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감사할 현실과 고쳐야할 현실의 구분

작성자
반사
작성일
2019.07.11
우주보다 귀한 나의 현실은  감사해야 하는 것이고

내 속의 나의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하는데

 

어디까지 고쳐야 하는 것이고 어디까지는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은 감사함으로 받고 내가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도록 하는 것인가요?

 

예를들어 가난한 부모 아래 태어난 나의 환경은 감사함으로 받고

나는 열심히 해서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은 내가 할 일로 생각되며 이해가 되는데

 

주신 성격이 게으르면 이것도 감사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고쳐야 하는 대상인가? 감사하면서 고쳐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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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2 00:35
    1. 택자의 현실

    모든 현실은, 하나님이 영원전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신 그때부터, 택자의 구원을 위하여 준비되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1차적으로는 하나님과 택자의 중생된 영이 연결되고
    2차적으로는 중생된 영을 통해 심신이 하나님과 연결되고
    3차적으로는 택자의 심신을 통해 만물이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에게 주신 현실의 모습과 모양이 어떻든, 반드시 우리에게 주신 모든 현실은 하나님의 구원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 대속의 범주 안에 들어 있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거나, 별개가 아닙니다.

    2. 감사할 현실

    하나님께서는 현실을 통하여, 택자를 온전하게 조금씩 길러가시는데, 주신 현실의 모습은 매우 다양합니다. 다 똑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왕자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거지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눈에보이는 세상적 조건도 다르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적 요소도 현실마다 매우 다릅니다. 안 믿는 남편, 잘 믿는 남편, 안 믿는 아내, 죄 짓는 자식 등등. 세상적 요소, 신앙적 요소는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른 현실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대개 믿음으로 바로 살고자 하는 사람의 현실은 어렵게 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실을 대하는 자세란 '하나님이 주신 현실이니 그냥 감사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믿음으로 살자'하고 맙니다. 그리고, 실제 해보면, 쉽지 않고, 그 자세가지고는 결코 이룰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알게 되니, 현실의 이상은 꿈 같고, 나의 실행은 멀기만 하고, 절망과 무기력에 사로잡혀, 그래도 신앙생활을 안할 수는 없으니까 하기는 하는데, 괴로운 현실을 대할 적마다 마음이 상하고, 조금만 더 어려워지면, 마음에 낙망이 생기고, 꾸준하지 못하고, 하다가 자빠지고, 또 하다가 자빠지고. 그런 세월의 반복이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래도 감사하자, 감사하자하는데, 그게 진정 감사하는 현실이었던가?

    택자의 현실 감사는 자기 최면으로, 자기 의지로 되는게 아닙니다. 택자가 감사할 현실이란, 하나님을 하나님만큼 바로 알고, 인간을 인간만큼 바로 알고, 세상을 세상만큼 정확하게 바로 알아, 각기 주어진 범위와 책임을 정확하게 아는 것에부터 시작됩니다. 바로 아는 것 없이, 무작정 감사의 현실은 허상을 좇는 이야기입니다. 알고보면, 영원한 절망의 길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이니, 하나님이 주신 이유가 있을 것이고, 목적이 있을 것이고, 나에게 반드시 할 수 있는 분량을 주셨을테니, 감정이 아니라, 흥분이 아니라, 철저한 이성으로, 말씀을 가지고 살피고, 기도로 영감을 통해 나에게 주신 역량을 살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정확하게 그 길을 걸어갈 때에, 힘이 부칠 때에는, 이제 전능의 하나님의 역사가 펼쳐질 것이니, 힘이 닿는대로는 목숨걸고 최선이요. 점점 힘이 딸려, 약해질수록 갈수록 절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타나실 능력이 기대가 되고, 소망이 되어, 갈수록 강해지기 때문에 감사할 현실입니다. 현실 가운데 나와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동행을 바로 알지 못하면, 감사는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장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신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시는 것은, 바로 사활대속의 깊이를 바로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얼마나 지독한 현실, 이 얼마나 괴로운 현실, 이 얼마나 양심 없는 인간, 이 못되고 악한 인간. 제대로 믿는 자의 현실의 조건은 대부분 그러한데, 그런 현실 속에서 가장 큰 시험은 내가 얼마나 믿음대로 산다고 그 현실이 바뀌어지겠으며, 내가 아무리 바르게 희생한다고 해도, 돌아오는 것은 욕이요, 무시요. 모멸이요. 핍박 뿐인데, 내가 뭘 바르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낙망과 절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괴로운 현실 속에서라면, 누구라도 넘어지고 자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활대속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생각해야 합니다. 알고보면, 나를 괴롭게 하는 모든 사람과 현실조차도,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할 존재들이요. 요소들인데, 표면은 나를 핍박하고, 이렇게 어렵게 하는 현실이지만, 그 이면을 보면 그들도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할 그들의 모든 요소가 죄와 사망과 마귀의 종이 되어, 아우성을 치고 있으며 우리를 향하여 구원해달라고 통곡하고 있음을, 바로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알고보면 대속의 정점이란(요21:15), 제대로 믿는 사람의 신앙에는 누구나 '대속하신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라고 하면 원하고 원함으로 얼마든지 바친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아니요. 주님이 대속하신 죄인을 주님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양심에 화인 맞는 악한 인간을, 자기 고집만 부리는 못된 인간을, 주님처럼 섬기라고? 나의 이 괴로운 현실을 주님 사랑하듯이 사랑하라고? 인간보기에는 아무리 못나고, 인간 보기에는 아무리 극악하고, 인간 보기에는 아무리 악랄할찌라도, 그것을 내게 주시기 위해서 피를 흘리신 주님의 대속을 바로 보면, 어떤 현실도 내 마음에 안든다고, 원망하고, 불평할 수 없고, 감사와 감격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실수만 있다면, 주님이 기쁘시다면, 주님만 좋아하신다면, 날 대속하신 주님이 좋아서, 어떤 댓가를 받지 못한다하더라도, 주님 때문에 현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고통이 심할수록, 대속의 은혜에 감격함으로 더욱 감사, 기쁨, 충성이 커가는 것이 대속인데,

