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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 야곱이 여동생의 수치에 대해 복수를 한 아들들에게 저주를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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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40
작성일
2020.01.21
(원제)성경을 읽다보니..

신명기 22장25절에
강간한 자는 죽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여하튼 믿음이 좋은 사람)의 딸이
어떤 부족(?)을 지배하는 자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해결하기를 자신의 딸과 결혼하면 용서해주되
할례를 해라고 해서 그 부족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아들들이 복수를 한다고 그 부족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복수를 한 아들들에게 저주를 했습니다...
이런 글을 성경 어디선가 읽었는데
야곱은 왜 강간한 자를 죽이지 않았을까요?
또 왜 자신의 딸에게는 어떻게 할꺼냐고 물어보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성경에서 법에 대한것들을 보면 음행한것에 대해서
여자가 음행하는 것에대해서는 많이 적어놓고 남자가 음행한것에서는 별로 적어 놓지를 않았을까요?
또... 여자에게는 순결의 표식(처녀막?)이 있으면서 남자에게는 없을까요?

마지막으로 여자 목사님은 제가 본적이 없어요...새벽예배도 그렇고 여성도들이 많이 나오던데 왜 여자 목사님은 없을까요?
이것들로 인해서 여자보다 남자가 더 위에 있는가? 라는 생각까지 해봅니다.

 

 

질문:2003-08-24 20:37:33 아이구
출처:쉬운문답1340
제목분류 : [~성경~주해~창세기~]
내용분류 : [-성경-주해-창세기-]




2003-08-24 20:42:21 아이구

 

Re: 성경을 읽다보니..

 

 

또 질문 하나 더.....

십계명에 안식을 거룩히 지키라
아무도 일하게 하지 말라고 되어있고
여기서 우리 교회는 주일에는 돈쓰면 안된다고 하는데
주일에 전기쓰고 버스같은걸 타는 등등의 것은
돈을 쓰는게 아닌지... 그리고 남을 주일에 일하게 하고...
이런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것을 허락한다면 사람편한대로 하는 것이 되어버리는게 아닐까요?
지킬수 있는것만 지키고 지키기 힘든것은 안지켜도 된다...뭐 이렇게


2003-08-25 15:05: 6 아이큐127

 

Re: 사형제도 찬성

 

고신의 어느목사님 say: 원문에보면...야곱의딸은 강간이 아니라 통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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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에 적용해보자..미국같은경우는 밤에 나돌아 다니는건 자살행위다..
총기가 많아서 언제 저격당해 죽을지 모른다... 알아서 조심하고..밤에 박에 안나간다...
여자들이 배꼽티입고 짧은치마입고 밤거리 골목길다니다가 강간당햇다고..여자도 어느정도 책임있다...

남자가 여자를 도우려고 지음받은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도와주려고 지음 받은것이라고 알고있다..

 


답변:2003-08-25 15:11:52 yilee [ E-mail ]

 

구약법에 대한 상식 몇 가지

 

 

1.강간한 자를 죽이라 한 신명기는 모세가 기록했고 야곱의 일은 4백여년 전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었던 기간은 약 4백년입니다. 야곱의 일은 창세기 34장에 기록되었는데 이는 애굽에 들어가기 전입니다. 그리고 간음에 대한 신명기 기록은 출애굽 이후의 일입니다. 따라서 성경 기록은 그 기록 이후에 해당된 명령이라는 점을 일차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물론 성경기록은 기록하기 이전 사람들에게도 비록 그 성경 말씀을 가지고 명령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방법으로든지 알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그 성경 기록 이전이라 해도 정상대로 바로 믿는 사람이라면 그 후에 기록될 말씀의 방향으로 살았어야 했습니다.

2.이 사건을 두고 딸의 의사를 묻지 않은 것은

당시 자녀나 여자는 인간이 아니고 남자의 소유물이었습니다. 그냥 줘도 되고 받아도 되는 하나의 물건이었습니다. 교회가 어릴 때였기 때문에 여자들에게는 독립적으로 자기 신앙 책임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상을 오늘 여성 인권주의자들 시각에서 본다면 대단히 잘못된 발상이라고 하겠지만, 당시는 교회가 어렸기 때문에 그것이 필요했고, 오늘은 교회가 장성한 때이므로 자기 신앙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도록 맡기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 태어나는 순간 무조건 절대 존엄권을 가진다는 발상에서 보면 오늘날 상황은 정상이며 좋은 현상이라 하겠지만, 이는 책임에 따르는 심판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결정에 대한 책임은 남편이 다 지고 여자는 순종하는 면만 집중하면 되던 그때가 좋은 때였습니다. 오늘 여성이 바로 믿으려면 여성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면까지 갖추어야 합니다.

