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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교회 '김정복 순교사업' - 내부 갈등

작성자
회원
작성일
2018.06.10
조회
69
소록도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일제 때도 고초를 겪었고, 6.25 때는 손양원 목사님처럼 피난을 거부하다 내부인의 고발로 순교를 합니다. 2003년 합동교단이 총회차원에서 순교자 전기집을 발간(김남식 저.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어지나)했고 정식 순교자로 등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도 이런 내부 사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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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합동] 소록도내 교회 갈등증폭

2004-03-31


전남 고흥군 소록도의 교회간 갈등이 고(故) 김정복 목사 기념관 건립을 두고 표출됐다.

소록도 지역 교회들은 6·25 전쟁 이전부터 소록도연합교회를 구성,운영됐다. 최근까지도 중앙교회 신성교회 동성교회 남성교회 북성교회 등 다섯 교회가 연합교회(김명환 목사) 형태로 예배를 드려왔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신성교회,지난 2월 중앙교회가 연합교회에서 탈퇴함에 따라 50여년간의 연합체제가 사실상 무너졌다.

신성교회와 중앙교회는 450여명의 성도가 등록된 소록도 지역의 대형교회로 현재 연합교회에는 120여명의 성도만이 남아있다.

연합교회와 신성?중앙교회간 갈등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연합교회가 추진해온 김정복 목사 기념관 건립에 대해 탈퇴한 두 교회가 반대한다는 글이 합동 총회 게시판에 올려지면서부터다.

문제의 글은 중앙교회 한 장로의 실명으로 올려졌으며 연합교회가 금전적 이득을 노리고 기념관 건립을 강행하기 때문에 신성교회 중앙교회 성도들이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연합교회 관계자는 “신성교회와 중앙교회 성도 가운데서도 개인적으로 기념관 건립을 위해 헌금을 내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긍정적”이라며 “탈퇴한 교회에서 연합교회가 하는 사업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앙교회와 신성교회도 김정복 목사는 소록도 교회에서는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에 기념관 건립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중앙교회의 한 장로는 “현재 탈퇴한 자체만으로도 우리 교회는 연합교회 측으로부터 미운 털이 박혀 있는 상태”라며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려 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 게시물도 무관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게시자로 실명이 거론된 중앙교회 장로도 “기념관 건립을 찬성하는 입장인데 누군가 음해하기 위해 내 이름을 올린 것 같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편 김정복 목사는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와 교도소 재소자 등을 섬기고 소록도 연합교회를 운영하던 중 6·25 전쟁 때 순교했으며 2001년 예장 합동 총회는 그를 순교자 명단에 정식 기재했다. 2002년부터 책자 발간과 기념관 건립 등의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기념관 건립에 1000만원을 헌금한 이후 총회 차원에서의 지원 계획은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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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획] 순교유적지를 가다 (11)고흥 소록도교회


정재영 기자
승인 2016.10.24 16:09
호수 2078


한센인 성도들의 긍지 ‘샛별’을 만나다
총회와 소록도교회 주도해 조성한 순교자 김정복 목사 부활동산, 순례자 맞이해


▲ 현재는 폐쇄되어 있는 소록도 서성교회당. 성도들은 역사기념관과 함께 이 예배당의 복원을 열망하고 있다.

소록도로 가는 길은 멀다. 녹동까지 널찍한 도로가 뚫리고, 육지와 섬을 잇는 소록대교가 가로놓이면서 물리적인 거리는 가까워졌을망정, 정작 섬 안으로 들어가는 마음의 거리는 아직도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옷깃 한 번을 더 여미게 된다.

섬까지 내려오기 전 먼저 들려야 할 곳이 하나있다. 바로 고흥읍 등암리 고흥보건소 옆에 조성된 샛별부활동산이다. 지금은 곱게 조경도 하고, 이런저런 설치물들이 들어서 제법 깔끔하게 단장된 모습이지만 본디 이곳에는 단출한 묘소 하나 뿐이었다.

묘소의 주인공은 소록도의 순교자 김정복 목사, ‘샛별’은 그를 부르는 별호이다. 애양원의 손양원 목사처럼 한센환우들을 위해 헌신했고, 삼엄한 전쟁 속에서 목숨 걸고 교회와 성도들을 지키다 생을 다한 공통점을 가졌지만 2000년대 이전까지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 소록도병원의 전신인 자혜의원.

