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공회 개척 때마다

구남단1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07.05.24
최근
이 노선의 개척이 필요한 사안들이 있어
과거 90년대 공회 개척 때마다 개척에 나서는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전했던
몇 가지 개척 관련 글들이 있었습니다.

덧붙여
/총공회/내부문답/에 개척과 그 초기에 대한 경제면을 설명한 글이 있어
이곳에 함께 글을 올립니다.


어떤 글은
목회자들에게 가슴에 비수를 꼿는 아픔이 될 수도 있고
교인들에게는 개척을 향한 발걸음을 되돌릴 수 있을 내용도 있을 것이나

우리가
목회자나 교인이나 모든 면으로 준비가 다 끝나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개척해가면서 고치고 바꾸고 준비해야 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천번 만번을 되새겨서라도 지금 잘못된 면이 있다면 개척 이후 늘 과제라고 생각하여
이 면으로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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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개척하며 돌아보는 ‘오늘의 개척교회’



1.개탄할 ‘개척의 동기’

1)교역자의 경우:

①신학을 선택할 때부터 예견된 개탄

가.학업 낙오:

현재 입학 성적으로 순서를 따진다면 신학과는 대학의 학과 중에서 가장 최하위 쪽에 있을 것입니다. 좋은 학과를 갈 수 있는 상태에서 목회를 위해 신학과를 선택하는 경우는 참으로 극소수입니다. 더러 우수한 인재들이 중도에 신학으로 진입해 오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이런 경우도 자기 나갈 앞날의 전망보다 오히려 교계 쪽이 낫다고 본 것은 아닌지?

세상의 좋은 학벌은 교회 안에서 더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세상 공부를 잘한 사람들이 일류 대학을 졸업한 후 신학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이런 계산까지 한 뒤에 내린 결정이 아닌가 보여 지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어쨌든, 목회의 동기부터가 학업의 낙오 때문인 경우는 분명히 많고 그래서 신학교는 의례 공부 못하는 사람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지극히 평범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개탄할 일입니다.


나.사회 실패: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자신이 없어 목회를 택하고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세상 생활이 불편 없이 진행될 수 있는데도 소명 때문에 이 길을 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학교 성적의 경우는 숫자로 확인이 가능한데 소명감이라는 것은 남이 확인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명감이란 시작할 때는 알기 어려워도 훗날 열매를 보면 원래 뿌렸던 종자, 그 동기를 쉽게 알 수 있게 됩니다.

목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경제면에서는 분명히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이지 세상을 투자하여 천국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목회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경제 등 목회자의 세상이라 할 수 있는 사택의 경제 등 생활면에서 목회의 동기를 아주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버린 것이 아니고 세상을 가질 기회가 없어 목회를 하였고, 목회를 성공한 뒤 보여주는 세상 생활에서 그들은 세상을 가지고 싶었던 분들이라고 확연하게 표시가 나고 있습니다. 원하고 원하는 길, 주님처럼 걸어가는 그 길을 좋아서 시작한 경우가 아니었구나 보여지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경제를 넘쳐 쓰기 시작하면서 바로 제시하는 논리가 ‘목회자도 먹어야 산다.’는 것입니다. 목회를 위해서 먹는 것인지, 먹기 위해서 목회를 해 온 것인지 이 면을 가지고 다시 묻고 싶은 것입니다. 앞의 경우라면 당당하게 직업으로 목회를 한다고 시작했어야 했습니다. 천국을 위해 세상을 투자하자고 해놓고 뒤에 보니까 천국을 팔아서 세상을 가지니까 개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②개척을 하게 되는 시점에서 걱정되는 개척의 동기

가.기성교회의 무한 임기:

교회의 직책은 인간적으로 보면 연줄로 되는 것이고 믿음으로 보면 주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주 뜻을 따라 무한정이라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은퇴가 아니면 그 후임의 예상은 전혀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기성교회의 자리가 임기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자기 살 길을 찾게 됩니다.


