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총공회 목회자들의 '하나님 앞에서' 행한 서약 - 1985년 백광진목사님 경우를 중심으로

구남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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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31
1.재독을 하다가, 백광진목사님의 1985년 총공회 노선 서약식 예배를 듣게 되었습니다.

①목회자 출발의 서약에 관한 자료

1985.11.29. 현재 잠실동교회 담임목회자인 백광진목사님이 조사님으로 임명되고 출발하던 인허식 예배가 있었습니다. 자세한 설교 내용은 /초기화면/활용자료/녹음본/에서 편리하게 찾아서 읽거나 들어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 /초기화면/연구실/자료실/에는 인허식 내용만 올렸고 또 /초기화면/총공회/자료실/에는 그날 밤예배 전부와 인허식 내용 전부를 올렸습니다. 여기 간단하게 5가지 서약 내용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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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지금 지금 백광진선생님의 전도사 인허에 대해서 문답이
있겠습니다. 자, 한번 일어서십시오. 예라면 예 하고 아니라면
아니라고 대답을 해 주십시오.


일.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믿느뇨?

이.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의 신경과 요리 문답은 신구약
성경의 교훈한 도리를 총괄한 것으로 알고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들이기로 승락하느뇨?

삼.총공회의 화평과 성결을 힘써 지키기로 작정하느뇨?

사.주 안에서 본 공회의 처리를 복종하기로 확정하느뇨?

오. 그대는 주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만 따
르며 그대의 생명도 주께 드린 것인 것을 깨닫고 주님의 맡기
신 양떼를 위하여 모든 것과 생명까지 희생하기로 작정하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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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총공회 ‘전도사인허식’의 의미

인허식 자료에서는, 일반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명칭인 '전도사 인허식'이라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인허서약 내용은 임시직으로 임명하는 일반 교회의 '전도사'가 아니라, 총공회 목회자들이 평생 목회직이라는 조건으로 출발하는 ‘목회자’로서의 서약입니다. 총공회는 '조사'제도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으며, 해방 전의 조사제도를 오히려 대폭 강화시켜 '안수받지 않은 목사'라는 신분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총공회 특유의 제도입니다.

총공회 목회자는 목사가 아니라 조사님으로 출발하게 되는데, 이 조사님으로 출발할 때부터 이미 평생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고 약속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전도사 인허식’은 다른 교회의 ‘목사 서약’에 해당되는 책임과 각오가 주어집니다. 이렇게 조사시절부터 목사와 동일하게 목회자로서 출발을 하게 하는 것은, 일반 장로교를 포함한 교계 일반의 목회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목회자의 인식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어 교회 행정노선을 완전히 성경대로 세우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는 ‘조사’제도를 살피는 대신 조사님들이 목회자로 출발하던 때, 하나님 앞에 자기의 생명과 평생을 바쳐 이 길을 가겠다고 약속한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또 그 훗날 그 약속을 어떻게 지키는지 한번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2.결혼식에서 혼인서약을 들을 때마다, 답변자는 속으로 그 서약의 하루 뒷날을 생각합니다.

①혼인서약에 ‘예’라는 대답을, 그 사람의 진심이라고 들어본 기억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지켜보고 아는 대로는, 단 하루도 지키지 못할 서약을 그렇게 부부들마다 부지런하게 해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중인들 앞에서'를 마구 남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이라는 단어가, 조금 차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소리를 들을 때 오금이 저려서 그 자리에 주저 앉을 소리입니다. 그 크고 두려운 표현이 혼인 서약에 턱 내 걸립니다. 또 대답하는 부부들은 자신있게 '예!'라는 대답을 허공에 남발하고 있습니다. 병들고 슬플 때도 변치않고 사랑하겠다? 이 말이 도무지 말이 되는 말입니까?

물론 세상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야 지옥갈 죄도 벗지 못한 중죄인들이니까 그렇다치고, 교회에서 결혼하는 성도들은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결혼식을 하되, 결혼식을 예배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 중에 하나님 앞에 서약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거짓말로 ‘예’라는 대답을 마구 해 대고 있습니다. 우리 입에는 거짓말이 너무 익어 있어 거짓말이 거짓말로 가책이 되기는커녕 이렇게 따져보는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②서약에 대한 근본 인식과 사고방식 자체가, 우리에게는 남에게 그냥 해 보는 인사입니다.

