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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목사님의 하루 일과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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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2176
작성일
2022.08.02

[목회] 반갑습니다 (목사님의 하루 일과 궁금 - 관)

 

미래의목회자 2003.6.10.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홈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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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교인이아니지만 조만간 주님을 찾아야될것같은 사람중에하나입니다
종교에대한질문이아닌 궁금한것이있어 질문을하나드릴까합니다.

이많은문의답변을 혼자서다하시는지 여러분이분담해서하시는지 ...
매일새벽기도에 목회일보시고 개인가정일도 보셔야할것같은데 그것이가능한지

목사님의 하루일과가 궁금합니다

 


이곳 답변은 답변이라기 보다, 백목사님 설교록에서 답변을 찾아 배달하는 정도입니다.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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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인이 되는 시점은 예배당 첫발을 딛는 시점보다 보통 먼저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배당 첫 출석을 교인되는 시점으로 보는 분들도 많지만 자기 몸을 예배당으로 옮겨놓기 위해 혼자 고민하고 계산하던 그 시절에 이미 자기 속 깊은 곳에 주님이 주인으로 들어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주님이 자기 중심에 들어오셔서 이제 예배당으로 가자고 권하시는데, 예배당으로 가기 전 이런 마음이 생기는 시점이 벌써 교인입니다. 따라서 질문자께서는 이미 주님을 만나뵈온 분으로 생각합니다.

 

 

2.이곳 문답은 한 사람이 맡고 있습니다.

 

답변이라고는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이 홈의 간판에서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백영희신앙노선'의 설교록 자료 중에서 답변될 내용을 모아다가 배달하는 정도입니다. 답변 중에서 조금이라도 도움되는 부분이 있었다면 설교록 내용 때문으로 보시면 되고, 답변이 불편했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설교록 내용을 이곳으로 옮겨 소개하는 답변자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시면 맞습니다.

이곳 /초기화면/활용자료/에서 제공하는 설교자료들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입니다. 일반 교계의 설교 개념이나 주석 개념과 달리 '목회설교'라는 개념은 일반 교인이 실제 생활 중에 부딪히는 모든 문제를 실제 상황으로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히 백목사님의 신앙세계는 명료하고 간단하며 핵심을 바로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백영희신앙노선'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서 연구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3.이 설교록에 정통한 분들은 적지 않습니다.

 

이 설교록 자료를 전후 좌우로 꿰뚫고 그 세계에 자신을 깊이 적신 분들은 적지 않습니다. 목회자 뿐 아니라 평신도로 게시지만 목회자를 지도할 위치에 있는 분들도 더러 계십니다. 다 이 시대에 숨어 있는 스승들이지만 여러 개인 형편 때문에 외부 활동을 못하는 분들도 계시고, 그 중에 몇 분은 내면에 하나님 만나뵙는 시간이 바빠서 외부 사람들과 면회할 기회를 일부러 피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4.답변자의 일과는 한번 문답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답변자는 전남 여수 바닷가 시골 마을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매일 4시 30분 새벽예배와 밤예배 2회 그리고 주일 오전과 오후예배를 목회자로서 맡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일이고 또 1차적인 업무입니다. 두번째 노력하는 일은 답변자 교회 교인들의 생활 문제입니다. 시골교인들이므로 자신들의 세상일을 목회자로서 봐 드려야 할 일이 늘 많습니다. 이런 일을 심방차원에서 살펴드리며 목회의 두번째 중요한 일로 하고 있습니다.

평소 일이 없는 날에는 하루 종일 시간이 있기 때문에 '백영희설교록의 교리체계화' 작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문답방은 공개 운영이며 많은 분들과의 약속이므로 교리작업보다 우선하고 있습니다. 총공회목회자들에게는 원칙적으로 개인 가정사가 없기 때문에 개인가정사 때문에 시간을 뺏길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복음

가정을 위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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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가정사가 없다고 하심은 가정을 돌보는 시간이 없다는 말씀인데 가족을 위하여 사용하는 시간도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아닌지요, 가정은 천국의 모형으로 주신것이 아닌지요

 


목회자가 가진 시간은, 교회와 가정을 향해 동시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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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람이 한 쪽에 쏟는 것이 많으면 다른 쪽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에 충실하면 가정에 소홀할 수 밖에 없고, 가정에 충실하면 그 무엇인가 직장의 맡은 일이 묘하게 겉돌 수 밖에 없습니다. 말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직장과 가정에 꼭 같이 충실할 수는 없습니다. 처가집과 친가, 시댁과 친정을 두고 예를 들어도 양쪽에 꼭 같이 잘할 수는 없습니다. 시댁에 집중하면 친정이 소홀해지고, 처가에 잘하면 친가는 겉돌 수 밖에 없습니다. 양쪽에 꼭 같이 잘하는 분이 있다면, 양쪽이 원하는 만큼 잘해서 잘하는 것이 아니고 양쪽에 절반씩 아쉽게 하고 절반씩 잘했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입니다.

