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이 노선의 3 대 기관

구남단1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3.06.07
1. 백 목사님의 3 대 기관
총공회와 서부교회와 목회연구소는 백 목사님께서 만든 가장 소중한 단체들입니다. 개인이 혼자 신앙 생활을 해야 하는 사안도 있으나 함께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원래 기관이나 단체는 아예 만들지 않으려고 이 노선은 극구 피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갖추지 않을 수는 없고, 함께 가는 교회들이 생기면 최소한의 연락과 조정은 피할 수가 없으며, 특히 이 노선처럼 중요한 교훈을 받은 경우는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서부교회'라고 하면 주일학교와 중간반을 포함한 개념입니다. 서부교회는 그 자체적으로도 너무 의미가 큰 기관이지만 서부교회의 주일학교나 중간반이란 교회의 부서이면서도 그 자체만을 강조하자면 끝도 없을 만큼 할 말이 많고 중요했습니다. 어쨌든 '서부교회' 하나의 이름으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총공회'라고 하면 당연히 공회 전체의 교회들입니다. '양성원'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나 타 교단과 달리 우리는 공회와 별도로 운영 되는 양성원이란 생각하지 않습니다. 타 교단들은 신학교가 교단의 기관이면서도 기관과 맞서 별도의 의견을 내기도 하고 독립기관으로 발전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공회 전체의 목회자를 양성하는 아주 좁은 의미로만 가지고 있습니다. 5월과 8월의 집회도 '총공회' 이름에 속했고 지교회 곳곳에 유명한 교인들이나 역사도 모두 총공회에 포함합니다.

'연구소'는 법적으로 목사님의 가족이나 서부교회나 총공회에 속하지 않는다고 규정을 했지만 이는 부당하고 잘못 된 간섭이나 분쟁이 생길까 싶어 그렇게 한 것일 뿐입니다. 정상적으로 말하면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내부인이 내부인들을 위해 내부인들의 도움으로 일을 하고 그 연구와 출간은 공회 외부에 공회를 소개하는 일을 합니다. 어쨌든 연구소의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2. 백 목사님의 부탁
백 목사님은 1982년에 한 번 돌아 가실 뻔하면서 이후 그 사후를 늘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1987-88년의 탈퇴 건들을 접하는 과정에서 목사님의 사후를 대비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자연 수명과 역사의 흐름 때문에 준비한다고 생각을 했으나 1988년 후반부로 가면서 이 준비는 아주 날자를 잡아 놓고 바쁜 마음으로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1989년 8월 27일에 목사님의 갑작스런 순교를 맞고 보니 한 해 전의 준비는 타 교단이나 역사의 흐름의 일환 정도가 아니라 예고 된 날자를 두고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처럼 바빴고 철저했습니다.

- 총공회의 경우
백 목사님은 1982년에 이미 총공회의 전국 목회자와 서부교회 내의 주요 인물들의 깊은 내면을 읽었습니다. 원래 잘 아셨지만 목사님의 중환 때문에 겉으로 확연하게 표시가 났습니다. 1987 - 88년 기간의 탈퇴 건들을 접하며 목사님은 나가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목사님 사후의 총공회 전체를 보고 계셨습니다. 목사님이 돌아 가시면 3 분의 1은 과거를 지키려 할 것이고 3 분의 2는 총공회 노선을 이탈 할 것으로 봤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중요 인물들과 교회들이 이탈 할 것으로 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88년 이전의 총공회처럼 교단 본부가 전국 교회의 목회자 인사권을 가지게 되면 3 분의 1에 해당 되는 교회들까지 노선 이탈 측에 넘겨 주게 된다는 점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파격적이고 믿기지 않았던 조처를 합니다. 1988년부터 총공회의 인사권은 각 교회 교인들이 스스로 행사하게 했습니다. 너무 오랜 세월을 지도만 받아 오던 타성 때문에 모두가 어리둥절했고 지금도 1988년 이전과 같은 줄 알고 있는 교회가 대부분입니다만, 어쨌든 목사님은 목사님 사후에 공회의 지도부라고 여겨 질 인물들이 거의 전부 공회 노선을 이탈하자고 마음 먹으면 개교회 하나라도 버틸 수 없게 되는 점을 고려했습니다. 각 교회는 자기 교회 목회자 선정의 절대권을 쥐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으로서는 할 것을 다하고 가셨던 것입니다.

