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연구

'그런데...'

작성자
(평)신도
작성일
2021.06.12

(3_5065관련, 대단히 외람됨과 부끄럼 무릅쓰고 혼잣말형식으로 써봄입니다.)

 

애초의 양성원’은,

 

하나님과 복음위해 그 확증된 언약을 견고히 나타낸바 된 것입니다.

모든 기도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알고 세움 같게 여겨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위탁받았음입니다.

맞는다면 여전히, 그 이룸에 대한 증표가 보여져야합당함입니다.

 

그런데,

 

한 마음과 한 입으로 주님위하여 세운 날 중히 여김이 꺼림 되어졌습니다.

왕래가 없고 그 경영이 경홀히 여김 되어 황무(황폐)한 현상입니다.

애초의 본질과 그 확연했던 빛과 견고케 된 모습이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어찌 이 현상이겠는지, (제 짧은 지식과 상식으로는)

 

(총 공회공동체가) 다투며 두 마음과 뜻을 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껏 모든 현상이 이를 극명히,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음입니다.

 

 

지금껏 한 지붕아래에서 불화와 한낱 무용지물 된 형상이,

 

실로, 주님께와 주님 안에 무리의 결정적 기쁨 되며 감사인 것인지,

실로,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심이라’하는

애초의 고백과 동질(동격)이며, 하나님께 당당히 높이어 찬양함인지,

 

애초와 정 반대인 여태현상이,

실로 공히, 주님께 위로받음의 성격이며 결말인 것인지,

실로 공히, 그것의 주인 되신 주님께 정녕 인정받으심의 결과인지,

(아니면 도리어 근심을 얻은 것인지,)

 

주의 영이 계신 곳에서는 자유 함이 있다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20년 넘도록 분쟁으로(또는 논쟁으로)인해 공동체가 겪는 어두운 현상이,

(한낱 어리석음이나 깊은 염려로 눌림 아닌)

실로 공히, 무리의 참 자유이겠는지,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영광에 이름인데, 여태 황무한 현상이

실로 어떻게,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최고의 가치로서 그 근거된 확증인 것인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하신 말씀처럼,

실로 공히, 어떻게 성경적 고난인 것이며 모두의 영광됨인지,

 

또한, 이 문제를 풂에 있어서 정녕 질서대로인지 하는 점입니다.

(배운 대로)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성경의 안위로 한 소망 있어져야 함에도

여전히 한 지붕아래에서 불화와 한낱 무용지물 된 형상입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위한 중심적 역할이 무너졌으며 (주님위한) 자랑이 사라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나타냄에 있어서 부족한 게 있으면 보충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눈이 영적인 눈이라 할 것입니다.

 

일찍이 (그곳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멈추었음이,

실로, 모든 것을 질서대로 하라하심에 걸맞음인지,

실로, 하나님의 말씀이 결단코 혼잡치 아니함에 어떻게 부합됨인지, 

 

혹여, (기독인은) 무조건 화목과 문제해결이 먼저 아니라,

상대가 잘 못 했을 때

옳게 가르치고 바로잡아주어 참된 사랑의 관계와 올바른 화평과 아울러

성경대로 해야만 질서(절차)이기에

상대편이 잘못을 먼저 고쳐야만 (이 현상이) 해소됨이라하는

(양방 각기의) 대 명제(또는 원칙)에서 비롯됨인지,

 

주님께서 ‘이를 어찌하고 있느냐’하고 (총 공동체에) 물으신다면,

 

실로 공히, (주님 면전에서와 온 지체에) 어떻게 시원히 변증(辨證)됨인지,

 

이 현상은,

하나님 영광위한 시초의 표지(특징)된 약속과 그 규례에 분명 어긋남입니다.

 

그럴진대, 주님 앞에 정죄되어 있음인지에 대해 생각이 깊어짐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고전1:10~13)’

전체 37

  • 2021-06-13 20:55
    잘못된 분열도 많지만 옳은 나누어짐도 있습니다.
    로마카톨릭에서 개신교가 나누어져서 참 신앙을 찾았습니다. 나누어지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하여 개신교가 로마카톨릭에서 분열하지 않았다면 바른기독교신앙은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방금 적은 내용은 너무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내용입니다. 백목사님 사후에 총공회전체가 바르게 가서 안나눠졌으면 더 좋았겠으나..백목사님의 신앙을 바르게 계대하기 위해 나누어진면도 있습니다.

    로마카톨리과 연합운동을 하는 개신교교단들도 있던데, 그건 틀렸지 않습니까? 로마카톨릭이 행위구원에서 은혜구원으로 완전전환이 이루어질때 개신교와 연합운동을 조금씩 해나가야 한다 생각합니다.

    총공회도 모두가 하나되면 좋겠으나, 현재로는 어렵다 생각합니다.

  • 2021-06-13 22:40
    보시는분들 참고하시라고 이전 글 링크를 올려봅니다.
    https://pkists.net/topic/?pageid=3&uid=5065&mod=document
    제목.애초의 양성원, 이대로가 ..합리인가
    작성자.(평)신도 2020.10.31

    • 2021-06-20 19:36
      많이 늦었습니다.
      (이를)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2021-06-15 21:17
    (성경말씀을 더러 인용하며 적어봄입니다.)

    (애초) 양성원이,

    주님 앞에 모든 기도의 응답인 것입니까,
    복음위한 명분으로 받은 것이며 성령의 기쁨된 것입니까,

    선한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함을 늘 구하고자했음이
    애초의 그 동기와 목적인 것입니까,

    주님의 일꾼양성위해 성령을 좇아 행하고자 세워졌던 것입니까,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영광위해 천하 만민에게 복음 전파할
    목회자양성위한(센터적인)역할로
    그 예정하심을
    한 마음과 한 말씀으로 통일되게 이룬 것입니까,

    총 공회공동체가 그 예정을 입어 모든 이가 복음 듣고 죄에서 자유케 하며
    하나님영광의 풍성을 위해 주님의 의를 이루실 양으로(목적으로)
    그리스도예수안에서 유익위해 기업과 유업으로 받아
    행할 의무를 받았던 것입니까,

    생명의 말씀을 밝힘에 그 수고가 헛되지 아니함으로
    주 예수의 날에 (무리의) 자랑할 것이 있도록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도록 주님께 부탁을 받은바 된 것입니까,

    맞음이면,

    주님의 뜻 가운데 확신 있게 서시어
    복음위해 오직 성령과 큰 확신으로 하나님께 합당히 행함이며,
    받은 직분 여일히 행사함으로써
    그리스도안에서 생명운동과 하나님영광의 찬송이 되게 함이 마땅함입니다.

    그런데,

    애초의 동기와 목적을 벗어나 그 이룸에 대한 약속이 흐려졌음입니다.
    그 달음질과 진리에 대한 순종이 요동케 되어졌음입니다.

    그 효력이 없어지고 주님을 위한 역사를 멈췄음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일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복음(운동)이
    매인바 되고 갇혔습니다.

    그리스도예수안에서 의롭다함을 얻게 하려는 그 의무 행하고자함이
    끊어졌으며 애초의 은혜에서 떨어졌음입니다.

    신령한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감당하며 채움이어야함인데
    여전히 (그 채움) 없으며 여태껏 황폐함으로 무용지물 된 현상입니다.

    맞음이면,

    양방이 어떤 율법의 잣대가 (명확히)있다하여도

    그 세움이, 사람의 말이나 (사람)의지로 이룸 아닌 한

    (애초의) 주님과의 약속을 결코 거스를 수 없음입니다.

    주님 안에 하나로,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것으로 통일 되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현상이,

    (상호) 어떠한 율법의 잣대로 견준 행위에서 비롯됨인지,
    아니면, 이미 받은 은혜의 행위로서의 선한 결말인지,

    지금껏 당한 현상이(황무한 현상이) 과연, 애초의 기도와 성경 안에서 발견된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이룬 결말인지,

    (이 현상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 결말이겠는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황폐한 것으로 바꿀 수 없음입니다.

    기쁨으로 선한 일에 소망이 흔들리지 않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모든 능력으로 감당함을 채울 의사의 모습이 여태껏 (제 눈엔)보이지 않습니다.

    차제에, 이 현상의 해결에 있어서 총 공회목회자님과 관여된 분들의
    생산적인 설명을 밝히 듣고 깨우침 얻고 싶습니다.
    성경말씀에나 교리와 이치적으로 잘못된 부분 있다면 깨우침 받기 원하며
    이 문제가 이미 해결됐을 경우, 즉시삭제바랍니다.

  • 2021-06-16 07:27
    질문과는 point가 좀 다른 답변 일 수 있겠으나..

    3공회의 양성원은 정말 좋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로 대한민국의 신학생 목회자 신학자들이 모두 와서 배워본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목회자 신학자들이 성경과 교리와 노선을 가지고 3공회양성원에서 함께 대화/토론 하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저의 생각은 미국신학교 유학보다 최소10배는 더 유익합니다.

    좋은 양성원을 알고 경험해보면, 양성원의 필요성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2021-06-17 14:58
    그 곳이,

    우리구주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예비 되고
    그리스도예수의 선한일군 되어 믿음의 말씀과 선한교훈으로 명하고
    가르침의 수고에 진력하시고자 세워진 게 맞음입니까,

    (맞을진대) 주님의 선한사업에 부하고자했음입니다.
    함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받았음입니다.

    그리스도예수안에서 풍성을 좋게 하려 일꾼을 양성코자 했음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함께 복음을 드러내기 위하여 (함께) 약속에 참예했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증거하기위해 함께 매임 당하였음이며
    그 믿음을 인하여 친히 자랑함이 된 것이라 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황폐(황무)한 현상의 지속이,

    애초의 공통된 약속을 (규례를) 돌아보지 아니한 결말인지,
    (애초의) 믿음 저버려 그 선한 일을 좇지 아니한 결말인지,
    무엇을 심고 거둔 결말인지,
    어떻게 성령의 소욕 됨이며 거룩하고 의로운 행위로의 결말인지,

    (애초의) 믿음을 배반함인지,
    (국한하여 볼 적에) 이를 저버림이 곧, (이를) 내어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 같음인지,

    하나님의 교회공동체의 괴로움인지, 기쁨 됨인지,
    (애초의) 사모함이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주님의 공동체가 찌름 당하고 있음인지,

    이 모든 게 아닌 것인지..


    주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 여태껏 무용지물 된 현상입니다.
    받은 은혜로 하나님을 향하여 행하려함이 (외관상) 전혀 보여 지지 않습니다.
    20년 넘도록 그곳에서 이룰 복음(운동)이 갇힌바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목적된 기초가 무너지고 동일한 소망이 사라졌으며
    보증 멀리하여 복음을 전혀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애초에 주님의 선한 일이 마치 억지 같음의 현상입니다.
    (마치) 애초의 믿음이 편견과 경솔인 것인 양, 부정(적)으로 비쳐짐입니다.

  • 2021-06-18 11:20
    (그 세웠음이) 아무 의미 없이 세워진 게 아닐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위해 그 뜻을 받들어 이룸이라 보는 것입니다.

    그 세움이,

    진리위한 것이면 주님과 총 공회와의 세운 언약(약속)인 셈이며,
    성령이 우리에게(총 공회에) 증거 하심 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진대)
    애초의 믿음 뒤로 물러나 이를 원치도 기뻐하지도 아니한 듯 현상입니다.

    (총 공회가) 기도와 계명을 좇아 주님 섬기고 그 뜻을 행하고자
    믿음으로 세운 터이며 주님으로부터 받은 기업 아니겠습니까,

    이를 내버려 둠은, 주님의 법을 마음에 두지 아니함이며 나아가
    진리를 위하여 열어 놓으신 것을(법이나 제도를) 폐한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증거를 받았음이면 이에 대하여 그 증거 있음을
    믿음으로써 나타냄이 도리입니다.

    여태껏 현상이 하나님께 영광된 것으로 주님 앞에 무흠한 것이면
    그대로 두면 되는 것입니다. 설왕설래할 일도 당연히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황적한 현상이, 주안에 굳게 함인지를 생각할 적에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결말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여태의 현상이 말씀과 기도로 받은 그 언약을 부정함일진대
    이에 역사하실 성령을 근심되게 함이 되는 것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그 세움이,
    주님의 일이며 성령으로 좇아 난 것이면
    주님을 위하여 세운 것이 됩니다.

    (그럴진대) 주님이 지시하신 것과 다를 바 없음이며
    주님 앞에 약속된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결코 사람의 말로서 지은 게 아닐진대) 마냥 이 현상 속에 머물 수 없음입니다.

    주 예수 안에서 행할 바를

    함께, 행하심으로,
    함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께, 주님의 기쁨이 가득하게 함이 너무 당연함이라 생각합니다.

  • 2021-06-19 11:08
    (심판은 오직 주님께 있으시며 행한 대로 갚아 주심이니)
    다만,

    ‘우리 주님 예수의 이름’이

    총 공회가운데서 영광 크게 받으시며,

    주님의 지체들도 서로영광 얻도록 일로전진함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총 공회가) 믿음으로 세운 터이며 받은 기업일진대, 이를 마다하고
    뒤로 물러가면 과연 모두의(공동체의) 마음에 기쁨 됨이겠습니까,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말씀했습니다.

    받은 산업을 세상에 빼앗김 같음 되지 아니하고
    주님의 뜻 행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함과
    장차 큰 상 얻도록 합일감당하심이 더더욱 낫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선한 일을 좋게 여겨 이를 귀히 보전하며,
    규모 없을까 피차 권계하고 권면하며,
    명하신대로, 거룩함에 흠이 없게 믿음 굳게 하여 실로 행함이
    성령의 역사를 소멸치 아니함이라 여겨짐입니다.

    (배운 대로) 세상의 근심은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복음이 갇혔음일진대, 주님 앞에 거룩한 근심으로
    주님의 귀한 일에만 집중하시며 받은 은혜를 굳게
    이에 매진함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행할 바일진대, 주님이 주신 지각을 사용하여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는 게 매우 당연함이라 여겨집니다.

    이미 주님과의 약속일진대, 기쁨으로 기뻐하며 감사함으로 주님께 보답해야 할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배운 대로)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심입니다.

    유익 얻지 못함은 믿음으로 화합치 못함입니다.
    선한 일이 크게 요동되었음은 (총 공회에)실로 불행인 것입니다.

    행한 대로 갚으심이 하나님의 공의이십니다.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않은 것도 숨길 수가 없음입니다.

    장차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온 공동체가) 이에
    기쁨 이루어 회계(回啓)할 말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 부끄러우며) 성령으로 시작하였던 것을 육체로 마쳐지지 않도록
    주의해야함이 성경말씀입니다.

  • 2021-06-19 17:55
    여전히 황폐한 현상이,

    세상과 교회에 복음을 제출하고자한 애초의 대의와 목적이 그릇되어
    반작용된 결말이 결단코 아닐 것입니다.

