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남 찬양대와 대학생 모임에 대한 견해는?

구남단1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6.12.20
출처: /총공회/문답/17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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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남 찬양대를


①남 찬양대를 백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셨으며
②남 대학생 모임 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셨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둘 다 금했습니다. 그렇지만, 우선 조직원리에 대한 이런 원칙을 아셨으면


1.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남찬양대나 남대학생회는 백목사님 신앙노선에서는 금합니다.

남 찬양대나 남 대학생회가 지금 서부교회에 존재하고 운영된다면, 그것은 백목사님 생전의 신앙노선에서 이탈된다는 가장 큰 현상들 중에 하나입니다. 교훈이 은밀하게 바뀌고 교리가 조용하게 변질되는 것은 일반인이 거의 아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배 때 찬양대 앉은 위치, 그 구성원, 교회 내에 여러 모임들... 이런 것은 눈에 단번에 띄이기 때문에 빨리 표시가 난다는 뜻입니다.

뿌리가 썩으니까 가지 끝이 말라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인데, 뿌리가 중요하지만 뿌리는 땅 밑에 있어 보이지 않으니까, 별 것 아닌 가지 끝을 보고 사람들은 더 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지 끝을 보며 땅 밑에 뿌리를 볼 수 있으면 좋은 농부일 것입니다.


2.남 찬양대를 두고 말씀드린다면

①백목사님 부임 40여년간 서부교회 찬양대는 3번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다시 일지를 찾아봐야겠지만, 백목사님 서부교회 부임 후 약 10년간에 해당되는 1950년대는 서부교회에 찬양대가 있었습니다. 당시 찬양대는 평범한 일반 교회 찬양대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그후 1960년대와 70년대 약 20여년은 찬양대가 교회 타락의 가장 앞선 선도 역할을 한다는 이유로 서부교회에서는 거론도 할 수 없도록 금지 되었습니다. 주일학교 총무 조사님이 외부 교계 방문 목회자나 반사들에게 교회 소개를 할 때, 늘 자랑처럼 하신 말씀이 '우리 서부교회는 찬양대를 두는 그런 죄를 짓지 않습니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약 10년은 찬양대를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정확한 연대는 일지 등 다른 기록을 살펴봐야 합니다.


②1950년대 서부교회에도 찬양대가 있었다고 한다면? 애굽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1950년대 부임 초기 10여년은 백목사님께서 고신교단에 소속되어 최대한 고신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조처하지 않았던 것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학생회나 찬양대 운영입니다.

따라서 1950년대 백목사님이 서부교회에 일반 교회의 찬양대와 학생회 운영을 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총공회나 서부교회에서 일반 교계의 찬양대나 학생회 개념을 도입한다면 그것은 홍해 바다를 건너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이 홍해바다를 다시 건너 애굽으로 들어가는 탈선이요 속화입니다.


③남찬양대를 금하는 이유는

서부교회의 찬양대는 다른 교회와 달리 찬양대라는 존재를 예배의 필수 요소나 조직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외부 교단에서 수도없이 방문하던 1980년대 초반, 서부교회를 방문하는 교회들마다 왜 찬양대라는 존재가 없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이단 시비에서 막 벗어나고 한국교계의 빛이 되는 정점에 자칫 찬양대 유무 때문에 또 한번 시비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세상 여론이나 비판에 굴해서가 아니고, 이미 세상을 지도해야 할 차원 높은 위치에 있었던 서부교회는 피해갈 수 있는 투쟁은 피하기도 하던 때였습니다. 따라서 흥정이나 양보나 외식이 아니라 일반 교계를 지도할 입장에서 어린 신앙의 교계를 상대로 배려를 했던 것입니다. 즉, 찬양대를 형식적으로 또 최소한으로 또 위험성을 완전 제거한 상태로 다시 운영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찬양대를 하는 학생들이 교회 활동에 한번 더 수고하여 신앙이 자라게 되는 부수입도 계산했고 또한 예배에 약간 도움되는 면도 고려했습니다.

