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총공회 통합 제의'에 대하여 이곳이 제기했던 첫번째 반문

구남단1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02.09.27
1.1999년 전후하여 각 공회별 통합논의가 있었습니다.

1989년 10월에 부산공회와 대구공회가 실질적으로 분리되고 이듬해 1990년 3월에는 양측이 '총공회'분리개최를 함으로 공식적 분리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양 공회를 통합하기 위해 1990년 2월 22일에 초안 작성되고 그 서명을 위해 활발하게 움직였던 막후의 노력을 아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후에도 1-2년에 한번꼴로 공회별 통합논의가 있었습니다. 통합논의의 특징 중 하나는, 부산공회는 분리만을 하고 현재 3개 공회로 유지되고 있으며 대구공회는 3개공회(거창 대구 서울)로 분리와 통합을 수없이 반복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즉, 통합에 대한 논의는 주로 수정노선에 있는 분들에게서 주로 제의된다는 점인데 1999년을 전후하여 또 한번의 통합제의가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백목사님 사후 10년을 지나던 시점이어서 여러 면으로 의미도 있었고 또한 그간의 통합 논의 중 가장 활발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당시 통합은 그 방향을 이곳도 찬성하고 그리 되기를 기대했던 유일한 노력이었습니다.

당시 통합을 추진하는 분들은 이전과 달리 몇 가지 의미있는 제의를 하였고 또 힘있게 추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통합을 추진하는 분들이 수정노선에 있으면서 동시에 보수노선의 중대한 원칙을 전향적으로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즉, 통합 총공회는 개교회자유 뿐 아니라 당시 각 공회들이 각 공회의 신앙성향대로 유지되는 것을 보장하는 원칙에서 출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통합 총공회는 대외적으로 '총공회'라는 이름을 단일로 사용하며 총공회 내부적으로는 양성원 통합 운영과 양대 집회를 함께 가지는 정도로 만족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양성원은 목사님 생전 교수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집회는 재독집회를 원칙으로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제의는 보수노선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에 부산공회측으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으나 수정노선에 있는 대구공회나 서울공회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면들이 있었습니다만 그 제의가 수정노선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과거 모든 통합논의를 통틀어 가장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10여년의 분리상태에서 나온 결론은, 나뉘어서는 양성원을 비롯하여 모든 면에서 독자 운영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통합에 대하여 더욱 유리한 점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통합'이라는 단어를 가장 반대하는 이재순목사님측이 양분되면서 극도의 혼란에 빠졌고 급기야 서부교회밖에 있는 이재순목사님측은 부산공회(2)의 서영호목사님측에게 제휴를 긴급제의한 정도였습니다.

내용이 이 정도였고 또한 부산공회(3)측에 대하여도 적극적으로 통합에 동참토록 요청이 있어 당시 총공회 통합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당시 통합의 원칙과 방향은 지금 생각해도 좋았다고 보며 꼭 그대로 뜻을 이루었더라면 하는 마음입니다.


3.통합이 무산된 이유는

부산공회는 이재순목사님측이 교권으로나 소속 교회로 볼 때 그동안 절대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나, 1999년을 전후하여 목사안수건을 무작정 지연시키는 것에 불만을 품었던 이재순목사님 소속의 젊은층 교역자들을 서목사님측에서 적절히 자극하여 대거 서목사님측으로 행동합류를 유도해내게 됩니다. 사태 수습에 나섰던 송종섭목사님에 의하여 서목사님측 김윤수목사님과 이재순목사님의 타협이 이루어져 긴급 안수가 시행되었으나 서목사님측은 안수를 확보한 다음 안수건 때문에 반발심을 가졌던 젊은층을 곧바로 이재순목사님측에 대한 반발세력으로 결집하게 됩니다. 순식간에 극소수로 몰렸던 부산공회(2)측은 부산공회(1)측으로부터 부산공회의 대세를 가져오게 됩니다.

불과 수명의 핵심 목회자로 겨우 버텨오던 부산공회(2)가 부산공회 전체를 통틀어 주도권을 쥐었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 시점에서 수정노선의 총공회 전체 통합 제의를 받게 됩니다. 만일 총공회 전체 통합에 나서게 되면 부산공회(2)는 또 한번 불확실한 상태에서 공회 내 교권투쟁의 모든 위험성을 통과해야 하였기 때문에 일단 손에 쥐게 된 교권을 확고하게 유지하는 선에서 자족하게 됩니다. 따라서 통합제의에 대하여 의논중이라는 답변으로 일관하게 됩니다.

