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성경적 깨달음의 차이

일반질문용
작성자
반사
작성일
2021.06.08
요한복음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1. 위 성구,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에서 영은 인간의 영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의미의 영을 말하는 것입니까?

2. 보통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중생 또는 거듭난다라고 표현을 합니다 마음과 몸인 심신이 현실을 통과하며 다시 살아나는 것도 거듭난다 또는 중생한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까?




설교록에는 아래와 같이 되어 있습니다.


820105화새 (요한복음 3장 1절∼7절)
본문:요한복음 3장 1절∼7절

그러면 육은 물질인데 물질로 난 자는 물질을 먹어야 하고, 물질 호흡을 해야 되고, 물질 운동을 해야 되고, 그러면 물질로 점점 성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또 “영으로 난 자는 영이니” “영으로 난 자는” 영이라 말은, 거기에 영은 성령을 가리켜 말합니다. 성령으로 난 자는 신령한 것이라 그말입니다. 성령으로 난 자는 신령한 사람이라. “영으로 난 자는 영이니” 하는 영으로 났다는 그 영은 하나님이신 성령을 가리켜 말했고 “영으로 난 자는 영이니” 하는 밑에 영은 인간의 영을 가리켜 말합니다. 성령으로 난 영물이라 그말입니다.





1988.6.29 수밤
본문:요한복음 3장 3절∼8절

이라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거듭난다는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너희들이 처음에는 육으로 나왔고 두번째는 성령으로 났다, 성령으로 너희들이 다시 살아났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으로 난 거는 영이니' 그러면 우리가 중생은, 중생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는데 중생은 영이 다시 살아난 것을 가리켜서 중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우리의 기능이 현실에서 살아나는 것은 죽은우리의 마음과 몸의 심신의 기능이 죽은 기능이 살아나는 것은 그것은 중생이라고 합니까 성화라고 합니까? 성화라고 합니다. 그건 중생이라고 하지 안하고 성화라고 합니다.

또, 우리의 심신의 기능과 몸이 예수님 재림 때에 한목 살아나는 것을 가리켜서 그것은 뭐라고 말합니까?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부활. 성화. 중생.

그러면, 이 심신이 거듭 살아나는 것을 가리켜서 성화라, 변화 받는다 성화라 또 아주 살아나는 것은 부활이라, 또 영이 살아나는 것은 중생이라.

그러면 우리가 중생했다. 중생한 사람이라 말은 영육이 다 중생됐다 말입니까 영만 중생됐다는 말입니까? 영만 중생됐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요 공과를 잘 외우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도 이제 그만하면 알았습니다. 이제 거듭나는 것은 현실에 우리가 힘써야 이 거듭난 행위를 할 수가 있습니다. 거듭난 행위를 할 수가 있는데 영은 단번에 거듭났지만 우리 심신은 단번에 거듭나지를 못하고 평생 거듭나야 되는데 언제 거듭나느냐? 현실에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현실에 거듭날라면 어떻게 한다 했습니까? 현실에 우리가 거듭날라고 힘을 써야 된다 했는데 거듭나는 건 뭘로 거듭난다 말이요? 현실에 우리 심신이 뭘로 거듭납니까? 진리로 거듭나고 성령으로 거듭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거듭납니다.

그러면, 거듭나는 것은 내 자체가 거듭납니까 그 능력이 와 가지고 나를 번화시킵니까? 나를 변화시키고 행동을 새 행동 하게 됩니다. 주관을 그가 주관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을 그가 주관하고, 그가 주관도 하고 행동도 하고 또 그러니까 대우도 받고 이러니까 내가 한 게 아닌데, 하나님이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것이 내가 한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설교를 듣고 누구는 아래와 같이 깨닫습니다.

거듭남의 뜻은 두 번 태어난다는 뜻이고 거듭남을 한자 단어로 바꾸면 중생입니다.
거듭 중, 날 생으로 의미적으로 같은 말입니다.

