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총공회 내에도 여전도사가 있나요?

구남단1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7.01.31

출처: /총공회/문답/63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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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총공회 내에도 여전도사가 있나요? (남단1. 169에서 이동 -관)

공회 교인입니다..
제가 잘모르고 있는지 아니면 잘못된 오보인지 몰라서 질문합니다.

공회 교인이면서 여집사인데 현재 타교단 신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신학교 졸업후에는 목회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주에 일을 하는데 여자 남자가 있겠습니까 만은 현재 총공회 내에는 제가 알기로 여전도사뿐 아니라 여자 목사 안수를 계획하고 있지 않은걸로 아는데 교단에서 추진 중이며, 이미 부산서부교에는 여자 전도사를 인허 했다고 하니 제가 모르고 있는지 아님 그분이 잘못알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문의 합니다.

이영인 목사님께서 알고 계신만큼만이라도 답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한가지 더 질문이 있습니다.

백목사님생전에 총공회 교인중 타교단 신학교를 다니고 있어도 학비를 보조하도록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신학원의 석사나 MBA 과정이 아니라 양성원을 졸업하지 않으면서 타교단 신학교를 다니는 경우를 말씀드리는것입니다.

그분은 졸업후 본교회에서 목회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것 같으며 ( 본인의 의도를 구역식구들에게 전달 ), 백영희 목사님과 그분이 속한 교단의 교단장과의 비교, 교단장과 현재 모교회의 당회장과를 비교하여 본교단의 잘못된점 본교단의 공회장의 단점을 구역식구들에게 전하고 있어 그분으로 인하여 교회에 잧은 마찰이 생기고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어느교회인지 알려고 하지는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답변) 외부 신학교와 여교역자 문제

1.먼저 참고하셨으면

①공회노선

공회는
엄격한 법규정 대신 사안별로 매사를 처리합니다.

타교단은 성문법주의라 하고 공회는 불문법주의라고 비교할 수 있으며

타교단은 절차법주의라 하고 공회는 신앙유익을 위해 목회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리나 교훈 분야의 경우
공회는 금하는 것과 해야 할 것을 단호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옳은 것과 틀린 것이 있고 더 나은 것이 있고 더 나쁜 것을 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행정노선의 경우
개인마다 신앙과 형편이 다르고 하나님의 인도가 다르기 때문에

각 개인과 각 개교회는 각자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즉, 교훈은 하나지만 그 교훈을 실행하는 방법과 순서는 개인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②백목사님의 서부교회

그 시절 서부교회는 역사교회를 통하여 가장 대표적인 모범사례이므로
현실 교회운영을 두고 이 노선에서는 반드시 참고해야 하지만

개별 사안을 두고 왜 그 시절 그렇게 했는지를 중점에 두고 참고하는 것이 좋고

무조건 외형만 따라 배끼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서부교회에 없는 것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이 아니고
서부교회가 한 것이라 해서 다 좋고 다 해야 할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그 시절 서부교회를 여러 차원에서 냉정하게 연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③찬양대의 경우로 예를 든다면

1960년대와 1970년대 20년간 서부교회는 찬양대가 없었습니다.
1950년대에는 일반교회처럼 운영했는데 그렇게 운영할 바에는 없애는 것이 나았습니다.

1980년대에는 찬양대가 필요하여 찬양대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다시 만들면서 과거처럼 없어야 좋은 식으로 운영하지 않고 있으면 좋은 식으로 출발시켰습니다.

찬양대 활동이 신앙생활에 손해가 되면 얼마든지 금할 수도 있고
찬양대 활동이 신앙생활에 유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할 수도 있습니다.

2.공회와 여교역자

①한국교회 여교역자

선교 초기였던 구한말이나 일제시대 그리고 심지어 해방후까지도
한국교회 교인들은 숫자나 신앙에서 여반이 주력인데 목회자가 여반 교인들을 챙길 수가 없어

신앙있는 여반들이 '전도부인'이라는 이름으로 각 교회의 심방분야 부목 역할을 했습니다.