100을 가진 사람이 친가에 100을 쏟을 수 있고 처가에 100을 쏟을 수 있지만 양쪽에 꼭 같이 100씩을 동시에 쏟을 수는 없습니다. 처가에만 100을 쏟은 사람은 친가에서 여자에게 완전히 빠졌다고 욕을 먹어야 할 것이고, 친가에만 100을 쏟은 사람은 처가에서 딸을 훔쳐간 도둑ㄴ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양쪽에 50씩 나누어주면 양쪽이 절반은 아쉽고 절반은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2.목회자의 몸과 시간은 하나입니다. 가정에 쏟으면 교회에 쏟는 것이 그만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목회자라는 것은, 목회를 출발할 때 자기 가진 모든 것을 주 앞에 바쳐 복음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약속을 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서약에는 자기 경제도 들었고 시간도 들었고 건강도 들었습니다. 심지어 가정도 들었고 최후에는 목숨도 들었습니다. 물론 약속은 했으나 부족해서 다 드리지 못한 것도 있고 절반 드린 것도 있고 못 드린 것도 있습니다.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목숨을 드리는 것은 순교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허락하지 않으시면 인간이 소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고 깨닫기 때문에 소원만 하지 실제 바치는 것은 목회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것은 얼마든지 힘대로 바칠 수가 있기 때문에 바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바칠 것인가? 가능한 한 힘대로 바치고 많이 바치면 좋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일 덜 바치고 못 바치게 된다면 이는 불충이며 부족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경제로 말하면 최저생계비를 일반적으로 권하고 있습니다. 그 이하로 내려가는 것은 특별한 실력과 준비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소원은 하더라도 강권하지 않습니다. 본인의 개별 은혜에 맡겨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저생계비라는 기준은 목회자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이고 또 본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가족을 가지기는 하지만, 가족을 위해 쏟는 시간은 최저생계비 개념으로 줄이겠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교회를 책임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가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쪽에 더 많이 시간과 정성을 쏟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 표현을 빌리자면, 가족을 덜 사랑하거나 가족 가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교회에 대한 책임이 우선이고 중요하기 때문에 최대한 교회에 쏟는 시간이 많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조정할 것인가?

목회자가 자기 가정까지도 복음을 위해 바치기로 약속을 했다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은 사모가 전적 맡고 목회자는 교회를 전적 맡고 나서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교회를 전적 맡고 있는 목회자가 가족의 일원으로 자기가 아니면 안되는 필수 사안에 대하여는 가정의 책임으로 움직이겠지만 그 선은 최저 필수 사안에 맞추겠다는 것입니다. 그 최저선이라는 것은 목회자마다 다 다르겠지만 이제 말씀드린 원리로 구별해 본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가족을 책임지는 것은 사모가 전적 맡겠지만 만일 가족에 쏟는 시간에서 최대한 뽑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을 목회를 내조하는 일에 돌려야 할 것입니다. 물론 말씀하신 대로 가정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자기 가정을 천국의 모형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다른 가정을 그렇게 만드는 일에는 소홀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 가정에 집중하면 천국의 모형을 만들 수 있지만 다른 가정을 위해 먼저 노력하는 것이 양을 맡은 목자의 정상적인 행동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목회자가 가족을 위해 투자하고 집중하고 사용하는 시간과 정력만큼 교회라는 목장에는 빈공간이 많아질 것입니다. 답변자로 말하면 이곳에 답변을 달고 또 다른 자료를 제공하고 또 앞으로 올릴 자료를 정리하는 작업에 투자하는 시간과 가족에게 투자하는 시간은 함께 나가기 대단히 곤란한 면이 있습니다.

 

 

4.그렇다면 가족의 신앙은?

 

목회자가 가족을 사랑할 수 있고 또 가족을 위해 사랑의 시간을 쏟고 싶지만 하나님 앞에 받은 더 급한 업무 때문에 가족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이 모습을 보면서 사모와 자녀들은 2가지 길을 택하여 걸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하나는, 더 중요한 업무에 집중하느라고 사랑하는 가족을 안타깝지만 돌보지 못하는 면을 보면서 더욱 협조하고 더욱 자신들의 할 일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를 원망하고 목회자 가족 된 것에 반감을 가지는 경우일 것입니다.

