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1

최기주 집사님 댁을 찾은 피난 시절의 문선명

구남단1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2.09.05

1. 문선명의 사망
몇 달 동안 세상 소식을 전혀 듣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 소식은 듣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통일교 문선명이 죽었다 합니다. 일본인 10여 명이 결혼하여 사는 시골 마을 한 곳이 우리 공회 개척하는 곳이고 그 가정들과 여러 관계가 있었는데 통일교의 종교적 기반에 균열이 생기면 한 가정이라도 전도 될 가능성이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이 소식을 관심 있게 지켜 볼 것 같습니다.

통일교처럼 순식간에 치고 올라 오는 종교나 이단들은 주로 그 초기에는 그런 종류에 휘말릴 수 있는 성향의 사람들이 몰려서 성황을 이루나 세월이 약이라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본색이 드러 나는 법입니다. 그 본래가 불교나 유교처럼 순수하면 좀 천천히 그러나 오랜 세월을 견디게 되는데 통일교 전도관 정명석과 같은 뻔한 사기꾼들은 그 속이 얕아 불과 십 년 정도면 핵심 교도 그들이 알고 남이 알고 모두가 다 아는 열매가 외부로 드러 나게 되어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야욕을 달성하려는 이들이기 때문에 문제점은 속속들이 나타 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순수한 이들이 교주와 천하가 다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총 숫자는 얼마 되지 않으나 그런 이들만 일부 남고 나머지는 모두 사업가가 되거나 여러 종류의 자기 야욕과 성향을 따라 분화가 됩니다. 아직까지 통일교도로 남아 있다면 이 번 문선명의 사망으로 통일교의 종교적 균열이 일어 나면 교회로 전도 될 가능성이 있을지 소망을 가져 봅니다.

2. 문선명과 범냇골
이 노선의 지역적 중심지는 부산이었습니다. 부산에서 전도를 하다 보면 쉽게 접하는 것이 통일교도들입니다. 통일교의 세계 성지 중 부산의 범냇골에는 일본 사람 미국 사람들이 순례를 왔다가 우리와 대화를 할 일이 있으면 '아버지의 나라'라고 하며 아주 예절을 차리고 껌뻑 절을 합니다. 그 범냇골은 부산 사람들에게는 '교통부'로 알려 져 있습니다. 6.25 피난 시절 서울의 교통부가 임시 있었던 곳입니다. 바로 그 곳에 동천교회가 있고 설교록 편집 30 년의 대부분의 실무 책임을 맡고 있는 이치영 목사님이 계십니다. 제 둘째도 바로 그 성지로 가는 범냇골 입구에 살고 있습니다.

전쟁 시절에 측근 몇 명만 데리고 북한에서 피난 온 문선명이 그의 평생에 가장 극단적으로 어렵고 힘들게 살며 세 끼 밥 먹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라 해서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처럼 북한 김일성의 무슨 항일투쟁 시절 백두산 본영처럼 여기고 교육 시키는 곳입니다. 동천교회를 한 번씩 갈 일이 있을 때마다 범냇골 골짝은 꼭 눈길을 한 번씩 주게 됩니다. 범냇골 입구 교통부는 아내가 중학교 1학년부터 서부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저와 결혼할 때까지 10 년 동안을 시내버스를 타던 곳이기도 하고 또 현재 목회하는 곳으로 이동할 때까지 바로 이 범냇골에서 반사 생활을 했습니다.

3. 문선명과 박정화
바로 이 범냇골로 오기까지 문선명은 북한 공산당 치하에서 순교적 고난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 옵니다. 범냇골부터가 유사시대라면 북한 수용소 시절은 선사시대쯤 됩니다. 해방 후 평양에서 나쁜 짓을 하다가 문선면은 공산당 통치 하에서 흥남수용소에 갇혀 죽을 고생을 했는데 당시로서는 가장 혹독한 곳입니다. 이 곳에서 수용 되어 죽을 고생을 하던 그는 6.25 전쟁이 발발하고 그 해 가울에 미군의 북한 진격 때문에 극적으로 수용소에서 풀려 나오게 됩니다.