    주님 대속의 본질은,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하나님의 율법완행의 의와 화친 완성의 생명과 진리와 영감으로 영생하셨으니, 이 대속을 붙든 나는 절대 죄는 지을 수 없고, 마귀에게 두번 다시 유혹 당할 수 없기 때문에, 나의 할 수 있는 힘 다하여, 목숨 다하되, 원하고 원함으로 기쁨으로 이 대속에만 붙들려, 죄와 싸우고, 마귀와 싸우고, 사망과 싸우되, 눈에 보이는 원수를 원수로 대하지 않고, 나를 괴롭히는, 나를 낙망시키는 현실을, 나의 희생으로 대속해야 할 현실, 주님께로 연결시켜야 할 현실로 여기고, 실행하여, 실제 그것이 이루어지니, 감사요.

    이렇게 실행할 때에, 나의 힘 닿는데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힘이 모자랄 때에는 전능의 능력이 나타날 것이니, 갈수록 기대와 소망으로 감사하게 되는 것이, 택자의 감사할 현실이라 생각합니다.

    3. 고쳐야 할 현실

    대속에 붙들린 모든 현실은 다 감사이고, 불변 소망의 도구가 되나, 그 힘과 능력은, 바로 하나님과의 연결에 있습니다. 사활대속의 사랑과 그 7가지 본질에 얼마만큼 붙들렸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귀와 세상은 시시각각으로, 내 안의 모든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지극히 큰 거룩을 내 안에 이루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적당히 해야 하는 것이고, 절대 될 수 없다는 쉴새없이 미혹하고, 유혹합니다. 그러다보면, 우리 마음에 '맞아, 내가 어떻게?' 이렇게 자기 생각에 가로막혀, 이생의 염려, 육체의 소욕에 매여, 완전히 진리와 영감에 자유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현실과는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이런 현실을 고쳐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고, 소원을 바꾸고, 마음 자세를 바꾸고, 목적을 바꾸고, 바른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 중심을 돌리는 싸움은 10번 넘어진다해도,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 싸움은 100번을 깨지고, 1000번을 깨져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무한을 향한 소망을 위한 싸움을, 지금 내 현실 속에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장난이 아니요. 그 능력 절대 무한이시니, 우리가 다른 어떤 것에도 주님 아닌 어떤 다른 것에 유혹, 미혹받아 피동되지 않고, 결코 두려워 않고, 두 마음으로 주님 서운케 않아, 불굴의 의지로 오직 대속만 붙들고, 나머지는 주님만 맡기고, 완전히 믿기만 믿으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다윗, 다니엘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전능이 오늘 우리에게도 실제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싸움을, 우리가 현실에서 해야 합니다. 이 믿음대로 살기 위해서 우리가 현실을 고쳐내야 합니다.

