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예정] 예정론?

2018이전
작성자
#299
작성일
2019.10.02
성경이 예정을 말했다면 예정교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각대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도 분명하니 예정교리를 인정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큰 부분은 예정이 되어 있으나 작은 부분이나 작은 범위는 인간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허락이 되었다고 예정론을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설명한다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이것이 옳지 않을까요?


 

질문 : 조진욱 (2001-01-24 17:21:24)
출처 : (pkist.net / 문의답변 299)
제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내용분류 : [-교리-신론-역사-예정-]



답변 : yilee
(2001-01-25 19:34:47)

(답변1) 쉬어 가면서, 그러나 수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는 교리임을 우선 인식


여러 다른 시각을 찾아보기 위해 쉬어가면서 논할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우선 다음 몇가지 말씀을 먼저 드리고 2차 답변으로 이어 가겠습니다. 주로 질문자를 중심으로 하지만, 일반인도 고려한다는 점에서 질문보다 약간 넓은 면에서 답변하게 됨을 양해 바랍니다. 참고로, 이곳 질문 92번과 98번에 대한 답변도 참고바랍니다.

여러 다른 시각을 찾아보기 위해 쉬어가면서 논할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우선 다음 몇가지 말씀을 먼저 드리고 2차 답변으로 이어 가겠습니다. 주로 질문자를 중심으로 하지만, 일반인도 고려한다는 점에서 질문보다 약간 넓은 면에서 답변하게 됨을 양해 바랍니다. 참고로, 이곳 질문 92번과 98번에 대한 답변도 참고바랍니다.


(답변2) '예정'이란 완전예정, 전체예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답변2)
*질문을 중심으로 답변을 구성치 않고 누구나 예정을 두고 가지는 질문들을 예상하면서 또한 예정에 대한 체계적 정리를 염두에 두고 답변을 구성하겠습니다. 물론 질문하신 내용들이 빠짐 없도록 첫째 주의하겠습니다.

1.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잠깐 정리를 하겠습니다.

1)예정과 자유란

①하나님의 예정이란

만물을 창조하기 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그 예정대로 창조하고 오늘까지 움직여 가시며 또 영원히 그리 하십니다. 롬11:36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며, 엡1:4-11에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 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예정 문제는 특히 천국 갈 사람은 미리 예정되었느냐는 문제를 시작으로 하여, 결국은 세상 만사도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진행된다는 데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②인간의 자유란

사람은 자유로 생각하고 자유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과 행동을 두고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합니다. 물론 인간이 완전히 자유라는 사람도 있고 부분적으로만 자유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정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자유란 얼마나 자유냐는 문제가 결정됩니다. 천국 가는 것도 인간의 자체 노력으로 될 수 있다는 의미이며, 지옥 가기로 정해졌다는 것은 가혹한 일이라는 신념에서 주로 주장하게 됩니다. 천국과 지옥을 가기로 정해진 것이냐 아니면 인간의 의지로 변동이 가능한 것이냐는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인간이 평상 생활을 할 때 얼마나 자유가 있느냐는 문제를 포함하게 됩니다.

2)예정과 자유의 관계

①예정과 자유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절대 예정이라면 인간의 자유는 전혀 없다는 말이 되겠고, 인간의 자유가 절대적이라면 예정이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예정이 일부만 되어 있다면 그 나머지 부분이 인간의 자유이며 따라서 예정과 자유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②예정과 자유의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일반적인 주장

예정이 참으로 되었다면 자유가 없어야 하고, 자유가 있다면 예정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양 모순을 조화시키는 방법으로 예정은 세상 만사를 전부 예정한 것이 아니라 부분 예정으로 되었으니 이 예정되어 있지 않은 부분에 대하여는 인간이 자유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절대적으로 예정된 것은 아니며 우리의 행동을 봐 가며 예정대로 진행시키기도 하고 또 일부 조정도 있으니 상대적인 예정이라고도 설명을 합니다. 어떤 분들은 큰 것은 예정하고 세밀한 부분은 인간의 자유에 맡겨 둔다고도 합니다.

이 주장은 성경에 기록된 예정을 부인할 수 없고, 인간에게 있는 자유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절충을 한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자유가 전혀 없다고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이 없고, 믿는 사람이라면 성경이 기록한 '예정'을 전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장 넓게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2.예정과 관련하여 확실하게 정리해 둘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1)예정은 절대 예정이 성경적입니다. 인간의 자유성이란 따로 접근할 문제입니다.

①하나님의 속성에서 본 절대 예정

성경은 하나님이 완전자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완전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편에서 따로 살펴볼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완전자라면 하나님은 전지자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예정'을 분명히 단정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완전자시며 따라서 전지자시라는 것까지를 인정하면서도 '예정'에 있어서는 '부분예정' '상대예정'이라는 논리로 진행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이 주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전지자라면 과거와 미래를 현재와 함께 알고 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먼 곳의 것도 가까운 곳의 것도 그 아심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인간의 무지는 어제와 오늘의 아는 것이 다르며, 오늘 아는 것과 내일 아는 것이 다릅니다. 인간이 아는 것은 늘 접하는 가까운 것과 한번도 접해 볼 수 없는 우주 끝의 것을 아는 데에 다릅니다. 완전자 하나님의 전지는 시공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므로 원거리에 제한이 없듯이 멀리 있는 시간에도 제한이 없습니다. 미래까지 다 알고 계심에 대하여는 너무 명백하게 성경이 말하기 때문에 그 예를 들자면 한이 없습니다.