개별 교회를 살리고 지키고 싶은 교인이 있다면 그가 교인들을 지도하여 자기 교회 목자를 스스로 선정하고 내 보내면 됩니다. '총공회를 믿었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교회는 운이 좋아 공회 노선에 남은 경우도 있지만 외부에서 손만 대면 속수무책으로 넘어 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거의 모든 교회가 다 그런 식이었습니다. 심지어 목회자들조차 그러했습니다. 그 결과 총공회는 오늘 백 목사님 생전을 지키는 공회가 없게 되었습니다. 서울공회는 아예 화끈하게 치고 나갔고 대구공회는 말 없는 다수가 되어 따라 나갔으며 지금은 돌아 섰다 하나 이미 공회는 산산조각 난 후였습니다. 부산공회는 공회를 지킨다고 생각을 했으나 두세 사람의 장난에 난도질이 되었습니다. 이제 25 년 세월을 통해 이재순 목사님이 총공회를 지켰다는 우스운 이야기를 하는 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 그 분이 충직하게 모시고 뜻을 받들었던 그 분 윗선도 공회 노선을 전혀 모르는 분임을 이제는 모르는 분이 없습니다. 이 홈과 관련 된 교회들이 만일 공회라고 한다면, 그 공회 역시 아무 것도 모르고 현재 자리에 있습니다. 그 면은 제가 먼저 말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총공회는 남이 알기에 우리가 알기에 안팎으로 남아 난 것이 없습니다.

양성원은 대구공회와 부산공회가 수십 건의 소송을 통해 그렇게 오랜 세월 분규에 빠졌지만 지금 5층 건물 그 전부가 덩그렁 빈 공간으로 남아 먼지만 쌓여 있습니다. 집회는 여수 시골의 신풍교회 혼자 해도 그 정도 집회는 유지할 정도가 되었으므로 연례 고향집 돌아 보기의 의미 이상을 찾기 어렵습니다. 외부의 영향은 거의 없었고 거의 전부 내부가 스스로 힘껏 싸우고 깨어 산산조각을 낸 것입니다.

- 서부교회
지금도 서부교회 곳곳에는 백 목사님께 직접 배운 노년의 교인들이 꿋꿋하게 옛 신앙을 지키는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에 총공회 서부교회의 정체성에서 허용할 수 없는 변화는 미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서부교회 중간반은 25 년을 투쟁했는데 어제 사모님의 장례를 끝으로 이제 그 투쟁도 종료가 된 듯합니다. 이제는 열의만 있지 왜 반대하는지 그 내용을 아는 분이 없고, 이제는 끝까지 싸우자는 인원은 있어도 그 수가 너무 허무하고 그마저 깨진 항아리 조각처럼 되어 있습니다.

어제 장례식의 약력 소개를 맡은 구 선생님이 생명 바쳐 서부교회를 지키는 결사대를 언급했으나 어제를 기준으로 본다면 하나의 소망에서 그칠 상황입니다. 원래 목사님께서 1988년부터 그 사후를 대비하며 총공회와 서부교회와 연구소를 두고 비교할 때 늘 총공회는 사후 즉각 변질 될 것이라 했는데 1989년 8월에 돌아 가시자 9월 교역자회부터 그렇게 되었습니다. 서부교회는 그래도 조금 버틸 것이나 결국 마찬 가지가 될 것이라 했는데 목사님 사후 남정교회 개척 과정에서 반 년 정도의 고통은 있었으나 그래도 이 노선에 세워 지켰습니다. 그러나 1991년 들면서 서부교회는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때부터 중간반 백명희 부장선생님은 이 번 월요일의 임종에 이르기까지 홀로 그 투쟁을 맡아 충성했고 결국 순생으로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문제는 서부교회는 1991년 이후로 갈수록 점점 공회 노선에서 멀어 졌고 한 번도 호전 되지 않았습니다.