바로 그 수용소에서 문선명은 자기의 초대 비서실장이나 2인자라고 불리는 박정화라는 인물을 만납니다. 이 박정화라는 인물은 일제의 전문학교 출신으로 일본군 중대장을 거쳤고 해방 후 북한군의 대대장이었습니다. 재임 중에 부하의 잘못으로 지휘 책임을 지고 문선명이 있던 흥남 형무소로 갔는데 죄수로 일하던 중 문선명을 만나 신비한 체험을 통해 재림주로 모시게 되고 그의 교도가 되었으며 그는 대대장을 지낸 경력으로 곧 수용소의 총반장이 되자 죄수 문선명을 적극 보호하며 사상 교육을 철저하게 받습니다.

미군의 북진으로 문선명이 출옥하게 되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951년 1.4후퇴를 하게 되자 두 사람은 평양에서 걸어서 목숨을 건 피난 길에 나섭니다. 두 사람은 각각 불순 분자였고 특히 박정화는 인민군 대대장 출신이어서 신분이 드러 나면 전시 상황에서 무사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생사 고비를 넘기며 두 사람은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가장 혹독한 시련기에 제일 가까운 동지가 됩니다. 보통 피난 길은 서울을 거쳐 경부선을 축으로 내려 오는데 이들은 서울에서 내려 오다가 중앙선을 따라 내려 오게 됩니다.

박정화에게는 삼촌 되는 정기수가 충북 제천에 유지로 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산학교 교장 출신으로 조만식의 오른 팔로 이미 해방 후에 북한의 최고위급 거물이었다가 조만식의 숙청을 보며 전쟁이 나기 훨씬 전에 미리 공산당을 파악했고 가족과 남하한 인물입니다. 워낙 거물이고 친척이니 그 쪽으로 가면 전시의 최악 상황에서 신세를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선명과 제천을 찾아 정기수 댁에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 가정은 부산으로 피난을 간 상태였습니다. 지혜 있고 또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정기수는 트럭에 최대한 짐을 싣고 피난을 여유 있게 떠났습니다. 설마 하고 주저하던 모든 다는 피난민들과는 전혀 달리 중공군의 개입과 미군의 후퇴가 결정 되자 바로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 빈 집을 들렀던 것입니다.

박정화는 문선명의 생존이 어렵던 북한의 수용소 시절에서 피난 길을 함께 하며 문선명과 평생을 약속한 문선명 초기의 최측근이므로 문선명이 훗날 우상화를 통해 자기를 단장하기 전, 과거 가장 생생했던 엉성한 모습을 잘 아는 인물입니다. 처음에는 설마설마 하다가 나중에 문선명의 문제가 누적이 되고 또 문선명이 변신에 둔갑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며 그 실체는 물론 그 속에 들어 있는 중심까지 다 알게 되자 그는 단호하게 탈퇴합니다. 그리고 문선명과 만난 후 헤어 질 때까지 매일 적은 일기를 책자로 만들어 통일교에게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인물이 됩니다. 그는 문선명이 거쳤던 모든 여자들의 이름을 실명으로 밝혀 가며 당시의 상황을 세세히 적어 공개했고 그들은 너무 크게 속았고 또 문선명의 사기가 너무 크게 벌어 지고 있는 상황을 보며 스스로 이름을 밝힐 수 있게 협조까지 했습니다.

4. 정기수 가정의 공회 출석
박정화의 숙부가 되는 정기수는 그 처제가 최금주였고 그도 부산으로 피난을 왔는데 부산에서 백 목사님을 만나 이 노선의 제일 교인으로 새출발을 했으며 은혜를 받자 부산에 와 있던 언니 최기주 권사님을 전도하여 백 목사님의 하단교회 집회에서 바로 돌아 서게 합니다. 그리고 서울 수복 후 최금주는 서울의 청량리교회를 그리고 언니는 제천으로 돌아 가서 남천교회를 출발 시키고 두 분이 성향은 조금씩 다르지만 백 목사님의 1950년 이후 총공회 지방교회 교인 중에서 가장 신임하는 분들이 됩니다.

정기수의 사위가 법학계의 대부 김증한이고 그 손주 사위가 최연희 한나라당 사무총장입니다. 최금주 권사님의 막내 아들이 소선집 30 권을 영문 번역한 정 집사님이고 그 형님이 영화평론계의 대부 정영일이며 최기주 금주의 오빠가 석굴암 조실 능요대사입니다. 능요대사는 서부교회에서 믿고 장례를 쳤으며 김증한 교수는 사직동교회에서 임종했고 그 동서 송종섭 목사님이 천국으로 환송했습니다. 지금도 이 노선에는 청량리교회와 남천교회 출신의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즐비합니다.

