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백영희의 '서부교회 교세' - 세상이 보는 외형적인 면을 중심으로

구남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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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09.11
1.교세라는 말은 공회 신앙노선 상에서는 늘 위험한 말입니다.

사람들의 여론, 보이는 세상의 기준 등은 신앙의 내면과는 늘 반대입니다. 현재 통용되는 교계가 교세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이미 그 교회의 신령한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의 교인 수와 경제력 등 일반 세상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워졌는가,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었는가, 여기에만 전력을 다 하자는 것이 공회 신앙노선이기 때문에 공회의 신앙노선에서는 교세라는 단어를 아주 위험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회 신앙에서도 교세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때는 있습니다. 하나님과 자기와 가까워진 내면이 있으면 외부적으로도 그 표시가 나기 때문이며 그런 결과로서의 교세는 무시하지 않습니다.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아는 기준으로서 교세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참고하려고 할 때 종종 중요하게 사용되곤 합니다.

따라서 통용되는 교세의 의미는 배척하지만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내면을 살필 수 있는 흔적으로서의 교세란 어떤 교회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하고 살피는 것이 공회의 신앙노선입니다. 즉, 일반 교단의 교세와 공회 신앙노선에서 사용하는 교세란 그 용처가 다르며 그 기준이 다르며 그 본질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면을 참고할 수 있는 기준에서 본 교세, 이런 면에서 백영희목사님의 서부교회를 살핍니다. 이런 시각에서 교세의 일반적 기준인 교인 숫자와 경제력을 여러 면으로 분석해 봅니다. 물론 1989년 기준입니다.

2.교인 숫자로 본 서부교회의 교세

순복음 교회의 등록 교인 숫자가 60만명 정도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5만명에서 10만명 사이의 교회들도 더러 있습니다. 서부교회는 5만명 정도입니다. 그러나 서부교회의 교세를 교인으로 측정할 때, 그리고 그 교인의 숫자를 교인 명부의 단순 총합으로 보지 않고 내용을 조금 살펴본다면, 단연 서부교회는 교인숫자에서 타 대형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세계 제일이었다는 기준들이 많습니다. 일단 1만명 정도를 넘어서는 초대형교회들과 비교하여 살펴 볼 이런 기준들은 서부교회라는 의미를 세계기독교사에서 완전 분리 추출하여 따로 연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내면이 바로 엿보일 수 있는 교세에 대한 연구, 그 숫자의 통계를 이런 면으로 살피겠습니다.

①증가 교인의 구성으로 본 비율

서부교회의 교인 구성은 순수하게 전도 된 교인과 본 교회에서 성장하여 자란 교인이 거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개 초대형교회는 목회자의 개인적 호감도가 절대적이며 그 목회자를 보고 다른 교회를 다니던 분들이 소속을 옮겨 교인이 증가되는 경우입니다. 일정 규모로 교회가 크기고나면 주변 작은 교회들을 흡수하여 대형화가 되기 때문에 한 교회의 대형화는 수많은 교회를 희생하게 됩니다. 교인의 이런 쏠림 현상은 습관적으로 교회를 옮기는 악습을 조장하게 되고 또 목회자들이 서로 인기 개발을 주력케 하여 강단을 속화시켜 버리며 또한 교회 간 세상식 경쟁으로 기업식 교회, 이권 중심의 교회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한 교회의 대형화 뒤에는 당대 교계의 속화 일변도를 주도하게 됩니다.

반면 순수하게 전도하고 또 내부에서 길러서 키워간 서부교회는 주변 교회를 자극하여 더욱 전도하는 지역이 되게 하여 모든 교회가 함께 부흥이 되게 합니다. 이런 점에서 백영희의 서부교회는 단연 독보적입니다. 주변 교회에서 이단이라고 경계하기 때문에 교인의 수평 이동이나 단순한 소속 변경은 특수한 경우일 뿐입니다.