김 목사의 고향은 충남 서천이다. 일본의 압제를 피해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으로 건너갔다가, 뜻한 바가 있어 평양신학교를 제9회로 졸업한 후 전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는다. 제주중앙교회 벌교읍교회 고흥읍교회 등에서 사역하며 신사참배를 거부하던 다른 동역자들과 옥고를 치르고 난 후, 1946년 장로교회로 소속을 옮긴 소록도교회에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한다.

일제 치하는 물론이고, 해방된 정부에서조차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반복되는 착취와 학살에 시달리던 소록도 사람들은 그를 통해 말씀의 위로를 받았고, 핍박 속에 흔들리던 교회도 안정을 찾아 장안리교회 설립과 더불어 소록도 일곱 교회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소록도 원생 중 정귀단이라는 이름의 젊은 처자를 감옥에서 구명하여 양녀로 삼기도 했다.


▲ 소록도 연합교회의 센터 역할을 하는 중앙교회당.

하지만 부임한 지 4년 만에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소록도에 드리웠다. 전쟁이 터진 것이다. 서울을 점령하고 빠르게 남하한 인민군은 1950년 8월 5일 소록도에까지 들어왔다. 교회 간판은 내려졌고, 예배는 중단됐다.

피신하라는 교인들의 권유를 마다하고 교우들을 돌보던 김정복 목사는 누군가의 밀고로 8월 28일 붙잡혀 고흥으로 끌려간다. “사랑하는 소록도 성도들아. 신앙절개 굳게 지켜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하나님이 위로해주실 것이니 안심하라.”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9월 30일 퇴각하던 인민군은 고흥경찰서 뒷산에서 김정복 목사의 머리에 총알을 발사한다. 그의 나이 69세였다. 얼마 후 아내인 홍영 사모와 사람들은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숨을 거둔 김 목사의 시신을 발견한다.

당시 그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했고, 고인의 뒤를 따를 수도 없었던 소록도 성도들의 애타는 마음은 <샛별>이라는 제목의 추모시에 잘 나타난다. “오직 불구 이 몸 묶여/ 예수 이름을 멀리 가서 사람들에게 못 전도하나/ 별따라 순교의 피여/ 십자가 제단 앞에 쪼개 들려서/ 산 제물로 주님 뒤를 따라가리라.”

하지만 대를 이을 후손도 없이 세상을 떠난 김정복 목사의 존재는 차츰 잊혀져갔다.


▲ 소록도의 다섯 교회를 지키는 김선호 목사(왼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한 교역자와 장로들.

세상이 다시 그를 기억하게 된 것은 후임 정두영 목사가 1977년 9월 30일 고인의 순교 27년 만에 소록도중앙교회당 앞마당에 김정복 목사 순교기념비를 건립하면서였다.

하지만 김정복 목사의 총회 순교자명단 등재는 다시 그로부터 24년이 더 지난 2002년 제86회 총회에서 이루어진다. 앞서 신세원 목사를 비롯한 역대 총회장들이 소록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이며, 승합차 제공과 교역자 파송 등 총회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성사된 일이었다.

마치 이전까지의 무관심과 방관을 한꺼번에 만회하려는 듯 총회는 2003년 순교자기념사업부 주관으로 김정복 목사의 전기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김남식 저)를 발간하고, 2007년에는 한국교회순교자기념관에 우리 교단을 대표하는 순교자 22명 중의 하나로 김정복 목사의 존영을 전시한다.


▲ 고흥읍 등암리에 김정복 목사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샛별부활동산의 입구 모습.

그리고 2년 전에는 총회 사회부와 소록도교회가 주도하고 고흥군이 협력하여 고인의 묘역이 대대적으로 정비된 샛별부활동산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김정복 목사의 생애와 소록도교회의 현황 및 유적을 소개하는 안내판도 설치돼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중이다.

김선호 목사는 “김정복 목사는 소록도교회 뿐 아니라 모든 한센인 성도들의 자랑이며 긍지”라고 밝히고 “앞으로도 그 정신을 모든 교우들이 계승하고, 소록도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전파할 것”이라고 밝혔다.


역사와 증언/ 소록도교회와 김정복 목사
64세에 찾아온 헌신적 일꾼


▲ 소록도교회를 대표하는 순교자인 김정복 목사의 묘역.

소록도는 전남 고흥군 고흥반도 남쪽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아름다운 섬이다. 섬의 모양이 작은 사슴을 닮았다고 소록도(小鹿島)이다. 이곳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말을 키우고, 바다에서 풍부한 수산자원을 거둬들이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어촌이었다.
그러던 이곳이 한센병환자들의 거주지가 된 것은 나라를 잃은 후 1916년 일제가 강제 격리정책을 진행하면서부터였다. 당시에 한센병환자들은 전국적으로 흩어져서 움막으로 집단생활을 하고 있었다.