    (분쟁으로) 여태껏 황무함이,

    우리 구주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하심에 따른 증거이겠는지,

    애초에 목적된, 복음과 함께 받은 약속의 은혜를 귀히 여김 됨인지,
    애초에 목적된, 하나님의 의를 이룸 됨인지,

    애초에 받은 것을 어둠아래 가둠 된 현상인지 (아닌 것인지),
    애초에 받은 은혜를 (본의 아니게) 잊어버린바 되어 십자가의 복음을 거치게 함인지 (아닌 것인지),

    (이 어두운 현상에 국한하여 볼 적에)

    하나님의 복음을 죄안에 가둠 같음의 형상인지,
    이는 마치,
    복음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치 아니함 같음인지 (정 반대로 해석해야함인지),

    복음의 진리와 그리스도예수안에서 누릴 참 자유 위하여
    행할 이유와 기쁨과 뜻을 좇아 구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림인지 (아니면 희석시킴인지),

    주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서로 종노릇하지 못함으로 인함인지,

    주님의 교회공동체가 함께 달음질하여 주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고
    (총 공회공동체가) 주님의 명하신 것을
    서로 권하며 또한 행할 줄을 주안에서 확신한 증거이겠는지,

    생각해봄입니다.

  • 2021-06-25 09:17
    < '애초의 양성원', 그 복원과 일행전진이길 소망하며.. >

    요컨대,

    애초에 이를 함께 공인하여 복음위해 (그곳에) 심었지 않습니까,
    그 일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공회공동체가) 주님의 일로, 진리를 위함으로 받았지 않습니까.
     
    그럴진대, ‘회복과 아울러 일행전진’이어야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복음일꾼양성위해 한 뜻이었음이면, 총 공동체의 마음이 이에 여전히
    집중되어져야만하지 않겠습니까,
     
    돌이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지키며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여 처음행위를 가지라하신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교훈과 애초의 믿음 굳게 잡고서 함께 이어가야함이 실로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그 계명을 지키고자함이 세상의 일에 비교될 수 없음이며,

    그 생명을 전파하고자 이를 (지켜) 행할 적에, 이로써 그곳이 하나님께로 온 것임을
    밝히, (총 공회공동체가) 스스로 증거 함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일을 잃지 말고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온전한 상을 얻기 위하여
    일로 달려감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태껏 현상이, 혹여,
    상대편의 모든 말이 경건치 않음이라 여기며 정죄하기 때문인지,
    애초의 목적과 (총 공동체의) 일행(一行)이 숫제 의미 없는 희생인 것임이기 때문인지..
     
    여태껏 분쟁으로 (또는 논쟁으로) 인해,
     
    양방의 잣대로 계속 멈추는 게 과연 합당함인가하는 점입니다.
    여전 무용지물 된 현상이 실로 합당함인지하는 점입니다.
    여전 황무함이 실로 어떻게 밝히 증거 됨인지 하는 점입니다.
    여전 방치된 현상이 실로 주님위한 최선인가 하는 점입니다.
     
    여전히 묵혀둠이 정녕,
    해답인 것이며 어떻게 유익되게 함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긍정적 지향이겠는지 하는 점입니다.
     
    여태의 현상이, 마치, 잡초만 우거짐같이 바람에 불려감같이 물 없는 구름같이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같이 흑암에 들어가 있음같이 유리함 같음의 현상인지
    (전혀 비할 바 아님인지)를 성경말씀에 비추어 생각해봄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거룩한 믿음 위에 세웠음일진대, 하나님이 예비하심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총 공회공동체가) 이를 행할 기회를 부여받았음인데, 그리스도의 교훈을 굳게 잡고
    함께 이룸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본의가 아니어도)
     
    이를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을 전파할 목적에 거하지 아니함이면
    이를 내신 주님의 뜻을 행하지 못함이며,
     
    (이를 지나쳐) 기쁨으로 아버지께 받은 계명을 좇아 그 운영이 아님이면
    주님의 일을 잃어 버린바 되고, 온전한 상을 얻기 위하여 달려감이 멈춘바 됨이며,
     
    (이를 지나쳐) 그 쓰기를 원치 않음은 애초의 증거가 참된 것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함 되고
    이를 내신 주님을 (총 공회에, 마음에) 모시지 못함 같이 됨이며,
     
    이는 결국, 주님께서 은혜로 주심을 부인하는 결말이 되고 마는 것인지(아닌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봄입니다.

  • 2021-06-25 11:52
    진리 안에 행함이 신실함일진대, 여전 황무한 현상이 정녕 (총 공동체의) 즐거움이겠습니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애초에 지녔던 (총 공동체의) 한 소망이 이미 사라졌기에
    전혀 순전하지 못함입니다.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섣불리 못함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물며,
    오직 주님영광위해 큰 목적 이루고자한 약속일진대 여전 어두운 현상은
    총 공회의 우리에 있는 한
    온 지체의 근심됨이며 괴로움이라 생각해봄입니다.

    (어릴 적, 마산에 갔었는데 발전소에서 나온 검은 가루가 온통 뒤덮여있음을 본 기억이 납니다.
    가령, 연탄공장에 머물게 되면 가루를 맞기 마련입니다.)

    사회공동체적인 책임도 있음인데
    하물며,
    예수님의 보혈로 한 몸 이룬 서로지체이기에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크든 작든 간에)
    그 영향을 받게 마련인 것입니다.

    따라서, (한 우리에 있는 한) 누구든지 이에 자유롭지 못함이라 보는 것입니다.

    이 면에 있어서, 성경엔 어떻게 증거 되고 있음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이 현상에 있어서, 하나님이 장차 어떻게 나타내심(심판하심)인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람의지로서 세운 게 아니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광되게 함일진대,
    (총 공동체) 스스로 이를 결코 잊지 아니함 되어져야만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속한 선과 그 행할 일을 수고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께 당연히
    인정받으심이어야함이 온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전히 묵혀둠은,

    복음의 확산을 충분히 더하여가고자 함에 역행됨이라 보는 것입니다.

    그 세워짐이 육체의 일에 상관된 게 아닌, 성령으로 난 것이며,
    믿음으로 견고한 울에 머물고자함일진대
    그 이룸의 소망이,
    영혼의 닻같이 튼튼하며 하나님의 말씀인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적극 행하심이어야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지었음일진대, 그 받은 권위를 업신여길 명분이 무엇이겠으며
    오히려, 받은 사명과 지위와 권위를 함께 견지(유지)해야만 온당하지 않겠습니까,

    여태껏 어그러진 길 걸음 같은 현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거스름과 같음이며
    주님의 몸 된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흑암에 가둠과 다를 바 없음이며
    이곳 통해 이루어야할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이 아주 경시함 되는 게 아니겠는지를
    근심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신념으로 이해로 증거로 믿는 것 중,
    모두의 확실한 증거가 더 신뢰될 수 있음입니다.

    (그곳이) 분명,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발견함에서 세워진 것일진대,

    이미 그 약속된 보증으로 받음 됨이며

    결단코, 주님 위함을 멀리한 초보의 일이 아닌 것입니다.

  • 2021-06-26 14:28
    양성원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애초에 함께 쌓은 선으로 선한 것을 내기위해 (함께) 그 출발을 기뻐했음일진대,
    그 쌓은 선과 그 선으로 이루고자함이 지금껏 멈춤 됨인바
    이 현상을 어찌 이해해야함인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세워짐이, 사람의 명을 좇아 의문에 순종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럴진대, 여태껏 서로 부딪혀 묵혀둔 현상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한 결말인 것이며
    서로지체 간, 실로 좋게 하고 있음인지에 강한 의문이 제기됨입니다.

    이 (묵혀둔) 현상은, (본의 아니게)
    그것의 주인이신 주님과 함께 아니함이 되며 주님의 의를 배척함이며
    서로의 (양방의) 마음에 가득한 여러 말로 인해 주님과 함께 모으지
    아니함 되어져 (애초의 목적을) 헤치는 것과 다름이 무엇이겠는지 하는 점입니다.

    실상이 허상에 비할 바 없이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세워진 목적에 따라 선을 행하는 것이 옳음이라 생각합니다.

    그리됨이, 주님의 마음에 기쁨이시며, 주님의 몸 된 교회공동체의 양육과 더불어
    성령의 능력 힘입어 세상에 주님의 이름 알게 함이 온당함이라 생각합니다.

    그 주위에 사는 (세상)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있음입니다.

    모두의 기도로 총 공회가 주님께 받아 행하고자했음일진대
    분쟁이, (주님의 교회공동체의) 마음에 뿌려진바 되어져
    이를(애초에 공동된 행위를) 어디에 빼앗김 된 현상인 것인지,
    아니면, 여전 믿음 굳게 주님의 의를 유지하고 있음인지에 대해 생각해봄입니다.

  • 2021-06-28 10:00
    ‘묵혀둔 양성원, ..실로 주님위한 최선인가’

    (매우 짧은 지식이며, 다만 읽혀지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두서없이 이어짐입니다.)


    손바닥을 서로 부딪쳐야 소리가 남입니다. 한 손이 피해버리면 (소리)날 수가 없습니다.

    서로 분쟁하는 이유가,
    (한쪽이나 양편이) 근본 된 복음을 부정(부인)함에서 비롯됨이 아닌,
    방법(론)의 차이로 말미암아 양측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라 생각해봄입니다.
    그럴진대,
    양측이 이 문제를 풂에 있어서, 하나님영광위해 더 좋게 하려함에만 초점 맞추어
    (성경말씀과 영감에 따른) 결정적인 양보를 하게 될 적에 바로해결나지 않겠습니까,

    이 현상이, 애초에 함께 품었던 뜻을 달리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렇게 팽팽히 맞서, 이래저래 긴 시간을 허비하며 여태껏 묵혀둠이
    정녕,
    어느 성경말씀으로 말미암은 지혜인 것이며 최선(책)인지하는 점입니다.

    혹여 양방이, 이렇게 황무하여도, 애초이후로 발생한 어떤 문제의 해결이
    애초의 책무를 행함보다
    더 우위우선본위이며 매우 중대한 사안이기에 여태껏 또한 앞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차제에 (성경적으로) 깨닫고 싶습니다.

    이 현상이, 성경에 나타난 분쟁과 동격인 것인지
    아니면, 매우 건설적 추구위한 (긍정적) 논쟁의 지속인 것인지
    또 다른 이유가 그 무엇인지를
    막론하고서,
    여하간 주님의 일인 만큼, 애초대로 한 마음 품으시어 일로전진이어야만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어머니의 심정 품으시어) 믿음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그리됨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배운 대로) 심판은 주님께 있으심이며 장차 칭찬도 벌도 주님의 소관이십니다.

    많은 말을 앞세워 우리 쪽이 옳고 상대편이 그르다하며 마냥 묵혀둠이기 보다,
    주님 앞에 모든 것 다 내려놓으며, 신원하여 주시기를 (주님께) 맡기며

    다만, 주님의 선, 온전히 이룸 위해
    함께, 일행전진의 추구가 (주님 앞에) 온당하지 않겠습니까,

    모세의 기도를 보게 됩니다.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출32:32)’.

    생명책에 있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백성의 문제를 자신이 온통 끌어안고
    백성들을 구원해내기 위해 하나님께 중보 기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렸습니다.

    그 심정(처럼)이시면, 금방해결나지 않겠습니까,

    (자신 부끄럽습니다만)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여태껏 일련의 현상이, (성경에 나타난) 분쟁 같음이 아니거나 이 말씀에 전혀 무관함이면,
    그곳 통해
    이룰 주님위한 복음운동이 20년 넘도록 퇴보함 되어져
    그곳이 마치, 모래위에 지은 집 같이 무너짐 같은 현상의 이유가,
    또한,
    이 어둡고 황폐함을 여태껏 지속함 가운데, 주님 안에서 한 몸 이룬 지체들이 환난 겪는 이유가,

    (양방 각기) 주님 앞에 (또한 온 지체들 앞에) 실로 어떻게 변증되고 있음인지 하는 점입니다.

    (그 설립이) 공동의 기도로 일어나 하나님 말씀에 이르러 행하고자했음일진대,
    분명 하나님과의 약속 됨입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고자
    성령의 일하심에 함께, 즐거이 참예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진대,
    애초의 믿음에, 애초대로 견고히 함께, 서있을 수밖에 없음이며 합당함이라 생각해봄입니다.

    (계속)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결국엔) 버림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온 교회공동체가 (말씀처럼), 머리되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위엣 것을 생각하며 함께,
    애초의 믿음과 행위에 줄곧 서있어야 함이 매우 온당함이라 보는 것입니다.

    그리됨이어야 주 예수그리스도와 실로 함께 참예함 되는 것이라 여겨짐입니다.

    그 세움이,
    (사람의 의지로서가 아니며) 오직주님으로부터 총 공회로 좇아 난 것이 분명할진대,
    시초의 뜻 변치 않음을
    줄곧 원하며 충분히 나타내어 이뤄감이어야만 온당함이라 여겨봄입니다.

    무너진 교훈의 터를 다시금 수축하고 닦으며 적극, 총 공회공동체의 합일일행이
    매우 합당함이라 생각해봄입니다.

  • 2021-06-28 18:55
    ‘묵혀둔 양성원, ..무엇위한 해답인 것인가’

    하나님도 (그 세움에 대한) 믿음도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운 게 아니겠습니까,

    오직 예수님으로! 목양일념(정신)으로! 주님 안에서 함께 일으키시고자함 아니었겠습니까,
    맞을진대,
    한마음 품어 한뜻으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복종하심이(엡5:)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함께 유익 얻도록 속히, (함께) 회복해야만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껏 그냥 묵혀둠이, 양방의 어느 율법(어느 말씀과 규례)에 비추어 (상호) 의롭지 않다 함으로
    말미암음인지(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하나,
    ‘그리스도예수를 주로 증거’하도록 공히 받았음일진대,
    그리스도를 위함을 믿는 믿음의 굳은 것으로 줄곧 행해짐이 온당하지 않겠습니까,
    은혜로 주심을 믿고 받았음일진대, 이를 결코 헛되지 않게 함이 (주님 앞에) 매우온당하지 않겠습니까,

    위로는 하나님영광위해, 옆으로는 서로지체들과 또한 이웃구원 위함이
    (시초 총 공회의 공히) 공감일진대,
    여전 ‘감격 있게 하나’ 되어져 적극 행하심이어야만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계속적인 멈춤과 전진의 두면 중, 주님께서 어느 길을 밝히 열어주심인지에 대한
    바른 분변으로
    오늘날, 주님의 의를 한껏 경험해야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주님 앞으로 온전히 나아갈 적엔 금방이라도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다시금 예수향기가
    (사방에) 퍼뜨려지지 않겠습니까,

    필연코, 그리스도의 복음위해, 모두의 기쁨 되기 위해 행할 적에
    (주님께서) 그 기쁨이 줄곧 기쁨 되게 늘 도와주심이 아니겠습니까,

    온 공동체의 기도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확정한 것일진대,
    다시금 (주님영광위해) 마음에 허리 동이며 말씀 안에 뿌리를 박고 믿음 굳게 행하시어
    기쁨과 감사함의 단물이 넘쳐나도록 함이 (주님 앞에)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껏 모습이, (육체로 마칠 뿐인) 신념적인 믿음으로 인한 현상이 결코 아닐진대,
    우리 주 그리스도예수의 명령하심을 감사함으로 받은 것이 되며,
    또한, 성령으로 시작한 것일진대 여전, 성령의 통로 되어져 역사하심을 따라
    줄곧, 애초의 그 믿음과 행위로서 귀결되어져야함이 온당하지 않겠습니까,

    온 공동체가 (그곳 통해) 밝히 드러내심에 힘씀을 빼앗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것임에 대해 (누구든지) 폄론하지 못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령, 나누어짐 있다하여도 주님 안에서 즐거운 분립이어야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여태 헐어진 것이 다시금 세워지길 바라는 말이 범법인지는 잘 모르나,
    이 황무함의 이유가, (애초의) 믿음에서 떨어짐에 따른 결말인지 (아닌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봄입니다.

