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예정과 인간 의지는 모순입니다.

작성자
학생
작성일
2018.07.04
하나님은 천국 갈 택자와 지옥에 갈 불택자를 미리 예정해 두셨다는 것이 예정 교리입니다.
인간은 자유를 가지고 죄나 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이니 자유의지도 교리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는 서로 딱 부딪힙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한쪽이 강한 만큼 한쪽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정이 60%라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는 40%뿐입니다.
예정이 완전이면 자유의지는 전혀 없게 됩니다.
인간의 의지가 100% 주어졌다면 하나님의 예정은 없어야 합니다.

어떻게 교인들에게 설명을 해야 할까요?
그리고 남을 가르치기 전에 자신은 이 양자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고 있어야 할까요?
전체 7

  • 2018-07-04 21:15
    (삼위일체 교리)
    하나님은 세 분이라고 강조하는 만큼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말은 후퇴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강조하는 만큼 하나님은 세 분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양립할 수 없는 이 양쪽의 절대 진리를 한 곳에 모은 단어가 ‘삼위일체’입니다. 이 단어로 하나님의 세 분과 한 분의 관계를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하나님은 세 분이면서도 한 분이라는 진리를 향해 우리가 알아 가기 시작하는 꼬투리를 잡았습니다. 첫 길을 열었습니다. '3위1체'라는 단어로 자꾸 묵상하다 보면 그 단어 속에서 과거 몰랐던 모순을 해결하게 됩니다. 수학으로 1 + 1 + 1 = 1, 이 것이 3위1체이니 시간과 공간의 칸막이가 있는 오늘 우리로서는 이런 수학은 불가능입니다. 그런데 시공을 초월한 신령한 영계의 존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그 수학이 자연스럽습니다. 따질 것도 없습니다.

    (신인양성일위)
    예수님은 신성 하나님과 인성 사람이 '한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점을 강조하면 인간이라는 면이 약화되고, 예수님을 인간이라고 강조하다 보면 그 속에 하나님이라는 점이 흐려 집니다. 그런데 '신인양성일위'라는 표현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첫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1 + 1 = 2, 이 것이 신인양성일위의 수학식 표현입니다. 이 땅 위에서는 이런 수학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공을 초월해 버리고 시간과 공간이 막아 놓은 벽과 불편이 없는 신앙의 세계, 신령한 세계에서는 그런 수학이 당연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성경의 단일성)
    수십 명의 저자가 1,400여년의 세월을 통해, 제각각 다른 환경에서 적은 66권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1 + 1 + 1 + 1 .... 66번... = 1, 성경의 66권을 수학으로 표시하면 이렇습니다. 물질계 우주와 영계의 기본적인 차이 때문에 세상에서 불가능한 것이 신앙에서는 너무 당연한 것이 많은데 질문 내용도 이런 문제와 같습니다. 영계와 물질계의 기본 성격 때문에 이 세상 우리가 고장이 나고 어려서 모순으로 보이는 것이며, 실제로는 당연한 사실입니다.


    (시대적 과제)
    성경과 삼위일체와 신인양성일위는 역사적으로 교회가 수학적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성경의 단일성과 삼위일체와 신인양성일위라는 교리 표현으로 영계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교리적 표현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역사 교회가 아직 해결을 하지 못해서 이 모순을 해소하고 실체를 깨달아 갈 수 있는 '표시'를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회 노선의 우리가 과거 '성경의 단일성'과 '삼위일체'와 '신인양성일위'라는 표현을 만들어 낸 초대교회에 이어 구원론적 시야로 이 모순을 해결할 단어를 함께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 2018-07-05 11:43
    1. 성경 정경
    2. 삼위 일체
    3. 신인
    4. 일위
    5. 양성
    6. 하나님의 절대 예정 : 기본 구원
    7. 건설 구원

    하나님의 '절대 예정'과 인간의 '자유 의지'의 완전한 관계 정립.
    기본 구원과 건설 구원은 본래 하나인 '구원'인데,
    이 '최종적' '완전적 구원'을, 마지막으로 설명하시고, 세상을 끝내지 않으실까?

