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공회의 시대 별 신앙 주력 - 양성원 과정으로 '독립의 신앙을'

구남단1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2.07.23
1. 온전한 신앙

하나님은 완전자시며 우리를 만들 때의 목표치도 하나님을 닮은 완전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완전과 닮아 가는 우리의 완전은 존재적으로 다르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적어 주셨으니 논리적 교리적 연구는 다른 기회에 하고 여기서는 우리는 완전을 향한 존재임을 먼저 강조합니다.

신앙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서는 탁월하나 세상에서는 등신이 된다거나, 세상에서는 펄펄 날지만 교회서는 멍청한 것은 좌나 우로 치우 친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에는 탁월하나 전도가 없다면 심대한 성장 장애자입니다. 전도는 잘 하지만 말씀이 없다면 이 분의 전도는 회원 모집이라고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신 이 완전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너무 부담이 크고 자포자기하게 만들 우려가 있어 좀 격려적 표현으로 돌리는 경우 흔히 '원만'이라고 합니다. 단 기간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어 갈 수는 없지만, 공회는 목표도 원만한 신앙을 만들고 원만을 향해 나아 가는 과정도 원만하기를 노력합니다. 치우 치지 않으려 하고, 특별한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 가는 한 방면의 전문가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세상적으로는 효율이 없고 경쟁력도 없게 된다며 만류하나 우리는 신앙의 길을 걷는 원칙이 확고하여 어떤 손해와 비용이 들어 간다 해도 '원만'한 신앙을 만들기 위해 '원만'한 과정을 늘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2. 공회의 시대 별 신앙 주력

공회가 원만하기를 처음부터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는 원만을 만들기 위해 비상적인 방법을 동원하셨고 남들이 보면 공회는 시대 별로 치우 쳤다 할 만큼 균형을 잃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타 교단들처럼 사람이 목표를 세우고 그렇게 하지 않았고 원만하게 나가려 했는데 주어 진 환경이 한 쪽으로 급격하게 쏠리게 만들어 결과적으로는 마치 타 교단들처럼 파상적 비상적 일방적 노력으로 한 분야에 몰입하고 거기서 확보한 실력으로 훗날 원만을 추구할 수 있었다고 평가할 만한 것이 공회의 역사였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80년대의 주일학교 운동이었습니다. 언론의 보도도 또 모든 교회들의 평가도 주일학교 전문 교회였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았는데 우리의 주일학교가 너무 유명하고 너무 표시가 많이 났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렇게 보였습니다. 실제 우리의 주력도 주교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만을 잊지 않았고 주교 일방에 쏟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으로 공회의 출발은 1936년이며 그 시기는 다가 오는 신사참배 환란 때문에 한국교회가 바짝 긴장하던 시절입니다. 다가 오는 환란을 대비하기 위해 선교부와 한국교회는 환란 대비를 하고 있던 이 시기에 백 목사님이 교회를 출석하게 됩니다. 이 시기 백 목사님은 진주 성경학교와 많은 선교사들을 접하면서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서양 기독교의 깊은 속을 생활 속에서 잘 견학하며 참고하게 됩니다. 1939년부터 45년까지의 기간은 신사참배 투쟁 하나로 나가게 되어 환란 중에 연단 받는 신앙이 됩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마을의 모든 가정에서 교회를 다니는 교인 식구를 대 탄압하게 되고 신사참배 환란 때보다 더 혹독한 연단을 거칩니다. 일제 때는 외적 시대적 환란이었고 해방 후부터는 내부 생활 속에 환란이었습니다. 그리고 1950년에서 52년까지의 전쟁 점령기에서는 그 동안 준비한 내외 환란 대비 신앙이 역사적으로 희귀한 공산 환란을 맞아 환란의 최종을 통과합니다. 전체적으로 이 기간에는 매일과 매 순간을 목숨 걸고 믿던 시기였습니다. 환란 때문에 나머지 신앙 전부는 저절로 따라 오고 있었습니다.