  • 2021-06-29 19:35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여태껏 분쟁과 황무한 현상으로 인해,
    주님의 몸 된 지체들이 시험받을까 두려워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설령, 이 문제해결의 관건이 양방각기 명확히 있다하여도
    요(要)는, 심판하실 주님께서 이를 (양방의 주장을) 어떻게 인정하심인지 하는 점입니다.

    이 현상이 주님 안에서 한 몸 이룬 서로지체들에 어떻게 유익 됨이며, 믿음의 후손들이 어릴 적엔 무슨 영문인지 모를 것이나 자라나 이를 (이 이유를) 물을 적에 어떻게 명쾌히 대답함이며,
    (제한적이지만) 이를 보아온 인근에 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도가 제대로 되겠음인지, 신입교인들이 신앙생활하면서 한 지붕 두 가족처럼 된 모습과 그 건물의 문이 굳게 닫혀있는 이유를 알게 될 적에 어떻게 생각하겠는지를 생각해봄입니다.

    (배운 대로) 주님이 주신 믿음이 아니고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를 못합니다.
    그곳이 (사람위주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심을 믿음으로 세운 것일진대,
    애초의 규례가 무너진 결정적 이유가, (본의 아니게)
    주님의 복음 위함을 잠깐 잊은(놓친) 결말인지(아닌지)를 심각히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양성원은 주님의 것입니다. 시초에 하나님의 의로 확증되어져
    성령께서 총 공회가운데 능력을 행하시려는 주님의 일로 세워졌음입니다.
    맞을진대,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함이라 말씀했는데(갈3:15),
    하물며, 하나님께 모두의 기도로 정한 언약을 함부로 폐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함입니다.

    이 행함에 걸림 있다면 고치고 보완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 현상이, 양방각기의 어떤 규정된 해석에 따라 겪는 결말인지는 잘 모르나
    분명한 것은, 애초에 공회공동체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따라 받음 된
    것일진대,
    애초에 주님의 일을 행하고자 세웠음이 헛된 것인 양
    묵혀져있는 이유를
    표리 관계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혼동됨입니다.
    즉, 애초에 하나님영광위해 공히 정한 언약과 그 행함이 정녕 그릇됨이기 때문인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 받으라‘ 말씀했습니다.(히13:7)

    주님의 약속을 행하고자 기업으로 받았으며 또한 시초의 믿음 변개치 못함이
    총 공회공동체 공히, 공감임이
    정녕 맞음이면,
    주님이 주신 지각을 사용하여 이 현상의 종말이 결단코 어두움으로 결말 되지 않도록
    (온 공동체의) 거룩한 근심이어야 온당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영광되게 귀결이어야 함이 정석이라 여겨봄입니다.

  • 2021-06-30 19:35
    아무리 큰 재산이어도 그 쓸모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결국엔 다 날라 갈 뿐이 아니겠습니까,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주어진 법에 따라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여 그곳 통해 하나님의 의를 적극 이루어 가시고자했음이 아니었겠습니까,

    20년 지나도록 여전 어두움에 덮여져 황무한 현상이,

    율법과 은혜의 두면 중, 어느 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둔 현상이겠는지,
    (두 면의 깊은 관계를 두고서 말함이 아님을 전제합니다.)

    그 기업의 운영을 여태껏 멈춘 채 묵혀둠이,

    율법(성경)에 비추어 이러이러한 잘못이 분명 있기에 반드시 고쳐야함이란, (그 말씀 따른) 각기 나름의 세워진 잣대로 견준 나머지, 파생된 결말인지,

    아님이면, 애초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써 이러한 식으로 운영해야만 명실 공히,
    하나님영광 위함과 더 큰 생산성이 있을 것이란, 각기 나름의 세워진 잣대로 선의를 견준 나머지 파생된 결말인지..하는 점입니다.

    율법이나 은혜를 법 있게 써야 선함인줄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맞을진대,
    그 양성원이,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그 사명 감당하고자함에 은혜로 받은 것임이
    분명할 진대는,
    그 기업의 생산에 따른 운영과정에서 (율)법으로 나타내야할 것이 있다면 물론 해야 하겠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을 감당하려는 애초의 잣대를 놓치지 말아야함도 그 비중이 매우 큰 만큼,
    이를 하나님의 지혜로 구분하여 적시적용 돼야 함이라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양성원은, 성령으로 심어져 은혜를 입음대로 그 경영에 있어 주님 원하심대로 바르게 행사하며 이에 큰 유익을 경험하고자 했음이 아니겠습니까,
    맞을진대,
    이렇게 뒤로 물러남 같음 됨이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함인지, 아니면 (본의 아니게)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진 격이 됨인지를 생각해봄입니다.
    그 이룸의 과정에 있어서 율법의 잣대로 힘 겨룬 나머지, 그 진전이 멈추고 황무하게 된
    현상임이 맞을진대,
    (본의 아니게) 애초의 은혜를 무시함이(경시함이) 되며, 나아가 이를 내신 주님과 주님의 뜻을 배척함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니겠는지에 대한 생각을 거듭 심각히 해보게 됨입니다.

    (자신 부끄러우며) 사람이나 사건을 줄곧, 율법의 잣대로만 봄이면 부정적인 면이 (자꾸만) 보여 질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자칫, 배타적으로까지 기울게 되는 것이라 여겨짐입니다.

    그러나, 이를 실로, 은혜의 관점과 잣대로 생각할 적엔 관용과 긍정적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바,
    이를 간과할 수 없음이 공히 공감이실 적엔, 이 황무한 현상이 하나님의 영광에 흠이 될까 오히려 크게 근심하게 되는 판도로 바꿈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은혜로 분명 받았음입니다. 그럴진대, 주님의 선한 일을 좋게 여김이 마땅함이기에 이를 귀히 보전해야함이며,
    이에 규모 없을까 피차 권계하며 권면은 (상호)있을지언정, 은혜를 쏟아버림 되면
    애초에 주님영광위한 동기와 대의와 목적과 생산이루고자 함이 깡그리 잊어버림이 되고 마는 것이라 생각함입니다.

    율법에 비추어 살피되 이 못지않게 은혜에 중점 두어져 그 중심으로
    보완하며 어떻든 '일로의 전진'이 순리이며 합당함이라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정함 아닌 한) 계속 변론을 내며 묵혀둠보다,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아난 것일 진대는,
    (온 공동체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인 환난에서 필연코 속히 벗어나야만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시작한 것을 규모 있게 행하며 (후대에) 유전으로 이어가야함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애초의 (공통된) 대의와 목적이 한 뜻 한 마음이었음일진대 그 기초를 흐리지 아니하여야
    아버지 앞에 은혜 받은 것임을 실로 시인함이 되지 않겠습니까,

    생기 회복하여 행하고자 그 사모함의 모습이 뚜렷하심일 적에 온 공회공동체의 안심이지 않겠습니까,

    (어느 쪽이 옳고 그름인가 가름하는) 마냥, 율법의 잣대로 중심 되면 이 문제를 풀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라 봄입니다.

    선한 경륜을 쌓아 이루려는 일로전진이 실로 은혜에 보답이며 지혜이며 (주님 앞에) 합당하지 않겠는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굳게 잡아 수고하심으로 받을 상을 (아무도) 빼앗지 못하게 함이 온당하지 않겠는지를 생각해봄입니다.

    주님의 명하신 것을 서로 권하여 이 일에 달음질하여 이를 행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함께 영광스럽게 되고자함이 (주님 앞에) 온당함이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해결에,

    어느 공회도 담이 되어주지를 못합니다.

    어느 교단도 이를 만들어 줄 수도 없습니다.

    다만, 전(全)공회의 위상으로써 시급히 회복해야만할 계제라 여겨봄입니다.

  • 2021-07-02 11:59
    '방치된 양성원, ..실로, 주님영광위한 최선이며 합당함인지'를 거듭 생각해봄입니다.

    (그곳에서) ‘주님의 이름 드러냄’을 멈춘 지가 이미 오래입니다.

    (듣는바) 20년 넘게 방치됨이,
    정녕,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에, (영의 눈으로) 유심히 살펴볼 계제라 보는 것입니다.

    애초에, 주님의 善을 좇아 행함으로 인하여
    (모두의 바람인) 하나님의 나라를 공동체 함께 세워가고자 함이 아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의로 정해져 성령으로 시작한 것임이 맞을진대,

    여전 황폐한 현상이,

    마치, 무엇에 잡혀지고 결박 되어진 듯, 무엇에 목이 조여짐 같은 모양새로 느껴짐입니다.

    어두움은 빛과 반대인 것입니다. 이 현상이 (어떤 이유에서든) 어두움인 것이며,
    본래의 구실을 하지 못함으로 (보잘 것 없게 됨으로)인하여 이미 그 빛을 잃었음이라 여겨봄입니다.
    맞음이면,
    단지 사람의 뜻과 마음으로 지은 게 아닐진대,
    과연 무엇으로 인하여 이 어둡고 헛됨 같은 모습인지를 극히 유의해 보아야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이 현상을 어떤 관점으로 보아야 합당한지를 차제에 깨닫고 싶습니다.)


    (한 이야기로서)
    “양들이 들판에서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다.
    한 양이, ‘지금 내가 먹고 있는 풀이 더 좋아’라고 했다.
    다른 양이, ‘아니야, 여기 것이 더 좋아’라고 했다.
    그러다가 급기야 심한다툼이 벌어졌다. 뿔을 서로 부딪치며 딱-딱!.. 골짜기를 울렸다.

    이때 이 소리를 들은 짐승이 있었다. 다름 아닌 사자였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룬 게 맞을진대, 이렇게 나누임과 황무한 현상이,

    마귀가 주님의 몸 된 교회공동체의 마음에 뿌려진 선(善)을 빼앗고자 올무를 놓음에 휩싸인 현상인지,
    아니면, 지금껏 성령으로 좇아 선함을 도모한 결말인지,

    간악한 마귀는 간악한 궤휼로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하려함입니다.

    연약에 싸임으로 인해,
    마귀의 표적과 통로 되고 그 틈새로 가만히 헤집고 들어와 둥지 틀게 할
    어떤 조그만 빌미의 소지가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라 여겨봄입니다.

    (배운 대로)
    자빠뜨리고 쪼개는 것은 간악한 마귀의 짓입니다.
    시험하여 빠지게 하며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케 함입니다.

    분쟁은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게 함입니다.
    분열로 함은 무조건 망하는 것입니다.

    이 황폐함이, 주님의 선한 긍정적인 굴혈인 것이 맞음인지,
    (본의 아니게) 어두움의 세력에 휩싸인 현상인지를 분별해야함이라 여겨봄입니다.

    분명, 어두움에 싸인 현상일 진대는

    반드시 분열의 영이 떠나가게 해야 하며 어두움을 속히 걷어내어야만 옳지 않겠습니까,

    여전히 주님의 선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움 보려함이, 마치 바람에 날려버린 듯 현상이 되어져선 불행인 것이기에,
    성령에 사로잡힌바 되어져 주님의 뜻을 여일히 좇아갈 수밖에 없음이며,
    세상의 비웃음이나 수군거림이나 조롱거리가 되어져선 결코 안 되어야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총 공회공동체의 공통된 마음과 물질과 헌신으로 하나님영광위하고자 마음 모았음이 맞을진대,

    여전한 이 현상이,

    결코, '복음으로 점령'되어진 기쁜 현상이라 (개인적으로는)보여 지지가 않습니다.

    복음은 어둠을 밝혀주기 때문입니다.

    (이 면에 있어서도 깨우침을 얻고 싶습니다.)

  • 2021-07-03 16:13
    그곳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그곳의) 주인 되신 주님께서 총 공회에 그 소유를 맡기셨음입니다.

    맞을진대, 이를 우연하게 바라봄이 아니라, (온 공동체가) 이를 통해 하나님이하시고자한 목적과 계획과 뜻하심을 실로, 따름이 온당하지 않겠습니까,

    마귀는, 그것을 온전히 인정하여 이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어떻게든 집어 삼키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덤비며
    올무에 걸리게 하여 혼잡함에 머물도록 온갖 궤휼로 속이려함입니다.

    어두움에서 벗어나 애초대로의 일로 전진하도록, 앞서 이끌어 주심이 옳지 않겠습니까,

    누구 때문에, 저쪽 때문에, 이럼이라며 그 책임을 상대편에 떠넘기려함이기보다,
    이 일(애초 양성원)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계획 있으심에 공통된 마음이루시어,
    양방각기 가던 길 멈추시며 방향의 전환이어야
    실로, 주님의 교회공동체 모두가 살길 됨이지 않겠습니까,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으며 그 운영일 수만 있다면
    서로(일정)양보함에서, 아니면, 한쪽만이라도 주님영광위해 넓은 마음 품으시어서라도

    그 이룸이어야만 애초의 목적에 부합함이지 않겠습니까,

    여전 묵혀둠이, (애초와 견줄 적엔) 총 공회적으로 받은 달란트를, 그 지닌 언약을 따라 함께 이루고함을
    스스로 포기함 되는 것이며, 후손대대로 유전되는 것을 범함이라 생각해봄입니다.

    20년이 넘도록 황폐하게 묵혀둠을 어찌 이해해야함입니까,

    다툼(분쟁)으로 인하여, 주님의 공동체가 과연 건강함이겠습니까,

    (그러지 못함 속에) 주님의 지체들이 겪는 (크고 작은) 피해와 근심과 고통을 누가, 어떻게 위로해줌입니까,

    한쪽이 (그 견해 또는 주장을)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리며 여전히 그 해결 미룸이면,

    일파만파로 입게 되는 주님의 교회는 어찌됨입니까,

    최고의 교리신조행정을 추구함일진대, 이 운영이 (긴 세월) 완전 마비된 현상이 정녕 즐거움이며 합당함이겠습니까,
    이렇게 내버려둘 바에야, 해결될 때까지 만이라도 선한 용도를 물색하거나 장소를 빌려주어
    어찌하든 주님위해 유익되게 함이 성경적인 이치이며
    주님 앞에 (그 받았음에 대한) 선한 양심을 기울임 됨이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공동체의) 마음이 많이 아파했음인데 아픈 만큼 성숙함이 있기에
    주님영광위해! 온 지체들의 행복위해!