1970년대, 중절모까지 눌러쓴 신사가 신작로 전봇대에다 대낮에 쉬를 하는 것이 흔했습니다. 한쪽 다리라도 들고 않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 인식이 개수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의 서약이든 대통령이 국민 앞에 하는 서약이든 약속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표현이지 땀과 노력으로 실제 지켜지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과 의식 자체가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없어 교회가 무법 불법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고 목회자의 서약이 없어 목회자들이 양 잡아먹는 이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온 나라와 온 백성을 발아래 밟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최고의 명예와 권세를 잡아보겠다고 선거에 나서는데 입에서는 국민을 위해 머슴이 된다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하나님 위해 양떼를 위해 이 한 목숨과 평생을 바치겠다고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습니다. 소위 서약을 하고 있습니다. 속으로는 교회를 구멍가게로 삼아 자기와 사택 식구가 벌어먹고 살아야겠다는 것이 내용입니다. 대기업에서 대규모 광고를 하면서 소비자를 위해서 개발을 했다고 발표를 합니다. 회사가 자선사업입니까? 사회사업입니까? 영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회사입니다. 이렇게 발표용과 속셈용이 전혀 따로 존재하고 있는데, 그 중에 목회자들도 포함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곳의 단정입니다.


③부부가 서약을 지키느라고 자제하고 노력하는 수가 없듯이, 목회자의 서약도 그렇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며 부부의 대의를 굳게'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는 부부는 아직까지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또 그 약속을 생각해서 그 약속 때문에 노력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기쁠 때는 지킬 것이고 슬플 때는 지킬 수 없을 것이고' 이렇게 서약을 해야 현실적입니다. 주례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병들 때나 강건할 때를 물론하고... 굳게 지키겠느냐'고 묻는다면 서약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양심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상대방을 얼른 집어 삼켜야 하고 여러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유교식 안면 때문에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모든 신랑과 신부들입니다.

'기쁠 때나 강건할 때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고 부부의 대의를 굳게 지키되, 슬플 때나 성질 날 때나 화딱지가 날 때나 병들 때는 아내고 남편이고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니 그때는 내 멋대로 하겠습니다.' 이것이 모든 신랑과 신부의 현실이고 또 그들이 실제로 지킬 약속이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요?

혹 개인적으로 이 서약에 대하여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며 결혼식 몇 일 전에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고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은, 오늘 이 땅 위에 노아 8식구에 들어갈 총공회 목회자들치고 그 출발 서약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 줄 아십니까? 총공회 교리와 신조를 지키겠다고 하나님 앞에 약속하고 출발한 목회자들까지도 그 약속을 약속으로 취급을 하는 줄 아십니까? 기억이라도 하는 줄 아십니까? 이렇게 목회자들을 예로 들며 그 사람을 무마시킵니다. 그 양심의 고통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주례가 기쁠 때만 지키시라고 할 수도 없고, 서약을 빼먹으면 구경하는 분들과 양가 가족에게 큰 의문을 던질 것이니 그냥 ‘그렇게 노력해보기는 하겠습니다.’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며 겉으로는 대답하고 나가자고 합니다.

목회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평생을 약속하고, 교회 앞에 약속하고, 교인 앞에 약속을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목회자 이권과 취향에 따라 걸어가고 있는데, 건방지게 이제 막 결혼하는 새파란 교인이 목회자들보다 더 낫겠다고 나서서 되겠습니까? 너무 교만한 것 아닙니까? 혼자 살 수는 없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것이니까 모든 노력은 상대방을 붙드는데만 총력을 기울이시고 권하고 있습니다. 과거도 어떻게 살아왔는지 차마 미안해서 물어보면 안되는 세상에, 미래를 약속하다니요, 큰 실례입니다. 무례한 일입니다. 오늘 좋으니까 서로 만나서 서로 야합하고 사는 것입니다. 내일은? 내일 가봐야 알지요.

인격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시대요, 양심과 도덕이라는 것도 그 개념조차 없어진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현재 내 눈 앞에 얼마나 남는 장사가 되겠느냐 하는 이권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세의 가장 우러러 볼 사람은 기업가들입니다. 그들은 남는 장사에 관한 한 최고봉들입니다. 목사도 뒤로는 남는 장사를 하려고 했는데 재벌 회장님들만큼 남기지를 못했으니 그들만 못한 사람들입니다.