그러면 영도 거듭나고 육도 거듭나는데
의미적으로 본다면 영도 중생한다라고 쓸 수 있고 육도 중생한다 라고 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만 중생하고 육은 중생한다는 말은 쓸 수가 없다는 것은 의미적으로는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중생이라는 말을 영에게만 단독으로 써왔지만 이제는 육도 중생한다는 말도 의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이 성구도 이전에는 그냥 뒤에 있는 영을 사람의 영으로만 생각했고 그냥 영이 중생한다는 기존 관념으로만 생각했는데

사람의 영도 거듭나고 사람의 육도 거듭나는 것인데
이 성구에서 사람의 영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육도 거듭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을 해보면 사람의 영이 아니고 신령한 것으로 해석을 해야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니" 라는 것을 볼 때
뒤에 육은 육적으로 났다는 뜻이니까
첫 번째 난 것과 두 번째 난 것을 대유적으로 본다면
"영이니" 하는 것도 "영적(신령적)으로 난 것이니" 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는 뜻이고

사람의 영 뿐만 아니라 육도 영적으로 신령하게 거듭난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성구 해석으로 맞겠다는 뜻입니다.

결국 관습을 떠나 의미적으로 본다면
두 번 남 = 거듭남 = 중생 = 부활
다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이 맞겠다는 것입니다.

영과 육이
처음 난 것은 다 지옥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니)
두 번째 난 것은 다 천국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두 번 째 난 것 중
영은 단번에 힘씀없이 거듭나고
육은 현실에서 여러번 힘씀으로 거듭남

으로 정리가 됩니다.


고린도전서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전체 20

  • 2021-06-08 04:45
    고전15:44 육의 몸은 세상에서 심고 신령한 몸은 부활 때 다시 산다. 영이 다시 사는 것은 중생 또는 거듭난다로 정의하고 육이 다시 사는 것은 변화한다로 지금껏 사용했기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에서 영은 신령한 영, 인간의 중생된 영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육도 다시 살아나지만 여기서는 영의 중생을 강조한 것이며 그렇다고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며

    영이 다시 살면 육은 필연 다시 사는 것이니 마치 스위치 온,오프가 영의 중생이고 이후 전구의 밝기 정도는 살아났다, 죽어 있다는 표현의 생사보다는 밝다, 어둡다처럼 주격인 신령한 영과 구별짓기 위해 육은 변화한다 영은 거듭난다 중생한다로 표현, 육이 다시 살아난다고 표현할 때는 현실 통과할 때 보다는 부활 때를 두고 육이 다시 살아난다고 표현한 것이 아닌가?


    불목, 교리 연구, 종의 무례함, 을 용서해 주옵소서.

  • 2021-06-08 05:58
    스위치가 꺼져 있다 - 영이 죽어 있다.
    스위치가 켜져 있다 - 영이 거듭났다.

    전구가 어둡다 - 육이 죽어 있다.
    전구가 밝다 - 육이 살아 났다.

    스위치 위치 상태가 영
    전구 밝기 정도가 육

    죽은 영이 다시 살아 난다 - 거듭난다. 중생.
    죽은 육이 다시 살아 난다 - 변화한다. 성화.

    영의 구원을 기본구원, 육의 구원을 건설구원이라고 단어 사용을 달리 하는 것처럼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다시 살아나는 면은 같지만 영은 주격으로서 거듭나는 중생이란 단어로, 육은 소유격으로서 변화한다는 성화로 단어 사용을 달리하여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육이 다시 살아나는 차이를 설명하는 데는 유리한 면도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물론 육을 거듭난다로 말해도 의미전달에는 문제 없겠으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구별 짓기 위해서는 성화, 변화로 표현해도 무난하겠습니다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거듭난다고 말해도 괜찮다면 육을 다시 살아나는 것을 두고 거듭난다고 하지 않고 변화한다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2021-06-08 09:20
    요한복음 3장에 거듭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6 육으로(부모로부터 육적으로) 난 것은 (소유격의) 육이요 성령으로(하나님으로 인하여 신령하게) 난 것은 (주격인) 영이니 다음인 7절에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여기서 거듭나야 하겠다는 것이 영을 말하는가? 육을 말하는가? 둘 중에 하나가 답이라는 전제하에서 보면, 8절에서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여기서 7절의 거듭난다는 표현은 바람이 임의로 분다는 비유처럼 본인이 모르게 거듭난다는 것이니까 영을 말한 것이지 마음과 몸의 변화는 본인이 느끼고 알고 자각할 수 있으니 육을 말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영이 다시 살아나면 육도 이어서 시간차를 두고 다시 살아 나지만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가 어머니 뱃 속에서 태어났는데 다시 거듭난다고 한다면 어머니 뱃속으로 또 들어 갔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냐고 질문한 것에 대한 답을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므로 소유격인 육보다는 주격인 영에 초점이 맞추어진 답은 아닐까?

