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인물] 백영익 목사님과 합정동교회에 대한 문의

직원내부용
작성자
#1131
작성일
2020.06.30
합정동교회는 장로교 교단중 어느교단에 소속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백영익 목사님은 합정동교회를 은퇴하신후 현재 어느교단에 소속되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합정동교회 홈페이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백영익목사님의 약력에 대한신학을 졸업하신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담임목사님은 총신을 졸업하신 것으로 되어 있어 추측컨데 합정동교회가 합동소속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질문드립니다.

백영희 목사님에 대하여 그분의 설교를 듣고 저가 느낀점이 있어 아래와 같이 정리를 해 보고…. 그분에 대하여 이곳 총공회의 자료란, 총공회를 탈퇴하였던 분에 백영익 목사님이 현재 준비중에 있어서 흥미를 느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서정교회 교인입니다. 서정교회 장목만 목사님의 변고로 현재 백영익목사님께서 수습목사님으로 서정교회의 어려움을 돕고 있습니다.)

백목사님 사후 서부교회에서 개척된 남정교회의 첫 목사님은 백영익목사님이었습니다.
대구공회와 부산공회는 물론이고 대구공회에 소속된 서부교인들이 개척하여 나간 남정교회에 공회교역자가 아닌 타교단에 소속된 교역자가 공회내부에 청빙된 것은 아마 백영익 목사님 밖에는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아마 백영익목사님의 교리가 총공회교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서 총공회의 교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인줄 압니다.

당시 남정교회를 백영익목사님이 처음 맡으셨을 때 연세가 70을 넘으셨습니다. 일반교단에서는 은퇴하여 원로목사추대를 받게 되어 있었는데 아마 합정동교회를 은퇴하시고 총공회는 연령제한이 없었으므로 남정교회에 청빙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백영익 목사님은 남정교인들을 서부교회의 관습에서 완전히 탈피시켜 새로운 행정체계로 바꾸신 분이시고, 이후 남정교회에서 개척된 서정교회 교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 분으로 대구공회와 서울공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신 분이며 공회의 어른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또 그분에 대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면….. 총공회 교역자들이 자신이 맡은 교회를 종신하려는 애착과 성향이 있을 때 그분은 그런쪽에서는 비교적 깨끗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합정동교회를 정해진 연령에 은퇴하신 것으로 알고 있고… 남정교회 역시….. 잡음없이 깨끗하게 물러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년을 헌법으로 정한 서울공회에서도 은퇴하신 이후에도 교회에 대한 애착으로 재집권하려는 목사님….. 자신의 아들을 후임으로 물려주신 목사님, 그리고 정년제도는 없으나, 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끝까지 교회를 자신의 영향하에 두려는 대구공회와 부산공회 목사님들을 볼 때 가장 많이 생각나게 하시는 목사님이 아닌가 싶습니다.
백목사님이 가장 사랑하셨던 서영준목사님도 백영익목사님이 길러서 서부교회로 인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교적 건강하셨던 백영희 목사님께서는 설교강단에 오르셨을 때 1980년대 초부터 80세의 일기로 복음을 마치셨을때인 1989년까지 기력이 약해 지셨는지 몰라도 강단의자에 앉으셔서 예배를 인도하셨지만 백영익 목사님은 현재 85세이면서도 강단에 꼿꼿하게 서서 현재까지 목회활동을 활발히 하시는 건강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옆모습을 보고 있으면 꼭 백영희 목사님의 생전모습을 보는듯하여 문듯 1980년대 활발하게 목회하시던 백영희 목사님을 사무치게 떠올리게 합니다.

단순히 그분이 제가 존경하는 백영희목사님의 동생이라는 점 때문이 아니고 비록 총공회를 탈퇴하셨으나 총공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신분이시며, 장로교 전체역사를 몸으로 직접 체험하셨을 만큼의 연령을 사셨으면서도 아직도 생생한 목회활동을 하고 계신 그분의 오늘의 모습을 보고 적지 않은 관심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서정교회에서……

질문 : 2002-12-18 17:08:21 서정교인
출처 : 문의답변 1131
제목분류 : [~인물~백영익~]
내용분류 : [-인물-백영익-]


답변 : 2002-12-19 13:41: 2 yilee [ E-mail ]

일반적 시각에서 평가한다면, 한국교계에 손꼽을 수 있는 경건한 목회자입니다.