3.오늘 총공회는 두 분의 ‘백광진’목사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또 지켜보고 있습니다.

①백광진목사님이라는 분은, 총공회 차세대 최고의 지도자입니다. 인정할 것은 해야겠지요.

백영희목사님과 달리 백태영목사님은 화끈하고 뒤를 봐주시는 분입니다. 물론 실력도 없는데 제 식구라고 해서 봐주는 그런 분은 아닙니다. 이왕이면 자식이니까 좋은 것이고, 그보다는 솔직하게 총공회 내의 가장 성공적인 교회로 평가받는 잠실동교회를 실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최고의 목회자가 백광진목사님입니다. 양심이 그렇기 때문에 잠실동교회를 그분에게 인계한 것입니다. 이곳은 잠실동교회 후임문제를 두고는 그 반대측 교인들이 못된 교인들이라고 이전부터 지금까지 단호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백태영목사님은 서부교회는 총공회 지교회 교인들로 이루어진 교회이고 잠실동교회는 개척으로 시작해서 이룬 교회이므로 잠실동교회가 진정 총공회 최고의 교회로 자부하는 분입니다.

어쨌든 백광진목사님은, 이곳과 비교를 한다면 객관적 수치만으로도 10배 이상의 권위 있는 목회를 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곳이 그분을 볼 때는 시선을 전방 상향 45도로 봐서는 그 얼굴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90도로 목을 꺾어서 직각 위쪽를 향해 보아야 그분의 턱이 보일 정도입니다. 그 인품 실력 목회 신앙 지도력이 전반적으로 그러하며 특히 미국에서 받은 신학박사라는 학위는 그분의 학문적 역량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총공회 양성원도 졸업하지 못했고 외부 신학교도 잠깐 다녀본 적은 있어도 졸업을 해 본 것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신학에 관련된 학위는 단 하나도 없는 정도입니다. 젊은 목회자들끼리 학문을 말한다면, 아직까지는 총공회 내에서 그분만 학문을 말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명을 가진 분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면으로 보든지 그분은 총공회 최고의 지도자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분을 싫어하는 분들이 적지 않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주관으로 자기 취향으로 자기 성깔을 가지고 목회자를 좌지우지하려는 것이니 모세라도 들어 줄 수 없고, 백목사님이라도 그런 교인들은 그냥 나가도록 내 버려두고 말았습니다. 과거 잠실동교회에 있던 분들이 그분을 비판하는 것은 이곳에서는 전부 시기요 질투라고 보고 있습니다. 무어라고 말을 하든 이곳은 비겁한 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잠실동교회가 좋아서 따랐고 좋아서 결정했고 좋아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었습니다. 이곳은 연구소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분은 객관적으로 말한다면, 분명히 총공회 최고의 목회자입니다. 모든 면을 구비하게 다 갖춘 분입니다.


②1985년의 백광진조사님을 추억합니다. 이곳은 지금도 생생하게 그분을 대하고 있습니다.

1983년 경, 이곳을 향해 이 설교록의 가치를 네가 아느냐고 책망을 했던 분이 백광진목사님입니다. 서부교회 2층 창고 같은 편집실 사무실을 들러서 '편집실에는 백목사님 과거 노트자료를 주고 싶어도 그 가치성을 모르기 때문에 줄 수가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단호하게 말할 만큼 이 복음에 진실된 분이었습니다. 그때 편집실의 자료 담당이 이 글을 적는 사람입니다. 물론 편집실장은 이민영목사님입니다. 이 대화를 주고 받던 3사람은 같은 나이에 일찍부터 말을 놓고 지내던 친구사이입니다. 두 사람은 편집실 소장과 직원이었고 그분은 잠실동에서 백목사님 설교록을 정리하는 조직을 따로 운용하며 책임자로 있었습니다.