다가올 미래의 것도 미리 다 아신다면, 그런데 이 분이 예정을 하셨다면 이는 어떤 것도 예정되어 있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지옥갈 인간과 천국갈 인간이 미리 예정되었다는 큰 문제부터, 그 인간들이 평생에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 것인지도 미리 다 예정되었고 그대로 전능으로 이루어 가신다는 말입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예정하지 않고 인간의 자유에 맡겨놓은 부분이 있다면, 그리고 인간에게 맡겨놓았기 때문에 인간이 자유로 하겠지만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 전지로 어떻게 그 인간이 행동할는지 미리 알기만 하고 있는 경우는 없겠는가 라는 반문을 흔히 받습니다.

②예정이란 절대예정만 예정이 될 수 있고 부분예정은 예정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정과 자유의 관계에서 부분 예정과 부분 자유라고 설명하면 가장 성경과 현실을 조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쉽게 '부분예정'을 주장합니다만, '예정'이란 문제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예정'은 반드시 절대 예정만이 예정이 될 수 있고, 부분 예정은 예정이 될 수가 없습니다.

미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예정이 되어 있다면 그 예정대로 되기까지에 발생된 모든 존재 모든 활동 모든 생각은 단 하나라도 빠지거나 착오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있었다면 그 예정에도 차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태풍 하나가 한반도에 오더라도 오늘 도착한 그 태풍의 크기와 운동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그 태풍이 있기 위해서는 오늘 이전까지 있었던 모든 인근 지역의 대기 상태가 공기 입자 하나까지도 착오가 없었던 결과입니다. 오늘 이전으로 돌아 갈 수 있다면 그리고 오늘 이전에 있었던 그 대기 상태에서 그 입자 하나라도 바꿔 놓는다면 오늘 파악한 태풍은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아무리 미세한 차이라 할지라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달리 말한다면, 태풍 하나가 발생하게 되는 것에도 수도 없는 발생 요인들이 있고 이 모든 발생 요인들의 상상 못할 완벽한 관계 위에서 '측정된 태풍'이 존재한 것입니다. 심지어 태양에서 지구까지 왔던 '태양열'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그 태양의 빛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변했다면 '바로 그 태풍'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태양과 지구 사이에 있는 우주 상태까지가 그 태풍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물질계 전체의 이전 상태가 있었고 그 이전 상태가 그 다음 상태를 이어 낸 것입니다.

반대로 계산한다면, 현재 상태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다면 다음 상태의 태풍은 '100%' 계산해 낼 수 있습니다. 오늘 대기 중에 있는 입자 하나의 모든 구조와 운동 등 모든 관련 정보를 100% 알게 된다면 다음 단계에 있을 일은 정확히 계산됩니다. 전지자가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전지자가 아닌 무지한 인간의 머리로도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점점 자세하게 분석해 가기 때문에 다음 단계를 희미하게라도 예측해 가고 있습니다. 인간 과학의 발달로 그 정밀도는 점점 더해질 것입니다. 성경이 모든 것은 빠짐없이 하나님의 작정대로 움직임을 말씀했으니 그대로 믿으면 될 일이며, 더하여 그 자세한 과정을 살핀다면 더욱 확실한 것입니다.

③인간의 마음도 역시 완벽하게 예정대로 움직여야 됩니다.

바로가 강퍅해지고 바로가 후회하는 것을 모세에게 미리 말했으나, 성경 명문은 그 자세한 면에 대하여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분 예정으로 조화를 시키려는 분들은 바로의 큰 행동은 예정되었고 그 큰 행동에 이르는 미세한 것은 자유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일이 다 기록하려면 천하에 쌓아 둘 곳이 없는 진리이기 때문에 바로가 강퍅과 후회를 반복할 것까지만 그곳에는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세미한 예정은 그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바로의 마음이 강퍅에서 후회에 이르기까지는 바로의 마음이 그렇게 변화되도록 바로 마음의 안팎에 모든 요소가 정해졌고 그 정해진 연장선에서 이어진 것이 후회며 강퍅의 반복이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의 후회가 정해졌다면 그 후회에 이르도록 바로의 마음 안에서는 또 그 마음이 그렇게 마음을 가지도록 영향을 미치는 외부의 모든 환경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어졌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만일 이 과정에서 하나의 심리적 요소가 변했더라면, 그리고 그 심리적 요소에 영향을 주는 환경의 변화가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그 행동'은 변화가 되지 않았을 때 있었던 '행동'과는 다른 행동입니다.

2)성경이 예정을 말했으니, 예정이란 추호도 빠진 것이 없는 완전예정, 절대예정입니다.

태풍 하나의 형성에도, 그 관련되는 모든 천체와 그 구성요소 그리고 그것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물리들 전부가 동원되며 하나의 변동이 있으면 다른 태풍이 되는 것처럼, 인간의 한 마음, 한 행동은 태풍의 결정보다 더 세미하고 예리하고 복잡하게 작용하며 형성됩니다.

