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여호수아가 되라!
구남단1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3.06.23
교회의 쇠락이 급속화 되면서 모두가 전전긍긍입니다. 곳곳에 성장을 거듭하는 몇 교회들은 급성장을 시기하는 주변의 눈치 때문에 몸집을 줄이는 기현상도 있지만 그들 스스로 그런 상황은 과거와 달리 단기간에 그칠 것이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서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사회 현상을 보나 세계 교회사를 보나 문화 인류학적 통계를 봐도 현재 우리의 사회와 교계는 정점을 찍고 이제 내리막에 들어 섰으며 가속도가 붙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공회 교회들 역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 우리는 공회의 본래 시각을 가지고 이 사안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동안 이 홈도 일반 시각으로 모든 상황을 상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노선입니다. 이 노선의 근본 사고방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노선적 신앙의 눈입니다. 일단 한국교회 문제만 가지고 보겠습니다.
과연 한국교회의 교세가 1980년대를 정점에 찍고 1990년대를 넘어 서며 몰락의 길에 접어 들었는가? 통계와 외형으로 볼 때는 명확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의 현상만 볼 수 있고 이 하나만으로 전부를 삼아 탄식하며 불안해 하며 원인을 분석하며 필사적으로 살 길을 찾아 보려는 교계의 노력 속에 우리는 신앙 내면을 보는 또 다른 잣대를 들이 대어 다시 이 현상을 보고 싶습니다. 아니, 봐야 합니다.
공회에 흔한 성경 상식 중에 겨자씨 생명이라는 설교가 있습니다.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며 하나님과 연결이라는 참 생명이란 한 번 심겨 지면 자라기만 자라지 생명이라는 것은 땅에 들어 간다고 땅이라는 세상에 놀아 나지를 않습니다. 생명 있는 신앙의 생명력이라는 것 하나만은 땅 속에 수 없는 요소들 전부를 하나로 묶어 일대 일의 싸움으로 봅니다. 그 어떤 것도 땅에 들어 가면 땅처럼 되고 땅이 되고 땅으로 움직입니다. 생명이 없는 교회, 생명이 없는 부흥, 생명이 없는 교계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전부가 큰 의미의 땅입니다. 감리교도 장로교도 순복음도 영락교회도 여의도교회도 삼일교회도 사랑의교회도 개척교회도 그 곳에 하나님과 연결 된 참 생명이 없다면 세상의 일부가 되어 비록 교회 간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올라 갈 때 함께 올라 가고 세상이 정점을 찍으면 함께 정점을 찍고, 그 세상이 쇠락의 길에 들어 서면 교회도 함께 쇠락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교회, 생명을 가진 참 교회도 그러할까? 생명의 신앙은 자라기만 합니다. 세상과 함께 오르내리는 것은 교회라는 외모는 가졌으나 내부는 세상입니다. 겉은 어떠하든지 속이 겨자씨 신앙이면 이 것은 자라기만 합니다.
모세의 신앙은 참 신앙이었습니다. 모세를 이어 가는 신앙은 여호수아와 갈렙 둘뿐이었습니다. 수백 만 명이 뒤를 따르고 여러 모습을 보였던 것은 하나의 모양이었습니다. 신앙의 부침이었으나 그 내부는 생명이 아니라 생명을 배우고 가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참 생명은 모세를 이어 여호수아에게 넘어 갔습니다. 예수님이 계실 때 수천 수만의 무리가 따른 것은 남들이 볼 때 예수님 교회의 부흥이었고 예수님의 십자가 순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으니 예수님의 개척 교회도 성쇠가 있었다고 볼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수님은 생전에 혼자셨고, 승천 후에야 12 명이 제대로 시작했고 이후 초대교회로 이어지며 수 많은 순교자를 냈습니다. 예수님의 교회는 갈수록 부흥했고, 수천 수만이 따르다가 흩어 진 것은 생명의 신앙들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교회의 수도 각 교회를 채운 교인의 수도, 그 어느 교회 그 어느 교인이 허수인지 참수인지는 말할 수 없으나 원리는 같습니다. 과거 한국교회의 부흥이 거품이었고 그 복음운동이 참 복음운동이 아니었음은 그들이 알고 누구나 알 수가 있었습니다. 바람 속에 지진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고 세미한 음성 속에 계셨습니다. 이 노선의 의미은 이런 면에서 이런 시대를 만나 또 한 번 빛을 발할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회 현상을 보나 세계 교회사를 보나 문화 인류학적 통계를 봐도 현재 우리의 사회와 교계는 정점을 찍고 이제 내리막에 들어 섰으며 가속도가 붙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공회 교회들 역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 우리는 공회의 본래 시각을 가지고 이 사안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동안 이 홈도 일반 시각으로 모든 상황을 상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노선입니다. 이 노선의 근본 사고방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노선적 신앙의 눈입니다. 일단 한국교회 문제만 가지고 보겠습니다.
