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총공회에는 실행부서가 어딘가요?

구남단1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7.04.12
출처: /연구실/문의답변/430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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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총공회에는 실행부서가 어딘가요?


총공회 교단에는 노원 소원이라는 심의 기관과 운영위원회라는 집행 기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노원 소원이라는 기관이 의논이나 심사나 결정이나 집행을 도맡아 다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어느쪽이 옳습니까?



(답변) 과거 운영위원회를 이름만 노소원으로 바꾸고 구성 숫자만 약간 늘렸을 뿐입니다.


1.원래 총공회의 집행 기구는 백목사님 생전 '운영위원회'가 맡고 있었습니다.

총공회는 백목사님의 지도로 초기 발전해 오다가 1981년 3월 제10회 총공회 때부터 4개 운영위원회(행정, 교훈, 목회, 경제)를 두고 각 각개 부서에 2명씩 총 8명이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총공회의 평상시 의사 결정을 대행하고 있었습니다. 운영위원회는 얼마 후 '개척위'를 추가하여 총 5개부서 10명의 위원들이 맡아 그대로 이어집니다.

운영위원회를 두기 이전이나 개설 이후나 총공회의 모든 결정은 백목사님의 결정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원래 총공회 신앙노선은 정치적 타협이나 기술에 의하여 외부로부터 합류하는 경우가 없이 순수하게 내부에서 전도하여 길러나가거나 아니면 백목사님의 신앙지도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교인과 목회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백목사님의 지도는 곧 공회의 결정이었습니다.

이렇게 초창기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부모와 같았기 때문에 총공회 운영은 백목사님의 전적 지도로만 계속 되었으나 세월 속에 목회자들과 중진 교인들을 중심으로 신앙이 자라고 있었고 또 더러는 자신들의 개성을 길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품안의 아이들만 데리고 사는 가정처럼 부모가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었고 또 아이들의 자생력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시기가 오고 있었습니다. 공회의 초창기라 할 수 있는 1960년대를 지나 1970년대가 지나가면서 나타났던 현상입니다.

그래서 총공회 '운영위원회'를 설치하여 백목사님의 총공회 신앙지도를 직접 배울 수 있도록 했으니 '운영위원회'가 설치된 시기는 백목사님의 지도를 받으면서도 이제는 다음 시대 지도자들이 총공회 신앙지도자가 되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백목사님 지도로만 운영될 수 없는 훗날을 두고 백목사님 없는 총공회를 미리 훈련하고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2.운영위원회가 노소원위원회로 확대 개편되는 과정

1984년 초 교역자회의에서 백태영목사님이 처음으로 백목사님에 대하여 공개 반론을 제기하면서 총공회는 백목사님 단독의 지도로 운영될 수 없는 시기를 실감있게 맞게 됩니다. 당시 교권 등 강제 수단으로 제압한다면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는 미미한 정도의 반대였지만 총공회 신앙노선의 근본 취지가 완전한 신앙자유를 지향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선다면 단 1명의 반대라도 전체 중의 1로 보지 않고 전체의 의견을 둘로 나누었을 때 그 한쪽이라고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1명의 반대라도 공회 내에 존재하는 의견의 절반이라고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당시 교역자회에서 공개적으로 반론이 나타나게 된 것은 총공회 근본 성격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 됩니다.