전도든 심방이든 당시는 여반의 역할이 중요했고 전국교회에 전도부인의 활동이 컸습니다.

시대가 흘러 전도부인 대신에 교회들은 여전도사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고
이름 뿐 아니라 실제 전도부인은 교회의 여교역자 분야를 돌아보게 했는데

자유주의 교회들이 세상 불신자들의 여권신장 남녀평등이라는 세상 악풍을

교회 내로 유입시켜 교회 내의 여교역자는 여자의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목사 장로까지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평양출옥성도로 유명한 박인순 조수옥 최덕지와 같은 인물들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혼자 살며, 평생 주를 위해 그들만큼 충성한 이들이 없다 할 정도였고

신사참배 환란에 끝까지 생명바쳐 한국교회를 지킨 이들입니다.

②공회 초기

공회가 독자적 모습으로 마음껏 복음운동을 하게 된 것은 1960년대 초입니다.
1959년까지 일반교단에 소속하고 있을 때는 교단 전체의 입장을 고려해서

진리 문제가 아니면 최대한 조심하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1959년 고신에서 나온 뒤 1960년을 넘기면서 공회는 행정을 공회 교훈노선에 급격하게 맞추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 찬양대와 학생회를 폐지했고 주일학교를 반사위주로 바꾸는 등의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고신에 있던 시절은 고신 전체가 전도부인이라는 여교역자 제도를 제도적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거부하거나 비판하면 고신과 진리 문제 외에도 또 여러 갈등을 가져야 했기 때문에 표없이 이런 문제를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말출 김현찬 김효순 나인숙 추순덕 이복순 장정애 박정자 박혜영 백을순 성덕금 등 서부교회 부흥기에 참으로 큰 수고를 했던 분들도 과거 초기 한국교회사적 입장에서 말하면 전형적인 '전도부인'들이었으며, '여전도사' 또는 '여교역자'의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그 중에 더러는 실제 그런 이름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③공회의 입장

첫째, 명칭문제

공회노선은 일반교회와 달리 조직과 명칭을 세분화하거나 발전시키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원리라고도 하는데, 교회를 '단순성' '일반성' 원칙으로 운영합니다.

명칭도 단순하게 또 평범하게 부르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직제도 현장 복음운동에 피할 수 없는 몇 가지만 조심스럽게 가집니다.

이런 공회 노선의 체질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전도사나 전도부인이라는 이름이 1960년대 시점에서 필요한가? 의문이었습니다.

구역장이라는 단순하고 일반적인 명칭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는데

특수한 직함을 붙여 광고를 하는 듯 보이는 것을 자제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공회는 전도라고 하지 선교라는 단어를 입에 여간 올리지 않습니다.

서리집사 안수집사 이렇게 복잡하게 하지 않고 그냥 간단히 집사만 있습니다.

부목 편목 교육전도사 심방목사 기관목사 ... 수없는 이름도 정식으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중간반사들은 다른 교회의 교육목사 또는 교육전도사들이지만 그냥 반사라고 하듯이

전도부인이나 여전도사 노릇을 하는 큰구역장들을 그냥 구역장이라고 합니다.

둘째, 전도부인의 개인문제

여자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남편을 섬기느라고 파김치가 될 때 인간이 되는데
그런 고난 중에서 말씀으로 살고 전하고 주변을 가르쳐 자연스럽게 큰 애미가 되어야 하는데

신학생이 신학을 전공해서 목사직을 전문인 과정 밟듯 올라가듯이

여전도사나 전도부인도 한 가정의 책임자로서 충실한 면은 없고 직장 여성으로 활동하니까

그들 본인의 개인 신앙에 손해가 많고 그런 내적 손해가 그들의 활동에도 한계가 됩니다.