3.여자의 음행과 처벌을 중심으로 기록한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그 관리가 엄격하게 통제 되어야 합니다. 남자는 여러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야곱까지 그리고 다윗까지도 그러했습니다. 따라서 남자들에게는 특별히 조심할 몇가지만 조심하면 되고 여자는 그 정조를 생명으로 알아야 하는 '남자용품' 차원의 신분이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여자의 신앙은 그렇게 낮추어 주신 자기 처지에서 하나님 뜻을 찾고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4.남자에게 순결의 표시가 없는 것은

모든 생수 용기는 새 제품이라는 표시로 뚜껑에 봉인이 되어 있습니다. 한번 손을 대면 그때부터는 표시가 됩니다. 여자는 그 순간 하나를 보고 조심하고 살라는 뜻이고 함부로 접촉을 하면 안된다고 하나님께서 표시가 나도록 했습니다. 이 때 '여자'란 오늘 우리 성도를 말합니다. 성도는 그 중심을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깨끗이 준비하고 바치는 신앙 정조에 모든 생명성이 걸여 있습니다.

5.여자 목사님이 없는 이유는

교회의 정식 직책으로 장로교의 경우 집사 장로 목사 3가지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집사를 남자들로 세웠고 장로 목사도 전부 남자들이었으며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고 배우라 했고 또 딤전3:12 등에서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와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등 성구를 들어 여자가 교회를 주관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통 장로교의 입장인데 오늘은 자유주의에 물든 쪽부터 완화가 되어 여자분들에게도 목사 안수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은 여자 안수나 성직을 금한다고 볼 명문이 없습니다. 공회 신앙노선에서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과거 결정을 변경하지 않기 때문에 장로교의 그 입장을 따르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이 신앙노선은 성직의 이름과 직책보다 실질적으로 그 일을 감당할 인격과 신앙과 실력이 있는지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 굳이 여자들이 신앙이 있고 실력이 있으면 그런 직책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목사직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외부와 마찰을 고려해서라도 과거부터 해내려온 것을 당장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부교회 같은 곳에서는 여자분으로 교회를 지도하는 분이 현재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나 그 소속 공회 어떤 지도자 목사님보다 월등히 탁월합니다. 그렇지만 그냥 일반 '선생님'이라는 직책으로 능히 자기 맡은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6.주일에 금하는 일의 기준은 '생활'과 '일'을 기준으로 삼고, '남을 시키는' 것으로 기준을 삼습니다.

주일에 전기를 사용하고 평일에 돈을 내는 것은 외상입니다. 또는 1개월치 정산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따라서 장사로 말하면 외상이나 일괄 결재에 속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구약에도 남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법이 있었는데 그들이 안식일을 포함하여 그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그다음 세금을 내게 됩니다. 즉 토지 소유주에게 안식일까지 포함해서 임차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도 1개월 하숙, 1개월 사글세, 1개월 전기세와 같은 정산법은 허용하고 있습니다.

요는 생활이면 할 수 있고 일이면 할 수 없는 것이 안식일에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선입니다. 또한 남을 시키는 것도 그 사람의 직접 수고는 금하고 기계와 같은 장치를 자동으로 걸어놓은 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구약에도 남이 닦아 놓은 길이나 집을 사용하는 것은 상관치 않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기계식 또는 전자식으로 연결되는 전화는 주일에 사용할 수 있고 사람이 직접 안내하는 114와 같은 문의는 하지 않습니다.

이곳 문의답변방과 쉬운문답방에서 '주일' 검색어로 여러 면을 찾아 보셨으면

 


2003-08-25 15:36:11 아이큐127

 

Re: 애잘키워 천국가서..오손도손잘살자..

 

 

(본문/ 창 34:1~17) 야곱의 딸이 당한 수치

하용조 목사

사람은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위기를 겪어내면 위기는 오히려 복이 되어집니다. 그러나 자기의 힘으로 위기를 겪어내려고 하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이겨내려고 하면 오히려 더욱더 힘들어집니다.