②교회의 핵심 교인의 비율

교회는 대개 초기 개척과 소형 교회의 시절에는 가족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커지면 조직과 체제가 교회 운영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현란한 조직 체계가 자리를 잡고 나면 그때부터는 중소 규모의 교회는 친목회 수준, 중대형 교회가 되면 학교 동사무소, 초대형교회가 되면 시청 구청의 조직도를 연상케 됩니다. 문제는 그 모습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운영의 성질이나 교인간의 관계까지도 행정적이며 형식적인 모습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그 극단적인 모습은 초대형교회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의 거대 조직 속에 회원이 된 모습이 교인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서울 시민의 서울시에 대한 소속감, 삼성그룹의 회사원이 소속 회사에 대하여 가지는 그런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큰 것을 능력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으나 교회의 모습으로는 '이것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백영희의 서부교회를 세계 최고의 교회라고 이곳에서 단언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초대형교회로서는 유일하게 그 소속 교인들의 교인 모습이 초기 개척 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행정적 처리와 형식적 연결의 의미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광야 교회의 모습을 끝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거대한 돌무더기를 모아놓은 것과 같은 대형 교회도 있고 많은 부속품으로 조립된 거대한 구조물과 같은 대형 교회도 있습니다. 또한 하늘 높이 솟구친 거대한 나무와 같은 대형 교회도 있습니다. 돌무더기든 구조물이든 나무든 덩치로만 볼 때는 높이와 넓이로 순서를 매기면 되지만 그 단체의 존재 의미는 너무도 큰 차이가 납니다. 돌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대형교회가 대부분입니다. 그냥 몰려들기를 한 때 유행몰이를 하는 가수의 추종자들 때문에 인산인해를 이룬 경우와 같이 순간의 흥분 대중의 쏠림 현상의 결과로 이루어진 대형교회, 이런 경우는 교인 간의 연결성은 취미와 체질 그리고 관심사가 같다는 정도 외에는 별로 없습니다. 이보다 일사분란한 모습을 가진 대형교회도 구조물 정도의 하나됨입니다. 백영희의 서부교회는 한 몸에 여러 지체들의 초대형화였습니다.

매주 동시 예배에 참석하는 주일학생의 숫자가 8천명을 계속하여 넘기고 있던 때에 불과 3명의 상주 행정 조직이 가동될 뿐이었고 그 군중을 위해 제공되는 차량이 단 1대도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체가 한 가지 행동을 할 때 수 억의 세포가 한 존재로 움직이는 것처럼 되어 있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1만 명이 넘는 집회 인원이 4박 5일로 산 집회를 하는 동안 주최측에서는 바닥에 가마니와 급수, 비를 피할 지붕 정도만 제공하였고 나머지 모든 문제는 각 교회와 구역이 스스로 해결하였던 바, 이 모습 역시 광야 교회의 이동 모습이 아니고는 해석이 될 수 없고 그 유례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요약하자면, 서부교회는 스스로 교회의 주체이며 주인이며 주동으로 알고 활동하고 책임진 핵심교인의 숫자가 월등히 많았기 때문에 초대형교회가 되어서도 교회의 내부 분위기는 마치 개척 초기나 소형 교회의 가족 분위기와 같았습니다. 개척 초기와 소형 교회 시절은 교회의 주인 노릇하는 핵심교인의 수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가끔 한 두 사람씩 전도되는 어린 신앙의 사람을 얼마든지 품을 수 있으며 또 교인 간의 관계도 눈 빛으로 통하거나 아예 마음으로 통하는 분위기가 가능합니다. 초대형교회 중에서 이런 내면을 유지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③교인의 예배별 참석 비율

교인의 단순 수치로 교세를 본다는 것처럼 허무한 일도 없지만 교인의 숫자를 어떤 기준으로 잡았느냐에 따라서는 볼수 없는 신앙내면을 어느정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인들이 예배별로 참석하는 비율을 비교해 보는 것이 그 중에 하나입니다.

