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장기 기증

작성자
LA
작성일
2018.12.01
과거에는 없었던 일들이 현재는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 중 하나가 장기 기증입니다.

생전이나 사후의 장기 기증을 공회에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전체 3

  • 2018-12-02 20:13
    양면을 생각해 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도입니다. 기독자는 자기 전부를 이웃과 형제 위해서 바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마음 다, 목숨 다, 힘 다, 뜻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 주님 말씀입니다. 참 어려운 일이고 현재 우리는 아득한 소망이지만 주님이 우리 위해서 전부 다 바치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 해야 합니다.

    반면,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된 몸을 장기는 물론 어느 지체 하나라도 우리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아끼듯이 자기 몸을 아껴야 합니다. 기독자에게 신앙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고 배웠습니다.

    기독자는 시대와 세상의 흐름을 알고 필요할 때는 그 흐름에 적응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기독자의 자세가 아닐 것 같습니다.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을 알고 세상을 선용하는 것이 기독교이며 성도입니다. 세상이 너도나도 장기 기증을 한다고 거기 따라가는 것은 성도의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성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부, 부모, 형제자매, 자녀, 같은 교인끼리도 당장 장기 기증이 필요하다면, 그런데 나밖에 해 줄 사람이 없다면, 그리고 내 장기를 줘도 내 생명에 지장이 없다면 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장기를 기증함으로 내 생명에 문제가 생긴다면, 아직까지 자기의 구원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 위해서 내 생명이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 하는 것은 많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구원은 자기 구원이 가장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장기 기증은 물론 목숨까지도 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그리 한다고 거기 따라 피동되는 것은 극히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 따라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세상 속에 들어갈 것이고, 속화로 가는 길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2018-12-02 20:31
    금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면을 폭넓게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1.장기 기증을 금하거나 또는 꼭 해야 한다는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부활시 우리 몸이 온전하게 부활되지 않을까 하여 온 몸을 그대로 가지고 죽어야 한다는 것은 부활한 육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부활한 육체는 시공을 초월하게 되는 신령한 몸입니다. 그 육체는 심장이 있어야 펌프질을 해서 혈액을 돌리게 되는 부활 이전의 것과는 다릅니다. 또 산소를 마셔야 살 수 있는 오늘의 육체와 같은 동작 기능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얼굴 모습은 우리가 그대로 가지고 부활할 것이지만 오늘의 미모라고 하는 용모가 부활한 후에도 미모로 평가되는 세계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주님으로 살고 대속으로 움직여진 것만이 용모로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죽든 결국 주님 오시기 전까지 우리 육체는 이 땅의 원소로 돌아가서 온 우주에 흩어져 있습니다. 화장을 하든 매장을 하든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우리는 매장의 성경 기록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것이 교회 장례법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해오고 있을 뿐입니다.

    2.장기 기증의 필요성

    갈4:15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은 눈이라도 빼어 바울에게 주고 싶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생명도 다른 사람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면 내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가능하다면 주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세상이 말하는 장기기증 운동에는 참가하지 않지만 장기기증 자체를 거부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남의 눈을 빼서 내 눈에 꽂아서 봐야 하느냐는 면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연에 속한 것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결혼 후 한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교회 직원이 있었고 여자분 쪽은 의학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조건이 다 되어 있다며 남자쪽에 병원을 찾아가 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직원은 신앙이 있는 직원이었는데 목사님의 지도는 그럴 것까지 있겠느냐는 대답이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막힌 부분을 뚫는 기술을 사용해서까지 아이를 낳아야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보통의 방법, 자연의 상태에서 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필요해서 주지 않은 것으로 보고, 만일 주셔서 좋은 것이면 당신이 알아서 주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직원의 경우는 모든 면에서 주님 은혜로 살아가는 정도의 신앙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지도를 하지만, 모든 평상 생활이 세상 속에서 어지럽게 사는 일반 교인이라면 약간 높은 차원으로 지도하지 않습니다.

    어느 부분은 내가 힘을 쓰고 어느 부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받아 가지겠느냐는 기준은 각자의 자기 양심으로 결정을 하되 자기의 전반적인 신앙을 살펴 결정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제 부모를 고려장하듯 돌보지도 않는 인간이 제 몸을 이웃을 위해 쓰겠다고 장기 기증 서약을 한다면 코메디겠지요?

