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신사참배 승리의 객관적 자료는?

구남단1
작성자
추천.h3
작성일
2008.07.24
출처: /연구실/문답/314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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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백목사님이 신사참배 환란을 이기셨다는 말씀에 관하여



목사님은....
박윤선목사님과 비교하시면서 그분(박윤선)은 신사참배를 이기지 못한분이지만 백목사님은 신사참배를 이긴 분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박윤선목사님이 신사참배 환란을 이기지 못하였다는 것은 그분의 신앙고백에서도 그렇고 여러자료들에 의해서 잘 들어나고 있기 때문에 납득이 가지만 백목사님이 신사참배환란을 이기셨다는 말씀은 이곳 말고는 사실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떠든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아는 상식으로 저의 솔직한 표현으로는 백목사님이 신사참배환란을 이기셨다기 보다는 피해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싶은데 아닌지요..... 사실 글을 써 놓고도 자신은 없습니다.

신사참배 환란에 대한 어떤 자료에도 백목사님에 대한 객관적 자료는 없습니다.
신사참배 반대하다가 고문받고 며칠 감옥에 갖혀 있다 풀려 나온 인사들도 최근 역사책이나 백과사전. 인터넷에서 찾으면 금방 나오는데.....
백목사님은 어떠한 자료도 없군요.

이곳에 어떤 구체적인 자료가 있는지요? 백목사님이 신사참배환란을 이기셨다는 자료말입니다.

사실 이곳 신앙노선이 자랑하고 들어내는 것보다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으로 만족하는 은둔에 가까운 신앙노선이기 때문에 목사님의 말씀이 사실일수도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백목사님의 순교자체를 눈으로 보고도 순교가 아니고 순직이다라고 하는 일부 공회교인들을 보면 ...... 들어나지는 아니했지만 백목사님이 신사참배환란을 이기셨다는 것이 사실일수도 있겠구나 하고 믿고 싶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답변) 누가 출간한 사전과 역사서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1.현 정권의 애국자는 과거 정권의 매국자였습니다. 현 정권의 매국자는 애국자였습니다.

누가 기록을 하고 누가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주 중요한 애국자와 매국자들 중에는 그 이름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자기 신분을 완전히 감추고 활동하다가 가장 값있는 죽음을 맞았는데 그 사실을 그 동지들조차 모르고 행방불명이 되었거나 아니면 탄압을 피해 숨어버렸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는 것은 한 마디로 그냥 듣고 지나갈 일입니다. 특히 세상일로 말한다면 정치가들의 말이나 기록은 그냥 듣고 지나갈 일입니다. 교회사로 말하면 교권쪽에서 발언하는 것은 사람 소리로 들을 내용이 별로이 없습니다. 그냥 듣고 지나갈 일이지 그 소리를 듣고 그런 소리에 감화를 받거나 영향을 받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2.'사실'과 '기록'은 차이가 많은 법입니다. 세상으로 예를 든다면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들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그들의 부모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그들의 부모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기록이 없다고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경우 부모에 대하여는 기록이 없어 자세하게 모를 뿐이지 기록이 없다 하여 부모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60대 이상 나이에 계신 분들 중에는 출생 후 곧 죽을 것 같아서 호적에 올려놓지 않았는데 후에 건강하게 자라게 되자 앞서 죽은 형의 호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출생신고를 늦게하면 벌금도 물어야 하고 또 귀찮아서 그리하는 경우입니다.

또 많지는 않지만 출생하지 않은 아이를 호적에 올려놓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아이를 낳은 것으로 해놓았다가 훗날 고아원에서 아이를 데려다 기를 때 그 아이의 호적에 문제가 없도록 하여 그 아이와 그 가정에 자식없어 문제가 있었다는 기록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산부인과나 조산소의 출생확인서가 필요없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3.신사참배로 예를 든다면

신사참배 승리자와 패배자와 도망자는 해방 이전 이 나라에 실제 존재했던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의 기록은 누락되었고, 어떤 사람의 기록은 과장되거나 축소되었으며, 어떤 사람은 항일 독립운동을 했는데 신사참배를 거부한 신앙인으로 이름이 바뀐 사람도 있습니다.

신사참배 탄압이 극심했던 때는 불과 5-6년입니다. 그러나 당시는 미개하던 시절이었고 더구나 환경의 변화가 오늘 50년 동안에 한번 변할 일들이, 당시에는 단 몇년 사이에 몇 번이나 변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신사참배를 승리했거나 실패했거나 도망했다는 사실은 사실대로 따로 존재하고, 그 명단이 분류되는 일은 전혀 별개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더 극심한 혼동은 6.25전쟁을 통과하며 순교하거나 신앙을 지킨 이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기록 중 이곳에서 인정하고 믿는 이들은 그리 많지를 못합니다.


