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일반질문용
작성자
신학생
작성일
2019.10.30
홈페이지가 개편한다고 하여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궁금하여 질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겟네마네 동산에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26:39, 막 14:36, 눅 22:42)"

이 기도를 두고 어떤 교수는 예수님조차 감당하기 힘든 십자가의 고통이었기 때문이었다. 전 인류의 고통을 짊어진 고통과 어려움 때문이라고 했고, (1번) 이를 비판하는 어떤 교수는, 애국지사들도 죽음을 앞에 두고 의연히 가는데, 택자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 그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기도하셨겠느냐? 이렇게 기도하신 것은, 당할 고통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제자들의 당할 환란을 두고 기도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당신의 고난을 위해서 기도하셨다고 하면 주님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이방신관식으로 예수를 믿는 잘못된 것이다라고 합니다. (2번)

참 양 극단적입니다.

1번을 묵상해보면, 참 현실적이고, 날 위해여 그런 고통을 대속하신 주님의 은혜가 진하고 가깝게 다가오기는 하는데, 정말 주님이 그 고통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그것 때문에 오직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하셨단 말인가? 너무 힘드셔서? 그런데, 기쁨으로 나를 대속하러 오셨다고 하셨는데?

2번을 묵상해보면, 그렇다면 모든 것은 주님의 연기였단 말인가? 전 인류의 죄악을 짊어진 대속의 고통이 정녕 주님에게는 어떤 걱정거리도 아니었단 말인가? 정말 아무 느낌도, 간절도, 감각도 없으셨단 말인가? 그저 제자들을 위해서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셨다는 것인가? 그러면 나도 내가 주님 따르는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 내가 나를 위해서 기도하면 주님을 무시하는 것이 되고, 고통을 참고 타인을 위해서 기도를 해아만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일까? 그러면 나조차 감당하기 힘든 나는 어떤 기도도 할 수가 없겠는데.... 정말 궁금한 것은 이 교수님은 과연 십자가의 고통을 겪어보기는 겪어보고 나서 이렇게 단정하시는 걸까?

말은 더 날카롭고 옳은 것 같은데, 제 마음에 더 심하게 반대가 되는 것은 2번입니다. 마치 공산주의의 논리와 같게 느껴집니다. 말은 대단히 아름답지만 실상은 잔인하기 그지 없는. 그래서 인정이 안됩니다. 그리고 싫어집니다.

헷갈립니다.

부디 빛을 보여주십시오.
전체 5

  • 2019-10-31 11:40
    (답변 전면 수정 2019-10-31 14:45)

    1. 예수님의 기도

    예수님은 죄와 사망과 마귀 아래 속박이 되어 있는 택자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려면 완전한 인간이셔야 했고 죄인이 죄인을 대속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참 인간이며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인성은 시공의 제한을 받으시고 우리의 눈에 보이기 때문에 이 예수님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와는 별개이며 개별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성부, 성자, 성령 이 세 분은 각기 개별이지만 완전한 한 분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삼위일체의 '일체'의 관점이 아니라 '삼위'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예수님의 탄생의 순간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고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단 한번도 하나님과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인성은 인간의 인성과 완전히 똑같은 인성이기에 얼마든지 죄를 지으면 지을 수 있는 인성이지만은 단 한번도 하나님과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인간이 보기에는 기도를 안 하시고 외부의 일만 하신 그 순간에도,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의 눈에 율법을 안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에도, 극한의 고통 엘리엘리라마 사박다니 원망같은 찬송의 그 순간에도, 아버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주님의 끝없이 간절한 기도는 단 한 순간도 약화된 적이 없었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의 연결 역시 변질되거나 끊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잠시 식사를 하던 그 순간조차, 배 밑에 누워서 주무시던 잠깐의 휴식의 순간조차, 주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계셨고 그 기도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는 피가 땀으로 변하던 겟세마네 동산의 간절한 기도의 강도와 차이가 없이 완전히 똑같았습니다. 우리처럼 일이 닥치면 기도하고, 일이 끝나면 마음이 풀어지는 것과 주님의 기도는 다릅니다. 그래서, 겟네마네 기도의 장면은, 예수님의 평소 순간 순간이 피가 땀이 되도록 그렇게 초인적으로 간절한 기도의 생활이었으며, 이렇게 아버지 하나님과 완전한 결합된 생활이었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단면적 사건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먼저 이해를 해야겠습니다.

    2. 겟세마네에서의 기도

    다음 날이면 이제 대속의 최고 정점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일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오시되 처음부터 기쁨으로 오신 분입니다. 대속의 제물로 당신이 죽음으로 택자에게 구원을 입히는 그 날. 이 순간을 위해서 주님은 모든 준비를 하셨습니다. 사실 따지자면 기뻐하셔야 하고 춤을 추셔야 마땅한데 어째서 주님은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셨을까? 십자가의 사활대속의 공포와 두려움과 고통까지 이미 초월하신 그 분이 무엇이 부족하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을까?

