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서부교회 분교 _ 보충

구남단1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0.11.11
1. 백 목사님 생전의 분교

- 목사님 사후를 위한 최종의 대비책

1989년까지 백 목사님은 그 사후를 계산하고 부산 전역에 30 개의 분교를 마련해 두고 있었습니다. 분교의 규모는 주일학생만 보통 1 - 200 명이 되었고 반사가 1 - 20 명이었습니다. 그 반사들은 타 교회의 교육전도사 정도였고 그 책임자는 타 교회 부목 급이었습니다. 개척을 시키면 바로 자립이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서부교회가 예배 볼 장소를 마련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 분교 주변의 교인들이 조금 움직인다면 모두가 중형 교회가 될 정도였습니다.


- 분교의 인재들, 복음의 사역자들

목회자가 될 수 있는 분들이 있었는데 백 목사님 사후에 후임들이 분교의 개척교회화 정책을 폐기하는 바람에 일반 목회자로 진출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분들이 서부교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분교에서 개척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서부교회는 이왕 흩어 질 교인을 지교회 주력 교인으로 만들고 또 서부교회를 떠나 먼 지방에서 전혀 다른 차원으로 목회할 분교 책임자들은 서부교회가 지원하여 세운 서부교회 지교회 목회자로 만들어 서부교회의 범위 내에 둘 수 있었습니다. 모교회인 서부교회와 분교로 개척한 부산 시내 지교회가 부산 전역을 장악했다면 백 목사님 생전의 '대신동 서부교회' 하나가 부산 전역을 장악한 '부산 서부교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 생명의 성장법, 자자손손 번성법

서부교회 유급 핵심들이 수영로교회를 부러워 하여 여러 차례 수영로교회를 본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밥 팔아 똥을 사 먹자는 소리를 핵심 청년 층에서 쏟고 있었습니다. 수영로교회 전도 부흥법은 진리와 말씀과 교리와 노선을 내 주고 그 대신 회원만 모집하면 된다는 세상의 기업 경영법이니 회원 확보를 위해서는 세상의 고객 유치 방법에 사용 되는 모든 방법이 다 동원 되었습니다.

반면에 서부교회는 한 사람을 낳아 길러 자기와 같은 신앙의 사람으로 만드는 생명의 복음 양육법입니다. 모 교회 서부교회가 부산 전역으로 뻗어 갔고 그 열매가 분교로 나타 났고 그 분교가 다시 개척교회로 심겨 지면 새로운 나무로 자립 교회가 출발하여 또 다시 다른 교회의 어머니 교회가 되는 식인데, 백 목사님 생존 마지막 시기에는 30 개 분교가 결혼 날자를 앞 둔 장성한 자녀처럼 또는 이미 자녀를 낳아 학교에 갈 정도인데 아직 좁디 좁은 부모 집에 한 칸을 사용하는 듯이 그렇게 된 분교들도 많았습니다. 언제든지 이사 날자만 잡으면 되는 정도였습니다.

세상 기업식으로 보면 또는 단기로 보면 수영로교회와 같은 일반 교계의 방식이 나아 보이나 장기적으로 보고 복음의 원리적으로 보면 서부교회식이 옳습니다. 불신자가 알고 타 종교인들이 이해하고 교파를 초월하여 교회라면 이 것이 생명이며 능력인데, 서부교회가 얼마나 어두워 졌으면 중직자들 입에서 수영로교회를 본받자는 그런 말을 입에서 내놓을 정도가 되었을까!


- 분교의 당시 책임자의 오늘 상황

서부교회가 분교를 백 목사님 생전의 뜻을 따라 개척교회로 발전 시켰더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김영환 목사님과 같이 기독교 역사에 손꼽는 유력한 종이 감천분교 책임자였으니 이 분에게 감천분교를 개척교회로 지원했더라면 오늘 감천 지역에 서영호 목사님의 직계 제자가 감천 지역에서 큰 교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김영환 목사님은 총공회 전체를 통해 가장 규모가 큰 부산공회2 전체를 움직이는 교계적 인물입니다. 그 분의 말 한 마디에 지교회 인사이동이 이루어 지는 정도여서 일반 목회자들이 그 분의 눈치를 보는 거물이 되었습니다. 이런 분이 서부교회 안에서 분교 책임자로 또 감천분교의 개척교회화에 책임을 지고 서부교회 지원을 받았더라면 지금 대형교회를 이루었을 것이고 그 결과는 그 분과 그 분교의 역량에 대한 평가이면서 동시에 그 교회를 만들어 낸 서부교회의 자랑이며 추수였을 것입니다. 서로가 잘 될 수 있는 이 길을 두고 서로가 망할 길을 갔으니 이런 통탄이 있겠습니까!

