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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작명] 다니엘 3친구의 이름을 바벨론식으로 부르는 이유? & 예수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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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3644
작성일
2020.07.28
(원제)질문요 (혼동스런 외부 비판-관)

 

 

간단한 질문입니다.

굳이 몰라도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닌것 같지만요.

 

 

문득 궁금해서 질문을 올립니다.

다니엘을 공과로 배우거나 할때, 항상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라고 배웁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느부갓네살(?)왕이 벨드사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잖습니까.

다니엘은 벨드사살 이란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다니엘이라고 부르는데,

왜 항상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 대해서 배울땐 다니엘처럼 원래 이름(이스라엘이름)

을 부르지 않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고 부르는건가요?

 

 

음..그리고 또 질문이 한가지 더 있네요.

이것 역시 별것 아닌것 같지만..처음엔 약간 충격을 받아서요.

저 역시 총공회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어려서부터 들은 말이, 예수님의 초상화는 모조리 가짜라던가..

공산주의자들이 예수님의 초상화를 밟고 지나가라고 할때, 안 밟는다고 한 사람들은

순교자가 아닐수도 있다던가..

하여튼 예수님의 이미지(?)는 항상 가짜라거나, 알수 없다고 배웠거든요.

뭐, 예수님의 외모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만,

생각해보니, 예수님 시절에 언어가 없었던게 아니고,

화가가 없었던게 아니잖습니까?

예수님이 그 시절에 유명하셨을텐데, 초상화라던가, 그림한장 안그렸을까요..

학교에서 그런 것들을 가르쳐 주기에 올리는 질문입니다만,

뭐 예수님의 키가 155정도였다느니, 전혀 마르지 않았다느니, 뭐라느니,

말이 많더군요.

분명히, 예수님의 외모는 전혀 중요한게 아닌걸 알지만,

어려서부터 그렇게 거의 절대적이다시피 들어왔던 한가지 사실이 사회에서 깨져버리는걸

직접 경험하고 나니, 뭔가 기분이 뒤숭숭하더군요.

속은 느낌도 처음엔 없지않아 있었구요.

지금 저 역시도 조그마한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형상은 알수없다 뭐 그런 말들을 하곤 하는

데요. 이건 제가 몸소 겪은 한가지 사례구요.

총공회 안에도 이런 간단하면서도 초신자라고 합니까..하여튼 신앙어린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할 만한 조그마한 지식들이 혹시라도 많은건 아닌지..

그냥 지나가다 궁금해서 올려 봤습니다..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질문:2006-10-08 19:04:49 일반학생
출처:쉬운문답3644




답변:2006-10-08 22:01:07 yilee [ E-mail ]

 

1. 다니엘 세 친구의 이름을 바벨론 식으로 부르는 이유

 

 

1.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름

원래 유다 나라에서 이름은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이고
포로된 바벨론이 준 이름은 '벨드사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로 바뀌었으니
이왕이면 불신 나라에서 지어준 것보다 원래 사용하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2.다니엘의 이름을 '다니엘'로 오늘 우리가 부르는 이유는

다니엘서라는 성경 이름에서도 '다니엘'을 사용했고
다니엘서 내용 내용도 '다니엘'을 계속 사용하고 있으며
그 이후 다른 성경에서도 늘 '다니엘'이라고 적고 있으므로
원래 유다 나라에서 지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3.'세 친구' 이름은 오늘 우리가 바벨론 식으로 부르는 이유는

다니엘서에서 세 친구를 설명할 때는 유다 이름을 사용하고 있으나
그런 경우는 1장과 2장에 잠깐만 나오고
그것도 다니엘과 함께 나오지만

그 세 친구가 다니엘과 상관없이 자기들만 직접 환란을 당한 것은
다니엘 3장의 풀무풀에 들어가는 사건인데

이 사건을 기록할 때 세 친구의 이름은
바벨론의 왕과 그 나라 사람들이 그 3명을 자기들이 지은 식으로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다니엘 3장에서도 그들이 그때 말한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풀무불에 들어가서 승리하는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세 친구의 이름을 어느 나라 식으로 부르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왕의 명령을 어기고 풀무불에 들어가는 환란을 기록한 것이므로
세 친구의 이름은 당시 왕과 그 신하들이 입에 담았던 그들 식 이름을 그대로 적었으므로

오늘 우리가 다니엘의 세 친구 이름을 기억할 때
유다 나라에서 부르던 이름들도 상식적으로 알아야 하지만
바벨론 식으로 바꾼 그 이름으로 왕에게 불려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풀무불 환란 앞에서 승리한 그 승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다니엘 3장에 기록된 그 이름을 우리가 주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즉,
바벨론식 이름이 좋아서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고
바벨론식 이름으로 왕에게 불리면서 승리했던 그 풀무불 환란의 세 친구의 신앙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 사건이 기록된 그 3장에 기록된 이름을 그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답변:2006-10-08 22:57:40 yilee [ E-mail ]

 

2.지금까지 배운 것과 다른 말을 들을 때 혼동스런 학생들을 위하여

 

1.어린 신앙이 자라가는 모습은

그 동안 교회에서 늘 배우던 것은
어린 신앙들을 빨리 자라도록 하는데 필요한 양식이었습니다.

