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2002년에 확인되는 남정교회의 모습에서 살펴본 원래 서부교회

구남단1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02.06.23
1.1990년 봄은 현 서부교인과 남정교인 양측에게 그렇게 힘든 때였습니다.

백목사님 사후 급변되는 여러 상황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1990년 봄처럼 어렵고 힘든 때가 있었을까요? 주일 예배 때마다 남정교회라는 이름으로 개척할 서부교회 수백명은 막대기 두 개씩을 집에서 준비해 와서 예배시간 내내 '딱 딱 딱 딱 딱 딱 딱........' 있는 힘껏 큰 소음을 만들어내야만 했습니다. 현 서부교회로 남을 교인들이 예배시간에 재독설교를 듣기 때문에 그것을 막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것이 백목사님 신앙노선이었으며 그것이 자기와 자손들이 복을 받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깨닫고 그렇게 확신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백목사님 생전의 설교를 예배 설교시간에 다시 듣는 것은 사교요 우상숭배라는 것이 현 남정교회의 당시 교리였습니다.

반대로 현 서부교인들은 당시 백목사님 설교를 예배 설교시간에 한번 더 듣고 배워야 할 필요가 있어 예배시간의 일부로 재독을 진행했습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 예배 시간 도중에 수백명 교인들이 막대기로 계속 소음을 만드는 것은 현 서부교인들의 양심으로 예배 도중 멱살잡아 끌어내지는 차마 못해도 그렇다고 그런 또렷한 마귀운동에 꺾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끝까지 예배를 마치고 있었습니다. 곧 당시 생생했던 현장 모습을 비디오화면으로 이곳에서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만세와 만대를 가면서도 후회없이 했을 행동이었으니 이곳에서 공개적으로 홍보해 주는 것을 내심 대단히 감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한국교회사에 예배를 진행을 두고 이 정도 대규모 충돌이 이런 예배시간을 통해 이런 식으로 나타난 역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다른 교단이었다면 수백명과 수천명이 서로 나뉘어 난투극이 벌어졌을 것인데, 다행히 백목사님 사후 얼마되지 않은 때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주장을 표현하는 한계치가 그렇게 나타났을 것이고 그것도 또한 이 신앙노선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에서 그쳤을 것이라고 이곳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오늘 서부교회는 당시와 변했다고 생각하는 이곳은 당시 서부교회 형편으로 다시 돌아가서 또 재독설교가 필요하여 듣고 있는데 그렇게 방해하는 일이 있다면? 그런 방해 이상이 있어도 필요하여 듣겠다고 결정했으면 그대로 진행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오늘 남정교인들이 다시 그런 상황이 오면 또 다시 그렇게 막대기를 수백명이 맞추고 준비해서 한 시간 내도록 소음을 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2.이제 2002년이 되었고, 당시 1990년 봄을 되돌아보며 현재 양 교회의 신앙노선을 보게 됩니다.

서부교회와 백목사님은 떼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물론 백목사님 생전의 경우입니다. 서부교회를 두고는 항상 기억할 또 하나의 이름이 남정교회입니다. 백목사님 사후 백목사님 신앙노선을 그대로 이어가려면 이래야 한다는 주장과 저래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고 결국 두 교회로 분리되었으니 그 중 하나가 남정교회입니다. 당시 남정교회는 스스로 백목사님 신앙노선의 정통이며 서부교회는 사교로 나간다고 단정을 했었습니다. 당시 남정교인들의 막대기 소음으로 예배를 방해한 것은 백목사님 신앙노선의 성격상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이 착각을 했다는 것은 이곳에서 지적할 수 있으나 그분들로서는 옳다고 판단했다면 행동은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고 이해한다는 말입니다.