    '영은 단번에 살고 한번 살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이 설명을 영은 중생, 영이 거듭난다로 단어화하고 '육은 현실에서 여러번 반복해서 살아나고 죄로 죽었다가 살아나기를 반복한다'는 설명을 줄여서 육은 성화, 변화한다로 단어화 한다면 하고 가정해 봤습니다. 영이나 육이나 다 같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지만, 영과 육이라는 단어가 다르듯 다시 살아난다는 표현도 영에게는 거듭난다. 육은 거듭난 영으로 인하여 다시 살아나는 것이니까 영이 거듭나는 것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변화한다 내지는 다른 표현을 사용한다면? 질문의 핵심은 주님이 요한복음 3장에 거듭난다고 하신 것이,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신 것이, 영을 두고 하신 말씀인가? 육도 같이 살아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생각입니다. 기본구원, 건설구원의 교리적인 면으로 보면 둘 다 말씀하신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둘 중 하나로 구별한다면...

    그렇다면 아래 성구는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하신 것인가? 육도 다시 살아나는 것을 함께 말씀하신 것인가?

    1. 벧전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영을? 육을?)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 사활 대속으로 인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2.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영을? 육을?)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너희가 거듭난 것이 과거사로 정리

    3. 디도서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영을? 육을?)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 중생의 씻음에는 인간의 행위나 믿은 이후 우리의 의로운 행위가 포함되지 않는다?

  • 2021-06-08 10:12
    정리하면

    1. 주장 - 대표격 표현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 육적으로 태어난 것은 흙으로 지음 받은 소유격 육이요 (생략: 즉각 죽은 영도 있지만)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 성령으로 거듭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인 주격 영이니 (생략: 살아날 육도 있지만)

    2. 주장 - 전체격 표현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 육체로 난 것은 죽은 영과 죽은 육의 육적인 것들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 성령으로 난 것은 거듭난 영과 현실에서 살아날 육의 신령한 것들이니

  • 2021-06-08 10:57
    영은 한번 살아나면 두번 죽는 일이 없다.
    그러나 육은 한번 살아났다가 현실에서 죄를 지으면 두번째는 죽을 수도 있다.
    즉 영은 거듭나면 계속 살아 있다. 그러나 육은 한번 살아 났다가 다음 현실에서는 죽는 일이 있다.
    영은 마음에 뉘우치는 회개가 필요 없고 육은 반복적인 회개가 필요하다.
    그래서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단어적 차이로도 나누어 놓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 2021-06-08 12:14
    구약시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범죄하니
    영은 즉각 죽었고 육은 서서히 죽어가서(의학은 이를 노화라 말한다) 900살 가까이 살았다.
    그 결과로 하나님과는 단절, 인간끼리는 미움, 살인으로 살다 결국 다 사망했다.
    하나님은 선악과 먹으면(영은 즉각 육은 서서히) 정녕 죽는다를 함축적 의미인 죽는다는 한마디로 말씀하셨고
    사단은 (영은 즉각 죽으나 육은 즉각)죽지 아니한다고 괄호는 쏙 빼고 부분만 말하는 일명 거짓말을 했다.

    신약시대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해 우리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그 반대다.
    영은 즉각 살아나고 육은 서서히 살아난다.
    영은 단번에 살고 육은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한다. 육은 살아났다 싶으면 현실에서 같은 죄로 또다시 죽는다.
    공회 안에서는 상식이나 공회 외부는 생소한 분들이 있어 참고로 적어 본다.