따라서 예정이라는 단어 자체를 없애는 것이 쉽습니다. 만일 예정, 그것도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단서가 붙고서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말씀하신 이상 그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어느 하나도 자유로 움직여 이탈되어서는 안되고 그리 된다면 그 예정은 성취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 그 안에 모든 존재, 그 존재들의 모든 움직임 전부가 완벽하게 차질 없이 예정대로 움직여야 그 다음 예정이 이루어지고 그래야 그 다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전부가 예언서입니다. 예정을 해 놓고 이루어 가신다는 것이 성경 내용 전부입니다. 전체도 예정이며 부분도 예정일 수밖에 없는 것은 성경 전부가 예언서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며, 예정이란 모든 것이 하나도 이탈 없이 짜고 진행될 때 예정된 그 예정이 성취되는 성격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니 예정이란, 부분예정이 있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답변3) 어항 속 고기처럼, 하나님이 정한 한계 안에서만 누리는 자유라고 한다면?


1.제한적 자유로 설명하는 대표적인 비유입니다.

①하나님이 정한 한계, 그 한계 안에서만 가지는 자유

전후, 좌우, 상하가 정해진 것이 어항입니다. 단 1mm도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 어항 속에 잇는 물고기입니다. 예를 들면 출생 시점, 사망 순간 양끝은 하나님이 정해 놓았기 때문에 인간으로는 순간도 더도 덜도 살 수 없으나 그 양단 안에서 이리 살고 저리 사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는 것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어항 앞부분으로 튀어나올 수는 없고 어항 뒷부분으로 더 돌출하여 나갈 수는 없으나 앞과 뒤 사이에 있는 물에서는 자기 마음 먹은 대로 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공간적으로도 한국 내에서만 살도록 정해진 사람은 그 한국 내에서만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이리 저리 오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간섭치 않고 인간 자유에 맡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어항의 좌우는 정해졌으나 그 안에서는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공에 적용되는 이런 설명과 같은 논리로 큰 사건 큰 역사는 정해지게 되고 그 범위 안에서는 비록 제한은 되어 있지만 어느 정도 자유가 허락되었다는 것입니다.

②인간의 상식과 성경을 조화시킨 설명으로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예정을 말했고, 그 예정은 달리 해석할 수가 없는 것이 신앙양심일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누리는 자유는 인간이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것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세상양심일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만사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나고 죽는 일, 천재지변, 부자가 되고 비천하게 사는 등의 많은 일들이 무언가 인간보다 큰 힘으로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종교가 만들어지고 자기에게 정해진 운명을 궁금해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믿는 사람은 성경을 통해 또 자기 신앙경험을 통해 인간이 인간 자유로 그렇게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며 따라서 어항 속의 물고기와 같은 입장으로 설명하게 되면 성경도 인간의 경험도 다 아울 수 있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 대한 의문은 이러합니다. 어항 속의 물고기는 과연 그 활동이 자유로운가?

③어항 속에서조차도 안팎의 환경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생명체입니다.

어항 속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항 안에서조차도 물고기가 움직이는 것은 물고기의 행동을 결정짓도록 영향을 미치는 모든 주변과 물고기 내부 상황의 변화입니다. 소화력이 증대된 상태에서 배고픔을 느낀 물고기가 자기 눈앞에 보이는 먹이감이 있어 그쪽으로 방향을 결정하게 됩니다. 먹이가 있는 쪽으로 가다가 앞에 있는 작은 먹이와 뒤에 있는 큰 먹이를 보게 됩니다. 어느 것을 먹느냐는 결정이 있게 됩니다. 뒤에 큰 것을 먹게 되는 이 물고기의 판단이 서게 되는 순간 바로 옆에 다른 물고기가 이 먹이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 포착이 됩니다. 순간 앞에 있는 작은 먹이를 먼저 먹고 그다음 큰 것을 먹을 것인가? 먹이감 둘 중에 하나밖에 못먹을 거리와 시간이라면 큰 것을 먼저 먹게 되겠고 바삐 서둘면 둘 다 먹을 수 있겠다고 판단된다면 갑자기 속도가 빨라지게 됩니다.

어항 안에 있는 물고기는 비록 어항 밖으로 나가지는 못할지라도 어항 안에서만은 자유를 누린다고 보여질 수 있습니다만, 자세하게 살펴본다면 미세하게 움직이는 안팎에 환경과 여건에 따라 활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짐승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까지 해당되는 법칙입니다. 무의식적으로 행동했으나 실은 해당되는 요소 전부가 상상 못할 정도의 복잡성을 가지고 형성시킨 행동이며, 의식적으로 행동한 것은 좀더 복잡하게 결합된 안팎의 자료입력에 대한 출력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때 행동이라는 것은 단순히 몸이 움직인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작용, 생각이라고 하는 마음의 활동도 같은 법칙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는 우리의 경험으로도 그러하며 자연이치로도 그러하며, 무엇보다 성경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며 그 주권은 예정을 성취하는 주권 섭리로 나타나고 있음을 가르치기 때문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2.예정이란 이런 이유로 인하여 완전예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①택함과 불택함을 믿는 사람 안에서 가질 수 있는 의논입니다.

