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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스런 날 - 백영희 전기서를 손에 쥐고

구남단1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3.09.28
1973년으로 기억 되는 8월 집회 기간 중 강사실을 맡은 전성수 조사님이 제게 강사실 부엌에 물을 긷도록 시켰습니다. 2-3회 채 되었을까 부엌에 물을 붓고 돌아 서는 순간 목사님이 강사실 앞에서 저를 보며 '아! 보자. 네 어머니가....'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젖먹이 때부터 목사님께서 어머니 품에 있는 저를 볼 기회는 자주 계셨을 것이나 제 기억에는 전혀 없기 때문에 성장하여 모습이 바뀐 후에는 첫 대면이고 저로서는 당연히 첫 대면입니다. 그 때 감동은 누가 부러워하든 욕을 하든 상관 없이 제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감격의 순간입니다.

1982년 10월 5일로 기억 되는 날, 목회연구소 직원이 되겠다며 꽃마을 기도실로 목사님을 찾아 뵈었을 때 처음에 중간반 반사를 하라 하시다가 제 간청이 이어 지자 환한 얼굴과 함께 '세계 신학을 발로 밟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세계 신학이라는 표현은 어린 사람에 대한 격려와 소망을 강조한 것으로 겉 듣고 지났으며 속으로는 이 땅 위에 최고의 직장, 최고의 자리를 거머쥔 순간에 어떻게 내려 왔는지 기억조차 없습니다.

감격스런 날을 손 꼽으라면 1984년 1월에 발간한 첫 설교록 출간본을 손에 쥔 순간이나 책으로 나가기 전에 원고를 들고 수 없이 교정을 보는 과정에서 접한 은혜의 순간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래도 앞에서 말씀 드린 2가지 경우에 이어 특별하게 기억하는 감격의 순간은 1998년 백 목사님의 모든 설교 자료를 데이타화하고 전국에 CD를 제한 없이 발송했던 일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 지고 있었던 중압감을 일순간에 다 털어 버렸다는 안도감 다행감 해방감은 이루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손에서 이 자료 일체를 내 보내지 않으면 백 목사님의 설교 자료는 원수나 적이나 공회 외부가 아니라 공회 제일 중심에 있는 인물들과 최측근들에 의해서 그대로 묻히고 없어 질 위기감에 늘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 자료의 저작권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제 귀에 입만 열면 고소한다는 말이 열 번이 아니라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고 훗날에 실제 그렇게 되기도 했습니다. 전국에 수 없이 보내고 재복사가 되어 퍼지는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2004년 조직신학서를 출간할 때는 이제는 목사님께 배우고 받아 가진 수 많은 은혜를 단 한 번이라도 제 수준에서는 정성을 드려 갚았다는 감격이 그렇게 특별했습니다. 내용의 완성도는 접어 두고 제대로 된 첫 조직신학서는 향후 모든 공회 교리 연구의 방향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이 한 번으로 향후 공회 내의 교리화 노력은 어떤 형태로든지 이어 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2013년 9월 28일 오후 6시 30분, 저는 제 생애 두 번 비교하지 못할 감격의 순간을 가졌습니다. '백영희 전기서' 출간물을 전달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출판기념회를 마련해야 하고 또 KBS MBC SBS TV 3사를 부르고 기독교계 전 언론을 모아 놓고 인터뷰를 하며 축하를 받아야 할 사안인데 세상은 우리를 모르고 우리는 그들을 평소 무시해 놓았으니 서로 그럴 기회는 가질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정도 뉴스는 되고도 남는다는 제 자신감 때문입니다.