복 있는 가족이 될 것인가, 아니면 복 없는 가족이 될 것인가? 이것이 대단히 큰 관심사일 것이고 또 목회 현장에서도 시한폭탄과 같은 사안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하는 법은, 목회자가 결혼을 할 때 상대방을 어떤 기준에서 택했느냐는 데 있습니다. 목회를 생각하여 목회에 복된 마음으로 동참하고 훗날 자녀들에게도 복된 자세를 가지도록 할 수 있는 면을 우선한 목회자는 목회에 전념한다고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적을 것입니다. 다른 면을 보고 결혼한 사람은 그만큼 십자가를 져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목회자가 목회에 집중한다고 해서 가정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교회 때문에 목회자가 희생을 당한다고 생각하기보다 목회자 자신이 이런 환경에서 복없는 가족이 되도록 애당초 가정을 이룰 때부터 처신을 잘못했다 하여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국가적 임무를 띠고 해외로 파견 나가는 특수 임무자들, 전방 철책 안에서 근무하는 장교들, 외딴 섬의 치안을 맡은 경찰들, 심지어 1-2년 씩 집을 떠나야 하는 외항선원들, 항상 외박만 하고 다니는 국제 항공편 조종사들과 비교한다면, 목회자들의 근무 여건은 비교할 수 없이 좋은 편입니다. 앉아서 가족으로 대화하거나 가족단위로 움직이는 일은 거의 없다 해도 예배 때마다 자기 식구들이 목회자의 얼굴과 교훈을 계속해서 들을 수 있으며 또 아침 저녁으로 계속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목회자보다 가정을 제대로 유지하기가 훨씬 어려운 직업들을 앞에서 말씀 드렸는데, 사실 이런 직업에 있는 사람들은 가정을 대부분 훌륭하게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접촉하는 시간과 기회가 많아서가 아니고 남아 있는 가족들의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해외 공관직원 국제항공 조종사 등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외딴 섬의 경비 책임자 등은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들은 자기 호주가 실력이 없어 그런 곳에 밀려 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목회자를 세상 일반 가정과 비교한다면, 목회자가 그 교회에 성실하게 목회를 하는 이상, 가정에 쏟는 시간과 노력이 적다고 해서 그 가정에 문제가 발생할 일은 없다고 봅니다. 만일 있다면 다른 문제일 것입니다. 차분하게 따져보면 세상적으로만 본다고 해도 목회자만큼 세상에서 알짜배기 좋은 것만 다 빼먹고 사는 직업도 없을 듯 합니다. 그런데 그런 좋은 여건에 있는 목회자가 자기 가정을 위해서 좀더 움직이겠다고 마음을 움직인다면 대단히 많은 모순들이 발생될 것 같습니다.

답변자의 사생활로 말씀을 드리지 않고, 정상적인 목회자의 경우를 생각해 보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답변자의 가정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하여는 교인들이 평가할 문제일 것 같습니다.

 


이복음

지극히 낮은 차원의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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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장 내용중의 일부입니다.

"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

목사님의 주님을 향한 헌신을 이 홈을 방문하는 분들은 잘 알고 있으며 항상 감사함으로 이 홈을 접하고 있습니다.

일반론적인 측면에서 생각이 나서 몇자 여쭈고자 합니다.

 

1. 제가 알기로는 결혼을 하지 않으면 목사안수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옳은지는 각자의 판단이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 주의 종으로 바쳐지기를 원하는 주의 택자라면 결혼을 하지않고 주의 종으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독신이라도 목사 배출이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요.

 

2. 이미 가정을 가졌으면 나에게 주신 배우자와 자녀를 최대한으로 돌보는 것이 주의 일에 헌신하는 일이라면 성경적이지 못한 생각일런지요. 지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목회자 자녀의 생활이 사회적으로 물의가 일어나는것은 나는 주님에게 바쳐진 몸이기에 주의 일에 전적으로 매달려 가정을 소홀이 한 어찌보면 모순된 모습의 단편이 아닐런지요.

물론 목회자를 가장으로 두신 대부분의 가정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자부심과 목회 동역자로서 헌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반복되는 답변이지만, 조금 다른 면에서 예를 들고 설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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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말씀하신 대로, 독신의 목회자도 배출해야 옳습니다. 그런데도 독신 목회를 막고 있는 것은

 

①독신 목회로 인해 교회가 가질 은혜보다, 독신 목회로 인해 손해볼 부분이 많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양과 종류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따라서 독신으로 목회에 전념할 수 있는 은혜를 받은 목회자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독신 목회를 엄하게 거부하는 이유는, 오늘 시대가 7계명으로 망할 말세이기 때문입니다. 독신으로 목회할 수 있는 자제력과 깨끗한 인격을 가진 분이 더러 계시겠지만, 독신 목회자를 상대하는 일반 교인들과 주변에 전도해야 할 안 믿는 이웃들이 필요없는 오해를 하고 공연히 시험거리를 만들 것이기 때문에 독신 목회를 피하게 하는 것입니다.

독신으로 목회할 때 교회가 유익을 보는 양과 독신이기 때문에 손해를 볼 양을 비교해 본다면 손해가 너무 많겠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독신으로 목회할 수 밖에 없고 다른 길이 없다면, 오해나 시험이 있다 해도 목회자만 깨끗하다면 독신 목회를 고집할 수 밖에 없겠으나 목회자가 가정을 가지는 것이 더 일반적인 것이므로 위험한 길은 가급적 피해 가자는 뜻입니다.

과거 홍순철목사님이라는 분은 결혼 전에 목회를 나간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주 특수한 은혜를 가진 분이었는데 결혼 상대가 얼른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목회자가 급한 교회가 있어 백목사님이 특별히 먼저 파송한 다음 결혼을 뒤에 시킨 경우였습니다. 법으로 금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으로 금한다고 할 만큼 조심하고 있습니다.

 

②독신 목회를 일괄적으로 금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독신 목회를 해서는 안되는 분들 때문입니다.

 

독신 목회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분들을 10명으로 볼 때, 정말 평생 독신으로 목회할 분은 1-2명일 것이고 나머지 8-9명은 짧은 기간이면 몰라도 장기간 또는 평생을 독신으로 목회를 할 정도는 아닌 분들일 것입니다. 평생 독신을 지킬 분도 있고 그렇게 못할 분도 있는데 만일 독신 목회를 허락하게 되면 평생 독신을 할 수 있는 분은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처음에는 잘하다가 나중에 독신이기 때문에 발생되는 여러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여 교회에 손해를 끼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독신 목회를 할 수 있는 분이면 가정을 가지면서도 가정을 완전히 초월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독신 목회자는 결혼을 하게 되면 조금 불편할 정도일 것이고, 그대신 평생 목회가 곤란할 분들에게 독신 목회를 허락하는 경우 어느 순간 큰 시험이 닥칠 때 큰 손해를 볼 것인데, 그때마다 일일이 관리 감독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그런 분들에게는 처음부터 결혼을 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만을 두고 말한다면 독신 목회가 가능하다 해도 독신 목회를 감당 못할 분들 때문에 일괄적으로 결혼 목회를 권하고 있습니다.