  • 2021-06-08 17:17
    다른 말씀은 여러 면으로 설명하셨고 조금 애매해 보일 수 있는 부분이 있을 듯하여 요3:6만 적어 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 말씀은, 불신자들은 세상에 태어 날 때 몸과 마음만 사람으로서 살아 움직이고, 자기 영은 아담의 원죄 때문에 죽은 상태로 태어 나고 죽는 날까지 죽은 상태로 있다가 끝이 납니다. 믿는 사람은 불신자처럼 태어 나서 살지만 살아 가는 어느 순간에 성령이 죽어 있던 영을 살립니다. 영이 살아 나면 그 때부터 이 영이 자기 마음과 몸을 말씀으로 살게 만들려고 활동을 시작합니다.

    요3:6에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는 말씀은 모든 사람이 태어 나는 순간에 부모로부터 몸과 마음만 살아 있는 상태로 받아서 나온다는 단순한 면을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살아 가다가 우리 영이 중생이 되는데 그 중생은 몸과 마음이 부모로 태어 나는 것과 달리 성령으로 태어 난다는 뜻입니다.

    심신이 부분적으로 현실마다 그 현실에 해당 되는 부분이 말씀으로 변화를 받으면 그 변화 받은 부분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상태로 변화가 되는데 이 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이 성화는 영이 중생 된 사람의 몸과 마음에는 다소 차이는 있지만 성화가 조금이라도 있기는 있습니다. 영도 다시 살아 나고 심신도 다시 살아 나지만 영은 한 번 살면 영 자체가 다시는 죽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굳이 '중생'이라는 표시로 따로 표현합니다. 육은 부분적으로 살아 나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죽기도 합니다. 영이 다시 살아 나는 것과 심신의 다시 살아 나는 과정은 차이가 많기 때문에 심신이 부분적으로 살아 나는 것은 '성화'라는 표현으로 달리 표시합니다.

  • 2021-06-09 06:02
    결론적으로 피드백해 보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부종모혈로 태어나면 살아 움직이며 활동하는 것은 심신의 육이요
    (죽은 영을 여기서는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성령으로 거듭난 것은 사람의 영이니
    (중생 이후 살아날 심신의 육을 여기서는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


    사람이 태어날 때 죽은 영도 있고 죽은 육도 있지만
    성령으로 거듭날 때 살아난 영도 있고 살아날 육도 있지만
    여기서는 죽어 있던 영의 중생 시점에, 그 때를 일시정지 시켜 놓고, 사람의 영의 상태를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는 성구이니
    중생은 본인이 모르게 거듭난다고 설명 하셨으니
    요한복음3:6절의 육적이다, 영적이다 는 해석보다는 사람의 육과 사람의 영이 더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1. 육적, 영적 : 교리를 가지고 성구를 억지로 해석하려는 오류인가? - 교리신학.
    2. 사람의 육과 영 : 성구를 가지고 교리를 억지로 도출하려는 오류인가? - 성경신학.

    현재까지는 연구과제로 돌립니다.

  • 2021-06-09 10:24
    덧셈, 뺄셈을 모르는 유치원생에게 곱셈, 나눗셈까지 한꺼번에 말을 안하고 기초를 알아야 그 다음을 넘어가듯
    영의 중생인 영의 거듭남이 이해가 되어야 그 다음 육의 다시 살아남이 이해되기에, 교리사의 발전적 원리처럼
    주님이 먼저는 니고데모가 모르는 원인의 핵심,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먼저 설명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죽은 영의 중생이 이해되면 죽은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설명 안해도 스스로 유추해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육의 변화의 이해는 상대적으로 쉬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중생된 영의 실체는 이해가 어려우기에
    주님이 8절에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영의 중생도 본인이 모르게 거듭난다'라고 설명하신 것이 아닌가?
    육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이해 못하는 니고데모에게는 영의 중생에 대한 언급과 부연 설명이 선행학습 되어야.