나.개인 사업의 모험심:

성공하면 사법시험 부럽지 않고, 절반의 성공이면 중소기업 사장이 부럽지 않은 것이 개척입니다. 하다 못해 10년만 버티다 보면 작은 점포보다 나을 수 있다는 것이 7, 80년대 심지어 90년대 초까지의 통계였습니다.


다.최저 유지비가 용이: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20명 정도의 최초 교인은 가능하며 이 정도 숫자라면 우연을 기다려 볼 수 있는 정도의 기본 유지비가 가능하게 됩니다. 물론 시작부터 쓸 것을 다 쓰려는 사람에게는 부족하겠지만, 시작부터 그런 분은 적다고 봅니다.


라.최악의 경우 보조와 경력에 유리:

구걸을 하면서도 가장 떳떳하게 내 세울 수 있는 것이 개척입니다. 하늘과 복음을 위해 당당히 내놓으라고 할 수 있으니, 구걸 중에 가있고 개척 경력 뒤 숨을 자리입니다.


마.최후의 보장:

개척을 포기할 때는 인수자를 찾기 쉽고 따라서 투자금을 회수하기가 쉬우며 때로는 전매 차익까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2)교인의 경우:

가.변덕:

개척 교회로 움직이는 교인 대부분의 체질적인 단점은 변덕성입니다. 세상 어떤 일에도 선천적으로 계속성이 없어 변동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의 특성은 쉽게 권태감을 느끼는 경우인데 그 권태감을 느끼는 강도가 강하고 또 그것을 참는 힘이 부족한 만큼 새로운 교회를 찾는 열정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새로 마련된 교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열심을 내는데 이런 경우 경험 없는 목회자들은 특별한 일군이라고 전적 믿고 모든 일을 의논하고 맡기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중책을 맡게 되며 이런 경우 소속감을 가지게 되며 더욱 열심을 내게 됩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가 적어서 교회성장 결과가 미미하게 되면 일찍 변덕스런 본모습이 나타나게 되고 다행히 교회성장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게 되면 이런 열심은 더 오래 지속됩니다. 그러나 결국 언제인가 자신의 감정을 신선하게 자극해 줄 사안이 계속될 수는 없게 되고 교회가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면 이번에는 목회자 배척을 통해 또 다른 변덕을 보이게 됩니다. 한 교회에 한 사람만 있어도 큰 암초가 되는 경우이니 교회가 바로 되려면 이런 점을 극도로 조심하여 초기부터 감정에 치우친 교회운영이 되지 않도록 더욱 힘써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인간의 심리는 어떤 지도력이나 포용력으로도 미봉책이 될 뿐이며 오직 심리계를 주권하시는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붙들고 힘써 함께 일하면서 그만큼 앞날을 두고 하나님 앞에 심성 자체를 변화시켜 달라는 기도를 동행해야만 하는 중요한 기도제목 중에 하나입니다.


나.소외:

좋은 교인이며 진실한 성격이지만 현재 교회에서 소속감, 성취감을 갖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 원치 않았지만 교회를 옮겨 갈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적응 실패의 경우이니 경쟁에서 밀려난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그 원인이 교역자에게도 있습니다. 물론 한 자리밖에 없는 경우 두 사람을 다 쓸 수가 없어 한 사람을 선택하게 되고 그런 경우 나머지 한 사람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더 실력이 있어 그리되는 경우입니다. 그렇다 해도 늘 이런 현상은 교회 내에서 있을 수밖에 없으니 이런 경우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이를 심방 차원에서 또 어린 신앙을 아듬고 간다는 차원에서 붙들어 주는 목회자의 사랑이 진정 필요한 경우입니다. 대개 이런 이들은 교회에서 든든히 믿고 있기 때문에 교회를 옮길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에 막상 교회를 옮긴다고 할 때 의외로 받아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미 원인은 이전부터 있어 왔던 것입니다.