    ‘비어야할 부분은 비어내어야만’, 주님위한 행할 길이 열리게 됨이 아니겠습니까,

    유익하게 할 것이 있어, 하나님께 드림이 될 진지한 검토와 변화와 방향의 전환이 없으면
    내내, 똑같은 결과만 되풀이 될 뿐이라 생각함입니다.

    이처럼 황폐하게 묵혀둠은, 그곳에서 이룰 하나님의 말씀(명령)을 (본의가 아니어도) 폐함이 되고마는 것이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진대 또한, 이를 보는 믿음의 후손들이, 땅만 버리게 하고 열매 없는 현상이라 인식하지 않겠는지,

    주님이 주신 것을 인하여, (말씀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과 그 착한 행실로서 열매 맺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함이 그곳에선 예외인가 보다하며, 저들의 믿음과 생활에 혼동을 가져올 수도 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럴진대, (온 지체의) 근심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개적인 면도 있겠으나) 총 공회가 받은 것일진대, 총 공회적인 그 책임 또한 간과할 수 없음이라 생각함입니다. 이 모든 현상이 실로,
    ‘예수의 이름’이 드러남인지, 공동체 함께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운동함에서 비롯됨인지, 애초에 (온 공동체적으로) 심었던 것이 결코 뽑히지 않을 만큼의 우려되지 않는 결말인 것인지,
    (공동체의) 마음이 주님께 가까워져 있음인지, 주님의 의를 영접함인지, 애초의 증거 삼았음인지, 주님을 존경함인지, 주님을 참 경배함이 되겠음인지..,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옴입니다.
    이 현상이, 양방 각기, 하나님의 계명으로 교훈삼아 (온 공동체를) 밝은 길로 인도하고 있음에 따른 결말인지에 대해,
    주님과 말씀 앞에 확연히 증명됨이면 아무 근심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닐 경우, 자칫, 지체들이 혼동되어 구덩이에 빠지게 될 수도 있는 게 아니겠는지, 그럴진대, 지체들이 어찌해야함인지,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다 말씀했습니다. 마냥 어두운 현상은, 양을 먹이고 치며 찬송을 받으실 주님의 뜻을 함께 이루고자한,

    애초의 목적된 공통된 대의와 증거가 (공동체서로) 합하여 있지 못함에 기인된 게 아니겠습니까,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주님의 뜻을 이루시고자함인지에 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양방각기 나름의 주관이 뚜렷함 가운데 머물며 나름 확립된 말을 냄으로 인해
    여태껏 (서로) 어깨를 겨룬 듯 같음이 아니겠습니까,

    여태껏 멈춤은 마치, 땅속에 주님의 소유를 감추어둠 같은 현상이 아니겠습니까,

    맞을진대, (말씀에) 주님께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시어 제때에 바칠 실과 바치기를 기다림처럼,
    (총 공회공동체가) 이곳 통해 선을 이루길 기대하시며 인내하며 여전히 기다리고 계심이 아니겠습니까,

    이를 (행사하려하지 않을)바엔, 차라리 주님을 위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기관(단체)에게 빌려주어서라도
    묻어둠보다 (방치함보다) 주님위해 생산이 있게 하는 게 훨씬 더 낫지 않겠습니까,

    이런 현상일 적에, ‘총 공회의 교리신조행정’이 그 빛을 발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주님의 뜻 여전 이룸과 온 지체가 뿌듯함을 지님은 물론, 타 교단들이 다시금 주목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결정적인 해법을 (공동으로) 일구어내야 옳지 않겠습니까,

    그럴진대 모두가 신뢰하게 됨이며, 그 면모를 보여줌이 없을 진대는
    한낱, 골격과 형식만 (남아)있을 뿐이라는 불필요한 오해와 인식을 주어선 안 됨이라 보는 것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과 복음위하여 양방의 모든 행사를 주님께 맡기시며 화목하도록 적극 끌어주심이 옳지 않겠습니까,

    지금껏 서로 불화하여 서로 얼굴 붉히며 (때론) 상종하지 아니함을 (말끔히) 털어냄으로 말미암아
    갓 난 어린아이하나라도 주님의 은혜의 도가니 속에 머물며 자라나도록,

    새롭게 바꾸어 주심이 옳지 않겠습니까,

    (자신 부끄러우며) 성경말씀은 실천(실행)의 대상이며 삶속에서 그 나타남이 있어야함이라 했습니다.

    총 공회공동체의 공통된 마음과 물질과 헌신으로 하나님영광위하고자 마음 모았음일진대,
    방치되고 있음이 합당하지 않음을 공히 실로 공감함이어도, 행동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소의와 과정도 매우 중요하나 그 중심되어진 대의와 그 원칙도 매우 중요함이라 생각합니다.
    (이 현상을) 하나님의 지혜로 풀어내도록 적극 이끌어 주심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 2021-07-06 14:04
    주님께 공히 기도하여 세워진 그 자체가, 주님의 일인 것이며 그 표적됨이 아니겠습니까,
    맞음이면,

    이렇게 방치되고 묵혀둠이,

    ‘복음으로 점령’되어진 현상이라 (개인적으로)전혀 보여 지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봄이 맞음이면 여전 이 현상이, (본의 아니게) 애초에 지녔던 하나님의 의를 반대 (또는 거역)함이 되고
    나아가 주님을 영접하지 아니함 된 결말 같음인지,
    이 현상으로 인해 주님과 함께 모으지 아니함 됨이 과연 합당함인지 (또는 아닌지)를

    다시금 분변해봄이 온당하지 않겠습니까,

    그 설립이 분명코, 하나님의 영광 위함일진대,
    양방의 주장이(견해가) 아무리 옳다하여도,
    이 현상이, 애초의 주님의 뜻에 부합된 기준과 그 근본 된 가치에 어떻게 견줄 수 있음인지 하는 점입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말씀했습니다.

    주님의 일꾼양성위한 센터의 역할로서 세웠음이 맞을진대

    여태껏 침묵 속에 어두운 현상이,

    실로, 그 중심됨이며 바른 질서이겠으며 애초에 부합함인지를

    재 심문해 볼 필요성이 있지를 않겠습니까,

    주님의 심정이신지를 공동체의 기도로 확정되어져 세워진 것이

    하나님의 영광위한 ‘대의’라면,

    그 일 이룸의 진행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이견이나 논쟁은 어디까지나 그 대의에 따른

    ‘소의’가 됨이라 생각해봄입니다.

    그럴진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지)

    이 현상이, 애초에 지녔던 주님위한 대의를 (본의 아니게) 잃어 버렸음에 기인된 현상인지 (아닌 것인지),

    규모 있는 소통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위해 공히 품었던 애초의 믿음 따라 줄곧 행함을 결코 머뭇거릴 수 없는
    중대사안인 것인지 (아닌 것인지)를 실로 분별해 보아야함이 옳지 않겠습니까,

    심판 날에, ‘무엇 보려고 세웠더냐’ 물으신다면, (전 지체 공히) 기쁨으로 대답할 말이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헛되게 받았음이 결코 아닌,

    분명코 하나님의 은혜일진대는,

    진실로 쌓은 선에서 선을 냄에 따라 그 선을 행하심이 합당함인지(또는 아님인지)를
    실로 분변해봄이 옳지 않겠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봄입니다.

    그 원칙엔 공감이나 실제로는 이해가 상충 되어 도저히 힘듦이면,

    함께 이룰 때까지, (소극적이지만)

    (일면 양보하여) 한편에서라도 그 대의를 좇아 줄곧 이어가도록 함이 만부당함인지..,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며 생명을 위하고자했음이 심히 요동된 현상이,
    내내 무엇에 좋게 함인 것입니까, 마냥 묵혀둠으로 인해 어두움의 영에 빌미를 주며 그 영의 역사에 붙잡혀선 결코 안 됨이기에 하나님의 지혜로서 이 어두움을 속히 벗어나야만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목회자는 죽은 사람을 장례 치르는 게 본래사명이 아니라
    죽을 것 같은 사람을 살리는 게 더 중요하며 참 목자라 하는 말을 듣습니다.

    어두움을 속히 벗어나야만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전 지체가 실족하지 아니하여야만 복이 되지 않겠습니까,

    마치, 그곳에 (주춧)돌들이 소리를 지르는 것만 같습니다.

    이 문제해결에 있어서 내파 네 파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파라야만 함이며, (이 해결에) 양방의 구분 따로 없음이라 생각합니다.

  • 2021-07-07 16:37
    ‘묵혀둔 양성원이 실로, 주님위한 최선인지’를 거듭 생각해봄입니다.

    어느 해에, 한 여 집사님과 길에서 마주쳐,
    양성원과 교회 관련하여 대화 가운데 들은 말이 떠올려져 대강 말해봄입니다.

    ..0목사님이 양성원 원장의 직무로 옮기실 경우, (양성원과 교회의) 문제가 해결 될 것으로 본다..
    여기모임(다른 말로 표현함)은 이미 (본)교회의 예배시간대와 겹치지 않게 하고 있으니..시간대에 있어선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대략 그런 내용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인지, 한편에 확정된 것을 일컬음인지, 간접으로나마 전달되어져도 무방한 것인지를
    물어보지 않았으며,
    지금은 그 어떠한지를 전혀 알지를 못합니다.

    차제에, (이에 주님의 뜻이 분명 있으심을 믿는 전제로서) 당시의 말이 생각나 언급해볼 뿐,
    어느 한편의 의사를 대변함이거나 주장도 아닌 것이며, 행여 이에 추호의 그 어떠한 일말의 억측이나
    오해마저 없으시길 바랍니다.

    (배운 대로)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애초에 견줄 적엔 분명히 그 중심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고자함이 (그곳에선) 일찍이 막혀져 아무런 결실이 없음입니다.

    주님의 의로 정한 것을 달리함으로 말미암아
    (본의 아니게) 주님과 대립되어진 결말이 아니겠습니까,
    맞음이면,
    이로 말미암아 주님의 화를 (본의가 아니어도) 자초함이 된 현상이 아니겠습니까,

    여태껏 어둠 속에 둘러싸여(휩싸여) 있으나, 강제로라도 끌어내어줄 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차제에 혹시, 뭐든지 말해보라하시면,

    내내 이럴 바엔,

    모든 의논은 차후로 미루고서 (열흘이든 한 달이든..) 서로의 마음이 통할 때까지,

    그곳에서

    오직, 주님과 복음만을 앞세워, ‘침묵의 시간’을 가지심이 어떠합니까,

    기어코 일으켜 세우고자하시려는 주님을 향한 결단의 의지를 (주님의) 양떼들이 실로 볼 적에,
    한 지체된 공동체의 마음에 안도감과 아울러 더욱 신뢰하지 않겠는지를 생각해봄입니다.

  • 2021-07-08 17:59
    (어디까지나 전 공동체적 개념으로 생각해보려함입니다.)

    그곳은 주님의 소유이시며, 이를 총 공회에 청지기가 되게 받았음일진대,
    여태껏 지체함에 빠진(머문) 현상이,
    주님 위함에 민감하여 반응함을 결코 잃지 않았음이라 여겨지기엔 무리라 생각이듭니다.

    그럴진대, 이 황무한 현상이, 주님의 본심에 젖어져 신실한 율에 따름인지,
    아니면, 여태껏 머뭇거림의 현상으로 인하여 성령의 재촉하심을 이미 많이 지나가고(비켜가고)있음인지를

    (온 공동체가) 실로 분별해야함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이 현상은, 애초의 공통된 그 증거가 서로 합하여 있지 못한 결말이 아니겠습니까,
    그 맥락(상)으로 보아,
    애초에 예비하심 따라 일로전진이어야 함이 정녕 주님의 뜻이시면

    급속히, 흑암에서 빠져나와 본 뜻대로 행하여야함과 비교되는바,

    (총 공회가) 주님의 본심을 좇아, 하나를 택해야할 기로에 이미 서 있음이 아니겠습니까,

    이 현상이 과연 무엇을 말해 주고 있음인지를,
    옳은 대로 판단해야만하지 않겠는지를 생각해봄입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여전히 묵혀둠이,
    주님께서 모든 소유를 맡기셨으나 주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함 같은 현상이 아니겠습니까,
    즉, 서로의 이견으로 인하여, 말씀이 막혀져 결실하지 못함과 같은 현상이 아니겠습니까,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말씀했습니다.
    총 공회공동체가 주님의 날개아래 모음 되어져 주님의 일을 행함을, (본의 아니게)
    원치 아니함이 됨 같은 현상이 아니겠습니까,

    이 현상에 있어서,
    주님께서,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마음을 모았더냐 애초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물으신다면
    어떻게 각기, 변증 되겠음인지 하는 점입니다.

    함께 모음 되어져, 빛 되신 예수님을 나타내고자함이 맞음이면,
    오히려 흩어짐과 아울러 황폐하여 버려진 것 같음이,
    그 빛을 잃은 것과 다름없음이라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같음에, 하나님의 성령이 어떠한 기쁨으로 머무심이 되겠는지,

    이렇게 방치됨이 결국 어두움에 붙잡힌바 된 현상인지,
    아니면 여전히 그 빛을 잃어버리지 않았음인지,

    과연 이 현상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겠는지 아니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무엇에 기인되어진 것인지를 밝히 분별함이 우선이며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과 복음을 위해, 귀한 선을 행하고자 시작하셨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이름으로 그 쌓은 선에서 선을 내는 것이 멈춰짐으로 인하여,
    주님을 찬송하여야함이 (본의 아니게) 이미 사라져 버림 같은 현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럴진대,
    총 공회가 합력하여 새롭게 길가야만 옳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서, 그곳에서 ‘예수의 생명’이 흘러나게 해야만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이 또한,
    최고와 최선을 추구하(려)는 총 공회의 추구와 위상에도 걸맞음이 되지 않겠습니까,

    양방의 견해가 아무리 옳다할지라도, 멈춤과 전진의 두면 중, 어느 쪽이
    의롭다함을 받게 됨인지를 다시금 분별해 보아야하지 않겠는지를 생각해봄입니다.

    애초, 하나님의 영광위해 목적된 대의를 훌쩍 뛰어 넘어설 만큼의
    타당성의 명분이나 이유나 근거로서 과연 무엇이 있겠는지를 (다시금) 생각해봄입니다.

    주님 안에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온 지체와 (자라나는 믿음의 후손들이)
    이를 신뢰하게 되며 이 노선을 자랑함이 될뿐더러 긍정의 힘을 체험 하도록,
    (이 현상을) 근심해 보아야할 일로 생각해봄입니다.

  • 2021-07-10 10:47
    ‘묵혀진 (애초의) 양성원, 그 복원과 일로전진을 소망하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발견되어지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나타냄에 매임 당하여 그 수고로 말미암아
    풍성함을 이루시고자했음이라 생각해봄입니다.