  • 2021-06-09 11:02
    성경의 영과 육은 그 경계가 확실합니다. 일단 이 원칙이 흔들리면 안될 듯 합니다. 그런데 이대로라면 결코 영과 육은 결코 섞일 수 없고 하나될 수 없어야 하는데, 피조물(육)을 하나님과 같은 신적 존재(신령)으로 만드려는 이 불가능한 목적을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헷갈립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깊이 보면 영과 육의 철저히 구별된 원칙을 지키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경계를 완전히 해체시킵니다. 신인양성 일위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기 사람은 1차적으로는 '영'이지만 하나님의 최종적 목표는 죽은 영을 중생시켜서 이 영에게 피동된 택자의 '심신의 기능'까지 살려 완전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죽은 영이 물과 성령으로 살아나는 것을 중생이라 합니다.
    이 중생된 영에게 피동된 심신의 기능은 의의 병기입니다. 하늘나라에서의 영의 수족입니다. 영의 실력입니다.
    영과 심신의 기능이 이미 한 몸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피조물인 택자가 신인양성 일위 예수님을 머리로 우리는 그의 몸으로 되어 예수님을 통해 드디어 하나님과 완전한 한 몸이 되듯이(엡1:23), 분명히 육이요 물질인 심신의 기능이 영에게 피동되면 하늘나라에서는 영의 신령한 한 부분이 됩니다. 최종적으로 한 몸이 된 이 장면을 두고 이것을 중생이라 해야 할지 성화라고 해야 할지.

    '영의 중생'과 '심신의 성화'의 구분은 이 최종 한 몸이 되어가는 과정을 확실하게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혼합이나 변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2021-06-09 11:21
    요즘 초등학교 산수를 보면 1+1=2다. 2가 어떻게 나왔는지 풀이 과정을 여러 방법으로 설명해 보라고 나온다.
    과거 수학 문제는 답을 찾는 데 집중했지만 요즘 초등 수학은 답보다는 풀이 과정을 더 중시한다.
    주일날 강단에서 설교가 선포되면 들은 말씀을 가지고 서로 어떻게 들었는가? 말해 보자. 이것이 새김질인가?
    문답방도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한 주제에 대해 믿음의 정도에 따라 여러 방법으로 답변해 보면 좋겠습니다
    복음도 하나지만 마태를 통한, 마가를 통한, 누가를 통한, 요한을 통한 말씀으로 나뉘어져 다각도로 말씀하시듯


    이런 훈련이 쌓이면 가상에서의 원론적인 탁상공론보다 현실의 실제적인 상황에서 우왕좌왕하지 않으리라.
    마치 코로나로 정부가 예배당 좌석의 30프로로 제한하면 교회가 광고는 하고 교인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교회의 광고를 따를 것인가? 지금은 환란이고 시험의 때니 본인 의사에 따라 예배당 자리에 앉을 것인가?
    국기 배례 사건처럼 연구소 직원이면 위에서 시켜서 한 것인가? 스스로 좋아서 내가 전적 책임지고 한 것인가?


    겸손함으로 조심하되 진리 침노를 위해 때론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당돌함처럼
    바쁨 속에 여유가 있듯 문답방에 답변글의 다양화와 총공회 발언방에 다양한 주제글이 올라 오기를 기대하며.

    • 2021-06-09 18:46
      주제와 관계 없지만, 오해가 될만한 글이 있어 적습니다.

      연구소에서 출판한 주교목회연구 2권 ('국법을 바꾼 주일 학교')을 보시면, 위천교회 주일학생들의 국기배례 거부는 "누가 시켜서 국기배례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일에 학교 가지 말라, 고 교회에서 가르쳤을 때, 한 학생이 학교 오라는 선생에게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면 이 학생이 교회가 시켜서 안 간 것인지 스스로의 믿음으로 안 간 것인지, 다른 사람은 당장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또 앞뒤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얼핏 읽다보면 위와 같이 읽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적어보았습니다.