1.합정동교회는 소속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서울공회입니다.

합정동교회는 설립했던 백영익목사님의 노선을 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백영익목사님은 1960년대 후반 공회를 한번 탈퇴했다가 1980년대 초반에 공회로 다시 돌아왔던 분입니다. 그후 백목사님 사후까지 공회 내에서 백영희목사님의 신앙노선에 대하여 꾸준하게 반대 입장을 취했던 분입니다. 이 홈의 /총공회/내부 자료/에서 준비하고 있는 '탈퇴' 명단에 올린 것은 1960년대 탈퇴했던 당시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분은 1989년 백목사님 사후 공회의 1차 분리 때 백태영목사님이 활동적 대표였다면, 백영익목사님은 사상적 대표였습니다. 공회의 일반 교역자나 교인은 대구공회 중심을 백태영목사님의 활동에서 찾지만 조금 내부를 아는 사람은 백영익목사님에게서 대구공회의 신앙방향과 본질을 읽었습니다.

대구공회가 다시 서울공회와 대구공회로 2차 분리 될 때에도 백영익목사님은 서울공회의 중심이었습니다. 그후 은퇴하였고 후임으로 김효성목사님을 담임목사님으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김효성목사님은 타교단 출신이며 현재도 타교단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잠실동교회에서 잠깐 개설했던 서울공회의 '총회신학원'에서도 강의를 했었습니다.

합정동교회는 과거 공회를 탈퇴하여 합동측에 있었던 교회 역사도 있고 또 현 담임목사님의 비중도 교계적으로 건전 보수신앙을 주장하는 분이기 때문에 총공회 내부가 현재처럼 몇몇 교회 중심으로 존립되고 있는 이상, 굳이 '총공회' 교단 소속이라는 것을 강조할 입장이 아닐 뿐입니다. 따라서 소속은 굳이 말하자면 서울공회일 것이지만, 그 교회는 서울 시내에서 독립교회 형태로 자유롭게 활동하는 건전, 보수, 장로교 중 하나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2.백영익목사님에 대한 소개는, 항상 2가지 면을 함께 고려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곳 시각은 '백영희신앙노선' 중에서 아주 보수적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곳이 '공회의 신앙노선'문제를 가지고 평가할 때는 백영익목사님을 대칭선 끝에 놓고 대단히 비판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질문처럼, 백영익목사님과 접하고 계신 분들이 평범하게 그분을 알고 싶다고 한다면, 이번 소개는 이곳 신앙노선의 관점은 최대한 자제하고 대신 일반적인 시각에서 소개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즉, 여러 종류의 공회들이 다 함께 앉은 자리이면서 동시에 교계 일반분들도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함께 앉아 듣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소개하겠습니다.

3.현재 백영익목사님은 은퇴 후 따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대강 소개드린다면

①백영익목사님은, 1970년대 서울에서 일반 교계에서는 이미 주목받던 분입니다.

1980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는 한국교계의 외부 활동에 많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 한국 교계는 수 백개의 교단으로 분열해 나가는 중이었고 교단과 교단의 벽이란 실로 높았었습니다. 요즘 남북처럼. 1980년대 이후로는 초교파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어 이제는 교단 소속은 호적상 본적과 같고 그 활동은 주소지를 따라 전국을 옮겨다니는 형편이지만, 그때는 조선시대 4색당파와 같았습니다.