초대형교회의 경우 매주 한번 참석하는 교인이 거의 전부이며 매주 2-4회 출석하는 경우와 새벽예배를 참석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엄격한 교회보다 자유로운 교회가 교인 증가에는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고신과 같은 보수교단에는 대형교회가 없는 것이 그 예입니다. 감리교 순복음교회처럼 교인들에게 세상과 신앙생활을 적당하게 배합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 또 장로교 내에서도 그 교회의 운영을 그렇게 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대형교회가 나올 수 있는 여건이 되며 그런 여건에 대중을 몰아갈 수 있는 지도자가 있어야 대형교회가 형성됩니다. 따라서 초대형교회들은 주일 예배 출석의 총합이 거대 규모이지 그 교회의 1주일 간 진행되는 모든 예배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부실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백영희의 서부교회는 단연 독보적입니다. 초대형교회치고 유일하게 예배를 교인들의 편리에 맞추어 진열하는 부제 예배가 전혀 없습니다. 5부에서 10부예배까지 나뉘어져 새벽부터 저녁까지 자기 편리한 시간에 왔다가는 회원 출석제와 같은 예배는 발디딜 틈도 없는 것이 서부교회의 예배관이며 신앙관입니다. 주일 아침 10시예배 오후 2시예배 수요일 금요일 밤 7시예배 등 4번의 예배가 최소한의 대예배입니다. 오전예배의 80%가 오후예배에, 오후예배의 80%가 밤예배까지를 다 참석하고 주일오전예배의 25%가 새벽예배를 참석하고 있습니다.

초대형교회 뿐이 아니고 중소규모의 교회까지도 주일 저녁예배는 대예배라는 말을 사용치 않으며 금요일 예배는 아예 없으며 새벽예배는 단순한 기도회 중심으로 모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서부교회의 경우는 일주 4회가 주일 오전과 같은 대예배일 뿐 아니라 새벽예배 역시 설교시간만 30분-1시간이 되는 바 타 교회의 밤예배 이상의 예배로 모이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이런 예배생활이 개척이나 소규모 교회가 아니라 초대형교회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현재 초대형교회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가 없는 경우입니다. 교회를 출석하는 모든 교인들이 개척이나 소규모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회 본질을 100%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초대형교회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교회가 비대화하게 되면 교회가 사용하는 세상적 힘은 초강대국과 같이 되는데 문제는 그 교회의 내면은 이미 교회라고 하기에는 많은 점에서 어색해져 있는 것을 봅니다.

④교회 부근 거주 비율

교인들의 교회 부근 거주 비율이 서부교회와 같이 높은 경우는 없습니다. 우선 예배가 매주 4회이며 이 예배들을 참석하는 것은 믿고 나서 조금 신앙이 든다 싶으면 기본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교회 부근으로 이사를 하게 되며 출퇴근이나 등하교 또는 시장을 보러 가는 한 주간의 평범한 사회 생활에서도 예배당이 보이는 시야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매주 한번 예배 참석이 고작이고 또 그 때만 예배당이 눈에 들어왔다가 귀가하고 나면 눈에도 마음 속에도 교회가 잊혀져 한 주간을 다시 살게 되는 것이 초대형교회 교인들의 일상사이며 평균적 생활입니다.

도보로 교회를 오갈 수 있는 거리 안으로 이주하고 거주하는 교인이 80% 이상에 이르는 것이 서부교회의 보이지 않는 특별한 점인 바, 이런 거주 공간이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지극히 외부적이며 외형적인 기준이 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온 교회 교인들이 각자 자기 마음 속에 하나님과의 거리를 얼마나 좁혀 놓았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목회를 해 본 사람이나 교회를 진정으로 움직이게 해 보려고 애써 본 사람이면 알 것입니다.