찬양대를 다시 시작하면서 가장 조심시킨 것은

찬양대 운영이 활발하게 되면 예배보다 찬양이, 신앙보다 활동이, 반사보다 교회 특수 모임이 더 앞서가거나 주도가 될까 염려했습니다. 또 남녀 문란이나 음악에 대한 기교가 고개를 들까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반사를 하지 않는 주일학생만으로 찬양대를 조직했는데, 처음에는 남녀 문제를 없애기 위해 남주일학생 찬양대와 여주일학생 찬양대를 따로 조직하고 연습을 시켰습니다. 지도하는 선생님도 각각 따로 두었고 모이는 시간과 활동을 완전 분리시켰지만, '찬양대'라는 그 이름과 존재만으로도 결국 남녀 문제를 넘어설 수 없겠고 또 남학생의 찬양모임이라는 것도 목사님 체질이 아니기 때문에 거의 아는 사람도 없는 상태로 그냥 없애버렸습니다.


④현재 남찬양대가 존재하려면

서부교회가 백영희신앙노선을 벗어나지 않고도 남찬양대를 운영하려면, 여학생 찬양대와 비록 별도 조직이라 해도 그 조직과 그 이름만으로 안심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한 교회 내에 '찬양대'라는 동일 목적의 두 조직이 이성 문제로 유대감을 가지지 않는지, 또 위험성이 없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보고 이에 대하여 안심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다음에라야 가능합니다. 그러나 현재 이성 문제를 두고 풀어져 있는 교회 분위기로 볼 때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조건은 외부 교계가 서부교회를 찬양대까지 죄악시 한다고 불평하거나 시비할 가능성을 때문에 정말 마지 못해 찬양대를 두되 남 찬양대까지를 두고 운영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살펴봐야 합니다.

또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라면, 남 찬양대의 운영이 혹 서부교회 내 남성 음악 애호가 또는 동호인의 음악 사랑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지를 살펴보셔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정도가 아니면 현재보다 훨씬 모든 면으로 조직이 강하고 교인이 많고 모든 면으로 탁월했던 그때도 필요가 없고 또 해서는 안되겠다고 해서 중단시켰는데, 지금은 왜 남 찬양대가 굳이 필요한지, 그 동기 그 원인 그 이유를 면밀하게 찾아보셔야 할 것입니다.

단지 교회가 크기 때문에 일반 교회들이 습관적으로 설치하는 여러 단체 모임 제도들을 단순 도입한다면, 이는 백영희신앙노선에서 벗어나서 본격적으로 타락의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3.남 대학생회를 두고 말씀드린다면

①서부교회 학생회도 찬양대와 거의 같은 변화 과정이 있었습니다.

1950년대 10여년간 서부교회 학생회는 부산시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학생회로 군림하고 있었던 정도입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과 신앙 좋은 학생들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큰소리를 얼마든지 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찬양대로 예를 든 것처럼 고신과 생사를 건 극단적 노선 투쟁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찬양대나 학생회에 손을 댈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1959년 고신에서 제명되고 1960년부터 모든 교회 행정을 자유롭게 조처할 수 있는 때가 오자 목사님은 찬양대와 학생회가 없어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결국 다 해산시켜버렸습니다. 그래서 1960년대와 1970년대 20여년 간은 서부교회에서 주일학교와 장년반의 공식 예배 모임 외에는 어떤 조직이나 제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오로지 백목사님 한 분의 지도를 직접 받는 예배 심방 조직만이 있었습니다.

1979년, 백목사님은 한 해에 1200여명 재적학생이 주일학교에서 장년반으로 편입되는 현실을 두고, 장년반에서 예배 보기 이전 중간 단계로 잠깐 예배 지도를 하기 위해 중간반을 조직합니다. 중간반 조직은 향후 사망시까지 10년간 단 한 해도 그 구도가 바뀌지 않았던 때가 없다 할 만큼 많은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녀 문제가 될 수 있는 원인 제거와 반사가 학생들을 목회자로 지도하는 중심으로만 운영되는 기조에서만 운영을 했습니다.