    참고로, 현재 장기기증 운동을 벌이고 있는 그 단체 그 운동의 방향은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선상에 있다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그들이 벌이는 행동은 새끼양과 같아서 그 모습은 예수믿는 원래의 길보다 더 희생적이고 깨끗한데 그 속의 본질은 세상운동입니다.

    ---------------
    기독교인의 사후 화장과 매장에 대하여 (어린신앙)

    1.교리와 교회의 신앙노선이라는 차원에서 말한다면

    화장이나 매장이나 전혀 상관없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몸만 남겨져 있습니다. 죽은 몸은 단순히 흙으로 된 물질 재료일 뿐입니다. 물론 가장 귀한 존재인 사람이 사용하다 두고 가는 도구이기 때문에 가장 조심스럽게 관리해야 함에는 틀림없으나 교리나 신앙노선 차원에서 말한다면, 단호하게 매장이나 화장이나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이곳은 모든 신앙의 원칙을 세울 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이전 해 내려오던 대로 해 나가는 보수주의가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매장으로만 내려온 것이 교회의 장례법이니 할 수 있을 때가지는 매장으로 하도록 말씀드립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매장을 위해 너무 큰 문제가 발생이 되거나 감당 못할 불편이 생기면 납골, 그래도 안되면 화장으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사회적 여러 현상에 대하여 신앙인의 자세는 '앞장 서는 일에 조심'했으면 합니다. 신앙은 사회개량운동이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에 충실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회개량이 되는 결과가 많이 생깁니다. 그리 되는 것이 사회현상에 대한 바른 자세입니다.

    2.장기 기증 등에 대하여도 같은 원칙으로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현재 사회적으로 그 필요성은 지극히 부각되고 있습니다. 가족이 한다면 그 가족의 신앙으로 결정할 일이겠지만 자기가 자기 스스로 장기기증에 앞장 서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극히 필요한 문제가 발생되면 강제하는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그런 때가 되면 우리는 교리와 신앙노선에 의하여 사람의 육체는 물질의 일부로 보기 때문에 금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형제를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성구와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형제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법과 성경법 안에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법에서 꼭 그것이 필요한 경우는 그렇게 쉽게 단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신앙있는 부부에게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남자측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 간단하게 조처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여자측 가족이 말을 먼저 꺼냈습니다. 백목사님은 '그렇게까지 해서 아이를 낳아야겠는가? 주지 않으면 받지 않는 것이지....' 병원에 가지 않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갖게 된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장기이식이 필요한 경우가 생길 때, 의학적으로 가능한 여부만을 살펴 지나치게 기술 위주로만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당사자에게는 못할 말로 들리겠지만, 우리는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꼭 드려야 할 경우이며, 그는 꼭 받아야 할 경우인가? 꼭 그럴 경우는 아직까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3.한번 더 인본주의 신앙과 신본주의 신앙이라는 근본에 충실했으면 합니다.

    화장의 필요성이나 장기기증의 필요성은 일단 사회적으로는 극히 필요한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보면서, 인간의 조급한 마음이 너무 기술적 측면에서만 결정하고 있습니다. 인본주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계 수치에 다급해 하지만 말고,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우주적 자연 섭리, 인간이 계산한 바로 그 너머에 전혀 생각못할 변수가 오늘까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자연 섭리란 대개 그냥 따라가다 보면 자연적으로 해결된 것이 거의 전부였고 인간의 기교와 기민한 대처가 해결한 경우는 거의 없었음을 폭넓게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신본주의 신앙의 시각은 이러합니다.

  • 2018-12-03 10:08
    모 교회 사이트에 올려진 설교록 일부 글입니다.