    주님의 의로 정해지고 주님께 속한 선한 일로 여겨
    한 마음으로 통일되게, 믿음위에 세워졌음이라 생각해봄입니다.

    맞는다면, 총 공회의 공동된 지위로서 행할 기회를 확고히 (부여) 받았음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럴진대,
    이를 지켜 행함이 이미 끊어졌음이,

    주님이 예비하신 것을 흐리게 함인지 (아닌 것인지),
    우리의 머리가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캄캄한 흑암에 가둠 같음인지 (결코 아님인지),
    애초대로 그 시인함을 굳게 붙잡아야함이 옳음인지 (아닌 것인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깊어짐입니다.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처음행위를 가지라 말씀했습니다.

    (사람의지의 신념적인 것이 결단코 아님일진대)
    총 공회가 맡은 청지기사명을(직분, 직무를) 하나님의 지혜로 행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를 셈할 적에, (장차) 주님의 칭찬과 상급됨이어야만하지 않겠습니까,

    (제 좁은 지식의 눈으로 볼 적에) 그 생산이 많고 적음을 차치하고서,

    그 운영으로 인하여 생산(성)이 있는 경우와,
    멈춤에 매인바 되어 마치 뿌리까지 뽑힌 나무처럼, 전혀 생산이 없음을

    비교할 적에,

    어느 쪽을 중히 여기며 다른 쪽을 경하게 여겨야함인지,
    (어느 쪽이) 복음위한 명분으로써 합당하며 (후손 대대로) 유업을 이어가야할 명분 됨인지,
    어느 쪽이, 성령으로 시작한 것이 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이며 그 뜻을 좇음이며
    칭찬 받음 됨인지,
    어떠한 '율(법)'에 따름이어야, (그곳에서 이룰) 애초에 율의 획이 떨어지지 아니함 되며
    온전한 믿음과 행함 가운데 생명의 역사로 살리는 방편인지를

    마땅히, '셈하여야만' 온당하지 않겠습니까,

    그 세워진 것이,

    주님 앞에 (온 공동체가) 기도한 끝에 (연보하여) 지은 게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생명을 전파하고자 심었음이 아니겠습니까,
    맞음이면,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임이 총 공회 공히, 공인된 것이며, 주님께 속한 선을 수고함으로 말미암아 주님께 인정받으며 또한 스스로 증거 함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일로서 진리를 위함이며 마땅히 행할 일을 (총 공회 공히 또한 스스로) 잊지 아니하려함이 된 게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일에 속한 것이기에)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계명임을 따라
    복음전파 위함을 지켜 행하고자함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기에

    지나쳐, 그리스도의 복음전파가 거부됨이 아닌,
    오직 주님 때문에, 주님의 일을 잃지 아니하며 신실함으로 쓰기(사용하기)를 원했음이라 생각을 해봄입니다.

    그럴진대, 온 공동체의 마음이 이 현상을 분별함에 ‘집중’됨이어야만 온당하지 않겠는지에, 개인적인 생각을 해봄입니다.

  • 2021-07-10 19:15
    이 현상이,
    실로 무엇위한 해답이며 정녕, 밝히 증거 된 주님위한 최선이 되겠음인지,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으심인지에 초점 맞추어
    그 해결의 실마리를 기필코 찾아내야만 옳지 않겠습니까,

    현실적인 해결에 있어서 공히 공감이나, (지금으로선)
    목회자의 선에선 도저히 그 방도가 없으심일진대,

    (전에 현실적 대안을 물으신 분이 계셨기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에 분명, 주님의 뜻이 있으심을 믿는 전제로서, 주님의 뜻을 그르침이 될까를 근심하며
    아주 지엽적이나) 제안해봄은,

    총 공회소속 전 교회(성도들)의 의사를 물어봄이 어떠함입니까,

    (그곳이) 몇몇, 교인이나 교회로 세워진 게 아닌 것이라 봄이며,
    하나님의 영광위해 세워졌음일진대,
    그 보존이 혼동되어져 마냥 황폐하게 둠은, 주님의 선한 일을 이루고자함에 합당치 못함이며,
    내내 방치됨은 모두의 불행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 여겨짐입니다.

    해결에 물꼬를 트는 한 방편으로써,
    객관화된 설문에 따라, ‘양방이 정한 일정한 기준’ 아래, 중지를 모으도록 함입니다.

    예로서,
    1. 이 현상대로,
    -계속 두어야 한다. ( )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 )
    2. 이대로 두어선 안 됨이면,
    -무조건 애초대로 공동운영하여야한다. ( )
    -먼저 각 공회적으로 분리운영하고서 점차 공동운영하도록 방안을 강구한다. ( )
    -위엣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 )
    3. 총 공회의 목회자가 이 문제해결위해, 일차시한을 정하고 그 장소에 모여
    -기도하며 의논하기를 원한다. ( )
    -그럴 필요가 없다. ( )
    4. 이 문제를 놓고서, 온 교회가 공동기도제목과 특별기도기간을 정하여,
    -일제히 주님 앞에 기도하기를 원한다. ( )
    -그럴 필요가 없다. ( )
    5. 이럼에도 불구하고 정한시일까지 그 해결이 없는 경우,
    -1, 2항의 다수를 참고하여서 행하기를 원함이다. ( )
    -그럴 필요가 없다. ( )
    7. 공동체가 함께 운영할 경우, 건물의 수리비에 관하여는
    -총 공회소속의 모든 교회가 연보하고 그 부족분은 (소위) 장자인 교회가 충당하도록 한다. ( )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 )...

    이에 성경말씀을 근거한 적용을 살펴보진 못했으나,
    무릇, 묵혀둠이 실로 최선인지를 초점하여 (인인 관계적으로) 생각해봄입니다.

  • 2021-07-12 15:05
    태풍이 지나가면 크고 작은 그 영향을 받게(피해를 입게)마련입니다.
    최근 간접으로 듣게 된 대략 내용인바,
    ‘..안면이..혹시 00교회교인이신지.., (예, 위입니까 아래입니까) 0입니까,
    (거기 왜갑니까 00싫어하는데)..’
    긴 세월 속에 젖은 경계심의 발로인 현상이라 (개인적으로)생각하게 됨이며,
    비단 몇몇 분에게만 관련된 것이겠는지 잠시생각에 잠겼음입니다.

    (총 공회소속의 교역자이면 이미 아심이라 여겨지며,
    이(양성원의) 문제와 전혀 무관하지 않음이라 생각되어져 차제에 언급해봄입니다.)
    (여러 면으로 소위) 중추적이라 일컬어지는 00교회의 경우,
    세례식이 공적으로는(전 교인이 보는 앞에선)그 시행이 없고 물론 여전, 성찬식이 없으며
    직분 자(장로, 권사, 집사)를 세우지 못하고 있음입니다.
    (정확한지는 모르나) 자체적으로 임직 받은,
    장로님은 댓 분(?)정도이고, 권사로 임명됐던 분들은 (아마) 한분도 없는 듯 생각이 됩니다.

    진리와 영감으로 옳은 대로 행한 것은,
    장차 주님의 판결하심에 따른
    주님의 칭찬과 상급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한 면으로서)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서로지체 된 인인 관계적으로 볼진댄,
    지금까지,
    이를 비롯하여 파생되어진 제반의 문제들이 풀려지지 않고 굳어진 현상은,

    서로 지체된 공동체의 마음에 근심과 아픔 됨이며
    결과적으로 모두에 행복 되어 진 모습이 아닌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이 (현상)속에, 장차 주님의 일에 기둥같이 쓰임 받을 믿음의 후손들이 있습니다.
    저들에게 어떠한 잘못이 있겠는지, 이 (견해가 양립된) 틈새에서 자라나고 있는
    저들의 마음이 과연, 어떠하겠으며 어떠한 아름다움을 유전으로 남겨줌이 되겠는지
    성경말씀에 따른 무엇으로 견고히 심어지겠음인지를
    주의 깊게 분별함이
    절실히 요구됨이라 생각해봄입니다.

    구태여 말함이면, 맑고 순수한 마음들이, (이 현상들을) 보며 듣고서 나름 배울 뿐이(따름이)
    아니겠습니까,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함에 있어선, 온 지체의 공감이나
    이를 실제로
    어떻게 완결지어야 함인지에 있어선 의견이 (양방 간) 어긋나기에 여전 이 현상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개적으로는 다를 수도 있겠으나) 공동체적으로는 크게 양분되어있음에 따라 자연히
    후손들도 구분되어질 수밖에 없는 모습인바,
    요(要)는, 이에 대한 논쟁을 공히,
    그치심의 결단이, 매우 온당하지 않겠음인지에 대한 생각이 깊어짐입니다.

    나와 내 가족에겐 직접(적)으로 무관하다할지라도,
    한 공동체에 머무는 한, 모두가 이에 자유로울 수가 없음이라 생각이 됩니다.

    (이 현상들에 있어서, 공히 옳음인지, 한편이 옳고 다른 한편이 그름인지,
    아니면 모두 그름인지, 책임이 어느 쪽이 크든 작든지..를
    차치하고서,
    이 현상적으로만 생각해 볼 적에,
    이 현상에 머물고 있음이 불행인 것이며,
    이러한 (무거운) 짐을 후손들에게 떠넘길 적엔 슬픔인 것임이
    온 지체의 공감이심이라 (개인적으로) 믿고 싶습니다.

    (배운 대로) 모든 것에 판결은 주님의 소관이십니다.

    이에 어떠한 깊은 합당함이 내재되어 있음인지는 잘 모릅니다만,
    어머니의 심정을 품으시며,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논쟁을 멈추시며,
    절대 믿음으로 주님위한 일로전진이 온당하지 않겠는지에 대해 (한편의)생각을 해봄입니다.

  • 2021-07-14 11:01
    (애초) 양성원이,
    공동의 마음 일어나 함께 품어져, 주님께로서 난 의를 사모하며 그 발견함으로써
    세워진 것일 진대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좇아 성령의 감동으로 이룬 것이라,

    (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이 공동체의 공감일진대) 진리위해 온전히 받았음을
    (온 공동체가) 공인함과 다를 바 없음이라,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이루고자한 소망이 영혼의 닻같이 튼튼하며,
    하나님의 말씀인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적극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 가득하여 하나님께 영광 되게 함이 그 동기와 목적됨이라 생각해봄입니다.

    (총 공동체의 마음이) 생명의 빛 전하고자하는 주님의 일임에 집중되어져 세워졌음이라,
    (세워진 그 자체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임에 대한 표증이며 주님과의 언약(약속)인 셈이라,
    주님과 복음을 위한 명분으로써 그 확증된 언약을 견고히 나타낸바 된 것이라,

    사람의 명을 좇아 의문에 순종한 것이거나 주님 위함을 멀리한 초보의 일이
    결코 아닌 것이라,
    주님의 몸 된 교회 지체들의 양육과, 만민에게 복음 전파할 주님의 일꾼양성 위함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알고 믿음으로 뜻을 같게 여겨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위탁받았음이라 생각해봄입니다.

    주님의 뜻 가운데 확신 있게 서시어 합당히 받은 직분을 여일히 행사함으로써
    그리스도안에서 생명운동과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이 되고자했음이라,
    주님 안에 무리의 결정적 기쁨이 되며 하나님께 당당히 높여 찬양함이 되는 것이라,

    (그곳에서 이루고자한 일이) 주님께 속한 것이며 주님의 의로 확정된 것이라,
    (하나님께 속한 선을 좇아 공히 세웠음일진대) 그 행할 일을 수고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께 당연히 인증 받음대로 행하여야 그 온당함이 되는 것이라,

    주님의 일꾼양성위한 센터의 역할로서 복음의 확산을 충분히 더하고자
    이미 그 약속된 보증으로 받은바 된 것이며, (후손)대대로 유전되고자했음이라,
    생각해봄입니다.

  • 2021-07-15 19:01
    <이어짐>
    (그 세워짐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발견' 되어진 결말일진대,

    이는, 주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스스로 증거 됨과 다를 바 없음이며,
    명실 공히, 주님의 예정하심을 따라 그 풍부함을 입은 은혜인 것이며,
    주님의 일인 것임에 대한 확증으로써 그 표적 됨이라 생각을 해봄입니다.

    주님의 계명 따라 그 행할 기초를 놓은바 됨이며, 그리스도예수안에서
    이를 공히, 행할 기회로 부여 받(았)음이 되는 것이며,

    성령께서 총 공회가운데 능력을 행하시려함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우리 주 그리스도예수의 명령하신바 된 그 일에 공히, 같은 생각과
    절대가치로서, 그리스도 이심을 나타내고자했음이라 생각함이며,

    성령의 감동으로 진리 안에 순전함 되어져 공히, 지켜 행하고자했음이며,
    생명의 말씀을 밝힘에 있어 그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아니함인 것이며,

    그 언약을 따라 공히,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받아 적극 이룸이고자 했음이며,
    그리스도의 비밀을 나타냄에 함께 매임 당하여
    하나님영광의 풍성함을 이루시고자했음이라 생각해봄입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고자 그 받은 지위와 권위를
    공히, 견지(유지)할 이유가 분명히 있음이며, 성령의 일하심에 즐거이 참예함이 되는 것이며,
    또한, 주 예수의 날에 (서로 지체의) 자랑할 것이 있도록,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도록 받은바 된 것이라
    생각해봄입니다.

    하나인 믿음으로, 주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그리스도예수를 주로 증거’하도록
    공히, 행할 기업으로 받은바 된 것이며,

    (믿음위에 세워졌음일진대) 그것에 대한 대의와 목적이 한 뜻 한 마음이었을 터이며,
    그럴진대,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그 사명 감당하시고자함인 것이며,

    (주님의 은혜로 받은 게 맞을진대) 주님의 의를 밝히 드러내심에 힘씀을
    빼앗기지 아니함 되는 게 온당함이며,

    (성령으로 시작한 것이 맞을진대) 여전히 성령의 통로 되어져 그 역사하심을 따라
    줄곧, 애초의 믿음과 행위로서 귀결되어지는 게 온당함이며,

    (성령에 참예한바 된 것일진대) 그 주어진 율(법)에 따라 이를 지켜 행함에 있어서
    멈춤이 없어야하는 게 온당함이라 생각해봄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한 것일진대) 총 공회의 공동된 지위로서 행할 기회를 명확히 (부여)받(았)음이며,
    주님의 것임에 따라 믿음 굳게, 목양일념의 중심으로 주님께 속한 일을 함께 이루시고자 했음이며,

    오직 주님 위함을 한 마음으로, 주님의 善을 좇아 그 행함이 통일되게,
    (공동체의 한 소망인)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세워가고자 했음이며,

    (하나님의 의로 정해진 것이 맞을진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심 되어져
    하나님의 의를 적극 이루어 가고자했음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 영광위한 확고한 가치를 기반으로
    ‘예수의 생명으로 내내 전진'하고자 했음이며, 여전히 유업으로 계승할
    (공동체적) 의무와 책임이 결코 간과될 수 없는 것임이라,
    (긍정적인 면으로) 생각해봄입니다.