- 연구소
백 목사님은 총공회는 목사님 사후에 당장, 서부교회는 후임에 따라 서서히, 그러나 연구소는 말세 끝까지 지켜 나갈 것을 기대했습니다. 적어도 2013년 지금까지는 연구소가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5 년간 출간 금지조처도 있었고 지금은 '백영희'라는 이름도 사용하지 말라는 분도 계시고, 원래 연구소 사명을 맡았다는 분은 백 목사님의 장례 모습이나 설교만 그대로 접하는 것이 연구소라고 주장하나 '편집실'이 '연구소'로 이름을 바꾼 것은 백 목사님께서 허장성세를 좋아해서 지은 것이 아니라 이 노선의 말세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이 홈은 부산의 본부 연구소에 있을 때나 성경 연구소에 있을 때나 지금처럼 이 곳을 중심으로 활동할 때나 목사님 생전에나 실무를 맡은 핵심 직원들이 그대로 오늘까지 이어 가고 있습니다. 1982년부터니 이제 32 년째를 이어 가고 있으며 목사님 사후 25 년째가 됩니다. 교훈이란 막는다고 막힐 수가 없습니다. 장마비를 우산으로 막는다고 나서는 것이 우습고, 태풍을 선풍기의 맞바람으로 막겠다는 것이 우스울 뿐입니다. 백 목사님을 통해 주신 교훈을 교리화하고 연구하고 전하는 이 일은 마치 태풍이 불 때 부채를 들면 실은 태풍이 바람을 일으키는데도 눈 앞에서는 부채를 잡고 흔드는 사람의 노력처럼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부채를 뺏는다고 막아 지는 일도 아니고 그리고 부채가 없으면 손바닥으로 젓어도 태풍은 장풍처럼 보이며 분출 됩니다.



3. 중간반 장례식
어제 저는 백명희 사모님의 장례를 서부교회 중간반의 장례라 생각하여 무거웠습니다.
서부교회 중간반의 장례라면 이 장례는 서부교회의 장례가 되는 것이어서 더 무거웠습니다.
사모님 자리를 원하는 분이 어제 장례식에 큰 기대를 하는 듯 보였으나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부활의 능력이 있어 실제 불가능은 없으나 그 동안 인도하신 섭리로 볼 때 어제 장례식은 총공회에 이어 서부교회를 일단 하나님께 아주 맡기고 그냥 지켜 볼 수밖에 없는 현실로 인도하셨다고 봅니다.

1989년 8월 27일 백 목사님 장례 때부터 제가 총공회 전체를 두고 움직였던 것은 총공회에 대한 미련이나 가능성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총공회의 급속한 변질을 조금이라도 막으면 서부교회의 분란이 미루어 지고, 서부교회가 조금이라도 더 유지가 된다면 연구소의 자립과 앞 날이 조금 유리 해 지는 면이 있어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교권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1989년 8월의 장례식 이후 언행은 그런 식으로 시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이미 형성 된 상황을 제가 안내를 해서 들을 사람은 없습니다. 중간반과 이견이 있었던 것은 서부교회 문제였습니다. 너무 잘 아는 사이기 때문에 서로 직접 부딪히지 않도록 연구소는 서부교회 일에서 아주 벗어 났습니다. 연구소에서 제게 업무 지시를 할 수 있는 분은 제게 직접 제가 서영호 목사님을 손 보라 했지만 저는 그럴 사안이 전혀 아니라 하여 거부했습니다. 그 거부와 그런 부탁들이 1998년에도 이후에도 이어 졌지만 저는 서 목사님과 다를 뿐이지 제 손으로 직접 서 목사님과 물리적으로 부딪힐 일은 아직 없습니다.