5. 왜 문선명을 정기수 댁에?
문선명의 초기에는 지성인들이나 여성들이 그를 접하면 바로 미쳐서 발광적으로 광신도가 되었습니다. 당시의 시대 형편이 문선명에게는 물 만난 고기와 같았습니다. 이화여대 연세대의 교수들과 여학생들이 집단으로 쏠려 갔고 광신도들이 되었습니다. 최 권사님 자매분들과 가족들께는 대단히 죄송한 표현이나, 최 권사님 자매분들은 지성인이면서도 종교성이 많은 분들입니다. 한 번 결심하면 변치 않는 분들입니다. 이 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1951년 초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보여 주셨습니다. 조금 일찍 부산으로 피난을 갔기 때문에 이 노선의 두 기둥이 되었습니다. 일찍 떠나지 않았으면 인민군 대대장 출신의 지성인 조카의 안내로 제천 집으로 피난 온 문선명에게 아주 초기에 전도가 될 상황이었습니다. 조카는 문선명에게 초기에 겪은 신비로운 체험이 많았습니다. 조카는 정직하고 곧은 인격입니다. 신임하는 조카로부터 인간세계에 있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면 통일교의 기둥이 되지 않았을까?

최 권사님 자매분은 기본적으로 비이성적이며 난잡한 논리에 세뇌 될 분들은 아니지만 통일교의 초창기와 오늘까지의 창궐사를 보면 그 누구도 예외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극단적 두 길을 부러 거치게 하신 것 같습니다.

6. 이 노선의 비화들
이 노선은 옆 돌아 보지 않고 주님 한 분만 모시고 평생 세상을 담 쌓고 나왔으나 이 복음의 가치와 의미가 시대적이어서 그런지 시대적인 사건과 인물들과 특별한 접촉을 많이 시켜 주셨습니다. 때로는 경험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이 노선의 울타리가 되고 지원이 되었으며 어떤 경우는 아주 이 노선으로 돌아 서서 이 노선의 사람이 되기도 했습니다.

변영태 총리 가정은 1950년대 이 노선의 최고 핵심이었습니다. 많은 수고와 일들이 있었습니다. 1950년대의 여러 장관 가정들 이야기와 1960년대에는 청와대 이야기까지 하다 보면 이 노선이 무슨 세상 큰 데 관심이 있는 것처럼 또는 뭔가 그런 곳을 기웃거린 것처럼 오해 받기 쉽상이어서 가끔 이런 기회에 한 번쯤 소개를 합니다. 핫바지 지겟꾼 교단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남 달리 관리하고 계시며 특별한 인도를 하고 계신다는 표시를 곳곳에 뿌려 놓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노선은 한글도 읽지 못하는 목사님들이 권위 있게 목회하는 곳이며, 그런 분들을 보면서 한글도 읽지 못하는 제 또래의 젊은 목사님들이 칼빈과 백 목사님도 깨닫지 못하는 천상의 세계를 봤다면서 저서를 적어 대고 심지어 입에서 교리를 줄줄 쏟아 내는데 이 분들이 인간적 그릇이 좀 컸더라면 미신을 넘어 서서 비록 작지만 사이비 교주 흉내를 내겠다 싶은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 부작용은 이 노선이 질주하다 보니 흙먼지가 날릴 수밖에 없는 현상입니다.

문선명의 사망을 보며, 그가 구축한 세계적 위업에 사람들은 놀라는 동시에 그 후계 체제가 현재 평양처럼 또는 순복음교회처럼 얇은 유리 항아리에 균열을 보이고 있으니 재미 삼아 모두 지켜 볼 듯한데 저는 통일교도 중에 일본인 교인이 한 명이라도 이 노선으로 돌아 서서 이 노선의 일본 개척에 첫 발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고 또 문선명의 초기를 가장 잘 아는 측근이 이 노선 핵심 가정의 조카였으므로 그 가정에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지난 한 장면을 떠 올렸습니다.

