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주님의 죽으심을 하루 2번 기도로 기념하다.

일반질문용
작성자
반사
작성일
2021.09.14
보통 예배는 시간을 정해서 드립니다. 일반적으로 주일날 정해진 시간에 모여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며 주님을 통한 설교 말씀을 듣습니다. 구약에 다니엘도 단6:10절을 보면 기도할 때는 예배할 때처럼 하루 중 정해진 시간에 열린 창 예루살렘을 향해 하루 세번 기도하지 않았나 하고 단정은 못하지만 짐작은 해 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때가 언제인가? 마가복음 15:25-37절을 보면 제 삼시에 못 박혀 제 구시에 운명하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생생하게 목격했던 12제자들이 주님 승천 이후 삶에 있어서 적어도 하루에 두번 이상 정해진 시간에 기도했다고 한다면 하루 중 언제였겠는가? 질문을 해 본다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시간인 오전 9시와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신 오후 3시를 정해서 하루 두번 기도 시간을 가짐으로 주님의 대속을 기념했을까요?

그 증거로 사도행전 2:15절에 보면 120명이 모여 전혀 기도에 힘씀으로 성령을 받은 때가 오전 9시인 제 삼시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3:1절에 보면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가다가 앉은뱅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낫게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제 삼시 기도하다가 성령 받고 사도행전 3장에 구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들어가다가 병자를 고치는 두 사건을 미루어 짐작해 볼 때 당시 12제자들에게 있어 주님의 십자가 죽음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마음과 뇌리에 돌비처럼 새겨져 십자가 못 박힌 시간부터 운명하신 시간까지, 적어도 제삼시(오전9시)와 제구시(오후3시) 두번은 기도했다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너무 비약적인 해석일까요?



막15: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막15:34,37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행2:15
때가 제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행3:1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전체 6

  • 2021-09-14 23:19
    답변 준비 중입니다.

    • 2021-09-15 12:38
      사활 기념

      1. 육체의 이스라엘과 신령한 이스라엘
      구약은 눈에 보이는 외부의 형식을 지켰고, 신약은 보이지 않는 내부의 실상을 만듭니다.
      제삼 시(오전 9시)와 제구 시(오후 3시)에 '기도로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려고 하면 대부분의 신자들은 여러 가지 활동, 특히 경제 활동으로 인해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구약은 정해 진 '제삼 시와 제구 시'에 하는 형식을 중요하게 지켰지만, 신약은 언제라도 상관이 없으니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실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2. 기념의 순서, 횟수
      1) 세례(일생 한 번): 신자가 믿고 죽을 때까지 한 번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란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옛사람은 죽이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하여 새사람으로 살겠다는 출발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기념의 시작입니다. 평생 이 기념을 하고 살겠다는 작정입니다.

      2) 성찬(1년 한 번):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기념을 작정하고 출발했지만 세월 속에 점점 이 기념이 흐려지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년에 한 번 예수님의 살인 떡을 직접 먹으며 예수님의 피인 포도즙을 직접 마시는 것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기념을 새롭게 하여 다시 한 번 강하게 새 출발을 하게 하는 것이 성찬입니다.

      3) 주일(1주일 하루): 예수님의 살과 피를 직접 먹고 마시는 성찬을 통해 새 출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날이 지나갈수록 이 기념이 흐트러지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주일입니다. 주일은 1주일에 하루를 종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념해 나머지 엿새 동안 이 기념이 계속되게 하는 것이 주일입니다.

      4) 양식, 음료(1일 수회): 하루 종일 기념한 주일을 통해 엿새를 출발했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기념이 흐트러지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참된 양식, 참된 음료입니다. 예수님의 살은 참된 양식이요 예수님의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요6:55).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기념을 밥을 먹을 때마다 하고 물을 마실 때마다 해야 합니다. 배가 고프면 먹는 것이 밥이고 목이 마르면 마시는 것이 물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배가 고프고 신앙의 목이 마르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기념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루 종일 신앙의 힘이 나고, 신앙이 자라고, 신앙이 강한 생명력을 가지게 됩니다.


      3. 결론
      일생: 세례를 통해 평생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기념을 작정하고 출발을 하고
      1년: 세월 속에 흐려지는 것은 1년 한 번 성찬을 통해 다시 새 출발을 하고
      1주일: 날 속에 흐트러지는 것은 1주일 하루 주일을 통해 해결하고
      1일: 시간 속에 흐트러지는 것은 1일 수회 양식과 음료를 통해 해결하면 됩니다.

  • 2021-09-16 05:55
    담당3님의 말씀대로 지금은 신령한 신약 시대라 횟수나 정해진 시간 없이 매일 자기 형편에 맞게 주님의 살과 피를 무시로 기념하면 된다는 말씀에 전적 동의합니다.