      • 2021-06-10 04:29
        담당8님 말씀대로 오해로 읽힐 수도 있겠습니다. 교회는 사람을 통한 지도가 항상 존재하기에 시켜서 했다 할 수도 있고 반면 하나님께 직접 지도 받아 믿음으로 했다고도 말할 수 있는데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국가에서 소송을 걸거나 시비를 할 때는 꼭 너가 단독으로 한 게 아니고 위에서 시켜서 했지 이걸 유도해서 교회 윗선을 치는 것이 건수를 올리는, 세상 범죄 수사 진행 방식인데 국기 배례 사건도 내가 스스로 했다고 말해야지 위에서 누가 시켜서 지도 받아서 배워서 했다고 하면 검찰은 해석하기를 너는 책임 없다는 말이 된다는 뜻이라고 인용한 것인데 머리 꼬리 떼고 말하다 보니 자세한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아무리 국가가 코로나로 예배당 30프로 제한해도 나는 예배당에서 예배 드려야 하겠다고 하면 교회로서는 막을 수 없고 검찰에 잡혀가도 내 자의로 했다고 말해야지 누구 때문에 목사님이 평소 설교 시간에 그렇게 가르쳐서 했다고 하면 안된다 국기 배례 사건을 통해 우리도 그들처럼 앞으로 코로나보다 더한 환난이 오면 말을 잘해야 한다 묻는 자의 의도가 불순하면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말한마디에 교회 기둥 뿌리가 뽑히느냐 유지되느냐가 결정되기도 한다 요지는 이것이었습니다

  • 2021-06-09 12:49
    백목사님 설교록에 보면,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고 발표를 하니
    친한 지인이 그것은 틀렸다고 메모를 적어 가며
    백목사님을 설득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자기 양심에는 내가 틀렸으니
    참으로 불쌍해서 나를 고치고 돌려 세우려는 그 중심, 그 정성은 참으로 대단하며 배울만하고 감사하다.

    가족 중, 교회 내 나와 생각이 다른 자, 나와 뜻이 다른 자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문답을 많이 접해 보면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읽으면서 자기의 좁은 시선이 넓어질까요?

  • 2021-06-10 09:33
    저도 반사님의 질문을(마음의 요소의 변화를 거듭난다로 백목사님의 설명) 10여녀전에 접했습니다.

    공회성경해석에 기본구원 건설구원 두면으로 모두 해석되는 면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혼란이 좀 되기도 했습니다.

    예를들어 엡2:8~9에서 믿음과 구원을 기본구원으로 해석해야 할지? 건설구원으로 해석해야 할지? 아니면 기본구원 - 건설구원 둘다로 해석해야 할지? 오래전부터 의문이 들었습니다.

    • 2021-06-11 05:53
      2013년 교인님이 질문하신 내용 같은데 거듭 과거 답변을 참고해 봅니다.


      1. 요14:6
      석가와 공자와 자기 수양과 21세기 로켓 발사체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천국 갈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만 천국 갑니다. 이렇게 표현할 때 우리는 기본구원이라 합니다.

      천국을 가기로 예정 되고 중생이 된 우리가 천국에 갈 때 오늘 우리 속에 들어 있는 이 시기심 이 먹장같이 검은 욕심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 갈 때 우리 것이니 무조건 다 가지고 들어 가겠는가? 미국 시민권자가 뉴욕 공항의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하여 미국으로 입국할 때 핵이든 마약이든 미사일이든 뭐든지 다 가지고 자유로 들어 갈까? 미국은 미국의 법에 금지한 것은 그들 실력으로 최대한 찾아 내고 다 걸러 냅니다.

      천국에 들어 가게 된 우리가 오늘 우리 심보 우리 욕심 이 먹장같은 시기심을 성도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다 가지고 천국에 들어 갈까? 우리 자체는 구원을 받았으니 들어 가게 되겠으나 우리의 마음씨 우리의 시기심 욕심 이런 것은 예수님의 구원에 감격하여 의의 욕심으로 바꾸면 그 욕심도 가지고 가겠지만 끝까지 물질 욕심으로만 살면서 바꾸지 않고 버틴다면 우리가 죽어 천국에 갈 때 그런 우리 속의 요소들은 전부 긁어 내어 지옥에 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설명할 때는 이 성구는 우리에게 건설구원 면을 가르칩니다. 둘 중에 하나라도 잊거나 놓치면 신앙 생활에 치명적인 손해가 옵니다. 기본구원 면을 모르면 차라리 불교가 낫다며 그리로 갈 것이고 건설구원을 모르면 자기 심신의 요소와 실력과 기능을 하나씩 점검하여 살리는 기회를 놓치고 천국 비자 발급에만 매달릴 것입니다.