전체 0

전체 568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6014
총공회 소식지 발간 책임자에게
6014 | 서기 | 2014.01.02
서기 2014.01.02 0 334
6015
위치, 책임, 처신, 인사...
6015 | 서기 | 2013.12.31
서기 2013.12.31 0 280
6016
폐허 된 세계문화유산 - 백년 전의 불국사 모습
6016 | 서기 | 2013.12.24
서기 2013.12.24 0 311
6017
송종섭 목사님의 경제 생활
6017 | 서기 | 2013.12.22
서기 2013.12.22 0 333
6018
공회의 소송금지원칙보다 더 새끼양 원칙도 있습니다.
6018 | 서기 | 2013.12.12
서기 2013.12.12 0 317
6019
갈수록 감사, 살필수록 감사
6019 | 서기 | 2013.12.04
서기 2013.12.04 0 270
6020
백 목사님께 그 이름 사용을 감사하며
6020 | 서기 | 2013.11.13
서기 2013.11.13 0 286
6021
공회 가입과 탈퇴 자료
6021 | 서기 | 2013.11.07
서기 2013.11.07 0 287
6382
자료를 올린거 같으면 확실하게 올리시든지
6382 | | 2013.11.09
2013.11.09 0 371
6383
'관련 내용의 전부가 아니며'라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6383 | 서기 | 2013.11.09
서기 2013.11.09 0 275
6380
공회 가입과 탈퇴 자료
6380 | | 2013.11.14
2013.11.14 0 326
6381
오타입니다.
6381 | 서기 | 2013.11.15
서기 2013.11.15 0 304
6022
감출 과거였던가?
6022 | 서기 | 2013.11.02
서기 2013.11.02 0 315
6023
왜 신앙의 자손과 혈육의 자손은 한 몸에 받지 못할까?
6023 | 서기 | 2013.10.11
서기 2013.10.11 0 295
6024
공회를 스친 노무현 정권의 동업자
6024 | 서기 | 2013.10.09
서기 2013.10.09 0 348
6025
감격스런 날 - 백영희 전기서를 손에 쥐고
6025 | 서기 | 2013.09.28
서기 2013.09.28 0 275
6026
1990년 11월 19일, 그 긴박했던 순간
6026 | 서기 | 2013.09.15
서기 2013.09.15 0 335
6027
서울대 출신 목회자
6027 | 서기 | 2013.09.08
서기 2013.09.08 0 644
6028
'합정동교회'
6028 | 서기 | 2013.08.31
서기 2013.08.31 0 320
6029
신앙의 지분과 대가
6029 | 서기 | 2013.08.15
서기 2013.08.15 0 249
6030
2013년, 목사님 사후 집회 24년 차를 맞아
6030 | 서기 | 2013.08.14
서기 2013.08.14 0 262
6031
공회의 예배 전부 시간
6031 | 서기 | 2013.07.27
서기 2013.07.27 0 310
6032
바른 길인가, 엉뚱한 길인가
6032 | 서기 | 2013.07.20
서기 2013.07.20 0 250
6033
53회의 '과거사 회개' 운동을 감사하며
6033 | 서기 | 2013.07.04
서기 2013.07.04 0 366
6034
노선과 소속은 생명보다 귀한 것
6034 | 서기 | 2013.07.03
서기 2013.07.03 0 281
6035
매일 기도 제목 중에서
6035 | 서기 | 2013.06.28
서기 2013.06.28 0 268
6036
모두, 여호수아가 되라!
6036 | 서기 | 2013.06.23
서기 2013.06.23 0 267
6037
다른 준비는 좀 되었는데
6037 | 서기 | 2013.06.21
서기 2013.06.21 0 267
6038
남정교회 서정교회는 서부교회로 합했으면
6038 | 서기 | 2013.06.12
서기 2013.06.12 0 350
6384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6384 | 반론자 | 2013.06.17
반론자 2013.06.17 0 294
6039
오늘 장례식 순서 맡은 분들께
6039 | 서기 | 2013.06.06
서기 2013.06.06 0 361
6385
이 노선의 3 대 기관
6385 | 서기 | 2013.06.07
서기 2013.06.07 0 258
6040
소수 정예
6040 | 서기 | 2013.05.22
서기 2013.05.22 0 291
6041
이 노선의 내면과 외면
6041 | 서기 | 2013.05.19
서기 2013.05.19 0 286
6042
설교록 - 성경을 위한, 성경 때문에
6042 | 서기 | 2013.05.03
서기 2013.05.03 0 282
6043
최전선 지휘관은 앞이 아니라 뒤의 적이 두렵다.
6043 | 서기 | 2013.04.30
서기 2013.04.30 0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