1952년 서부교회로 부임한 이후 10 년 동안은 한국교회의 가장 중심에서 가장 격변기를 겪으며 교회의 지도부 내의 투쟁과 지도부에 의한 환란을 겪게 됩니다. 이 기간에 공회는 교회 정치를 배우게 됩니다. 1952년 전까지가 신앙 박해를 통한 연단기라면 52년부터는 교회의 신앙 노선을 두고 구별하며 갈등하며 어떤 고난이 어떻게 전개 되는지를 집중적으로 겪게 됩니다. 1960년대는 개교회 시기였고 1970년대 10여 년은 주일학교 부흥기였고 1980년대는 총공회의 종합 정리기였습니다. 외부에서는 존경과 감탄으로 배우러 오고 내적으로는 충분하게 가르쳐 놓은 공회인들이 머리가 굵어 지면서 각자 자기 소리를 하게 되면서 백 목사님 사후를 대비하던 때입니다.



3. 당시의 내부를 본다면

1952년 이전에 공회 교회에 주력이었던 교인들은 '너희가 환란을 알아?' 이 한 마디가 전부였습니다. 1950년대 10여 년을 주력으로 거친 교인들은 '너희가 노선을 알아?' 이 한 마디가 그들의 신앙 공로 전부였고 중심이었습니다. 1960년대는 하나님과 나 한 사람의 연결과 동행의 세계가 한량 없이 깊게 들어 갔고 1970년대에 들어 서면서는 주일학교 경력이 신앙의 전부였다 할 정도였습니다.

주교 운동 시절의 주력 반사들은 주교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크지고 저절로 신이 나고, 환란기를 통과한 교인들은 그 때를 한 마디 함으로 모든 좌중을 눌러 버리는 분위기였습니다. 물론 어느 시기였다 해도 우리는 성경과 기도와 전도와 진리 노선 하나밖에 없음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주교 시기에는 성경과 기도는 주교 활동에 밀려 소홀할 수밖에 없어 그 이전 시대와 비교하면 기도와 성경의 부실함이 말할 수 없습니다. 환란기 교인들에게 전도를 물어 보면 환란에서는 단독이 주님과 동행하는 절정의 순간인데 전도를 질문하는 사람을 철이 없다 합니다. 환란기라 해도 환란이 끝나면 바로 주교나 전도에 주력했고, 주교 시기에도 주교 활동을 할 수 없는 명절이 되면 설이나 추석인데도 산 기도를 갔고 주일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늘 성경만 가르쳤습니다. 전반적으로 원만했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시대 별로 하나님의 인도는 하나를 강조하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4.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오늘은 남한 안에서 평양을 찬양해도 양심 자유를 보장 받는 때입니다. 오늘, 환란 중에 믿는 분이 있다면 무지하고 미련해서 당하는 자해 자살행위일 것입니다. 극단적 예외는 항상 있지만 전체를 두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오늘 앰프와 스피커를 들고 골목마다 다니며 노방전도를 한다면 이는 전도하는 용맹한 신앙이 아니라 조용히 생활 속에 전도하는 참 전도를 막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전도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때를 기다리거나 먼저 믿는 이들 때문에 귀를 막는 때입니다. 오늘, 주일 새벽 6시부터 불신자 집집마다 다니며 온 가족이 자고 있는 이불을 들추고 아이를 끄집어 내어 업고 온다면 주거침입 안면방해 아동납치 등의 혐의로 유치장에 일단 들어 가야 하는 시기입니다.

참으로, 참으로, 참으로 불행하고 어렵고 너무 힘든 시기를 우리는 맞고 있습니다. 주교 전도든지 외부 환란이든지 교계의 분열 가운데 신앙의 노선을 찾아야 하든지 뭔가 주제가 하나 주어 져야 쉽게 믿고 그 흐름에 몸을 싣고 날아 갈 수가 있는데 어떤 바람도 풍랑도 격변도 주어 지지 않고 오직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분명히 역사 이후에 가장 어려운 시기가 오기 때문에 주시는 예비 기간입니다만 사람이 연약하므로 배가 고파야 금식 기도가 수월해 지고, 이리 가운데 둘러 싸여 있어야 겁이 나서 잠을 잘 수 없고 저절로 철야 기도를 하게 되고, 골목마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바글바글 놀고 있어야 한꺼번에 100여 명 주일학생들을 끌어다 예배당에 앉혀 놓고 전도 강연을 할 수가 있는데 모든 것이 고요한 오늘의 상황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모두가 우왕좌왕하기 쉬운 때입니다.

