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여러 기록들 - 개인 기록 공개를 중심으로

구남단1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09.02.24
1. 옛 것에 대한 연구

최근 1936년 기록부터 공회 관련 옛 기록들을 면밀하게 살피고 최대한 모든 분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데이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옛 기록들을 살피다 보면 '왜 옛 것에 집착을 하느냐'고 비판하는 개혁주의 노선의 정통 신학교 출신들을 종종 접합니다. '왜 5백 년 된 칼빈만 살피고 있느냐' 이렇게 답변을 해 주면 비판적 대화는 막을 수 있습니다만, 진정한 칼빈의 개혁주의는 칼빈이 어거스틴 시대까지 1천 년 이상을 자유롭게 거슬러 올라 가면서 과거 하나님 역사하신 기록들과 천주교의 잘못을 잘 비교 관찰을 했기 때문에 칼빈의 개혁은 그 파급이 칼빈 주변에 그치지 않고 유럽 전체를 뿌리 채 흔들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날을 위한 지난 날, 단순히 지난 날에 대한 회고, 더 나아가 지난 날의 영광을 그리워하거나 신세대에게 선배의 지난 날 고생을 알아 달라고 기념비를 세우는 이런 일들은, 교계에서 거의 이 노선 외에는 그런 덫에 걸려 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노선이 과거 자료를 뒤 적이는 것은 과거 지향이 아니라 오늘 이후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어떤 지혜와 길을 미리 알려 주셨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2. 공회 초창기 여러 기록들

백 목사님은 1936년에 교회를 처음 출발하면서 매일 일지를 깨알같은 글씨로 적어 남겨 두었습니다. 공회뿐 아니라 고신에게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일제 때 일어적 한자로 적은 것도 있고 초서체가 대부분이어서 정확성 때문에 해독 작업이 늦어 지고 있습니다만 제 옆에서 한 분이 하루 15 시간 안팎을 작업하고 있습니다. 50년대의 받아 적은 설교록까지.

그런데 이런 기록들에서 발견 되기 어려운 또 한 종류의 기록들이 있으니 그 것은 백 목사님을 공석이 아니라 사석에서 만나 개인적으로 지도를 받거나 또는 목사님을 특별히 관찰했던 기록들입니다. 물론 녹음으로 남겨 진 1980년대 설교들이 이 노선의 원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입니다만 과거 노트 설교 자료는 녹음본 자료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고 있고, 목사님의 일지나 기타 여러 개인 자료들은 설교록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이 노선의 성장 과정에서 참고할 중요 자료가 되기도 하며, 개인이 혼자 백 목사님과 면담하거나 관찰한 자료에서는 아주 간단한 한 마디나 한 목격담이 설교록 전체를 통해 해석할 수 없는 부분들을 대거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개인 기록들

신앙이 제대로 들기 전부터 이 노선의 근본을 제대로 알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노선의 신앙 선배들보다 그 양도 적고 시기도 늦고 내용도 보잘 것이 없으나 저는 백 목사님을 접한 초기부터 모든 대화를 거의 다 기록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대개 면담 도중에 필기를 했고, 곤란하면 마친 뒤에 바로 메모를 하거나 일지에 남겨 두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그 자료를 참고하도록 이 홈에 제공하려 했으나, 이 홈 운영 초기부터 이 홈의 운여을 비판하는 대구 공회나 부공2로부터 자기를 나타 내려 한다거나 서 목사님을 치기 위해 만든 거라는 등의 비판이 심했고, 그런 비판 이전에 스스로 생각할 때 동기는 아니라 해도 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 중심으로 기울어 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이므로 그런 외부의 비판을 들을 때마다 일부러 그런 면을 더욱 조심했습니다.

그런 비판과 그 비판에 대한 조심 때문에, 결과적으로 10 년 이상 이 홈을 계속 운영하면서 이 홈이 소 잡을 칼로 닭을 잡는다는 말처럼 이 노선 연구의 중대한 업무를 앞에 두고 서 목사님을 견제하는 그런 하찮은 짓을 하다 손해 볼 위험을 차단하고 또 이 홈이 자기를 키워 가는 도구가 되는 악용을 막게 된 점을 두고 초기 비판자들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2 가지 위험 때문에 이 홈에서는 처음부터 제공해야 할 자료들 중에서 너무 늦어 진 자료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초기화면/총공회/일지요약/'입니다. 공회 노선 연구를 위해서는 설교록 자료와 함께 아주 요긴한 자료들인데 공회들끼리의 분쟁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어 잘못 공개하면 현재 진행 중인 분쟁에 한 쪽 편을 들거나 반대한다고 오해를 받기 쉽고 그로 인한 당장의 손해가 크다고 생각이 되어 공개를 좀 미루었는데 너무 많이 늦어 졌습니다. 그래서 '일지요약'을 홈 개설이 한참 지난 뒤에 시작했습니다.