한편 대구공회나 서울공회는 총공회 통합의 원칙이 개교회주의라는 점은 크게 반대하지 않지만 집회를 재독으로 하자는 데 대하여는 그 명분과 논리가 너무 확고하기 때문에 통합제의를 주도하는 측에게 반대의사를 명시하지는 못하게 되지만, 한편으로 내부 교인을 상대로 설득하는 데는 목회 현장의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머뭇거리게 됩니다.

양측의 분위기가 이렇게 되자 통합논의는 얼마간 시간이 더 흘러가며, 백목사님 사후 가장 실현가능성이 높았다는 아쉬움만 남기고 일단 무산됩니다.


4.이곳은 통합을 추진하던 분들께 이런 반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산공회(3)과 이곳은 통합논의에 대하여 그 원칙과 노력 방향이 좋았다고 판단하였으며 그 노력이 꼭 성사되기를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부산공회(3)을 제외한 나머지 공회들의 총통합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해득실만 맞으면 통합에 나서지 않을 공회들은 없는데 부산공회(3)은 원칙에 맞아야 하고 또 백목사님 신앙노선의 사실상의 유지가 가능할지 그 훗날까지를 살펴야하기 때문에 총공회 소속 공회 중 하나로서는 당시 통합을 지지하였으나 사실상 통합에 나서는 일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우선 양성원을 통합 구성한다고 하면, 거의 이견없이 추진되는 구상은 백목사님 생전 교수들의 전원 복직인데 이런 경우 서영호목사님의 교회사 강의를 반대할 공회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서목사님이 백목사님 신앙노선의 원칙에 공식적으로 또 실질적으로 방향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동역할 수 없는 신앙노선이기 때문에 통합이 예정대로 추진되었다면 이곳은 최종적으로 통합 총공회에 서목사님의 배제 또는 전면 회개를 요청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요구는 철회할 성질이 아닌 동시에 타 공회들로부터 받아줄 수도 없는 사안입니다. 따라서 이곳만 배제되고 통합이 이루어져도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많은 연구와 발표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대단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대신 누구에게나 가장 쉽고 간단하게 반론할 수 있는 사안은 실은 찬송가문제입니다. 통합집회를 한다면, 찬송가를 어떻게 하겠는가? 이곳은 당시 통합제의를 여러 곳에서 받을 때마다, 원칙은 찬성이나 찬송가문제가 과연 해결될 여지가 있겠느냐고 반문을 하였습니다. 수정노선에 있는 분들이 우리 공회 찬송가를 사용하게 된다면 간단하게 해결되지만, 가능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백목사님 생전 마지막까지 그 면전에서 공회찬송가 사용을 거부한 분들이 그분 없는 이 시대에 자진해서 백목사님 생전보다 나은 신앙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반문이었습니다.


5.며칠 전, 6년 정도만에 통일찬송가로 예배보는 곳을 참석할 일이 있었습니다.

예배의 주최가 대구공회 소속 목사님이셨으니, 찬송가나 예배 인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참석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일단 참석할 자리라고 한다면 그곳의 예배인도에 일절 협조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조용하게 예배만 드렸습니다. 말씀의 은혜는 우리 부산공회 전체를 통해서도 그만한 분이 없겠다고 들었기 때문에 참으로 배우고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설교는 저렇게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리고 오늘 교회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은혜 전부를 상쇄할 수 있는 아쉬움은 통일찬송가 사용이었습니다.