1984년에 공개적인 첫 반론이 있고 나서 1987년에 이르면 정풍섭 당시 목사님으로부터 시작되고 송용조목사님의 탈퇴로 정점에 달하게 되는 집단 반발 행동이 있게 됩니다. 1984년의 반론은 일반교역자들에게 그냥 단순한 실수나 우연이라고 비쳐질 수 있었지만 1987년과 1988년에 일어났던 사건은 누가 봐도 공회 내부의 주류 비주류의 투쟁이라고 표현해도 틀렸다 할 수 없는 정도였습니다. 물론 반발하는 이들은 총공회 운영이 완전 자유 발언과 행동의 기회를 보장했지만 백목사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들은 집단 탈퇴로밖에 갈 수 없어 당시 사건은 일단락 됩니다. 백목사님 생존의 총공회는 그가 싫어서 탈퇴는 할 수 있다 해도 백목사님에게 맞설 능력을 가진 이들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1987-1988년의 탈퇴 사건이 일단락 된 후 백목사님은 1년 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임종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건을 통해 자신의 사후 총공회 운영의 영구적 기관을 자리잡아 놓고 떠날 준비에 들어가게 됩니다. 백목사님 생전에는 아무리 많은 수가 반대를 해도 총공회는 백목사님의 신앙지도대로 유지되지만 백목사님 없는 사후가 되면 모든 문제를 두고 항상 2가지 의견으로 신앙노선이 나뉠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백목사님 사후에 매사건을 두고 서로 의견이 나뉘어질 때 총공회는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관으로는 기존의 '운영위원회'를 이제 백목사님에게 배우는 역할을 겸한 기관이 아니라 완전히 총공회 운영을 떠맡을 기관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 구체적 모습으로, 당시까지 운영되던 '운영위원회'를 '노소원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확대 개편하게 됩니다. 그동안 운영되어 왔던 '운영위원회'는 백목사님 생전 총공회 운영을 그분 단독으로 지도 운영할 때 그 후배들이 앞날 총공회 운영을 생각하고 배우는 형식이었다면 이제 '노소원위원회'는 백목사님 없는 총공회의 정식 운영체라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3.백목사님 없는 총공회의 정상적인 운영 형태

앞에서 설명한 것은 백목사님 지도를 반대하던 이들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야단치고 넘어가던 초기에서 이제는 누구 의견이 더 옳은지를 놓고 따져야 할 시기로 넘어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운영위원회는 백목사님에게 교회 운영을 배우겠다고 설치되었으므로 공회 전체 중에서 가장 신앙에 앞서 있는 분들이 위원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운영위원회는 백목사님의 의견에 이견이 없다고 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흘러 공회 내에 백목사님의 지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백목사님의 지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전처럼 어리다고 그냥 나무라고 말 일이 아니고 그들의 주장을 충분히 듣고 이제는 어떤 것이 더 옳은지를 일대 일로 따져가며 해결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까지 내려오던 '운영위원회'는 공회 전체를 통해 백목사님에게 가장 순종을 잘하고 잘 배울 사람을 중심으로 선정하였지만 이제는 백목사님의 신앙노선에 가장 확신을 가지고 반대할 사람들도 충분히 포함시켜 공회 내에서 제기될 모든 종류의 다양한 소리들이 공회 운영주체로 선임되고 활동을 할 수 있어야만 총공회 운영은 소속 모든 교회와 교인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운영이 되는 진정 개교회자유주의원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총공회 전체의 다양한 목소리가 공회 운영의 주체로 선임되려면 보수적인 색채를 지닌 노년층 뿐 아니라 소년층도 포함을 해야하는데 공회의 신앙노선의 보수성으로 인하여 투표로 운영위원을 선출하면 거의 노년층만 뽑힐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과거처럼 묻혀 있는 다른 소리들이 표면화 되지 않을 것이므로 운영위원회의 구성 자체를 젊은이들이 대폭 포함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게 됩니다.

즉 1988년 기준으로 55세 이상에서 운영위원의 3분의 1을 선출하여 노원(노년 출신 위원)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55세 미만에서 3분의 2를 선출하여 소원(소년 출신의 위원)이라고 했습니다. 총공회의 정상적인 운영위원회는 앞으로 그 구성을 공회 내의 맞설 수 있는 양측을 고려하여 양측이 함께 운영위를 구성하고 운영위 내에서 어느 것이 더 옳은지를 충분히 검토한 다음 매사를 결정하게 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방향으로 운영위원회가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 이름을 '노원소원위원회' 즉 '노소원위원회'로 부르게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1988년 이전까지 존재하던 총공회의 운영위원회는 1988년 이후부터 노소원위원회라는 이름으로 개칭되며 그 범위가 확대되고 그 운영의 근본 성격이 백목사님 밑에서 배우는 형태의 과거 운영위원회가 이제는 백목사님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옳은 것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백목사님이라는 지도자가 없는 상태로 지속될 총공회를 전제로 하여 어느 의견이 맞느냐는 것으로 늘 따져보고 연구해서 결정해야 할 시대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개칭 확대되어 존속될 총공회의 운영위원회인 노소원회는 그 운영의 주력 방향이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나서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핵심 단어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백목사님은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 총공회 운영을 맡게 될 노소원위원회는 항상 '심의'기관임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하게 됩니다.