    시편 30편 8절-9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피는 활동이요, 피는 생명이요, 이것이 주님 앞에서 다 소모되지 않고 남은 채로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 몸이 주님에게 다 쓰여지지 않고 남은 채로 흙으로 돌아간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도바울은 자기의 피와 목숨, 전 인격, 전 삶을 주님 앞에 관제로 부음이 되었다고 했다. 사도바울의 이 신앙이 정말 놀랍다. 사도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생으로서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올 수 있는 철학박사요, 종교학 박사요, 율법학 박사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후 그걸 다 내버렸다. 그런데 오늘날 교인들은 예수도 잡고 세상 것도 잡으려는 식으로 예수를 믿고 있다.
    석가는 세상 것을 다 버리고 산으로 들어갔는데 오늘날 교인들은 석가가 버린 그것을 잡으려고 머리가 터지도록 싸우고 있다. 목사님들도 서로 장 자리를 잡으려고 싸우고, 뇌물도 바치고 한다. 요즘 장로안수를 받는 데 얼마냐? 집사안수를 받는 데 얼마냐? 벌써 10여전 전인데 순복음 교회에 다니는 집사가 나에게 말하기를 집사안수를 받는데 500만원을 내야 하고, 장로가 되려면 1억을 내야 한다고 한다. 예수가 그렇게 가르쳤느냐?
    사도바울은 부자였는데 주의 복음을 전하느라고 모든 재산을 주님 앞에 다 써버렸다. 그래서 말년에 보면 누구로 통해서 외투와 가죽성경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이게 다윗에게 남은 재산이다. 그의 재산은 물론이고 그의 생애 전부를 주님 앞에 쏟아드렸다. 피 한 방울 땀 한 방울까지 다 드림이 되었다. 이게 하나님 앞에 번제다. 그런데 요즘은 기독교인이고 목사고 어떤 식이냐? 이런 건 없고 어쨌든 자꾸 세상을 달라고 한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우리 성도들은 남 보기에 돈 벌고, 회사에 다니고, 공부도 하고, 장사도 하고, 농사도 짓고 할지라도 성경에 ‘너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했으니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입기 위한 목적으로 하게 되면 이게 곧 하나님께 영광이다. 성도 각자가 하나님처럼 닮아갈 때 하나님께서 ‘네가 어찌 그리 날 잘 닮았느냐?’ 라고 하신다. 이게 하나님께 영광이다. 가르침을 받는 학생이 선생의 실력을 닮았다면 이 선생이 그 학생을 보고 ‘너는 내 영광이다’ 라고 한다.
    우리 성도들이 일반적인 모든 삶을 예수 잘 닮는 목적으로 산다면 이 사람의 일생은 전부가 하나님 앞에 번제가 되는 거다. 그 신앙사상이 번제가 되는 거다. 그의 삶 전부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그 말이다. 그러면 번제의 삶을 살면 자기는 빌어먹는 거냐? 아니다. 영원히 존귀 영광자로 나타난다. 죽음의 선을 넘어가서 영원한 존귀 영광자가 되는 거다. 주님의 삶을 보면 우리가 이걸 알 수 있다.
    다른 교회에서는 오늘을 부활주일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보면서 그 부활로 인해서 뭐가 살아났는지를 봐라.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을 하게 되는데, 우리가 부활할 때 뭐가 살아서 올라가겠는가를 생각해 봐라. 주님께서 33년을 사시고 부활을 하면서 이 땅에 내버리고 간 게 있을까? 부활이라고 하는 체로 주님을 아무리 거르고 걸러도 걸러지는 게(주-이 땅에 속한 게) 있을까, 아니면 전부 다 올라갈까? 전부 올라간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부활 때 전부 올라가겠느냐, 빠지는 게 더 많겠느냐? 이게 무슨 말이냐? 예수를 믿으면서 예수로 닮아진 것은 다 이게 부활의 능력성이 되고, 미모성이 되어서 올라가다. 이것을 위해서 성도들을 부활을 시켜서 변화시키는 거다. 오늘날 부활절 절기를 지키면서 뭘 깨닫고 가느냐?
    예수는 왜 믿는 거냐? 첫째는 세상에서 복 받으려고 믿는다? 두 번째는 병 안 걸리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려고 예수를 믿는다? 세 번째는 주님을 닮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 이 세 가지가 다 틀린 거냐, 아니면 일부만 맞는 거냐? 아니면 맞는 답도 있느냐? 맞는 답이라면 어느 게 맞는 거냐? 세 번째가 맞다.