    주님이 그렇게 기도하실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인성을 입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신인양성 일위로 계셔도 택자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신성을 사용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감당하신 것은 100퍼센트 우리와 같은 인성으로만 감당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인성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고통 가운데 원망할 수 있고 마음 속에 죄를 지을 수 있고, 대속의 기쁨과 감사가 끊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각오를 해도 인성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순간이라도 그리 되면 십자가의 대속은 실패가 되기 때문에 인성으로는 십자가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시는 것은, 자기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신성이 주님의 인성을 붙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신 것이고, 이 주님의 인성의 한 없는 간구에 성령님의 책임지심을 확답받아 기도를 마치시고 십자가를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인성을 신성에 머금가는 그런 차원이라고 가정을 해본다 해도, 모든 은혜의 주체되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그 실력이라도 내려놓을 수 밖에 없고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말만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시에, 주님조차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었고 밤새도록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하나님을 향한 자세와 믿음이야말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활대속을 감당하신 능력의 본질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처럼 거리가 멀면 조심했다가, 가까워지고 친해지면 그냥 적당히, 또는 가볍게 상대할 수 있는 분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과연 주님이 싫어서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연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사건을 우습게 여긴 것도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신 주님께서 최후 십자가의 시험을 목전에 두고, 그 고통과 괴로움과 마귀가 시험할 절정의 차원을 누구보다 잘 아시기에, 인성의 한계를 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설령 만반의 실력과 준비가 되어 있다하더라도, 모든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 달려 있으니, 주님조차 오로지 아버지의 뜻만 구하며 그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를 이렇게 간절히 하심으로, 아버지가 주님 안에 주님안에 아버지가 완전히 하나되신 그 신앙의 본질을 우리에게 실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 2019-10-31 12:30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1.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2.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26:39, 막 14:36, 눅 22:42)"
    2번을 강조, 1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을 강조한다고 보여집니다.
    인성이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신성이 붙들어 주실 때 가능한 것이고 , 인성의 그 간구에 성령님께서 책임지심을 확답받아 기도를 마칠 수 있고 십자가를 감당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도리로 주셨습니다.
    부모 마음을 모르면 좀 더 헤아려보고 살피듯이, 내 주관에 치우치지 않도록 조심을 모두 가져야 하겠습니다.
    인류가 자기중심의 죄, 원죄로 인해 멸망을 받은 것이듯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 2019-11-01 10:42
    아는것 없는 부족한 자이지만 들은 말씀에 근거해서 몇자 올립니다
    백목사님은 십자가 지실때 ''기뻐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알겠지만 정말 이해안되고 안되는 부분이었는데
    어느분 간증을 듣고 조금 이해가 됐습니다
    어느분이 성령의 은혜로 예수님 십자가 지고 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적접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지고 가시는 것을 보여주시며 예수님이 말씀하셨답니다 ''내가 그때 기뻐했다''
    이 말씀들을때 예전 백목사님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기뻐하셨구나'

  • 2019-11-01 22:11
    아!

    십자가를 앞에 둔 예수님의 기도는

    (1) 예수님이 정말 너무 감당하기 힘들어서 하나님께 토로하신게 아니었고
    (2) 그렇다고, 제자들 보라고 간절한 기도의 연기를 하신 것도 아니었고

    실제 그 걸음, 그 실현이라는 점에서 깨달았습니다.

    (1) 마음은 한 없이 기쁘시고, 각오와 준비도 되어 있으셨으나
    (2) 택자를 대표해서 인성으로 지시는, 인성의 한계와 십자가 시험의 의미를 아시기 때문에 자연스레 성부께 기도하는 간절한 기도인 것.

    완전히 기쁘셨던 것도 아니고, 슬프셨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습게 여기는 것도 아니고, 두려우셨던 것도 아니고.
    그 길을 가신 당신의 실제, 그 걸음의 기도였던 것.

    눈이 번쩍 뜨입니다.

    정말 십자가를 앞에 두고 걸어가신 예수님의 기도란 이것이었습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공회의 해석 다시 한번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 2019-11-01 22:50
      (추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잔이란 속에 마실 것이 담겨 있는 그릇입니다. "이 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 말씀하신 것을 그냥 보면 십자가 사건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이해를 하게 되는데, 조금 더 깊이 상고해보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잔"이란 십자가는 이미 달리기 위해서 오신 분이므로 십자가는 피할 수 없고 피하지 않을 것이나 십자가라는 "잔" 안에, 그 잔에 담겨 있을 수 있는 인성의 한계로 인하여 실패할 수 있는 그 실패를 당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기도가 바로 "이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말씀하신 뜻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그래서, 인성으로는 십자가를 승리할 수 없으므로, 신성이 붙드시기를 기도하시며, 구원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자기 중심의 악이 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자신을 끝까지 완전히 부인하셨고, 드디어 그 기도의 응답으로 성부와 완전히 하나된 화친으로 십자가를 승리하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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