과연 한국교회의 교세가 1980년대를 정점에 찍고 1990년대를 넘어 서며 몰락의 길에 접어 들었는가? 통계와 외형으로 볼 때는 명확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의 현상만 볼 수 있고 이 하나만으로 전부를 삼아 탄식하며 불안해 하며 원인을 분석하며 필사적으로 살 길을 찾아 보려는 교계의 노력 속에 우리는 신앙 내면을 보는 또 다른 잣대를 들이 대어 다시 이 현상을 보고 싶습니다. 아니, 봐야 합니다.
공회에 흔한 성경 상식 중에 겨자씨 생명이라는 설교가 있습니다.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며 하나님과 연결이라는 참 생명이란 한 번 심겨 지면 자라기만 자라지 생명이라는 것은 땅에 들어 간다고 땅이라는 세상에 놀아 나지를 않습니다. 생명 있는 신앙의 생명력이라는 것 하나만은 땅 속에 수 없는 요소들 전부를 하나로 묶어 일대 일의 싸움으로 봅니다. 그 어떤 것도 땅에 들어 가면 땅처럼 되고 땅이 되고 땅으로 움직입니다. 생명이 없는 교회, 생명이 없는 부흥, 생명이 없는 교계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전부가 큰 의미의 땅입니다. 감리교도 장로교도 순복음도 영락교회도 여의도교회도 삼일교회도 사랑의교회도 개척교회도 그 곳에 하나님과 연결 된 참 생명이 없다면 세상의 일부가 되어 비록 교회 간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올라 갈 때 함께 올라 가고 세상이 정점을 찍으면 함께 정점을 찍고, 그 세상이 쇠락의 길에 들어 서면 교회도 함께 쇠락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교회, 생명을 가진 참 교회도 그러할까? 생명의 신앙은 자라기만 합니다. 세상과 함께 오르내리는 것은 교회라는 외모는 가졌으나 내부는 세상입니다. 겉은 어떠하든지 속이 겨자씨 신앙이면 이 것은 자라기만 합니다.
모세의 신앙은 참 신앙이었습니다. 모세를 이어 가는 신앙은 여호수아와 갈렙 둘뿐이었습니다. 수백 만 명이 뒤를 따르고 여러 모습을 보였던 것은 하나의 모양이었습니다. 신앙의 부침이었으나 그 내부는 생명이 아니라 생명을 배우고 가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참 생명은 모세를 이어 여호수아에게 넘어 갔습니다. 예수님이 계실 때 수천 수만의 무리가 따른 것은 남들이 볼 때 예수님 교회의 부흥이었고 예수님의 십자가 순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으니 예수님의 개척 교회도 성쇠가 있었다고 볼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수님은 생전에 혼자셨고, 승천 후에야 12 명이 제대로 시작했고 이후 초대교회로 이어지며 수 많은 순교자를 냈습니다. 예수님의 교회는 갈수록 부흥했고, 수천 수만이 따르다가 흩어 진 것은 생명의 신앙들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교회의 수도 각 교회를 채운 교인의 수도, 그 어느 교회 그 어느 교인이 허수인지 참수인지는 말할 수 없으나 원리는 같습니다. 과거 한국교회의 부흥이 거품이었고 그 복음운동이 참 복음운동이 아니었음은 그들이 알고 누구나 알 수가 있었습니다. 바람 속에 지진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고 세미한 음성 속에 계셨습니다. 이 노선의 의미은 이런 면에서 이런 시대를 만나 또 한 번 빛을 발할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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