당시 모아진 자료가 대학노트로 약 150여권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 자료들은 대부분 목회연구소에서 가지고 있지 않은 1970년대 설교 필기 자료들이었습니다. 왜 서부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설교 기록을 확보하지 못했느냐는 질책에는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분은 당당했고 편집실 핵심 직원 둘은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백영희목사님의 교훈이 당시 서울에서 각 신학대학원 학생들에게 어떻게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아느냐고 설교를 했고 두 사람은 경청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곳은 아직까지 이 교훈에 미쳤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이 교훈의 가치를 아느냐, 가치도 모르기 때문에 자료를 줘봐야 관리가 되지 않는다고 야단을 맞은 기억은 백광진목사님 한 분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분은 미국으로 이 복음을 전하러 간다며 서부교회로 내려와서 백목사님께 전도사 인허를 받게 되었으니, 이번에 제공하는 1985.11.29. 인허식이 그것입니다.

이곳 홈 운영자를 향해서 이 복음의 가치를 모른다고 책망해 주신 분은 그분뿐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백광진’이라는 존함을 아직도 총공회 최고 보수노선에 섰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20여년 지난 오늘까지 수많은 분들을 접하면서 당시 백광진조사님과 같은 열정과 확신을 가진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부산공회(2)에 계신 분들이 과거 10여년 간 백목사님 관련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지 못했던 것은 그 자료의 가치성 때문이 아니라 그분들이 투입한 자금과 시간 때문이었습니다. 100만원을 내놓으면 자료를 주겠다고 하는 분들이니까 숫자에 칠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1983년 당시의 백광진조사님에게는 원하는 조건을 전부 들어주겠고 돈도 원하는 대로 말하라고 편집실에서 제시를 했으나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이 복음의 가치성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줘봐야 보관도 관리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까지 이곳은 이 말씀 자료를 제공해도 그 가치성을 몰라서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분들은 없었습니다. 그분 수준에서 평가를 한다면 이곳은 일반인 수준을 아직 탈피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분은 이 복음의 가치에 대하여는 홀로 저 높은 고공에 계신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③이곳은 또 한 분의 백광진목사님을 알고 있습니다. 2003년의 백광진목사님입니다.

이곳은 ‘백광진’이라는 분의 존함을 대할 때마다 또 다른 한 분의 ‘백광진’이라는 고명한 목회자를 듣고 알고 있습니다. 현재 기독교 TV를 통해서 한국교회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교계의 유능한 젊은 지도자입니다. 현재 서울 잠실동교회를 담임하시는 분이며, 한국교회 셀목회 운동의 중심에 우뚝 서서 한국교회를 향해 세계 교회의 흐름을 소개하는 지도자로서의 백광진목사님입니다.

1989년 9월, 백목사님 장례 다음 주간에 있었던 교역자회에서 그분의 부친인 백태영목사님은 앞으로 총공회에다 세계 신학을 다 소개하겠다고 공언했었는데 혹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는지요? 그 당시 공언이 빈말이 아니었다는 것은 이후 백광진목사님의 신학과정과 목회과정을 살펴보면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 세계신학을 소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황수관박사님을 예배당에 모셔놓고 건강강좌까지 개최하여 이웃에게 열린 교회로 다가서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기존 강단을 완전히 개혁하여 현재 TV방송에서 보시는 그런 21세기형 강단 문화를 심은 분입니다.

지금 대구공회와 서울공회와 부산공회(1)의 상당수 교회들은 교회 부흥을 위해서는 죄되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 볼 수 있다는 노선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백광진목사님의 목회는 가장 솔직하고 가장 담대하며 그리고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부산공회(1)에서는 그런 것을 탈선이라고 비판하고 있겠지만, 그렇다면 부산공회(1)이 인감증명을 첨부해가며 소송을 했던 것은 탈선을 막는 일이었던가요? 이렇게 반문한다면, 누구나 우리는 도토리 키재기 정도이지 속으로는 목회 성공과 교인 부흥을 위해서 할 수 있으면 모든 방법을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백광진목사님과 같은 실력 추진력 학문적 배경 승부수를 던지는 담력 지도력이 부족해서 못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자기들이 못하니까 뒤로 돌아 앉아서 성경과 총공회 신앙노선을 가지고 비판을 하지만, 사실 병신 꼴값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격지심입니다. 단언코, 백광진목사님은 실력이 있는 유능한 목회자입니다. 서울 바닥 한 가운데 내놓고 그만한 분이면 부끄럽지 않은 분입니다.


④안타까운 것은, 이 두 분의 백광진목사님끼리 서로 맞고함을 지르면 싸우고 있습니다.