통일찬송가 가사를 예배 찬송 중에서 들으며 마음 속으로 깊이 느끼는 바는, 과연 통일찬송가는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할 사생아'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 글을 적는 이곳의 주관입니다. 누가 시비할 일이 아닙니다. 그 통일찬송을 부를 때마다 은혜의 눈물이 넘쳐나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그 분에게 그런 은혜를 받지 말라고 시비할 마음은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곳이 걸어온 신앙노선과 성격이 옳다면 통일찬송가는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할 찬송가라는 것입니다. 대구공회 어느 목사님의 표현에 '총공회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교단'이라고 했다는 말을 간접으로 전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총공회는 나지 않으면 안 될 신앙노선이고 통일찬송가는 이 세상에 남으로 많은 사람을 괴롭게 할 불량배라는 생각이 너무도 강하게 들자 한편으로는 어떻게 총공회 신앙노선에 잠겼던 이들에게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연유로 통일찬송가를 들게 하고 부르게 하였는가 라는 공회역사가 다시 한번 마음에 훑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런 말씀을 가지고 저렇게 전하는 권위있는 종에게 어떤 과정으로 어떤 연유로 통일찬송가 가사라는 희대의 코메디 찬송가, 희대의 사기 찬송가가 전해지고 사용되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 그 관련된 분들의 이름을 한국교회사 중 총공회역사 편에서 기명으로 다루어 학문적으로 연구대상 및 표본전시를 할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물론 그분들은 오늘 총공회가 무지와 몽매에 빠져 사이비화 될 뻔한 데에서 통일찬송가를 전파함으로 총공회 대부분을 살려낸 공로를 생각하며 늘 뿌듯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생각이 있으면 면밀하게 비교 검토하여 성분분석과 그 상호작용의 과정을 객관적으로 설명해 내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6.매사를 두고 생각하고 발언할 때, 항상 좀더 넓게 좀더 깊게 보셨으면

현재 이곳은 아마 모든 홈 중에서 가장 열린 원칙으로 거의 제한없이 글쓰기를 하시도록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총공회 내부발언'란에서는 재독반대와 통일찬송가 사용을 지지하는 많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어떤 극단적인 표현으로 반복하여도 환영하고 그 글을 전시해 두겠지만 한 가지 참고하시라고 권하고 싶은 것은, 불과 10년 안팎에 있었던 일을 반복하고 계시지 않는가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올라오는 글은 전부 영구보존용으로 자료 저장을 해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탁월한 자료 저장이 없던 1989년 부산공회와 대구공회의 분열, 그리고 1992년 이후 부산공회(1)과 (2)의 분열과정에서 전해지는 몇몇 자료만 제시해도 가룟유다와 같이 후회를 해야 할 행동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해당되는 분들 중에 스스로 회개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현재 이곳에 여러 의견을 올리는 것은 자유입니다. 찬성과 반대를 두고 각각 기묘한 논리와 표현을 동원하는 것도 자기대로 받은 기술일 것입니다.

문제는 말이 유창하던 무디던, 상대방을 통쾌하게 쥐어박았다는 쾌감을 느꼈던 반대로 당했다고 느꼈던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훗날에 오늘의 발언이 공개되어 어느 누가 당시 어떤 주장을 했더라고 할 때 과연 백목사님 사후 보였던 행태를 오늘에 숨겨 가루기 급급한 분들과 같은 입장에 서게 되지 않을지를 차분하게 돌이켜 보았으면 합니다.

지금 이곳이 전혀 상대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만일 이곳을 향해 그 당시 백목사님 살인범 배후였다고 각 지방 교회 교역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다녔던 목사님들은 이름 석자 숨기기에 급급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재독 정죄에 찬성했던 분들은, 그날 찬성 이후 늘 변명하기에 사실 급급할 따름입니다. 그날 정죄당한 재독은 '재독이 죄냐'고 큰 소리로 반문하고 대낮을 활보하고 있습니다.

같은 수준에서 대화하고 토론하며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윗사람으로 아랫사람을 나무라듯 말씀드릴 수는 없는 곳입니다. 다만 과거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어야겠다고 발언하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비록 표현이 거칠고 그 결과가 이곳이 옳다는 것으로 끝날지라도, 이제 드리는 주장이 옳기는 꼭 옳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0