즉, 남녀가 섞일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배제시켰고 다음으로는 남녀가 분리되었다 해도 선생님이 목회자로서 직접 지도하는 관계로 운영되지 않고 학생들이 같은 수준에서 모이거나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은 발을 붙일 수가 없도록 했습니다. 중간반사를 몇 명으로 하느냐, 반사 급여체계를 어떻게 하느냐, 학생 관할권을 어떻게 하느냐는 등의 변화는 늘 있었지만 이제 말씀드린 이런 두 가지 방향은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아주 기본 원칙입니다.


②이런 점에서 '남 대학생회'를 비판한다면, 교회 내 자율 자치 기관은 암세포입니다.

우선, 그 남 대학생회가 담임목회자가 남 대학생회 책임 반사를 직접 통제하고 그 반사가 학생들을 수직으로 통제하여 예배 모임으로만 모인다면 그 이름은 어떻게 붙어도 사실 비판할 수 없습니다. 그 교회가 상황에 따라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남 대학생회가 만일 담임 목회자의 100% 통제 장악에서 벗어나 약간의 자율이 주어지고 휴식 공간이 있다면, 그리고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진행하고 모이고 헤어질 수 있다면, 이는 교회 내에 암조직의 발생으로 보게 됩니다.

그 조직 초기에 잠깐 인터넷으로 살펴볼 기회가 있었지만, 담임 목사님에 의한 지시 지도로 장악되는 모임이라기 보다는 일반 교회의 청년 대학생 모임과 같은 성격이었는데 다만 남녀 문제를 하도 엄하게 가르쳐 온 교회 분위기를 고려하여 '남' 대학생만 모이자고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회원들끼리 아마 활발하게 소식도 주고받고 또 어디로 전도를 함께 갔다든가 하는 식으로 운영이 되든데, 만일 아직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면 큰일 날 일입니다.

세상적으로 청년들끼리는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대학생들끼리는 통하는데가 있습니다. 그 모임이 청년회든 대학생이든 둘 다 마찬가지로 위험합니다. 만일 대학생회라는 이름이 붙었다면 지극히 악성 암병입니다. 대학생 아닌 학생들의 입장이 그렇게 쉽게 무시된다면 교회가 콩무더기로 가는 길입니다. 청년회라 해도, 교회가 늙은이 청년 어린 것이 가족으로 하나되어 항상 움직여야 진정한 교회인데 늙은 것들과는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말이 통하고 심정이 오가는 젊은이들만 모인다면 그 발상 자체가 벌써 교회의 본질을 잃은 것이라 봐야 합니다.


③단정해서 죄송하지만, '남' 대학생회라는 그 명칭이 던지는 추파가 큽니다.

또한 '남' 대학생회라는 이름이 그 첫 출발에서는 우리는 이성 문제에 걱정을 끼치지 않겠다는 대외 선포인데, 그것이 바로 철없는 아이들이 건전한 영화는 오히려 문화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식입니다. 남 대학생회라는 존재는 여 대학생들에게 그 이름에서부터 던지는 의미심장한 메세지가 있습니다. 이런 세계는 아마 답변자보다는 질문자나 또는 세상을 잘 아는 이곳 방문인들이 더 실감을 가질 것으로 생각하고 설명을 약하겠습니다.


④심지어 부산대학교 내에 '연경회'라는 대학생 성경연구회를 두신 적도 있습니다.

/초기화면/총공회/내부자료/공회내부 발언/에서 '서헌제집사님'에 대하여 근래에 한번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부산대학교 교수로 있던 서헌제집사님에게 서부교회 소속 부산대학교 남녀 대학생을 지도하여 성경연구회를 지도하도록 했습니다. 그렇다면 완전히 일반 교계의 캠퍼스 선교단체 중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남녀 대학생 몇 명이 교수실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면, 그 분위기 그 회합 자체가 가지는 묘한 파장은 어느 정도였겠습니까?

