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답

예수님의 사활 3일간 영혼의 소재, 오늘 죽으면 우리의 영혼의 소재

작성자
신학도
작성일
2019.05.30
예수님의 십자가 사활의 3일간 어디 계셨느냐는 문제와 오늘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냐,

'흔히 우리는 인간이 죽으면 육신은 땅으로 가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품으로 간다고 믿어 천국 환송예배까지 드리는데, 그 영혼이 오늘 바로 천국으로 가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상태를 거쳐 천국으로 가는지 신학의 논쟁이 많습니다. 이미 연구소의 '십자가 사활의 3일'에 대한 입장은 읽었습니다. 다음 내용에 대해 평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구공회의 입장도 궁금합니다. 백도영 철학박사의 입장도 궁금합니다. 백 박사는 중학교만 졸업했다고 설교록에 나오던데 어떻게 2-3년?만에 고교 대학 대학원 박사까지 다 딸 수가 있는지, 또 총공회 양성원도 같은 기간에 졸업?할 수 있는지. 천재라는 말은 들었는데 실상도 함께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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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무덤에 있을 때 그 영혼이 어디있었는지에 대한 문제는 기독교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문제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성경 말씀으로 진리가 무엇인지 분별해야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성경 말씀을 통해 분별한 글이 있어 복사해드립니다.
질문자님과 이 문제를 궁금해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죽음 너머 저편


제 9 부 예수님은 3일 동안 하늘에 올라가 계셨나요?



많은 사람들이 누가복음 23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강도 사이에 오갔던 마지막 대화를 지적하면서, 사람이 죽으면 즉시로 영혼이 몸을 빠져 나가 하늘로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42,43.
이 말씀이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 보았던 성경절들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가? 여기에 나오는 한 말씀이 성경에 나오는 모든 다른 말씀들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고 속단할 수 있는가? 이 말씀은 마치 예수님과 강도가 십자가에서 죽는 그 날에 함께 하늘 나라에 갈 것이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은 두 가지 상반되는 이야기를 동시에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성경은 항상 오직 한 가지 진리만을 증거한다.



이제부터, 누가복음 23장에 나오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는 말씀이, 정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부터 부활하실 때까지의 기간인 3일 동안 하늘에 가계셨다는 사실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 보도록 하자. 우리는 요한복음 20장에서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하게 된다.


부활하신 후에 밝히신 3일 동안의 소재지 : 예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그로부터 3일 후인 일요일 이른 아침에 부활하셨는데, 그분의 무덤을 찾아가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앞에 나타나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요한복음 20:17



예수께서 하셨던 이 말씀은 영혼불멸을 믿는 사람들이 도저히 대답할 수 없는 매우 이상한 수수께끼를 남겨 놓았다. 만일 부활하신 일요일 아침까지 하늘에 올라가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3일 전에 그 강도에게 바로 “그 날” 함께 낙원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가? 누가복음 23장에 나오는 “낙원”과 요한복음 20장에 나오는 하나님이 계신 장소가 동일한 장소라는 사실을 요한계시록 2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도 요한은 생명나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데(계 2:7), 그 말씀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과 낙원이 동일한 장소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해준다. 분명한 사실은, 예수께서 돌아가신지 3일 후까지 하늘에 올라가지 않으셨다면, 물론 3일 전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역시 하늘에 가지 않으셨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오역된 헬라어 성경 원문 :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부활하실 때까지 3일 동안 하늘에 가지 않으셨다면, 누가복음 23장 43절에 나오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경의 헬라어 두루마리 사본에는 성경 말씀이 한줄로 길게 쓰여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거기에는 마침표나 쉼표 같은 부호가 없으며, 성경절과 장을 나누어 놓은 것이 없다. 1911년 흠정역 성경이 번역되었을 때, 성경 학자들은 필요에 따라서, 번역하는 말의 의미를 맞추기 위하여 쉼표를 붙이고 성경절과 성경장을 나누어 놓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구두점이 없는 헬라어 원문을 번역하면서, “오늘”이라는 부사 앞에 쉼표(,)를 잘못 찍어 넣은 결과, 예수께서 마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번역하게 된 것이다.