    한편으로 당시 주님 승천 이후 초대 교회에 있어 제 구시, 그러니까 오후 3시에 시간을 정해서 기도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지금 보통 교회는 주일날 예배를 오전 11시로 정해서 보듯이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시대부터 오후 3시에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었는지 이런 시간 정함이 주님의 십자가 운명 시간과 맞물려 예표된 것인지가 궁금했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베드로와 요한도 제 구시 기도 시간을 정해 성전을 출입했고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이방인 고넬료도 오후3시인 제 구시에 기도 중 천사를 통해 베드로를 만나게 되고 성령을 받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매일 새벽 4시 30분 예배를 통해 주님에게 하루 삶의 인도를 받듯 당시 신약시대 오후 3시 기도의 시간적 의미가 주님의 죽으심을 예표한 것인지, 아니면 구약시대부터 유대인들은 오후 3시만 되면 기도해 왔는데 주님은 그것을 기억하셨다가 제 구시라는 같은 시각에 죽으심으로 평소 기도하는 자를 시므온과 안나처럼 주님이 만나 주신다는 이치인지 한번 더 생각해 봅니다.

    백목사님 생전 새벽예배 외에 하루 기도 30분을 강조하셨는데 그리하여 하루 한번 예배당에 와서 기도한 것을 적으라 했을 때 누구는 말하길 그걸 꼭 적을 필요가 있느냐 그냥 개인적으로 형편에 맞게 하면 되지 그러니까, 기도를 교회적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선을 격발케 하는 것인데 기도 노트 적을 필요 없다는 고게 마귀 말이라

    고넬료의 오후 3시 기도처럼 새벽예배 이후 하루에 적어도 한번 정도 시간을 정해서 개인적으로 또 교회적으로 30분 기도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수요일 금요일 밤 예배 7시처럼 월,화, 목, 토도 주일 저녁 산기도처럼 시간을 정해서 저녁 5시든 6시든 7시든 8시든 9시든 30분 정도 기도한다면... 개인적 차원에 더하여 교회 차원에서 한다면 누군가 찬송 한곡하고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고 저녁 7시라는 형식을 갖추면 흐지부지 안되고 교인들의 지속적인 기도에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2장 - 10장 제 구시 기도시간을 묵상하며 지금 공회적으로도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백목사님의 기도노트 작성과 예배당 기도 부활을 연상해 봅니다. 제 구시라는 시간적 의미가 꼭 정확하게 오후 3시가 아니라 하루에 적어도 한번은 개인적으로 시간을 정해서(지속성 계속성을 위해) 주님의 운명하심을 기억하고 적어도 30분 정도는 기도하라는 뜻인가?



    행3:1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사도행전  10:30-35
    30.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 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느니라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 2021-09-17 13:56
    1. 신앙의 성장 단계: 육체의 이스라엘에서 신령한 이스라엘로
    1) 구약은 신약의 3배: 성경을 보면 '육체의 이스라엘(눈에 보이는 외부의 형식을 지키는 것이 중요)'인 구약이 '신령한 이스라엘(보이지 않는 내부의 실상을 만드는 것이 중요)'인 신약보다 3배가 많습니다. 만약에 신약에는 외부의 형식은 필요가 없고 내부의 실상만 중요하다면 굳이 구약을 주셨을까? 참고만 할 것 같으면 굳이 신약보다 3배나 많이 주실 필요가 있을까? 구약을 신약보다 3배나 많이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2) 시작은 외부의 형식(어린 신앙): 구약을 신약보다 3배나 많이 주신 것은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는 내부의 실상보다 외부의 형식이 몇 배나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이나 신앙이 어린 사람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서 속성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형식을 정해 놓고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주일날 예배를 참석해도 매주 오전 예배는 꼭 참석하겠다 하는 것과 주일날 시간이 되면 오전이든 오후든 참석하겠다 하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열심히 제대로 하게 되겠는가? 질문자가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의 사활을 기도로 기념할 때도 자기 형편에 맞게 시간을 정해 놓고 하는 것과 시간 되는 대로 하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잘되겠는가? 결론은 정해 놓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체의 이스라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백목사님도 어린 신앙을 위해 질문자가 말씀하신 것처럼 기도록을 기록하는 형식을 그렇게까지 챙기신 것입니다. 백목사님이 이러한 형식을 챙기신 것은 하나 둘이 아니라 아주 많습니다.

    참고로 모든 나무의 열매는 껍데기(육체의 이스라엘)를 만들고 난 뒤에 알맹이(신령한 이스라엘)를 만듭니다. 그래야 알맹이가 제대로 만들어 집니다. 육체의 이스라엘과 신령한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자연계시입니다.