얼른 먹고
많이 먹고
고루 먹어야

키도 자라고
눈과 귀가 밝아지며
손발의 움직임이 빨라지게 됩니다.

반사 선생님께 배운 것은 말하자면 품 안의 아이가 먹은 우유와 같고
장년반 예배 때 참석하여 배운 것은 예를 들면 밥과 반찬을 직접 먹는 것과 같은데

질문하시는 학생이 이 노선 소속 교회를 다녔다면
그 동안 배운 것은
아마 어느 교회 어느 학생들과 비교해도 아주 굉장한 영양식이었을 것입니다.

2.몸이 자라가듯이 신앙도 좀 자라게 되면

물론 앞으로도 더 배워서 더 자라야 하겠지만
이제는
외부 바람에 맞서 버티기도 하고
담을 넘어 오는 도적을 부모님이나 파출소에 연락을 해서 가정을 지키기도 해야 하며
때로는 교회를 헤치려는 이리 떼와 싸우는 뒤에서 돌팔매질을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동안 교회에서 배운 것은
어린 신앙이 어떻게 해야 속히 자랄 수 있는지를 집중해서 가르쳤습니다.

이제
학교를 진학하게 되고 학년이 높아지게 되면
다른 교회 학생회 활동하는 친구들에게 연애하는 재미로 교회 다닌다는 말도 듣게 되고
역사나 국어 시간에 교회를 비판하는 교사가 쪽배에 태풍처럼 비판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르실 때
부자집 외동 아들 기르듯, 조선시대 왕국의 왕자 기르듯
잘 먹고 잘 놀고 이론만 배우다가 국가가 위험할 때 왕들은 도망이나 다니게 하지 않고
어떤 종류의 어떤 원수가 언제 쳐들어와도 담대하게 맞서 다 물리 칠 수 있도록
강하고 담대하며 실력있는 천하 제일의 아들로 우리를 기르시기 때문에

아직 신앙이 그렇게 많이 자라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질문하신 학생과 같은 신앙에게도
여러 가지 어지럽고 혼란스런 말들을 듣게 하시며 튼튼히 기르시고 계십니다.

3.우선 이렇게 하셨으면 합니다.

이제 막 처음 이런 저런 말들을 듣게 되면 들을 때마다 어지럽고 복잡하게 되고
그들에게 몇 마디 대꾸를 해놓고도 돌아서면 내 마음 속에 의심이 생기기도 할 것이고
일방적으로 듣기만 할 때는 속에서 울분이 나오다가도 혹시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며
마음이 복잡해 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노선 이 복음의 길은
세상 어떤 다른 종교, 무신론자, 별별 비판가들과 이단자들, 교회 내의 타협주의와
오랜 세월 논쟁과 투쟁과 연구와 비교를 다 거쳤지만
역시 진리의 길이라는 것이 또렷하게 밝혀져 이제는 누구와도 더 이상 논쟁이 필요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지금 질문하신 학생이 어지럽고 혼동스러운 것은
질문자께서는 이제 막 듣기 시작했고 그 비판하는 말들이 왜 틀렸는지 아직 스스로 싸울 정도가 아니어서 심리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 뿐입니다.

현재 질문하신 학생이 앞으로 계속 공부를 하면서
다른 종교나 다른 인생관을 가진 사람이나 심지어 다른 교회를 다닌 분들과
자꾸 접촉하게 될 것인데

그때마다 이 노선 신앙생활은 좀 특별하여
공격도 많이 받고 비교할 때 이상한 것처럼 보일 일도 많을 것이므로
오늘 한번에 다 질문하고 다 해결하려면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될 수 있으면 한 가지씩 나누어 질문해 주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미 이 홈의 문답방에서 거의 다 오간 내용들일 것이므로 앞선 내용을 참고하면 되는데
해당 되는 자료를 찾는 것이 어려울 것이므로 'help'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분들이 도와 주실 것입니다. 또 답변자 저도 '일반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질문이 들어오면 이번 질문하신 분으로 기억하고 한번 더 마음에 두고 답변을 해 드리겠습니다.