일제 위생국은 소록도의 토지와 민가를 매수하고 1917년부터 환자들의 집단 수용을 시작했다. 특히 1916년 자혜의원을 개설하여 한센인들을 돌보는 병원으로 지정하고, 일본인 의사를 원장으로 파견하여 치료와 행정의 책임자로 근무하게 했다.

소록도교회는 자혜의원 2대 원장인 하나이가 근무하던 시절인 1922년 10월 8일 일본인 성결교단 목사 다나카를 초청하여 집회를 가지며 시작되었다. 이후 일본인 목사들이 들어와서 예배를 인도하고 목회를 하였다.

초창기에는 일본신사 건물에서 예배를 드렸으며 1927년에 병원확장과 함께 교회당을 건축했다. 이후 남성교회(남생리) 북성교회(구북리) 신성교회(신생리) 동성교회(동생리) 서성교회(서생리) 중앙교회 장안리교회 등으로 분립이 이루어졌다.


▲ 김정복 목사의 기도 터전이자 피난처 역할을 했던 굴날뿌리. 과거에는 동굴이었으나, 최근 인근 해역 공사로 만조시 물이 들어찬다.

그러나 일제는 내선일체 정책으로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기독교를 탄압해 교회는 어두운 상처를 안고 지도자 없이 방황했으나, 수백 명의 교인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고 고통을 감당했다. 해방이후 1946년 4월 고흥읍교회를 담임하던 김정복 목사가 소록도 교회를 방문하여 예배인도를 하다가, 아예 소록도교회로 부임하였다. 당시 김 목사는 64세의 고령이었다.


▲ 장영학 목사한국교회역사자료박물관 관장

이때부터 소록도교회는 성결교회 시대를 끝내고 장로교회 시대를 맞는다. 하지만 헌신적인 일꾼이었던 김정복 목사는 6·25전쟁 중 인민군에게 끌려가 총탄에 순교했다.
1977년 당시 소록도교회를 담임하던 김두영 목사는 순교 27년 만에 고인의 순교비를 세웠으며, 이듬해 묘역도 정비하여 ‘순록부활동산’으로 만들었다.




설립 100년 앞두고 신앙유산 지키기

최초의 예배당 역할을 했던 구북리의 1호사, 26년간 운영되며 수많은 한센인 교회지도자들을 양성한 성실성경고등학교, 소록도에 교회가 설립될 수 있도록 지원한 일본인 하나이 젠기스 원장의 공덕비, 소록도교회의 또 다른 공로자인 김두영 목사의 공적비.



소록도로 들어오면 김정복 목사의 자취 외에도 소록도교회 94년 역사가 담긴 여러 유적들을 둘러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군부독재 시절까지 소록도에 대한 인권탄압과 종교적 핍박이 끊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희생된 성도들의 수효 또한 적지 않았기에 이들 유적에는 저마다 한과 아픔들이 서려있다.

수천 명을 헤아리던 소록도의 현재 인구는 500여명, 그 중 기독교인의 비율은 여전히 90%를 상회한다. 하지만 소록도에 외부인들의 방문이 크게 늘고, 관광시설 조성계획, 타종교의 세력 확산 등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소록도교회 성도들은 자칫 소중한 신앙유산들이 사장되지 않을까 노심초사중이다.

때문에 소록도의 다섯 교회는 6년 후로 다가오는 교회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기독교 100년사 제작, 역사자료관 신축, 복지관 및 부대시설 개축 등 기념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중이다.

특히 소록도병원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소록리 자혜의원 부근에 약 6억 5000만원을 들여 기독교역사관을 설립해 역사자료와 영상물 등을 전시하고, 지척에 있는 옛 서성교회당을 복원하여 방문자들의 휴식공간과 공연장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사업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소록도연합교회회 사무장을 맡고 있는 김경술 장로와 소록도교회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천우열 전도사는 “고난의 상징이자 한국교회의 원형적 신앙문화가 잘 보존된 소록도교회가 후세에 영적 자산을 잘 물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라고 의미를 설명한다.

하지만 소록도 교회들의 교세가 예전과 같지 않고, 각종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과거에 비해 월등히 상승할 것으로 예상돼 추진이 쉽지만은 않다. 이에 소록도연합교회에서는 전국의 지역교회들과 한센인 신앙공동체의 후원을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문의 (061)844-0384.

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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