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총공회 교회의 해외 선교에 대해?

구남단1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7.09.06
출처: /연구실/문답/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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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총공회 교회의 해외 선교에 대하여


저는 20년 정도 총공회 교단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미국,영국 다음으로 해외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약 7,000명정도의 선교사가
해외 오지에서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것으로 압니다.

성경에도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수살렘과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 있으며 전도와 선교의 중요성을
성경에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 지체의 역할이 다르듯이 총공회는 백목사님때부터 주일학교에
특별히 주력하여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를 이루었고 타교단 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주일학교에 진력하느라 해외선교에 대하여는 부족
하였는지요, 아니면 한국도 완전 복음화가 이루어 지지않아 국내전도에
더 주력하느라 그런지요? 타교단에서도 약간은 의아해합니다.

제가 공회와 교단의 깊은뜻을 몰라 부족하여 질문하오니 가르쳐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답변)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할 때 선교 위주로 방향을 잡는 것


1.우선 일반적인 '선교'의 분위기를 살피겠습니다.

①'선교'란 누가 말을 하고 언제 말을 해도 좋은 것입니다.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또 미개 종족들의 박해 속에서 생명을 내놓고 복음에 취하여 복음을 전하다 복음 때문에 죽는 길을 선교라고 합니다. 죽으려 했으나 하나님이 살려주셨기 때문에 살아나온 이들이 선교사들입니다. 우리나라 100년 선교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그 박해 그 고난, 이후 찾아온 복음의 전성기로 오늘까지를 잠깐 훑어봐도 교회가 왜 그렇게 선교위주 선교유일 선교전력으로 나가는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②교회사는 선교역사이므로 '선교' 없는 교회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교단과 교회들이 선교를 대외적 표어 중 제일로 걸고 진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유독 총공회 교회들만 선교라는 말이 없고 심지어 선교라는 발음도 서툴어 그 분위기가 외부 교단에서 볼 때 어색하기 이를 데가 없고 또 대단히 편협되고 수상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다행히 백목사님 사후 서울과 대구공회 교회들을 중심으로 '선교'라는 말과 행동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공회의 대외 인식이 호전될 것이며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③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할 교회로서는 무어라 해도 선교 이상이 없습니다.

또한 선교의 특별한 의미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우리 교회에게 이웃 사랑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가장 확실한 사랑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교란 누가 말을 하고 언제 말을 해도 좋은 것이라 단정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일반적인 선교의 분위기를 살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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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제 총공회 시각에서 보는 '선교'로 집중해보겠습니다.

①'선교'라는 표현과 그 비슷한 종류의 표현들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불편해 합니다.

'성경'은 성경에 성경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성서라고 미화하고 승격시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라 하던 시절의 성경은 정확무오였고 지금 성서는 이름만 고종 '황제'처럼 한껏 올라갔을 뿐이지 교양도덕서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지금 성경을 성경 그대로 다 믿고 살려는 교회가 있습니까? 주일 문제 하나만을 가지고 예를 들어도 공회 소속 교회들과 같이 이전 의미로 주일을 지키면 바로 '율법주의적 이단'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성경에 전도는 전도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전도라는 말이 미화되고 치장되어 지금은 '선교'로 한껏 부풀려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라는 표현이 없던 초대교회는 선교의 사명을 받고 줄줄이 사선을 넘어 순직과 순교자로 끝을 맺었습니다. 지금은 선교는 홍수가 났지만 전도는 메마를 대로 메말라 있습니다. 전도의 변질 전도의 치장 전도의 과시로 나타난 것이 선교라는 표현이기 때문에 선교라는 말을 하는 것조차도 그렇게 괴로워하는 곳이 공회소속 교회들입니다.

강단에서 전하는 말씀을 '메세지'라 하고, 찬양대를 '성가대'라 하며, 연보를 '헌금'이라 하고, 설교 강단을 정원처럼 꾸미고 예배당을 성당처럼 건축미 위주로 만들어 가는 모든 것을 괴로워하는 곳이 이곳입니다. 선교도 같은 맥락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②공회의 신앙노선은 선교의 본래 의미인 '전도'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있습니다.