 

③손양원목사님이나 백목사님 같은 수준에 있는 분들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백목사님을 시기하여 견제하려던 분들이 항상 사용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입니다. 첫번째 방법은 대외적으로 일단 '이단'이라고 선언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근거는 자기 교단과 다르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하는데 그런 논리는 자기 교단에서조차 용납되지 않는 일이지만 현실 교계는 정치목사가 주도를 하게 되어 있고, 교회 정치는 '선동정치'가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방법은 은밀하게 '7계명을 범했다더라'고 유포를 시키는 것입니다. 아니라고 증명을 할 수 없는 죄가 그 죄의 특성이므로 상대방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매장시킬 때, 특히 백목사님처럼 흠과 점을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고차원의 지도자들을 교계 정치가들이 잡으려고 할 때 들고 나오는 방법입니다.

오늘도 고신측 나이 많은 목회자나 교인들은 50년 전에 들었던 그런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불행해지게 되어 있는 분들이라고 하면 너무 가혹한 표현이 될 것 같아서 피하겠습니다만, 분명히 그들이 모를 리가 없는데도 그런 모함을 굳이 사실로 믿고 싶어하는 것은 넘볼 수 없는 경쟁 상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게 해석을 한다면 열등의식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못된 발언 하나를 가지고 이 복음을 가로막은 결과는 아주 대단했습니다. 측정을 다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만일, 백목사님이 가정을 가지지 않았다면 평생 그 발언에 막혀 이 복음을 접할 사람들이 돌아선 숫자는 생각도 못할 정도일 것입니다.

또 한 분의 예를 든다면 손양원목사님입니다. 그의 두 아들의 순교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한국교계에서 손목사님에 관련된 이야기는 전부 좋은 면으로만 돌고 있지만, 대단히 깊은 곳에서 은밀하게 아직까지도 살아남아 있는 유언과 비어 중에는 손목사님에게 딴 여자가 있었다는 말이 있는 정도입니다. 손목사님이 전적 목회에 전념하느라고 가정을 돌볼 시간이 거의 없었고 또 사모님의 신앙이 특별하다 하지만 자신보다 탁월했던 손목사님의 신앙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두 분 사이에는 그들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미묘한 갈등이 있게 됩니다.

그런 분들의 깊은 세계를 보지 못하고 자신들 부부 수준에서만 보는 일반 교인들로서는 손목사님은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를 못했다고 생각하는 측근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말들이 돌아다니면서 어느 단계에서부터 말이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손목사님 사망 50년이 넘는 오늘까지도 교계 깊은 곳에 있는 분들 중에는 손목사님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발언을 슬쩍 흘리고 다녀 아직도 그 산불이 끄지지 않고 있습니다. 만일 손목사님이 독신으로 살았다면 어느 정도로 말이 나왔겠는지? 아마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전기 내용이 허구였다는 학설이 나올 정도로 못된 말들이 많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두고도 예수님에게 여자가 있었다는 말을 감히 입밖에 내뱉는 신학자가 있는 정도입니다. 영화를 찍는 잡ㄴ 잡ㄴ들이 재미로만 던져 본 말이 아닙니다.

 

④가까운 역사에 '김현봉목사님'이라는 이름을 이런 면을 두고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백목사님 설교록에 손양원목사님과 함께 제일 많이 소개되는 분 중에 한 분입니다. 많은 일화가 있지만, 이번 질문을 두고 드릴 말씀은 그분은 평생 부부를 부부라는 이름으로만 두고 살았지 이성으로 상대한 적이 없었던 분입니다. 양도천이라는 사람처럼 이단들이 한번씩 별스러운 재주를 부리느라고 써먹는 것과 달리 김목사님은 복음 앞에 스스로 그렇게 했던 분입니다. 그분의 평생 걸음이 권능으로 걸었고 자기 시대를 감당하던 분입니다.

그 사모님이 간호사로 계셨는데 곰보였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김목사님이 선을 보러 나갔을 때 신부 될 분을 따라 나왔는데 그 얼굴이 곰보인 것을 보고 김목사님 자신이 아니고는 결혼할 사람이 없겠다고 생각하여 따라 나온 분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그대신 그분에게 평생 부부로 살되 이름으로만 살고 이성관계는 가지지 않기를 제의하여 그렇게 살았습니다.

김목사님 같으면 과연 평생 독신으로 살 수 있는 분이었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또 객관적으로 충분히 입증이 되는 분입니다. 그러나 독신으로 살 수 있는데도 겉으로는 결혼 부부로 목회를 한 것을 두고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⑤결론적으로, 독신 목회를 꼭 말리기는 하지만 법으로 말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까지 설명드린 여러 문제점들을 총동원하여 목회자에게는 독신을 하지 말고 목회를 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독신목회와 결혼목회가 결국 손익을 따져보면 결혼목회가 낫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특수한 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법으로 막지는 않습니다. 이제 말씀드린 이런 이유로 충분히 설명을 할 따름입니다.