4.애국자와 매국노'가 되는 것은, 그 명단을 작성한 사람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입니다.

'신사참배'에 관한 한, 그 승리자와 실패자 그 도망자에 대하여 가장 정확하게 믿을 곳은 고신교단의 주장입니다. 그들은 신사참배 승리자의 값을 높이기 위해 신사참배 승리의 기준을 가장 엄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신사참배 변절자가 제일 많고 그 변절을 가장 주도했던 통합측 교단에서는 신사참배 승리자라는 표현 대신 신사참배 때문에 고초를 겪었던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합니다.

그들에게 신차참배 승리자의 개념은 신사참배라는 사건을 통해 교만하게 된 바리새인이고, 그들에게 신사참배 실패자는 양심에 가책을 받아가며 신사참배를 했던 이들로 진정한 신사참배 피해자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기준에 의하면 신사참배의 진정한 승리자는 신사참배를 했던 사람들이 되는 지경입니다.

신사참배는 너무 뚜렷하게 사건화가 되어 아직도 말을 바꾸어가고 있는 중이지만 6.25와 같이 한국교회 전체가 실패했던 사건에 대하여는 위의 논리로 6.25 전시에서 신앙을 지킨 이들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사참배에 대한 기록은, 각 교단들이 자기들 교단의 입장을 대변하는 신학대학원과 교수들 그리고 여러 사학자들을 동원하여 부지런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단마다 신사참배 승리자와 실패자들 그리고 도망자를 구별하는 기준과 그 명단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5.질문 내용은 백영희목사님입니다.

백목사님은 자기가 자녀처럼 기르는 교인들을 앉혀놓고 신사참배나 6.25 환란같은 십자가 최후 절정에서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을 평생 가르친 분입니다. 한국교회에서 십자가 최후 절정을 가르치며 신사참배와 6.25 환란을 실제 상황으로 설명하며 교인들을 가르친 분 중에 백목사님보다 더 오랜 세월, 집중적으로, 실전을 대비한 최종 훈련으로 가르친 분은 없습니다. 비슷하게 비교할 만한 분도 없습니다.

이번 질문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그는 외부에 그런 사실을 알리거나 알 수 있도록 자료를 넘기거나 최소한 그런 언질을 던진 경우가 없었습니다. 또한 그 밑에서 배운 이들이 교회사 기록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한 이도 없습니다. 따라서 묻히게 된 것입니다. 백목사님이 자신을 알리지 않는 것은 그의 신앙노선 성향 때문입니다. 그 제자들이 알리지 않은 것은 못나서 그런 것이 절반이고, 당달봉사라서 알리지 않은 것이 절반입니다.

이곳은 백목사님의 그런 기록이 한국사에 인정을 받게할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영희라는 인물의 가치와 명망은 너무 높고 귀하기 때문에 정치판처럼 더러워진 곳에 구걸하며 그 이름을 올려달라고 조처할 마음이 없습니다. 88 올림픽에서 남은 돈으로 '서울평화상'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상을 만드려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을 받은 외국 유명인사들이 그 상을 피하려 하고 위원회는 수상자를 유치하려고 사정을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이 신앙노선의 기초 자료와 연구할 문제만 부지런히 전하고 있습니다.


6.백영희목사님의 신사참배 승리의 실상은, 한국교회사를 새로 적어야 할 정도입니다.

신사참배를 통해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과 이곳이 보는 시각은 다른 면이 있습니다. 출옥성도 중에서 최덕지선생님의 승리는 광신이 아니라 옥중을 호령했던 특이한 승리였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대개 출옥성도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옥중에서 동방요배를 했기 때문에 그 승리의 차원이 다릅니다.

손양원목사님의 옥중 승리의 의미는 백영희신앙노선 외에는 파악하는 곳이 없는 줄 알고 있습니다. 애양원교회 손목사님 기념관에는 손목사님이 옥고 6년간 단 한번도 맞아 본 적이 없다고 안내한 대목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이 답변에서는 배경 설명을 다 하지 못하겠으나, 그는 맞을 필요가 없는 차원에 있었던 분입니다.

신사참배를 두고, 가장 큰 성과는 백영희목사님의 개명교회였습니다. 일본 고등경찰이 6년을 개명으로 다니며 신사참배를 강요했으나 신사참배를 거부했는데, 백목사님은 매를 맞지도 투옥도 되지 않았으니 손목사님과 같은 차원에서 신사참배를 승리했던 분입니다. 박해를 통해 그를 시험해야 할 필요도 없는 신앙차원이었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백목사님은 백목사님만 신사참배 환란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소속 교회 전교인이 승리하도록 하였으니, 교회 전체적으로 신사참배를 승리한 것은 백목사님의 개명교회가 유일한 경우입니다. 손양원목사님의 애양원교회도 교회적으로 손목사님과 그 식구들을 내쫓았고, 거창교회는 주목사님을 각각 그렇게 제명하거나 전부 배척하고 총독부에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나 백목사님은 자신 뿐 아니라 교회 전체 교인까지를 다 승리하도록 했기 때문에 이런 기록은 한국교회 신사참배 승리사의 내용 분석을 새로 해야 할 자료입니다.


