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순교의 정의 및 순교는 순생뒤에 따라오는 것

구남단1
작성자
041125문의답
작성일
2011.11.16
1.이단 목회자가 설교 도중 살해 당하면? 그냥 사망입니다.

여호와증인의 기준에 의하면 자기들 설교시간 죽는 죽음은 자기들 종교로서는 순교가 되겠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이차돈의 불교를 위한 순교도 순교가 됩니다. 그런 순교는 국어사전에서 '자기가 믿는 교리에 때문에 종교인이 생명을 잃는 경우는 순교라고 한다'라는 차원의 순교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순교는, 이방 종교 이단 종파의 순교를 배제합니다. 그들의 순교는 우리에게 일반 사망입니다. 좋게 표현한다면 순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2.정통 교회의 설교자가 강단에서 설교하다 살해 당하면? 계산이 좀 복잡해집니다.

①설교자가 말씀을 전하다가 죽는 경우 순교가 되려면

설교자가 설교하다가 예상치 못하게 또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갑자기 죽임을 당한다면 순교일 것입니다. 그러나 순교의 급수는 상당히 낮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설교자가 꼭 전해야 할 말씀을 전하는데 그 말씀 때문에 설교자를 죽이겠다고 나선 사람에 의하여 죽는 경우는 대단히 귀한 순교가 될 것입니다.

혹시, 설교자가 꼭 전할 말씀을 전했는데 그 말씀 증거를 막으려고 설교 도중에 설교자를 살해하되, 설교자가 피할 수 있는데도 그 설교 강단을 지키도록 자기를 인도하는 자기 속의 성령에게 붙들려 피하지 않고 설교를 하다가 죽임을 당했다면, 이런 순교는 순교 중에서도 최상의 순교일 것입니다.

거의 그런 예는 없겠지만, 꼭 전할 말씀을 죽음을 각오하고 전했고 피할 수 있는데도 성령에 붙들려 피하지 않아 순교를 당했는데 만일 다른 사람들에게 순교가 아니라 그냥 순직 정도로 알려지고 순교로 분류가 되지 않고 이 땅 위에서 묻혀버렸다면, 아마 이런 순교는 십자가 강도의 순교와 함께 지상교회 몇 손가락 꼽을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②설교자가 설교하다가 살해를 당해도 순교가 될 수 없는 경우

우리가 교회로 인정하는 정통 교회에서 설교자가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 도중 살해를 당한다면, 일단 그 교단이나 교회에서는 순교라고 표현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교회 전체가 정통교단으로 인정하는데 세상 정치판에 가장 활발하게 개입하는 통합측 소속 강단에서 주일 오전에 담임목사님이 종교통일을 설교하다가 보수파 교인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아니면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다가 진보파 교인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아마 그 교회에서는 설교자를 순교자라 할 것이고 또 한국교회의 현 상황에서는 모두들 순교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개죽음이라고 할 것입니다. 물론 그곳에 가까운 분들에게 표현할 때는 '소신있는 목회자인데 그런 일을 당하셨군요....... ' 이 정도로 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설교자의 설교 강단의 죽음은 그가 정통교회에 속했다는 것으로 무조건 순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 강단에 왜 섰으며 그 강단에서 어떤 말씀을 전했는지 그 내용이 문제입니다. 이곳의 입장은 목회자가 교회에서 설교 시간에 세상 일을 개입하다가 세상 반대 세력에게 당한 일은 일단 순교에서 배제하고 있습니다.


③설교는 정상적이었으나, 가해자가 다른 원한으로 그리했다면

만일 평범한 교회의 평범한 목사님이 평범한 설교를 하는데 그 목사님에게 개인적으로 원한을 가진 분이 보복할 기회를 찾다가 일을 벌이거나 아니면 평범한 설교 내용이 진행 중인데 자신이 과잉반응을 일으켜 돌발적인 사고를 친다면? 순교냐 순직이냐는 문제로 많은 논란이 생길 것 같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황을 대단히 잘 파악하고 아는 분들이면 대충 구분을 할 수 있을 것이나, 일반인들로서는 이런 경우 자기 수준에서 짐작은 해야 하겠지만 최종 판단은 유보해 두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④교회 내부 분쟁 때문에 설교자가 반대파에게 살해를 당했다면

혹시 예배당 내에 최근 흔한 분규가 발생하여 경제나 교권 투쟁문제로 치고 받는 도중 반대측 교인측에서 강단에 있는 목회자를 테러했다면? 그때는 거의 순직이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순교가 되기는 어렵고, 순직조차도 제대로 적용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냥 도둑놈 둘이서 도적질한 것을 나누다가 하나는 죽였고 하나는 죽었다고 표현해야 할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좁게 보면 가해측이 큰 죄인이고 피해측은 작은 죄인일 것이나, 크게 보면 49:51 정도로 과실을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 해도, 피해측의 목회자가 오랜 세월 서로 물질 문제로 싸우다가 최근 갑자기 회개하고 모든 것을 신앙 원 모습으로 돌려서 상대방을 대했는데 그 반대측은 여전히 이전 감정 상태로 있다가 목회자를 쳤다고 한다면 순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교의 급수는 몇 단계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조심할 것은 가끔 이런 경우 특이하게도 십자가 한편 강도처럼 아주 깨끗한 순교가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3.순교라는 표현을 두고 조심할 것