자 이제, 헬라어 원문의 의미를 살펴보자. “아멘(진실로) 소이(네게) 레고(내가 말하노니) 세메론(오늘) 메트에무(나와 함께) 에세(네가 있을 것이다) 엔 토 파라이데이소(그 낙원 안에)” 헬라어의 단어별 의미를 살펴보더라도,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 경우에 있어서, 영혼에 대하여 편견을 가진 번역자들이 번역할 때에 쉼표를 “오늘”이라는 낱말 뒤에 붙이는 대신에 앞에 붙임으로써, 번역상의 혼란이 야기되었다. 쉼표를 “오늘”이라는 말의 뒤에 붙여야만, 다음과 같이 올바르게 번역될 수 있다. “내가 진실로 오늘 네게 이르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헬라어 원문을 이렇게 해석해야만, 예수께서 강도에게 하셨던 말씀이 다른 모든 성경절과 완전한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에게 했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라는 말씀과도 정확하게 일치하게 된다(요 20:17).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는 그 날(“오늘”)에 하늘에 강도와 함께 올라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의 의미를 쉽게 풀어서 쓰면 다음과 같다; “내가 오늘 네게 확신을 주노라 비록 지금 내가 아무도 구원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고, 내 제자들은 모두 나를 버리고 도망갔으며 나는 정죄받은 중죄인의 취급을 받아 죽어가고 있는 지금, 나는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네게 주노라.”

이것이 주의 거룩한 말씀을 부당하게 변경시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번역하는 사람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오직 성경을 기록한 원래의 저자들만이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다. “오늘”이라는 낱말의 뒤에 쉼표를 붙이는 것이 성경의 원문에도 일치할 뿐만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 전체에 나타나 있는 사상과도 일치한다.


히브리 원어와 그 단어의 의미 : “아멘(진실로) 소이(네게) 레고(내가 말하노니) 세메론(오늘) 메트에무(나와 함께) 에세(네가 있을 것이다)엔 토 파라이데이소(그 낙원 안에)”

올바른 번역 : “내가 진실로 오늘 네게 이르노니, 네가 나 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Verily I say unto you today, you shall be with me in paradise.)

잘못된 번역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 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Verily I say unto you, today you shall be with me in paradise.)




강도가 부탁했던 말의 의미 :

이제, 강도가 예수께 부탁했던 말의 의미를 살펴 보도록 하자.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또 하나의 열쇠는, 그 강도가 했던 부탁은 세상의 종말에 하나님의 나라에 임할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사실이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눅 23:42. 그는 자신이 죽기 바로 직전인 그 “오늘” 당장에 어떤 보상을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그는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날에 의의 면류관을 쓸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바울이 자신의 믿음과 봉사에 대한 보상을 언제, 어떻게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는지를 살펴 본다면, 십자가에서 강도가 예수께 드렸던 부탁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 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6~8.


그리스도의 위대한 종인 사도 바울이 영원한 보상에 대한 소망을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 땅에 임하는 마지막 날에 두었던 것처럼, 그리고 회개한 강도 역시 자신의 소망을 마지막 날에 두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가 고대하는 보상을 마지막 날에 두어야 한다.



자, 이제 다시 독자들이 답변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예수님은 3일 동안 하늘에 올라가 계셨나요?”

















죽음 너머 저편





제 10 부 오해받고 있는 세 성경 절의 의미를 아시나요?






1.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는 때

빌립보서 1:21~23 :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바울은 자신이 죽는 순간에 그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것을 기대했다고 해석함으로써, 영혼 불멸을 뒷받침하려고 애쓰지만, 성경은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의 의미를 설명해 준다;


A)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 (being with the Lord) 라는 표현은 바울의 편지서 뿐만 아니라, 복음서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표현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일관성 있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시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5,16. “항상 주와 함께 있”을 때가 언제인가? 사도 바울은 재림의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먼저 죽는다고 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재림의 때가 되어야만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죽거나 끝까지 살아 있는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조건이 결코 아니라고 말했다.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5절.


B)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바울은 우리가 언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밝히 말하였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로새서 3:4. 여기에서도 재림의 때에야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C)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의 이별을 앞두고 그들과 다시 만나게 될 날(때)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해 주셨다. ; “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2,3.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그분과 함께 있을 수 있는 3단계를 설명하시면서, 첫번째 단계로, 예수께서 “처소를 예비”해야 하고, 두번째 단계로 예수님이 “다시 와” 야 하며(재림), 세번째 단계로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하는 것(그리스도와 함께 거함)이라고 말씀하셨다.


