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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내세우지 않는 교회?

작성자
외부
작성일
2019.04.14
처음, 공회 교회로 새벽 기도를 참석하려 갔었는데, 공회 교회 간판과 십자가를 찾지 못해서 심히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공회는 백목사님 생전부터 십자가를 크게 걸거나, 교회 간판을 크게 하는 것을 멀리해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공회의 신앙 저력으로 봐서는 십자가를 무시하거나 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일거수 일투족에 깊은 내막과 의미가 있는 공회의 내면을 볼 때에 진정 궁금합니다.

공회교회가 십자가를 내세우지 않고, 간판을 크게 달지 않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극도로 꺼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이 오늘 우리의 신앙에 어떤 생명의 이치를 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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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14 10:41
    실수로 이름과 제목을 바꿔 썼습니다. 담당자께서 바로 잡아주시기를 부탁합니다.

  • 2019-04-15 22:02
    공회가 교회에 다는 십자가를 반대하거나 간판을 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크고 화려한 십자가 모양이나 간판들로 인한 득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최소화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백 목사님 생전 서부교회는 지붕 한쪽에 조그맣게 십자가 모양을 붙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불필요한 오해와 공연한 말들을 불식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였습니다. 십자가와 간판에 대한 설명으로 공회가 교회의 여러 형식들, 조직과 행정을 최소화 하며 예배도 단순화 하는 이유를 간략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1. 십자가

    1)보이는 십자가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위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아래로 택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 되어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당하신 희생이 십자가요 고난이 십자가요 죽으심이 십자가입니다. 보이는 십자(十字) 모양의 십자가는 예수님 당시 그 나라 기준으로 반역자나 살인강도 같은 중범죄자들을 사형시키는 형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심으로 그 십자가 형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보이는 그 십자가는 형틀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고난과 죽으심을 상징하고 그 뜻을 이어가는 교회라는 표시로 십자가 모양을 만들어 붙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택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 되어 오신 희생, 당하신 고난, 죽으심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2)보이는 물질이 보이지 않는 신령한 세계를 막아버립니다.
    육안으로 보이는 것이 강하면 그 속에 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참된 의미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데서 나왔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있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물질로 만든 보이는 십자가를 강조하는 만큼, 크게 만드는 만큼, 그 십자가를 지고 행진하는 연기를 하는 만큼 예수님의 십자가인 희생과 고난과 죽으심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기는 어렵습니다.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신령한 세계를 막아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신 도성인신의 그 무한한 희생, 택자 전부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 전부를 담당해야 하는 우주적인 고난과 죽으심, 그 동기인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 그로 인해 우리가 받은 영원한 하늘의 구원의 실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이런 깊은 내면들이 연상되어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물질로 만든 커다란 십자가, 번쩍번쩍하는 십자가, 금으로 만든 십자가, 높이 달아 놓은 십자가, 수많은 십자가 종탑들 보면 보이는 그것만 보이고 그런 것들에게 가로막혀 보이지 않는 깊은 내면의 세계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 십자가를 알고 나면 사람들이 물질로 만든 눈에 보이는 십자가는 거의 상관없는 것처럼 되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여성도가 꿈에 보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시는데 자기가 얼른 가서 그 피를 받아먹었다고,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아니냐고 백 목사님께 와서 물었다는 말씀이 설교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이는 십자가로 인해서 보이지 않는 십자가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 버린 전형적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라고, 성경의 인물들이라고 그려놓은 성화(聖畫)라는 것들도 같은 이치로 반대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십자가 다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으나 일부러 크게 만들어 붙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2. 간판

    1)간판은 최소화 했지만 이름은 견집했습니다.
    공회의 정식 이름은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입니다. 이 이름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았고 새로 오는 교인들이 망설이고 돌아서는 손해도 많이 봤으며, 이로 인해 공회의 일선 목회 현장의 교역자들은 그 이름으로 간판 다는 것을 주저하고 숨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많은 오해와 손해를 보면서도 백 목사님은 ‘총공회’로 약칭된 그 이름을 끝까지 견집하고 당당하게 내세웠습니다.

