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주해] 일천번제 질문(왕상3:4)

직원내부용
작성자
*556
작성일
2019.10.30
원제, 왕상 3:4 일천번제 질문

왕상
3: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1. 일천 번제를 천일 동안 드린 번제로 보는 것과 양을 한번에 1천 마리 잡아서 드린 번제로 보는 의견이 있습니다. 어떤 게 맞는 것인지요?

2. 이 성구를 가지고 일반교계 많은 분들이 일천번제 새벽기도, 일천번제 헌금 등을 하시는데, 좋은 것인지?

3.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는데 왜 기뻐하셨는지요?

 

 

질문:질문자 2002-09-17 09:11:42
출처:pkist.net/쉬운문답556
제목분류 : [~성경~주해~]
내용분류 : [-성경-주해-]/[-성경-성경관-]




답변: 2002-09-17 21:42:54 yilee [ E-mail ]

 

'천'이라는 숫자는 무한을 말합니다. 자기 전부를 다해 섬긴 것입니다.

 

 

1.일천 번제에 대하여 두 가지 의견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습니다.

솔로몬이 드린 1천 번제는 한꺼번에 1천 마리 제물인지, 1천일 동안 드린 제물인지를 구별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는 있습니다만, 그렇게 구별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성경의 '천'이나 '만'이라는 숫자는 한없이 많다는 데에 그 중심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사람으로 드릴 수 있는 전부를 바쳐 섬겼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 섬기는 일 외에는 솔로몬의 심신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먹는 것도 주님 먹어라 해서 먹고, 주님 때문에 먹고, 주님 섬기는 일로 먹었다는 것입니다.

2.솔로몬의 1천 번제를 보며 다른 신앙에 도움 되는 것은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신약교회에는 법으로 금할 것이나 법으로 강제할 것은 거의 없습니다. 개인과 교회들이 자기 형편에서 구원에 유익된 면으로 무엇이든지 거의 할 수 있습니다. 일천번제 새벽기도, 일천번제 헌금 등으로 운동하는 것 자체가 잘못일 수는 없으나 무슨 구호를 붙여 특별 기간을 통해 힘쓰는 것은 대단히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특별기간, 특별구호라는 것은 아주 어린 신앙에게 한 두 번 사용할 때는 재미도 있고 또 힘도 모아지는 심리적 효과, 목회적 기술로는 분명히 도움이 되지만 그 특별기간 중에 특별히 힘을 모두었던 것이 그 기간이 끝이 나고 그 구호 플랙카드를 내릴 때 그 신앙운동이 함께 종료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 말로 충격요법이라고 하는 것인데, 사탕이라는 것을 자주 꺼내 사용하면 그 아이 자체를 버립니다. 목회기술의 개발과 아이디어가 난무하여 오늘 신약교회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성령은 그 설 자리가 없습니다. 성령을 불러내는 구호는 천하 교회를 가득 채우고 있으나 그 구호 자체가 성령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거절행위임을 알아야 할 때입니다.

3.솔로몬의 일천번제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이유는 앞부분에서 설명 드렸습니다.

'천'이라는 숫자는 한없는 무한의 숫자를 말합니다. 솔로몬이 자기에게 있는 전부를 다 바쳐 오직 여호와만으로 왕노릇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왕이라면 제가 천하제일인데, 왕이 자기 가진 천하제일을 몽땅 다 여호와께 바쳐놓았으니 과연 하나님이 솔로몬을 통해 이스라엘을 자유롭게 통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답변:2002-09-19 23:32:46 김 정수 [ E-mail ]

Re: 왕상 3:4 일천번제 질문에 대한 의견

 

 

