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모세와 아론이 고라를 죽인 살인자인가요?

작성자
공회원
작성일
2019.07.23
민수기 16장에 보면,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당을 짓고, 하나님의 종 모세를 거스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표적으로 이들을 멸망시키시고, 분명히 그렇게 하지 말 것을 알리셨는데 (40절)

41절에 보면, 이스라엘과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이, 선량한 백성을 죽였다고 도리어 원망합니다.

그리고, 염병이 퍼졌습니다.

 

요즘 공회에서 노곡동 기도원 철거 사건과 연관되어 질문합니다.

기도원 철거가 부공 3의 탓인가요?

 

정말, 모세와 아론이 사람을 죽인 살인자인가요?

 

 
전체 3

  • 2019-07-24 11:36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니다.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고라를 죽인 살인자가 아니고 고라 자신이 자기와 가족을 죽인 살인자요
    다단과 아비람과 이백오십명의 아까운 인재를 또 이스라엘 백성 일만 사천 칠백명을 죽인 살인자입니다.
    어떻게 고라는 이렇게 무서운 죄를 짓게 되었는가? 인간타락이 다 그렇듯이 자기중심의 악과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자기중심의 악으로 인하여 고라는 자신도 모세와 아론 같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으로 말미암아 고라는 자신의 현재 위치와 사명이 자기현실에서 이미 지도자고 자기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잊어버림으로 모세와 아론이 하는 일만 크게 보이고 지도자다워 보임으로 모세와 아론을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고 자기 생각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서 당을 만들고 일정 세력이 규합되자 겉으로 모세와 아론이 하는 일을 방해한 것이 민수기 16장의 일이 일어나게 된 배경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은사기관으로 세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사기관은
    내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그만 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세워지고 또 은사기관을 통해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고라는 자기 스스로 은사기관이 되고자 당을 짓고 모세와 아론을 맞서게 되는데
    이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요 성령을 훼방하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고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 우리에게 밝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 민수기 16장입니다.

    우리는 고라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은사기관(지도자)을 상대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은사기관을 통해서 이루어 가시는데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가 때로는 밝히 알 수도 있지만 모를 때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 때는 별로 문제가 없는데 하나님의 뜻을 모를 때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완전하심으로 은혜의 기관(지도자)를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시는데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동안 은혜의 기관을 통해서 이루어오신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함으로 믿고 따르든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도 되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다면 이미 자기가 맡은일에 충성을 하면서 깨달아지기까지 기도와 간구를 하면서 기다리되 은사기관에 대한 시기와 훼방을 하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아비람과 다단같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고라가 모세가 하는 일(하나님의 역사)에 훼방자요 시기자요 대립의 원인자라면
    아비람과 다단은 고라에 피동되어 협조한 중간 지도자들었습니다.
    평소에 모세가 하는 일에 불만은 있었으나 겉으로 표출할 용기는 없었는데 고라가 나서닌까
    기다렸다는 듯이 고라보다 더 날뛴 인간의 대표적인 인물이 아비람과 다단이었습니다.

    또 우리는 민수기 16장 41절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거스리다가 자기 죄값으로 죽은 자들을 오히려 모세와 아론이 죽였다고 말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무엇이 이들로 하나님께서 특별한 이적으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이백오십명을 죽이신 것을 보고도 바로 보지 못했을까? 짐작해보면 이미 죽은 자들과 혈육정실 지방정실 동류정실 정욕정실로 연결된 자 앞서 나아가는 사람들의 뒤통수만 보고 따르는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구약은 오늘 신약 우리들의 거울이닌까? 민수기 16장의 말씀을 가지고 오늘 공회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대비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구체적으로 나열하면 참 좋겠는데 혹여나 앞선 종들에게 누가 될까? 나열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오늘 누가 총공회의 모세와 아론인지?
    오늘 누가 고라인지?
    오늘 누가 고라에 피동된 중간 지도자 다단과 아비람과 이백오십인 인지?
    오늘 누가 이들에 동조하는 어리석은 일반 백성들인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환하게 나올 것 같습니다.

  • 2019-07-24 14:32
    질문을 역설적으로 하신 것으로 판단합니다. 지도자가 중요함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시무투표를 통해서나 인터넷 등 여건을 통해 볼 때 개교인이 몰라서 몰랐다 하는 경우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최소한 걷는 걸음은 교역자=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세를 공격하고 원망하는 어리석은 백성은 알고보면 저들 대신 먼저 고라 일당이 죽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고 원망하는 것을 보니 똑같은 망할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사람이라도 바르게 깨닫게, 반거짓말에 속지 않게 , 구원 손해되지 않도록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 2019-07-24 17:33
    부족한 부분을 조금 보충하겠습니다.