    <내용이 중복된 부분에 있어선 혜량하여주시기 바라며, 짧은 생각을 대략 모아본 것일 뿐,
    주장함이 아니며, 성경말씀에 그르침이 있으면 깨우침을 얻고 싶습니다.>

  • 2021-07-16 18:12
    여전, 묵혀진 현상에 관하여,

    애초설립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일진대, 이를 멈추게 됨이 마치 땅속에 주님의 소유를 묻어둠 같은 현상이라 봄이 맞음인지 (아님인지), 이 현상으로 인해 전혀 생산 없음이 하나님의 말씀(명령)을 (본의가 아니어도) 어김이 된 현상인 것인지 (그게 아님인지),

    (멈춤 되어져도) 여전히 복음으로 점령되어진 현상이라 봄이 맞음인지, (묵혀진 현상으로) 주님의 이름 드러냄을 위한 명분과 지위와 권위가 상실되고, 주님의 선한 일을 행하고자함이 좋게 여김이 아닌 듯 현상으로 여겨짐이며,
    귀히 보전함이 아닌, 주님영광위한 대의와 목적을 따라 그 생산이루고자 함이 소홀히 된 현상인바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옳음인지를 생각해봄입니다.

    애초에 공히, 기쁨으로 심었던 게 뽑힘 같음 되어져 그 운동이 멈춰짐에 따라 (총 공회공동체가) 영접하며 품고 증거 삼았던 주님의 의가 드러나지 않는바,
    공동체의 마음이 이를 내신 주님과 그 의에 가까워져 있음이라 이해되기가 매우 어려우며,
    (이러한 방치가) 주님을 어떠하게 존경함과 경배함이 되겠음인지를 생각해봄입니다.

    이를 비롯하여 파생되어진 제반문제들이 여태 풀려지지 않은 채 굳어진 현상인바,
    한 공동체에 머무는 한 이에 자유로울 수 있겠음인지,
    서로의 지체된 마음에 근심과 아픔 됨이며, 이를 후손들에게 떠넘길 적엔 슬픔인 것인지 (아님인지),
    한 지체됨에 실로 무엇을 어떠하게 좋게 하고 있음인지, (이 현상이) 실로, 주님의 뜻을 그르침이 아닌 것임에 대한 바른 해답인 것이며, 모두에 정녕 행복 됨이겠으며, 밝히 증거 된 주님 위한 최선이겠음인지를 생각해봄입니다.

    묵혀둠이, 어떠하게 주님위한 일이 됨이라 하겠음인지, 진리이신 성령을 좇아 마땅히 행할 일을 (총 공회 공히, 스스로) 잊지 아니하려함의 현상인 것인지, (이 현상이) 주님의 은혜로 받음 되며, 또한 주님께 속한 선에 초점 맞춤 되어져 주님께 인정받고자함이 실로 긍정되어진 현상이라 이해하면 되겠는지,

    하나님의 영광위해 세워졌음일진대, 내내 방치됨이 그 보존과 혼동되며, 애초에 품었던 공동체의 마음의 집중이 흐트러진 결말이, 주님의 선한 일을 이루고자함에 어떠하게 온당함이며 모두의 행복이겠는지를 생각해봄입니다.

    묵혀둠이, 주님의 본심에 젖어져 신실한 율에 따른 현상인 것인지 즉, 애초의 율의 획이 떨어지지 아니함 되며 온전한 믿음과 행함 가운데 생명의 역사로 살리는 방편 됨인지, 애초에 지녔던 주님위한 대의를 잃어 버렸음에 기인된 현상인지,
    그 이룸의 과정에서 발단되어진 소의가 대의를 훌쩍 뛰어 넘을 수 있는 경우, 어떻게 이해하면 되겠음인지,

    이 황무함이, 그리스도의 복음전파의 목적됨이 거부된 게 아닌, 오히려 주님 때문에, 주님의 일을 잃지 아니하며 신실함으로 쓰기(사용하기)를 여전히 원했음에 따른 결말인 것인지,
    지나쳐, 성령의 재촉하심을 이미 많이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위해 공히 품었던 애초의 믿음 따라 줄곧 행함을 머뭇함에 따라,
    규모 있는 소통으로써 분별해 보아야할 중대사안인 것인지,

    여전 묵혀둔 현상으로, 어두움의 영의 역사에 빌미를 주어선 결코 안 됨이기에
    하나님의 지혜로서 이 난관을 속히 벗어나야만할 계제라 생각해봄입니다.

  • 2021-07-17 14:03
    <이어짐>
    빛 되신 주님께서 일하시고자하심 따라 ‘주님의 이름’ 높이고자했음이 맞음일진대, 오히려 흩어짐에 따라 주님의 날개아래모임 됨에 반대현상이며,

    주님의 일꾼양성위한 센터역할로서 세웠음이 맞을진대, 황폐하여 버려짐 같음이 영적으로 부요치 못한 현상이라 봄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고자함이 일찍이 막혀져 결실 없는바, 주님의 빛을 잃은 것과 다름없음이며, (본의 아니게) 애초에 지녔던 하나님의 의를 반대 (또는 거역)함이 된 듯, 나아가 주님을 영접하지 아니함 된 듯, 말씀이 막혀져 결실하지 못한 현상인지를 생각해봄입니다.

    (총 공회공동체가) 주님 앞에 함께 모으지 아니함 된 현상이며, 이는 주님의 일과 그 행하고자함을 (본의 아니게) 원치 아니함 된 듯, 총 공회가 청지기로 받았음일진대 애초의 공동된 그 증거가 서로 합하여 있지 못한 결말이며, 여전 지체함에 빠진(머문) 것이 주님 위함에 민감하여 반응함을 잃은 현상인지,

    주님과 복음위해 귀한 선을 행하고자 시작했음일진대, 그리스도의 진리를 위한 중심을 잃게 되고 그 역할이 무너진 현상이 정녕 주님의 기쁨이시겠음이며 모두의 영광됨인지,

    복음은 어둠을 밝혀줌인데 여전 어둠의 지속이, '복음으로 점령'되어진 기쁨 된 현상이겠는지,
    여전 묵혀둠이, 총 공회적으로 받은 달란트를, 그 지닌 언약을 따라 공히 이루고자함을 스스로 포기함이 되는 것이며, 후손대대로 유전되는 것을 (본의 아니게) 범한 현상인지,

    주님이 주신 것을 인하여, (말씀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선한 행실로 열매 맺음으로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함이 크게 희석되어진 현상인지에 대해 생각해봄입니다.

    마냥 묵혀둠이, 어떠한 면에 중심됨이며 바른 질서이겠음인지, 여태껏 침묵 속에 어두운 현상이 실로 애초에 부합함인지, 주님의 소유를 은혜로 받았음이나 여전 묵혀둠이 어둠에 사로잡힌바 된 모습인지 아니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겠는지, 하나님의 성령이 어떠한 기쁨으로 (그곳에) 머무심이 되겠음인지, 최고와 최선을 추구하(려)는 총 공회의 추구와 위상에 걸맞음 된 현상인지,

    이 황폐함이, 주님의 선한 긍정적 굴혈인 게 맞음인지 아니면 (본의 아니게) 어두움의 세력에 휩싸인 현상인지, 마치 무엇에 잡혀지고 결박 되어진 듯 무엇에 목이 조여짐 같은 모양새로 느껴짐 되는 이 현상이 (어떤 이유에서든) 어두움인 것인지, 본래의 구실을 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이미 그 빛을 잃었음인지를

    분별함이 긴요 됨이라 생각해봄입니다.

  • 2021-07-17 18:21
    (본의 아니게)
    애초의 은혜를 경시(무시)함같이 된 현상인 것인지, 나아가, 이를 내신 주님과 주님의 뜻을 배척함이 되고만
    현상인지, 주님과 복음위한 애초의 규례를 놓침으로서(무너짐 같음으로 인해) 그리스도예수의 주 되심을
    믿음으로 세운 것에 반한 현상인지에 대해 생각해봄입니다.

    그 방치됨이, (어느 성경말씀에 따른 지혜인 것이며 최선인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론 애초에 품었던 뜻을
    달리함에서 비롯된 현상이며, (그 설립이) 공동의 기도로 일어나 하나님 말씀에 이르러 행하고자했음일진대,
    하나님의 영광을 거스름과 같음 된 현상인지에 대해 생각해봄입니다.

    (그 세워짐이, 사람의 명을 좇아 의문에 순종한 것이 아닐진대) 여태껏 묵혀둠이, 어떠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한 결말인 것인지, 진리 안에 행함이 신실함일진대 여전 방치됨이, (총 공동체의) 실로 즐거움이라 할 수 있(겠)으며, 주님의 몸 된 지체 간, (실로) 어떠하게 좋게 하고 있음인지,

    성령의 감동으로 지었음일진대 여전 묵혀진 현상이, 복음의 확산을 충분히 더하여가고자 함에 역행됨인지,
    받은 사명과 지위와 권위를 업신여기고 포기할만치 명확한 명분이 무엇이겠는지를 생각해봄입니다.

    애초된 기쁨으로 아버지께 받은 계명을 따라 그 운영 아니기에, 주님의 일을 잃어(잊어) 버린바 되고 온전한 상을 얻기 위하여 달려감이 이미 지나쳐 버림 된 현상인지,

    (그 세웠음이) 아무 의미 없이 세워진 게 아닐 것일진대, 받은 은혜로 주님을 향하여 행하려함이 (외관상으로) 전혀 보여 지지 않기에 무용지물 된 현상이며, 그곳에서 이룰 복음(운동)이 갇힌바 된 듯 현상이,
    애초의 동기와 목적을 벗어나 그 이룸에 대한 약속이 흐려졌음에 반증됨인지,

    선한 일이 크게 요동되어져 (여태껏) 방치됨이, 애초의 믿음 뒤로 물러나 이를 원치도 기뻐하지도 아니한 듯,
    애초에 주님의 뜻 행하고자 품었던 '율'이 마음에 두지 아니함인 듯 퇴색되고, 나아가, 진리를 위하여 열어 놓으신 것을 (규례나 제도를) 폐한 듯 된 현상인지(아닌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봄입니다.

    그 달음질과 진리에 대한 순종이 크게 요동케 되어져, (외관적으로 볼 적엔) 주님의 이름 높이고자함이
    끊어졌음이며, 이는 애초의 은혜에서 떨어진 듯 현상이며, 애초에 입은 은혜와 사랑을 잃어버린바 된 듯,
    신령한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 그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서 그 채움 대신, 황무함이 된 현상이며,

    그곳에서 이룰 하나님의 계명을 뒤로함이(미룸이), 그곳에서 이룰 복음을 부끄러워한 결과로 비쳐진 듯,
    한 마음과 한 입으로 주님위하여 세운 날 중히 여김이 꺼림 되어 진 현상인지(아닌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봄입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서는 자유 함이 있다 말씀했습니다, 이 현상은, 한 마음이 갈려져 두 마음과 뜻을 품었기
    때문일진대, 서로 지체된 무리의 참 자유 누림의 현상이겠는지,

    (총 공회공동체가) 이를 행할 기회를 부여받았음일진대, 그리스도의 교훈을 굳게, 주님의 이름 높이며 나타내고자할 목적에 머묾이 여전 지체됨과, 이로 유익 얻기 위해 그리스도예수안에서 믿음으로 화합하지 못함이,
    실로, (총 공회공동체의) 마음에 행복이겠음인지,

    하나님의 말씀은 혼잡치 아니함이라 말씀했는데, 애초를 비켜난 (이) 현상이, 하나님 영광위한 시초의
    표지(특징)된 약속과 그 규례에 걸맞음인지, 결과적으로 (이 현상이) 주님 앞에 정죄되어 있음인지(결코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봄입니다.

  • 2021-07-19 12:18
    세상의 빛 되신 주님을 따라, ‘생명의 빛’ 밝히며 ‘예수의 생명’이 누리에 흘러넘치게 하고자 세웠음일진대
    어두움에 가려졌음이며, 주님의 참 제자로 양성되고 진리(말씀)에 거하게 하며 자유케 하고자 세웠음일진대
    도리어 (그 근거지가) 황무한 현상이, (주님의 공동체가) 진리 안에 참 자유 누림이겠음인지에 대해
    생각해봄입니다.
    (이 현상을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할 적에,)

    (사람의 말이나 의지로 이룬 게 아닌) "주님 안에 하나로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것으로
    '통일' 되어진" 것이 맞을진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황폐하게 방치될 수 있음인지,

    (쟁론 말미암아 묵혀져있음이라 생각이 되는) 이 현상이, 주님과의 약속에 거스름이 아닌,
    '애초의 본질'에 따라 주안에서 더욱 굳게 하고자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결말인 것인지,
    (애초의) 기도와 성경 안에서 발견된 하나님께로서 난 의에 걸맞음인 것이며 이미 받은 은혜의 행위로서의
    선한 결말을 도모한 결말인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고자함이며,
    그리스도의 비밀을 증거하기위해 (함께) 매임 당하였음과 그 믿음을 인하여 모두의 자랑함이 되고자한 것인지,
    (그리스도안에서 복음 드러내기 위하여 공히, 기쁨으로 약속에 참예했음일진대)
    선한 일에 소망이 흔들리지 않으며 주님께 합당히 행하여 모든 능력으로 감당함을 채울 의사의 모습인 것인지,

    (그곳이) ‘주님의 이름 높이시고자 주님께서 인치심'이 맞는다면, (애초의) 공동된 약속을 돌아보지 아니함이
    주님의 몸 된 교회공동체의 기쁨 된 현상이겠는지,
    (애초 모두의) 그 사모함이 크게 갈림으로 말미암아 많은 근심으로 주님의 공동체가 찌름 당한 현상인지,

    (묵혀짐이, 어둠아래에 가둠 된 게 아닌) 성령으로 시작한 것이 되며, (애초의 약속과 수고를 헛되이 함이 아닌) 받은 은혜를 믿음으로 더욱 굳게 애초에 의로 정해진 복음을 살리는 것 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이며 그 뜻을 좇음이며 칭찬 받음의 현상인지, (하나님영광위해 큰 목적 이루고자함이
    공동된 약속일진대) 어둠의 현상이 총 공회의 우리에 있는 한, 온 지체의 근심됨인지 (아님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전 묵혀진 현상이, (육체를 따라 판단하지 않음이며)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심을 나타내고자'함이 맞을진대 어찌, 복음 위함이 흐려졌음이며, 우리 구주 하나님(그리스도 예수)의 명령하심에 따른 증거 됨인지,

    복음위해 받은 약속의 은혜를 귀히 여김이 됨인지, 그 목적된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는 현상이 됨인지,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 어둠아래 가둠이 된 형상인지, 받은 은혜를 잊어버린바 되어
    십자가의 복음을 거치게 한 듯 같음 현상인 것인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애초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함일진대, 공히 지녔던 한 소망이
    이미 사라졌음이기에, 이 묵혀진 현상이, 주님을 위함이라 할 순전한 증거 되어진 현상인지,
    후손대대로 유업 이어가야할 명분이 사라졌음이며, 주님의 이름으로 그 쌓은 선에서 선을 내는 것이
    멈춰짐으로 인해 주님을 찬송함과 (주님위한) 자랑이 사라진 것 같음의 현상인지,

    쟁론(격동)에 머무는 사이,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는 주님의 몸 된 지체들이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해야할 소지이겠는지 (아닌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봄입니다.