서부교회를 중심으로 이렇게 단일 교회의 교인들의 거주 밀도가 높다보니 자연 불신자들은 선거 때마다 자기들의 기준으로 이 단체를 주목하게 됩니다. 특히 서부교회가 위치한 부산 서구는 지역구가 아주 작고 그곳을 김영삼대통령이 수십년간 근거로 삼았던 곳이어서 한국정치사에서 이곳의 투표 향방이 의미하는 것은 전국 관심사로 떠오른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바로 이곳에 위치한 초대형교회의 교인의 숫자가 미치는 영향은 지대한 바, 단 한번도 선거를 두고는 광고 한 줄도 표시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신앙과 세상사를 무우를 쪼개듯 분리하는 엄격한 신앙주의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예배당 주변에 단일 교회의 교인들이 이렇게 밀집하여 살게 되면 가게 영업소 등 수많은 경제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밀집된 서부교인을 고려하여 장사를 하거나 영업을 하는 현상은 전혀 볼 수 없었던 것 역시 특이한 경우였습니다.

박태선의 시온성 건설과 같이 종교계는 때때로 신앙공동체를 지향한다며 집단 거주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고 그것이 탈선되지 않은 경우도 없습니다만 서부교회의 경우는 예배당을 가까이 하려는 신앙의 정상적인 움직임이 예배당이 위치한 그 사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그러나 강하게 일어나 결국 예배당 주변의 사회를 일반 사회 상태로 둔 채로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되었습니다.

⑤신앙중심으로 세상생활을 하는 교인의 비율

신앙생활을 세상생활의 중심에 두고 신앙생활을 위해 세상생활을 전폭적으로 조절하는 교인은 그 교회의 핵심교인일 것이며 이런 교인의 비율은 그 교회의 신앙역량의 중요한 척도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앞에서 살핀 핵심교인의 비율과는 약간 다른 기준에서 다시 한번 살펴 볼 것은 실제로 자기들의 신앙생활이 세상생활에서 가지는 위치가 어떠하냐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위해 또 신앙생활의 기준에 맞추어 직장도 결혼도 거주도 학교도 사회의 제반 활동을 실제 하는 교인의 숫자는 개척이나 소규모 교회가 아니면 거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수백명 정도의 교회만 되어도 이미 그런 신앙중심에 철저한 교인비율은 현격히 떨어지기 시작하고 1천명을 넘어가는 대형교회가 되면 극소수가 됩니다.

1980년대까지는 주일성수를 위해 공무원이나 회사를 다니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입사 시험 자체가 전부 주일이었기 때문에 진입 자체가 차단되었고 이 때문에 중도에 믿게 된 분들 몇명을 제외하고는 그 큰 교회에 공무원의 숫자가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였고 고시생이 없어 사시나 행시에 합격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진기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대 등 중앙 일류대를 진학할 학생들이 부산 시내 대학으로 진학을 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였고 반사를 하기 위해 직장과 학교와 생활과 결혼을 조절하는 반사의 숫자가 1천여명이었으며 그 숫자는 전체 움직이는 교인의 1/5 정도에 이르렀으니 가히 규모에도 불구하고 진기하게 유지된 교회의 생명력을 볼 수 있습니다.

3.경제력으로 본 서부교회의 교세

단순한 연보 총액으로 본다면 서부교회는 중형교회 정도의 경제력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교인의 직업과 재산상태를 기준으로 본다면 서부교인은 CBS 관계자의 표현과 같이 지게꾼 교회였기 때문에 연보가 나올 재원이 없었습니다. 1989년 연간 연보 총액이 3-4억원 정도였으니 당시 중형교회들로서도 그만한 예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경제력을 단순 연보 총액으로 보지 않고 다음과 같은 내용면을 본다면, 서부교회의 경제력은 다른 어떤 교회와도 비교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출중했습니다. 개척 초기나 소규모 교회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경제력의 내용은 초대형교회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①교인의 재산정도에서 살펴본 연보