    이름은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이름 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이름이 없으면 그 존재는 존재 자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은 그 존재의 정체성입니다. 돌은 돌만의 특성이 있고 철은 철만의 특성이 있습니다. 호랑이는 호랑이라는 이름의 맹수의 특성이 있습니다. 곤충은 그 곤충만이 가진 특성이 또 있습니다. 단체는 그 이름이 가진 특성이 있습니다. 학교는 교육기관입니다. 체육관은 체육 하는 곳입니다. 공공기관은 정부단체입니다. 교회는 교회만이 가진 특성이 있습니다. 총공회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 총공회의 이름입니다.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라는 이름은 공회의 정체성, 신앙 사상, 신앙 노선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천하의 수많은 종교 중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예수교’다, 예수교를 믿는 많은 교파 중에 우리는 ‘장로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장로교 안에 있는 많은 교파 중에 우리는 개교회주의를 지향하는 ‘공회’이다, 세계 곳곳의 공회 교회들 중에 한국에 있어 ‘한국’이라 하고, 그 공회들 전체를 ‘총공회’라고 표시한다, 이것이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라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 이 간판은 견집했고 자랑했고 당당하게 소개했습니다.

    2)굳이 크게 달 필요가 없었습니다.
    서부교회 바로 앞에 와서 서부교회를 찾지 못해서 주변에 물어서 알았다는 말은 백 목사님 생전 흔하게 들었던 말들입니다. 그만큼 서부교회는 건물 모양도 다른 교회들과는 아주 달랐고 십자가도 아주 조그맣게 달아서 잘 보이지 않았고, 간판도 예배당 문 바로 옆에 조그만 현판으로 하나 달아 놓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교회라는 표시는 하지만 간판을 굳이 크게 달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입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은 그 말이 정말 실감 있게 적용되는 시대입니다. 좋은 물건은 써 본 사람이 압니다. 한 번 써 본 사람은 그 물건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물건은 찾지 않습니다. 치료 효과를 확실하게 본 병원이나 약국은 사람들이 줄을 서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광고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녀 본 사람, 치료 효과를 본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저절로 소문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말씀의 은혜가 중심입니다. 백 목사님 설교는 들어 본 사람이 압니다. 듣고 귀가 열리고 은혜를 받은 사람은 평생 백 목사님을 떠나지 못합니다. 평생 그 설교를 듣고 전합니다. 한 두 번 들은 그 말씀으로 평생의 신앙에 힘을 삼는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믿는 주님 말씀이고 먼저 받은 사람의 사명이니 당연히 전도하지만 굳이 교회에 간판을 크게 달아서 광고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들어 본 사람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전국에, 세계에 서부교회와 백 목사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보배를 알면 알아서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3)교회들의 경쟁을 피한 면도 있습니다.
    십자가 종탑을 높이고 간판을 크게 달고, 거기다 조명까지 넣고, 이름에 형용사까지 넣어서 자기 교회로 오라고 교회를 선전하는 교회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경쟁을 피한 것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모르는 사람들, 어린 사람들 때문에 복음을 친절하게 공손하게 전하지만 복음은 저자세로 전할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 천국 가고 예수 믿어 하늘과 땅의 복을 받으라는, 천하에 다시없는, 말 그대로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이 교인 쟁탈전을 벌이고 교회를 세상 영리단체들처럼 홍보하고 광고하고 선전하여 불신자들에게 덕을 끼치기는커녕 복음을 가로막는 그런 일들을 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2019-04-17 06:55
    신앙의 본질면에서 약간의 보충을 하고자 합니다.
    공회가 십자가를 내세우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사활대속의 가치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1. 감격의 신앙