    설령 가다가 또 넘어진다 하여도, 사활대속으로 입혀주신 영생불변의 '소망'만 잃지 않으면, '내가 왜 넘어졌지? 아, 내가 내 실력을 넘어서는 무리를 했구나. 이 부분은 생각을 잘못했구나. 다음에는 바르게 해야겠다. 그러나, 결코 방심과 나태는 없다.' 왜? 영생의 소망이, 주님 대속의 공로로 내 소망이 되었고, 사활대속의 능력이 내 능력이 되었으니까,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불타는 이 마음만 식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 사활대속의 7가지 본질만 놓치지 않는다면, 가다가 또 자빠지더라도, 어떤 실수와 잘못을 하더라도, 이것까지 모두는 하나님의 완전을 향한 과정이 되기 때문에, 담대해질 수 있는 것이고, 놀랍게도, 이런 실패와 낙심과 낙망도 사실은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왜? 수 없는 실패 속에서, 다치고, 상처입고, 뒤집어지고, 넘어지고, 까지고 피를 흘려가도록 하여, 하나님 앞에는 점점 자랑할 것은 사라지게 되고, 오직 이렇게 모자란 나를 목숨바쳐 사랑하신 주님 대속의 사랑만 자꾸 커져서, 오로지 상한 심령으로, 포기 없는 불타는 주를 향한 마음으로, 어느 현실에서든지, 더욱 원하고 원함으로 주님만 기쁘시게, 주님만 바라보고, 끝없이 자라갈 수 있기 때문에, 그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현실에서도, 나를 하나님과 끊고, 예수님의 사활대속과 절단시키려는 죄와 싸우고, 마귀와 싸우고, 사망과 싸워야 합니다. 그들이 막으면 막을수록, 더욱 꽉 붙들드는 신앙의 훈련을 주신 현실 속에서 해야 합니다. 이 현실은 감사할 현실입니다. 밉고, 싫은 현실이 아닙니다. 마음을 바꾸는 싸움, 중심을 바꾸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설령 또 넘어지더라도, 다시 털고 일어나서, 이를 갈면서, 불변의 소망으로 또 싸우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동행을 반드시 이루어내야 합니다. 이런 현실로 고쳐가야 합니다.

  • 2019-07-12 01:02
    4. 마지막으로 고쳐야 할 현실

    이 모든 고칠거리를 고친 후에, 자유하게 되었다면, 이제 최종적으로 남은 것은,
    주님 대속에만 붙들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양 떼를 위해서,
    그것도 의인이 아니라, 죄인된 그들을 위해서,
    자신을 기쁨으로 바쳐야 하는 현실이 남았습니다. 그렇게 고쳐가야 할 현실이 남았습니다.

    바치고나서, 두번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끝까지 기쁨으로 충성하는 현실의 끝없는 싸움이 남아 있습니다.

  • 2019-07-14 10:43
    1.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개념

    세상은 건강, 부요, 미모, 명철, 지위, 권세, 명예, 유식 등등을 좋다 합니다.
    세상은 질병, 가난, 못남, 우둔, 약함, 억압, 평범, 무식 등등을 나쁘다 합니다.

    믿음의 세계는 구원에 유익한 모든 것을 좋다 합니다.
    믿음의 세계는 구원에 무익한 모든 것을 나쁘다 합니다.


    2. 하나님이 주신 현실

    주권의 하나님이 자유자 우리로 구원을 만들라고 가장 좋은 현실을 주십니다.
    믿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현실은 전부가 좋은 것뿐입니다.
    감사할 현실과 고쳐야할 현실이 구별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감사한 현실뿐입니다.
    주어진 현실에서 감사와 순종의 생활을 할 때 필요하면 하나님이 현실을 바꿔 주십니다.

    3. 옛사람은 고칠 것

    내 속의 옛사람은 반드시 고치고 바꿔야 합니다.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구원에 무익한 것들은 고쳐야 합니다.

    4. 감사할 것 뿐

    경험적으로 볼 때 외부 현실은 전부 유익한 것이고, 내 속의 주신 달란트도 전부 유익한 것이다 고백하게 됩니다.
    잘 못 사용하여 만들어진 옛사람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현실이든 어떤 달란트든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은 감사할 것뿐입니다.

    • 2019-07-14 13:05
      깔끔하게 정리해주셔서 도움 받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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