이런 교인은 옮겨간 새 교회에서 분명 큰 일군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계산한다면 세상 단체들의 조직원리에서도 다 알고 있는 일이며 리더쉽을 논하는 모든 책에서 그 원인분석과 해법을 이곳과 비슷하게 제시할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다시 살펴볼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현실, 그 현실을 하나님이 옮기도록 인도하실 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성도의 변동입니다. 소외감이 원인이 되어 현실을 자기가 스스로 움직였다는 사실은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고 또 인간심리적으로 조직내의 현상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그 인도를 순종해야 할 신앙본질로 본다면 새로운 교회로 소속을 옮긴 자체가 잘못된 선택입니다. 따라서 그 선택과 관련된 모든 결과는 전부가 그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건설구원에서는 전적 실패입니다. 사과를 먹고 싶으나 감나무를 심었으니 감은 따 먹을망정 사과를 먹지는 못하게 됩니다. 동기에 있어서는 앞에서 말한 변덕스런 사람의 자기감정에 따라 사는 경우와는 크게 다르지만 결과에 있어서는 소외감으로 현실을 바꾼 사람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예수 믿은 것을 전부 수포로 돌려놓은 상태에서 새 출발하여 이루는 것은 또 다시 건설될 수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망마저도 언젠가 하나님께서 동일하거나 이전보다 더 큰 소외감을 느끼게 하여 다시 시험을 해 볼 것이고 그때 통과를 하고 이겨야만 새 출발한 이후의 건설만이라도 신앙성공으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알 것은, 첫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변동한 사람이 다음 시험에서 이기는 경우는 희귀하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당시가 어린 신앙이었고 철없는 때여서 그리 한 경우는 오히려 평생에 큰 경험이 될 수가 있지만 그 정도 시험은 충분히 알 수 있고 또 이길 수 있는 신앙에 장성한 사람이 실패한 경우는 새로 옮겨간 교회에서 얼마만큼 성공을 하고 준비를 했던 지에 상관없이 다음 시험에 또 실패자가 됩니다.

결론은, 소외감이라는 자기 자책감으로 교회를 옮기고 현실을 바꾸어 새로 신앙생활을 해보리라는 것은 잘 믿는 사람들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지만 현실을 하나님 인도가 아닌 주관 때문에 바꾼 것이기 때문에 다음 현실에서도 언젠가 꼭 같은 소외감이 닥쳐지게 하여 기어코 그 사람이 소외감을 이기지 않고는 신앙으로 전진할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또 다른 어려움 이전보다 더 큰 어려움을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현직에서 충성하는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다.명예:

현재 다니는 교회에서도 모든 면을 잘 하는 사람이 이전보다 좀 더 나은 형편에서 자기 활동 무대를 찾는 경우이며 이런 교인은 그 성격이 매사에 적극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교인은 변덕도 아니고 또 소외감으로 인한 탈출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교인을 가질 수 있는 교회는 참으로 부러운 경우일 것입니다. 몇 개 교회를 개척했다는 목표를 위해서 그리 하는 경우, 어려운 교회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순수한 동기 등으로 교회를 바꾸는 경우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보아도 참으로 장한 교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면이 좋고 칭찬 받을 사람이라 할지라도 복음운동,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최종 판단 최종 결정은 늘 주님이 하셔야 하는데 이 마지막 결정을 자기가 하게 되면 자기는 하나님만이 앉으셔야 할 왕 자리에 앉게 되는 잘못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명예 문제에 관하여는 어떤 사람이라도 자기의 깨끗을 증명할 수 없고 또 자기의 부정을 다른 사람이 드러내기도 어렵습니다. 백목사님을 두고 왕이 되고 싶어 교단을 만들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백목사님과 우리는 아니라고 증명할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 혹 그런 깊은 속이 있었는지 스스로 다시 한번 돌아볼 뿐입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왕 되고 싶어 저런다고 비난할 때도 여간 외부로 드러나는 면이 있기 전에는 그런 말을 해서도 안되고 또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잘하는 사람을 두고 반대측에서 가장 쉽게 뱉는 말이 바로 왕되려 합니다. 명예 때문에 그런다는 비판입니다. 상대방이 반증하지 못하는 점을 알고 가장 쉽게 상대방을 욕하는 경우인데 그만큼 하나님 앞에 말에 대한 책임이 지극히 크게 돌아오는 경우이므로 극히 조심할 대목입니다.