전체 568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6014
총공회 소식지 발간 책임자에게
6014 | 서기 | 2014.01.02
서기 2014.01.02 0 334
6015
위치, 책임, 처신, 인사...
6015 | 서기 | 2013.12.31
서기 2013.12.31 0 280
6016
폐허 된 세계문화유산 - 백년 전의 불국사 모습
6016 | 서기 | 2013.12.24
서기 2013.12.24 0 311
6017
송종섭 목사님의 경제 생활
6017 | 서기 | 2013.12.22
서기 2013.12.22 0 333
6018
공회의 소송금지원칙보다 더 새끼양 원칙도 있습니다.
6018 | 서기 | 2013.12.12
서기 2013.12.12 0 316
6019
갈수록 감사, 살필수록 감사
6019 | 서기 | 2013.12.04
서기 2013.12.04 0 270
6020
백 목사님께 그 이름 사용을 감사하며
6020 | 서기 | 2013.11.13
서기 2013.11.13 0 286
6021
공회 가입과 탈퇴 자료
6021 | 서기 | 2013.11.07
서기 2013.11.07 0 287
6382
자료를 올린거 같으면 확실하게 올리시든지
6382 | | 2013.11.09
2013.11.09 0 371
6383
'관련 내용의 전부가 아니며'라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6383 | 서기 | 2013.11.09
서기 2013.11.09 0 275
6380
공회 가입과 탈퇴 자료
6380 | | 2013.11.14
2013.11.14 0 326
6381
오타입니다.
6381 | 서기 | 2013.11.15
서기 2013.11.15 0 304
6022
감출 과거였던가?
6022 | 서기 | 2013.11.02
서기 2013.11.02 0 313
6023
왜 신앙의 자손과 혈육의 자손은 한 몸에 받지 못할까?
6023 | 서기 | 2013.10.11
서기 2013.10.11 0 295
6024
공회를 스친 노무현 정권의 동업자
6024 | 서기 | 2013.10.09
서기 2013.10.09 0 348
6025
감격스런 날 - 백영희 전기서를 손에 쥐고
6025 | 서기 | 2013.09.28
서기 2013.09.28 0 275
6026
1990년 11월 19일, 그 긴박했던 순간
6026 | 서기 | 2013.09.15
서기 2013.09.15 0 335
6027
서울대 출신 목회자
6027 | 서기 | 2013.09.08
서기 2013.09.08 0 644
6028
'합정동교회'
6028 | 서기 | 2013.08.31
서기 2013.08.31 0 320
6029
신앙의 지분과 대가
6029 | 서기 | 2013.08.15
서기 2013.08.15 0 249
6030
2013년, 목사님 사후 집회 24년 차를 맞아
6030 | 서기 | 2013.08.14
서기 2013.08.14 0 262
6031
공회의 예배 전부 시간
6031 | 서기 | 2013.07.27
서기 2013.07.27 0 310
6032
바른 길인가, 엉뚱한 길인가
6032 | 서기 | 2013.07.20
서기 2013.07.20 0 250
6033
53회의 '과거사 회개' 운동을 감사하며
6033 | 서기 | 2013.07.04
서기 2013.07.04 0 366
6034
노선과 소속은 생명보다 귀한 것
6034 | 서기 | 2013.07.03
서기 2013.07.03 0 281
6035
매일 기도 제목 중에서
6035 | 서기 | 2013.06.28
서기 2013.06.28 0 268
6036
모두, 여호수아가 되라!
6036 | 서기 | 2013.06.23
서기 2013.06.23 0 267
6037
다른 준비는 좀 되었는데
6037 | 서기 | 2013.06.21
서기 2013.06.21 0 267
6038
남정교회 서정교회는 서부교회로 합했으면
6038 | 서기 | 2013.06.12
서기 2013.06.12 0 350
6384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6384 | 반론자 | 2013.06.17
반론자 2013.06.17 0 294
6039
오늘 장례식 순서 맡은 분들께
6039 | 서기 | 2013.06.06
서기 2013.06.06 0 361
6385
이 노선의 3 대 기관
6385 | 서기 | 2013.06.07
서기 2013.06.07 0 258
6040
소수 정예
6040 | 서기 | 2013.05.22
서기 2013.05.22 0 291
6041
이 노선의 내면과 외면
6041 | 서기 | 2013.05.19
서기 2013.05.19 0 286
6042
설교록 - 성경을 위한, 성경 때문에
6042 | 서기 | 2013.05.03
서기 2013.05.03 0 282
6043
최전선 지휘관은 앞이 아니라 뒤의 적이 두렵다.
6043 | 서기 | 2013.04.30
서기 2013.04.30 0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