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목회자가 본 교회, 교인이 본 목회자 - 중마동교회를 중심으로

작성자
"
작성일
2019.02.10
이도영 목사님,

(소개)
지난 해 11월 29일에 돌아 가셨으니 이제 2개월을 막 넘었다. 사선에서 인생이 다 죽기를 두려워 함으로 히브리서 2:15에서 우리는 일생에 매여 종노릇을 하는데, 말기암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설교 강단을 지킴으로 공회 목회자의 '강단' 세계를 보여 준 분이다. 평안히 임종을 하면서 천국을 소망하며 가는 분들의 이야기는 많다. 극심한 고통으로 가는 분 중에 그런 이야기는 드물다. 특히 강단을 지켜 내는 최후 설교는 일반 교회에서 왜 그래야 하는지 오히려 의아해 하는 시대다.

그 분에 대한 장점을 열거하려면 능히 전기서가 필요하다. 99점에 이르는 그 분의 높은 신앙과 목회에도 불구하고 그 분도 1점의 모자란 곳은 있다. 그 1점의 감점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고, 연구소 이 곳의 신앙 기준으로 감점을 두는 것은 그 분이 속한 부공2가 감점하는 내용과 다르다. 부공2에서 평생 활동한 그 분을 두고 부공2가 그 분을 잘 안다 하면서 그 분에게 대해 1점을 빼는 사안만 설명하고자 한다.

목사님은 고등학교까지는 거창의 창동교회 청년이었고 1971년경 부산으로 대학을 진학하며 서부교회 주력 반사였다. 80년대 말 안양에서 공회 교회의 중심으로 충성하다 1989년 백 목사님의 순교로 공회가 분열 될 때 안산교회를 부산공회에 세운 중심 인물이 된다. 같은 시기에 광양제철소 직원이 중심인 광양시에 있던 공회 교회는 대구공회에 선다. 광양에 있던 부산공회 성향의 교인들이 신풍교회를 찾아 부산공회 교회로 개척을 부탁했고, 신풍교회는 교인으로 계시던 이도영 목사님을 광양에 중마동교회를 개척하도록 부탁하면서 신풍이 맡던 연구 업무에 동참하여 개척 초기의 경제와 설교 준비에 유익하도록 안내를 했다. 1990.7.6. 예배당 건물을 계약하게 되어 이 날이 중마동교회의 실질적인 개척일이 된다. 이 과정에서 신풍은 이도영 목사님의 목회 초기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었다. 1992.7.5. 정확하게 만 2년 되던 시점에 목사님은 서울 하계동교회로 이동하기 위해 중마동교회의 목회를 종료한다. 이후 상황은 이 곳이 알지 못한다. 그냥 소식만 가끔 들었다. 그러나 그 분을 잘 알기 때문에 가끔 듣는 소식만 가지고도 그 분을 그리는 데 어려움은 별 없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임종 소식을 들으면서도 역시 그 분! 우리는 그러했다. 99점에 이르는 목회자. 일반 목회자로서는 꿈으로 생각할 높은 차원이다.


(소속 공회의 오해)
1992년에 서울로 가신 뒤부터 소식은 거의 없었고 1997년에 연구소의 분리 과정에 이도영 목사님은 이진헌 목사님의 입장을 따라 부공2에서 종신을 한다. 그런데 그 부공2라는 곳은 광양의 중마동교회를 사임하고 서울로 가는 이도영 목사님을 참으로 무식하게 막아 서며 훼방했고 이 과정에서 부산공회 내의 각 세력을 대표하는 지도부까지 얽혀 중동의 무슨 내전 모양으로 엉망이 되었다. 이 목사님은 일체 말 없이 이동했고 부공2는 이 목사님 면전에 이동 과정을 언급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나 속으로는 99.9%가 모략적 유언비어를 실제로 알았을 것이고 이런 선입견으로 이 목사님과 소위 동지로 수십 년을 함께 했으니 부공2란 곳에는 희망이라는 것이 거의 없지 않을까?

