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거듭남의 인식 -영과 육(제-관)

일반질문용
작성자
반사
작성일
2021.06.15

원제 : 본인이 아는가? 모르는가?

21.6.16. 연구가 이어져 발언방에서 이어나갑니다.

총공회-발언/연구 10325번 영과 육의 거듭남의 인식에 대해서 (이동-관) (관리자)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음받은 신령한 영과 물질인 흙으로 지음받은 육.
영과 육(마음과 몸 또는 혼과 육체)으로 된 것이 사람입니다.

자타의 영과 육이 변동없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평생동안 할 일이라면

죽어 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단번입니다.

반면 심신의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여러번입니다.

영은 단일체라 단번, 한번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육은 복합체라 현실에서 힘을 쓸 때 반복 과정을 거치면서 거듭 살아납니다.

영이 다시 살아나는 중생은 마치 바람을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처럼 본인이 알지를 (인지, 자각) 못합니다.
그런데 심신의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자기가 현실에서 힘을 써야 거듭 살아난다고 했으니

본인이 모르는 영의 중생과는 반대로 육이 다시 살아나는 그 과정과 결과는, (마음과 몸의 움직임인 행동을 통해) 본인이 알 수가 있습니까?

전체 12

  • 2021-06-15 14:30
    1.단번중생과 같이 그결과로 알아지듯, 성화된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기간 등은 알 수 없겠으나 믿음으로 더욱 믿어지며 구원의 방향성을 가지면 지난 것이 성화의 과정이든 일부분이든 방향성을 가지고 개략적으로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화가 되어진만큼 더 세밀하게 볼 수가 있겠지요.
    2.추가로 살필 것은 우리가 하는 예배, 성경.기도, 심방전도, 연보 등은 신앙의 행위이지 그 자체로는 성화구원은 되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고
    성화구원은 충성으로 되어야 하니 충성의 기준은 자기가 아니며 받는 하나님 보시기에 충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죄문제에 대해서도 회개의 제목을 큰 죄에서 작은 죄로, 아는 죄에서 모르는 죄를 향해 회개에 노력을 하듯 의를 이룸에 있어서도 세밀한 부분까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살펴서 삼가 두려움으로 한걸음씩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물질에서부터 온전함으로 헌물, 헌신, 헌생애, 순교로, 매 순간을 삼가 조심하므로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 2021-06-15 20:09
    배 고플 때 제과점의 빵을 보면 훔쳐 먹고 싶던 사람이 이제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마음이 말씀으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과거 욕을 들으면 벌컥 했는데 이제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말씀 때문에 차분하게 잘 대처한다면 마음이 변화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주먹부터 올라 가던 사람이 이제는 그 손을 그렇게 사용하지 않으면 그 몸이 변화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알 수 있습니다.

    • 2021-06-15 20:15
      참고로, 중생 후 우리의 심신이 신앙으로 변화 되어 가는 과정을 건설구원으로 볼 때,

      건설구원은 기본구원과 다르게 내 행위로써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에 맞는 행위를 했으면 건설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행동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으며, 찾은 후에 그대로 했다면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하지 않았다면 아닙니다.

      따라서 바로 된 신앙양심에 비추어보면 구원이 되었을련지 아닌지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당장은 영안이 어두워 알지 못하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왠만하면 시간을 두고 되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건설구원은 사건별 시간별 행위별 등의 많은 것으로 나뉘어집니다. 하나 구원되었다고 전부 다 구원된 것은 아닌 것이 건설구원입니다.

  • 2021-06-16 05:53
    여기에 집 떠난 탕자를 한 분 소개합니다.

    심신에 익어진 악습을 예로 술, 담배, 도박 세가지에 쩔어 살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진리를 통한 성령의 감동으로 위 세가지를 단숨에 끊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어머니의 눈물 섞인 기도가 있었습니다. 현실에서 힘을 쓴다는 말은 그 전제 조건이 알고 인정하고 그 다음 단계가 실행인데 위 세가지 악습을 하던 사람은 어제까지만 해도 악습을 즐기던 사람이요 오늘 지금 저녁에도 담배를 물고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마시며 도박장을 향하던 탕자의 모습입니다. 가던 중 앞서 가던 차의 교통 사고를 목격하게 됩니다.