D)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진술하면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밝혔다(빌 3:10). 그리고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시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거듭 밝힘으로써, 재림시에 있을 부활만이 유일한 소망임을 확인하였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그리스도의 재강림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 것을 강조했으며(고전 15:52), 만약 이러한 부활의 소망이 없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에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리라”고 말함으로써(고전 15:17), 죽는 순간에 즉시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의 여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았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육신을 떠나서” 라는 표현은 죽음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은 재림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부활의 날까지 무덤 속에서 무의식의 상태로 쉬고 싶다는 말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의 의미

고린도후서 5:6~8 :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여기서 다시 “주와 함께 거”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영혼은 불멸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성경절을 이용하여 영혼은 육신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도 바울이 그렇게 표현한 의도를 알 수 있다. 편견이나 선입관을 버리고, 그 앞에 나오는 1~4절까지를 읽어보면,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한다”라는 말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고린도후서 5:1~4 :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는 줄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죽어서 썩어져 없어질 몸을 “장막 집”이라는 시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의 의미는 죽음을 뜻한다. 그래서 베드로 역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면서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 안다고 표현하였던 것이다(벧후 1:14). 그렇다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곧 “하늘로 부터 오는 우리 처소”는 무엇인가? 4절에 그 대답이 나온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는 때인 재림시에 부활한 몸이 입게 될 썩지 않을 신령한 몸을 말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성경절에서, 바울은 부활의 시간에 영원한 생명을 지닌 새로운 몸을 받기를 사모한다는 말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말에 이어서 바울은 자신의 의도를 더욱 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영혼불멸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바울은 육체를 벗어나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오직 마지막 부활의 날에 새로운 몸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바울의 은유적이고 시적인 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때, 성경 전체에 나오는 영혼과 죽음과 부활의 사상이 크게 왜곡된다. 또한 5절에 나오는,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되는 때란 썩어져 없어질 수 밖에 없는 육체 대신에 영원한 생명이 담겨진 몸을 받는 때인 재림의 때를 의미한다.


자, 그렇다면 8절에 나오는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란 무슨 뜻인가? 영혼불멸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사람이 죽은 즉시 몸을 떠난 영혼이 그리스도 곁으로 간다는 말인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성경절에 그 대답이 나와 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10. 심판대 앞에서 각각 그 행한 것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되는 때가 언제인가? 재림의 때이다.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12.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다시 이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삼킨 바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고전 15:51~54.



3.“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의 의미

벧전 3:18~20.: “ ...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한글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을 언뜻 잘못 읽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직후에 영으로 연옥이나 지옥 어디에 내려가셔서 노아 당시에 구원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연옥 같은 곳이 정말 있어서 죽은 후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두번째 기회가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두번째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가르침은 없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라는 말씀을 비롯하여 죽는 순간에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도 끝난다는 말씀이 여러 곳에 나와 있다(마 16:27 ; 롬 2:6 ; 겔 18:24 ; 계 22:12). 두번째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사상은 죽음 이후에는 일체의 의식이 없다는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과도 크게 상반된다. 만약 두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왜 하필이면 노아 홍수 당시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만 그런 특권이 주어져야 하는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베드로전서 3장에 나오는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는 말씀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이 말씀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서 분석해 보자;

전반부 ;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이 말씀의 뜻을 자칫 오해하여,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에 육체는 죽었지만, 영혼은 육체에서 분리되어 살아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께서 이 땅에서 지니셨던 연약한 인간의 속성은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성령을 통하여 부활하심으로써 원래에 하나님으로서 지니셨던 영적인 속성이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러므로 한국어 성경에는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라고 잘못 번역된 말이, 영어 성경에는 “made alive by the Spirit”(성령으로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라고 올바로 번역되어 있는 것이다. 즉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성령을 통하여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받으셨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이 다음에 이어지는 성경절에서도 확인된다;


“이 아들로 말하자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롬 1:3~4.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부활하셨던 그리스도께 일어난 이러한 변화는 그리스도 뿐만 아니라 그분과 같이 고난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일어나는데, 성경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24.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10,11.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비록 육체는 죽을지라도 성도들에게는 부활이 보장되며 영원한 생명이 약속된다. 바로 이것이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나 영으로는 살림을 받는다는 말의 의미이다.


후반부 :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옥에 있는 영들”은 누구이며, “옥”은 어디를 말하는가? 여기에 나오는 “옥”은 감시를 통하여 행동을 속박받는 뜻의 감옥(phulake)을 뜻한다. 또한 “영들”의 헬라어 원어는 앞에서 배운 바와 같이, “프뉴마”로서 “생명”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옥에 있는 영들”이란 옥에 갇힌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옥”은 어디를 말하는가? 그것은 지옥을 의미하는 말씀이 아니라, 영적으로 어두운 이 세상을 뜻한다. 이사야 선지자도 “옥”을 어두운 세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사 42:7. 또한 시편에서는 “옥”을 영적인 어두움을 묘사하는 표현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내 영혼을 옥에서 끌어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시 142:7.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옥”에 갇힌 사람들, 즉 “흑암에 앉은 백성”과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듯이(마 4:15,16), 노아 홍수 당시에도 예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죄에 속박되어 영적인 암흑에 갇힌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


