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연구

정통기독교 -일반교계의 삼분설 신앙

작성자
신학
작성일
2024.04.04

일반교계의 삼분설(영 - 혼 -몸) 신앙을 조금 살펴보려고 합니다. 유력한 목회자들 중심으로 그들의 삼분론을 간략히 정리해서 업로드 하겠습니다. 조용기(순복음), 곽선희(장로교), 전병욱(합동), 로이드존스와  아더핑크(개혁주의노선) 등의 삼분론을 올리겠습니다.  

전체 5

  • 2024-04-04 11:35
    1.조용기 목사님의 삼분설 (2004년)

    (1)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습니다.(창1:27)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면 우리를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신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요한복은 4장 24절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영체"입니다. 영체는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존재합니다. 성경은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시 102:2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하는 세월이 흘러가면 모두 다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사회도, 국가도 바뀌고 없어집니다. 언젠가는 태양계도, 우주 자체도 소멸됩니다.
    그러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소멸될 이 세상이나 역사나 우주와는 달리 영원히 존재하는 영체입니다.

    영체인 우리는 또한 혼과 육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을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이 혼을 지배하면서 육체속에 사는 것이 바로 "나" 입니다. 우리는 혼을 통하여 지식을 얻고, 희노애락의 감정을 표시하고, 결심과 의지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육체를 통해서는 감각, 즉 냄새 맡고 맛보고 듣고 보고 만짐으로써 세계를 알고 세계와 접촉하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 인간들은 영이 혼을 소유하고 육체속에 살고 있는 존재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위대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영혼의 세계를 가슴에 담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체인 우리 인간은 혼으로는 지적인 세계를 알고 육으로는 감각적인 세계를 알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타락함으로 인해 인간의 영은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다는 뜻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직감도 받지 못하고, 양심의 맑은 소리도 듣지 못하는 상태로 이 광막한 우주에 버림받은 고아와 같은 처지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신령한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떨어진 인간은 혼을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이용하고 육체의 감각을 통해서 살면서 영체인 인간은 혼의 종이 되고 육체의 포로로 전락했습니다.

    영이 죽은 인간은 죄의 사슬에 묶여 슬픔과 고난의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종국에는 영원한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절망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에게 구원을 얻고 영생하게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해 주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완전히 무너뜨려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이 살아나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오시고 하나님의 영생이 임함으로 양심의 소리가 들려오고 직감의 소리가 들려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혼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육체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혼과 육체를 지배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본래의 영적인 인간이 된 것입니다.

    (2) 구원받은 나는 누구인가?

    구원받은 나는 영적 존재로서 혼보다 위대한 존재입니다. 혼은 내가 부리는 나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을 종으로 부려야지 혼의 다스림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혼을 통해 희노애락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혼을 통해 어떤 일을 통해 '하겠다' 또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합니다. 오늘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혼의 포로가 되어 지식 만능주의, 감정 만능주의 ,의지 만능주의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아 영이 살아난 우리는 혼을 종으로 부립니다. 지식을 얻되 지식의 종이 되지 않고, 화가 난다고 그대로 혈기를 내지 않고, 기쁘다고 마냥 기뻐하지 않고, 슬프다고 그대로 통곡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쫓아 슬픔이 있어도 슬픔을 누를 수 있고 기쁨이 있어도 기쁨을 감출 수 있고 미움이 있어도 미움을 자제할 수 있는 감정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영적 존재이기에, 우리의 영이 살아나서 직접 하나님과 교제하므로 혼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주인입니다. 우리는 감정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는 의지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요, 영원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이전에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어 있었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과의 교제의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해서 말씀을 가지고 살며 영감과 직감을 가지고 삽니다. 양심의 음성을 듣고 살며 혼을 지배하고 육체를 이끌며 살아가는 승리자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거듭난 승리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 2024-04-04 13:02
    2. 곽선희 목사님의 삼분설 (1991년)