야곱은 생의 위기를 잘 극복해냈습니다. 야곱은 위기 덕분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씨름을 통해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새 이름 ‘이스라엘’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의 믿음은 자라기 시작했고, 20년 동안 가졌던 형과의 갈등도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개인적인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라고, 화해와 용서의 길로 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옛사람을 버리지 못한 야곱

드디어 야곱은 자유와 평강을 누리게 되었고, 참 행복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고, 형과 화해를 했지만 그에게는 지난 20년 동안 가져왔던 쓴 뿌리 즉, 옛사람의 모습은 그대로 남아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순간 예수를 믿을 수는 있지만 사람은 하루 아침에 변하지는 않습니다.저는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을뿐만 아니라 성격도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는 믿지만 자기의 고집은 절대로 꺾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고집을 꺾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습관도 바뀌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에서와 화해한 후에 가나안 세겜 땅에 정착을 시도합니다. 그래서 세겜 땅 일부를 은 1백개를 주고 사는 것으로 시작해서 드디어 약속의 땅을 취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얼핏 보면 행복한 삶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곧 새로운 위기가 다가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의 문제로 고생했다면 새로운 문제는 자녀들의 문제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야곱에게는 11명의 아들과 하나뿐인 딸 디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 딸 디나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딸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더니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련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그 아비 하몰에게 청하여 가로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야곱에게는 4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첫번째 아내가 레아입니다. 레아는 6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라헬의 몸종 빌하에게서 2명의 아들이 태어났고, 레아의 몸종 실바에게서 2명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라헬도 아들을 낳았습니다. 레아는 아들 6명을 낳고 마지막으로 딸 디나를 낳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아들 중에 딸이라고는 하나뿐이니 서로 배다른 형제사이였지만 디나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겠습니까? 특별히 레아에게서 태어난 6명의 아들 즉, 디나와 배가 같은 오빠들은 디나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귀여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딸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이 세겜 땅에 도착하자마자 늘 가정안에 머물렀던 디나는 오랫만에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가나안 땅의 문화를 선망했던 것입니다.

신앙을 가졌다가 세상의 문화에 빠져들어서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가버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디나가 그런 경우와 비슷했습니다. 그녀는 다른 문화에 접촉하자 그만 그것에 흠뻑 빠져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도시 세겜 땅으로 놀러가게 되어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이때 디나는 결혼 적령기에 있었습니다. 디나가 그 땅 여자들을 보러갔다는 이야기를 보면 ‘그 땅 여자들’이란 분명히 우상을 숭배하는 가나안의 딸들입니다. 디나는 가나안의 여자들과 사귀기 시작합니다. 디나에게는 세상의 여자들이 무척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스승뿐만 아니라 친구들이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자녀들의 일생이 결정될 만큼 아이들은 부모의 영향권을 어느 정도 벗어나는 연령이 되면 친구들 사이에서 많은 영향을 주고받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디나는 혼자서 외출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이 상황을 알고 있었는지 몰랐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다른 사람과 동행하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기 때문에 혼자 외출 했을 것입니다.

디나는 혼자 외출함으로써 자기 스스로가 남자들의 희롱의 대상이 되도록 기회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 큰 딸을 집에만 가둬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딸 가진 부모들은 갈등하게 됩니다. 딸을 밖으로 내보내니 불안하고 그렇다고 붙들어 매어놓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지역의 히위족속의 왕자인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보고 반했습니다. 성경은 이 상황을 간단하게 ‘그를 보고 끌어들여서 강간했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앞뒤의 문맥을 살펴보면 디나가 강간을 당한 것은 여자가 길거리를 가다가 나쁜 사람한테 납치를 당해서 욕을 본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충분하게 사귐이 있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디나는 같은 또래의 여자친구들을 사귀게 되어서 그들을 통해서 남자들을 사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하몰의 아들 세겜이 디나를 유혹해서 자기 집으로 끌고 간듯이 보입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치한으로 돌변한 세겜은 디나를 강간했습니다.

세상 문화에 빠져든 디나

세겜은 비록 강간을 했지만 디나에게 깊이 연연했다는 표현을 보게 됩니다. 디나를 향한 세겜의 사랑이 깊었던 것입니다. 그는 강간을 한 후에 디나를 위로했습니다. 그는 디나를 강간해서 단지 노리개로 취급한 것이 아니라 결혼을 결심합니다.