어제 장례식 후 저는 지난 날과 앞 날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동지 중에 동지요, 선배 중에 선배요, 늘 존경하며 부러워 하며 그 앞에 서면 부끄럽기만 한 분이요, 언제라도 한 가지만 해결 되면 가장 앞에 가서 심부름꾼이 되고 싶은 분이 이제 돌아 올 수 없는 본향으로 가셨습니다. 외로움 허전함 무력감 낭패감이 지극합니다. 시간과 거리로 말하면 1990년 이후로 저보다 사모님을 더 가깝게 한 분들이 많지만 그 분들은 사모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저만큼 가까울 수는 없습니다. 이제 이 노선의 앞 날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분이 계실 때는 언제나 가능성이 있었는데 그 분이 가신 현재는 시계 제로의 안개 속입니다.

중간반의 남은 식구들이 과연 하나 되어 가신 사모님의 길을 잘 유지할 수 있을까? 바퀴와 엔진은 역할이 다릅니다. 핸들과 차체는 하는 일이 다릅니다. 엔진과 핸들이 없는 차량이 관성에 의해 어느 정도 갈 수는 있으나 그 속도와 방향이 문제입니다. 굳이 봐야 알 수가 있을까?

바로 이 때, 부활의 능력이 중간반에 주어 진다면? 기도할 뿐입니다. 한 식구요 형제의 일이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4. 어제 장례식 후
오후 3시 30분이나 되어 집에 왔는데 불현듯 제가 기르는 새장에서 늘 보던 새 2 마리가 없어 졌음을 실감했습니다. 자연 상태에 가까운 카나리아여서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새입니다. 교회 마당에 자연 상태로 새를 10여 마리 기릅니다. 영하 10 도로 이어 진 여러 겨울을 전부 야생에서 길렀습니다.

지난 주까지 새끼를 마련한다며 부산하게 깃털을 모으며 재롱을 부렸는데 며칠 째 보지를 못했습니다. 새장의 곳곳을 세밀하게 뒤져 보다가 저 한 쪽 구석에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새장에는 뱀이 들어 올 수 없도록 철망으로 완벽하게 막아 놓았습니다. 그 뱀을 보니 새 두 마리를 차례로 먹어 몸통의 끝 쪽이 불룩하고 또 중간 쪽도 불룩합니다. 아끼고 아끼던 새 두 마리를 어디서 들어 왔는지도 모르는 뱀이 먹어 치운 것입니다.

뱀은 보이지 않습니다. 소리가 없습니다. 기회를 노립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먹어 치웁니다. 덩치로 봐서는 먹을 수가 없다 할 큰 덩치도 간단히 삼켜 버립니다. 우리의 보배, 우리의 생명, 우리의 귀하고 귀한 이 노선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삼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간교한 말 한 마디로 삼켰고, 빌립보 교회는 안에서 어그러 진 논리가 나와서 삼켰습니다. 사업주의가 한 교단을 삼킬 수도 있고, 목회자를 허는 불평 한 마디가 한 교회를 삼킬 수도 있습니다. 나눠 먹자는 지극히 쉬운 말 하나가 70여 년 동안 인류의 절반을 삼킨 적도 있었습니다.

누구 한 사람이 원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타 교단들은 주로 그렇게 가르칩니다. 공회는 그 원수가 자기일 수도 있고 남 속에 일부 사상일 수도 있다고 가르칩니다. 누구 속에 어떤 사상과 언행이든 그 것이 이 노선을 삼키되 순식간에 소리 없이 전체를 삼키지 않았을까? 1989 - 1990년 기간에는 대구공회 측으로부터 공회와 서부교회를 삼킨 그 뱀이 바로 저라고 많은 말이 돌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는 분이 계실까? 제 속에는 그런 요소가 전혀 없을까? 그 것은 제가 부정하겠습니다.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날 우리는 이 노선의 역사와 오늘 현황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주도를 했으며 누가 어떤 면에 무슨 기여를 했는가? 이제는 살펴야 할 때입니다. 재건의 소망 때문입니다.

중간반의 장례식 때문에 눈으로 볼 때는 소망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소망하며 기도할 뿐입니다. 이 노선에게 부활의 능력을 주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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