    인간은 구조적으로 세 요소로 되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몸과 혼과 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에게 생리학적 존재가 있습니다. 바이얼라지컬 비잉( biobogical being) 입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에게 이성이 있고 이성의 능력에 따라서 비판도 하고 추리도 합니다. 바로 철학적 존재 - 필로소피컬 비잉(philosophical being) 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 만나야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가져야만 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이것을 '신학적 존재' 라고도 이름합니다. 시어리지컬 비잉(theological being)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 존재가 있어서 하나의 인격으로 종합된 구조를 가지고 인간은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쪽이 주도하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육체가 주도하는 삶을 삽니다. 자나깨나 육체적 욕망에 끌려 삽니다. 육체 혹은 육욕주도적 인간이라 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철저하게 이성주도적인 인간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먹어서 행보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일로써 행복합니다. 즉 철학적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존재는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될 때에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사랑을 느끼며, 하나님의 관계 안에서 참된 평화를 느끼고 힘을 얻습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 주도적인 인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몸은 분명히 땅에서 나는 식물을 먹고 삽니다. 혼은 배움을(교육 학습) 통해 지식과 지혜를 먹고 삽니다. 
    영은 하나님께로서 오는 말씀을 먹고 삽니다. 예수님께서 광야로 나가 시험을 받으실 때에 마귀와의 대결에서 귀중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롼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사람이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영적 존재라고 하는 것을 단적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병이라고 하면 흔히 세 가지를 생각합니다. 육신의 병, 도덕적인 병, 종교적인 병이 그것입니다. 육체적인 병, 정신적인 병 혹은 사상적인 병, 그리고 영적인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합하면 이 세가지는 결국 하나입니다. 하나로 기인됩니다.
    종교적으로 타락할 때 정신적인 병이 생기고, 정신적인 병이 생길 때에 육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의 75퍼센트가 정신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다 하니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우리의 몸이 성전뜰과 같습니다. 성전뜨락과 같습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여기를 출입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 다음에는 성소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성소와 같은 것이 바로 우리의 이성입니다. 이성 지성 혹은 마음이라 볼 수 있습니다. 넓게 말하면 마음입니다. 그 다음으로 지성소는 우리의 영입니다. 우리 인간도 그렇게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몸 안에 이성이 있고 이성 안에 영이, 영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지성소에 있거든요. 그러니깐 하나님과 내가 만나는 곳은 영혼이지 몸이 아닙니다.

    눈에 안보이는 우리의 인격, 우리의 마음, 우리의 성품,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온몸 온 생활이 다 복음화하여야 하겠지마는 아시는대로 맨 먼저는 영부터, 영혼부터 입니다. 그 다음에 이성, 그 다음에 감성, 그 다음에 의지, 그 다음에 몸, 그 다음이 가정생활, 사회생활입니다. 다 이렇게 복음화하여야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기본적인 것, 가장 핵심적인 것은 뭐냐하면 영혼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너희가 하나님의 전이다`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까 하나님의 성전이라 말씀하게 됩니다.

  • 2024-04-04 16:11
    3. 전병욱 목사님 (2023년)

    "나(I am)라는 성전 짓는 싸움"

    인생이란 건축이다. "나"라는 성전 짓는 싸움이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성전은 지성소, 성소, 뜰로 구성된다. 나라는 성전도 "영, 혼, 육"으로 설명하면 이해가 쉽다.

    1. 영의 건강은 "말씀"이다.(지성소)

    지성소에는 언약궤만 있다. 그 안에는 "말씀의 돌판"이 있다. 영의 건강에는 오직 "말씀" 밖에 없다. 눌림, 압박감, 스트레스, 불면증, 우울증 등은 영의 문제이다. 해결책은 말씀이다.