그 시절 서울지역에서 목회자들이 행사 목적이 아니라 성경을 배우는 모임으로 초교파적으로 모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바로 그 무렵 백영익목사님은 매주 50-100여명 정도로 교역자 성경공부시간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교회의 숫자도 많지 않았고 신학교나 기타 기관에서 목회자 재교육 프로그램도 없던 때입니다. 어쨌든 당시 형편에서는, 서울지방에서 교파에 상관없이 진지하게 성경을 배우고 또 바로 믿으려고 애쓰는 진실한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경건하고 성경을 확실하게 꿰뚫는 신령한 지도자로 알려졌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공회 소속 사직동교회에서는 신도범목사님이 비슷한 모임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차이점은 그분은 공회에서 탈퇴하여 교계에서 활동했고 신목사님은 공회 소속 교역자로서 백목사님의 지도를 따라 별도의 모임을 갖지 않고 그대신 성경을 배우고 싶은 분들은 사직동교회 일반 예배를 참석하면 되었습니다. 일반 목회자들로서는 시간이 중복되었기 때문에 금요일 저녁예배를 주로 참석했었고 출석은 30-50여명이었습니다.

물론, 이곳에서는 당시 두 분 목사님 밑에 이런 교계 교역자들이 배우러 다닌 이유는 두 분이 부산 백목사님과의 관계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서울에는 백목사님께 배운 교역자들이 다수 있었는데 유독 두 분에게만 몰렸던 것은, 두 분의 개인적 실력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②백영익목사님을 한번 접촉해 본 사람들은, 평생 그분에 대하여는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냐는 것을 알기 위해 직접 만나보면 좋겠지만, 직접 만나본다고 하여 바로 파악이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만큼은 그분을 만나본 사람에게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습니다. 한번 만나본 바로 그 인상과 그 느낌을 본인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달리 소개하는 것이 필요치 않을 정도입니다.

이곳이 소속하고 있는 공회에서만 일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으나 그들은 보수측에 속하는 분들 몇 명일 뿐이고 공회의 엄격한 기준에서 그렇다는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공회 내에서도 극단적이고 주관적인 몇 명을 제외한다면, 그분을 접해 본 사람들에게는 질문자가 느끼신 느낌과 같다고 보고 있습니다. 혹 교회 사건에서 이해득실 때문에 그분과 다른 입장에 있던 분들은 여러 말을 하겠지만, 평범한 분들을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사실 공회 내에서 이 정도로 평가를 할 수 있는 분이라면, 그런 분을 외부 일반 교계에서 접하게 된다면 신묘한 분으로 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꼭같은 동일인이지만 교계의 타락이 너무 심하고 특히 가까이 접하여 존경할 교계적 인물이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이런 장점들은 물론 그분 스스로 믿고 깨우쳤다고 보기보다는 인간적으로 상상을 하기 어려운 차원에서 살았던 백영희목사님을 오랫동안 가까이 접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닮고 배우고 또 그렇게 노력했던 결과라고 봅니다.

어쨌든 그분은 공회의 장점인 성경 해석 및 성경적 생활에서 비롯되는 경건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이며 그분의 경건한 인품 자세 행동 처리 설교 등은 과연 1970년대 당시 교계의 진실된 교역자들이 자원해서 따르고 배울 만 했습니다. 당시 서울에는 박사학위를 막 취득하여 학적으로 유명한 분들, 기독교 대형교단의 간판인 정치목사님들, 강단을 뚜드리며 인기를 몰고 있던 부흥사들은 더러 있었으나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떨며 성경을 가르치는 신령한 지도자들은 희귀했던 때였습니다.

③백영익목사님은, 장로교의 일반적 원칙에 비교적 충실한 분입니다.

일반적으로 장로교 교인들은 장로교의 형식과 격식에 너무 얽매여 마치 바리새인을 연상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물론 장로교라는 교파는 귀족정치와 고급 의회민주정치를 혼합한 형태여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반면 공회 신앙에 있는 분들은 신앙의 내면과 실제를 강조하는 것은 장점이나 아래 위 가릴 것이 없이 거의가 예절도 기본도 법도도 최소한의 질서도 없는 막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분의 장점은, 이런 양극단의 입장이 충돌하는 중에서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장악력이 있습니다.