한 교인이 가진 재산 총액에서 연보하는 비율, 한 교인의 월 수입을 기준으로 연보하는 비율로 본다면 서부교회의 경제력은 그 내면의 신앙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대단했습니다. 평소 조금씩 떼서 보태는 식의 연보가 아니라 자기 재산 전부를 교회가 필요로 한다면 바칠 수 있는 교인의 숫자는 거의 새벽기도 참석에 해당되는 정도였으니 교인의 1/4이 그런 정도의 신앙이었습니다. 개척 초기나 소규모 교회의 특수 인맥에서만 가능한 수치일 것이며 아니면 폐쇄적 생활을 하고 있는 사이비집단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초대형교회의 교인으로서 이런 예는 없었을 것이니 서부교회의 경제력은 그 교회 교인의 경제력 대부분을 늘 필요하면 복음에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즉, 서부교회의 가용 경제력은 연보된 회계 장부의 잔액 총액에 그치지 않고 서부교회 교인 1/4에 해당되는 교인 가정의 개인 경제 총액이었습니다.

②교회 경제의 사용처로 본 서부교회의 경제력

그 교회의 경제력을 볼 때는 수입 총액이 유일하게 기준이 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 사용했느냐는 것입니다. 주시는 분은 주님이지만 받아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것은 우리에게 맡겼기 때문입니다. 대개 교회의 경제지출은 인건비라고 할 수 있는 목회자 사례 지출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실제 지출액수도 목회자의 생활관련 비용이 가장 크고 그 다음이 각종 행사 관련 비용으로 이것은 교회 핵심 활동인들이 놀고 먹는 돈이라고 한다면 별로 할 말이 없게 되는 경제입니다. 그리고 선교에 지출한 금액이 교회 총 지출의 1/10이 되는 경우를 두고는 모범 사례라고 소개가 되는 정도입니다.

서부교회의 경제지출은 인건비에서 도저히 유례가 없을 정도입니다. 개척 초기의 교회와 같이 목회자 한 사람이 교회의 모든 인력을 거의 다 맡아 충성을 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교회들의 경우라면 부목사들이 50-100명은 되어야 할 것이지만 평생을 혼자 하거나 혹 1명 정도로 보조케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사례비는 1989년 월 200만원에 연 2회 200만원씩의 특사가 전부였으니 일반 중형교회정도에도 미치기 어려웠고 그 200만원도 직접 생활비로 사용하는 것은 불과 4-50만원이며 나머지는 교회나 공회가 공식적으로 지원할 수 없는 특별한 개척교회나 시골교회로 다 보내졌고 아니면 적립이 되었다가 개척교회 설립에 연보되었습니다. 단 1원의 저금 없이, 쓰고 남은 달력을 손바닥 만큼 잘라 포개어 놓고 메모지로 사용하며, 이 쑤시개 하나로 몇 일을 재사용하고, 세수를 위해 물적신 손을 털어낸 다음 비누에 딱 한번 접촉하면 끝이나는 극단적인 생활은 전설에서나 만나볼 수준이었기 때문에 일반 목회자로서는 연극으로 흉내를 내려해도 낼 수 없는 정도였습니다.

절대적인 위치를 가진 담임목회자의 경제 자세가 이러하였고 그 밑에 흐르는 교회 전체적인 검소생활이 이러했기 때문에 교회 회계를 가지고 식사를 해볼 수 있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첫째는 회의가 거의 없었고 있다면 예배 후 예배당에서 모였으며 다과를 겸한 회의조차도 가져본 기억이 없습니다. 모든 교회의 경제 지출은 전부가 개척교회 시골교회 등 복음운동 자체에만 사용되어졌으니 서부교회의 경제지출을 아는 사람이라면 교회에 연보하는 것이 잘못 사용될까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③교회의 경제비리에서 자유로운 서부교회의 경제력

서부교회의 경제력 중에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경제의 비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회계책임자는 목회자의 경제 사용을 눈감아 주고 목회자는 경제 책임자들이 적당하게 핑게대고 사용하는 각종 모임 회식 등을 눈감아 주는 관계, 이런 점을 지적하고 나설 사람은 이미 그 교회에서 가진 직책이 있어 이미 동참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조용하게 그냥 지나게 됩니다. 혹 교회별로 경제비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과거 이런 일에 관련이 되었다가 소외 된 사람, 또는 다른 내부 갈등이 먼저 있었고 그 갈등에 경제비리를 상대방에게 뒤집어 씌우기로 나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렇다면 경제비리가 터치지 않은 교회는 경제가 깨끗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조용히 먹고 있다는 말이며 내부 갈등이 없을 뿐이라는 결론입니다.