    6천년 역사, 세상을 끝내시기 전, 마지막 말세 교리의 정립.
    이 역사적 상황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라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 2018-07-06 15:13
      하나님의 구원의 예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예정과 그 범위성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하나님의 예정범위를 넘지 않고, 또한 그 하나님의 예정성은 인간의 자유성을 침해하지 않고 인간의 구원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행동이라는 실행성과, 하나님의 예정의 예정성과 하나님의 예지성과는 복선적 단선입니다. 즉, 하나님의 예정과 하나님의 예지와, 인간의 자유성과는 같이 맞아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굳이 용어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대 예정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예정성과 인간의 실행성은 동시(맞아 떨어진다)라고 하는 것이며, 다른 말로는 복선적 단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풀어서 말을 한다면 하나님의 예정성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절대로 침범하지 않고,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예정성을 절대로 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와의 관계를 압축해서 한 마디 용어로 말한다면 ' 복선적 단선'입니다.

  • 2018-07-06 20:54
    '복선적 단선'이라는 설명은 예정과 자유의 모습을 결과적으로 설명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질문한 것은 결과적 설명이 아니라 모순으로 부딪히는 현장의 상황, 그 내용에 대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결과적 설명은 '나그네'께서 복선적 단선이라 표현한 것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 2018-07-07 02:02
    저는 이렇게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절대예정은 하나님의 창조주의 스케줄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의지를 진행함의 방향을 가르치신 표현이고,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의 피조역사이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역사 현상은 하나님의 피조물과 피조역사입니다.
    그러니 피조물인 우리가 어떤 자유의지를 사용하든 이것은,

    자유의지 조차도 피조물이고, 자유의지를 자유로, 내 의지로 어떻게 해도 피조물이지요.
    단지 내가 내 스스로를 피조물로 느끼지를 못할 뿐이라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는 자유의지와 절대예정이 모순으로 보이는 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일때 내가 열심히 자유의지를 했는데,
    그게 하나님의 절대예정이라고 생각하니, 하나님을 우리와 동급으로 판단해서 가지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 2018-07-07 10:08
      1+1=2, 이것이 안간의 생각이고 경험입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1+1=1, 이렇게 하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와의 관계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문제는 모순되는 것같은 이치를 왜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는가를 아는 게 우리의 이룰구원에 유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이시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모든 만사를 잡아 돌리는 분이라면 믿는 우리는 현실의 모든 것을 여기에 맞춰서 살아나갈 때 우리의 매사는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 우리의 구원이 이뤄지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때는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 마귀의 성품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성분적 예정이라고도 합니다.

  • 2018-07-07 16:36
    '나그네'는, 제가 아는 분 같습니다.

    우리가 배워왔던,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 의지의 관계의 이 표현은, 참으로 귀합니다.
    그러나, 실제 적용에서는, 이 표현조차 '예정'과 '의지'라는 완전히 성분이 다른 둘을, 그저 '하나'로 봉합 시켜놓은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절대 예정, 주권 앞에 절대 피동, 절대 순종이 나오지 않는, 절대 예정 교리는 쓸모가 없고,
    인간의 자유 의지로, 원하고 원함으로, 자기 힘으로 죽도록 충성하는 노력이 나오지 않으면, 의지 교리로 쓸모가 없습니다.

    이 둘을 아무리 이론적으로, 결과적으로 구축해 놓는다 하여도, 이 상호 이율 배반적인 신앙이, 충돌이 아니고, 치우침도 아니라, 완전히 하나가 되어서, 진정으로 현실 가운데, 완전하고 온전한 구원의 역사가 펼쳐지지 않으면, 이것 역시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뿐입니다.

    총공회 아니. 백영희 목사님이 가르쳐 주시고 가신 이 교훈은, 이 실상의 구원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를 설명해주고 가셨습니다.
    정리를 해야합니다. 그게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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