7.문제는 어떻게 증명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증명은, 아직도 1940년에서 1945년 사이에 개명교회 교인으로 당시를 직접 통과한 이들이 아직도 다수 생존해 있습니다. 역사의 어떤 자료라 해도 그 자료는 목격담이 최초 자료입니다. 어느 한 구석에서 혼자 당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좁은 시골에 이웃집 수저 갯수까지 서로 알고 지내는 덕유산 마지막 마을 가장 폐쇄된 곳에서, 6년동안, 모든 교인과 관련된 전체 사건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정도 사실과 기록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한국교회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신사참배 문제에 백영희라는 인물은 당연히 올라가야 하지만, 백목사님 밑에는 소위 일반 다른 진영 신학교에 교수로 나가서 역사에 불분명한 다른 사람들을 신학적으로 강의하는 교수는 있어도, 자기가 모시고 배웠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자기 스승에 대한 이런 놀라운 역사에 대하여는 일부로 눈을 감고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현실입니다. 바로 이런 면 때문에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이곳은 그분의 기록을 가치있게 사용할 때를 위해서 그의 기록을 한국교회에 알려야 할 이들을 강퍅하게 만들어 그때를 기다리고 계신가 하는 생각입니다.


8.참고로, 이곳에서 1997년에 출간했던 '국기배례'건을 참고하시면 이해에 도움이 되실지

1997년 이곳은 백목사님의 위천교회 시절, 주일학교 반사와 학생들이 해방 후 제2의 신사참배 문제라는 의미로 닥친 '국기배례 강요' 건에서 승리한 과정을 당시 생존자들을 직접 만나서 책으로 출간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핵심 인물들은 대개 타 진영에 있거나 아니면 현재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책에서 밝힌 관련 정부 자료는 정부 문서 보관소를 찾아 기록을 제시했습니다.

그 책은 '위천교회'가 주 무대인데 그 위천교회는 현재 '고신교단' 소속이고, 이 책이 출간될 때 현존하는 교회와 그 교회 소속 교인들이 자기 동네에서 일어났던 일 때문에 동네 사람들에게 불편한 문제가 발생할까 하여 사전에 원고를 교회에 발송하여 의견을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책 출간 직전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국기배례 문제로 고초를 겪었던 주일학생들은 당시 60세 안팎이고 그들에게 극심하게 가해를 했던 학교 관련자, 경찰이나 기타 악역을 맡았던 이들이나 그 후손들이 위천교회 부근에 살고 있다면 그들을 전도하거나 상대할 때 위천교회가 처할 문제를 사전에 문의한 것입니다.

책 원고를 받았던 당시 교회 목사님은 즉시 고신교단 총무였던 심군식목사님에게 연락을 취했고, 그 책의 내용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대단히 중대하다고 판단한 심군식목사님은 원고를 전달받은 그 교단 소속 목사님에게 원고를 구입토록 하여 답변자에게 제의가 왔었습니다. 심군식목사님은 잘 아다시피 '해와같이 빛나리'라는 주남선목사님 전기 저자이고 한국교회 순교인물평전을 수십권 출간하여 고신 뿐 아니라, 한국교회 순교사 출간 저자로서는 첫 손에 꼽는 교계 인물입니다. 당시 그분은 타교단의 경우 교단 총무는 1년만 하고 물러나는데 수년 간 계속 교단 총무를 맡아 교단의 실세였습니다.

그분의 입장은, 국기배례가 국기주목으로 바뀐 위천교회 주일학교 건은 당시 목회자는 백영희조사님이었으나 이 사건은 고신교단에 소속한 위천교회에서 발생한 일이고 고신의 위천교회 역사이므로 그 사건의 주인은 고신교단이라는 취지였습니다. 따라서 백목사님의 수고와 공로로 연결되어서는 안 되고 고신의 승리로 이어져야 옳다는 주장과 함께 원고료는 충분히 제시하겠다는 제의가 덧붙여졌습니다.