  • 2021-07-20 15:45
    (그곳이) 줄곧 방치됨으로 인하여, ‘주님을 위한 공동운동’이 마치 한낱(하잘 것 없는) 편견과 경솔인 것인 양,
    비쳐짐입니다. 주님의 이름과 복음(운동)이 전혀 드러나고 있지 않음입니다.

    그 세움이, (사람의 생각으로가 아닌 것일 진대는) 위로부터 온 것입니다.

    모두의 기도로, '예수의 생명을 전파'하고자 주님께서 예비하심을 믿고 따름이었을진대 여태껏 묵혀둠이,
    성령의 기쁨에 젖어진바 된 현상인지,
    아님이면, 어떠한 것에 삼킨바 된 현상인지,
    하나님의 영광위해 어떠하게 주님의 의를 좇았음의 결말이겠는지를 생각해봄입니다.

    여전 묵혀진 현상이, (본의 아니어도)

    마치, 애초의 보증을 멀리한 듯, 생명의 역사로 (사람) 살리고자함을 중히 여김이 사라진 듯,
    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치) 거치게(스치게) 한 듯, 애초에 받은 은혜를 귀히 여김에 반함 되어진 듯,
    공히 품어졌던 주님의 선한 일이 (마치) 억지 같음 되어져 (받은 은혜를) 잊어(잃어) 버린바 같음 되고
    (이를) 내신 주님을 저버림(외면함) 같음이 되어 진 듯, 이곳 통해 이룸이어야할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이
    경시함 되어 진 듯 현상인지(아닌 것인지)를 생각해봄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드러내고자했음이 (영적으로) 어둠아래 가둠 되어져 (마치) 죄안에 가둠 같음의
    형상인지 (아닌 것인지), 나아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흑암에 가둠과 다를 바 없음 같이 되고만 형상인지 (결코 아님인지),

    그리스도의 진리를 나타냄에 있어,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최고의 가치 됨에 이른 해답인 것인지,
    어떠하게, 유익을 얻게 됨이며 (공동체) 일로의 전진에 긍정적인 것이며 획기적 지향 점이겠는지,
    애초의 확증이 (아예) 사라진 모습인바, 복음의 확산을 충분히 더하여가고자 함에 역행됨인지 (아닌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봄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자함일진대) 말씀과 기도로 받은 그(애초) 언약에 따라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세상에 복음을 제출하고자한 그 대의와 목적에 부합함인지 (그릇되어짐인지),
    이에 역사하실 성령을 근심되게 함 같음된 형상인지 (아닌 것인지),

    어떠하게,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영접함이 되는 것인지, 모든 것을 질서대로 하라하신 말씀에 부합됨인지,
    주님위한 목적된 애초의 기초와 본질이 흔들려 공히 품었던 소망이 (지금으로선) 사라짐(흐려졌음)에 따라
    (마치) 복음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치 아니함 같음 된 형상인지 (아닌 것인지),

    (주님께서 영광 받으시고자 명하신 것임을 확신하여 그 증거 된 기반을 튼튼히 하며 공히 권하며 달음질하고자했음이 맞을진대) 각기 돌아섬으로 인해 (애초의) 믿음과 행위가 분산되어져 묵혀짐이,
    어떠하게 주님위한 최선이겠는지를 이해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자 하나인 믿음으로 세운 것일진대,
    논쟁과 변증이,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고자함에 초점 둔 것이라 할지라도
    (총 공회공동체의) 일로전진에 어떠한 실익과 무엇을 남겨주고 있음인지를 생각해봄이며,

    (규모 없을까 피차 권계하며 권면하심 있을지언정) 문제해결의 열쇠를 기어코 찾아냄에 있어서
    정녕, 무엇이 우선인 것이며
    (주님 앞에) 온당함이겠는지에 대한 집중이 긴요함이라 생각해보게 됩니다.

  • 2021-07-22 12:06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발견’ 되어져 주님의 의로 정해지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나타나고자함에 매임 당하여 한 마음으로 통일되게 그 수고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세워졌음이라 생각해봄입니다.
    그럴진대,
    총 공회의 지위로서 마땅히 행하여야할 기회를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았음이라 생각합니다.

    맞을진대, (피차쟁론으로) 여태껏 묵혀둠이,

    하나님의 의를 업신여김이거나 거부함 된 게 아닌, 진리에 서 있는 현상인 것인지,
    그리스도의 교훈을 굳게 잡고 그 달음질함이 멈춤 되어진 현상이, 어디로부터 난 것이며 주님이 예비하신 것을 흐리게 함 같음인지,
    애초의 사모함이 퇴보하여 마치 바람에 불려감 같아, 그 효력을 상실하고 끊어져 떨어짐 같음의 현상인지,

    (이룸 위해) 품어졌던 감사와 총 공회의 지위와 그리스도를 위함을 믿는 믿음의 굳은 것이 풀어짐과 같음인지,
    여전히 돌아보지 아니함으로 인해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고자 공히 지녔던 약속이 전혀 보여 지지 아니한 현상이 애초의 믿음을 배반한 것 같음인지,
    그리스도의 복음위해 심어지고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받은 은혜의 선물을 내려놓음 같음의 현상인지,

    (그곳에선) 하나님의 말씀이 머물 곳이 없게 된바 주님과 주님께 속한 것을 외면함 같음인지,
    이를 행하게 하신 주님을 공경하지 아니함이 된 것 같음인지, 주님의 의를 위한 왕래가 전혀 없음이 참으로
    자유함이라 볼 수 있음인지,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구치 아니함에 에워싸임 되어져 (주님 안에서 서로 지체된 공동체가)
    책잡힘 된바 같음인지,
    여전히 어그러진 길 되어져 주님위하여 증거 하고자한 목적이 사라졌음으로 인해, 하나님 영광을 가린 결말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 옳다함일지나,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처음행위를 가지라 말씀했습니다.

    (그 생산이 많고 적음을 차치하고서) 그 운영으로 인해 생산이 있음과
    멈춤에 매인바 되어 (생산이) 없음을 비교할 적에,
    어느 게,
    총 공회가 맡은 청지기사명을 따라 성령으로 시작한 일이겠음이며, 중히 여김 되겠음이며, 율(법)에 따라 주님의 능력 힘입어 주님을 기쁘시게 함이며, 주님의 칭찬과 상급을 마련함이며, 온전한 생명의 역사로 살리는 방편 됨이며, 복음위한 명분으로써 유업을 계승함에 만족의 조건 됨인지를

    '셈'하여 봄이 요긴 됨이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의지에서나 신념이나 뜻에서가 아닌) 공동체의 기도의 응답으로 세워진 것일진대,
    위로서 내려온 것이며 (세워진 그 자체가) 시초의 목적에 표지됨이 아니겠습니까,

    주님께 속한 것을 은혜로 받았음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자함에 이를 신실함으로 쓰기 원했음이며,
    주님의 의를 잃어버리지 아니하며 그리스도의 교훈을 (참)증거 하는 그 수고로 말미암아
    주님께 인정받고자한 것이었음이,
    (주님 안에 서로 지체된) 온 공동체의 공감이신 줄로 믿고 싶습니다.

  • 2021-07-23 18:32
    그 세워짐이, 주님이 예비하시고 그 길을 내셨음이 기도의 응답으로 인증된 것일진대,
    그 묵혀둠이 마치, 그곳에선 이룰 주님의 일이 없는 것 같음처럼 된 현상이라 느낌을 받게 됨입니다.

    공히 걸었던 길이 철저히 막혀져있는바,
    오늘날, '총 공회의 영적 주소'가 어디에 있음인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 정당성과 폐해에 관하여_
    그 운영이 숫제 폐쇄됨은 물론, 기본방침마저 무산된 현상은
    (애초와 비교했을 적에, 불필요적) 과잉이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곳이) 공회공동체의 기도로 선택되어진 것이며, 주님께서 그곳 통해 함께 일하고자하심이 맞을진대,
    일찍이 폐쇄됨은, 애초의 그 대의와 목적을 이미 지나쳐버린 현상입니다.
    맞을진대, 애초의 정당성에 비추어 어긋남이라 보는 것입니다.

    (애초대로이면) 구별되어져 줄곧 운영이어야 함이 철저히 배제됨으로 인해,
    마치, 그곳에서 이룰 주님의 뜻과 소유이심이 아님인 것처럼 되고, (말씀처럼) 땅만 버리게 된 것 같음의 현상은, (쉬운 표현으로) 주님의 이름을 나타내고자한 애초의 정당성과 그 원칙에 위반됨이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세워짐이, 하나님의 영광위한 것임일진대 일찍이 묵혀둔 현상이, 어떠하게 보다 실리(實利)이며 효과적인 수단(방법)이겠는지 하는 점입니다.

    그 본질 면과 폐해의 최소성에 관하여_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주님의 뜻을 나타내고자함일진대, 여태껏 묵혀둠은 애초의 동기와 대의와 목적을
    제한함이며 (애초) 본질의 면과 원칙에 위배됨이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태껏 대립으로 인해, 복음 위한 목적과 그 운동이 금지됨은, 그 폐해의 최소성에도 반함이며 이곳 통해
    주님이 함께 일하시고자함에 반(反)하는 것이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맞을 진대는,
    (문제해결에 여러 견해가 있겠으나) 비록 충분하진 않아도 주님이 함께 일하시고자함에 따른
    최대한 근사치의 방안을 도출해냄으로서 폐해에 대한 최소성을 기(期)함이 긴요 됨이며 마땅함이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합일운영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정 어려우면) 그 차선으로서 애초의 정당성을 덜 제한하면서도
    애초의 본질에 부합하여 (거의) 동일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의 모색과 그 시행이 온당함이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한 예로서, 모든 것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시며, (어느 분의 의견처럼),

    우선 각 공회단위로서 시차를 조정하여 애초의 본질에 따른 효과를 기함입니다.

    그곳의 주인이 주님이시며 행한 대로 심판하심도 주님이시며, 주님이 함께 일하시고자하심이 맞을진대,
    주님 때문에, (양방이 일정) 양보하여서라도,
    그 시행이,
    생명의 빛을 나타내고자한 본질에 부합이며, 묵혀둠에 따른 폐해를 (소극적으로나마) 최소화함이 되는 것이며 애초에 준하여 이어갈 여지됨이라 생각해봄입니다.

    (잘 모르나) 전부 아니면 전무라 함의 맞섬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지혜로서 애초의 본질에 따른
    조정(조율)이 요긴 됨이 공감이시라 믿고 싶음이며,
    이에 대해 성경적으로 이해하고 싶음입니다.

  • 2021-07-24 18:43
    ‘(애초의) 양성원, 그 복원과 일로의 전진을 소망하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말씀했습니다. (예로서)평소에 서로 심한 불화가 있는 자식들이 부모 앞에 모였다 할 적에
    (억지로라도) 상종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서 각기 이해관계에 따라, 따로 모이며 저들의 자식들마저 분리함이면, 이를 보는 부모의 심정이 어떠하겠는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말씀했습니다.
    그 세워짐이, (사람의 신념이나 의지로서 세워진 게 아닌) 하나님 영광 위함일진대, 그곳 통하여 나타내어져야할 주님의 뜻이 분명 존재하심이며, 또한 주님께서 함께 일하시고자하심이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황폐함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으며 분명 어둠에 속한 현상일진대, 이에서 급속히 벗어나야함이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해결이 지연되는 만큼 어둠은 물론, 주님의 몸 된 서로지체의 고난 또한 길어질 수밖에 없음입니다.

    애초에 합일된 주님의 일이 (여전히) 멈춰졌음은 그 효력을 상실한바 됨이며, 그럴진대, (주님의 뜻에) 어떻게 온전히 순종하느냐가 문제해결의 관건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힘으로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함이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며)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고자 다 내려 놓으셨음을 (성경에서)보게 됩니다.

    여태껏 그 실행이 무제한으로 멈춰진 조치가, 애초의 기준에 비추어 과잉행사이기에 그럼인지(다른 이유에서인지), (주님 앞에 직무유기적임이 결코 아닌) 성경적(또는 신학적)인 율에 따름이며 여전히 주님 편에 서있음의 현상인지, 어떠하게 결정적인 방편이어, 본질 면에 효력을 살림에 있어 옳음인지(그른지)에 대해
    생각해봄입니다.
    양방 각기로 옳다함이 주님의 뜻에 맞음이면 이미 해결이 났어야하지 않겠는지,

    (자신 부끄러우며 외람되며 짧은 식견과 지식의 소견임을 전제로서) 이 황무한 현상이 분명 어둠에 휩싸인 게 맞을진대, 이를 해결하고자한
    양방의 의지와 뜻과 견해가,
    머리 되신 주님의 뜻하심에 온전히 깨어져 다 내려놓음과 아울러 공히 순종함으로의 결말이겠는지,
    아니면, 한 편은 그럼인데 다른 한편이 그리 아니함으로 인한 현상이겠는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면전에 실제로 공히 다 내려놓음의 시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여전 풀려지지 않아 난관에
    봉착한 것이라면,
    양방 간에, (흔히 일컫는) 멘토의 역할을 (각기)주도적으로 하려한 나머지, 정작 서로 간엔 다 내려놓지
    않음이기 때문인지,
    즉, (주님께는 이미 온전히 맡겨졌음인데) 양방각기 나름의 성경적 견해(의견)에 따른 그 독립(주재)성에 있어서는,
    (주님 면전에서) 서로지체 간엔 실제 다 내려놓음 되지 않음으로 인한 현상인지(아닌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양방각기 옳다함이어도 주님이 옳다하심이어야만 진짜 옳음 아니겠습니까,

    그 빛난 성취위해, 주님 때문에 서로선대하시면, 주님께서 돌아보시며 능력으로 온 공동체에 덮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고난의 연속이 어떠함에 연유됨인지를 분별하여 지혜롭게 통과해야만 주님의 능력이 나타남이지 않겠습니까,
    그 본질 면을 사사로이 여길 성질(성격)이 결코 아님이라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 2021-07-26 18:37
    주님의 뜻을 공동체 함께 이루고자함에 따른 ‘양보’에 관하여_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로 요약해봄이면)
    (그 곳이) 주님의 선대하심에 따라 세워지고 주님의 소유로 함께 운영되어진 게 맞을진대,
    여태껏 묵혀져 있음입니다.
    주님의 교회공동체의 기도와 연보로서, 주님께 속한 선을 함께 시행하고자했던 게 여전 멈춰짐은
    양방각기의 선택적 기준이 크게 상충되기 때문이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어느 한편이 양보하기 전까지는 후손대대로 이 현상으로 지속해야만 하는 것인지,
    양방각기의 세워진 기준에 벗어남이면 성경말씀에 배치되어져 죄가 되는 것인지,
    즉, 자타의 구원에 해(害)가 되고 장차심판대에서 책망 받음이 되는 것인지(아닌 것인지)에 대해
    차제에 성경적으로 깨닫고 싶음입니다.