      2. 엡2:8
      이 성구는 2:1 이하에 기본구원 면에서 설명하고 내려 오는 경우입니다. 당연히 기본구원으로 먼저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나 원리적으로 본다면 건설구원도 그 어느 한 순간 어떤 요소라 해도 전적 선물이며 은혜입니다. 교회 피아노 반주로 찬송을 돕겠다면 몇 년을 피아노를 친 사람들이 생각할 때 그 피아노 연습 기간에 자기는 자기 힘으로 노력했다고 할 것이나 알고 보면 그 어느 한 순간도 주님의 전적 은혜가 아니었다면 그런 마음을 가지지도 못했을 것이고 학원을 가다가 차에 치여 죽었을 것이고 설사 잘 배웠다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에 찬송 반주에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으면 포기했을 것입니다. 예배 때 피아노 앞에 앉았다 해도 그 순간 뇌졸증이 왔다면 건반 위에 올린 손의 손가락이 건반으로 내려 오지 못하고 쓰러 졌을 것입니다. 그 어느 하나도 은혜 아닌 것은 없습니다. 건설구원 까지도.




      1. 택자와 불택자
      - 기독교 5백 년의 상식
      중들이 모두 고기를 먹다 보니 오늘 불교는 사실상 윤회설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원래는 고기 먹는 중은 없었습니다. 기독교는 중세 1천 년 동안 천주교에게 붙들려 있다가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을 통해 나왔고 이후 칼빈의 교리를 통해 아주 철저히 천주교를 털고 재출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칼빈의 교리 중에 교리는 세상을 만들기 전에 미리 하나님은 천국 갈 택자와 지옥 갈 불택자를 정해 놓았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교회가 너무 타락하여 어두워 지다 보니 질문자께서 주변을 접촉하며 그렇게 느끼시게 된 것이지 원래 기독교가 택자와 불택자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알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천주교를 뺀 우리 기독교의 기본 상식이 하나님은 택자와 불택자를 미리 정해 놓았습니다. 때가 되면 우리를 불러 믿게 하시는데 우리 택자는 무조건 천국에 은혜로 들어 갑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천국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500여 년 된 기독교의 상식이며 이 것을 부인하는 이들은 로마 교황 밑에 들어 가서 중세 1천 년처럼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중들이 고기 먹듯이 오늘 믿는 사람들이 5백 년 전에 완벽하게 해결해 놓은 이 교리를 모르고 있으니 통탄할 일입니다. 지금 현재 교회는 중세 1천 년의 천주교와 비교할 때 어지간히 다 닮았다고 자탄을 하고 있습니다.

      - 성구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롬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엡1:3-6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사...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최소한 한국의 정통 보수 교단이라고 하면 이 기본구원의 택자에 대한 교리는 우리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택함을 받은 우리가 믿은 이후에 왜 교회를 다니는지를 두고 건설구원을 모르는 바람에 택함이라는 기본구원의 뿌리까지 스스로 뽑고 있습니다. 어쨌든 은혜로 무조건 천국 가는 이 택함의 교리와 관련 성구는 그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위에서 몇 가지 기억 나는 것만 추천합니다.


      2. 지옥 갈 불택자
      천국 갈 택자를 위해, 택자와 꼭 같은 모습을 가진 사람을 만들었으니 그들이 불택자입니다. 아이를 위해 부모가 '매'도 준비하고 음식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해 한 끼 정도 굶기는 것과 같습니다. 불택자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지만 그들이 뭐라 하면 너희는 믿지 않으니 상관도 없는 일에 난리냐고 말하면 될 것입니다. 불택자와 택자는 마치 사람과 식물이 다른 것처럼 아예 다른 존재입니다. 모습만 같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누가 불택자인가? 아무도 모르게 해 두셨습니다. 표시를 해 두었다가는 우리를 기르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택자와 불택자는 하나님만 아시고 인간으로서는 혹시 짐작을 할 수는 있으나 실체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사람이 다 택자라고 생각하여 믿지 않는 사람을 전도하여 믿는 사람을 만드려고 노력만 하면 됩니다. 일단 믿는 사람은 택자라는 것이 표시가 난 것입니다. 택자가 아니고는 믿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 믿지 않은 사람 중에 누가 택자인지 불택자인지 모르도록 해 놓았습니다.