    재산 날리고, 심각한 가난에 빠진 분이 있다.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모든 것이 부족한데, 부족해서 죽을 판인데, "부족함이 없다"고 외쳤다. 근데 무슨 경험?  "부족함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경험했다. 이게 영의 건강함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영 속에 거하면, 제자 된다. 동시에 그 말씀이 자유를 준다. 자유란 또 다른 말로 이기게 한다는 뜻이다. 눌림에서 자유를 얻는다. 패배감에서 이기게 하는 힘을 주는 것이 말씀이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32)

    2. 생각의 건강은 "해석하는 힘"을 준다.(성소)

    생각, 이성의 영역이 있다. 성령이 주는 생각이 중요하다. 첫 번째 생각은 하나님 생각이다. 둘째 생각은 내 생각이다. 셋째 생각은 마귀 생각이다. 말씀 듣고 첫 번째 드는 생각을 붙들고 살라. 그게 성령 생각이다. 더 생각하면, 나를 통과해서 마귀 생각으로 변질된다. 이게 대개, 근심, 걱정, 두려움이라 한다. 변질되고 망하게 만든다.

    성령이 주는 생각은 "해석하는 힘"을 준다. 예수님과 동행한다. 기도한다. 근데 여전히 "고난이 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게 유익한가 보다." 그래서 없애 달라하지 않는다. 사라지게 해 달라 하지 않는다. 이걸 가지고 돌파하자, 이기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피하지 않는다. 이게 바울의 해석이다. 육체의 가시로 3번 기도한다. 근데 떠나지 않는다. 그럼 뭐? "주신 것이 많아서 교만하지 않도록 하시는구나. 그래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는구나. 그럼 오히려 나의 약함을 자랑해야지"(고후12:7-10)라고 해석한다. 이게 "해석하는 힘"이다.

    3. 하늘 지혜로 세상을 산다.(뜰)

    하나님 지혜로 세상 지혜를 이기며 산다. 세상은 채우라 한다. 주님은 비우라 한다. 그래서 세상 따르면 복잡해 진다. 주님 따르면 단순해 진다. 단순함이 힘이다. 세상 문제가 힘들다. 복잡해서 그렇다. 죽을 때까지 복잡하게 산다. 왜 애매하고, 복잡하게 사는가? 그래야 내 멋대로 해석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항상 내가 문제다. 나를 지우면 선명하고 단순해 진다. 그렇게 살라.

    "물고기는 사람이 만지면, 화상을 입는다." 물고기는 20도 이하의 온도에서 산다. 그런데 36.5도의 손을 대면, 화상을 입는다. 내 손길이 다 좋은게 아니다. 누구에게는 화상을 일으키는 손이다. 장갑 끼고 간접적으로 해야할 때가 있다. 구제할 때, 장학금 줄 때, 선교할 때, 이게 꼭 필요하다. 성금 액수 쓴 판대기 들고 사진 찍는 일은 그만해야 할 거이다. 그러다 화상 입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걸 아는 것이 뜰의 지혜이다.

    사는 게 힘들다. 잘 사는게 더 힘들다. 영이 건강하고, 생각이 건강하고, 사회생활이 건강하도록 나를 건축하라. 가치 있는 인생이 될 것이다. 당신을 통해 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 2024-04-05 08:47
    4.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삼분설: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이분설과 삼분설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삼분설로 기울어 졌던 것 같습니다. 로이드존스목사님이 존경했던 아더핑크목사님은 명확히 삼분설을 믿었는데, 로이드존스목사님의 본인의 성경연구와 아더핑크의 영향력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1) 1952년: 저로서는 둘 중(이분설과 삼분설) 어느 집단에 속할지 결정하지 못하겠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려야겠습니다. 어떤 이론도 확실히 입증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이 혼과 영이 서로 다르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으면서도 둘의 구분을 명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차이는 없으나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설명해 보겠습니다. 성경은 영은 우리 각 사람 안에 있는 영적인 혹은 비물질적인 부분으로서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하며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 하실 수 있도록 합니다.

    만일 우리 안에 비물질적인 요소가 단 하나만 존재한다면 그 요소의 일부분은 영이라 불리며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는 일을 합니다.

