은 중학생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신앙생활이 오래될 수록 자기중심이 더 강해지고 속이 점점 더 좁아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좀 강하게 이야기 하셨는데, 또 목사님이 A성도를 고치려고 조언했는데 속이좁아 목사님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서 목사님을 반대하는 경우를 저는 타교단에서 너무 많이 봤습니다.

              타교단에서 신임투표를 하면 자기중심으로 목사님을 불신임 하는 경우는 너무 많을 것입니다. 그것은 공회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어린아이 같이 되라"는 말씀도 있고, 어릴 때 더 신앙이 깨끗하며 순수한 면이 많습니다. 그러면 성인보다 중학생정도의 나이에서 더 성령에 붙들려 투표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경력도 나이와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 2021-06-19 11:34
              지나가다가 첨언해드립니다.

              1. 유대인들의 성인 기준이 율법시대 전부터 중학생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랬고요. 상한선을 정할려면 한 교회에 1명이 있겠습니까... 하한선을 정하는게 성경식인 것 같습니다. 성령은 어린 아이에게도 붙드니깐요. 중학생이면 솔직히 상황판단 다 스스로 할 줄 알죠.

              2. 감시제도가 바로 시무투표인데, 제대로 된 총공회 교회라면 장로 안수집사까지 모두 신임투표할 겁니다. 시무투표 안한다면 일단 공회교회라고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핵심 행정 중 하나이니깐요.

  • 2021-06-18 12:58
    제가 간섭할 일은 아니나, 반사님이 좋은 마음으로 글을 쓰셨을 것입니다. 비판은 필요하나, 비판에 따른 대안을 이야기 해주셨으면 부탁한 것일거에요.

    선생님의 글을 비방하려는 의도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반사님이 정중히 부탁 한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 2021-06-19 06:30
    주여어찌하오리까 님.
    이름이 길어서 편의상 줄여서 필명을 '주까' 님으로 적겠습니다.

    주까 님.
    아래 글에서 궁금한 점이 있어 질문드립니다.


    저의 학창 시절의 가정과 지금의 성인이 된 가정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다른 사람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사회성도 부족했지만
    이제는 직장도 다니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말도 잘합니다.
    저의 가정은 부재가 없다 생각됩니다.
    교회나 직장은 아직도 책임감이 부재합니다.
    교회나 직장에서도 책임감 있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주까 님 가정도 지금은 책임감 부재가 없이 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자기 책임을 잘 감당하여 누가 보더라도 정말 책임감 있는 가정이라 인정하겠지만 과거 그러지 못할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까 님의 직장, 교회는 아직 책임감의 부재가 있고 지금 주까 님이 부단히 노력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럼 머지 않아 주까 님의 교회도 직장도 주까 님의 삶을 본받아 모두 책임감 있는 곳으로 변하겠지요.


    주까 님의 글에서 님이 인정하시듯 우리는 차츰 변화해 가고 있고 자라가고 있기에 책임감이 없다가 차차 생겨지고 신앙이 자라갈수록 또 책임감의 부재를 느껴 주님께 구하여 은혜 받아 다시 부족한 책임감을 채워가고 있는, 이것을 평생 반복하는 우리의 삶인 것을 감안해 볼 때


    결혼 전에는 혼자이다 보니 책임감이 있다 생각했는데 결혼 이후에 아내가 날 보는 책임감의 요구치는 계속 높아지고 자녀들의 아버지에 대한 책임감 요구치도 계속 높아지고 있어 이를 통해 주님이 원하시는 책임감의 강도가 신앙이 자라갈수록 계속 높게 강해지고 있다고 한다면 주까 님이 결혼을 현재 안 하셨다면 결혼 후에 아내나 자녀가 주까 님의 책임감에 대한 평가가 시시각각 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백목사님 사후 30년, 부모님 돌아가시고 일찍 철들어 자기 앞가림 빨리 하는 사람(공회)도 있고 둘째 탕자처럼 27년을 방황하다 요 몇년 사이 3년만에 뒤늦게 정신 차리고 달려가고 있는 사람(공회)도 있다고 한다면 주까 님이 생각하시는 책임감 기준으로 볼 때는 미달일 수도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총공회도 주까 님의 교회, 직장처럼 책임감의 부재를 다 알고 인정하고 있으며 힘들지만 주까 님처럼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과정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로마서 14:1-3 말씀처럼 제가 주까 님 정도의 신앙이나 책임감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믿음의 연약함 때문에 주까 님의 의도나 그 깊은 뜻을 다 몰라서 그럴 수도 있으니 넓은 관용과 아량으로 제 질문을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로마서14:1-3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 2021-06-19 06:31
    "주여어찌하오리이까"님 타공회는 2년마다 신임투표가 이루어 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알기로 2년마다 목회자-장로님에 대하여 신임투표하는 교단은 총공회외에 전혀 없습니다. 총공회의 신임투표가 얼마나 개혁적인 제도인지 모릅니다.

    타교단에서 총공회의 "2년 신임투표제" 내용을 알게 되면, 모두들 너무 큰 충격에 빠질 것입니다.

    "주여어찌하오리까" 님 타공회는 목회자와 장로님에 대한 2년신임투표제도가 시행되고 있나요? 3공회는 2년신임투표제를 꾸준히 지켜오고 있습니다.

  • 2021-06-19 07:02
    "주여어찌하오리이까"님의 글을 읽고 제가 전반적으로 저의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타교파는 좀 알고 있습니다. 타공회는 외부적으로는 어느정도 알고 있으나 속사정은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타교파와 제가 소속된 3공회와 비교를 자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문제가 많기에 타교파분들이나 3공회분들이나 모두 문제가 많습니다. 저는 문제가 더 많구요.