 

 

2.독신 목회가 좋으나, 만일 결혼목회를 해야 한다면, 가정에도 충실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두번째 질문이라고 읽었습니다. 누차 말씀하시는 질문자의 뜻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또 답변자가 앞에서 반복하며 설명드린 '진심'를 질문자께서 이해하지 못해 재질문하는 것은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

일단 이 문제는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너무도 답변이 길어지므로 원칙적인 말씀만 드리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주님께 바쳐져서 복음을 위해 살겠다고 약속한 자리입니다. 가족을 신앙으로 돌볼 수 있는 기회까지도 맡은 교인들을 돌보는데 우선적으로 바치겠다고 약속을 하고 나온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노력해야 할 방향은 너무도 명확할 것입니다.

 

 

3.목회자 자녀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와 모범을 보이는 경우를 잠깐 말씀하셨는데

 

①목회자 가정의 행복지수와 그 교회의 행복지수는 반비례합니다.

 

이런 통계가 있습니다. 과거 목회자들은 전부 고생을 했었습니다. 교세가 약했으므로 경제도 어려웠고 또 전도하는 등 노력할 일은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 시절 목회자 자녀들은 남에게 덕이 되는 경우보다 덕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목회자 자녀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는 적고 오히려 모범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지금은 특단의 경우가 아니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은 별로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돈이 넘칩니다. 그리고 사회가 발전되면서 목회자가 교회에 매이는 시간은 현저하게 줄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사택에 풀어놓는 돈과 여유가 많으면 자녀들이 바로 자라고 그 반대가 되면 자녀들에게 불행한 일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조금 관찰력이 있는 분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인데, 이 통계는 또 하나의 통계를 동시에 살펴보아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사택에 돈과 여유를 쏟지 못하고 어려울 때는 자녀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그 시절에는 교회가 건전했고 발전했고 그때는 교회가 기도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 목회자가 교회에 쏟을 시간과 교회에 사용할 돈을 사택으로 충분히 가져가면서부터 사택은 모범적인 가정으로 발전을 해 나가는데 교회는 급속히 탈선하고 타락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②총공회 내에는 이런 통계가 구체적으로 있습니다. 이번 답변에서는 선택의 문제라고 표현하겠습니다.

 

목회자의 경제와 관심을 사택 자녀들과 교인들에게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양쪽을 관리하며 살았느냐는 문제를 두고 가장 대표적인 가정을 예로 든다면 부산서부교회 백영희목사님과 서울 잠실동교회 백태영목사님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부산 백목사님은 40대 50대가 된 자녀들이 미국에서 12년만에 아버지를 보러 왔을 때도 부모와 자녀로서 마주 앉은 것은 같은 예배당 구역 내에 있으면서도 며칠이 지나서였고 만난 시간은 불과 10분 안팎으로 기억합니다. 그 자녀들은 학교 공부가 끝나면서는 아버지에게서 단 돈 1원도 받지 않았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딸이 시집갈 때도 아버지로서는 단 1원도 줄 수 없다며 사위에게 교통비 옷값까지 송금하게 했고 그 돈으로 시집을 가게 된 정도였습니다.

반면에 서울 백목사님은 부정한 돈은 사용할 수 없지만 교회에서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돈은 얼마든지 받아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분이고 또 자녀를 위해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성실하게 했던 분입니다. 서울의 강남지역에 있는 대형교회 목회자였기 때문에 사택도 다른 교파의 성공한 목회자들과 비교할 만큼 마련했고 모든 사용도 그러했습니다. 아마 목회자가 자기 사택에 대하여 충실하게 의무를 다하는 면으로 말한다면 가장 모범적이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부산 목사님은 4남 3녀를 두었고 서울 목사님은 2남 4녀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 결혼을 했고 그 자녀들은 완전히 자신들의 사회생활을 스스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 양 가정을 비교한다면 얼른 한 눈에도 확연하게 다른 것이 있습니다. 부산 목사님의 아들 4명은 아버지가 평생 목회자 되기를 원했으나 자기들 손으로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 다음, 목회자가 되는 것만은 아버지 말씀에 순종할 수 없다고 거부를 하게 됩니다. 마지막 순교하던 해에 막내 아들 한 사람만 40대 나이로 목회를 시작하게 됩니다.