해방 후 한국교회의 '순교'라는 단어는 고신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형식적으로 따지고 보면 전혀 그럴 일이 아니었으나, 신앙노선의 내면 움직임이 어떻게 하다보니까 순교란 고신만의 것이 되도록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그렇게 된 상황에 대하여 정말 할 말이 많습니다. 감사한 일이고, 동시에 그 의미를 오늘 우리의 입장에서 여러 면으로 살펴봐야 할 큰 과제로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고신측조차도 이곳의 발언 의미를 아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순교라는 단어가 해방 후 고신만의 것이었는데 최근 급격하게 나타나고 있는 이상 현상이 있습니다. 합동이나 통합측이 교인 숫자나 경제력에 있어 교계의 확고한 주도세력이 된 다음부터 갑자기 합동이나 통합측 조상들에게도 순교자들이 있다고 발언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고신에서는 펄쩍 뛰고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고신의 발언력은 약하고 상대방의 스피커 성능은 너무 우수해서 현재 한국교회 일반 교인들에게 인식되는 상황을 본다면 통합이나 합동측에도 수많은 순교자가 있다는 것이 아주 상식이 된 듯 합니다.

과거의 순교자란 이미 지나간 역사이기 때문에 다시 만들어 낼 수 없는데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순교자들이 대거 나타나게 된 것은 순교의 기준을 완화시켜 버렸기 때문입니다. '목사'로서 6.25에 죽은 사람은 대폭 순교자로 분류한 것입니다. 심지어 목사로서 일제 말기에 죽은 사람까지도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재 이 문제를 두고 고신측과 통합측의 논쟁이 수 년째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나 이 문제의 본질은 순교의 기준에 있습니다.

만일 서울에서 교회를 버리고 교인도 버리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던 목사님이 충청도 어느 산골에서 잡혔다가 인민군들의 퇴각 때 그 지방 우익인사 전체를 죽일 때 함께 죽였는데 이런 경우를 순교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 교단의 정의에 의하면 순교가 될 수 있겠으나 이곳의 정의에 의하여서는 순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현 교계가 갑자기 순교자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량생산에 가장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고신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고신이 진정 순교의 현장을 유지하는 수준이라면 그런 논쟁을 ㄱ 짖는 소리로 듣고 상대조차 하지 않을 것인데, 현재는 고신도 순교라는 단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상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 과거 조상들의 공덕을 확보할 필요가 있어 반대측과 안타깝게도 논란을 벌이고 있습니다.


4.순교란

믿는 사람의 죽음이라고 정의할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이 믿는 행위를 하다가 그 믿는 행위를 가로막는 세력에게 믿는 행위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죽임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믿음'이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인도하셔서 주님을 따라 가는 이를 세상이 막는데 믿는 사람이 그 방해에 막히지 않으니까 세상은 그를 죽여서라도 그 따라가는 순종을 막게 되고 기어코 주님을 따라 가려다가 죽임을 당했으면 그때 비로소 순교라는 단어를 가지고 살피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 순교를 아는 분들은, 순교란 평생 소원을 해도 주님이 허락을 하시는 경우가 희귀하기 때문에 만일 순교를 당하게 된다면 이것은 그 사람의 신앙실력 여하를 떠나서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라고 감격해 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허락받는 이들은 평소에 생명보다 훨씬 가치가 없는 돈도 가족도 자기 일생도 자기 명예도 전부 다 주님에게 바쳤기 때문에 이제는 생명이나 남았을까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는 상태일 때, 그때에 비로소 주님께서 순교를 통해 마지막 하나 남은 생명까지 바쳐볼 기회를 혹 주시면 겨우 순교자의 반열에 오르는 것입니다.

교권을 위해서 평생 싸우다가, 교인들을 상대로 사례를 올려달라고 늘 눈치싸움을 하다가, 심방과 전도보다는 가족들과 나들이나 하는 것이 더 체질인 목회자가, 살이 쪄서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잠만 자던 목회자가, 어느 한 순간에 로또 복권으로 출세를 하듯 순교자라는 훈장을 한 개 거머쥐는 행운아가 되는 그런 차원의 순교로 생각하여, 오늘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아이스크림을 빨아먹어가며 강의실 책상 여기 저기 걸터앉아 순교를 논하고 있다면, 그들에게는 순교라는 단어가 아예 해당도 없습니다. 평생 주님 앞에 뼈빠지게 충성하고도 무익한 종이 되어 고개를 들 수 없는 이런 평생의 자세 끝에 혹시 순교라는 열매가 맺힐까 말까하는 것입니다.


5.순교라는 단어는 항상 순생이라는 단어 뒤에 따라 오는 것임을

순생으로 살았다 해서 순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순생 없이 순교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순생이라는 선행지표가 있을 때 순교라는 크나큰 선물이 혹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순교라는 단어로 문답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모두는 현재 이 땅 위에 생존의 상태입니다. 살아 있는 우리가 순교라는 단어를 두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오늘 현재를 순생으로 살도록 우리의 주제를 돌려서 읽어야겠습니다.

순생이란, 살아있는 현 상태에서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의 선택, 우리의 힘, 우리의 소유, 우리의 자본, 우리의 활동을 주님과 말씀에 붙들려 사용하며 그것을 없애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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