조일원 목사님은 아미동분교의 공동 책임자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분교 개척에 뜻을 가지셨으나 모교회가 마치 그런 일이 모교회를 자해한다고 오해를 하자 모교회의 지원은 커녕 모교회의 박해 가운데 온전히 자신의 혼자 힘으로 장유교회를 개척했습니다. 평생 번 돈으로 예배당 건축을 추진했고 맨 땅에서 노력하여 지금 견실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분이 아미동에서 개척을 했더라면 서부교회에 분란이 생겨 주변 타 교회로 교인들이 흩어 질 상황이 생길 때 임시 아미동교회에서 과도기를 보내는 등으로 상호 보완이 되면 얼마나 좋았을까! 서부교회가 잘 될 곳곳마다 길길마다 귀신이 전부 다 막아 섰고 모두가 막혔으니 서부교회가 뭔가 된다면 되는 것이 이상할 일이었습니다.

분교의 개척교회화에 어느 누구도 입을 댈 수 없는 사례는 장영목 총무 조사님입니다. 지금은 공회 외부의 인물이 되었고 필리핀에서 수십 개의 교회를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는데, 바로 이 분이 분교 30 개를 목사님 생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세운 분이고 운영했던 분입니다. 혼자 운영하라 해도 30 개 전체를 운영할 수 있으며 모교회인 서부교회 정도로 분교회의 훗날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교의 원래 취지에 따라 좌천동분교 하나를 맡아 개척하겠다고 하자 서영호 목사님 그리고 그 배후이며 당시 서부교회 실권자인 김효순 권사님이 전면에서 나서 이를 막았고 온 교회가 반대하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분립은 했으나 서부교회는 마지 못해 분립은 시켜도 때려 죽일 원수 정도로 상대를 했습니다. 결국 서부교회 최대의 실력자를 서부교회가 난도질을 했고 그 결과 그 분교는 파산 상태에서 종국을 맞고 그 분의 실력은 해외에서 여지 없이 드러 나고 있습니다.

서부교회의 분교 책임자들의 수준은 최소한 백 목사님 사후의 서부교회 담임 목회자들보다 '목회'를 두고는 앞 서는 수치를 가진 분들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사후 담임 목회자들의 과거 타 교회 목회지 목회 실적은 공회 기록에 다 나타 나 있습니다.
분교의 개척교회화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이치영 목사님입니다. 장영목 목사님이 포기하고 떠난 좌천동분교의 후임으로 부임하고 동천교회 이름으로 재출발하여 현재 백 명 이상의 교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목사님은 원래 목회보다 연구소 내근의 연구직원입니다. 가장 비활동적인데도 조용히 그리고 원칙대로 나간 결과가 이 정도이니, 목회에 체질이 맞는 다른 분들이 서부교회가 지원하는 분교의 개척교회화와 그 목회에 전념했더라면 얼마나 좋은 결과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못내 떨치지 못하겠습니다.

비록 위에 열거한 분들에 비할 수 없으나 이 홈의 답변자도 문현동분교의 책임자였습니다. 제가 그 곳에 분교를 시도했더라면 앞에서 예를 든 분들의 개척을 막는 그 이상으로 서부교회와 분쟁이 있었을 터입니다. 다행히 전남 시골에 목회하고 있어 상기 사례에서는 제외가 되지만

이 외에도 숨은 실력자인 서문행 장로님이 아미동분교 책임자입니다. 목회를 한 적은 없으나 누가 그 분을 두고 그 분 앞에서 목회를 논하겠습니까? 이은수 목사님도 분교 책임자였습니다. 이런 사례에 장기상 목사님까지를 더한다면 이 글을 반대하는 분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할까 해서 장 목사님 사례는 아예 묻어 두겠습니다. 장 목사님의 사례를 소개하려 시작한다면 앞에서 설명한 인물들이 너무 왜소해 질까 해서입니다.