대개 '심의기관'이라고 하면 권한은 없고 의논만 하는 '審議'로 사용되는데 백목사님이 특별히 당부한 '심의'기관의 심은 '찾아나설 심(尋)' '뜻 의(意)'를 사용하고 있으니 앞으로 총공회 운영을 책임질 노소원위원회는 인간으로는 서로가 생각이 다르겠지만 서로 제 생각들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하는 일반 교계의 탈선을 따르지 말고 누구의 생각이 더 하나님의 뜻에 옳은지를 찾아나서는 자세와 그런 운영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4.단어를 이해하지 못한 안타까운 일들

수도없이 설명을 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고학년 이해력만 가졌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인데, 백목사님의 이런 설명을 듣고도 '노소원위원회'는 '심의기관'이라고 하니까 그렇다면 그곳은 의논만 하게 될 것이니 그 의논을 참고로 하여 총공회를 실제 운영할 운영위원회는 존속되느냐는 질문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백목사님은 재론 삼론 사론으로 나가며, 기존 운영위원회는 폐지하고 노소원으로 대체하는데 노소원을 '심의기관'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이 상식적으로 아는 심의(審議)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만을 찾아 그 뜻대로 총공회를 운영하자는 뜻을 강조하고 새기라고 '심의(尋意)'라 했다고 충분하게 알아듣도록 설명했으나 또 돌아서고 나면 앞으로 총공회는 노소원위원회가 심의만 할 것이니 총공회 집행을 책임진 집행기관이 따로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반론이 또 나오고 있었습니다.

1989년 3월 백목사님 생존 마지막 총공회에서 또 이 문제를 거론하고 나온 목회자들이 있었고 백목사님의 설명은 또 다시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백목사님이 1989년 8월 27일 순교로 떠나게 되니까 수도없이 반복되던 알아듣지 못한 분들은 또 다른 필요성에 의하여 노소원위원회를 의논만 해 보는 곳으로 만들게 됩니다.


5.백목사님 사후 공회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노소원위원회 문제 재론

백목사님 생전 노소원위원회는 의논만 하는 곳이니 총공회를 운영하고 필요한 사안을 집행할 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한 사람은 거의 전부가 총공회 수정노선에 속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백목사님 생전 총공회 노선을 수정하자는 분들과 견지하자는 분들의 분포를 본다면, 견지측은 백목사님과 중진층 그리고 아주 젊은층이었고 반대로 수정노선은 백목사님 바로 밑의 원로들이 대부분 지지했고 그다음에는 중진층과 젊은층 사이의 대다수 장년층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체 숫자로는 수정노선이 3분의 2, 견지노선이 3분의 1정도였습니다.

이 상태에서 백목사님이 갑자기 순교하게 되니까 수정노선이 총공회의 최고 지도부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그리고 실제 총공회의 활동적인 중요 인물들이 다 포함되며 전체적으로 숫자가 우세했기 때문에 총공회는 일반 교단을 기준으로 한다면 완전히 수정노선의 손에 교권이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 생전 이런 일을 미리 예상하고 어느쪽이 공회의 주류가 되고 다수가 되며 어떤 형식으로 공회가 진행되어도 공회 내에 단 1명이라도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목소리는 노소원위원회의 근본 구성원칙에 의하여 노소원 내로 진입할 것이고, 그리고 노소원위원회는 다수결이 아니고 어느 의견이 하나님의 뜻에 옳으냐는 것을 찾을 것이므로 다수에 상관없이 결국 옳은 것만 도출되고 그것이 총공회의 실제 집행이 될 것이었습니다.