방학이 제대로 활용 된다면 지난 학기에 부족했던 것과 새 학기에 배울 것을 예습 복습 하느라고 학기 때보다 더욱 알 차게 더 치열하게 매진할 터인데, 방학을 맞은 학생이 주변과 환경에 자기 몸을 실어 놓는다면 편히 쉬고 자고 놀다가 끝이 날 것입니다. 요 습관이 들어서 다음 학기에는 학습에 더욱 불리할 것입니다.



5. 찾아 나설 때입니다.

아무리 기독교 신앙의 전성기여서 뭐든지 누릴 것이나 있지 어려울 것이 없고 마련할 것이 없다 해도, 하나님의 세밀하심은 우리 각자를 위해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공회적으로 바쁘게 따로 개별적으로 연단하고 할 일에 매진하도록 쉬임 없이 과제를 주고 계십니다.

눈을 닦고 다시 훑어 보면 주교의 기회가 주어 지거나, 혼자서는 환란을 겪어야 하거나, 그 무엇이라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 홈은 이 노선이 세계 모든 언어로 땅 끝까지 소개 될 시기를 위해 태산같이 할 일을 쌓아 두고 있습니다.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는 성경 공부를 권합니다. 양성원 과정을 권합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는 목회에 나선 사람이나 곧 나설 정도가 아니면 양성원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지식만 높아 지고 실행이 없으면 몹쓸 사람이 될까 염려했습니다.

오늘은 목자가 없는 시대입니다. 오늘은 내가 나의 신앙을 끝까지 지켜 내야 할 때입니다. 어느 공회나 어느 지도자에게 자기의 신앙을 맡겨 놓고 따르는 것은 어릴 때 잠깐 그렇게 할 수는 있으나 원만한 신앙의 모습은 아닙니다. 이제는 사실 맡겨 놓고 따를 만한 지도자조차도 없는 시대입니다.

'나는 독립으로'
이 시대 우리 모두에게는, 스스로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자기 목회에 자기가 목회자 되도록 요구 되는 때입니다. 과거 70년대와 80년대에는 이 노선에 발을 딛는 모든 이들에게는 주교 반사를 하라던 시대였다면, 그리고 이 노선대로 살려 하던 이들에게 전쟁과 그 이전의 시대는 목숨 걸고 믿으라던 때였다면, 오늘의 우리에게는 아무리 둘러 봐도 '나는 독립으로!' 이 말씀뿐인 것 같습니다. 만일 정말 다행스럽게 맡겨 놓고 따를 만한 지도자를 찾은 분이라면 이 시대 가장 큰 복을 잡았습니다만 그렇다 해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좋은 지도자를 모셨다면 바로 이 시기가 자기 혼자 언젠가 독립의 신앙으로 걸어 가야 할 때를 대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지금 당장에 지도자가 없어 외로운 시기라면 공회를 한탄하고 시대를 비판하고 교계를 욕하며 분을 풀 때가 아니라 즉각 자기 개인의 신앙에 자기를 목회자로 청빙하고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고 심판을 면합니다. 그래야 자타 모두에게 다 좋습니다. 막상 자기가 자기 신앙을 책임 지고 목회에 나서 보면 그 동안 자기가 욕하고 손가락질 했던 다른 목회자들이나 공회들보다 자기가 더 심하지 덜한 사람도 별로 없을 듯합니다.

양성원 과정에서 길을 찾으셨으면
다행스럽게 대구공회가 성경 100 독을 엄하게 고수하며 우리 전체 공회의 외형적 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대구공회는 백 목사님 사후에 수정과 진보를 택하여 공회 간판과 찬송가 교체를 단행하는 등 스스로 총공회인으로서는 오해 받을 일을 담뿍 하셨습니다. 그런 대구공회가 백 목사님 생전의 양성원보다 더 엄한 기준을 적용한다는 소식에 감사할 뿐입니다. 부공2는 서 목사님 때문에 일반신학으로 급격히 변질이 될 뻔했는데 부공1과 정통성 싸움을 하는 바람에 마치 한국교회들이 분열로 인해 보수 정통 경쟁에 불이 붙고 이 때문에 신앙 탈선이 막아 지는 데는 무척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양성원의 정상적 운영에도 적잖게 도움을 받고 있는 듯합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는 하나 배우고 하나 실행하면서 순종만 해도 전국의 공회가 소리 없이 큰 방향에서는 바른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향방을 모르겠고 정체도 모르겠습니다.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스스로 성경 공부를 통해 성경의 기본을 알고, 양성원 과정을 통해 스스로 성경에 박사가 되시고 또 신학의 간단한 견문을 통해 최소한 아폴리나리스와 그 시대의 정죄에 어떤 함정이 숨어서 오늘 우리를 노리는지를 알아야 이 시대 이 노선에서 '나는 독립으로!'라는 구호를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 그렇게 걸어 갈 수 있는 실력을 갖출 때입니다.