1982년부터 준비했고, 1984년부터 목사님 가족들과 생활 속에서 설교록이나 일반 교인들이 접할 수 없는 세세한 모든 것을 녹음하고 받아 적을 수 있었고, 1994년 1월부터 제 마음에 만나야 할 사람은 상대방이 거부하지 않은 이상 거의 다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2012년에는 백 목사님의 가족들이 이 홈을 의식하면서 만든 부산연구소 홈이 개설 되었는데 전기 내용에 핵심은 모두 제 작업한 내용을 옮겼습니다. 말하자면 가족들의 최종 내용 승인을 받은 셈입니다. 사실 저는 가족 어느 분과 비교해도 백영희 생애에 관한한 더 많고 더 다양하며 포괄적인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가족분들로부터 제가 필요한 내용은 다 구술 받았고 저는 저만 가진 자료들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전기의 특성상 가족들이 핵심 내용이나 전반적 내용에 반론을 한다면 대단히 곤란한 문제가 생깁니다.

설교록이 백영희의 성경 해석의 앞면이라면 그의 신앙 전기는 그 설교록의 후면입니다.
설교록이 백영희의 목회 설교 이론이라면 그의 전기는 그 설교가 실천 된 실제입니다.
설교록이 교과서라면 그 전기는 교과서에 담지 못했거나 해설이 필요한 참고서입니다.
설교록을 제대로 읽는다면 전기를 읽지 않아도 그의 생애를 거의 그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실제 존재하기 어려우니 전기는 설교록의 보완이며 마무리입니다.

제가 이 홈에서 교계를 향해 또 공회 내부를 향해 백영희 설교록에 대해 설명하는 이유는 그의 설교 내용에 관련 된 그의 생활까지 오랜 세월 살펴 두 가지를 함께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록만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고, 생활만 아는 분들은 그의 옷가지만 붙들고 설명하지 그 행동에 담은 진리의 내면은 모릅니다. 제가 연구소 연구부를 맡고 32년째, 제가 알고 겪고 가진 자료와 지식을 만일 돈으로 명예로 교권으로 다른 목적으로 감추거나 의도적으로 조절해 가며 공개했다면 제가 받을 심판은 단언코 이 노선을 접하는 모든 이들보다 클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는 대로 가진 대로 최선을 다해 제공해 드렸고 안내까지 했으나 그 생애에 대한 소개는 이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사연이 많아서 지금까지 늦어 졌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하게도 최근에 제게 대한 고소 사건이 생겼고 그 고소를 준비하는 과정에 부산 연구소의 사이트 개설이 추진 되었고 이 모든 일련의 사건 때문에 작년부터 출간을 준비하고 오늘 그 책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2판 3판으로 이어 질 것이며 과거 기독지혜사의 서부교회 주일학교 책자처럼 많은 책들이 나갔으면 하고, 기독교 언론에 광고를 할 계획입니다. 이제 백영희의 신앙생애가 정식으로 출간 된 이상 전국의 도서관과 신학교에 이 책이 들어 갈 것이고 오랜 세월 백영희 목사님에 대한 관심과 존경심이 있는 분들에게 전해 질 것입니다.

이제 저는 백 목사님께 그 동안 받은 그 수 없는 은혜, 그 은혜 중 두 가지를 작은 선물로 포장하여 갚았습니다. 수준이 너무 차이가 나면 사실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받은 은혜는 아예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백 목사님과 저 사이는 아무리 수준이 차이가 난다 해도 인간 대 인간입니다. 조금은 갚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으나 저는 그 분께 받은 그 수 많은 은혜와 그 분께 배운 그 수 없는 교훈을 들고 조직신학 발간으로 한 번, 그리고 전기 책 출간으로 또 한 번이나 그 분께 작은 사은을 했습니다. 평생 노력해도 천의 하나, 만의 하나도 갚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제가 좀 무모한 사람이며 대구공회 어느 원로 목사님 말씀처럼 제가 성장과정에서 부터 시작하여 인간적으로 아주 몹쓸 사람이어서 이 노선의 조직신학과 그 분의 전기 출간이 얼마나 중요하며 어려우며 조심할 사안인데도 32년만에 턱! 내 버렸습니다. 완성도는 극히 낮을 것이나 이 노선의 교리와 이 노선의 핵심 연구 내용을 손 대는 이들은 그냥 두지 않겠다며 고발을 해 버리거나 아니면 안양이나 수원에 감춰 놓고 죽어도 못 준다는 이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좀 낫지 않을까.