답변:2006-10-08 23:06:48 yilee [ E-mail ]

 

3.예수님 그림이나 사진

 

 

예수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놓을 수 있도록 남아 있는 자료는
성경에도 없고 역사적으로도 전혀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모습에 대하여 그림이나 사진이나 영화나 동상으로 만든 모든 것은
전부 가짜입니다.

가짜가 진짜처럼 보여야
장사가 되고 인기를 얻고 또 사기치는 사람들이 무엇인가 얻는 것이 있으므로
가짜를 만드는 사람들일수록 더 그럴 듯한 말을 많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또 질문하신 분보다 훨씬 잘 믿는 분들까지도
예수님에 대하여 연구를 했거나 들은 말이 있다면
지금까지 배운 것과 반대되는 말을 하거나 듣지 않았던 말을 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런 분들이 다니는 바로 그런 교회들의 원래 조상들 선배들 선생님들이
예수님 그림을 그려서 안 된다고 가르쳤고 예수님 모습을 그리는 그런 일을 반대하다 죽기도 하고 수많은 어려움을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이든 성경에 나오든 어떤 일이든
그림으로 그리고 동상을 만들고 미술작품으로 만들어서 유명한 것은
원래 천주교가 전문으로 하던 일이며 우리 기독교는 그런 것을 틀렸다고 반대한 것을
역사적으로는 '종교개혁'이라고 하며 종교개혁이라는 사건의 일부는 바로 이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예수님 사진이나 성경 사건들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나 이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원래 역사적으로 정통이며 전통을 바로 지키는 일이고
우리와 반대 되는 일을 하는 분들은 그들 자신들의 선배 스승 조상들의 신앙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2006-10-13 18:20:17 신학도

 

그래도 이방신 이름이어서 찜찜합니다.

 

 

다니엘서 4장 8절은 '그는 내 신의 이름을 좇아 ... 이름한 자'라고 했으니까
세 명의 친구 이름은 원래 유다 나라 이름으로 오늘 우리가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답변:2006-10-14 11:29:14 yilee [ E-mail ]

 

이름 - 불신이나 이방 이름과 신앙 이름

 

 

불신자가 지은 세상식 이름이거나
신앙 없을 때 지었다가 회개하고 돌이켜 참 신앙으로 이름을 가지게 된 이름이나

이름이란
이름 자체를 가지고 꼭 하나님께서 따로 명령을 하신 경우가 아니라면
이름 사용 자체가 무조건 죄가 되거나 의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름 뿐 아니라
믿는 사람은 항상 모든 일을 은혜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이름도 신앙 본능으로 은혜 되고 복 받을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성경에서도

불신자가 지은 세상 이름이나 신앙 없을 때 사용한 이름을
회개하고 돌이킨 후에도 일부로 사용한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때마다 그럴 필요가 있어 사용했기 때문에 왜 그 이름을 사용했는지를 살피면
성구 해석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모세라는 이름은
창세기 2장에서 애굽왕의 공주가 지은 이름이고

야곱의 이름은
신앙 없는 때 이름이었고 얍복강에서 돌이켰을 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는데
그 이후에도 야곱이라는 이름을 계속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었고

베드로와 바울도
예수님 만나기 전 시몬과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두 이름을 함께 적고 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의 모든 땅 이름은
하나님을 모르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이방인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붙인 이름인데
어떤 지명은 이스라엘이 바꾸어 사용했고 어떤 이름은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성경도 그렇게 기록합니다.

다니엘 세 친구의 이름은
요즘과 달리 성경의 권위를 입으로만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 그렇게 인정하던
과거 모든 정통의 교회와 신앙의 사람들이 그렇게 사용해 왔고
그렇게 사용한 뜻이 그렇기 때문에 다니엘 3장의 그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으면 될 일이고 따로 논쟁이나 토론할 문제는 아닙니다.
한 사람은 이런 뜻으로 이러하고 한 사람은 저런 뜻으로 저러 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다만 매사 작은 것 하나라도 깊은 신앙으로 들어가면 넘쳐도 죄 모자라도 죄가 됩니다.
일단 이 홈에서는 모든 상황을 다 알지만 과거 신앙의 사람들이 사용한 그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답변:2006-10-14 12:45:24 yilee [ E-mail ]

 

현재 불신 부모가 지은 이름을 가진 분들의 경우

 

 