우리는 천국 갈 택자와 지옥 갈 불택자의 예정에 대하여는 이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것은 불신자들의 의견을 배제하고 성경을 믿는 우리 믿는 사람들의 의견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완전 예정이냐 부분 예정이냐는 문제로 고민을 하면 했지 예정이라는 자체를 배제시키지는 않습니다. 이곳은 완전 예정을 주장하는 곳이며 대개는 부분 예정, 제한 자유를 주장합니다. 따라서 택자와 불택자에 대하여도 성경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택자가 택자로 하나님께 채택되는 데에는 사람의 수고나 행위가 일정 부분 필요했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고 그 일정 부분에 대한 설명은 구구하게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한다는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의논하는 곳이라고 전제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게 됩니다.

②택자는 미리 예정되어 있다고 전제한다면, 예정은 완전 예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택자의 예정은 우리 믿는 범위에서는 대단히 단정적이며 확정적인 고정수입니다. 구원은 변수이거나 또는 변수로 인하여 발생되는 재변수일 수가 없다는 것은 전 성경입니다. 모든 구원은 하나님의 확실한 목적, 그 목적을 위한 예정, 그 예정이 창조와 섭리로 이어지며 주권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택했다는 별도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성경은 구원이 예정되어 있음을 말씀하고 있으니 이 구원문제로 예정은 어느 정도까지 예정되었느냐 하는 예정의 범위 문제를 살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우연히 이루어질 수 없는 하나님의 도성인신 역사입니다. 그 구원을 완성하기에 이르기까지 우연에 의하여 로마정권이 있었다든지 하필 그 날 그 시간에 사형이 집행되었어야 하는 우연 돌발적 상황으로 인하여 십자가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필요한 모든 정확한 움직임이 준비되었던 것입니다. 동시에 이렇게 준비된 구원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또한 우연히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날 그 사람의 전도가 있었고 최후 순간을 믿고 갈 수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그 날 그 사람이 뜻하지 않게 오게 된 것이 우연으로 보이지만 우연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관련된 것은 만들어진 것도 또한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도 전부는 정확한 예정대로입니다.

그렇다면 준비에 필요했던 구약전부, 우리에게 전해지는 신약시대 전부는 예정대로 이 우주 만물 전체의 존재,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곳에 어느 한 사람의 어느 한 생각과 행동도 결국 그 주변에 영향을 주게 되고 그 영향은 어떤 형태로든지 파급되어 모든 다른 상황과 연결이 됩니다. 어떤 것도 완전 독립 분립된 존재, 움직임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이 예정이며 그 전달이 예정이라면 이 땅 위에 모든 것이 예정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되어 구원한 이 구원이 오늘 우리에게 전해져 우리의 것이 되는 일이 어느 우연에 의하여 좌우되고 변동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 또한 그 사람의 영원이 어떠할 것임이 결정되었다면, 그 사람이 땅위에서 예수 믿은 이후 건설한 모든 믿음의 행위들이 전부 예정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누가 천국에 갈는지, 누가 천국에서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를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다면 이는 미리 예정된 것이며 이렇게 큰 사안에 대한 예정은 그 사안을 형성하게 되고 그 사안에 포함되며 관련되는 모든 세미한 사안이 전부 예정되었음을 의미합니다.

③영원한 천국이 계시록에 의하여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예정은 완전예정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을 위해 당신의 처소로 만들어진 곳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한 처소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천국의 모습은 계21:을 중심으로 정확하게 세밀하게 전부 완공 완성된 곳입니다. 공간적 시각적 의미는 아닙니다만 상징을 인용한다면 가야 할 사람을 위해 그들의 행한 대로 누리게 할 모든 세부 사항이 전부 확정되어 기다리고 있는 곳입니다. 자로 재어 장과 광이 확정되어 있고, 그 모든 연결점이 그 모든 기초와 건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땅 위에 우리의 모든 행위는 전부 다 예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보다 계시록은 하나님께서 감추어 우리가 알 수 없었던 것을 알려 주신 것인데, 계시록의 모든 내용은 재림 때까지 일어날 모든 것을, 우리가 미리 알아서 필요한 것은 모두를 다 알려 주신 것입니다. 천국의 일부까지도 포함을 시켰습니다. 이는 예정의 비밀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실은 이미 있었던 구약의 모든 역사에 대하여도, 그 의미와 그 뜻이 무엇임을 해석해주는 계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계시록이 계시록이라면 예정은 부분 예정이라거나 또는 어떤 의미에서의 예정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전면적이며 완전적이며 절대적 예정입니다.

오늘 땅 위에서 행한 대로 내일 천국의 모습이 결정됩니다. 한번 죽으면 다시는 반복이나 번복이 없습니다. 따라서 행한 대로 갚으시는 곳이 하늘나라인데 이 하늘나라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이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오늘 땅 위에 모든 것은 결정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 갈 사람으로 택함이 되었다면 그 사람 구원 위해서 필요한 모든 내외의 요인들이 다 세부적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④재림의 시점이 주어진 것은, 예정론을 말하며 특히 완전예정을 말합니다.