선교를 노래하는 모든 교회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구이며 또 선교의 근거로 잡고 있는 성구를 하나 소개합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교회가 외향적이 되면 결국 알맹이 없는 외식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동일한 성구를 두고 예루살렘에서 온 전국으로 이웃나라와 세계 끝까지로 가야 한다는 방향으로 성경을 읽으면 멀리만 가는 데 중점을 두게 됩니다. 중국으로 선교를 갔다면 보통 선교사가 되고 인도네시아까지 갔다면 좀더 의미 있는 선교사가 되고 아프리카 중앙으로 갔다고 하면 최고의 선교사가 되는 편입니다.

우리는 이 성구를 대할 때마다 내 속에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감,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성령의 요동침이 내 속에 있는지? 자기 속의 영감과 진리의 충만을 먼저 살펴보게 됩니다. 내 속에 뜨거움을 가졌으면 저절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도 영감도 자기 속에 계신 자기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도 별로 없는 이들이 선교지를 다녀온 선배들의 경험담을 무용담으로 듣고 신세계에 대한 청년들의 경험 경력 과정인 줄 알고 일시 동경심이 유발될 때 그것이 성령의 충만으로 생각하고 진행해버리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주로 신학교의 교회사 시간이 그런 동기를 부여하고 있습니다만, 순서가 너무 거꾸로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지적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에 팔려 예수님의 십자가에 감격하여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사람이 되면 아프리카로 먼저 가고 인도네시아로 먼저 갈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사는 자기 주변 자기 가정 자기 교회 내에서부터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 바로 위에 있는 성구입니다.

가정 구원에는 애쓰지 않고 친구들에게는 복음 전파할 기회를 가지지 않고 바로 휙 날라 비행기를 타면 '선교사'라는 이름은 붙겠지만 성경은 네가 네 속에 하나님을 참으로 뜨겁게 붙들었는가? 네가 네 속에 너를 붙든 성령에게 붙들려 네 식구에게 네 친구에게 네 주변에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 배길 수 없는 뜨거움으로 미친 사람처럼 되었는가? 주변에서 전한 세월과 노력이 넘쳐서 그 다음 이웃 마을로 더 멀리 더 멀리 가다보니 성령이 로마까지 데려다 놓았기 때문에 떠밀리고 붙들려 그곳까지 갔는가?

아니면 강대국의 땅 따먹기처럼, 오늘 대기업의 북한 선점 달리기처럼, 책상에 지도를 펴고 여러 계획과 아이디어로 머리를 번쩍이다가 볼펜 끝으로 찍은 곳을 전략적으로 먹고 들어가는 하나의 점령법, 영업망 확장 비지니스로 복음을 대하고 교회를 대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가게 되면, 오늘에 차고 넘치는 선교의 의미는 거의 다 거품처럼 보이게 되고 그 선교라는 단어와 표현 속에 보이는 진노받을 일들이 너무 강하게 비치어 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③참으로 순수한 선교사들에게는 죄송하나 대세는 분명히 그러합니다.

심지어 미국으로 선교가는 한국의 수많은 목사님들, 지금 우리 공회 안에도 많습니다. 심지어 미국으로 이민 간 자기 교회 교인들의 예배보는 곳에 집회를 가면서 선교헌금을 거두고 선교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분들, 그분들은 확실히 선교라는 이름으로 자기를 치장하는 죄인들일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선교의 의미는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면 전부 선교입니다. 이미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다시 선교를 한다면 타종교를 전하겠다는 말이냐고 힐난을 한다면, 할 말이 없어야 할 정도입니다.

그들만큼 잘 나지를 못하면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선교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 대안으로 등장하는 것이 옆집 선교입니다. 뒷집 선교입니다. 교회의 전도회를 전부 선교회로 이름을 개칭해서라도 전부 선교사가 되고 싶고 선교를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복음에 못이겨 죽기를 자청하는 사도 바울의 심정이면 선교사는 될찌라도 그런 분들은 스스로 그렇게 칭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심정이 아니라 남들이 먼저 점령하고 남들이 먼저 이름을 날리고 있는데 처진다고 생각하는 열등감의 발로로 선교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진정한 선교사, 진정한 선교란 오늘날 그 희귀함이 내가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하신 정도의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③선교라는 이름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은 더 큰 근본적 이유가 있습니다.