    그런데 방향성에서 3공회가 타교단보다 탁월하기에
    시간이 갈 수록 만들어지는 사람의 수준이 차이가 점점 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3공회와 타교단을 비교해보면..

    1) 지금 타교단은 교회에 40살 넘어 시집 안간 여자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40살 넘어 결혼 안 한 남자도 많구요.
    3공회는 20대 중반 넘었으면 결혼이 늦었다고 난리입니다. 타교단은 30중반 되어도 아직 안늦었다는 분위기 같습니다.

    3공회는 30대중반이되면 자녀가 3~5명입니다. 타교단은 30대 초중반에 결혼을 많이 합니다.

    이 차이가 너무나 큽니다.

    2. 주일성수가 되는 교단이 제가 알기로 거의 없습니다.
    개혁주의노선을 추구하는 교회들이나 고신교회에서 소수 있다고 여겨지며, 그 외엔 주일에 돈을 사용하고 TV등 오락을 하는 것에 대하여 전혀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신앙이 바로 되려면 주일이 바로 되어야 하는데 주일성수에 대한 바른개념 자체가 없는 시대입니다.

    3공회는 과거 고신의 정통개혁주의의 주일성수(예배중심 - 돈안씀 - 오락안함 -세상일 안함)를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3. 2년 신임투표제는 타교단에서 알게 되면 너무 놀라서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3공회는 2년 신임투표제를 꾸준히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4.타교단은 예배에 드럼 신디사이저 기타 등 악기 사용이 많습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교회가 이러한 분위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3공회는 모두 피아노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5.성경적으로 바른노선을 강하게 추구하는 교회들은 성도수가 40여명을 넘기가 어렵습니다.3공회는 백목사님 생전 노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100명 넘는 교회가 3개나 되고, 200명 가까이 되는 교회도 있습니다.

    6. 신앙은 자기고치는것이 본질이고 전부이다.범사에 자기를 고치라고 목사님이 항시 설교하십니다.


    이 세가지 외에도 타교단과 비교하면 탁월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3공회 성도님들이 타교단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라고는 생각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이고, 타교단분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은 3공회 교인분들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3공회의 주요한 노선(일찍결혼 -주일성수 2년신임투표제 경건한예배 등)을 통하여 만들어 지는 사람의 수준이 타교단보다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나아진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타교단과 3공회 비교는 제가 책으로 내보고 싶었던 내용입니다. 공회탐방기 로요. 제가 공회교인이 아니라 타교단교인이었다면 책으로 한번 집필 했을 수도 있었을것 같아요. 제가 신앙이 있거나 글을 잘쓰서가 아니라 ..타교단에 비하여 3공회의 장점들이 노선적으로 행정적으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3공회성도님들도 문제점들이 많습니다. 저는 더 많구요. 그런데 3공회는 노선적으로 장점이 많아서 3공회성도님들은 시간속에 점점 고쳐가고 자라가고 있다고 저는 보여집니다.

  • 2021-06-19 07:34
    책임감에 대하여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전에 아무리 개혁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사람도, 실제 대통령이 되면 안정을 추구하게 됩니다.

    실례로 노무현대통령이 한미FTA를 체결했습니다. 원래 민주당노선으론 한미FTA를 체결하면 안되는데(그래서 노무현대통령이 자기진영 사람들로부터 한미FTA 체결했다고 공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은 임기말미에 한미FTA를 체결합니다.

    저의 판단으론 대통령이 되어보니 아무리 미국이 싫어도 대한민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FTA가 필요함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대통령은 진영에 관계없이 나라전체를 책임지는 위치니깐요.

    결혼하기 전까지는 자녀를 낳기 전까지는 책임감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도 실제 자식을 낳아봐야 생긴다 생각합니다.

    여자들은 공통적으로 고통속에 자기 배로 아이를 출산하면 자기 친어머니에 대한 감사가 넘치게 되고 자기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 크지게 되고, 남자들은 처자식위해 세상에서 욕먹어 가며 땀흘려 일해봐야 부모님에 대한 감사가 진정 생긴다고 봅니다.

    그래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감인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봐야 합니다.

    보이는 아버지를 공경못하는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한다는건 어불성설 이듯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부모님께 효도/부모님보양, 남편 아내자식을 위한 헌신) 없는데,
    신앙의 책임감은 생길 수도 없으며, 있다면 그건 외식이라 생각합니다.

    "주여어찌하오리까" 님이 이야기 하신 책임감의 문제의 본질도 저는 "일찍결혼-출산-다산" 하면 어느정도는 해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2년 신임투표제를 바르게 정착시킨다면 목회자나 장로님은 책임감이 없어도 긴장감이 있을 수 밖에 없어서, 그 긴장감이 책임감으로 자랄 수 있다고 봅니다.

    저보고 고등학생 영어를 가르치라고 맡기면..밤을 새워가며 준비할 것입니다.왜냐하면 고등학생을 가르칠 실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2년신임투표제가 바르게 정착되면, 목회자-장로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열심을 내실것이고, 새벽예배 참석 할 것이고..

    그러면 시간속에 신앙도 책임감도 자라게 될 것이라 봅니다.

    ps: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글은 저의 사견이어서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 2021-06-19 20:18
    새글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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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0 | (전호진) | 2021.05.30
(전호진) 2021.05.30 0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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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9 | 신학생 | 2021.05.29
신학생 2021.05.29 0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