2.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개척의 경우

①하나님이 부르실 때

가.끝없는 복음전파의 소명:

사도 바울은 죽는 날까지 한 교회에 안정적으로 내려앉아 평안하게 생활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3년이나 목회했던 빌립보교회는 3년을 목회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점이 있어 그러했을 뿐입니다. 외치고, 교회를 세우며, 다른 사람에게 맡길 만하면 그 다음 주의 인도를 찾아 끝까지 복음의 씨를 뿌리는 근실한 농부가 되었습니다. 오늘 한 교회를 맡아 평생 생활하면서도 내면에서는 끝없이 선교하는 개척자의 사명감을 가지고 충성하여 날마다 새로워지는 백목사님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거의 모든 교회 개척에는 위에서 말한 부정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을 주로 보았으나 그렇다고 하여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섞여 있을 진정한 진주와 보배같은 개척, 바울과 같은 경우가 있을 수가 있으니 이런 경우를 찾아보고 또 알아보는 눈을 가지지 못한다면, 잘못된 교회개척을 잘못되었다고 말한 모든 행적까지도 전부 비판을 위해 비판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만 앉을 수 있는 심판자의 자리에 앉는 죄를 짓게 된다는 점을 기억합시다. 복음에 팔려 때를 얻던지 못얻던지 항상 힘쓰는 자가 되어 개척에 평생을 바치는 진정한 종도 있으며 이런 개척에 동참되는 교인들이라면 참으로 복된 사람들이겠습니다.


나.하나님의 섭리인도:

개척에 대한 특별한 사명감을 가진 경우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현실 섭리가 새로운 교회를 개척토록 요구하시는 것을 뚜렷히 보고 이를 피할 수 없어 맡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는 가서는 안될 곳이 애굽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한번 갔던 것이 평생에 실수였던 일인데 야곱의 경우는 가지 않으려 하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안심하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을 통해 되어진 모든 일과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볼 때 이는 알지 못하는 특별 인도가 있어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경우였습니다. 현실도피가 아니었으며 변덕스런 성격 때문도 아니었고 배가 고파 애굽으로 갔던 아브라함과도 다른 경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앞날에 하실 일은 말씀치 않고 그냥 내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보인 경우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개척시키는 경우, 비록 모든 주변의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볼찌라도 하나님 한 분만 보고 나갈 일입니다. 혹 남들이 그리 볼 것 같아서 주저하는 것은 부정적인 동기로 개척하는 사람들과 꼭 같이 잘못된 경우가 됩니다.


다.어린 신앙의 자라가는 감상이 동기가 되는 경우:

개척이라는 단어를 쉽게 보는 어린 신앙의 경우, 순수한 개척 심정이 동기가 되어 개척할 수 있습니다. 배고픈 시절을 겪은 이에게는 밥 한 끼를 못 먹는다는 사실은 처참이지만 배부른 사회에서는 한끼를 굶는 것이 멋이며 경험이 됩니다. 일부러 그리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개척의 지극히 어려운 현실을 겪어 나온 사람들에게는 다시 하라고 할까 마음이 짓눌리겠지만 그런 어려운 초기시절을 이야기로 전해만 들은 이들에게는 해 보고 싶은 하나의 미지세계 탐험과 같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어리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길러 가시는 한 방편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부정적인 면으로 분류키 어려운 것이 바로 이런 점입니다. 이런 현상은 주로 현대 선교에서 나타납니다. 한번 떠나면 평생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곳으로 가던 이전 선교와 달리 현재 선교는 위험과 고립의 요소는 다 제거되고 그대신 역사 속에서 흠모했던 선교사역에 자신을 담그는 일이기 때문에 신앙성장에서 나타나는 ‘감상적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목회도 긍정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감상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이런 경우는 실제 개척으로 인하여 닥치는 어려움이 절정에 이르는 때가 진정 개척 출발의 시점이 될 것이고 이런 때가 오기 전까지는 예쁜 마음으로 보고 응원할 일이 될 수 있습니다.