그 날과 그 시는 결정되었습니다. 재림의 시점이 결정되었다면 그 재림을 그 날과 그 시에 맞추기 위해 진행되는 오늘 모든 일들은 조금도 차질이 없어야 합니다. 그 날과 그 시를 모르는 것은 우리들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알려 주지 않았을 뿐이며 만사는 예정된 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알던 모르던 상관없는 별개의 일입니다.

⑤창조의 의미를 해석해 보면 단정하고 완전예정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존재까지인가, 그 존재가 행할 행동까지인가? 없는 가운데서 생겨진 것은 전부가 하나님의 창조에 속한 것입니다.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존재와 그 존재의 행위까지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이 만들어 존재되었지 하나님이 만들지 않은 것이 존재된 것은 없습니다. 있다면 없든 것을 있게 한 그는 바로 또 하나의 창조주가 되는데, 창조는 하나님만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만들었다면, 그 자동차는 저절로 움직이는가? 그 자동차에 기름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름도 만들었다면 움직이는가? 차가 있고 연료가 만들어져도 점화가 되고 엔진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 동작은 자동차만 만들어놓으면 저절로 진행되는가? 외부에서 폭발에 관련된 전기나 기타 행위가 가해져야 합니다. 이것도 전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지 자동차와 연료만 있다고 '운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한번 폭발시키면 그 다음은 계속 폭발되며 계속 이어지지 않는가? 그 다음 계속 이어지도록 공급되는 전기는 기계가 저절로 하는 것이 아니며 폭발된 힘이 그 다음 단계로 기계를 돌리는 것도 또 별개의 재창조 재섭리로 계속 하나님의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를 하나님께서 창조했다고 할 때 그 존재란 '유형'인 존재도 있으나 생각이나 운동과 같은 '무형의 동작'도 하나님이 다 창조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창조는 하나님이 하시고 그 창조물을 자동장치에 걸어놓고 하나님은 이제 계시지 않아도 움직이는 공장이 되었는가? 하나님이 만드셨고 또 그 이후의 유지 보관 동작 단계에서도 언제든지 하나님이 다 배후에서 섭리하시며 하나님이 손을 떼면 그 즉시 모든 존재는 존재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정이란 주권이란 부분일 수 없고 완전이며 전체이며 영원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3.부분예정론이 나오는 이유

①성경을 연구하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인간지식부터를 되잡아 시작해야 합니다.

45억년의 진화가 있었다는 인간지식을 단정해놓고, 그다음 성경을 보기 때문에 결국 성경의 하루를 10억년 등으로 계산하는 타락의 첫 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해 조립을 재구성을 할 수 있고, 과학의 45억년은 손을 댈 수 없다는 선입관, 그 인간지식이 문제입니다. 성경은 창조 6일의 첫 날과 마지막 날을 같이 보았고, 출20:8에서도 창조시 6일을 6일로 계산했으니 하나님의 전능을 생각하면 성경의 6일 창조와 인류연대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될 일입니다. 과학에 문제가 있다면 과학 안에서 찾으면 될 일입니다. 복제 양과 같은 것이 현실에서 나타난다고 성경이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성경은 성경대로 붙들고 과학이 만든 현실은 하나님이 나에게 보여주신 현실이니, 현실과 성경 둘을 한 자리에 놓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될 일입니다. 기도 없이, 연구 없이, 성경권위 인정 없이 과학이 말하면 성경을 섣불리 해체하고 재단하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인간지식이 너무 과도하게 주입되어 통제할 수 없도록 되어진 것입니다.

인간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섣부른 단정에서 예정을 편집하고 재조립하여 '부분 예정'이라거나 '어항 속의 자유'로 말할 것이 아니라, 예정은 완전 예정, 즉 전체 예정이며 절대 예정니며 또한 영원 예정이라는 사실을 성경이 말하는 대로 단정을 해놓고 그다음 우리가 자유를 가지고 있는 이 자유란 무엇인지를 연구할 일입니다. 인간의 자유를 성경에 맞추어 편집하고 재단하게 되면 이것이 일반 인간 지식이 생각 못할 차원의 것을 연구함이 될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성경대로 이해 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으면 이 부분만을 가지고 성경으로 다시 와서 검토를 받으면 될 것이고, 그래도 맞지 않으면 숙제로 넘기면 될 일입니다.

②실은 악령이 인간을 점령해 가는 단계입니다.

우선 성경 자체를 부인하고, 안되면 성경의 일부를 변동 변질 편집하고, 안되면 성경의 기록 전달의 착오를 들고 나오고, 안되면 양비 양시론으로 흐려놓고 도망가버립니다. 물론 이런 순서는 한꺼번에 나타날 수도 있고 그 순서를 바꿔가며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인간을 점령해 가는 방법 중에 아주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인간 자유를 강조하고 인간 자유는 절대로 변동못할 사실로 못박아 놓은 다음 성경을 움직여 인간 지식과 이해 범위 안으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답변4)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 인간 스스로의 노력은 필요없다는 말인데 (끝)


1.인간에게 자유성이 없다면 노력할 필요도, 노력할 수도 없다는 말이라고 반론하게 됩니다.