신앙이 자기에게서 밖을 향하면 외향이 되고 자기 내부로 들어가면 내향이 됩니다. 우리는 자기 속에 들어와 계신 하나님, 그 성령 하나님 앞에 자신을 우선 내어놓고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신앙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되었다고 밖으로 쫓아 다니며 나처럼 믿으라고 하기 전, 과연 날 구원하느라 죽으신 예수님, 그 십자가, 그렇게 죽음으로 주신 이 구원을 생각할 때 과연 내가 주님을 죽인 이 죄를 이제는 해결했느냐는 자성이며 자책입니다.

남 속에 있는 사탄을 몰아내기 전, 내 속에는 더 강하고 더 못된 사탄이 들어 있습니다. 내 속에 사탄은 내 것이라 보호하고 남 속에 있는 사탄을 몰아내러 다닌다면 이것 참 하나님 앞에 죄송스럽고 주님 대속 앞에 고개 들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자기 속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원수, 그 원수가 바로 자기 속에 들어 앉았으니 이 원수를 어떻게 해야겠는가, 이 생각에 잠기게 되면 옆집 병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속에 당장 날 죽일 불치병에 근심이 되어 옆 돌아 볼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라는 이름은 자기를 깨끗하게 했고, 자기 주변을 전도했으며 자기 교회와 자기 속한 주위 여러 범위를 주 앞으로 돌려 세웠고, 이제 환경과 입장 교통과 언어 모든 면에서 다시 돌아 오지 못할 정도의 먼 곳까지를 이 복음으로 가서 전해야겠다는 필연적 순서, 환경적 인도, 하나님의 뜨거운 인도의 단계가 그기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이런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숨은 7천이 있을 것이니 있기는 있을 것이나, 나타나 활동하는 이들 중에서는 엘리야처럼 한 사람이나 될까 할 정도라고 판단됩니다.

④진정한 선교, 가장 급한 선교는 바로 자기 속에 아직도 말씀이 없는 오지가 있습니다.

말씀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오지, 그곳이 선교지라고 일컫습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이 근접도 하지 못하도록 버려지고 잊혀진 곳이 있을 것입니다. 학자라면 자기가 평생 닦은 학문을 보배로 알고 사는 법이니 그 학문과 배치되는 것이면 하나님도 말씀도 배척해 버릴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선교는 자기 속에 가장 깊이 묻어놓고 말씀이 들어오지 못하게 장벽을 쳐놓은 바로 그 지식세계를 파헤치는 선교가 필요할 것입니다.

잘난 자존심 하나로 사는 사람, 교회 내 어떤 복음운동에 필요한 일이 있어도 자기 자존심 문제가 생기면 다 팽개치는 우리 목사님들이 있고 우리 장로님들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결정을 번복할망정 그 사람의 자존심을 건들일 수가 없다면 그 자존심이 바로 선교할 첫째 대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허다한 우리 내부 선교지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내 속에 미개척지 내 속에 옛사람의 심성을 복음으로 뒤바꾸지 않고 이것들을 내 속에 있는 내부 적으로 남겨둔 사람이 성경을 두고 멀리 멀리 떠나서 전도를 한다면, 그들은 그 사람을 천사와 같이 볼찌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네 속에 있는 너나 먼저 고치라고 하실런지....

자꾸 이 면을 생각하여 자기를 고치고 자기를 바로 세우는 일, 하나님 앞에 자신을 먼저 가까이 가게 하여 성령의 권능을 받고, 받은 다음 외부로 전할 생각으로 전도의 방향과 순서를 잡다보니까 서부교회와 총공회 소속의 교회들은 선교라는 말은 감히 꺼내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부교회의 주일학교 전도역사도, 교인 가정에 있는 학생들을 다 불러냈고, 친척 이웃 집 아이들을 다 데려나왔으며, 그래도 힘이 남고 자리는 비었기에 동네 불신자 가정으로 들어갔으며 주변 인근 학교를 전부 다 휩쓸고도 반사들이 남고 시간이 남고 복음의 사명이 남았기 때문에 옆동네로 나갔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세계 최대가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하다보니 그리 되었고, 가다보니 남들이 붙인 이름이 그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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