    반면에 비물질적 요소의 또 다른 부분인 혼은 육체의 생기를 주는 역할을 하여 사고와 의지와 감각을 갖도록 해줍니다. 혼은 감정이 거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육체와 연결시켜 주어 육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부분이 바로 혼입니다.

    이런 설명에 만족하지 않은 실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절충안입니다. 다시 말해 영과 혼 사이에 구분이 있단 사실은 인정해야 하지만 그 구분을 너무나 강조한 나머지 영과 혼이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저는 개인적으로 확신할 수 없습니다.

    결국 사람은 영을 가진 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지만 어쨌든 사람은 물질적 요소와 비물질적 요소로 구성되고 비물질적 요소는 다시 영과 혼으로 구분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2) 1959년: 우선, 마리아의 말에서 전해지는 감정의 깊이부터 주목해 봅시다.

    “내 혼이 주를 드높이며 내 영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도다”(눅 1:46-47, KJV).

    여기서 그녀는 자신의 “혼(soul)'”과 “영(spirit)을 구분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흥미로운 신학적 논점입니다.

    이 부분에서 너무 오래 지체할 수는 없고 혼과 영의 구분을 근거로 지나치게 많은 주장을 내세워서도 안 되겠습니다. 하지만 혼과 영이 본질적으로 하나든 아니든, 어쨌거나 저는 이 대목을 비롯해 성경 곳곳에서 혼과 영을 구분한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일반적으로 혼은 이성적 능력을 가리킵니다. 혼이라는 표현을 이 대목처럼 영과 구분해서 쓸 때는 지성과 감정, 우리가 서로 어울리고 교제하고 관계맺는 방식을 가리키려는 것입니다. 혼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이성적 측면입니다.

    반면에 영은 지각을 담당합니다. 무언가를 할 줄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릅니다. 지식과 지각은 다릅니다. 영은 우리가 보유한 더 고차원의 기능, 우리 모두가 소유한 능력의 더 고등한 측면입니다. 여기에는 예배의 능력도 포함됩니다.

    달리 말하면, 혼은 우리 주변과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우리를 이어 줍니다. 인간과 동물, 역사와 세계,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것과 말입니다. 이것이 혼입니다.

    혹 당신이 '인간은 세 부분이 아니라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것과 영적인 것을 인식하게 하는 혼의 한 영역으로서의 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영은 인간 안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 2024-04-06 09:05
    5. 아더핑크(1950년 이전)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며, 하나의 신성한 본질 안에 세 인격이 존재하고 분할할 수 없는 신성한 본질이 있습니다. 그리고 복수 대명사가 분명히 암시하듯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이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삼위일체적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지적인 원리이자 가장 높은 부분인 그의 "영"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고, 그 지혜로 정서적 본성 또는 정감이 있는 "혼"을 조절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혼은 외부 세계의 육체적 감각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몸"을 조절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창조의 질서를 뒤집어 자신의 뱃속에서 '하나님'을 만들어 하급 세계의 노예가 되었고, 영혼은 육체적 메커니즘을 지시하는 대신 감각과 요구의 부족으로 인해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교가 단절되고 '영'은 더 이상 고유한 본질에 따라 기능하지 않았으며 소멸되지는 않았지만 '혼'의 수준으로 끌려 내려갔습니다.

    방금 지적한 내용은 창세기 3장에 비추어 숙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더 분명해 져야합니다. 사탄은 하와를 공격 할 때 그녀의 영 즉 하나님으로부터받는 원리에 대해 먼저 공격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금지하신 것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2 절). 그리고 그녀가 말을 듣지 않자 대답하면서 "너희가 정녕 죽지 아니하리라"고 거짓말을 하고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 줄 아는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4, 5절)라고 말함으로써 그녀의 믿음을 약화시키고 더 큰 지혜를 약속함으로써 그녀의 야망을 부추기려고 노력했습니다.

