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고소금지원칙이 신앙을 망가뜨리는것같습니다.

작성자
학생
작성일
2019.07.29
여기의 신앙높으신 분들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주일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학생인 저로서는 이 질문을 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 총공회를 믿게된지 몇년되지 않아서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이제 겨우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듣기 시작하려는데, 예배당에 가려고 하면 귀신들린 사람처럼 무서운 눈으로 피켓을 들고 돌아다니는 분때문에 발걸음을 돌리게 됩니다.

신앙어린 저는 요즘 뉴스에 심심치않게 보이는 정신에 문제가 있는 흉흉한 사람에 엮이고, 해코지를 당할까 무서워서요.

그런 두려움 속에 예배를 보는 분들이 대단해보일따름입니다. 분명 그분들도 저와 같은 두려움이 있을텐데요.

이 홈페이지를 누르고 다 읽지도 못한 수많은 고소들과 일들을 보며, 글 하나를 읽는것도 고통스러워 인터넷을 끄게 됩니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는것이 말씀이 아니었나요? 상대가 내 고통을 알고, 나도 상대의 고통을 알면 더이상 죄짓지 않는 것을 가르치는것이 말씀아닌가요?

신앙 어리다 하시겠지만 제가 아는 짤막한 이 성경구절을 생각하면, 옳지 않은 일과 방법으로 끝없이 고통을 주고, 목회자와 주변사람들과 가족과 예배에 나오는 교인들까지 피해를 보도록 고소를 하고, 저같은 학생은 교회에 나오는것조차 두렵게 하는 행동을 하는 분들을,

옳은것을 깨닫고 멈출때까지 그저 기다려주고, 당하는 것만이 성경이 가르치는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듭니다.

상대의 고통을 알아야 내 잘못을 깨닫고, 더 죄짓게 하지 않는것 아닌가요?

상대가 끊임없이 핍박하고 고소하고 이웃사람들까지 손가락질받게 만든다면, 똑같이 하여 똑같은 사람은 되지 않더라도 합법한 절차내에서 고소하여 상대가 잘못을 알게 하는것이 옳지 않나 생각됩니다..

저같이 어린신앙들이 신앙을 다 잃게 만들고 신앙가지는것조차 두렵게 되는것보다, 고소를 하지않는 것이 더 유익된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목사님께서 병드시거나 돌아가셨을때 과연 목사님만큼 저 일들을 다 감당할 목회자가 나올지, 다들 무서워 모른척하다가 지켜지지 못하는것은 아닐지 두렵습니다.

목회를 꿈꾸던 분들이 다들 신앙잃고 꿈을 포기하실까 두렵습니다.

신앙없는 제가 잘모르면서 이런 질문을 올려 죄송할따름입니다.
전체 4

  • 2019-07-29 00:24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괴롭히는 상대는 본인이 옳다생각하면서 상대의 고통은 모르고 쾌재를 부를것입니다.
    더 악독해질것입니다.
    나쁜일을 하고 후에 깨닫는사람도 있지만, 죽을때까지 반복하다가 자기 잘못도 모르고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 악한사람으로 키우는것보다 깨닫게 해주는것이 더 옳은방법이 아닌가요?
    저는 너무 어렵습니다.

  • 2019-07-29 17:35
    학생의 고통이 느껴집니다. 학생의 말이 옳습니다. 솔직히 저도 이 7년 설교록 소송을 지켜보며, 왜 부공3이 처음부터 맹공으로 나가지 않았나? 하는 한탄과 아쉬움이 많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라, 설교록 소송인데요. 왜 진작부터, 방어가 아니고, 적극적인 공격으로 하지 않았을까요?

    분명한 것은, 죄인들을 더욱 큰 죄인 만들어버린 책임으로부터, 부공3은 결코 자유롭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예배당 앞에 피켓을 들고 있는 저 괴상망측한 행동을 지켜보는 것도 볼적마다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말세를 감당할 백 목사님 교리와 교훈을 연구해도 못 자랄 판에, 이게 무슨 허비요, 무슨 낭비란 말입니까?

    • 2019-07-29 18:37
      말이 너무 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말만 앞세우고, 이 복음을 위해서 실제적으로는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저 자신에 대해서, 양심이 심히 찔립니다.

  • 2019-07-29 21:55
    질문자의 안타까운 심정에 전적 동감합니다.