박대통령은 유신 말기에 새마을운동으로 전국을 장악해야 했고 종교계까지도 동원하여 교육연수를 받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1 야당도시 부산의 최대교회로서 그 주목이 여간이 아니었으나 단 한번도 어떤 사회 정치적인 모임 부름에 나가 본 적이 없었으니 뒷조사라는 것은 필연입니다. 아무리 경제부정 등을 찾으려고 뒷조사를 해도 1원짜리 하나 찾을 것이 없다며 조사 담당자가 직접 고백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교회든지 표적하려면 뒷조사에 경제비리 없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는 말을 덧붙인 것은 공치사가 이니었습니다.

담임 목회자가 온 교인들에게 스스로 자기 전부를 다 공개할 수 있는 교회, 만일 있는 것을 다 공개한다면 너무 자랑이 될까봐 적절하게 감추어야 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니 위로 올라가면 우선 느껴지는 경제 깨끗이며 일반 교인으로 내려가면 아직도 경제 문제가 있는 것을 느끼는 교회입니다. 아직 경제와 관련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무엇을 조심하고 왜 조심해야 하는지를 덜 배웠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올라갈수록 부패하고 내려올수록 깨끗하다는 대형교회들의 경제비리 문제가 완전히 뒤집어진 경우이며 정상적인 교회로서 초대형교회가 되었고 초대형교회가 된 이후에도 끝까지 그 깨끗을 지킬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였습니다.

④마지막으로 서부교회의 경제력은 교인들의 경제 형성이 깨끗했다는 것입니다.