1992년 7월 5일에 광양의 중마동교회를 사임한다고 발표를 할 때 목사님은 예배당 전세금을 직접 찾아 간다고 했다. 이 말만 가지고 보면 이 목사님은 부공2가 100점 만점에서 1점을 뺀다 해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그 1점은 사실 99점을 뺄 성질일 듯하다. 그런데 전세금을 연보했던 이 목사님이 미리 교회에 조건을 제시했고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교회가 그 돈에 관심을 보인다면 그 교회가 도적일 것이고, 그런 내용을 모르고 이 목사님의 당시 처신을 마치 잘못인 것처럼 뒤로 말을 돌리거나 자기들 마음에 깔고 있었다면 이 목사님을 평생 대할 때 이중적이었을 것이니 부공2의 그런 이들은 이익을 위해 못할 것이 없는 이들이라, 이렇게 비판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1990년 7월 6일, 광양에 중마동교회를 개척할 때 이도영 목사님은 교인으로 살다가 목회를 출발하는 전도사로서 백 목사님 사후에 공회 노선을 떠난 교회들과 목회자들을 놓고, 그런 식의 교회와 목회자로 출발하지 않을 것이며 백 목사님 생전의 노선을 지키겠다고 약속을 한다. 이런 약속은 현재 여러 공회들 중에서 부공3에만 있는 전통이며 지켜 지는 약속이다. 중마동교회가 공회의 노선을 전제로 운영한다는 조건 하에 목회자도 교인들도 모였다. 그런데 교인들은 1988년 사직동교회에서 탈퇴해 나간 양의문교회 때문에 생긴 선입견과 대구공회처럼 원래 공회를 벗어난 이들을 비판하면서도 그 쪽에 물이 들어 버려 약속을 해놓고도 아무도 기억하는 분이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중마동교회는 단기간에 부흥했고 거의 모든 교인이 광양제철의 정직원들이었기 때문에 다 지성인들이면서도 신앙과 세상 모든 면으로 실력이 넘쳤다. 문제는 공회의 첫 정신, 중마동교회의 개척의 첫 약속은 그렇게까지 쉽게 잊었을까, 아니면 잊은 척했을까?


(사임 이유)
중마동교회는 개척 2년도 되지 않아서 이미 자립교회가 되었다. 그런데 '자립'의 의미를 두고 중마동교회 교인은
1. 예배당을 건축하고
2. 예배당과 부지 전체에 대출을 다 갚고
3. 그리고 목회자 생활비와 교회의 운영비 일체를 교회 자체 연보로 지출할 수 있을 때 '자립'이라고 했습다.

공회는
교인이 한 자리에 예배 드릴 공간의 월세와 교회의 운영 경비 및 목회자의 최저 생활비를 지출할 수 있으면 자립교회로 본다.

1992년 1월, 중마동교회는 이미 그들을 돕는 교회보다 더 많은 교인이 모였고 더 많은 연보가 나왔다. 따라서 공회 기준에서는 더 이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자립교회가 되었다. 그런데 자립할 때까지 돕겠다는 시골교회를 향해 자립할 때까지 지원하는 약속을 지키라면서 자립의 단어를 '땅과 건물을 다 마련하고 대출금이 1원도 없을 때'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서울의 잠실동교회가 전국 최고의 땅값 비싼 곳에 한 블럭을 다 차지하고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도 개척교회이니 시골교회에서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다. 실제 잠실동교회는 그런 논리를 가지고 거부가 된다. 공회 분담금 문제가 나올 때마다 잠실동교회는 '개척교회다' '빚이 많다'고 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도 현재 대출금이 있다는 점에서 세계 제1의 기업이 지금도 국가에서 특혜를 받아야 하는 벤처 기업 1년차나 되는 대우를 원하는 모습으로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도영 목사님은 목회를 출발하며 자기 평소 재산 전체를 교회에 연보했지만 '이 노선'의 목회와 교회에 연보를 했기 때문에 교회가 부공2식으로 또는 대구공회나 타 교단 식으로 방향을 바꾸고 그런 식의 교회 운영에 그 돈을 붙들고 있겠다고 했다면 목사님으로서는 그 연보는 원래 연보할 때 '목적 연보'였으므로 그 목적에 맞는 곳에 바치기 위해 교회 전세금을 조처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대단히 큰 모순이 생긴다. 백 목사님 생전이면 이 목사님이 이 노선에 연보한 것을 이 노선에만 사용하려고 조처한 것은 문제가 될 것도 없고 오히려 부공2나 광양의 교인들이 야단 맞을 일이 되고 설교록에 그 내용이 인쇄 되어 많은 분들에게 참고 사례가 되었을 듯하다.



정말 도적인데, 남들이 도적으로 아는 경우도 있고
정말 의로운데, 남들이 도적으로 모는 경우도 있고
정말 도적인데, 남들이 남을 도운 의인으로 추앙하는 경우도 있고
정말 의인인데, 남들이 의인으로 알아 주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단정하지는 못하나
연구소 신앙으로는 이도영 목사님의 중마동교회 처리는 의로운 분이 도적 떼들에게 도적처럼 되었다고 생각한다. 워낙 관련 내용이 많고 개인 신상이 모두 공개가 되어야 하며 그로 인해 끝없는 분쟁이 시작 될 듯하여 이 목사님은 물론 연구소도 입을 닫고 27년을 지냈다. 이제 돌아 가신 2개월의 시간을 돌아 본다. 그 분의 장점, 그 분께 연구소가 받은 도움, 그 분이 연구소와 관련하여 목회로 인생을 시작하던 첫 순간에 그 분의 평생 늘 소리 없이 짐을 지고 가는데도 저희가 따로 해명할 기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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