②한 번 더 살펴볼 점

가.확정:

모든 신앙생활에서 그리고 모든 신앙결정에 있어서 가장 혼동하기 쉽고 그 결과가 안타깝게 되는 경우 중 하나는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착각하는 경우입니다. 이지적이지 못한 경우 특히 그러하지만 아무리 냉철한 성격이라도 막상 중요한 일을 당할 때는 스스로 그 자리까지 오게 된 내부 심정이 평소와 같지 않게 되어 주관에 흔들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주관인지 하나님의 음성인지 이것을 확정짓기 전에는 기다리는 것이 옳습니다. 환경이 개척하는 방향으로 잡히면 아직까지 명백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출발하기 쉽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는 세상일이 아니며 또한 신앙생활 중에서도 가장 두려워해야 하고 조심해야 될 성전 안에 관련된 일입니다. 구약으로 말한다면 다윗이 그렇게 소원을 했으나 피를 흘렸던 경력 때문에 하나님께서 준비까지만 하게하고 건축허락은 하지 않았던 대목이다. 성전건축에 대한 소원만큼은 다윗만큼 강했던 이가 없었으나 허락지 않자 그는 준비에서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끝냈습니다. 후임을 정하지 않으면 오늘에 총공회와 서부교회가 될 것을 훤하게 보고 있던 백목사님은 일반 교인들도 다 걱정하고 알던 후임문제를 결국 정하지 않고 그냥 갔습니다. 하나님이 확정 시켜 주지 않는 일을 인간이 인간 계산에 의하여 결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교회개척에 비견할 백목사님의 후사선임을 두고는 더욱 조심했고 하나님의 결정이 없다면 자신의 결정도 없었다는 것으로 마지막을 끝냈던 일입니다. 다윗이 성전건축에 대한 소원만큼이나 백목사님은 후임선정에 필요성과 소원을 가졌던 분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판단될 단계가 온다면, 이 개척을 하다가 죽는 일이 있어도 중단할 수 없고 개척을 했다가 교인이 없다면 부부 두 사람만이라도 죽는 날까지 그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확정적인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주변 정세와 자신의 이해타산으로 대부분 개척을 시작하기 때문에 개척한 후에도 형편과 사정을 고려하여 결국 중도에 그만 두던지 아니면 이해타산을 따져 변동을 해버리는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개척 출발의 확정에 있어 조급함으로 또는 신앙없음으로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생략한다면 그래서 개척인도의 확정을 받지 않고 출발한다면 이후 어려움이 닥치거나 이해타산 문제가 생겼을 때는 두 말할 것 없이 해서 안될 일을 할 사람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나.불가항력:

주님의 음성을 확정적으로 듣고 나가는 문제는 선지 사도들에게 임하신 그런 주님으로 나타나 주시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물론 오늘도 필요하다면 꿈에서 이상에서 또 신비한 여러 체험으로 주님은 나타나십니다. 그러나 경험상 가장 확고한 주님의 음성은 바로 현실 인도에서 나타납니다. 자기로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만들어놓고 주님이 자기를 몰아가는 일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분명 죽는 길인데도 하나님의 인도가 그 죽는 곳으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 있고 싶어도 외삼촌과 외사촌들의 눈치가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약속 즉 벧엘에 단 쌓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그들을 달랜다고 달래질 일이 아니었고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하여금 20년 세상 생활을 청산시켜 가는 분명한 음성이었습니다. 이미 20년 전 약속이 하나님의 음성이며 이제 20년이 지난 지금 외갓집의 칼이 야곱으로 하여금 몰아내고 있음을 보고 특별계시와 일반계시 두 가지를 종합하여 단정하고 출발했던 것입니다.