답변자는 현 고신소속의 위천교회가 그 지역에서 전도할 때 이 책에서 거론된 인물들의 과거가 드러나게 되어 현재 위천교회가 자기 지역에서 복음운동을 할 때 어려움이 있을까 하여 책을 출간하는 사람으로서 배려 차원에서 의견을 구한 것이지, 그 사건과 그 책의 내용이 고신교단 소유이므로 원주인에게 양해를 구하는 차원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밝혔고, 아울러 원고료를 답변자가 요구한다면 고신교단으로서 지불할 수 없는 액수가 될 것인데, 이 책은 과거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출간하는 것만 답변자가 할 일이기 때문에 원고료에 상관없이 팔고 살 내용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덧붙여 고신에서 답변자보다 더 글을 잘 적는 분들이 많으니 그분들이 스스로 자료를 다시 정리해서 이 책보다 더 좋은 내용으로 그 승리는 백영희목사님의 신앙지도가 맺은 것이 아니고 고신의 승리라고 출간하시면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9.당시 그 원고를 고신에 넘겨주고 답변자는 돈을 챙겼다면, 좋은 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 원고가 고신에 들어갔다면 그 사건은 고신의 노력으로 한국교계에 빛을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이곳에서 출간한 것과 같은 차원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고신대나 고신대학원에서 세미나나 논문의 제목거리로 몇번 오르내리고 고신기관지에 몇번 언급이 되고 나면 그다음 '사료'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을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맛이, 모두들 '대학교'나 '대학원'을 설립하려고 노력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답변자는 그쪽 제의를 거절하고 그 책을 '백영희목회연구소' 이름으로 출간했다가 이후 백영희목회연구소 지도부로부터 그 책을 출간한 답변자, 및 답변자를 돕거나 동조한 연구부 직원 전체에게 10여건 형사고발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답변자와 관련 직원 전체는 그 책 출간과 동시에 전원 제명당하고 오늘까지 이곳에서 연구회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명된 직원 중 목회를 하고 있던 직원들은 연구부 지도부의 의뢰를 받고 당시 총공회로부터 목회자로서 제명까지 당하게 됩니다.

이곳 답변자의 노고를 전시할 목적이 아니라, 왜 백목사님에 대한 신사참배 기록이 없고 또 한국교회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위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내부 문제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목사님 본인의 신앙은 하나님만 대면하고 인간 여론과 역사 평가를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는데, 그 밑에 있는 제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그럴 리가 없는 행동으로 외부 소개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역사는 결과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외부에 드러낼 시점을 조절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도 이곳은 백영희목사님의 교회사적 의미를 객관적으로 꾸준하게 제시하여 언젠가 외부 교계에서 그 이름이 드러나야 할 시점이 된다면, 전설처럼 꾸며지는 것보다 사실적 설명이 뒷받침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질문과 관련하여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출옥성도들은 백목사님의 신사참배 경력에 전부들 경탄해 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해방 직후 백목사님은 출옥성도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안내를 받아 요새 세상말로 벼락 출세를 하고 유명하게 됩니다. 출옥성도 중 최후 생존자인 이인재목사님 같은 이는 백목사님 밑에 아예 제자처럼 따랐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관련 자료는 수없이 확보하고 또 전기로 준비하고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신앙노선의 교리체제와 성경해석 등에 대한 연구입니다. 좋기는 총공회 내에 답변자 이상의 실력을 갖춘 이들이 움직인다면, 이렇게 이 신앙노선에 대한 연구가 이렇게 한 사람에게 맡겨져 답보되지 않을 것이라는 통탄을 늘 하고 있습니다.

총공회 소속 공회별로 현재 홈을 운용하고 있는 곳이 몇 곳 있습니다. 그 공회 홈을 개설하던 초기에 이 신앙노선의 귀한 복음을 연구하는데 그 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그렇게 강조를 했고, 인터넷 시대를 수없이 반복했으며 이 복음의 소중함을 이곳보다 더 크게 더 열심히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 홈에 관련된 공회에는 소속 목회자들과 교수급 인재들이 많고 경제까지도 넘치는 곳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1년이면 이곳 홈에서 추진하는 모든 작업들이 완료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 걸음도 내 딛지를 않고 있습니다. 질문자께서 지적한 대로 왜 알려지지 않았으며 또 알려질 만한 자료나 객관적으로 입증이 가능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 앞에 백영희신앙노선 내에 있는 목회자들은 다 함께 이 복음을 외면하고 묻어버린 죄를 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답변은 생각나는 대로 적고 있기 때문에 표현에 거친 부분이나 오해될 부분이 있다 해도 너그럽게 봐 주셨으면 합니다. 속에 있는 말이 그대로 나오는 것이 더 솔직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정리해서 내놓을 차원으로 접근할 답변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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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2
설교록 - 성경을 위한, 성경 때문에
6042 | 서기 | 2013.05.03
서기 2013.05.03 0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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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 지휘관은 앞이 아니라 뒤의 적이 두렵다.
6043 | 서기 | 2013.04.30
서기 2013.04.30 0 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