1985년의 백광진목사님과 2003년의 백광진목사님, 이 두 분은 만나기만 만나면 단번에 사생결단을 하고 싸우고 계십니다. 옆에서 말리는 것도 한계가 있고, 또 말리려고 들어가도 워낙 높은 고공에서 벌어지는 전투이므로 땅에 붙어 다니는 이곳 수준에서는 근접하지도 못합니다.

오늘의 잠실동목회는 1985년의 백광진조사님을 향해 호통을 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미련하게 답답하게 목회를 해서 그게 목회가 되겠느냐고. 그리고 1985년의 백광진조사님은 2003년의 백광진목사님에게 교계 언론에 이름 몇 번 올리는 그런 코메디언을 하고 바람을 잡는 것이 목회냐고 배를 잡고 웃고 있습니다. 두 분이 서로 조롱하고 비웃고 정죄하고 손가락질을 하고 싸우고 있는데, 이곳이 개입해서 이곳의 의견을 밝히기는 참 여간 민망하지 않습니다.

최신형 전투기 2대가 고공에서 최첨단무기로 공중전을 벌이고 있는데, 새총으로 참새 잡는다고 쫓아다니는 이곳에서 저 높은 하늘의 흰구름 구경하듯 관람이나 할 일이지, 감히 훈수를 하겠습니까, 아니면 해설을 하겠습니까? 아마 이곳을 호의적으로 이용하는 분들이면 이곳과 같은 처지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⑤이곳은 이렇게 짐작하고 있습니다.

1985년 백광진목사님은, 총공회 신앙노선에서 목회할 목회자들에게는 표준입니다. 적어도 그 발언과 자세에 관해서는 분명히 본받아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3년의 백광진목사님은 목회자로서 일반 세상이 인정하는 성공을 이루려면 그렇게 화끈하게 개혁을 해서 총공회 잔재를 완전히 일소해버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백목사님 생전 최후의 직원 중 한 사람으로 백목사님이 가장 아끼던 주일학교 총무 출신 목사님도, 교회만 부흥될 수 있다면 죄되지 않은 것은 다 해보겠다고 1998년에 이곳을 직접 만난 자리에서 단언한 적이 있었습니다. 남녀 학생회, 악기, 율동, 수련회 등 일반 교회에서 하는 것을 힘대로는 다해보고, 또 일반 교회의 성공사례를 배운다며 많은 교회들을 견학한 정도입니다. 쉽게 말하면 백광진목사님이 부럽고 그것을 본받겠다는 것입니다.