4. 오늘부터 공개할 자료들

마치 자서전이 되는 것 같아서 누가 어떻게 비판을 해도 오로지 제가 하나님 앞에 제 양심껏 살펴 보는 방법 외에는 별 방법이 없어 보이는 자료들이 있습니다. 공회 내에서 자라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다가 첫 은혜를 받고 이 노선의 중심을 향하여 걸어 간 과정입니다. 겉으로는 제 개인 일지입니다. 이 기록을 공개하는 것은, 백 목사님이 없고 그와 같은 종이 없는 시대지만 여전히 이 노선의 교훈과 행정 기록이 설교록 등을 통해 제공 되고 있어 곳곳에서 비록 그 수는 적다 해도 과거 신앙 노선에서 발견 되는 진정한 공회 첫 신앙들, 청년들, 소년들까지 이 홈을 통해 접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 노선을 걸어 간 한 경우를 두고, 실수나 아쉬운 점이 보이면 그 이상으로 걷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들처럼 바로 걸어 간 사례가 있다면 동지가 있음을 알고 확신을 갖기를 원합니다. 만일 그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점이나 장점이 보인다면 그보다 더 앞서기를 노력하는 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아직 이 노선을 모르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 노선에서 가지는 기쁨과 어린 신앙들의 세계를 보며 이 노선의 현장의 일부를 참고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 정도의 내용만이었다면 공개할 리는 없습니다. 이 내용들 사이에 백 목사님께 개인적으로 질문했던 내용들이 있어 다른 분들도 자기 갈 길을 알지 못할 때 제가 백 목사님을 뵙고 지도 받거나 관찰한 점을 간접으로 전해 들으면 마치 함께 지도를 받은 것과 같은 효과가 있을 것이므로 일종의 설교록 일부라 생각하여 제공하는 것입니다. 저와 상관 된 것이므로 그 동안 최대한 공개를 미루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교록처럼 공석을 통해 알려 진 것 외에도 최대한 개인적인 이런 관계까지 다 알고 싶었고 한 편으로 연구소 업무상 백 목사님의 전기 구성을 위해 공회 내에 많은 분들을 찾아 많은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그 일부는 현재 /초기화면/백영희/인물사로본백영희/에서 제공하고 있고, 내용이 정리 되지 않아서 아직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내용들은 '면담 기초 자료'로 따로 분류하여 공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노선은, 모든 교단들이 제각각 자기 교단의 역사와 의미를 남 다르다고 하는 그런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그런 의미 때문에 그 누구의 것이라도 이 노선에 필요한 조각이 있다면 모여 져야 하고 그 것이 다시 새로운 역사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제 제 자신이 포함 된 내용들을 일부 공개하려고 합니다. 제 중심은 제 혼자 하나님 앞에 따로 심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읽는 분들은 비판을 하든지 고맙게 사용하든지 상관 없이 일단 참고는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기회에 수 없이 뿌려 진, 우리들에게 심겨 진, 그 분의 교훈과 지도와 행실이 모여 졌으면 합니다. 백 영희, 그를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붙들고 이 시대 우리를 향해 외친 주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들의 눈이 어두우므로 함께 노력하고 하나가 되어야 가능할 면들이 많습니다.