이런 면을 없애기 위해서 서부교회는 초기 1950년대는 여전도사를 용인하고 있다가
1960년대부터는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추순덕집사님은 20세 처녀시절 전도사로 나와서 단독목회도 했고 대구 등지에서 유력하게 활동하던 유명한 여전도사였으나 서부교회로 와서는 단순하게 '집사'로 평생을 살다 갔습니다. 나인숙 등 그런 분들이 많았으나 서부교회 교인으로 들어와서 백목사님 밑에 확실하게 지도를 받는 이들은 서부교회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전도사'나 '전도부인' 이름을 떼고 일반 교인 중에 한 사람으로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목회자 한 사람은 특별한 이름으로 표시가 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외에는 모든 직책 명칭을 최대한 줄이고 없애고 아주 간단하게 일반 교인으로 시작하게 했다가

후에 그가 활동하는 충성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특별한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안 될 환경을 주시면 그런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보고 교회는 그 훗날 자연스럽게 명칭이나 직책을 만드는 것이 이 노선의 교회 운영노선입니다.

양성원 교수도 일반 교회를 목회하면서 시간을 내어 강의를 하게 하고
여전도사도 다른 여교인들처럼 가정을 가지고 살림을 살면서 주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일반 생활을 통과하지 않고 일반 생활과 상관없이 몇 단계를 건너뛰어 전문직의 명칭을 바로 손에 넣고 행사하는 것은 공회 노선에서 아주 체질적으로 싫어하고 배격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다른 곳에서 전도부인이나 여전도사로 활동하던 분들이 서부교회를 오면 일반교인들처럼 낮에는 참기름장사를 하고 식모를 살고 계란을 머리에 이고 팔러 다니며 장차 그들이 지도하고 인도하고 다스릴 일반 교인의 일반 생활을 밑바닥부터 다 밟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생활을 뚫고 초월하여 특별히 주님 주시는 임무가 다르게 나타날 때 그 실적과 결과에 따라 훗날 꼭 필요하게 되자 '권사'라는 이름도 만들어 붙이기도 했고, 추집사님 같은 분은 장례 후 '추전도사님'이라는 이름을 가끔 듣게 되기도 했습니다.

셋째, 오은해전도사님의 경우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원목실의 여전도사님으로 오래동안 일을 하셨던 분으로 고신에서도 유명한 분입니다. 한상동 한명동 이인재 유재헌 손양원 석원태 박윤선목사님 등 한국 보수교계 원로들을 개인적으로 잘 알고 지내는 분인데 복음병원에서 은퇴하고 서부교회 일반 교인으로 돌아왔을 때, 서부교회는 그냥 오은해집사님으로만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직책과 활동은 병원 심방과 같은 경우 아주 특별하게 일을 잘 할 수 있는 분이었고, 서부교회 1980년대 후반기에는 서부교회의 전체 규모나 각 구역별 개별 형편 때문에 병원 심방을 주로 맡을 분이 필요한 상태가 되어 백목사님께서 그 일을 주로 하도록 일을 맡긴 적이 있습니다. 평소 항상 체질적으로 평범한 직책을 부르지만 혹시 이전 특별하게 일할 때 외부에서 일반적으로 불리던 전도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추집사님에게도 가끔 전도사라고 이름을 붙이는 경우와 같고
심지어 공회가 내다버린 '당회장'이라는 이름도 일반 장로교와 다른 차원에서 그 이름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백목사님의 교회 관련 노선과 생활 속의 평범한 사용 사례를 알지 못하면, 어떤 분들은 백목사님도 생전에 '여전도사'를 호칭한 적이 있다 하여 그것을 근거로 일반진영 여교역자제도를 인정했다고 주장하는 오류도 발생할 수 있고, 또 한번씩 여전도사제도의 병폐 때문에 그런 것은 없어져야 한다며 야단치는 것을 들은 사람은 공회는 여전도사제도를 절대 금한다고 성급하게 판단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3.다시 한번 공회 입장을 요약한다면