반대로 서울 목사님의 아들 2명은 학교를 다닐 때부터 신학교를 거치거나 아니면 학교와 군대 문제 등을 끝마치면서 사회 생활을 거치지 않고 바로 신학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미국 시카고에 예배당을 구입하고 또 신학과정을 전부 밟을 수 있도록 지원하여 신학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서 현재 아버지를 이어 잠실동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또 한 아들은 큰 아들을 이어 시카고에 있는 그 교회를 담임하고 역시 신학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목회에 대한 사명감이 있고 감사와 기쁨이 있으며 그 목회와 신학에 자신감에 넘쳐 그야말로 가장 표준적인 과정을 현재 밟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이 두 종류의 목회자 가정 중 어느 가정이 목회자로서 바로 처신하고 바로 살았느냐에 대하여는 이미 답변자가 충분히 설명을 드린 것 같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설명을 드리는 것은, 둘 중에 하나를 다시 강조하지 않고 그냥 소개만 하고자 합니다. 둘 중에 좋아보이는 것을 택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 심리일 것입니다. 신앙세계도 이 둘 중에 좋은 목회로 보이는 면을 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답변자의 입장은 후자가 아니라 전자의 경우를 부러워 하고 또 그리 되고 싶어 조금씩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이곳을 이용하는 모든 목회자들에게도 그리 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계의 일반적 시각에서 본다면 전자를 위험한 고행주의라고 대단히 비판할 것 같습니다. 후자의 경우를 가장 성공한 목회자의 전형이라고 아마 교과서에 등재하여 모범을 삼고 싶을 것이라고 봅니다.

답변자가 마지막으로 꼭 덧붙이고 싶은 것은, 부산 백목사님처럼 그렇게 목회를 하면 그 가족들에게 얹혀지는 짐이 여간 무겁지 않지만 10-20여년의 세월만 참고나면 천하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보상 역사가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목회자가 교인을 위해 제 가족을 돌보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 바친 연보와 같아서 그 연보를 받으신 하나님은 씨와 양식으로 넘치게 갚습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교인을 돌보고 교회에 사용할 돈과 여유를 사택으로 움직이면 그 움직인 만큼 하나님은 뒤로 나 앉아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목회자라는 사람이 사람의 힘으로 자기 가정을 돌본 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은 훗날이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이번 답변에서는 두 가지 경우를 객관적으로 놓고 읽고 듣는 분들이 자기 취향에 따라 택하셨으면 합니다.

 


절벽

 

[인물] 김현봉 목사님의 사모님에 대한 질문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교회운영~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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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같은 주제로 이어지는 질문이어서 이곳으로 이동 - 관

2199번, 김현봉 목사님의 사모님에 대한 질문. 절벽 0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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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궁금해 하던 것이였는데, 이번 기회에 질문을 드립니다.

김현봉 목사님께서는 결혼은 하셨으나, 이성접촉을 갖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과연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이었는지 궁금해서 질문 드립니다.

물론, 김현봉 목사님께서 하나님께 피동되어 그렇게 하셨다면 그것은 옳은 일일 것이고, 다른 사람이 가부를 논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김현봉 목사님의 신앙이 깊으신 것과 하나님 중심으로 그렇게 하신 것은 믿어집니다. 그러나, 이성접촉을 하지 않은 결정이 그 사모님에게 고통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자는 아이를 낳고 길러야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아닌지요? 김목사님께서 그런 기회를 빼았은 것이 아닌지요?

곰보라서 결혼을 못할 여자였더라면, 더욱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야 했던 것이 아닌지요.

지금까지 답변 목사님께서는 김현봉 목사님에 이 면을 높이 칭찬하셨습니다. 그것이 훌륭하신 목사님의 예우 차원에서 장점을 좀 더 강조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김현봉 목사님께서 이성접촉을 하지 않으신 것, 그보다 아이를 갖지 않으신 것, 신앙상식으로 보았을 때, 옳다고 보는 것이 힘듭니다.

참고로, 질문하는 사람은 김목사님을 존경하며, 감히 제가 김목사님을 비판하거나 판단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배우고자 함입니다.

 


지적하신 점은 맞습니다만, 어떤 결정이란, 관련 모든 요소를 다 포함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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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 시대를 감당하고 교회를 바로 세운 귀한 종들에게는 가슴 아픈 가족사들이 있습니다.

 

①김현봉목사님의 신앙과 사모님의 신앙은 그 차원이 달랐을 것입니다.

 

김현봉목사님에 대하여 전해오는 일화는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모님에 대한 일화는 불과 몇 가지입니다. 그 중에 제일 많이 알려진 것이 앞에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목사님에 비하여 사모님의 신앙일화는 거의 없는 것으로 봐서 특별한 신앙은 아니었다고 짐작이 됩니다. 그렇다면 특수한 신앙을 가진 목회자와 평범한 사모님이 사택을 이루고 있다면 불편한 점은 서로가 이루 말을 다 못할 것입니다.

 

②우리가 은혜롭게 듣는 귀한 종들의 걸음에는 그 가족들의 숨은 십자가가 있습니다.

 

초기신앙 시절에는 성경보다 설교가 영향이 크고, 설교보다 설교자의 언행이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귀한 종들의 걸음이 그 따르는 교인들에게 수없는 은혜를 끼치게 되지만 혹 우리 평범한 목회자들이 언행 하나를 불미스럽게 하므로 많은 사람들을 믿음에서 떠나게 하거나 앉은뱅이로 주저 앉히고 있습니다. 이번 문답은 성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은혜롭게 듣는 유명한 성자들의 일화 속에서 그 가족들의 고통과 십자가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질문하신 분의 시야처럼, 우리가 성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 성자의 귀한 걸음과 함께 그 가족의 숨은 고통을 셋트로 묶어 은혜를 받아야, 은혜 받는 사람으로서 복이 있을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성자의 걸음을 사모하고 따르기를 노력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런 걸음을 위해 가장 앞서 고통을 바친 그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또 그 가족들이 하나님 앞에 큰 복 받기를 원하는 심리를 가져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곳 홈이 백영희목사님 신앙노선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초기화면/백영희/라는 항목에서 /'가족, 그 소중한 분들'/이라고 표현을 하고 또 몇 가지 소개를 하고 있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백목사님은 우리에게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수고만 했고 우리는 받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와 백목사님 사이에 그 가족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겪은 고통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2.김현봉목사님의 절제와 그 사모님이 감당해야 하는 문제