세겜은 이방의 왕자답게 간단하게 여자를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었고, 심지어 강간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여자를 데려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거나 도덕적인 문제를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결혼시킬 때 중매자인 노종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자기 아들을 결혼시킬 때 주변에 많았던 가나안 여자를 취하지 않고 먼 곳에 있는 자기 친척중에서 며느리를 택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딸만을 며느리로 취해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에 중매자의 역할을 맡은 종이 그런 여자를 발견할 수 없다면 그것으로 종의 책임은 다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야곱의 문제는 중요한 하나님의 원칙을 무시하고 소홀하게 여겼다는 점에 있습니다. 딸 디나가 가나안 땅에서 가나안 여자들과 남자들을 만날 때 미리 막지않았습니다. 그는 미리 막았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 불행한 사건의 원인을 찾아보면 우선은 남자의 유혹에 자신을 노출시켰던 딸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그 아버지에게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딸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은 누구든지 사춘기를 겪고 결혼적령기에 이르면 방황을 합니다. 방황을 하지 않는 자녀가 있다면 오히려 비정상적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철이 없어 하나님 보다는 세상을 더 좋아하게 되었을 때, 부모는 자녀에게 상처를 주어서 내 쫓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기다리고 용서하고 돌봐줘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자녀가 제 길을 가게 될 때까지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 입니다. 야곱은 이런 부모의 역할을 소홀히 한 무책임한 아버지였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도 무책임했고, 딸에게도 무책임했습니다.

세겜은 아버지 하몰을 찾아가서 자신이 저지른 사건을 이야기하고 디나를 아내로 삼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야곱 같은 무책임한 아버지보다는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이방나라의 왕자인 세겜이 더 훌륭한 것처럼 보여집니다.
5∼7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렵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의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세겜의 아비 하몰은 야곱에게 말하러 왔으며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사람 사람이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치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이 사건의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근방의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 강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자기 아들들이 들에서 돌아오기까지 잠잠합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아버지였습니다.

가족을 힘들게 하는 아버지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아버지입니다. 그것이 가정의 문제든, 사업상의 문제든 가정의 영적인 책임자인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문제만 생기면 도망가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부인한테 모든 것을 맡기고 책임을 지지 않고 좋을 때만 나서는 사람, 바로 그런 아버지가 야곱이였습니다.

그는 겁을 집어먹고 어쩔 줄 모른 채아들들이 돌아오기까지 기다립니다. 물론 야곱이 고민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떤 남자들은 고민을 해도 실제적인 문제는 부인에게 떠맡깁니다. 돈이 없으면 친정에서 가져오라고 하고, 자녀가 문제를 일으키면 부인을 학교로 보내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바쁘다는 핑계를 댑니다. 그렇게 자녀의 교육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수동적이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입니다. 야곱의 경우 비단 이 사건에서만 그런 모습이 드러난 것은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아버지

이방인인 하몰은 그래도 아버지로서 훨씬 나은 모습을 보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달려온 사람은 야곱이 아닌 하몰이였습니다. 그는 야곱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청혼을 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분노해야 하는 사람은 아버지였는데 오히려 아들들이 분노하기 시작합니다. 그 분노가 지나쳐서 복수심으로 발전합니다. 야곱은 이 복수심을 막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딸의 행동을 미리 막지 못했던 것처럼 아들들의 복수심도 막지를 못합니다. 그는 매우 소심하고 무책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개인적인 고집과 야망은 무척이나 많은 남자가 야곱이였습니다.
8∼12절을 보십시오.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련하여 하니 원컨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취하고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세겜도 디나의 아비와 남형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청구하는 것은 내가 수응하리니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빙물과 예물을 청구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수응하리라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은 야곱의 집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사과는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무척이나 당당합니다. ‘이미 이렇게 된 것 어떻게 하겠냐?’는 식입니다. 문제를 물질로 해결하려고 듭니다. 아버지나 아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이 일을 계기로 서로의 딸을 데려다가 혼인하면 피차 좋은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땅을 매매하고 한 가족이 되어서 살면 좋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잘못은 잘못이지만 물질로 보상하겠다고 말합니다. 혼인을 치루면 서로간에 큰 이익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상황에 이르러서도 야곱은 침묵을 지킵니다.