2. 좁은 시야, 좁은 마음, 좁디 좁은 우리의 생각

- 참으로 좋은 여건

실제 그 분교 책임자들이 뒤에 그 분교가 교회가 될 때 장로님이나 주력 교인으로 뒷받침을 할 수 있는 분을 책임자로 세워 기르고 계셨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이라는 시점에서는 백 목사님의 은혜 영향력 때문에 그 분교가 분교 이상일 수는 없었으나 백 목사님 사후라면 그 어느 분이 담임이 된다 해도 자연 상태로 둔다면 분교는 분교로 유지 될 수가 없고 개별 교회로 분립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사후의 차선 대비책

따라서 목사님 생전의 분교는 그 사후에 개척 될 교회의 준비였습니다. 이 것이 서부교회에 후계자를 주지 않으시는 하나님 앞에 백 목사님이 그 사후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후임자를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분교로 사후를 준비한다는 것은 확실하게 하나님의 뜻으로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3. 귀신의 삼각파도에 절단 난 서부교회

바로 이런 상황에서 2 가지 마(魔)가 앞 뒤에서 끌어 당기고 뒤에서 낚아 채려 하고 있었습니다.


- 앞에서 장구 치고

첫째 마는 목사님 생전에 아직 분교가 개척 교회로 분리 될 상황이 아닌데 장차 목회에 관심 있는 몇 분이 백 목사님의 분교 계획을 듣자 재빠르게 개척 준비에 들어 가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주일학교 총무를 통해 이 사실은 바로 보고가 되어 졌고 이런 행동은 백 목사님 생전의 서부교회를 상대로 한 몫을 잡으려는 분열로 나아 갈 단초가 될 수 있었으므로 백 목사님은 강하게 막게 됩니다. 아직은 훗날을 위해 준비할 때이지 욕심을 앞 세워 벌써 그런 마음과 행동이 나오면 안 된다는 교훈이며 책망이었습니다.

일반 교인들이 들으면 마치 분교를 백 목사님 사후 준비를 위한 개척교회로 할려는 애초 계획을 백지화 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큰 범위에서는 백 목사님은 이미 그의 임종이 심히 급하게 다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사후의 후계자를 받지 못한 것도 확실했고 그냥 두면 서부교회가 아현교회 꼴이 난다는 것도 명확한 일이어서 이런 점들을 설교 시간이나 여러 회의에 공개적으로 발표하면서 분교가 그 대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 뒤에서 춤을 추고

두 번째 마는 백 목사님 사후 두 번째 목회자로 부임한 서영호 목사님 시기가 분교들이 개척교회로 발전해야 할 시점인데 이 준비 된 시기에 분교의 개척교회화를 막은 일입니다. 그 당시 서부교회 전체는 그 어떤 경우라도 분교의 개척교회화를 막고자 총력을 기울였는데 바로 그들이 오늘의 서부교회를 이 지경까지 만든 원인자들입니다. 서부교회가 백 목사님 정도의 후임이 없다면 차라리 분교의 개척교회화를 통해 전체가 살고 서부교회 내에도 장차 발생할 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의 방법을 폐기 시킵니다.

분교의 개척 교회화를 막고 반대한 부류는 둘입니다. 서 목사님 지지와 서 목사님 반대 측이 이 일에는 공동 반대를 했습니다. 목적은 두 쪽이 다 내심으로 서부교회 전체를 장악할 자신이 있었고 따라서 분교의 개척교회화는 서부교회의 규모 축소화가 되어 손해가 된다는 암산 때문입니다. 새로 부임한 서 목사님 지지 측은 김효순 권사님을 중심으로 현 정권의 결집을 위해 분교의 개척화를 목숨 걸고 막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은근히 지원한 곳은 다름이 아니라 향후 수십 년을 목숨 걸고 싸울 서부교회 내의 반대파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이 홈과 관련이 있는 두 곳은 양 측의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먼 훗날을 보고 개척을 했고 나머지는 실력도 없고 소신도 없고 자신도 없고 아는 바도 없어서 대부분 속으로는 개척을 원하나 발표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 뼈 저린 서부교회의 난파, 침몰

1991년에 장영목 이치영 두 분의 분교 개척이 있고 그 다음 해인 1992년 이후로 오늘까지 서부교회는 양 쪽의 투쟁으로 안에 있는 식구는 밖으로 나가고 밖에서 들어 오는 식구들은 거의 없고 내부는 교회가 아니라 전선 또는 휴전 상태에서 교회로서는 끝장이 나버렸습니다. 그 사이에 서부교회보다 훨씬 작았던 수영로교회는 국내 손꼽는 초대형교회가 되고 서부교회 핵심 교인들이 그 곳으로 또는 주변 다른 곳으로 몰려 가고 서부교회는 대형교회들이 1990년대와 2000년대를 통해 급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전락하고 맙니다.