 

①한 가지 결정은, 관련 모든 요소를 전부 계산한 다음 내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 사모님의 불편, 교회의 유익, 자녀없는 외로움, 한쪽이 먼저 사망하는 경우 남은 사람의 노후 수발 등을 두루 계산한 다음 결정을 내리는 것인데 미련한 사람이면 계산해야 할 바를 누락시켰다가 뒤에 후회를 하겠지만, 그분은 통찰력이 남다른 분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고려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회의 유익면을 두고는 현재 목회하는 교회의 교인의 구성 형태, 신앙 수준, 이해 정도도 계산했을 것이고 또 교회의 앞날 변화되는 여건까지 전부 계산을 했을 것입니다.

특히 부부가 함께 절제하는 문제를 두고 남편의 의무, 아내의 감내력, 성경이 부부의 몸은 상대방에게 사용권이 있다는 등을 특별히 고려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성경 해석의 대가였고 성구에 정통한 분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겉넘어가지 않고 세밀하게 따지는 분인데도 그렇게 결정을 했을 때는, 그렇게 결정하는 것이 그 당시 가장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옳은 것이라고 확정을 지운 다음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비록 짐작이지만, 그분의 신앙세계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데 남다른 분이었으므로 한번으로 지나가는 결정이 아니고 평생을 두고 늘 조심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고 나서 확정했다고 봅니다.

사모님이 여자분으로 아이를 갖고 양육을 하면서 이루어 나가는 가정구원면이 지극히 클 것인데, 그런 기회를 애초에 박탈한 것이 아니냐, 사모님에게 너무 지나친 고통이지 않았겠는가,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아마 그런 면까지 다 고려하고도 내린 결정이라고 본다면, 오늘 우리가 일반인들에게 해당되는 논리를 가지고 실제 그분들에게는 상관도 없었던 문제를 논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사모님이 체질적으로 목사님의 절제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특수 체질을 가졌다고 한다면, 주변의 우려나 가정은 전혀 소용없는 일입니다. 다만 누구든지 그런 면으로 절제를 할 때는 상대방의 신앙어린 면을 두루 살펴야 한다는 정도로 조심시킬 일일 것입니다.

이곳은 일반 목회자들의 결정은 대단히 무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분이 이 지역 복음을 위해 하나님이 크신 뜻을 세웠으니 어떻게 해야겠다는 발언이 나오면 속으로 말 장난이라고 생각하지 진심이라고 취급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총공회 목회자들이 총공회 신앙노선이 어떻다고 발언하면 '헛소리 하네' 라고 생각하지 귀담아 듣지를 않습니다. 그 신앙노선대로 살겠다고 말하는 것은 술먹고 횡설수설하듯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노선대로 살 때 가족의 어려움, 교인의 오해, 교회의 진로문제, 목회자의 취직문제 등이 발생할 것인데 그런 문제들을 제대로 고려하고 발언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목사님과 같은 분은 여러 면을 미리 생각하고 각오하고 그리고 발언하는 분이고, 한번 발언하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대로 실행하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섣부르게 결정하거나 사모님의 신앙차원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사모님 문제를 제일 먼저 고려한 상태에서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정을 한 일이라면, 아마 정답을 맞춘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②김목사님과 교인의 관계를 보면 이런 가정은 아마 큰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사모님이나 교인들의 현재 신앙수준은 평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 밑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그분으로부터 받는 말씀의 은혜가 너무 크고 그를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이 너무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에 일반 교회 교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살고 갔습니다. 그분 생존 당시 서울에세 제일 큰 교회라고 알려진 정도였는데, 그 수많은 교인들이 그분 밑에 신앙생활하면서는 그렇게 특수한 은혜들을 받았다면, 그 사모님 역시 평범한 신앙정도로만 살았다 해도 그런 절제를 오늘 우리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김현봉목사님이 목회했던 아현교회는 일반 교인들까지도 극단적으로 절제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중세 수도원 생활을 하는 사람들처럼 보일 정도로 그들의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 일체가 경건했고 절제했습니다. 아마 부부 사이에 전투가 심했다면 밖으로 말들이 있었을 것인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목사님을 만나기 전에는 어떤 수준이었는지 몰라도 그분을 만나고 그분 밑에 교인으로서 또 사모님으로서 늘 배우고 신앙생활을 했다면 목사님의 절제를 같은 수준에서 실행하지는 못했다 해도 앞에서 이끄는 분을 따라 뒷 따르는 정도는 아니었겠는가 라고 생각을 합니다.