1985년 백광진목사님은, 총공회에서 목회자로서 출발하면서 인허식에서 서약 했던 그 내용을 지키려고 한다면 그분은 신앙의 표준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노선보다 회원확보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2003년의 백광진목사님이 표준일 것입니다. 분명히 두 분은 모든 면에서 서로의 인식과 기본 자세 자체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 한 자리에 앉을 수가 없습니다. 논쟁하지 않을 수 없고 싸우지 않을 수 없고 멱살을 잡고 흔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곳은 인허식 서약서를 총공회 관련 자료로 이번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글에서는 서약서와 관련하여 모두들 너무도 ‘서약’이라는 단어 알기를 씹던 껌같이 알고 있다는 것이 개탄스러워 ‘하나님 앞에서’ 서약한 그 상황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985년 하나님 앞에서 서약한 백광진목사님과 2003년의 백광진목사님은 서울 잠실동교회를 두고 치열하게 교권투쟁을 벌이다가 결국 2003년의 백광진목사님이 1985년의 백광진목사님을 때려 눕히고 완벽하게 잠실동교회를 장악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1985년의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를 즐겨하던 분이고, 2003년의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을 알기를 우습게 알고 있는 분입니다. 화장실 일회용 휴지정도로 알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3.두 분 백광진목사님의 투쟁을 보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약속을 약속으로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우리 전부는 2003년의 백광진목사님과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가장 보수적이고 이 노선을 지킨다고 했던 부산공회 내부만 가지고 살펴봐도, 어제 하나님의 뜻을 세워 이 말을 했던 분들이 오늘 하나님의 뜻을 세워 자기가 했던 말을 뒤집은 것이 한두 번입니까, 서너 번입니까, 네댓 번입니까? 수로 헤아리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통합교단과 합동교단은 모으기만 하면 옳다는 노선입니다. 그런 교회들에게 노선이나 의리나 약속이라는 것을 들먹거리면 큰 실례가 될 것입니다. 기장교단은 남북통일용으로 기독교를 활용해야 한다는 곳이니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 대신 ‘이 민족 앞에서’라는 말을 두려워하는 이들입니다. 총공회는? 총공회만큼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고 잊혀질 말이 아니고 지켜져야 한다고 해서 모였고, 그래서 출발했고, 그 노선을 지키려고 수많은 십자가를 걸머졌습니다. 그리고 이 노선에 앞장을 서게 될 목회자들에게는 남다른 서약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안타깝습니다. 분명한 것은 백광진목사님이 쥐고 있는 예배당, 교인, 경제, 학위, 교계인맥, 명성이 부러워 환장을 하고 있으나 발바닥 밑에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니, 그분 뒷꼭지에다 대고 ‘하나님 앞에서’ 서약한 서약도 지키지 않았다며 비판이나 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따라서 그분을 제외한 우리 공회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우리의 경건과 신앙으로 가지고 그분을 정죄한다면 말도 안 되는 것이고, 차라리 1985년의 그분으로 2003년의 그분을 비판하도록 1985년 서약서나 이곳에서 내밀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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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2
감출 과거였던가?
6022 | 서기 | 2013.11.02
서기 2013.11.02 0 314
6023
왜 신앙의 자손과 혈육의 자손은 한 몸에 받지 못할까?
6023 | 서기 | 2013.10.11
서기 2013.10.11 0 295
6024
공회를 스친 노무현 정권의 동업자
6024 | 서기 | 2013.10.09
서기 2013.10.09 0 348
6025
감격스런 날 - 백영희 전기서를 손에 쥐고
6025 | 서기 | 2013.09.28
서기 2013.09.28 0 275
6026
1990년 11월 19일, 그 긴박했던 순간
6026 | 서기 | 2013.09.15
서기 2013.09.15 0 335
6027
서울대 출신 목회자
6027 | 서기 | 2013.09.08
서기 2013.09.08 0 644
6028
'합정동교회'
6028 | 서기 | 2013.08.31
서기 2013.08.31 0 320
6029
신앙의 지분과 대가
6029 | 서기 | 2013.08.15
서기 2013.08.15 0 249
6030
2013년, 목사님 사후 집회 24년 차를 맞아
6030 | 서기 | 2013.08.14
서기 2013.08.14 0 262
6031
공회의 예배 전부 시간
6031 | 서기 | 2013.07.27
서기 2013.07.27 0 310
6032
바른 길인가, 엉뚱한 길인가
6032 | 서기 | 2013.07.20
서기 2013.07.20 0 250
6033
53회의 '과거사 회개' 운동을 감사하며
6033 | 서기 | 2013.07.04
서기 2013.07.04 0 366
6034
노선과 소속은 생명보다 귀한 것
6034 | 서기 | 2013.07.03
서기 2013.07.03 0 281
6035
매일 기도 제목 중에서
6035 | 서기 | 2013.06.28
서기 2013.06.28 0 268
6036
모두, 여호수아가 되라!
6036 | 서기 | 2013.06.23
서기 2013.06.23 0 267
6037
다른 준비는 좀 되었는데
6037 | 서기 | 2013.06.21
서기 2013.06.21 0 267
6038
남정교회 서정교회는 서부교회로 합했으면
6038 | 서기 | 2013.06.12
서기 2013.06.12 0 350
6384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6384 | 반론자 | 2013.06.17
반론자 2013.06.17 0 294
6039
오늘 장례식 순서 맡은 분들께
6039 | 서기 | 2013.06.06
서기 2013.06.06 0 361
6385
이 노선의 3 대 기관
6385 | 서기 | 2013.06.07
서기 2013.06.07 0 258
6040
소수 정예
6040 | 서기 | 2013.05.22
서기 2013.05.22 0 291
6041
이 노선의 내면과 외면
6041 | 서기 | 2013.05.19
서기 2013.05.19 0 286
6042
설교록 - 성경을 위한, 성경 때문에
6042 | 서기 | 2013.05.03
서기 2013.05.03 0 282
6043
최전선 지휘관은 앞이 아니라 뒤의 적이 두렵다.
6043 | 서기 | 2013.04.30
서기 2013.04.30 0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