1980년대에 대형교회가 된 교회들은 그 후 90년대를 거치며 모두가 저절로 초대형교회가 됩니다. 그 교인들의 질이나 교회의 내막은 따로 따지지 않겠습니다. 사회의 구조와 교회의 흐름이 그렇게 대세를 짓고 있었습니다. 큰 단체에 속하고 싶은 시대적 조류가 마치 80년대 전의 주일학교의 폭발적 부흥처럼 그러했습니다. 이런 시기에 서부교회는 갈라 내어 놓는 교회마다 모두 원수처럼 반목하는 상태로 끝장을 보듯 상대를 했습니다. '백 목사님의 분교 정책'의 최소한의 의미만 알았더라면 이왕 나뉠 것을 좋게 발전적으로 웃어 가며 서로가 보완해 가며 서로가 앞 날을 숙제 풀어 나가듯이 맞아 갈 수 있었는데 자해로 자승자박으로만 결론 맺었습니다.


- 지부 : 지역 거점 확보의 상승 효과

분교를 개척교회로 전환했더라면 교회 내에서 싸울 제반 세력들이 서부교회 본부로부터 각 분교를 지교회로 분립 시켜 발전적 개척화로 나갔을 것이고 부산 전역에 30 곳의 교회가 서면 교인들의 진학 이사 취직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타 교단으로 나갈 식구를 최소화하고 오히려 외부 교인들을 내부로 흡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부교회 담임인 서영호 목사님은 입이 백 개 천 개라도 자기 중심의 단일 규모를 위해 그 교회의 전임자 백 목사님이 그 교회를 이루어 놓고 그 사후의 상황까지 전부 다 알려 주고 그 대처법과 시설까지 다 마련해 준 것을 다 날려 버린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 형태로 내분에 관련 된 분들 그리고 분쟁으로 교회를 분리한 분들도 그런 식으로 싸우고 그렇게 끝 장을 낼 일이 아니었습니다.

남정교회 서정교회 등도 아쉽기가 한이 없습니다. 그 분들이 1990년 봄에 끝 장을 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당하고 나간 것입니다. 11월까지만 기다렸다면 그런 투쟁 대신에 목사님 생전부터 마련 된 시무투표를 통해 확실하게 그 분들의 목회자 선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교회의 발전적 분리 개척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4. 회개는 각자의 자기 몫

신사참배 승리자들이 모인 고신의 착각 중에 하나는, 승리자인 자신들은 숨는 것이 자기 자리인데 드러 나 활동하기를 원했고 패배자인 총회파들은 회개가 자기 자리인데, 고신은 총회파가 스스로 해야 할 그들의 회개를 고신이 나서서 회개에 몰아 세웠고 총회파는 고신에게 절제와 겸손을 요구했습니다. 신사참배 시기에는 그 죄가 한국교회의 생사를 갈랐다면 해방 후에는 신사참배 때문에 한국교회가 절단 난 것이 아니라 그 처리의 방법을 두고 남이 할 소리를 하고 자기가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발생했습니다.

우리 전체의 복이 빈 그릇이고, 우리 전체의 역량이 너무 부족해서, 우리 전체가 역사적인 기회를 날려 버렸습니다. 우리는 각각 어느 부분의 어떤 면의 책임이 있든지 상관 없이 우리 모두의 부족입니다. 아쉽습니다.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백 목사님 사후 전개 된 모든 과정에서 항상 찢어 지는 아픔으로 남는데 그 중에 하나가 분교의 개척화입니다. 끝까지 토론하고 따지고 노력하다가 꼭 맞아 질 수 없다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는 그 분이 가면서 그런 날을 생각하고 만들어 놓았던 분교의 개척교회화가 있었습니다.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있으면 대통령제만이 유일한 구국의 길이고 내각제는 망국의 길이라고 펄펄 뜁니다. 대통령의 가능성이 없거나 대통령에서 퇴직해야 할 상황이 생긴 사람들은 내각제만이 구국의 길이라고 소리를 높입니다. 세상 정치 형태는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공회는 신앙의 지도력이 자연스럽게 생기면 그 지도력에 따라 교회와 공회는 중앙집권화가 이루어 져야 하고 당연히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지도력이 약화가 되면 교회와 공회는 마땅히 개교회화가 진행 되어야 합니다. 이 것이 교회와 공회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데 '공회'라는 단어를 모르니 세상처럼 타 교단처럼 규모의 분산을 패망으로 보았지 그들의 실력에 맞는 살 길로 보지 않았습니다. 바로 고 인식이 공회와 서부교회의 망조였습니다.

각자 당시 우리의 위치와 역할과 부족을 두고 각자 자기 회개를 돌아 보자는 뜻으로 전체를 훑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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