    4명 탑승자 전원 사망. 문득 생각이 나기를 사람이 죽으면 끝이구나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그 짧은 순간에 아는 생각과 마음에 인정이 다 되어 인생의 헛됨을 깨달으며 왼손에 담배, 오른손에 술병을 다 내려 놓고 그 길로 고향에 계신 어머님을 뵈러 가게 됩니다. 고향을 향하던 차 안에서 지난 과거 신앙생활하던 때, 예배 때 들었던 말씀과 어머니의 기도 모습이 떠올랐고 뜨거운 회개와 함께 자연계시라 할 수 있는 교통사고를 보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알게 됩니다. 이후 한번도 다시는 위 악습을 거듭 행치 않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 모시고 주일성수를 평생 잘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면

    자기 인생을 바꾸던 그 날 저녁의 교통 사고 직전의 모습과 이후 고향으로 내려 가기까지 그 몇 시간 동안 심신의 모든 상태가 한순간 180도 뒤바뀐 그 일련의 모든 과정 중에는 본인의 마음과 몸이 함께 동행을 했고 직접 목도를 했으니 이 사람의 변화에 전 과정을 본인이 모를 수가 있는가?


    요약해 보면
    영이 거듭나는, 중생할 당시를 본인은 모른다.
    그 과정도 결과도 아무 것도 모른다.
    훗날 나중에 믿어 보니 믿는 행동, 생활을 통해 과거 중생 시점을 더듬어 보고 짐작을 할 수는 있다.
    반면 마음과 몸인 심신의,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그 일련의 과정은 본인이 알 수 있으나 심신이 살아난 그 결과물인, 살아나고 변화된 그 순간에 의의 기능은 바람을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처럼 본인이 알지 못한다.



    1. 육이 살아나는 과정은 알아도 그 결과는 본인이 모른다.
    즉 영의 중생도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본인은 모른다.
    2. 육이 살아나는 과정을 본인이 알 수 있으니 당연히 그 결과도 본인이 알 수 있다.
    즉 영의 중생은 본인이 모르나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본인이 현실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영은 단번에 살아나고 육은 여러번 살아난다
    영은 하나님이 단번에 살리시고 육은 현실에서 힘을 쓸 때 살아난다
    한 문장으로 거듭남의 교리를 정리하여 가르치듯


    본인이 안다 모른다 기준으로 부연한다면
    1. 영의 거듭남은 본인이 모르나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본인이 안다. 바람 비유는 영에게만 해당된다.
    2. 영의 거듭남을 본인이 모르듯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본인이 모른다. 바람 비유는 영과 육에 다 해당된다.

    어느 정리가 바른 표현이겠습니까?


    요한복음 3:7-8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 2021-06-16 13:46
      본인이 안다 모른다 기준으로 부연한다면

      1. 영의 거듭남은 본인이 모르나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본인이 안다. 바람 비유는 영에게만 해당된다.

      2. 영의 거듭남을 본인이 모르듯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본인이 모른다. 바람 비유는 영과 육에 다 해당된다.
      -----------------

      1이냐 2냐를 따지면 1번이 맞겠습니다만, '육이 다시 살아는 것'과 '안다'라는 표현 때문에 애매합니다.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주님 재림 후의 일이고,
      -'안다'라는 말은 100% 인지한다는 건데, 모르고 지나갈 때도 있으니 '알 수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쓰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영의 중생은 본인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지만, 심신의 성화는 본인이 알 수 있다. 바람 비유는 영에게만 해당된다.

  • 2021-06-16 06:33
    오래전부터 엡2:8~9이 기본구원에만 적용되는가?
    건설구원에도 적용되는가? 고민했었습니다.
    최근엔 요3:16도 기본구원에만 적용되는가? 건설구원에도 적용되는가? 로 고민했었습니다.

    요3:7~8 도 기본구원만 적용되는가? 건설구원에도 적용되는가? 로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교리적으로 심신의 변화는 거듭남이 아니고 성화입니다. 그러므로 요3:7~8을 육에게는 적용을 하면 안된다 생각합니다.

    더욱이 심신의성화를 본인이 "알수없다"를 가지고 요3:7~8 로 연결하는건 무리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 2021-06-16 08:16
      그럼 교인님께 여쭙습니다.