지금 우리는 백목사님 없는 오늘 우리 노선이 걸어갈 여러 분야 중 '여교역자' 관련 한 분야를 살피고 있습니다. 그동안 장황하게 설명드린 여러면을 가지고 우선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노선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특별한 명칭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도부인이나 여전도사님이나 여교역자나 여목사나 여장로나 권사까지를 포함해서 법으로 금할 것은 없지만 공회 노선은 최대한 이름을 줄여서 간단하게 표현하고 특별한 이름들을 자꾸 붙이는 것은 체질적으로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어느 교회가 자기들만의 특별한 개별 사정이 있어 꼭 그런 이름들을 붙일 일이 있다면 이제 소개드린 내용을 참고해서 조심스럽게 그런 이름들을 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 직책과 명칭의 '최소화' '일반화' '단순화'의 원칙은 꼭 기억하고 살폈으면 합니다.

②여반의 성직은

남자를 가르치는 것을 금했고 가정을 잘 지키는 것이 여교인들의 근본 할 일이기 때문에 여반은 자기 개인 가정생활에 충실하면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복음운동에 충성하여 조용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일을 맡아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가정이나 여러 거칠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성직을 가지는 것은 심각히 고려할 일입니다. 담임목회자의 지도를 받아 자연스럽게 일이 많아져서 나중에 성직자처럼 전임으로 일을 해야 할 때가 되면 그때 교회 전체의 입장을 봐서 '권사' 정도의 이름으로 평생을 마무리해도 충분할 듯 합니다. 성직을 붙인다 해서 그 자체를 죄라 하지는 않겠습니다.

③여반의 목사직

목사직은 일반 교회가 담임목회 뿐 아니라 수없는 간접목회직도 맡기고 있으므로 우리 노선과는 다르지만 우리 노선은 목사란 담임목사를 뜻하기 때문에 여반의 경우 교회의 최종 지도자가 되는 일은 여선지들과 같은 정도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적으로는 배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회 제도적으로 여목사 제도 문제가 나온다면 공회 노선은 이를 거부합니다.

특히 여반이 안수직을 받을 수 있느냐는 문제는, 일반 장로교 교리처럼 딱 부르지게 반대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회는 이 면에 대하여 굳이 안수해야 할 사안이 아닐 것이니 여반의 안수 문제를 일반 교계의 오해를 받아가면서 또는 역사 정통교회의 전통과 맞서가며 고쳐야 할 정도의 사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정통교회의 전통과 건전한 화평과 일치를 위해 안수를 피하고 있습니다.

4.윗글 질문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①공회 여집사, 타교단 신학교 출석, 신학교 졸업후 목회 소망의 경우

백목사님 생전에 추순덕집사님이나 오은해집사님이 원래 타 진영에서 '여전도사'로 계셨기 때문에 그때 이름을 회상하는 연장선에서 한번씩 '전도사님'이라고 호칭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인허'라는 절차를 통해 임명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백목사님 사후 현 서목사님 체제의 2층 서부교회가 그렇게 했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2층 서부교회의 신앙노선은 담임인 서목사님 자신이 타진영 신학교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그 신학교에는 여자교인들이 여전도사 과정을 밟고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므로 서부교회 내에서 여전도사를 인허한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닙니다.

②타 신학교 수강과 학비 지원

죄되지 않는다면 한국교계 일반 상식과 부딪혀 싸우지 않으려고
공회 내에 양성원이 없던 시절 약 15년간, 대한신학교처럼 외부 신학교 중에서 이 노선을 이해하고 이 노선도 일반노선 중에서는 그래도 건전하다 인정하던 신학교에 목회자를 보낸 경우가 있었습니다. 백태영 백영익 백영침 이재순 홍순철 신도범 장렬 김삼암 전성수 서영호 등 그 수는 적지 않습니다.

신학교 과정은 자비 원칙이었습니다. 당시 주로 시무 교회 지출이었습니다.

최재현 서영호 송용조목사님 등은 본인들의 의사로 해외 유학을 갔고
백목사님은 이왕 말릴 수 없다면 후일 양성원 교수로 활용하기 위해 추인한 경우입니다.