①그러나 우리가 단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은 완전, 절대예정이라는 것까지입니다.

예정이 완전 예정이며 예정이란 손 댈 수 없는 성경교훈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완전 예정에 맞도록 맞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재단도 편집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란 착각이며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물론 아주 어려운 말이지만 그래도 성경을 움직일 수 없으니 인간의 자유의지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라는 시각입니다.

②인간에게는 과연 자유의지가 확보되어 있는가? 혹시 달리 보면 달라지는 것은 아닌가?

인간 자아의식은 분명히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능력이 없고 지식이 부족해서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자유가 있다는 것은 확정적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착각이 아닐까? 성경이 완전 예정을 규정하고 있다는 쪽이 거의 확실하게 들어나고 있으니 인간의 자유가 혹시 자유가 아닐 수 있지 않는가 라고 한다면 그 가능성은 아주 크게, 또 확실하게 우리 시야에 들어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지 않았는데도 인간이 그것을 자유라고 착각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항 속 물고기의 행동은 최소한 물고기 스스로의 행동이라기 보다 그 고기가 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보이지 않는 원격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로 모든 행동 모든 심리를 파악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예정이 완전이며, 예정이 완전이라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논리적 단계가 나오게 되는데, 이 자유의지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착각하게 하고 실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언행심사 하나까지를 예정하신 대로 진행시켜 나간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문제는 없겠는가? 일단 별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만일 문제가 없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예정에 대한 논의를 일단락 짓게 되는 것이나 만일 있다고 보이면 또 다시 제기된 부분으로 하나님의 예정에 맞춰 볼 수 있습니다.

③자유의지가 없다면 인간은 노력할 필요도 없겠다는 의문이 있습니다.

인간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답하기 쉬운 대목입니다. 인간이 노력한다고 되느냐?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착각입니다. 인간이 했다는 것이 뒤에 보면 전부 안해도 될 일, 안해야 할 일만 했을 뿐입니다. 해야 할 일,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을 한 것은 사실 없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된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했다면 인간이 한 것이 아닌가? 인간이 조금이라도 힘을 써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을 했을지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 되었는데 조금이라도 인간이 힘썼다는 그 부분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요 역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전혀 힘쓸 것도 또 힘쓸 필요도 없는 것이겠습니다.

그러합니다. 인간은 타락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도록 예정되었고 하나님께서 타락을 예정대로 진행시켰기 때문에 타락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원받는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또 우리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이 우리가 알도 듣도 보도 못할 때 해놓으신 것입니다. 주시는 우리는 받은 것뿐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하나님 한 분만의 움직임이고 나머지는 그분의 움직임에 나타나 보이는 하나의 현상들이라는 말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무엇을 한다 안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며, 믿겠다 안 믿겠다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될 수도 없는 일, 될 리도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다면 그리고 그 죄가 마음먹은 것부터 행위까지 전적 하나님의 역사였다면 하나님도 죄를 지으시는가? 인간이 볼 때 죄라는 그 죄를 하나님은 짓습니다. 짓는 정도가 아니라 그 죄를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찌 되는가? 죄는 인간에게만 죄가 되고 하나님께는 죄가 죄되지 않습니다. 존재의 가치와 존재의 위치에 따라서 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2.인간은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두 가지 종류의 예정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①운명론, 숙명론에 완전히 빠져 자포자기의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이런 반응이 나오게 되는 것도 전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보이지 않는 예정이 이런 반응을 만들었으며, 반대로 이런 반응을 보면서 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이러했구나 하게 됩니다. 동시에 이 사람의 앞날은 복 없는 예정이겠구나 라고 추측까지 하게 됩니다. 단정은 할 수 없으나 오늘을 보아 다음을 희미하게라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필요 특별한 순서가 아니라면 대개 봄이 오면 여름이 이어지도록 하시는 것이 일반적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름이 정확히 어떤 시기에 어떤 모습으로 올지는 몰라도 윤곽은 가능한 것처럼, 운명론에 빠져 자포자기하는 반응을 보일 때 이 사람은 앞으로 복 없는 걸음이 당분간 계속되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②담대하며 감사하며 충성하는 사람도 나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라니! 이 얼마나 든든하고 이 얼마나 다행스런 운 일입니까! 아버지의 사랑이 아버지의 전지 전능이 나를 아버지 같은 아들을 만들기 위해 철저한 예정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니 이 어찌 든든치 않겠습니까! 대통령의 문서 약속이 있어도 인생사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고 일말의 불안이 있을 것인데, 완전자 전지전능자의 약속이 보증되어 있다니. 날 사랑하여 다 바치고 투자하는 사랑의 아버지가 작심하고 계신다니, 무엇이 걱정되겠습니까? 그냥 든든할 뿐입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거저 감사할 외에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니 이미 다 되어 있는 것이니 주는 대로 받아 챙기기만 하면 되겠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누리기만 하면 되겠구나. 이렇게 나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반응을 가지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며 이런 태도가 나오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은 복된 사람으로 당분간 계속되겠구나 라고 추론하게 됩니다.