      고전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택자와 불택자는 모르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순간 그 사람은 택자였음이 밝혀 지는 것입니다. 아직 믿지 않는 사람은 어느 쪽인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죽는 마지막 순간에 믿고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3. 설교 자료
      마태복음 25장 1절의 '열처녀 비유'를 찾아 보시면 이제 설명한 부분이 가장 잘 자주 나옵니다. 마25장 중에서도 옛날 자료일수록 설명이 더 집중적으로 나타 납니다. 이 게시판에 help라는 이름으로 돕는 분들이 대신 찾아 주시거나 아니면 해당 내용이 집중적으로 나오는 곳을 안내해 드렸으니 직접 찾아 보시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2021-06-11 07:16
    고맙습니다.

    저의 글의 point는

    이 성구는 2:1 이하에 기본구원 면에서 설명하고 내려 오는 경우입니다. 당연히 기본구원으로 먼저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나 원리적으로 본다면 건설구원도 그 어느 한 순간 어떤 요소라 해도 전적 선물이며 은혜입니다.

    이 글처럼..

    한 성구가 기본구원-건설구원 둘다로 해석이 되냐는 것입니다.

    엡2:1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이 말씀을 기본구원의 "죽은 영이 살아난것"도 해석이 되고

    건설구원의 "심신의 요소가 살아난것"으로도 해석이 된다면..

    한 성구가 두가지면으로 해석이 된다는것이 아직은 수용이 잘 안되는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말씀도

    기본구원으로 오직 예수님의 대속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로 해석이 되고
    건설구원면으로도 건설구원을 이루어가기 위해선 오직 예수님만으로도 해석이 되고..

    아직 결론을 못내린면이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반사님질문처럼 "영이 다시 살아나는것도 거듭남이고, 심신의 요소가 살아나는것도 거듭남이고.."

    결국 거듭남도 기본구원 건설구원 둘다에 적용이 된다는 것인..

    이런 맥락에서 제가 엡2:8~9 에 대하여 질문을 한 것입니다.

  • 2021-06-11 07:23
    요3:16에서 "저를 믿는 자마다.."

    믿는것을

    기본구원에서 영이 살아 날때 "믿음"으로 해석도 되고
    건설구원에서 마음이 믿는것으로도 해석이 되고
    건설구원에서 몸이 따라가는 순종을 믿는자마다로도 해석이 되고

    이렇게 되버리면 갖다 붙이는데로 전부 해석이 되는것 같아서..저는 혼선이 자꾸 생기는 것 같습니다.

  • 2021-06-11 07:45
    수정: 이렇게 되버리면 갖다 붙이는데로 -)

    여러면으로 해석이 되는 것 같아서 혼선이 자꾸 생기닐 것 같습니다.

    표현이 잘못되었습니다. 수정바랍니다. 죄송합니다.

    • 2021-06-11 08:52
      어머니 뱃 속에 있을 태아 때가 있고 출산 이후 신생아 때가 있다면
      우리의 영이 거듭날 때가 있고 이후 육이 다시 살아날 때가 있는데
      주님은 두 면을 다 감안해서 한 단어에 포함시켰다 할 수도 있으나

      어머니 뱃속은 태아라 하고 출산 이후는 신생아라 구분 하듯
      영이 거듭난 것은 중생이라 심신이 거듭난 것은 성화라 하여
      주님은 거듭난다 해도 우리는 한단어 두 뜻으로 들으면 될지

      아니면 둘로 구분해서 들어야 할지
      마태복음 22장은 똑같이 대우한다
      마태복음 25장은 대우가 차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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