공회는 그 신앙의 본질과 성향과 오늘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가정교회를 기본으로 삼는 정도가 보편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총공회와 지도자들과 교계를 실컷 욕을 해 대는 분들이 막상 자기 가정의 자기 식구들에 대해서라도 신앙으로 인도하고 책임을 지라고 권하면 '내가 어떻게?'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거짓 선지자가 삯군이며 이리 노릇을 해도 잠잠하든지, 잠잠할 수 없거든 자기가 자기 식구 한 가정과 그 주변 몇 사람은 당연히 책임을 지고 나서야 합니다.

양성원 공부를 공회 교회들과 개인들이 활성화 할 시기입니다. 언젠가 크게 필요할 것입니다. 북한에 묶어 놓은 '70년 바벨론 생활'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가 다 된 것 같습니다. 공회 내에도 북한에 연고 있는 분들이 상상 외로 많습니다. 김현찬 김효순 박윤철 김응도 최귀주 최금주 등의 공회적 중심 인물들로부터 일반 교인까지 우리는 부산을 공회 본부로 삼았기 때문에 피난민들의 본부와 겹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일입니다. 연고도 없고 보내심도 없는데 혼자 보내심을 받았다 하면서 세계를 누비는 분들도 있으나, 북한이 열리게 되면 공회는 대량의 개척이 불가피한 노선입니다. 특히 북한은 전쟁 이전까지 환란기를 통해 비록 잠복은 했으나 이 나라 건전했던 초기 신앙만 기억하는 곳입니다. 오늘 남한 교회는 강단에서 포크댄스 하는 것을 기독교로 아는 정도입니다. 다른 교파나 교회들이 선전대의 신분과 역할로 북한을 휩쓸고 나면 우리는 고요히 공회 신앙으로 북한의 해방 된 주민들에게 과거의 도를 일깨워야 할 북한 개척의 본부와 같습니다.

당장에, 오늘 이 넘치는 시대에 공회 교인이 주일학교도 환란도 아무 것도 없이 자가용이나 타고 10시 예배도 힘들게 맞추며 슬슬 믿는다면 타 교단에 비해서는 엄한 바리새인들이 될 수 있을지라도 공회의 내용에 맞춘다면 큰 진로를 살 악하고 게으른 종일 것입니다.



6. 이 홈에서 또는 각자 홀로

이 홈에 양성원을 개설해 놓았습니다. 부공1에서 '백 목사님께서 사이버 양성원을 말씀하셨나요!'라고 비판하더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계속 듣고 있습니다. 부공1에서 지난 3월에 홈 페이지를 유료 개설했다가 제가 그 홈 페이지를 pkist 초기화면에 전면 소개하고 부공1 홈에 찾아 가서 앞으로 그 곳을 찾도록 대대적으로 광고를 계속 해 드리겠다고 하자 그 날로 홈을 폐쇄해 버렸습니다. 해서 안 될 일이면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 하고, 해야 할 일이라면 이 홈을 염두에 둬서야 되겠습니까? 부공1 홈을 개설하면서 홈을 개설하는 이유를 인터넷이 일반화 된 시대 상황으로 설명했습니다. 양성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부공1이 모르는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1936년에 교회를 출발하면서 바로 통신강좌로 연경을 했습니다. 당시 통신강좌집과 빼곡하게 적은 답안지를 이 홈에서 보유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에 통신강좌라면 오늘의 양성원 강좌를 인터넷으로 진행하는 것은 과거 통신강좌의 속도를 조금 더 빠르게 한 것뿐입니다. 양성원을 송용조 서영호 목사님 등을 세워 집단 강의를 하게 되니까 공회성이 급속하게 말살 되었으므로 백 목사님 최후의 양성원 강좌는 개인 과제로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교수의 집단 강의보다 개인들이 신학서 몇 권만 독서하는 것으로 대신하면 성경 1백 독과 함께 설교록을 강조하여 자기 신앙을 각자 지키도록 조처한 것이 이 노선의 역사적 사실입니다.

오늘 그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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