      과거 주일학교 공과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본론 2번에서는
      눈으로 볼 수 없게 하나님이 거듭나게 하여 주십니다.
      바람 비유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본론3.4번에서는 영과 육을 나누고
      영은 단번, 육은 여러번. 또 영은 하나님이 살리시고 육은 현실에서 힘을 써야 살아난다고 적혀 있습니다.
      본론 2에서 하나님이 거듭나게 하여 주시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즉 본인이 알 수 없다고 하신 것을 두고

      본론 3.4에서 그 내용을 추가하여 영과 육으로 나누고 본인의 인지 유무로 부연 설명한다면
      영의 거듭남은 본인이 알 수 없지만 현실에서의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본인이 알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러니까 요3:7-8절은 영의 거듭남만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지 육의 다시 살아남까지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교인님은 이렇게 깨닫고 계시는지요?

  • 2021-06-16 10:31
    저의 생각입니다.

    1.이분론 삼분론과 관계없이 "중생 = 거듭남"입니다.

    완전히(100%) 죽은 영(영혼)이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없이(0%) 살아나는 것을 "중생"이라고 합니다.

    반사선생님의 주장은 심신의 성화과정을 "중생"으로 표현하자고 이야기 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노력이 들어가는 심신의 성화과정을 "중생 된다" "중생 되어 간다" 로 표현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본인의 심신이 성화되고 있음을, 또 죄악가운데 있음을 알려면, 본인이 중생되었음을 명확히 확신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본인이 중생되었는지 미중생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현재 본인이 성화과정 가운데에 있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물론 중생한 성도가 본인이 중생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의심과 의문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 나간다면 그것도 성화과정 가운데 있습니다.

    3.일반적으로 위기에 직면한 회사가 신년표어로 "모든 업무에 거듭나는 회사"가 되자라고 표현을 종종합니다.
    가정도 개인도 올해는 내가 진정 "거듭나는 삶을 살겠다" 표현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일반적인 표현입니다.

    이러한 일반적표현에 교리적용어인 "올해는 중생되는 회사가 됩시다, 올해는 중생되는 삶을 살겠다" 라고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기독교교리적 표현은 굉장히 엄밀하고 정확해야 합니다. 심신의 성화과정을 "중생"으로 교리적표현으로 정의하는것은 어렵다 생각합니다.

    "거듭나는 우리가정이 되겠다"

    4.개인적으로 목사님이 심신의성화를 거듭남으로 표현한 설교를 오래전에 보았습니다. 당시에 제가 공회교인분들께 질문을 직접 했었습니다. 이번에 반사선생님의 질문을 통하여 정리가 된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제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현재는 지금 적은 내용이 옳다고 믿습니다.

  • 2021-06-16 10:34
    수정: 3번에 "거듭나는 우리가정이 되겠다"는 삭제입니다.

    4번에 목사님이 -> 백영희 목사님이

  • 2021-06-16 11:11
    제 글을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영의 중생은 그냥 중생, 심신의 성화 과정을 중생이라 할 수 없고 성화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지금까지 제 의견이었습니다.

    여기서는 단어 표현보다 좀 연구해 봤으면 하는 것은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
    영의 중생은 본인이 모르는 것이 맞는데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본인이 아느냐? 모르느냐?
    이것이 제 연구 질문의 핵심입니다.

  • 2021-06-16 11:54
    문답방에서 총공회 발언방 10325번으로 이동하여 연구를 계속 이어갑니다.

    https://pkists.net/council/topic/?uid=10325&mod=document

  • 2021-06-16 12:12
    저는 반사선생님이 "요3:7~8과 육이 살아나는것을 알 수 없다"를 연결하여서 해석을 하신다 생각했습니다.(물론 100% 단정은 안하셨겠지만요)

    그래서 요3:7~8을 "육이 살아나는것을 알 수 없다"로 해석하면, "육이 거듭나는것을 알 수없다"로 해석이 되고, "육이 중생되는 것을 알 수 없다"로 연결되기 때문에

    요3:7~8에 거듭남이란 단어가 있기에, 요3:7~8을 육이 살아나는 것을 알 수 없다로 해석하면, 육이 거듭나는것을 알 수 없다 육이 중생되는것을 알 수 없다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에

    제가 위의 글 처럼 쓴 것입니다.

    2.육이 살아나는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본인에 대한 중생의 확신 -- 기본구원입은것에 대한 확신"의 강도에 따라 육이 살아나는 것에 대한 확신이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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