5. 개인 자료 공개에 즈음하여

말이 나온 김에 또 한 번 덧 붙입니다. 이 노선 자료의 어느 하나라도 눈에 띄면 남이 볼까 해서 얼른 감추는 이기주의 자기 중심의 악이 공회 내에는 너무 극심합니다. 이 노선의 자료들이 너무 탁월하기 때문에 목회자를 중심으로 누구든 이 노선 자료를 접하면 주변 몰래 혼자 가지고 사용해야 교인들에게 또는 동역자들에게 우월한 목회자가 된다면 심보들이 있습니다. 설교록 출간이 본격화 되기 전 또는 막 시작하던 1980년대 중반까지도 미출간 설교록 자료를 다 확보하려면 50만 원이 든다 또는 1백만 원쯤 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준다 해도 그 자료를 넘겨 받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보통 그 자료들을 공개하지 않을 때는 여러 이유를 대는데, 가장 심오한 이유는 '이 귀한 말씀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함부로 주지 못한다.' 이런 식이었고, 그 다음에는 '이 자료 내용이 잘못 전해 질까 해서 그렇다.' 그런 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앞뒤 언행과 현재까지 내려 온 열매를 보면 같은 공회 내에서 다른 목회자와 다른 설교 자료를 가져야 자주 교체 되는 교회를 부임했을 때나 다른 교회 집회를 인도할 때 교인들이 듣지 못한 새 내용을 전해야 귀가 솔깃해 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개를 길러 보면, 강아지들이 많을 때 먹이를 던지면 눈에 띄는 그 순간 가장 크고 좋은 것을 한 입에 물고 전부 뿔뿔이 구석구석으로 도망을 가 버립니다. 혼자 먹어야 생존에 유리합니다. 범죄 후 만물에게까지 적용 되는 타락한 세상의 이치입니다. 이 연구회의 노력으로 이 노선 전체의 자료가 다 공개 된 그 양과 질과 상태를 두고 외부의 교계에서 감탄하는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 듣습니다. 그런 칭찬을 들을 때마다 '너는 도적놈이 아니구나!' 이런 소리로 들리니 이 것이 칭찬이 아니고 참 모독도 보통 모독이 아닙니다.

백 목사님 사후 총공회와 서부 교회에서 또는 유력 기부자들이 출간 여부나 내용의 조절을 가지고 협박 회유 협상을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백 목사님이 직접 임명하여 설교록을 출간하도록 총 책임을 맡긴 결재 라인의 반대였습니다. 당시 현장 목회자들은 설교 자료에 목이 말라 있었습니다. 연구 부장으로 자료 일체를 관리하던 저는 위로는 결재 라인을 향해 일괄 공개를 주장하며 5 년을 투쟁했고, 밖으로는 부공2의 김 목사님들로부터 자료를 사유화하여 공개하지 않는다고 조롱을 무척 받았습니다. 두 김 목사님이 서부 교회 예배당 벽을 따로 연구소 쪽으로 오다가 조롱할 때 잠깐 내부 투쟁 문제를 이야기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설교록 자료의 대외 공개 때문에 연구소 내에서 격렬한 투쟁이 전개 될 때, 운영진의 결정 이전에라도 자료를 공개하는 방법이 있었으니, 그 것은 출간 준비를 도와 주는 목회자들은 연구부 외부 직원으로 분류하여 자료를 마음껏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20여 명 젊은 목회자들을 연구소 2층에 모아 소상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부공2의 김 목사님들 대부분과 부공1에서는 이 노선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최 목사님들과 신 목사님 그리고 몸집이 작은 정 목사님도 포함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부공1과 2에 다 중진이 되어 계신 분이기 때무에 이름은 생략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께 연구 부장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며, 연구실 내부 자료를 계속 드릴 터이니 다 함께 교정도 하고 설교 준비에도 사용하며 출간에 준비하고 이 자료 공개에 동참하자고 설명하고 자료를 나누었습니다. 당일 명단과 시간과 소개 내용이 소상하게 다 기록이 되어 있어 아무도 이의 제기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다음 날 김 응도 목사님이 연구소에 협조 관계로 출입하는 목회자들은 안수 받지 않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하자 다 빠져 버렸습니다. 부공1에 핵심 되는 분들은 연구소 운영권을 가진 쪽에서 직접 지시하여 역시 마찬 가지였습니다. 비슷한 일도 많았으니 이런 일 때문에 이 홈은 총공회 최고 보수와 정통을 주장한다고 서로 싸우는 부공1과 2의 핵심 중진들을 상대할 때 사람으로 계산을 하지 않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감사하게도 이 은수 목사님 한 분은 끝까지 출입을 했고 그로 인해 안수가 많이 늦어 져 지금까지 늘 감사하면서도 죄송한 마음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일을 닥쳐 봐야 속에 있는 것이 다 나오는 법입니다.