현재 각 공회 내에서 원로 대우를 받는 목회자나 장로님을 살펴봐도 그분들의 세상 처신은 대단히 격조높은 귀족들이나, 교회 내의 처신과 처리 등에 있어서는 놀랍게도 막가는 정도에서 외부 교단에서 조금 구경을 하고 들어온 사람들이 볼 때는 섬짓하게 느껴진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수 년전 10여명 장로님이 있는 교회에 담임목사님 장례가 있었고 그 목사님의 하관예배는 담임하던 교회와 몇 시간 차량 거리로 떨어진 곳이어서 공회 내 전국 각 지방 교역자들이 거의 대부분 참석한 예배였지만, 그 하관예배의 사회 설교 기도 등 진행을 장로님들이 갈라맡고 끝내버렸습니다. 마지막 축도는 이재순목사님으로 기억을 합니다만, 예를 들면 이런 처리는 전형적으로 극단적 공회주의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일반 교계의 상식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럴 수가 없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심지어, 백목사님 사후 첫 교역자회의의 첫 논란이 장로는 평신도가 아니고 성직자라고까지 주장하고 나서게 되는데, 이를 틀렸다고 지적하던 답변자에게 공회의 행정 담당 최고 원로 목사님은 치리 청원서를 내라고 안내하고 장로님들은 치리 요청서에 연명을 하였다가, 교계에서 사용하는 용어 설명 자료를 제시하자 그때야 자진 철회하는 소동이 있는 정도입니다.

백영익목사님의 가치는, 만일 공회가 극단적 보수측 몇 사람만 제외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분에게 공회를 맡긴다면, 그분은 총공회 생존 인물 중 유일하게 지도자 위치에 설 수 있는 분입니다. 잠실동교회의 백태영목사님은 스스로도 통제하기 어려운 정도의 '힘'만을 가진 분이라고 한다면, 그분은 지혜와 인내, 관용과 지도, 제시와 권면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공회 범위를 넘어 한국 교계적으로 흔치 않은 진정한 지도자라 하겠습니다.

④백영익목사님의 특별한 중에 특별한 점은, 양떼를 사랑하는 충심입니다.

수 십년 전 목회자로서 잠깐 거쳐갔던 교회 교인들이 평생토록 그 분의 사랑을 잊을 수 없어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을 대하는 듯한 감격과 감동으로 사는 경우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서부교회가 남정교회로 나뉠 때 그분이 잠깐 담임을 맡았던 적이 있었겠지만 그때는 교회의 갈등기였고 또 과도기였으므로 이해득실에 대한 계산이 복잡하게 깔려 있어 그분에 대한 평가가 일반 교인들에게는 잘 드러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장로님측에서 그분을 좋아하면 나는 그 반대측과 다른 행동을 보여야 하는 것이 그런 시기입니다. 적의 적은 동지가 되고, 적의 동지는 적이 되어야 하는 그런 논리가 왕성할 때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기에도 이런 이해관계에 전혀 상관이 없었던 분이라면 그분이 가진 목회자로서 얼마나 교인 사랑이 깊고 그 깊이가 측량치 못할 정도라는 것은 느꼈을 것입니다.

공회 내의 신앙노선이라고 전제를 한다면, 이곳은 그분과 가장 반대되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지금도 단순히 한 교인으로서 또는 한 후배 교역자로서 그분을 찾는다면 백목사님을 제외하고는 그분만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교역자는 찾을 수 없지 않겠는가 라고 기억할 정도입니다.

⑤백영익목사님의 은퇴 모습도 은혜로웠다는 질문자의 말씀이, 맞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두렵게 사는 분이고, 또 하늘나라에서 설 때 자신을 생각하는 분입니다. 땅 위에서 우선 덮어버리면 그만이고 일단 먹고보자는 탐식을 가진 목사님들과는 비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백목사님의 노선이나 교훈이 틀렸다고 생각을 하더라도 자기 몸조심을 먼저 하지만 그분은 직고하는 분이며 필요하다면 공석에서도 사심없이 있는 대로 그 의견을 다 발표하는 분입니다. 그렇게 솔직했던 분은, 이곳 기억에 그분밖에 없습니다.