    1980년대 중반, 서부교회에 백 목사님이 재림하신 예수님이라는 소문을 내고 다니는 정신이 약간 이상했던 여반이 있었습니다. 서부교회 교인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새벽예배 시간에 강단에서 6-7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아 있다가 설교 도중 갑자기 커다란 랜턴을 강단을 향해 던졌습니다. 강단 중간 부분을 맞추고 아래로 떨어져 다행히 백 목사님께서 맞지는 않으셨지만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바로 반사 선생님 한 분이 경찰에 근무하는 분과 연락하여 정신병원에 바로 집어넣어 버렸습니다. 그 뒤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공회 안에 그 당시 그 반사 선생님 같은 한 사람만 있었다면 오늘의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 않고 초기에 벌써 정리되어 버렸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 초림 당시 유대인들의 멸망은 외식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외식 중에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소경된 인도자들’이라고 당시의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와 관련된 일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온갖 약대 같은 큰 죄들을 예사로 지으면서 고소금지라는 원칙은 모두 철저하게 지킨다고 하루살이 걸러내는 것 같은 외식을 범하고 있는 것이 이 모든 사태를 오늘에 이르게 한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닌가 자책합니다.

    여러 형편상, 사정상, 또는 성향상 나서서 돕지는 못해도 마음으로 이곳을 지지하면서 위해서 기도하며 성원하는, 엘리야 시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입 맞추지 않은 7천명 같은 많은 분들도 계실 것이고, 대다수의 교인들은 뭐가 뭔지 모르고 그냥 목회자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만 듣고 그냥 따라다닐 것 같고, 바른 소리 옳은 소리 하는 이곳이 눈엣가시 같은데 몇 년 째 무차별로 고소고발을 당하고 온갖 핍박을 받고 있으니까 속으로 고소하다 하면서 슬쩍슬쩍 도와주는 고소 고발자와 같은 부류의 무리들도 있을 것이고, 자기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강 건너 불 구경하듯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초록은 동색이라고, 한 편된 무리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중에도 아주 나쁘고 못된 짓은 자기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이런 사태를 구경하는 것입니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반대하지 않는 자는 환영하는 자라 했습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소 고발을 예사로 하고 피켓을 들고 귀신 짓거리를 하는 그들과 같은 부류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본인들이야 아니라고 펄펄 뛰겠지만 하는 처신들이 그렇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로 황제라는 인간이 기독교를 그렇게 박해하며 수도 없는 성도를 사자 밥으로, 화형으로 고문하여 모질게 죽이면서, 제 몸이 베여서 피가 조금 나니까 ‘아이고, 내 몸에서 피가 난다’ 하면서 울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짐승만도 못한 악마 같은 인간입니다. 자기와 관련된 일에는 조금이라도 손해 갈 것 같으면 정신도 못 차리고 길길이 날뛰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죄를 다 지으면서 공회의 가장 중차대한 신앙 노선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구경거리처럼 구경하며 즐기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들의 심보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총공회 수백 명의 교역자와 장로 중에서, 수천명은 넘을 중진 이상의 집사들 중에서 백 목사님께 수도 없이 들은 사실, 총공회 교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그대로를 말해 줄 증인 한 사람만 있었어도, 정신 이상자를 그날 바로 정신병원에 집어넣어 버린 그 선생님 같은 분이 한 사람만 있었어도 공회의 모든 일들이 오늘의 사태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늦게나마 이런 움직임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귀신들린 사람들, 하나님도 성경도 신앙도 노선도 인간구원도 모르고 오로지 불의하고 불법적인 자신들의 목적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들과 그들의 쓰는 방법과 같이 되지 않고, 지극히 성경적이면서 공회적이고 공회의 신앙 노선적인 방법으로 지혜롭게 강하게 그들을 대하는 움직임이 있어 소망을 가집니다.

    불의와 불법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 백 목사님께 배운 성경대로의 신앙 노선을 그대로 지키며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당하는 수많은 핍박들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실 것이니, 열흘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는 말씀으로 소망을 가지고, 받은 은혜가 있고 할 수만 있으면 옳은 길, 의의 길을 함께하면 가장 좋겠고, 적어도 마음으로 지지하고 기도하며 성원함으로 의인을 영접하여 의인의 상을 함께 받을 수는 있는 질문자와 답변자, 또 이 홈을 찾는 모든 분들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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