저도 이 문제로 살펴 본 일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솔로몬의 일천 번제를 본받아 일천 일 동안 연속적인 부흥회를 열었다는 말을 들었고, 어떤 열심 교인한테서는 역시 솔로몬의 본을 받아 일천 일 동안 새벽 기도를 참석해서 은혜 받고 산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일천 일 동안 새벽 기도를 했으면 다시는 안 해도 된다거나 쉬었다 해도 된다는 말인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에 비추어 보면.
성경을 보면 왕상 3:4에는 "일천 번제"를 솔로몬이 드렸다 했고 같은 사건을 대하 1:6에서는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다 했습니다. 희생은 제물이 된 짐승이란 뜻입니다. 이로 보아 짐승 일천 마리로 번제를 드렸다는 말씀이지 일천 일 동안 번제를 드렸다는 말씀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하루에 한 마리씩 바치면 물론 일천 일이 걸리겠지만 그런 뜻이 나타나 있지는 않습니다. 다윗 임금도 대상 29:21에 수송아지 일천, 수양 일천, 어린 양 일천 마리씩으로 번제를 드린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일천 일 동안의 부흥회나 새벽 기도 등을 솔로몬이 일천 희생을 바친 번제와 연관 짓는 것은 언어적인 오해나 견강부회의 결과로 보입니다.


재질문:2002-09-20 12:55:56 질문자

Re: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솔로몬의 일천번제에 대해서 생각한 것이 6년쯤 되었습니다.
6년 전 감리교 부흥회에서 한 목사님을 통해 천이란 완전수인데,
이렇게 3년 이상을 매일 예배드린 것이 얼마나 훌륭하냐는 말씀이였지요..

그 후, 일천일이 아닌 천 마리 짐승의 희생이라는 것에 나름대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앙에 아무 유익이 없었습니다.
1천일 동안 열심히 새벽기도 하는 사람들을 '무지의 신앙'이라고 비판만 했지.. 그 안에 있는 장단점의 본질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또, 성경을 다시 보니, 천 마리 양이냐, 천일이냐는 나중이고 이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고, 기뻐하신 과정 중에 '천'이라는 단어를 기록해 주셨다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천'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 말고도 일반 교계에서는 성경을 잘 몰라서 이상하게 말하는 것이 많습니다. 하물며 연자맷돌비유만 해도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한 사람이 연자 맷돌에 달려야 한다는 것인지, 실족당하는 사람이 연자 맷돌에 달려야 한다는 것을 확정해 주는 사람이 없지요.

이번 질문을 통해 확인한 것은, 성경을 읽고 보는 제 관점을 다시 한 번 검토하고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배워 가질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답변: 2002-09-22 19:50:32 yilee [ E-mail ]

- '일천번제 질문에 대한 의견 -

 

 

1.일천 번제에 대한 의견은 답변자도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천의 짐승을 한 자리에서 드리는 경우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너무 많고 그 대신 한 마리의 짐승을 일천 일로 나누어 드렸다고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첫 답변에서 그렇다고 단정하지 않았던 것은 창22:3의 해석 때문이었습니다.

일천일을 계속 드린 제사라고 생각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의 답변에서 그렇게 단정하지 않고 그 대신 '일천'의 뜻을 중심으로 설명을 드린 이유는 창22:3해석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으로 이삭을 바치러 갈 때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라고 성경은 명문 되어 있는데도 백목사님은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땔감을 준비해서 아침 일찍 출발했다'고 습관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깨닫고 배우는 자세로 백목사님께 몇 차례 질문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성경 기록과는 다른 내용이 된다는 면을 말씀드렸는데 목사님은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땔감을 준비했다는 설교 내용을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혹 실수하시는 것인가 하여 이후 2차례 정도 더 질문을 했으나 역시 대답은 같았습니다.

3. 당시 많은 설명이 있었으나 요약한다면

인간으로는 이해 못할 그런 명령을 받았지만 이미 아브라함은 이전에 순종으로 이런 경험을 해 보았고 또 받아본 증거가 있기 때문에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의 준비는 밤새도록 준비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 성구를 그렇게 해석해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생각하였을 뿐이지 그 설교를 답변자 입으로 직접 다른 사람에게 외칠 확신은 없었습니다. 그 후 15년 이상 세월이 지나가면서 이제는 그 성구를 그대로 읽으면서도 동시에 밤새도록 잠도 자지 못하고 장작을 준비하였다는 내용을 답변자 자신의 깨달음과 확신으로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4.일천 번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살펴본다면