한번 맺은 신의는, 상대방은 잊어도 그분은 잊지 않고 그대로 나가는 분입니다. 은퇴가 옳다고 생각했으면 그대로 하실 분이고, 작은 것에 얽매이지 않을 분입니다. 이곳에서 집중하는 신앙노선 상에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로 소개만 드리겠습니다. 질문에 더 충실해야겠지만, 이곳이 집중하는 신앙노선과 관련된 정도에 따라 답변은 일부러 더할 때도 있고 또 아쉽지만 약간 줄일 때도 있음을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4.질문 내용에 있었던 나머지 문제는 이곳에 모았습니다.

>백목사님이 가장 사랑하셨던 서영준목사님도 백영익목사님이
>길러서 서부교회로 인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①잘못 들으신 것 같습니다. 그냥 좋게 표현한 정도일 것입니다.

서영준목사님은 서부교회로 오기 전까지 사직동교회 교인이었습니다. 서목사님의 서울대 법과대학 재학기간은 1968-71년으로 기억되고, 이후 3년 군생활을 한 후, 부산으로 온 것은 1974-5년 경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년 정도의 착오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연대는 추후 다시 확인하고 기록 보충을 하겠습니다.) 그분의 공회 탈퇴는 1968년 안팎이었습니다.

서영준목사님의 대학 시절은 사직동교회에 신도범목사님이 담임을 했었고 그 동일 시기에 그분은 합정동교회에서 일반 교계를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서목사님은 서울법대를 다니면서 당시 서울대학생회가 불교 천주교 기독교의 대표 인물을 초청 각 종교의 중심 강론을 듣는 행사에서 불교 대표의 발언은 호응을 얻고 기독교 대표는 천박을 당하게 되자 기독교 대표가 잘못 선정되었다고 항의를 하게 됩니다. 당시 기독교 대표는 청와대 등에 기독교계 대표로 늘 오가는 인물이었습니다.

총학생회 단위로는 추진이 어렵게 되자 법과대학 단위로 재추진을 하고 초등학교 학력밖에 되지 않는 사직동교회 담임이었던 신도범목사님을 다시 기독교 대표로 초청하였고 신목사님의 당시 강론은 각 종교 대표들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고 최소한 서울대 법과대학에서만큼은 기독교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놓았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처음 왔던 목사님은 해외 박사학위 소지자로 기독교는 이웃돕기를 하는 사랑의 종교라고 강론을 하였고, 신목사님은 총공회 신앙노선에 따라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강론했다고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비교적 건강하셨던 백영희 목사님께서는 설교강단에 오르셨을 때 1980년대
>초부터 80세의 일기로 복음을 마치셨을때인 1989년까지 기력이 약해 지셨는
>지 몰라도 강단의자에 앉으셔서 예배를 인도하셨지만 백영익 목사님은 현재
>85세이면서도 강단에 꼿꼿하게 서서 현재까지 목회활동을 활발히 하시는
>건강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옆모습을 보고 있으면 꼭 백영희 목사님의 생전모습을 보는듯하여 문듯 1980년대 활발하게 목회하시던 백영희 목사님을 사무치게 떠올리게 합니다.

②두 분의 건강 비교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만

백영희목사님의 건강은 순교하던 1989년 당시 기준으로 그 혈관의 탄력이나 근육 관절 상태 등이 40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었다는 전문의의 검사가 한번 있었습니다. 자연 건강에 대하여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분들로 생각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백영희목사님의 건강은 특별했습니다. 백영익목사님은 일반 자연 건강기준에서는 그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두 분에 대한 접촉 느낌을 비교한다면 가까이 접해 본 분들은 한 형제간인데 저렇게 다를까 라고 하고, 조금 떨어져 볼 수 있는 일반 교인들로서는 질문자의 표현과 감정처럼 너무도 흡사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겉모습 느낌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그렇다는 말씀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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