    사탄의 거짓말을 들은 하와는 미혹되었습니다(딤전 2:14). 하나님의 위협을 의심하여 판단력이 흐려졌고, 영혼에 있는 하나님의 빛을 잃은 후에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녀의 애정이 타락하여 이제 그녀는 '영'의 촉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육체의 감각의 권유에 따라 금단의 열매를 원하거나 탐하게 되었고, 그녀의 의지가 타락하여 그것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물의 경험적 측면에서 볼 때 중생은 타락의 영향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왜냐하면 그 은혜를 입은 주체는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으로 새롭게"(골 3:10) 되므로 영적 인식이 그에게 회복되어 이제 아담에서 잃었던 것, 즉 하나님에 대한 생명력 있고 강력하며 직접적인 지식을 다시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는 다시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분과의 의식적인 교제를 회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이 말씀에서 이러한 신비하면서도 축복된 사역의 한 측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마지막 구절을 중생한 사람의 영이 이제 혼에 잠겨 있던 것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그분과 교감(조화를 이루게 됨)하며 그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간다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바울은 혼이 아닌 "내 영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롬 1:9)고 선언하고 "내 영이 기도한다"(고전 14:14)고 말합니다. 이와 구별하여 "진리에 순종함으로 너희 혼[감정]을 깨끗하게 하라"(벧전 1:22)고 말씀합니다.

    위의 내용이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들리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이루신 일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육체가 혼에 이어 부차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혼에 의해 다스림을 받아야 하며, 혼은 다시 하나님의 깨달음과 통제를 받는 영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육체가 혼에 복종하지 않는 한, 인간은 동물과 같은 수준에서 삶을 살며, 그리스도인의 감정이 영의 지혜로 조절되지 않는 한, 중생하지 않은 사람들과 같은 차원에서 살아갑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즉, 영의 일을 가장 중요한 관심사로 삼으면 더 낮은 관심사는 자동적으로 따라올 것입니다. 마음이나 영이 "하나님께 머물러 있으면" 혼은 완전한 평화를 누릴 수 있고, 안식하는 혼은 육체에도 유익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이 거듭날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난 일과 비례하여 영적 성장과 번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전체 254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4327
우리시대의 모습: 책 <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 (2)
14327 | 신학 | 2024.05.17
신학 2024.05.17 0 152
14319
형제를 사랑하여 천국 가겠다는 설교.. (3)
14319 | 연구 | 2024.05.15
연구 2024.05.15 0 191
14316
교통과 합력. (3)
14316 | 교인 | 2024.05.14
교인 2024.05.14 0 220
14308
참 목화자가
14308 | 교회 | 2024.05.12
교회 2024.05.12 0 141
14262
세상 복과 하늘 복
14262 | 공회원 | 2024.04.28
공회원 2024.04.28 0 84
14281
세상 복의 위험성
14281 | 공회원 | 2024.05.02
공회원 2024.05.02 0 113
14250
아간의 죄
14250 | 공회원 | 2024.04.24
공회원 2024.04.24 0 83
14229
겸손과 교만
14229 | 대동 | 2024.04.19
대동 2024.04.19 0 117
14213
정 때문에 사탄이 된 베드로
14213 | 공회원 | 2024.04.17
공회원 2024.04.17 0 123
14197
세상이 교회를 이기면
14197 | 공회원 | 2024.04.13
공회원 2024.04.13 0 202
14158
정통기독교 -일반교계의 삼분설 신앙 (5)
14158 | 신학 | 2024.04.04
신학 2024.04.04 0 175
14148
한국교회 이단판별의 현주소 (1)
14148 | 신학 | 2024.04.02
신학 2024.04.02 0 225
14139
십자가 고난과 음부의 고통 - 그 정확한 위치와 시간 (1)
14139 | (손성은) | 2024.03.31
(손성은) 2024.03.31 0 177
14121
울음의 깊이, 눈물의 무게
14121 | 공회원 | 2024.03.25
공회원 2024.03.25 0 172
14080
앞선 자의 무게
14080 | 공회원3 | 2024.03.17
공회원3 2024.03.17 0 173
14064
한 사람의 영향력
14064 | 공회원 | 2024.03.12
공회원 2024.03.12 0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