    중생된 성도는, 나를 위하여 구원하시기 위하여 피 흘리신 예수님의 사활대속에 감격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만 보아도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나며 주님의 뜻대로 살기 위하여 각오합니다. 죄와 싸우겠다고, 하나님의 의만 이루겠다고, 하나님만 기쁘시게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옳습니다. 맞습니다. 이게 바로 교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2. 실행의 신앙

    그런데, 문제는 이 처음 뜨거웠던 감격의 마음이 쭉 이어지면 참 좋겠지만, '3일 충신은 누구나 한다'고, 부부 첫날밤의 사랑은 시간이 흘러가면 식기 마련이고, 그 이후가 문제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딤후 3:12) 시작은 뜨거워도 얼마든지 중간에 낙심 낙망할 수 있는 세계가 신앙의 세계입니다. 처음 뜨거운 감격은 좋지만, 감격만 가지고, 말만 가지고는 분명히 갈 수 없는 세계라고 하셨습니다. 가다보면 그 뜨거움이 식기도 하고, 원망도 나오기도 하고, 불신이 생기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럴찌라도, 그 속에서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느냐? 신앙의 길로 걸어가는데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계산하여, 진정으로 중간에 변절 없이, 다 뚫고 한 걸음씩, 변함없이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철저한 신앙의 계산. 감격과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실제 실행해나가야 하는 철저한 실무의 측면에서, 똑똑히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바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3. 공회의 신앙

    그래서 공회는 십자가를 크게 내세울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나약함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주님의 대속이 너무나도 크고 놀랍기 때문에. 그 주님의 대속이 너무나도 귀한데, 그 대속을 받은 우리는 너무나도 부족하여, 말만 앞세우고, 감정만 앞세우다가, 주님의 대속을 혹시 짓밟지는 않을까? 나 때문에 세상에서 주님의 이름이 욕을 먹지는 않을까?하여, 십자가를 최대한 작게 내세웁니다. 대신, 철저하게 어떻게 하면 대속의 은혜대로 바로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의 뜻을 실제로 이룰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죄를 이길 수 있을까? 이것만 연구하여, 그리 살 수 밖에 없는 신앙의 세계를 걸어가고자 애를 씁니다.

    예를 들면, 십자가의 원수, 죄를 실제 이기기 위해서는, 이것은 전쟁이기 때문에, 전쟁은 죽느냐 사느냐이기 때문에, 얼굴에 웃음기 싹 지우고, 말수를 줄이고, 실수할 수 있는 감정을 다 줄이고, 인간 보기에는 때로는 잔인하고, 치밀하고, 지독하게 보일찌라도, 오직 진리와 영감대로, 피 흘리기까지 죄와는 싸워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빈다. 아무리 눈물 흘려 감격하고 감사한다고 해도, 죄에게 져버리면, 이미 십자가의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말만이 아니라, 주님의 대속에 합당한 책임과 의무를 행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신앙의 세계는 전쟁이요. 전투라. 일거수 일투족, 하나님 앞에 틀린 것은 없는가? 잘못된 것은 없는가? 진정으로 주님의 대속을 기념하는 것이 무엇인가? 실제로 이행하는 것, 실행하는 것. 그리하면서 만들어지는 인격, 성품이 바로 주님 닮은 성품이라. 이것이 바로 공회의 신앙입니다.

    3. 건설 구원

    그래서, 때로는 인간 보기에는 오해가 된다하더라도, 실상은 오로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 못하느냐?
    여기에만 전력하는 것이 공회요.

    그러다보니, 허영을 없애고, 허탄을 없애고, 낭비를 없애고, 눈에 보이는 것은 반드시 꼭 필요한 것만
    실제는, 주님 앞에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는 것. 그리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의 전능의 능력을 힘 입는 것.

    매 순간 순간. 한순간도 낭비 허비 없이, 이런 신앙으로 살도록 하려는 것이 바로 공회이며,
    백영희 목사님의 건설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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