    1. 모세와 고라

    성경은 1차 기록 목적으로, 모세와 고라라는 사람을 기록하였고, 기록 완성된 성경을 통하여 2차 시공을 초월한 신령의 세계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신약을 사는 오늘 우리들은, 마 16장의 베드로처럼 모세와 고라를 어느 특정한, 고정된 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방금 신앙 고백했다가, 금방 변질되어 사단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순종해야 할 모세와 대적해야 할 고라를 찾아내는 것은, 먼저 자기 안에서 새사람, 옛사람에서 찾아내는 것이요. 어린 학생이라도 진리에 합당한 말을 한다면, 그 순간만큼은 그 아이가 가정과 교회를 인도하는 모세가 되고, 담임 목사님이라도 어리다고 권위를 앞세워서 진리를 외치는 그 아이를 눌러버린다면,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고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고라의 판단 기준은, 경험도, 감정도, 고집도, 외모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누가 얼마나 더 하나님의 말씀에 바른가? 누가 더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전한가? 이 판단 하나에 따라서, 모세가 되고 싶어도 고라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니 '나는 모세, 너는 고라' 섣불리 판단하기보다,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 총공회의 모세와 고라

    한 가정 안에서 모세와 고라. 한 교회 안에서 모세와 고라. 전체 기독교 안에서 모세와 고라. 현실과 상황따라 그 범위와 모습은 다양합니다. 그래서, 내면을 알아야 합니다. 내면을 바르게 모르면, 누가 모세인지, 누가 고라인 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외부인은 그냥 서로 잘났다고 싸우는 줄로만 압니다. 외부인이라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회인이라면, 누가 모세고, 누가 고라인지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현재 총공회 안에도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찾는 모세의 세력과 거기에 대적하는 고라의 세력이 있습니다. 판단 기준은,백 목사님 사후 30년 간의 이력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총공회 분란의 내면입니다. '내가 모세고, 네가 고라다'라는 고집, '또는 너만 잘났냐?' 이런 감정, 흥분을 다 떠나서, 철저한 이성으로 이 내면만 들춰보면, 누가 옳고, 그르고. 누가 모세고, 누가 고라인지 금방 드러납니다. 그래서, 잘난척하고,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매한 부분에 혹시 오해하고 있을까봐, 공개 토론도 그래서 추진 중인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내 신앙은, 절대 고라와 아비람과 다단이 아니다'고 주장하고 굳건히 그 길을 갔는데, 나도 모르게 이미 고라가 되어, 고라의 일만 하다가, 고라의 멸망 받는 사람이 되어있는, 이 놀랍고도, 두려운 객관의 세계가 바로 신앙의 세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 이제 누가 총공회의 모세와 아론이요. 누가 총공회의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인지 바로 알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3. 노곡동 기도원 철거

    반소금지 원칙은 성경의 원칙이고, 공회의 원칙입니다. 코에 걸었다가, 귀에 걸었다가 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무조건 포기, 무저항 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이 원칙 안에는 소송할 수 있는 사안과 소송할 수 없는 사안이 구별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공회는 백영희 목사님 생전부터 철저히 공회 원칙으로 지켜왔고, 그 기록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적어도 공회인이라면 바로 알아야만 하고, 원칙이 틀리지 않았다면 예외없이 누구나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 사후, 한 세력이 이 원칙을 자기 감정과 권위를 악용하여, 이랬다 저랬다 파괴하더니, '설교록 소송'이라는 기독교 전대미문의 고소와 함께 수백건의 고소가 남발되었고, 그 대상은 부공 3이 되었습니다.

    '혹시 모세와 아론인줄 알았던 우리가, 혹시 고라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 사건을 당한 부공 3은 말씀과 전례로 그간 행적을 면밀히 따져보았고, 아무리 따져도 잘못된 점이 보이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상대방을 말씀과 전례로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쪽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았습니다.분명 무저항 주의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반소금칙 원칙을 바른 전례대로 지키기 위하여, 부공3은 지난 7년간 그대로 당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고소, 고발은 더욱 심해졌고, 보다 못한 다른 교단의 공회 회원이 상대방을 제제하겠다고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에 부공3은, 기다릴만큼 기다렸으나, 계속해서 잘못된 길을 가는 형제를 이제는 강권적으로 인도할 필요를 느꼈고, 무엇보다 불필요한 피해가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줄이기 위하여, 그 분을 막지 않았습니다. 단, 상대가 불필요한 고소를 그치면, 반드시 이쪽도 즉시 그치겠다는 당사자 확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공 3 집회 장소인 내계에 수 없는 고소 고발로 인하여, 불필요한 물자, 인력을 낭비되었기 때문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부공 1, 2의 집회장소인 노곡동 기도원에 대한 불법시설 감사가 요청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잘못된 고소 고발을 그치든지, 아니면, 부분적 불법 사안만 바로 잡으면 될 터인데, 그들은 어처구니 없게도, 노곡동 기도원을 불도저로 완전히 갈아버렸습니다. 그 노곡동 기도원이 어떤 곳입니까? 백 목사님 생전에 모든 총공회인들의 집회 장소였습니다. 공회의 추억과 역사가 가진된 기도원입니다. 그런 곳을 그들은 어떤 회개도, 고민도, 가책도 없이 그냥 없애버렸습니다. 단지, 통고장 하나 날라왔다고. 그리고는, 이를 갈며, 부공 3이 기도원을 없앴다고, 눈물을 흘리며, 이곳을 향해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하고, 누가 누구에게 사죄를 해야 할 일인가? 모든 것이 거꾸로 뒤집어지고, 반대가 되어서, 욕을 먹어야 할 사람이 욕을 하고,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이 용서를 빌라고 강압을 받는 세상. 그 기록이 바로 민수기 16장이요. 그 현실이 지금 이 노곡동 기도원 사건입니다.

    누가? 모세와 아론이요.
    누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요.
    그리고, 그토록 당했는데도,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있는 염병에 걸릴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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