2년전 그분에 대한 질문이 있어 아현교회 계통을 잘 아는 분에게 근황을 문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1965년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아현교회가 산산조각이 날 때에 그 사모님은 같은 김목사님 밑에서 이전처럼 그대로 나가자는 쪽도 있고 조금 넓게 나가자는 쪽도 있고 완전히 일반교회처럼 나가자는 쪽도 있었는데 김목사님 사후에도 김목사님 생전처럼 그대로 신앙생활을 하자는 쪽에서 평생 사시다가 1980년대에 돌아가셨습니다. 만일 목사님의 절제를 순종하고 자기 걸어갈 길로 여기지 않았다면 목사님 사후 여러 갈래로 갈라질 때 그 노선을 택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목사님 가족도 그 사후에 꼭 그대로 가자는 쪽과 중간쯤 섞자는 쪽과 일반 교회처럼 나가자는 쪽으로 나뉠 때, 그 가족들은 어디로 속해도 크게 환영받을 분들인데 그대로 나가자는 쪽을 택해 그 중심에 섰기 때문에 당하지 않아도 될 고초를 수도 없이 당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분 생전에는 처음에 가기 싫은데 가족이므로 할 수 없이 따라 나선 분도 있을 것이고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는 분도 있을 것이고 또 처음부터 좋아서 따라간 분도 있었을 것이지만, 평생 그분을 접촉하며 사는 가운데, 그 식구 전부가 이제는 아버지 없는 시대에 마음껏 그 반대의 길을 걸어도 되는데도 자원하여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복된 길을 걸었든지, 아니면 처음에는 오해를 해서 고통만 받고 신앙에 유익을 가지지 못했다 해도 그분으로 인해서 그런 면을 다 고쳐 이제 자원해서 이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은 더욱 큰 구원역사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김현봉목사님의 사모님도, 첫 신앙은 목사님의 신앙세계를 제대로 듣지도 못했을 정도였다고 보입니다. 해방 이전에 큰 병원의 수간호사로 있었던 정도였으니 당시로서는 잘 나가는 여성이었을 것인데 그런 쪽에 있는 분들은 인본주의 신앙체질이 많습니다. 목사님의 권위에 눌렸든 이해가 되어 처음부터 따라갔던 그 훗날이 깨끗하게 주님만 바라보고 살았다는 것을 볼 때, 비록 사모님의 고통이 있었다 해도 큰 스승을 만나서 큰 구원을 이루어가는 길에 마땅히 지출해야 하는 학비와 같은 것이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③좀더 확실하게 그렇다고 말씀드리는 이유 중에 하나는, 오늘도 그런 분들이 가끔 있기 때문입니다.

 

실명으로 말씀드리기는 곤란하지만, 그렇게 역사에 남을 만큼 신앙있는 분들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 조금 노력하는 정도로 보이는 분들 중에서도 결혼을 하고 목회를 하다가 조금 더 깨달아지고 느껴지게 되자 아직도 한참 젊은 나이인데 시급히 자기를 절제하고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여 큰 무리없이 충성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분들과 비교 못할 정도의 성자들, 또 지금 시대에 비하여 여자분들이 여러 이유로 자기 절제를 하던 그 시절의 분위기 등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극단적으로 경건을 추구하는 계열에서 그런 정도는 그렇게 큰 소식이 아니었겠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현재 일반 교계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나올 수 있는 배경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총공회로 말한다면 그 교훈과 노선이 순교도 나올 수 있고 또 자기 절제를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도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총공회 내에서도 일반 교계를 따라 가려고 노력하는 서울이나 대구공회에서는 그런 분들이 있을 것 같지 않으나 부산공회에서는 그 정도로 자기를 절제하고 또 사모님도 흔쾌히 따라 갈 수 있는 분위기가 많습니다. 아마 대구공회 정도에서 1-2분 정도, 부산공회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많은 경우가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모님은 싫은데 목사님 때문에 마지 못해 절제를 했을지라도 혹 그 교회 일반 교인들의 전반적인 신앙분위기로 본다면 그것이 그렇게 큰 고통이 되지 않고 진행되었다고 보며, 그러는 도중에 본인도 자원하여 그런 생활을 했다고 보입니다.

 

 

3.김현봉목사님에 대한 이곳의 평가

 

이곳은, 일반 교계라는 기준에서 볼 때는 김목사님을 최고의 존경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분에 대하여 표현할 때는 다른 분들에 비하여 대단히 조심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성경을 바로 깨달아 가르치고 진정 진리의 권위로 목회했던 몇 안 되는 분 중에 하나입니다. 아마 백목사님을 제외한다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몇 가지 단점, 또는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강도높게 비판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그렇게 해야 할 질문이 없었습니다. 자기 절제라는 이런 면에서 본다면 그런 분이 한국교계의 어른으로 있어야 현재 교회가 지탄받는 모든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을 두고도, 그때 이렇게 했어야 했다 그때 저렇게 했어야 했다 하며 수도 없는 비판이 대구공회와 부산공회(2)로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답변자가 들어본 대로는, 백목사님의 단점이라며 지적한 내용들은 단점이 아니고 다 장점이었습니다. 백목사님도 평소에 실수를 많이 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실수라고 말하는 것 중에서는 아직까지 실수라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백목사님의 결정에 대하여는 이곳이 연구를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있게 설명을 하겠으나 김목사님에 대하여는 백목사님의 경우를 가지고 유추하고 있습니다. 그 분 정도의 신앙세계에서는 '상식'이라는 것이 우리 수준의 '상식'과는 많이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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