주님 앞에 서는 날 왜 무모하게 출간을 했냐고 질책을 하면 저는 바로 이 말을 할 것입니다.이래 저래 이 노선에 제일 몹쓸 사람이 하도록 내 버려 둔 모든 공회의 지도자들 인재들 훌륭한 목회자들과 성자 의인들, 학자요 재사요 성장과정이 깨끗한 분들, 충신들 의리 있는 분들이 제가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었으니 먼저 그 분들에게 왜 보다 나은 것을 출간하지 않았느냐 먼저 하문해 주옵소서!

전기서 발간에 최종적으로 수고한 '저자 박선혜' 사모님, 그리고 저자의 글을 학생들 입장에서 다시 봐 주신 제2의 저자 선생님이 사실 저자이며 저는 그 분들의 발간을 위해 현장을 발로 뛰며 자료를 모아 올린 사람이나 이 책에 문제가 생기면 제 책임이라고 나서려면 이 글이 필요했습니다.

공회의 역사는 공회가 어려울 때 공회를 위해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을 던져 수고를 하고 돌아 오면 숨어서 기다리던 우리 편이 목을 댕강 날려 버립니다. 한두 번이면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을 것이나 늘 그러했습니다. 백 목사님이 고신에서 수고할 때 고신이 그러했고, 목사님 사후에 이 노선을 위해 했던 일도 늘 그러했습니다. 잠깐 기억 나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1989년에, 1990년에, 1994년에, 1997년에... 2013년에. 그 중에서도 가장 기막힌 일 중에 하나는 1991년 기독지혜사를 통해 서부교회 주교 책이 나간 후 백 목사님 생전보다 더 많은 이들이 견학을 오게 되었고, 공회는 그 동안의 분열과 분쟁 때문에 교계가 공회를 향해 기회를 노리던 일들이 이 책의 출간 때문에 무산 될 정도였는데 이 책이 나가자 말자 공회 교역자회에서는 이 책을 당장에 회수하라, 취소하라, 공회가 저자를 처벌하라는 결의가 추진 되었습니다. 교역자회에서 강한 발언권을 가진 분이 자신의 공로가 그 책에서 부각 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몇 분은 목소리를 한껏 높였고 다른 모든 목회자는 침묵했습니다.
2010년 9월에 뉴스메이크에 백 목사님에 대해 취재 보도가 나가자 신문사 기자에게 그냥 두지 않겠다며 협박을 했던 분이 바로 백 목사님과 공회를 제일 사랑한다는 분이었습니다. 기자가 제게 전화를 해서 그 분이 정말 백 목사님과 그런 관계인가? 기자 생활 평생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

옳은 일일수록 도고일장 마고일장이라는 상식은 우리 다 함께 잘 배워 알고 있으니 사실 이런 일에 영향을 받아 본 적은 없으나 이런 소란을 만들 때마다 공회 내에서 그 소란에 일리가 있다며 핑계를 대고 공회 반대 편으로 얼굴을 돌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분란을 만든 이는 자기 책임을 따로 질 것이나 얼굴을 돌린 분들은 자기 얼굴에 대한 책임은 각자 지게 되지 모함하고 거짓증거한 사람이 대신 져 주지는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공회 내에서 고소까지 하며 전국 교회를 찾아 다니며 비판에 열을 올리는 분들의 공통점은 공회 밖에서 공회를 이단으로 비판하는 일에 대해서는 입을 닫습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의 공통점은 선지자에게는 범처럼 용감하나 이방 나라에게는 옆 집의 강아지처럼 꼬리를 내립니다.


앞으로 갚을 은혜가 천도 만도 넘는데 이제 2가지 해 놓고, 그 것도 유아 수준의 두 걸음을 떼놓고 제게 찾아오는 미혹은 '할 만큼 했으니 주님 앞에 서도 되겠다'는 무력감입니다. 제 그릇이 작고 못 나고 누구 말대로 성장과정부터 아주 인간이라 할 수도 없는 수준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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