③이렇게 느끼는 것까지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또 토를 단다면

맞는 말입니다. 그것까지도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구경시켜 주니 구경하는 것이고 들리게 만드니 들려지는 것일 뿐입니다. 감사토록 해주시니 감사하는 것이고 충성할 마음을 주시니 멋도 모르고 사정도 다 모르고 인도대로만 따라가며 충성도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려는 마음도 또 실제로 하는 행위도 전부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주께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며 인간은 방관자의 위치에 세워 두시고 방관케 하니까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인데, 그 방관을 칭찬하고 또 상을 주시고 천국을 누리게 하시니 시작도 중간도 마지막도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3.인간이 결국 완전한 꼭두각시라는 말입니까? 그렇게 묻는다면 그렇습니다.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 성경이니 성경으로 대답을 해 드린다면, '인간은 꼭두각시'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쉬운 그리고 정확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단, 이런 논리 설명에 대하여 인간의 표현법 인간끼리 인간의 시각에서 만든 인간의 표현대로 묻고 그 질문에 꼭같은 수준에서 답변을 드린다면 그러합니다. 아닌 경우도 있다는 말입니까?

성경이 인간에게는 자유성이 있음을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유성이 있는 것입니다. 단, 인간의 시각에서 인간끼리 통하는 '표현범위'의 자유성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자유성, 완전 예정과 함께 갈 수 있고 완전 예정과 한 자리에 앉혀 놓아도 모순 없이 대립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자유성을 찾으면 됩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위에서 지금까지 살핀 것처럼 인간 수준에서는 예정과 자유란 공유할 공동공간이 없는 개념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둘을 다 말했다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말씀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세월이 걸리더라도 찾으면 됩니다.

우선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있겠다는 것을 이런 비유로 예를 들 수 있습니다. X 선이라는 1차원의 세계를 아는 인간에게는 X 선상의 어느 한 좌표에는 한 개의 구슬만 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X 선 외에 또 하나의 선, 즉 Y 선이라는 직각접촉되는 또 하나의 선을 가진 인간에게는 X 선상의 한 좌표에 구슬을 한 개 뿐 아니라 수없이 올려 놓을 수 있습니다. 공간의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의 개념만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고 가설도 세울 수 없는 억지 논리 같을 것이나, 이는 차원이 다른 시각에서는 실체입니다.

성경이 예정을 말했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했다면, 예정은 완전예정이며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예정대로만 되어지는데 동시에 성경은 우리에게 '자유로 선택할 수 있는 두 길 중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너무도 많으니 우리는 두 길 중에 한 길을 선택하여 바로 가기 위해서 애쓰는 데까지가 우리 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 예정론을 가지고 오히려 그 선택과 애쓰는 일에 담대함과 감사함 그리고 충성까지를 보태면서 갈 일입니다. 그리고 이 설명에 모순이 있고 이 설명에 더 수정하거나 또는 보충함으로 옳은 도리가 있다면 더하면 됩니다. 아직까지는 여기까지가 답변자가 깨닫고 나올 수 있는 최극단에 속한 부분입니다. 답변자 역시 백목사님의 교훈 중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에만 해도 도저히 더 넘을 이치는 없겠다고 생각하여 주저앉았던 곳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했던 인식 세계를 여기까지 넓혀 왔으니 앞으로도 더 배우고 노력하면 더 갈 수 없는 곳이 그렇게 쉽게 보이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길은 땅 위에서도 계속되다가, 본격적으로 나아가는 곳은 천국이라 천국은 바로 진리의 나라 해가 있는 곳입니다.

만물과 인간의 다른 점이 자유성이 있어 하나님이 주시는 두 길 중에서 복된 구원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그 본질인데 이렇게 설명이 된다면 이 인간의 본질적인 면과 모순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형체만 가진 돌, 무형의 생각과 동작까지 주신 생명체, 그리고 죄와 의라는 두 길 앞에서 선택의 폭이 있는 인간을 각각 따로 만드시고 그들이 위치만 가지고 있던, 동작이 있던, 죄와 의에 대한 선택까지가 있던 하나님이 예정하심은 같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만 그들의 존재도 동작도 선택도 전부 이루어진다는 것도 같으나, 성경이 인간에게는 '자유의 선택'을 의미하는 명령을 했으니 우리가 예정대로 움직이는 이 모습을 성경은 그렇게 표현한다고 인정하여 표현까지를 성경에 맞추면, 그리고 동물에게는 동물에게 주어진 성경 표현을, 그리고 돌에게는 돌에게 주신 일반적 표현을 그 돌에게 해당되는 표현인 줄 알고 그리 사용하고 그리 인식해 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어집니다.

