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환란 대비 30분 기도에서 강조한 '환란'은?

구남단1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7.08.29
출처: /연구실/문답/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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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980년대 환란 대비 30분 기도에서 강조한 '환란'은? - 대리질문


<하루 30분 기도> <환난> <말세를 대비한 성도의 자세>라는 설교록 내용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백목사님이 그토록 강조했던 하루 30분 환란 대비 기도는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없던 환란'을 말씀하심인지?

8.15 해방 4년 전에 이미 해방을 보았던 그분의 영감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절대 가볍게 듣고 지나갈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80년대 초반 설교록에서 '특별한 일이 없다면 생전에 재림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뜻의 말씀을 하신 기억도 납니다.



(답변) 80년대 초반은 전면 남침, 80년대 말은 자신의 종말을 본 것입니다.


1.1980년대 초반 북한의 남침 위협은 대단한 의미를 가집니다.


1)1980년대 북한 남침에 대한 남한내부의 시각

1980년대 10년은 '북한의 남침이란 것은 남한이 정권유지를 위해 협박용으로 퍼뜨린 말'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그런 인식이 되도록 당시 환경이 그리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소련의 비밀문서가 밝혀지고 1980년대 운동권과 한국내 좌파들이 북한에 철저하게 연결되어 국내 분위기가 6.25직전이 연상되고 더구나 김일성 당대에 남침이 결행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섬뜩해집니다. 그러나 당시 남한 내에서는 계속되는 장기집권에 대한 반발심리로 사회 전반적인 인심이 남침 위협에 대한 체감이 완전히 풀어지고 있었습니다.


2)공산화 속에서 참으로 환란과 순교를 당할 교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과거 6.25 때를 생각한다면 그후 3-40년이 지나면서 더 해이해진 한국교회에서 공산화된 정권 아래에서 참으로 생명을 걸 수 있는 교단은 총공회 뿐이었고 따라서 백목사님은 이미 순교 현장에서 늘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설교는 6.25 남침 당시 인민군 점령치하에서 설교하는 듯 했습니다. 사실 백목사님은 타협없는 신앙 때문에 해방직후 남로당의 거창군 조직에게 이미 살해를 당할 고비를 수차례 넘겼고 6.25는 물론 그후 평생 그 위협을 주변에 늘 느끼고 살았습니다. 공산주의가 진정한 공산주의라면 그리고 남한의 교회가 진정 교회라면 이런 관계가 지속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쨌던 신앙이란 미래를 현실로 미리 당겨놓고 준비하는 것이 환란을 이길 수 있는 진정한 신앙이라는 면에 특별했기 때문에 신사참배 6.25점령치하를 승리했던 백목사님입니다. 또한 그는 다시 닥친 순교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전부 잠든 밤중에 슬기로운 다섯처녀의 신앙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하루 30분 기도는 1980년대 북한과 남한내부의 좌익에 의한 위협 때문입니다.

1980년대 내내 백목사님은 살해의 순간이 직접 지나고 있었습니다. 남한 내 자생이든 북한에서 직접 보내진 것이든 대공용의점이 뚜렷하게 보이는 암살자들이 백목사님을 계속 노리고 있었습니다. '간첩'이라는 신분증이 없다며 교회 청년들이 붙들어 관계기관에 넘기기까지 하였으나 간첩 증명서(?)가 없다며 풀어놓는 정도였습니다. 6.25직전과 많은 점에서 유사했습니다. 당하고 나면 복구가 될 수 없는 백목사님의 생사문제였기 때문에 교회 청년들이 한번에 10여명씩 조를 짜고 예배당과 목사님을 계속 지킨 날 수가 적지 않았습니다. 북한에 이기선목사님이 결국 공산당에게 당할 때와 흡사했습니다. 남들이 보면 피해망상증에 걸린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만 결국 89년 순교로서 10여년의 이런 위협은 실제로 증명되었습니다. 증명된 것으로 우리는 직시한 사람들이었다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원통했던 것이 이 시대의 선지자를 잃었으며 공회로는 그후 혼란의 시작이 바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3.1989. 8. 27. 주일새벽 순교는 1년전부터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88년 8월집회 때부터 공사석 대소사 모든 면에서 목사님은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셨고 그 죽음은 순교로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사후 총공회가 오늘의 모습이 될 것을 당시 미리 세세하게 말했습니다. 심지어 목사님 사후에 수정노선으로 걸어갈 교역자의 숫자까지 미리 보고 있었습니다. 1988년 당시에는 1989년 중으로 마지막 해를 보고 계셨고, 1989년 6월이 지나면서는 대단히 급박하게 날짜를 챙기고 계셨습니다. 8월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마치 카운트다운을 하듯 바쁘게 마지막을 챙기고 계셨습니다. 80세 연세였기 때문에 갈 때가 되면 느낌이 있다는 일반원리를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그분은 80연세에도 30대 우리보다 더 건강했습니다. 일반적 건강으로 120세 모세와 같은 활동이 보장된 듯한 분이었습니다.

이미 1989년초반부터 어느 분은 부산 내에 심상치 않은 상황을 직접 보고드리며 서부교회 설교강단이 계속된다면 반드시 목사님 목숨은 없어질 것이라고 단정하게 됩니다. 이 모든 주변 분위기는 목사님의 신변에 관련된 이들로 하여금 장례준비를 실감있게 하도록 한 정도입니다. 본 답변자는 백목사님 장례식 때 유가족 대표로 선임되어 총공회장으로 진행된 모든 장례식을 미리 준비한 계획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묘자리와 관의 형태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실감에 있었고 그때부터 장례식 일정을 가족들과 함께 면밀하게 세워두었습니다.

과연 그분은 이 시대 선지자로 사셨고 또 마지막 순교로 가셨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복음을 다 외친 후 그 외친 말씀 때문에 설교강단에서 순교당했으면 하는 소원을 평소에 종종 했던 분입니다. 그렇게 해 주실 하나님께서 미리 그를 통해 약속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광스럽게 하늘나라로 갔지만 남겨진 교회들과 교인들에게는 예수님 사후 제자들이 풍비박산 된 듯 그리 된 형편입니다.

그가 없는 시대, 그가 있을 때보다 더 험악한 세대를 살아갈 제자들을 향해 선지자 없는 세대를 살아갈 준비의 기도를 하루 30분씩 하라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그분의 권면을 듣고 미리 실감으로 준비한 이들은 선지자가 없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그 선지자를 세운 성령에게 붙들려 부족하지만 등을 켜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사후를 준비치 못한 이들은 지금 다른 진영으로 갔던지 아니면 공회자체를 일반교단으로 변화시켜 이 노선을 버렸던지 아니면 끝없는 내부 투쟁에 날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4.생전에 재림을 보게 될 것이란 언급은 1988년 성탄절을 앞두고 목사님은 그해 성탄절을 이 땅위에 마지막 성탄절로 대하고 준비했었습니다. 그러나 재림이란 성경이 명문으로 말하듯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기들 당대에 재림을 맞이할 자세였으며 실감이었습니다.

그날과 그시만은 알리지 않으시는 주님의 뜻을 따라 알 수는 없었을 것이나 자기 당대에 재림을 맞이할 것이겠다고까지 말세를 느끼는 실감은 늘 최후 최종에 살고 간 성자들, 사도들의 세계에서 이해될 사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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