술 사업에 투자하여 번 돈으로 연보를 한다면? 통일교 대리점을 하면서 번 돈으로 교회의 복음 사업을 한다면? 주일을 어기고 들어간 직장에서 받은 월금으로 십일조를 한다면? 이런 경우를 두고 일반적으로는 사람마다 실수 할 수 있는 것이며 그후에 열심히 주를 위해 충성한다면 이를 아름다운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이런 주장을 무작정 반대하지는 않습니다만, 어려서 그런 경우, 말 그대로 잘 몰라서 그런 경우가 있지만 알면서 양심을 슬쩍 누르고 일단 벌어놓고 연보하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식의 고의적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신앙은 그 순수함이 변질되면 그 한번의 죄로 해당 본인의 평생과 해당 교회의 전체 책임이 따르는 경우가 많고 한 때의 불의함이 그 한 때로 그치지 않고 그 교회의 역사와 전통 자체를 흐려 촛대가 옮겨진 교회로까지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점에서 신사참배죄를 한번 짓고 한번 회개할 기회를 거부한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오늘까지 복음 위한 헌신이 아무리 많았다 해도 늘 꼬리표가 붙기는 탈선한 북쪽 이스라엘이 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서부교회의 연보, 서부교회의 경제력이 되는 교인들의 경제생활은 그 깨끗함과 순수함이 비교할 수 없습니다. 교훈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리 될 수밖에 없지만, 땀 흘려 일하고 양심으로 근검절약하고 모은 경제,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받아 가지겠다는 평생의 일념이 적어도 1989년 백영희목사님의 생전에는 교회의 절대적인 주류가 되어 있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국제시장 보따리 장사로, 보따리 장사가 노동으로 직업과 생활을 바꾸어 가졌고, 이전 모르고 가졌던 불의에 관련된 직업들은 신앙이 들면 바로 바뀌었으니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교인들의 경제형성은 그 하나 하나가 전부 말씀대로 산 경제였고 주일을 지키며 벌었던 월급이었으며 땀이 충실하게 흐르며 손에 쥔 것이었고 아껴 사용하고 모은 저축액이었기 때문에 허수가 없었으며 잠재적인 폭발이 거의 없었습니다. 교인 중에 부도가 나서 도망갔다는 경우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고 남의 돈을 떼먹는 교인 때문에 속 상하는 교인들이 있는 경우도 아주 예외적이었으니 이런 점에서도 서부교회의 경제력은 연구할 바가 많고 이어나갈 장점이 대단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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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 가입과 탈퇴 자료
6380 | | 2013.11.14
2013.11.14 0 327
6381
오타입니다.
6381 | 서기 | 2013.11.15
서기 2013.11.15 0 305
6022
감출 과거였던가?
6022 | 서기 | 2013.11.02
서기 2013.11.02 0 316
6023
왜 신앙의 자손과 혈육의 자손은 한 몸에 받지 못할까?
6023 | 서기 | 2013.10.11
서기 2013.10.11 0 295
6024
공회를 스친 노무현 정권의 동업자
6024 | 서기 | 2013.10.09
서기 2013.10.09 0 348
6025
감격스런 날 - 백영희 전기서를 손에 쥐고
6025 | 서기 | 2013.09.28
서기 2013.09.28 0 275
6026
1990년 11월 19일, 그 긴박했던 순간
6026 | 서기 | 2013.09.15
서기 2013.09.15 0 339
6027
서울대 출신 목회자
6027 | 서기 | 2013.09.08
서기 2013.09.08 0 646
6028
'합정동교회'
6028 | 서기 | 2013.08.31
서기 2013.08.31 0 322
6029
신앙의 지분과 대가
6029 | 서기 | 2013.08.15
서기 2013.08.15 0 249
6030
2013년, 목사님 사후 집회 24년 차를 맞아
6030 | 서기 | 2013.08.14
서기 2013.08.14 0 262
6031
공회의 예배 전부 시간
6031 | 서기 | 2013.07.27
서기 2013.07.27 0 311
6032
바른 길인가, 엉뚱한 길인가
6032 | 서기 | 2013.07.20
서기 2013.07.20 0 252
6033
53회의 '과거사 회개' 운동을 감사하며
6033 | 서기 | 2013.07.04
서기 2013.07.04 0 367
6034
노선과 소속은 생명보다 귀한 것
6034 | 서기 | 2013.07.03
서기 2013.07.03 0 281
6035
매일 기도 제목 중에서
6035 | 서기 | 2013.06.28
서기 2013.06.28 0 268
6036
모두, 여호수아가 되라!
6036 | 서기 | 2013.06.23
서기 2013.06.23 0 269
6037
다른 준비는 좀 되었는데
6037 | 서기 | 2013.06.21
서기 2013.06.21 0 267
6038
남정교회 서정교회는 서부교회로 합했으면
6038 | 서기 | 2013.06.12
서기 2013.06.12 0 351
6384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6384 | 반론자 | 2013.06.17
반론자 2013.06.17 0 294
6039
오늘 장례식 순서 맡은 분들께
6039 | 서기 | 2013.06.06
서기 2013.06.06 0 363
6385
이 노선의 3 대 기관
6385 | 서기 | 2013.06.07
서기 2013.06.07 0 258
6040
소수 정예
6040 | 서기 | 2013.05.22
서기 2013.05.22 0 291
6041
이 노선의 내면과 외면
6041 | 서기 | 2013.05.19
서기 2013.05.19 0 287
6042
설교록 - 성경을 위한, 성경 때문에
6042 | 서기 | 2013.05.03
서기 2013.05.03 0 282
6043
최전선 지휘관은 앞이 아니라 뒤의 적이 두렵다.
6043 | 서기 | 2013.04.30
서기 2013.04.30 0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