1.신앙 열심 때문에 이름을 바꾸는 경우

믿고 난 뒤에 성경을 읽다가 이름을 바꾼 분들에게 감명을 받는 경우가 있고
또 자기 이름을 불신 부모가 세상식으로 지었다 해서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교회 이름과 사람 이름도
은혜교회 진리교회 영광교회 시온교회 베드로교회 도마교회 ..... 이렇게 적고
김은혜 박진리 이영광집사 최시온 정베드로 신도마 .... 이런 식으로 하는 경우인데

그 속의 중심은 순수하게 신앙 중심일 수도 있겠으나
자기도 모르는 무의식 중에 또는 혹 생활 습관 때문에 이름을 세상 홍보나 전시효과로 대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물론 고의로 자기 과시를 위해 그러는 분들도 더러 있을 것입니다. 알고 하든 모르고 하든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2.교회 이름은

신약의 교회 이름들이 지방 또는 지역 이름을 사용했으므로 그 연관 이름이 좋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했기 때문에 무조건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교회 이름을 지방 이름으로 한 것은 교회론의 교회 의미와 연결이 있기 때문입니다.

3.사람 이름 사업체 이름은

세상에 살면서 일반 사람들과 접촉을 해야 하고 그때 사용할 이름이기 때문에
성경 이름이나 교회 관련 이름을 너무 돌출 표시하는 것은 될 수 있으면 피했으면 합니다.

이름 속에 담아 놓은 뜻은 신앙 이름으로 짓는 것이 좋으나
이름 겉에 표현 하는 것은 세상 평범한 이름에 묻히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가이사 관련 업무와 하나님만 상대하는 순수 신앙 내적 일은 구별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이름을 신앙 이름으로 강하게 표시해 두면
그 아이가 자기 신앙으로 살아갈 자기 현실에서 자기 신앙에 넘치는 환란과 부작용이 있고
사업체는 성경 이름으로 자기 사업에 신용을 포장하기 때문에 엄하게 금할 문제입니다.

목회자의 경우
자기가 베드로 이름을 사용할 때 자기가 그 신앙 정도 된다고 해서 붙이는 것이 아니고
대개는 베드로처럼 살겠다는 강의 결심과 자기 단속을 위해 그러 할 것이지만
마태복음 6장에서 나팔을 불지 않도록 한 말씀의 뜻을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겠다!'는 결심이나 광고 대신에 실제 그렇게 사는 내면 모습이 중요하고
실제 그렇게 살려는 노력을 하려면 외부에 표시가 나면 막대한 지장이 있습니다.

4.이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전판수'라는 분이 목회를 나서면서 '판수'라는 어감이 너무 거북하여
'전성수'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이호창'이라는 분이 목회를 나서면서 자기에게 속한 것은 먼지 하나라도 다 바치겠다 해서
'이진헌'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전모세 이다윗 ... 이런 식으로 바꾸는 것은 최대한 말리겠지만
위의 두 분처럼 이렇게 바꾸는 정도라고 한다면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본인들이 직접 말하지 않으면 다른 분들이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해도 '전판수' 정도의 이름은 '전성수'로 바꾼 것은 좋았다 보이고
그렇다 해도 '이호창'이라는 이름은 어감이나 이방종교 이름이 아니므로 굳이 바꾸지 않았더라면 하는 마음이나 이 노선을 알기 전이었고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처럼 성경 이름을 그대로 드러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참 지혜롭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본 연구소 직원 중에
30대 여자분인데 이름이 '장현각'으로 호적에 올려진 경우가 있습니다.
이름이 원래 '현주'였는데 불교식 이름으로 신고가 되어버렸고 당시는 불신이었습니다.
이제 열심히 잘 믿고 있으므로 자녀들에게 불교식 이름으로 너무 뚜렷하게 부각되는 '현각' 이름 정도라면, 최근 법원의 움직임이 별로 어렵지 않게 이런 이름을 바꾸어 주는 것이 보통이므로, 특별한 노력이 아니라 일반 평범한 길이 있다면, 바꾸도록 권해 본 적이 있습니다.

5.생명을 걸어야 할 특수한 경우도 있지만

말씀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의 모든 신앙은 일반적이며 보편적이며 가장 자연스런 길을 걷는 것이 옳습니다.

'자연주의'가 아니며
'현실순응주의'도 아니며
'주관없는 중도주의'라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력을 다해 집중할 일은
우리 현실 속에서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자기가 정말 주력해야 할 사안에 주력하기 위해 일반 사안은 일반 사안으로 지나고
대신에 일반 사안에서 비축한 힘을 가지고 정작 주력할 곳에는 주력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특별히 개별 인도로 명하지 않는 곳에
사람의 기술이나 꾀나 특별한 아이디어를 자꾸 사용하다 보면
인본이 될까 하는 염려도 늘 조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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