일천의 짐승을 드린 것은 대하1:6에서 확실한데 이 성구는 그 일천의 짐승을 한 번에 드렸는지 아니면 일천일로 나누어 드렸는지에 대하여는 일단 단정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기록과 날자는 여러 경우에서 햇수 단위가 하루 단위로 축약된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앙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 우리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시간과 희생을 드리되 과도하게 드리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종덕목사님이 신학생들에게 우물을 파게 하면서 이왕 한번 파면 되는 우물을 여러 번 겹쳐 파게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는 효율성이 아니라 자신을 바치는 그 면을 즐기고 기뻐해야 함을 가르쳤다는 것을 백목사님이 자주 인용하는데, 사실 백목사님의 평생이 그러했고 성경 인물과 또 모든 탁월한 성도들의 걸음이 그러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앞에 말씀된 성구는, 일반 문맥 문구해석으로는 일천번제를 한 번에 드렸다고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겠으나, 혹 그렇지 않을 경우도 동시에 고려해야 할 성구라고 보았습니다.

5.성경해석의 아주 중요하고 절대적인 방법론 하나를 소개합니다.

성경으로 오늘을 보면 다 보이도록 적어놓았습니다. 또한 오늘을 보고 이 오늘을 기록한 성경을 찾는다면 다 찾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백목사님의 특이한 해석법입니다. 이런 해석법이 있기 때문에 신학과 원어를 마음 놓고 깔아뭉갤 수 있는 것입니다. 신학에 없는 또 하나의 성경해석법, 최고의 해석법 하나를 더 소개한다면, 성경을 신앙으로 살아보고 체험한 그 실체를 가지고 해석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차원은 그 말씀으로 그렇게까지 살아보지 아니한 사람으로서는 멀리서 그런 차원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을 하는 정도이지 그 곳에 올라서서 그 곳에 펼쳐진 세계를 직접 보며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곳은 백목사님의 신앙차원을 너무도 높고 귀하게 보고 있으므로 그 차원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세계를 말했는지를 늘 조심스럽게 경청하고 있는 편입니다.

백목사님이 깨닫고 가르친 내용은 이곳에서 늘 확신 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혹 직접 가르친 것이 아니라도 사석에서 또는 업무 처리에서 또는 여러 사람을 지도하며 목회하는 과정에서 확실하게 나타난 면은 비록 설교록에 없더라도 설교록과 같거나 그 이상으로 인정할 가치가 있는 경우가 있어 답변 등을 통해 확신을 가지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성구는 설교 지도 목회 공사석의 다른 기회를 통해서라도 이 성구를 단정하고 해석할 만한 기억이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가능한 경우를 다 열어둔 상태에서 그동안 받은 말씀으로 비교적 장기간 생각하며 어떤 면으로 깨달아야 할지를 숙제로 두고 있습니다. 적어도 가능성으로는 두 해석이 다 가능하다고 보겠고, 일반적 해석으로는 앞에 의견 주신 분의 말씀에 답변자도 꼭 같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일천'이 가르치는 바에 대하여 앞에 답변한 내용에서 단정한 것은 모든 성경에서 그렇게 단정할 수 있고 또 이 성구에서도 단정할 수 있는 선입니다. 다만 일천 번제를 단번이냐 일천일로 나누었냐는 문제만큼은 앞에서 드린 말씀을 두고 오랫동안 혹 수년 또는 수십 년에 이르도록 숙제가 될 듯합니다.

이런 때, 참으로 아쉬운 것은 답변자가 성경을 배웠던 분입니다. 그분에게 이 시간 전화를 들고 질문하면 문의하는 말이 입에서 나오자 말자 바로 답변이 나옵니다. 이 시대를 향해 주셨던 선지자를 그리며 오늘 답변자와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그런 신앙에 이르도록 성경에 능하고 성령에 충만하라는 하나의 귀띔으로 생각합니다.

- 앞에 말씀 주신 분의 글에 대하여 토론이나 지적이 아니라, 그 글을 읽으며 참고 될 몇 가지 내용을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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