홍순철 전성수목사님 등은 백목사님이 직접 보내려 했으나 도미 직전 돌아가셨고

송종관목사님은 세인트루이스교회 목회 때문에 파송되었다가 신학까지 한 경우이고

답변자의 경우는 양성원교수 양성 목적 때문에 파송된 경우이며 비용은 교회에서 지출했습니다.

일반 목회자는 양성원 시작 이후 타 신학교 강의는 노선 이탈로 취급되었습니다.

모든 경우에서 백목사님은 자립 원칙이 있습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대로 노력하고, 그다음 목회하는 교회가 책임을 집니다.

공회나 당시 목회하던 교회와 상관없이 개인의 개별 목적이 있어 외부 길을 갈 때는

본인이 자부담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뒤에라도 공회가 교수로 활용할 대상이 되면 그때 가서 보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③중요한 것은

공회 사람이 공회 노선에서 공회를 위해 타 신학교를 다녀야 할 필요가 있어 일반 신학교를 활용하러 간다면 그럴 수 있지만, 양성원은 시시하고 외부 신학교는 정규 대학교 대학원이므로 간판이나 자기 경력관리를 위해서 나가는 경우 또는 외부에서도 무엇인가 배워야 한다는 자세로 나가는 경우는, 이 노선은 탈선 배신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누구라도 외부 신학교를 나갈 때는 모세나 다니엘이나 요셉이나 사도바울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공회 노선의 진정성을 지킨 사람은 희귀하지만 외부 신학교를 나가는 이들은 모두들 배우는 것보다 그냥 둘러보고 우리 노선의 가치를 알려고 한다며 말을 하는데 이를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심지어 서부교회 서목사님이 소속 공회 양성원장일 것인데 현재 타 신학교로 출강을 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양성원에서는 일반 신학의 장점을 가르치고 이 노선의 약점을 강조하여 백목사님 생전부터 송목사님보다 더 빨리 배제될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아주 펴놓고 그렇게 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가 그 밑에 교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야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5.현재 '공회 노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보십니까?

고려파에서 쫓겨나온 것이 예배당 관련 맞소송을 반대한 것이고 평생 이것을 자랑스럽게 선전한 것이 우리 공회인데, 백목사님 가신 뒤 3년만에 인감증명서까지 첨부해서 모든 교역자들이 전부 불신 판사에게 정통공회를 가려달라고 소송을 했습니다. 대구공회는 먼저 했고 부산공회는 뒤따라 맞소송을 했습니다.

전국 교역자들이 자기 교회를 대표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아담이 대표가 되어 선악과를 먹었는데 오늘 우리가 내 손으로 먹지 않았다 해도 공심판에서 전부 정죄를 받고 지옥가도록 죽었습니다. 그런 공회 안에 있는 분들이 지금 다른 신학교에 가도 되느냐, 아니면 교회에서 타 신학교 지원을 할 수 있느냐, 이런 문제로 논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몸 파는 여자들이 모여 사는 기생집에서 지나가는 남자를 한번 쳐다 봤다고 그 자리에서 정조가 있다 없다 서로들 싸운다면? 답변자로서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이번 질문을 두고 앞부분에 답변한 것은 원칙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하고 싶은 것은, 현재 우리 공회 내에서 공회 노선을 두고 싸우고 다투고 토론할 수 있는 교회가 과연 존재하느냐는 것을 먼저 돌아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질문자 속한 교회와 질문자께서도 그런 토론을 하는 것 자체가 혹시 모순이 아닌지 조용히 되돌아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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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선의 3 대 기관
6385 | 서기 | 2013.06.07
서기 2013.06.07 0 258
6040
소수 정예
6040 | 서기 | 2013.05.22
서기 2013.05.22 0 291
6041
이 노선의 내면과 외면
6041 | 서기 | 2013.05.19
서기 2013.05.19 0 287
6042
설교록 - 성경을 위한, 성경 때문에
6042 | 서기 | 2013.05.03
서기 2013.05.03 0 282
6043
최전선 지휘관은 앞이 아니라 뒤의 적이 두렵다.
6043 | 서기 | 2013.04.30
서기 2013.04.30 0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