    피차논쟁(분쟁)의 이유가, 복음의 근본을 부정함이거나 애초의 대의와 본질을 저해함에 비롯된 게 아님을
    전제로,
    (그 합일시행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정 어려울 경우, 오직 하나님의 영광 위함과 주님의 이름을
    나타내고자함에만 '초점' 맞추어,
    애초의 목적에 적극 부응코자 다른 편이 일정 양보함으로써, 우선 그 운영의 '맥'을 잇도록 함이 만부당하며
    이는 성경말씀에 위반됨인지,

    주님께서 그 주관하심대로의 목적을 이루시어 영광 받으심이 맞을진대, 애초의 목적에 부합하여
    각 공회가 교대(交代)이든(다른 방도이든지), 결정적인 양보 인해 소극적이나마 그 맥락으로 이어가며
    공유함입니다.
    내내 묵혀둠 보다, 밝은 날을 기약하며 이렇게라도 운영의 명맥을 잇게 할 경우, 어떠하게 성경말씀에
    어긋남인지(아닌지)를 차제에 깨닫고 싶습니다.

    (한낱 미련 떠는 생각인지 모르나)
    주님께서, 법도에 따라 권능을 베푸시고 깊은 샘물 길어 내게 하시어 영광 받으시고자 이에 길을 정하시며
    그 일정으로 울을 주심이 공동체의 인정일진대, 그 일에 따른 직무를 분명 기억하시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소유로 취하셨음에 따라 애초에 주님위한 (공동체의) '입의 말'을 분명기억하시고 버리지 않으심이며,
    기어코 이루고자하는 온 공동체의 모습일 진대는 분명 아껴보심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양방 간, 비록 그 과정에 있어선 옳은 대로 다 행하였음이라하여도, '당초의 전체적인 본질 면과 통일성'에 견줄 적에, 이의 폐쇄는 그 뿌리마저 뽑힌바 되어져 주님께 드릴 소산이 없게 된 결말인 것입니다.
    (타작마당에 곡식을 모으듯) 주님께서 그 일 위해 총 공회공동체에 의탁(의뢰)하셨음이 맞을진대,
    주님의 기업이기에, 내부적 환난에서도 지혜롭게 보전되어져야만하지 않겠는지,

    주님께서 (이를)조성하셨음이 공동체의 공동된 믿음일진대, 본디의 기업을 여전히 떠나지 않으심이며,
    애초 양성원이 뭇사람의 구원에 유익 위한 것임이 분명할진대, 주님께서 여전 찾고 계심이며 그곳에서의 수고와 헌신을 저울질하시며 보지 않으실 리 없으심이라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폐해의 최소성을 기함마저 없이 내내 묵혀둠일진대, 총 공회공동체의 불행인 것인지 행복 됨인지,
    최선최고를 추구하(려)는 교리와 신조와 행정에 걸맞음이겠으며 외부적으로 어떠하게 총 공회를 신뢰하며
    주목하겠음인지,

    (이 문제와 전혀 무관함이 되는지는 모르나) 즐거운 분립 아닌 현상으로 (총 공회가) 여러 갈래로 흩어지며
    교인들이 (그 분산되어진) 교회들과 목회자를 중심하여 형성되어지고 후대들까지 어른들의 그 분리(分離)에
    속하여 신앙생활하고 있는 현상일 진대는 (총 공동체의) 근심됨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 위함과 화목과 기꺼이 전진함에 그 동기를 부여하고자하는
    희생과 양보의 모색이 절실히 필요 됨이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우게 하셨음이 (공동체의) 통일된 믿음일 진대는 금방해결이 될 것으로 봄입니다.
    그 보응에 주목하지 못하여 애초의 정로가 혼동되고 생산이 핍절되면 결코 선한 아름다움을 기록할 수 없기에,
    이 묵혀진 현상이 정녕,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림인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 2021-07-27 18:49
    (대단히 외람되며 짧은 식견과 지식의 소견임을 전제로 다시금 떠올려 봄입니다.)
    이 현상과 해결에 있어서, 주님의 세밀하신 섭리와 계획하심에 품어진 것임을 분명히 믿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판단은 주님이십니다. 이러한 관점의 생각도 성령님보다 앞서는 것일 진대는 필히 거두어야함입니다.
    그 전제로서 다만, 애초 양성원이 지금껏 (기능적으로)활용되고 있지 않음인바
    그 ‘애초를 견주어’ 생각해봄입니다.

    (그 세워짐이) 하나님영광위한 발견과 땀으로 쌓은 선의 표출인 것이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사역자
    양성위해 순전한 우물 격으로 예비 되고 후대로 물려줄 자랑으로 견고히 세워졌음이며, 총 공회적인 기도로서 주님의 뜻 마음에 품고 지어 드린 게 모두의 엄연한 인정이실 진대는,
    주님의 소유로서 경영케 하심에 따름이 결코 모순되어지지 아니함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과 의지로나 양방각기의 과정으로서 구성된 것이거나 있어도 없어도 그만으로 세워진 게
    아닌 것이며,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자랑하고자 즐겁게 출발하여 주님의 의와 언약을 기쁨으로 잡아
    주님의 길에 서서 주님을 위한 의의 소산을 일궈내고자 함이 맞을 진대는,
    온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애초의 언약과 통일된 걸음을 기억하심에 따라 주님면전에서는 상황이 달라져야만 합당함이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입술의 열매를 짓고자 기도하여 총 공회적 필요를 절실히 한 기초이며 귀하고 복된 가치적인 것일진대,
    (가령) 이에 귀를 돌이키게 될 적엔 그 기도가 가증함이 되는 것이라 보게 되며, 여전 묵혀둠은 애초에
    주님과 복음위해 세워진 것을 부정하고 싫어 버린바 같음 되어져 애초에 확정되어진 주님의 길과 생각이 사람의 의사보다 높음을 부인함이라하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선 결코 안 됨이라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묵혀두고자 세웠음이 단연코 아니며 애초의 규례와 목적이 지켜지고 주님의 의를 행함으로서 주님을 기쁘시게 함이며, 주님께서 함께 일하시고자하심 따라 주님이 거하실 곳이 되어져야함이라 생각하며,
    (한편으로) 피차 논쟁의 줄을 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금식하며 기도하여도 상달되지 않음이 될까 두려워해야함이 되지 않겠는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양성위한 총 공회적 지향과 가치와 목표가 하나’이며 그 인증이었을진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동체의) 마음에 (그 인증이) 보전되어져야만 온당함이라 생각하며,
    오랫동안 논쟁의 한 축으로 쏠려지게(치우쳐지게) 되면, 자칫 (본의 아니게) 형제간 덕을 세우며 포용성과 절제의 조정에 있어 크게 소홀함이 될 수 있으며, 주님 안에 있는 서로지체와 공동체사이가 멀어져 점점 화석화되고
    해(害)로 미쳐져선 주님의 성품에 참예한 결말에 도달함이라 보기 어렵기에 서로형제 됨과 지체된 결연관계가 두터움이 되어져야함이라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정체된 현상이 일면(一面), 연단(단련)의 한 과정일지언정,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했던 애초의 대의와 목적이 결코 경시되어서는 안 됨이기에, 애초대의를 덮을(상쇄시킬, 넘어설 만큼의)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애초의 통합(성)의 견지로 주님의 의가 가까이 서고 성실이 세워짐으로 인해 그 그릇의 역할로서
    주님의 선대하심과 원하심을 잊음 되지 아니하여야함이라 생각해보게 됩니다.

    분명, 복음위해 세워졌으며 주님의 소유로 드렸음일진대, 다시 쌓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이 온 공동체의 위에 나타나도록 '합일로써 주님의 주재하심에 따른 통합적 생산'에 흡족을 기해야함이 합당함이라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여야 참되고 그 속에 불의가 없다 말씀했는데 묵혀둠이, 하나님영광위해 받은 은혜의 증표가 퇴색되고 푯대를 향해 즐거이 출발했음에 역행된 모습이 아니어야함이 합당함이라 생각하며,
    ‘교회의 개혁은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되게 함이며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했음이 맞을진대, 해결에 선(善)을 도와줄 관용과 용서와 화평을 굳게 하여 그 생산을 위한 운동이 여일지속 되어져야함이라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곳 통해, 복된 장마 비로 가지를 내고 열매 맺음처럼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하기 위한 근실한 지속으로, 하나님영광위한 포도원지기역할과 성실로 갚으며 뿌려서 새싹이 돋음이 사방에 발생하게 하며
    후손대대로 애초의 언약과 공동체의 화평과 의를 세우며 하나님영광이 나타나는 일컬음을 받아
    주님께 받은 상급과 보응 있으며 이로 복 받은 총 공회라 인정됨이 전 공동체의 한 소망일진대,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께 온전히 나아가도록 적극 이끌어 주실 시급한 계제인 것이라 생각해보게 됩니다.

  • 2021-07-28 18:35
    New 그 세워짐이, (물적자산의 확충이기보다) 주님과 복음 위함이 그 목적된 것일진대, 여태껏 지금껏 묵혀진
    현상이, 애초의 동기와 목적(성)이 존중되고 있지 않음이며 주님의 소유이심을 어떠하게 실로 증명되고
    있음인지를 생각해봄입니다.

    (그곳에) 즐거워한 왕래 없으며 본디의 아름다움과 감사가 사라진바 되고 경영의 기능이 끊어져 그 생산이 무산됨이 온 공동체의 어떠한 기쁨 되겠음인지, 애초의 기도에 따른 응답의 결말이 아닌 것일진대 무엇에 집중하며 시선 두고서 해결의 뿌리를 찾아야함인지를 이해해보고자 한 것입니다.

    이 현상이, 성경에 나타난 것과 동질(동격)인 것일 진대는, 온 공동체의 심각한 근심의 지속이 되고 마는 것이며, 그럴진대, (비록 쟁론할 수 있으나) 주님의 허락 없이하는 표시일 경우, 주님의 판단과 칭찬하심에
    반한 것이 맞을 진대는, 급기야 온 교회공동체의 영적정체성에 부정적인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결말에 이르게
    됨이라 생각해봄입니다.

    성령은 어두움을 밝힘이며, 마귀는 어두움에 처하게 하는바 이러한 방치가(묵혀둠이) 어두움에 묶인 현상임이 맞을 진대는, 주님의 몸 된 교회공동체에 무엇이 스며들어 맹렬히 표적하여 요동과 흩어지게 하고 전진의 행보를 가로막으려 들고 있(었)지는 않는지, (본의 아니게) 긴 세월에 걸친 분쟁(또는 논쟁)의 틈으로 마귀가 속을
    마구 헤집고 다니게 틈을 주고 둥지를 틀게 할 구실을 주었는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신 부끄러우며)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가치관에 매여 살아야한다고 배웠습니다. 하나님영광을 절실히 드러내고자 공통된 가치를 함께 품고 경영코자 출발했던 게 맞을 진대는,
    여태껏 정체(停滯)의 지속(묵혀둠)이, 생명을 더 풍성히 얻기 위한 근실한 지속에 반하며 경영에 역행(거스름)이며 가치관의 변화인 것이며,
    이미 복음의 운동력이 사라졌음에 따라 복음의 빛 강화를 약화시킴이며 이미 받은 부요를 쓰지 않음으로 잃어버림 같음이며, 이는 얼핏, 큰 목적된 가치에 소용(所用)없는 셈이란(?) 엉뚱한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켜선
    안 됨이라 생각해봄입니다.

    그 ‘방치’로 인해 마치, 멍에가 꺾임 같음이 어떠하게 참 가치 됨에 따른 즐거운 표적(表迹)이라 볼 수 있음이며 최후의 선한수단 되며 최적최상의 결말이겠는지,
    (단지 물질적 가치에 둔 게 아닐진대) 오늘날 주님영광위한 생산적 값어치로서 그 운영이, 묵혀둠보다 (상대적인) 절대가치이며 결정적 타당성으로 우위우선 됨이 아니겠는지를 생각해봄입니다.

    이 쟁점이, 예수님의 보혈로 구속받았음을 굳게 지키려함과 (성격상) 전혀 다른 것일 진대는,
    마냥 묵혀둠과 경영지속의 두면 중,
    대의와 명분과 참 가치로서, 어느 게 우위우선인지에 거룩한 근심을 거듭할 적엔 필시 해결될 수 있음이라
    생각해봄이며, 비록 어려운 점들이 많다하여도 “목회자양성위한 총 공회적 지향의 가치와 목표점이
    ‘분명하나’였기에” 즐거운 합의를 충분히 도출해낼 수 있음이라 굳게 여겨봄입니다.

    부모가 서로 다투게 되면 자식들이 불안해합니다. (오랫동안 이 어두운 현상이) 믿음의 후손들에게 어떠한
    정당성의 거울로 어떤 선의와 질서와 모본으로 심어지겠음이며, 하나님의 지식으로 반응하여 유익된 경험되겠음이며, 나아가 후대교단(교회)사에 어떻게 기억되겠음인지를 생각해볼 적에 총 공회적 화목과 아울러 합일운영이어야 함이 합당함 아니겠는지를 생각해봄입니다.

    진정한 회복은 내 의로는 일어날 수 없음입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배웠습니다.
    ‘주의 이름’만 주셨음이며 주님만이 답이심을 배웠습니다.
    정죄는 주님의 소관이심이기에 심판은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서, 주님의 선한사업위해 일로의 매진이어야
    온당하지 않겠는지를 생각해봄입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덮음 받아 온 공동체일행으로 전진하고자할 적에, 이미 유심히 보고 계신 우리주님께서 급해지시지 않겠습니까. 또한 서로 지체된 마음에 평안과 안심이지 않겠습니까.
    전심으로 주님만 붙들고서, ‘새 부대를 준비’하면 금방이라도 갈급함을 채워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위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심이면 금방해결 될 것이란 생각을 해봄입니다.

    주님께서 무엇 즐기시려 어두운 현상을 허락하셨을 리 만무합니다. 여전히 각기(정한)기준에 따라 믿음의 후손대대로 이러한 지속이어야 함인지, 서로지체와 공회공동체의 교제가 끊어져 서먹함이 화석화되어선
    안 됨이기에,
    받은 은혜와 감사의 고백으로 서로 간 불화의 줄기가 확 끊어져 그 자리에 새롭게 화평의 줄기로 충당되고 서로 지체된 동질성에 굳게 매여져야 함이 매우 합당함이라 생각해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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