    3) 마지막은 내부의 실상(장성한 신앙):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는 내부의 실상보다는 외부의 형식이 더 중요합니다. 외부의 형식이 만들어 지면 그때부터는 내부의 실상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내부의 실상을 잘 만들기 위해 외부의 형식을 만드는 것이지 외부의 형식 자체가 더 중요해서가 아닙니다. 외부의 형식은 있는데 내부의 실상을 만들지 아니하면 외식이 됩니다.

    예를 들면,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는 매주 주일 오전 예배는 참석하겠다 정하고 하면 잘되는데 참석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 속에 복과 거룩이라는 은혜를 받지 못하면 처음에는 잘되지만 마지막에는 외식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참석이라는 형식이 잘 지켜지면 그 속에 복과 거룩이라는 실상을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신앙의 성장입니다.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주님의 사활을 기도로 기념하는 것도 처음에는 시간을 정해 지키는 것에 집중해야 하지만 시간이 지켜 질수록 사활 기념의 실상에 집중해 가면 갈수록 감사와 기쁨과 충성이 충만해 지는 것이 정상적인 신앙의 성장입니다. 이것이 신령한 이스라엘입니다.

    구약의 육체의 이스라엘은 닭 모이도 주지 않을 만큼 안식일의 형식을 철저하게 지켜지만 그 속의 복과 거룩이라는 실상을 만들지 못해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됩니다. 이것이 구약의 육체의 이스라엘의 실패입니다.

    결론적으로, 육체의 이스라엘에서 신령한 이스라엘로 자라 가야 합니다. 외부의 형식을 만들고 그 형식이 만들어 짐에 따라 내부의 실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형식만 만들고 실상을 만들지 못하면 외식이 됩니다. 실상만 만들고 형식을 만들지 못하면 그 실상이 유지되지 못합니다. 형식과 실상 둘 다 있어야 정상입니다.

    4) 이웃 사랑: 신앙이 어릴 때는 외부의 형식을 더 중요하게 여겨 만들고 형식이 만들어 지면 내부의 실상을 더 중요하게 여겨 만들어야 신앙이 장성해 지는 것입니다. 신앙이 장성해 형식보다 실상을 더 중요하게 여기다 보면 형식을 무시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자기를 보고 자라 가는 어린 신앙으로 하여금 형식을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어린 신앙이 형식을 무시하면 결국 신앙의 실패로 이어 집니다. 그래서 장성한 신앙은 자기보다 어린 신앙을 위해 형식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2. 제구 시가 주님의 죽으심의 시간을 예표한 것인가? 구약에 일곱째 날은 안식일입니다. 그러나 구약에 여덟째 날에 대한 언급이 많은데 여덟째 날은 안식 후 첫 날 곧 주일을 예표한 것입니다. 이처럼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다만 좀더 연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3. 하루 한 번 30분 정도 정한 시간에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자: 좋은 의견입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교회든 정해 놓고 해 보면 확실히 신앙 성장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 2021-09-17 13:57
    주님의 대속을 하루에 정한 기도시간으로 새겨보려는 그 마음이 귀합니다

    좋기는 하루 매일 매시간 주님과 동행하며 잊지 않고 새기는 것이 마땅하며 좋은 것이고
    부족하나 하루의 신앙생활을 통해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며 예배를 드리며 묵상을 하며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좋고
    연약하여 오늘 하루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새벽기도시간에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 좋고
    죄송하나 질문자와 같이 2번이라도 정해 놓고, 또는 식사와 같이 3회를 정하여서라도 주님의 대속을 실상적으로 가까이 실감하려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 2021-09-18 07:14
    교회마다 새벽예배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밤예배도 점점 없어지고 있고 주일 날만 예배 드리는 교회가 점차 늘고 있습니다. 주일 날 새벽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거의 없다 할 만큼 한국 교회에 예배라는 형식의 횟수가 줄고 있고 예배 속 설교 시간은 점차 더 줄고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의 실상을 위해 형식은 갖추나 신약의 실상만 강조하며 구약의 형식을 점점 허무는 여우 말에 속아 믿는 자들 중에는 하나님 아버지 없이 사는 고아, 신랑되신 주님 없이 사는 과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요즈음, 실시간 예배식의 보완상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형식은 무엇인가?


    역항하는 신앙이 맞다면 80년대 말 남북한 안보의 위기 때 기도라는 형식으로 저녁마다 하루 한번 예배당에 와서 기도하자는 스승의 지혜가 생각납니다. 교회 내 영적인 고아와 과부는 항상 넘쳐나니 삼일밤, 오일밤처럼 매일 저녁마다 형식을 더욱 챙기며 그 속에서 실상을 강조해 봅니다. 새벽 예배로 하루를 시작하고 교회 차원의 저녁 기도노트 작성으로 이 난국을 헤쳐 나갑니다. 최근 마음껏 나라 곳간을 푸니 머지 않아 7년 흉년이 시작될 조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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