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솔로몬 성전의 낭실 높이는 120규빗?

일반질문용
작성자
학생
작성일
2018.08.21
대하3:4 그 전 앞 낭실의 장이 전의 광과 같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일백 이십 규빗이니…

솔로몬 성전에서 낭실의 높이가 120규빗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아파트20층 높이와 비슷합니다. 성전의 폭이 20규빗임을 감안하면 높이가 지나치게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낭실의 높이는 건물의 높이와 비슷한 것이 일반적인 점을 고려할 때, 높이 120규빗이 잘 이해되지가 않습니다. 물론 어떤것은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기록해주신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이 신앙이라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과정을 보며 사본과 번역본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도 참고해 보았더니 아래와 같이 KJV는 개역성경과 같이 120규빗으로 기록하였고, NASB는 120이라고 하였으나 단위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NIV는 20규빗으로 기록하였습니다.

문자그대로 120규빗이라고 믿어야 되는지, 아니면 NIV 처럼 필사상의 오류로 보아야 하는지, 공회에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KJV)
And the porch that was in the front of the house, the length of it was according to the breadth of the house, twenty cubits, and the height was an hundred and twenty: and he overlaid it within with pure gold.

(NASB)
The porch which was in front of the house was as long as the width of the house, twenty cubits, and the height 120; and inside he overlaid it with pure gold.

(NIV)
The portico at the front of the temple was twenty cubits long across the width of the building and twenty cubits high. He overlaid the inside with pure gold.
전체 2

  • 2018-08-21 17:51
    질문한 내용은 성경을 읽으며 곳곳에서 마주 치는 숙제들입니다. 질문을 중심으로 좀 폭 넓게 소개를 하겠습니다.
    쉽게 바로 단정하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풀어 가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어떤 질문은 즉문즉답으로, 어떤 질문은 풀어 가는 방법까지만 안내합니다. 가끔 질문자께 과제를 드리며 함께 풀어 볼 때도 있습니다. 이 번에는 두 번째입니다.


    1. 성경을 읽다가
    ① 이해가 되면
    우리가 이해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여기서 고장은 출발합니다. 착각인지 무지인지 정말 깨달았는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한 걸음씩 나갈 때 자꾸 자라갑니다. 실제 바로 깨달았다 해도 가능성을 닫아 버리면 자기에게 갇히고 더 이상의 성장은 없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되면 '내가 아는 한' '일단 이렇게'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② 이해가 되지 않으면
    질문처럼 본문의 불일치가 있으면 하나는 틀렸다고 생각하고 선택을 하려 들 수 있습니다. 각각 다른 성경을 통해 달리 기록하고 달리 가르치는지, 확실히 둘 중에 하나는 틀린 것인지를 신중히 살펴야 합니다. 내용상 이해가 되지 않거나 기록들의 차이 때문에 확실히 문제가 생겨도 '둘다 맞는 경우' '둘 중에 하나인 경우' '둘다 기록 착오'를 늘 열어 놓아야 합니다.


    2. 연구를 할 때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 연구입니다.

    ① 평생 학생으로
    질문자는 학생처럼 묻고 저는 선생처럼 답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부분은 학생이 맞고 어떤 부분은 선생이 맞으며, 어떤 부분은 서로가 틀립니다. 물론 가능성은 묻는 사람이 좀 낮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100%가 아니면, 진리를 연구하는 세계에서는 함께 배우고 노력할 뿐입니다.

    ② 피해야 할 위험성
    성전의 높이가 역대하에서 20과 120으로 달리 적혔습니다. 이 경우 우리는 20에는 이해가 쉽고 120에는 일단 망설여 집니다. 여기서 '20'이라고 하면 성급합니다. 귀신이 바로 데려 가버립니다. 그리고 다른 성경도 그렇게 해결해 나갑니다. 이 것을 '인본'이라 합니다. 인간 생각을 기준으로 삼고 해석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니 높을수록 좋겠다며 '120'이라고 하면 '신본'입니다. 그런데 불건전한 신비주의나 맹신이 보통 신본처럼 시작을 합니다.

    ③ 자라 가는 순서
    성전 높이를 두고 '20'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면, '인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20인 듯하다 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높이 만큼은 능력으로 도우셔서 '120'을 만드신 것인가? 이 부분을 숙제로 두면 좋겠습니다. 내가 어려서 아직은 인간의 상식을 먼저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120으로 만들고도 남는다, 여기까지는 단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20은 현재 신앙이고 120은 내가 자라 가야 할 목표인가, 아니면 20이 맞은데 단정을 못하는 것은 내가 아직 어리기 때문인가? 둘 중에 하나를 두고 주님이 직접 확정을 해 주실 때까지 그 자리에서 세월을 기다리면 좋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런 자세와 과정을 통해, 과거에 단정하지 못한 것을 하나씩 풀어 주시고 점점 밝아 지다 보면 과제로 둔 다른 문제들도 해결이 되고, 나중에는 이런 과제와 차원이 전혀 다른 고난도의 모순까지 깨달아 집니다.


    3. 결론적으로
    칼빈이나 백영희 정도의 인물이면 바로 단정을 하거나 바로 과제로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대할 때는 일단 단정하지 말고 과제로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인 이유가 이런 대목입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면 대개는 다 풀립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풀지 못하는 경우는 가장 자연스런 만물의 이치로 풀면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이 2 가지 방법으로 되지 않을 때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하는데 이 번 질문은 성령의 인도까지 받아야 단정할 정도라 보입니다.

    우선 성경 자체의 사본 불일치로 인해 성경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둘째는 자연계시인데 20규빗과 120규빗의 차이는 건축의 특성으로 그럴 수 있습니다. 특히 성전의 앞 쪽은 낭실이 있습니다. 성전 전체의 제일 뒷부분인 지성소보다 성소가 좀 높아도 되고, 성소보다 제일 앞에 있는 낭실은 건축물의 탑처럼 올려 세운다면 높이 120규빗은 이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아예 건물 전체의 높이를 그렇게 한다면 더 튼튼할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규모를 키워야 할까? 그 것은 다윗의 준비와 솔로몬의 능력으로 볼 때 가능하다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은 성경과 자연계시로 접근하는 2 가지 방법으로 어느 하나를 단정하지 못한다는 것이 현재 우리의 어두운 수준에서 한 걸음씩 찾아 가는 자세를 설명합니다.

    속 시원하게 답변을 낼 수도 있어야 하고, 풀어 가는 방법만 함께 살핀 다음에 다 같이 이런 부분을 성령의 인도로 명쾌하게 가르쳐 주는 시대의 선지자를 우리 함께 기다리면 좋겠습니다. 성령의 인도는 모든 사람이 제 각각 자기 주관을 성령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주관이 다 다른데도 모두가 따를 수 있는 길이 나온다면 이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 밝힌 것입니다. 66권 성경이 정경이라는 사실, 삼위일라는 사실, 신인양성일위라는 사실, 기본구원이라는 사실, 건설구원이라는 사실들이 역사적으로는 이런 사례였습니다. 수도 없는 논쟁을 어느 순간 정리를 해버렸고 이후 시대는 군소리 없이 그냥 받아 들이게 된 사례입니다. 성전의 높이 문제는 교리의 기둥까지는 가지 않으나 그 밝혀 주시는 과정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 2020-09-18 13:15
    감사 합니다 이혜는 안되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된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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