부공2의 목회자들이 자기들끼리 타이핑을 나누어 쳐서 설교록 타이타화가 되었다는 자화자찬을 들을 때마다 저런 눈먼 소리로 목회를 하는 것도 너무 신기하고 그들을 따라 가는 부공2의 중진 교인들도 한심하게 보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심지어 중국 공회와 같은 경우는, 이 홈에서 위험하다고 지적을 받았다 해서 평소 부공2를 비판하던 과거 입장을 돌이켜 이 노선 자료를 위해 수고한 것이 부공2 김 목사님들이라고 발표까지 하는 모습을 볼 때는 홧김에 일을 저지는 정도로 봤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 판단 가지고 교리를 논하고 영감으로 무엇을 발표한다는 정도가 된다면 대체로 믿지 못하게 됩니다.

1984년 이전까지 그 김 목사님들이 편집실 문을 들여다 보며서 여기는 뭐 하는 곳인고? 중간반 학생들 심방이 이렇게 산적한데 왜 그런 곳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고? 하던 분들입니다. 그 분들이 이 말출 권사님과 그 가족들을 속이고 현재까지 이 권사님 노트 자료를 몰래 숨겨 두고 몇 사람만 이용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입니다. 연구소 직원들에게 처벌을 받아도 자료를 공개하라고 외부에서 말할 때는 비웃고 자신이 만만했습니다. 그러나 연구소 직원들은 5 년의 투쟁과 순서를 다 거친 다음에 1997년에 모든 것을 공개했고 그 대신 3 개의 경찰서에 5 명의 직원이 10 가지의 형사범으로 조사를 받고 검찰청까지 사건이 넘어 갔을 때, 그들은 이 홈의 수고로 넘겨 받게 된 각종 자료를 가지고 타이핑 분담을 했었는데, 그 자료를 만들기 위해 수고한 사람들만 자료를 나눠 가지고 외부 공개를 반대했습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까지 동원한 1997년의 이 홈 직원들의 검찰 수사 결과는 완전 무혐의였고, 고발을 당한 직원들이 처벌을 원하면 무고죄로 처벌 받을 위기에 처한 당시의 고발 목회자나 그 배후의 지도부는 오늘까지 이 홈의 모든 자료 공개와 작업에 일체 연락을 끊고 있습니다. 그 고발이 구속 수사로 이어지도록 고발인과 검찰청을 드나 들던 분, 이 홈 직원들에게는 일체 자료 공개를 사과하고 앞으로 지도부 말을 들으라고 다니던 김 춘도 목사님은 당시를 철저히 후회하고 회개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으며 지금은 그 쪽과 관계를 오래 동안 끊고 있다고 듣고 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자료 공개와 함께 또 한 번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말출 권사님과 그 가족들을 속이고 노트 자료를 하나 확보하자 즉시 감춰 놓고 10 년을 버티고 있는 부공2 김 목사님들, 그 김 목사님들을 모시는 교회들의 교인들, 그들은 그 자료를 가지고 그들만 배 부르게 먹일 수 있고 또 그 교인들은 남 달리 배 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공범자이고 모른다면 무지해서 죽는 줄도 모르고 따라 가는 이들인데, 이런 수준으로 이 노선을 걷겠다는 것은 앞 날을 가 보지 않아도 실패할 것이라고 개탄하고자 합니다.

이 말출 권사님의 노트 자료를 속여서 가지고 나올 때 핵심 김 목사님은 빌라도처럼 자기는 손을 씻었다 하는데 아무리 '전원일치'라는 말을 하든 또는 다른 김 목사님이 가지고 내 놓지 않는다고 말을 해도 그 자료를 가지고 있을 때에 공개하지 않았던 이는 바로 그 김 목사님이고, 또 그 자료를 넘겨 주면 오기를 가지고라도 끝까지 내 놓지 않을 김 목사님께 건네 준 이도 바로 최초 보유한 김 목사님입니다. 지금 담임하는 교회에서 설교하는 내용은 전부 공개가 되는데 그 설교 내용을 분석하면 과거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죄로 계속할 것 같습니다.

함께 사용하여 복이 될 내용이면, 우리 목회자들이 비록 부족하지만 강단에도 서는 것처럼 어떤 종류의 자료든지 함께 사용하도록 부탁하며, 이런 부탁을 할 때마다 서 영호 목사님의 측근 김 목사님들이 모든 면에서 유능하여 총공회를 주도하게 되었으니 이제 과거 부공1이 총공회를 주도할 때 자료 공개를 막는 조처를 취했던 그 자세 그 때 논리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부탁하며, 부공1 지도부가 자료를 공개하지 않을 때 이 홈 직원들에게 그 까짓 자료 공개 하나를 못하느냐고 비웃던 그 웃음으로 자신들의 오늘을 돌아 보도록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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