지금 이 문제는 간단하지 않으며 특히 오늘 땅 위에 있는 우리 인간으로는 가장 어렵고 설명 또는 이해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너무도 쉽고 쉬워 보이는 '교회'라는 개념도 모든 사람이 쉽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교회'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아닌 자기들 대로 따로 만들어 가지고 있는 교회들입니다. 이것이 고장이며 이 고장 때문에 오늘 교회가 없어 고장이 아니고 교회가 많아 고장들입니다. '목사'는 무엇인지 우리가 아주 쉽게 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착각입니다. 백목사님이 가신 이후에는 답변자의 눈에는 아직까지 목사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이 땅위에 단 한 사람도 목사가 없는 것이 아닌가 불안합니다. 답변자를 포함하여 이 땅 위에 모든 사람들이 쉽게 확인하고 쉽게 안다고 생각하는 이 목사들이 너무 많아서 탈들이 나고 있지 목사가 없어서 탈이 아닙니다. 총공회를 아는 총공회 교인들이 너무 많고, 개교회주의를 아는 목회자들이 너무 많으나 바로 알고 근접이라도 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악귀 성령, 혈육주의 와 순응주의를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악귀 든 다른 사람들과 성령에 붙들린 자기를 너무 잘 구별하여 탈들이 나고 있습니다. 실은 전혀 모르거나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선지자는 바로 이 면 때문에 평생을 설교했고 이 면을 가르쳤으니 그는 많이 가르쳤던 분이 아니라 실은 몇 가지 안되는 내용을 가지고 평생 반복을 많이 했던 분입니다.

이제 이 정도에서 또 한번 약간의 시간을 가지고 쉬며 많은 대화와 과제를 가지고 명상과 성경연구의 기회를 가질 것을 권합니다. 너무 높은 도를 너무 미천한 사람끼리 주고 받다 보니 바른 것은 조금이요 그른 것은 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노력 자체가 이 예정교리를 가르쳐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질문과 답변자 그리고 이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이들을 예정하셨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재질문 : 조진욱
(2001-02-08 11:08:51)

재질문: 다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왜 만들었을까요?


(*개별 문의가 있었으며 이를 대신 올립니다.)

예정은 절대 예정이라는 설명을 위에서 다 읽었습니다.
이치적으로는 옳다고 인정되며 또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동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절대 예정 속에 지음 받은 것이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라면 굳이 우리를 만드신 이유는 과연 어떻게 이해를 해야할까요?


답변 : yilee
(2001-02-08 11:14: 2)

(보충답변):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와 전능이 하나님께 가장 좋도록 만든 결과입니다.


우리 택자란, 우리 성도란,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란 어떤 존재 의의를 가지고 있는가?

1.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대상입니다.

완전자 하나님께서 완전의 지혜와 능력으로, 완전자 하나님 스스로 가장 기뻐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으며 그 이상이 없는 최상의 존재 하나를 만들어 본 그 '결과물'입니다. 완전자 하나님께서 최상으로 또 지상으로 기뻐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우리 인간은 '타락전' 아담의 모습이 아니라, '타락후' 구원받은 현재의 모습인 우리입니다.

2.타락까지 시켰다가 구원하게 되면 더 나은 우리가 되기 때문에 타락까지 시켰던 것입니다.

우리의 평범한 소원은 하나님께서 천국만 만들고 그곳에서 우리를 처음부터 살게 하시고 영원히 계속 이어지도록 했었더라면! 생각을 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경우는 하나님의 창조라는 '행동'만으로 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타락하게 한 다음 우리를 다시 구원하여 오늘 구원받은 우리로 만들어 천국으로 데려가시게 된다면, 이런 우리란 하나님의 '창조행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시고 고난 받고 죽고 부활하셔야 하고, 부활 후에도 인간을 입고 영원히 계셔야 하며,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으로서도 더 이상 해 줄 수 없는 모든 투자를 다해야 가능합니다. 이 두 가지 방편, 이 두 가지 길을 전지자시니 다 아시고 그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이 줄 수 있는 방법, 즉 우리를 더 많이 사랑하시되 그 이상 사랑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바로 두 번째 방법이기 때문에 두 번째 방법을 채택하여 우리 구원의 과정을 예정하신 것입니다.

3.타락을 거친 인간과 거치지 않은 인간은 차이가 있습니다.

참고로 첫 번째 방법에서는 하나님께 받는 사랑만 알게 되고, 두 번째 방법을 통과하게 되면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과 끊어진 상태가 어떤 것임을 알고 난 후의 우리가 되기 때문에, 양면 지식을 다 가진 우리를 만들면 우리의 기쁨과 감사가 더 큰 것이며 이렇게 하나님께 더 감사하고 기뻐하는 우리를 보시는 것이 또한 하나님께 더 큰 기쁨이기 때문에 두 번째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4.주시는 것이 사랑이며, 가장 많이 주시는 것이 가장 큰 사랑입니다.

왜 그렇게 큰 수고를 자청하셨는가? 할 필요도 없으며 또한 안하면 안 될 이유가 있어서도 아닙니다. 그냥 사랑으로 인하여 하신 것입니다. 사랑의 정의란 '주는 것'입니다. 완전자란 왜부로부터 더 이상 받을 수 있는 공간, 받아야 할 필요성 자체가 없어야 완전자입니다. 대신 완전이란 자체는 완전이기 때문에 외부로 줄 수 있으며 주고자 하는 속성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 속의 세계에서, 완전이 줌으로 완전으로 인하여 받는 존재를 만들어 그 존재가 완전에게 받는 것으로 혜택을 보고 그 혜택 때문에 자기에게 배푼 완전에게 감사하게 하는 이 과정이 바로 완전자의 자체 속에 있는 사랑의 작용이며 그 작용의 진행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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