이제 다시 이곳에서 이전 힘들었던 때를 되새기는 것은, 그런 전무후무한 고통을 겪어 나온 양 교회가 그런 고통을 당하고 또 그 고통을 통해서 얻어가진 오늘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남정교회는 그렇게까지 무리를 해서라도 기어코 오늘 남정교회로 개척한 이유가 백목사님 신앙노선은 남게 된 서부교회 식으로 하면 이탈이 되고 수정이 되며 탈선이 되기 때문이라고 당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재독하는 이들은 백목사님에게 배운 옳고 바른 신앙노선을 너무도 현저히 버리기 때문에 그 형제들의 죄짓는 모습을 그냥 둘 수 없었다는 격분과 울분이 어울렸기 때문에 예배당 안에서 예배 드리는 것을 무참하게 막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개척 이후 남정교회의 모습은? 이제 홈으로까지 스스로 공개하고 공식으로 발표한 이상 중간에 전달한 사람의 실수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고 또 달리 해석하기에도 곤란할 남정교회 오늘의 본질과 성격을 그대로 공회와 교계와 불신자에게까지 소개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남정교회의 홈에서 나타나는 여러 모습 자체를 두고 논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1990년 봄에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있는 힘을 다해서 반대를 하되 다시 평생에 두번 없을 극단적 행동으로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을 사수하고자 했던 당시와 오늘 모습은 정반대라는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백목사님 신앙노선이 옳다는 전제는 두고 있지 않습니다. 남정교인 스스로 백목사님 신앙노선이 옳다고 당시에 자신했고 발표했으며 그 노선으로 관철하도록 그렇게 행동을 했었는데 1990년 5월 2일 남정교회로 개척하자 오늘의 모습에 이르도록 오로지 한 길로만 달려왔던 스스로의 모습은 출발 이전 발표와 행동과는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당시 서부교회 예배당을 가지고 있는 현 서부교회에 대한 문제는 이 글에서는 배제하고 있음을 아울러 참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3.오늘 남정교회의 공식 입장을 대하며, 백목사님 당시의 서부교회를 현재 다시 찾아본다면

백목사님과 서부교회는 나눌 수 없는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 당시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당시 서부교회는 백목사님 사후 현재는 서부교회, 남정교회, 성광교회와 이동근목사님의 서광교회, 장영목목사님의 성남교회, 이치영목사님의 동천교회 등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서부 남정 성광 등 3곳은 그 교인들의 구성이 서부교회의 분할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현 담임교역자는 서부교회 내부 인물과는 상관이 없더라도 당시 서부교회의 일부로 잡아야 할 것이고, 서광 성남 동천의 경우는 교인 뿐 아니라 교회를 책임진 교역자들이 당시 서부교회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현재 교세와 상관없이 그렇게 분류하게 됩니다.

서부교회와 성남교회는 부산공회(2), 남정교회 성광교회는 대구공회, 동천교회는 부산공회(3), 서광교회는 소속은 없지만 대구공회와 부산공회(2) 둘 중에 한 곳으로 소속할 수 있는 성향입니다. 그렇다면 이곳 홈에서는 당시 서부교회가 현재는 동천교회로 일부 남아 전해지고 있다고 분석하게 되어집니다. 불과 50여명 예배보는 동천교회에서 백목사님 마지막 5명 직원 중에 한 분으로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교인 숫자나 소속 공회의 중다함에 상관없이 전부 원래 백목사님 신앙노선에서는 방향을 달리 잡고 나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백목사님의 서부교회'는 교회가 가장 교회다운 사례로 말한다면, 한국교회사는 물론 세계교회사에 몇 손가락 꼽을 특별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시 조사님 한 분이 당시 이후를 이어가고자 하는 교인 수십명과 함께 부산 범일동 어느 골목 뒤에서 그 신앙노선을 이어가고 있다면? 외형 중심으로 보는 이들에게 백목사님 신앙노선은 저주에 가깝게 파멸했다고 할 것이고, 내적 노선을 보는 이들은 생명은 그 수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신앙노선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느냐는 본질을 보기 때문에 이 시대에도 그 노선이 이어지고 있다는 데 대하여 감사와 다행감을 가질 것입니다. 아울러 앞으로 생명이 번창하여 그 수와 후대를 이어가도록 원하게 될 것이나 결과는 역시 하나님이 이 시대를 어떻게 하시려는지 그 섭리를 눈여겨 볼 뿐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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