이때 기록을 근거로 한다면 서부교회 내에 남대학생회가 얼마든지 백목사님 신앙노선에 의하여 존립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임은 서집사님을 아껴서 목회자로 길러 보려고 서집사님 양육 프로그램에 중심이 있었습니다.


4.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물 만난 고기들의 물 오른 심리를 살폈으면 합니다.

①백목사님의 처리 중에서는 지나가는 '인사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주 가끔 아주 쬐끔, 백목사님도 선교단체나 구호기관 등에 기부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부교회에 장로라는 개념을 두지 않고 있다가 10여년 만에 1명 겨우 세우면서 우리 교회도 장로가 있다고 표시를 내는 것이 그렇습니다. 서부교회 장로는 장료교 장로와는 알파벳만 같지 내용은 전혀 별개 존재입니다. 그래서 서부교회는 장로가 필요가 없는데도 몇 명 세워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백목사님은 지나가는 인사로 그냥 한 마디 하듯이 조처하는 행정이 많습니다. 양성원 초기에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까지 과목에 넣었는데, 영어는 커녕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만, 양성원에 남들 보라고 과목 이름 하나 넣어둔 것입니다. 양성원의 박사들도 그런 진열용입니다. 찬양대도 그렇습니다.


②한탄스런 것은, 물 만난 고기처럼, 백목사님의 인사말만 있으면 팔을 걷어붙이는 사람들입니다.

연애를 하고 싶어 환장을 하던 사람들이, 선은 결심이 될 때까지 몇 번이라도 더 볼 수 있다고 하니까 선을 핑계대고 완전히 연애를 해버린 경우가 있었습니다. 신학에 목이 말라 죽던 사람이 양성원에 신학 과목들이 설치되자 아예 일반 신학교로 가서 교계 신학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찬양대를 못해서 몸을 비틀던 사람이 찬양대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설치가 되자 그만 물만난 고기가 되어 음악의 바다에 혼자 빠져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총공회 목회자들 중에서 성찬 때만 오면 사택에서 얼굴이 벌겋도록 술에 취하는 사람이 몇 있습니다. 성찬 때 사용할 포도즙이라 해 놓고 얼마나 마셔대는지, 옛날에 끊었던 술을 성찬 핑계대고 실컷 마시는 분들입니다. 알고 보니까 포도즙이 아니고 포도주로 마셨다는 이야기를 분명히 듣고 있습니다.


왜 학생회를 금했는지, 왜 찬양대를 폐지했는지, 왜 신학을 그토록 비판했는지, 백목사님의 신앙노선과 그 방향과 그 시대 그 환경에서 어떤 면으로 허락했고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진행을 시켰는지를 바로 알지 못한다면, 공회 소속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서부교회의 모든 행위는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상에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서부교회의 과거 있었던 기록에 의하여 재현되는 것이면 전부 옳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반대로

서부교회에서 과거에 한번도 하지 않았던 것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틀린 것도 아닙니다.
백목사님이 과거 금했던 것을 오늘 한다 해도, 백목사님 신앙노선에 맞는 것도 있습니다.


요는,

개는 짖을 것이고
소는 밭을 갈 것이고
새는 날라 갈 것입니다.

그 본질이 일반 교계에 있는 분이면, 백목사님 설교록만을 가지고 살펴봐도 일반 교계보다 더 타락하고 탈선할 수 있는 방법과 근거를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심과 그 본질은 사실 남들이 속단할 수 없습니다. 그냥 지켜 볼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미 이곳 답변자는 서부교회 마당에 발을 끊은 지가 10년이 넘고 있습니다. 또 공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한번씩 기록하던 대형 사건들도 지금은 거의 기록할 것이 없어 듣지도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답변은, 자세한 내막을 잘 모르고 그냥 큰 방향만을 가지고 대충 발언한 것이라 보시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 시각은 서부교회를 듣고 보지 않아도 거의 그 내면을 읽고 있다는 자신감도 없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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