저는 모든 문제를 부인에게 맡기는 남편들이 회개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에서 도망가는 남자,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서 문제를 해결하는 영적 리더십이 없는 남자여서는 안됩니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여자들은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책임하고 놀기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 평생 고생하게 됩니다.

야곱의 침묵은 ‘무책임의 침묵’이였습니다. 이 문제의 근본적인 점은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 사람들은 야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속에서 살고,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일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 사람들과 야합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사람들과 타협하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안에서 살지만 세상을 거부하고, 사탄을 거부해야합니다. 세속적인 문화에 야합해서는 안됩니다.

창세기 6장 2절을 보면 노아 홍수 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이것이 노아홍수가 난 결정적인 원인입니다. 결국 선택받은 자들도 세상의 물이 들어버렸던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적이 되고 세상에서 하는 방법들을 따라갈 때 교회는 위기를 맞게되고 신앙의 위기를 갖게 됩니다.

세상이 우리를 유혹하는 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기들과 타협하면 좋다는 것입니다. ‘너 좋고, 나 좋자’라는 식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향해서 ‘왜 그렇게 별나게 사느냐’고 말합니다. 그런 소리를 들어도 예수 믿는 사람은 별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또 다른 유혹은 물질만능의 유혹입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좋은 것이라는 논리를 가지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논리였습니다.

세상속에서 지키는 신앙의 순결

여러분,
여러분들이 세상을 살아나갈 때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사과하지 않고 예의를 지키지 않고 모든 것을 물질로 해결하려는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돈은 필요합니다. 물질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해결하려고 하고 마음속에 진정한 미안함이 없고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문제가 있습니다.
13∼17절을 보십시오.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 아비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음이라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욕이 됨이니라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같이 되면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취하며 너희와 함께 거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너희가 만일 우리를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딸이 당한 비극에 대해서 야곱은 끝까지 침묵을 지킵니다. 오히려 디나의 오빠들이 분노를 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뻔뻔한 하몰과 세겜을 속이기로 결정하고 음모를 꾸밉니다.

그렇게 더 큰 비극이 일어납니다. 이 비극의 원인은 아버지의 침묵과 도피 때문에 빚어집니다. 그는 자기의 생명을 걸고 남자와 가장으로서 상황 가운데 뛰어들었어야 했는데 늘 상황을 살펴보며 눈치만을 봅니다. 그는 떳떳하지 못합니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아버지가 상황에 뛰어들어서 무릎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든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부인에게 핑계를 대고, 아들한테 책임을 전가하면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우게 되는 교훈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하몰보다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음모를 꾸밉니다. 그러나 그 음모는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종교적인 것을 이용한 사기입니다. 그들은 할례를 핑계거리로 내세웁니다. 하몰 일파가 할례를 받지 않았기에 동생을 줄 수 없다며 할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교훈은 아버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는 영적 책임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가정과 자녀 교육에 책임이 있습니다. 자녀 교육을 아내에게만 맡기지 마십시오. 아내와 함께 문제를 풀어가십시오.

여러분,
아버지는 자녀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합니다. 돈벌고, 유명해지고, 성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게 맡겨진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교훈은 이렇습니다. 세상을 좋아하면 소돔과 고모라로 가게 됩니다. 세상의 유혹에 빠지면 어려운 일을 겪게 됩니다. 조금 촌스러운 것 같아도 교회에 머무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있는 것보다 더 안전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찾는 신랑보다 하나님이 찾아주는 신랑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려면 기다리고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배워야 하는 교훈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속에서 살지만 세상과 야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6장 2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세상사람들과 함께 살지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과 같은 원칙을 가져야 합니다. 유태인들이 수천년동안 견딜 수 있었던 힘이 여기 있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음식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안식일 절기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사회에서 보면 말도 안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오히려 항공사가 기내식으로 그들에게 적합한 음식을 만들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을 따라오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적인 것과 쉽게 타협합니다. 안식일과 십일조를 타협합니다. 외롭고 고독하고 힘들어도 신앙의 순결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복의 근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물질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이 하나님을 섬기게 하면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속으로 뛰어들어가고, 세상의 한복판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빠지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거친 파도를 헤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땅에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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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2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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