목회 출발과 같이 개척에 대하여도 꼭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불가항력으로 주님께서 몰고 가는 것은 목회출발과 개척에 있어서는 꼭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면이니 이런 현실을 보면서 그 현실에 피동이 아니라 그 현실을 통해 보여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현실을 통해서 원하는 주의 뜻을 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음성은 자기 주변의 현실을 가지고 맞추어보면 불가항력으로 몰아가는 역사를 보게 될 것이며 이 점을 잘 살피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의 불가항력으로 몰고 가는 일이 있게 되면 앞에서 말한 부정적인 개척동기와 혼동이 심하게 일어날 수 있고 또 주변의 시선도 그리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혼란스런 것들 중에서 하나님 중심 하나님 말씀 순종은 우리가 뽑아 내야하고 또 따라가야 할 길입니다.


다.필요성

이곳에 꼭 이 강단이 있어야겠는가? 하나님이 필요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세웁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꼭 서야 할 곳이며 그런 형편이 있을 때는 역으로 계산하여 하나님의 뜻이 꼭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꼭 나라야 하는 형편이 될 때는 참으로 황송하지만 그리고 너무도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현실이 그렇게 될 때 이런 계산을 가져야 합니다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필요성을 하나 더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이 강단이 이 지역에 이런 형편에서 꼭 필요한가? 시골 산골짝 폐쇄된 오지 마을에 20명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5명을 데리고 그 교회 마당에서 또 한 개 더 교회를 만들고 개척해야겠는가? 이 강단이 아니고는 안되겠는가를 한번 더 깊이 생각할 부분입니다. 서부교회까지 예배 보러 오가기에 힘든 부산 한쪽 끝에 서부교회에서 개척을 시켰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서부교회가 위치한 대신동으로 다시 교회를 이전시켰습니다. 고기잡이를 가르쳐 바다로 낚시를 보냈는데 집안 수족관으로 낚시대를 메고 들어온 경우라고 해당되는 분에게 당시 표현을 해드렸습니다. 과연 이곳에 이 강단이 아니고는 안되겠는가?