    우리의 삶 전부가 주님께 번제로 바쳐져야 하겠는데, 대전에서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은 장기기증을 하는 게 신앙적이지 않다고 하니까 어느 목사님이 예수사랑으로 장기기증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했다.
    그 목사님의 몸이 누구의 몸이냐? 성도들의 몸이 누구의 몸이냐? 성도들의 몸은 주님의 것이다.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의 몸이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말하는 대로 ‘주님 앞에 번제로 완전히 소비하고 가거라’ 하는 뜻으로, ‘나의 피와 땀 노력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하나님 앞에 다 소비하고 가거라’ 하는 뜻으로 내가 그 말을 한 거다. ‘너의 힘과 뜻을 다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너의 전 인격을 다 바쳐서 번제의 삶을 살아라’ 하는 의미다.
    그 목사님의 말인즉 자기가 죽을 때 남은 눈을 남에게 빼주고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말인데 나의 말인즉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지 말라는 뜻으로 장기기증은 안 된다고 하는 거다. 오늘날 목사님들이 일반적 사회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교인들을 많이 가르친다. 이건 잘못된 거다. 하나님의 의사와 뜻은 다른 거다.
    창자 빼주고, 눈 빼주고 하는 것은 안 믿는 세상에서 많이 한다. 그런데 믿는 사람으로서 생각을 해본다면 병원에서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면 ‘이제 다 처치하고 오너라’ 하는 신호인데 남의 창자를 빼서 자기에게 넣고, 남의 피를 빼서 자기에게 넣고 한다고 하면 이게 하나님 앞에 바른 거겠느냐?
    우리의 신앙은 미래에서 되어질 것을 현실에 잡아다 놓고 오늘의 현실에서 그걸 만들어 가는 신앙이다. 이게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이다. 성도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입는 이거 외에는 없다. 어떤 성경구절로 들어가도 이거 외에는 없다.
    내 말인즉 ‘네 몸을 아끼고 아끼고 있다가 예수사랑을 실천한다고 하며 다른 사람에게 눈을 빼줬을 때 그 사람이 잘 보이는 눈을 가지고 어떤 죄를 지을 런지 네가 아느냐? 네가 책임을 질 수 있느냐?’ 그 말이다. 그러니까 ‘눈을 빼주는 게 옳으냐, 그르냐’ 이전에 네가 좋은 눈이 있을 때, 그 눈이 어두워질 때까지 그 눈을 가지고 부지런히 성경을 보고 깨닫고 만들어져라 그 말이다. 멀쩡한 눈을 죽을 때까지 남겨놨다가 어디에 쓸 거냐? 남겨놔 봐야 결국은 무덤에 들어가서 썩는 게 아니냐? 우리 성도들의 몸은 주님의 것이니 우리가 주님의 몸을 왜 함부로 쓸 거냐? 주님을 위해서 다 쓰고 가자 그 말이다.
    주님 앞에 게으름을 피우며 살다가 예수사랑을 나타내는 것처럼 안 믿는 사람에게 내 눈을 빼준다면 그 사람이 그 사랑을 받아서 ‘나도 저 사람처럼 예수를 믿겠습니다’ 하겠느냐? 이건 인조사랑이다. 주님의 사랑은 진리이치로써만이 깨닫게 되는 거다. 그래서 목사님들에게도 누누이 얘기하는 거다. 물질을 가지고 인간을 사귀지 말아라. 그러면 반드시 원망하고 싸우고 떨어진다. 이런 일로 인해서 얼마나 잘못되고 얼마나 마음이 상하는지? 우리가 웬만하면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
    주님의 자녀들은 영특해야 한다. 지혜로워야 한다. 미련해서 사단 마귀의 밥이 되고, 거짓 종들의 밥이 되고, 신앙사기 다 당하고, 몸까지 빼앗기고, 가정파탄이 되는 일이 얼마나 많으냐? 우리는 영의 눈을 가지고 사람의 활동의 배후에 무엇이 조종을 하고 있는지? 말을 하는데 무엇으로 감화 감동이 되어서 그 말이 나오는 건지? 신앙을 한다고 하는 그 정신 사상이 무엇이 바탕이 된 것인지? 이런 걸 다 분별을 해야 한다. 이런 분별은 교만이 아니다.
    우리의 생애 전부가 분초찰나 순간마다 세상성으로 헛으로 낭비되고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운동에, 진리운동에,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에 다 쏟아 부음이 되는 것이 관제의 삶이다. 그것으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자기에게 하나님의 성품이 입혀지는 거다. 영광자로 나오는 거다. 계;에 보니 이 땅에서 이런 삶을 사신 예수님을, 그 업적을 신령천국에서 천군천사들과 성도들이 찬양하고 있다. 모세도, 예수님도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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