백목사님 사후 매사를 노소원위원회가 총괄하게 되자 명목상 지도부를 구성하고 실질적으로는 다수를 점하여 교권 확보를 자신하게 된 수정노선에서는 백목사님 생전 확정된 노소원위원회의 무력화가 없이는 총공회 노선 수정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파악하게 됩니다. 그래서 백목사님 사후 수정노선에 의하여 가장 시급하게 추진된 것은 총공회 운영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을 재론하여 노소원위원회는 심의기관이므로 실컷 모여서 의논만 하게 놔두고 총공회 운영의 실무를 맡을 운영위원회가 1988년에 없어졌으니 이 집행기구를 빨리 재구성하여 총공회가 필요한 모든 일은 새로 구성될 운영위원회에서 전담하자고 제의하게 됩니다. 노소원을 대화만 하는 곳으로 만들고 총공회 전권을 맡게 될 운영위를 소수의 인원으로 다시 선출하게 되면 수정노선에 있는 몇 사람만으로 구성이 될 것이고 그리 되면 그 몇 사람이 백목사님 사후의 총공회를 합법적으로 전면적으로 수정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습니다.


6.백목사님 장례가 끝난 바로 다음 주부터 시작 된 노소원의 운영주체 여부 논쟁

장례식이 끝난 바로 다음 주 월요일에 모여진 교역자회의에서부터 다음 교역자회의 그다음 이어진 임시총공회 등을 이어가며 총공회의 노소원은 의논만 하는 곳이니 집행부를 구성하자는 수정노선과 노소원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총공회가 어떻게 매사를 처리할지 확정지어야 한다는 과거노선 견지측의 치열한 논쟁이 벌어집니다.

외부적으로는 재독예배가 죄가 되느냐는 문제로 소동이 벌어지고 양측이 나뉜 것으로 일반인들은 알고 있지만 그것은 수정노선에 있는 분들이 보수노선과의 싸움에서 교인들과 일반 교역자들을 자신들에게 돌아서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선동거리였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써먹은 것입니다. 사실은 그들도 백목사님 생전과 사후에 재독으로 예배를 드렸었는데 수정노선의 대규모 인간적 선전선동술을 보수노선이 같은 차원에서 일일이 대응할 필요와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자 인간적으로는 수정노선이 큰 수입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내막을 알고보면 아주 배를 잡고 웃을 코메디밖에 되지 않습니다.

정작 핵심적인 것은 총공회 운영의 주체를 자신들이 확보하는 것인데 이 문제는 보수노선에서 끝까지 의견을 달리했기 때문에 총공회 전체의견으로는 확정짓지 못한 채로 양측은 1990년 3월에 부산공회와 대구공회로 분리됩니다. 보수노선의 부산공회는 총공회 운영을 노소원위원회를 통해 전원일치로 확정한 하나님의 뜻만을 기준으로 한다고 선언하게 되고, 대구공회는 다수결로 뽑은 운영위원회를 따로 구성하여 총공회 실제 처리권을 갖고 노소원회는 말만하고 마는 회로 만들게 됩니다.


7.대구공회는 오늘까지 운영위원회를 두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것은 큰 오해입니다.

백목사님 생전의 노소원위원회 기본 방향은 기존의 운영위원회를 노소원위원회가 대신하기 때문에 기존 운영위원회를 해체하고 노소원위원회로 개칭하며 범위를 넓혀 과거 일을 그대로 하게 한 것입니다. 만일 지금 운영위원회를 따로 구성하려면 과거 그 결정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판을 하고 그 잘못된 결정을 받아들였던 죄도 회개를 하고 그리고 나서 원하는 대로 하면 됩니다.

만일 백목사님 생전의 원래 총공회 결정이 노소원은 의논만 하고 총공회의 운영주체는 운영위원회가 따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거짓말하는 죄가 됩니다. 알면서 그렇게 주장하면 수없는 죄가 뒤따를 것이고 만일 몰라서 그렇게 주장한다면 반대측 주장을 신중하게 들어가며 다시 한번 이 문제를 놓고 연구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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