또 한 가지는 100m 이내에 교회 없는 곳이 없는 때가 오늘입니다. 한 건물 안에 2-3개 교회가 함께 있는 때입니다. 꼭 전할 복음이 있고 이 강단이 아니고는 전하지 못할 말씀이 있는가? 한 동네에 교회가 수십 수백개가 되어도 이 교회만은 서야 할 이유가 있고 외쳐야 할 말씀이 있는가?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 이 나라 이 시대에는 고신이라는 교파가 없어서는 안되며 그 뿐 아니라 고신교파가 꼭 있어야 할 신학적 신앙적 이유가 과연 존재하는가? 고신의 시작은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고신 교단은 과연 이 나라 이 시대에 없어서는 안될 필요성 때문에 계속 존재하고 있는가? 죽은 조상의 이름을 팔아 얻을 수입은 많을찌라도 신학과 신앙적으로 오늘까지 고신교단이 독립적으로 따로 존재해야 할 이유는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과연 총공회 교단은 오늘 이 마지막 때에 독립된 교회로 다른 교단과 달리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좀더 좁게 말한다면 과연 이 강단이 이 교역자가 수많은 교회와 교역자가 있는 중에 또 하나 더 나와야 할 것인가? 이 면에 대한 자문자답이 수없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강단은 꼭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설 뚜렷한 이유가 되어진다고 봅니다. 목회자로서도 나 말고도 누구든 와서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는 그 교회의 진정한 목자라 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 나라는 존재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며 또 교체가 되어도 교회로서는 큰 불편이 없다면, 사임을 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노력하여 나 없어면 안된다는 평가가 나올 때까지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나라는 존재가 독립적으로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녀에게는 아무리 못나도 그 어머니가 아니면 안되듯이 그 교회에 신앙의 어미 노릇을 참 목자 노릇을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개척하고 우리가 목회에 나설 때는 전할 복음이 있어서입니다. 천하에 교회가 많으나 우리에게 주신 이 복음은 6천년 역사 세계를 마감하고 이 시대 를 감당할 최종의 복음이라 단정하기 때문에 이 복음으로 나갈 강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로는 이 복음은 함께 받았으나 이 복음대로 걸어가는 공회, 교회가 없음으로 이 복음대로 걸어갈 노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변절측, 수정측, 중립측, 보수측 4갈래 노선에서 우리가 나갈 길은 이 길밖에 없다는 단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복음 이 노선 따라 다 바치고 나서는 교역자, 모든 여건 모든 불편 감수하고 오직 이 복음 이 노선에 가기를 소원하는 교인이 있는 곳이면 그곳에서 원한다면 부족한 이 몸과 여생을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③보낼만한 자를 보내시라는 말은 오늘도 망령된 말이며 훗날에 큰 화가 있을 것

가.참으로 귀한 목회자감을 만나게 되면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게 됩니다.

굳이 세상 여러 외부 조건으로 기준을 잡은 것이 아니라 그 교회 그 강단에 맞도록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다고 느껴지는 분이 계셔서 모시려고 하면 그런 적임자들은 꼭 이구동성입니다. 부족해서 도저히 안되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더 적임자며 귀한 그릇임이 증명됩니다. 그러나 겸손도 한 두 번이며 사양도 한 두 번이지 교회가 필요하고 복음이 원하는 데도 꼭 보낼 만한 자를 보내시라고 한다면 그 자신이 거절한 거절 때문에 자신도 다른 사람도 많은 화를 받게 되는 것은 모세를 보고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된 종이 없어 희귀한 때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만나게 되는 참 종들은 자신이 아니라고 부르심을 거부하는 일로 하나님의 뜻을 최종적으로 막는 사람들이 되고 있습니다. 실력 없는 이들이 나서는 것이 큰 폐단인 동시에 부름을 받는 이들이 이를 거절하는 폐단 역시 적지 않습니다. 앞의 경우는 어린 사람의 철없는 행동이라면 뒤의 경우는 알만한 사람의 고등교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꼭 부족하시다면, 부족한 사람을 쓰시겠다니 할 말이 없는 법입니다.

굳이 부족하시다면, 그렇게 주장하시는 본인의 말이 맞으시다면,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부족하고 못난 이를 붙들고 역사하시겠다고 고전1:26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더 적임자라는 말입니다. 스스로 그 교회를 감당할 만하고 스스로 그 개척을 성공할 수 있겠다고 자신있는 이들로 인해 파괴되고 어지러워진 교회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찾아보게 됩니다. 주로 성공한 이들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다.부족한 줄 안다면, 훗날 교회가 필요 없다고 가라할 때 섭섭함 없이 나오면 됩니다.

끝까지 충성하다가 하나님이 능력을 주지 않아서 교회에 짐만 된다면 그래서 교회가 필요없다고 한다면, 그때 나올 때는 섭섭함 없이 나오면 됩니다. 속으로는 실력이 만만하지만 겉으로 겸손하게 표현한 사람은 교회를 그만 두라면 대단히 많은 원망 불만이 표출되는 것을 봅니다. 진정 부족하다면 그 교회가 그만 두라 할 때 멍에를 내려 주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심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알아도 교인이 알게 되어 있고 그 교역자를 놓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충천하여 진정 하나님의 종으로 합당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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