“옥에 있는 영들”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성경절에서도 분명하게 밝혀 진다. “그들(옥에 있는 영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 이다(벧전 3:20). 여기에 “옥에 있는 영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성경은 그들의 정체를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께서 노아 홍수 당시에 멸망을 당해서 지옥에 간 혼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께서 성령을 통하여 노아 홍수 당시에도 영적인 어두움 속에서 불순종하던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사실을 뜻한다. 베드로전서 4장 6절에 나오는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말씀도 과거에 죽은 자들 역시 그들이 살아 있을 당시에 성령을 통하여 복음을 들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과거에 죽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못했더라면 변명의 여지가 있겠지만, 성령을 통하여 구원의 복음을 듣거나 깨닫고도 “순종치 아니하”였기 때문에 준엄한 심판이 임하게 된다. 모든 사람의 구원은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어떠한 태도를 나타내며 살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되며, 일단 죽은 다음에는 구원을 위한 기회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다시 독자들이 답변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가장 많이 오해되고 있는 3가지 성경절의 의미를 아십니까?”
전체 3

  • 2019-06-01 13:43
    무거운 주제인지라, 일정을 마치고나서, 답변해드리겠습니다.

  • 2019-06-06 07:34
    1. 이 글이 전체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택자가 죽는다고 먼저 그리스도 함께 있는 것이 아니고, 재림의 때가 되어야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택자는 사망 후에, 그 영혼이 몸에서 분리 되어서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아니고, 시체에서 쉬고 있다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주님을 만나게 된다고 합니다. 과연 그러한가?

    1) 주장대로 다른 성구해석이 필요
    성구는 얼마든지 자기 기준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진리로 확정이 되려면, 모든 성경이 다 맞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아래 성구들에 대해서도 먼저 확실한 답이 될 수 있는지 살펴야 하며, 살피다보면 굳이 원어에 대한 논의까지 나아갈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① 부자는 죽어서 음부로 갔고,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 품으로 갔습니다. 음부와 아브라함 품이 시체 안인지? (눅 16;23)
    ② 부자가 형제들로 하여금 자신이 고통받는 이곳으로 오지 않게 해달라는 이곳은 어디인지? (눅 16:27-28)
    ③ 예수님의 최후의 순간에, 영혼이 떠나셨는데, 육신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떠나신 것인지? (마27:50)
    ④ 하나님께서 영혼을 어디에서, 어디로 찾으신다는 것인지? (눅 12:20)
    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음이라 명시가 되어 있는데? (약 2:26)
    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육신에서 혼이 떠나서 죽었는데? (행 5:10)
    ⑥ 예수 안에 자는 자들이, 지금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말은 안되는지? (살전 4:14)

    2) 영의 오해
    인간은 영육 결합체입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은 이용물이요. 주체는 영입니다. 그리고, 영은 눈에 보이지 않고, 시공을 초월한 영물입니다. 구원 목적으로 인하여, 육신의 생명이 있는 동안에는 마음 안에서, 존재하며 마음의 눈치를 보지만, 육신의 생명이 끝나면, 이제 더 이상 마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을 떠나서, 모든 시공을 초월하여 자유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체 안에 쉬고 싶어도 쉴 필요 없고, 쉬러 들어가 있을 수 없고, 있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영은 영물이기 때문입니다.

    3) 대속을 입은 중생된 영
    더군더나 택자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중생된 영인데, 대속을 입은 영은 사활대속의 공로로 인하여, 두 번 다시 죽지도 않고, 그 어떤 것에도 억매이지 않는 자유의, 능력의 영입니다. 택자가 사망하여, 영이 자유를 얻게 되면, 어디로 가겠는가? 시체 안에 매일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고, 본질대로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적으로 지극히 합당하지 않을까요? 위 글의 주장은, 기독교 정통적 관점에서도 어긋나는, 심히 과도한 주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 오해하신 3가지에 대한 답

    1)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3)

    사실 이 성구에서 더 중요한 문제였던 것은, 택자의 영원한 죄를 대속을 위한 범위였습니다. 도성인신, 사활대속이 고통이, 눈에 보이는 육신의 고통 뿐이었겠는가? 육신을 가지고는 감당할 수 없는 지옥, 음부의 형벌은 없었겠는가? 택자의 죄가 그런 죄가 아니었는가? 그런 죄에서 대속하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활대속이 아니었는가?

    그래서, 택자의 영원한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 몸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히셨고, 그 영과 혼은, 택자의 영과 혼이 당해야 할 지옥의 형벌을 대신 치루셨는데, 그 기간이 3일 간으로 보이나, 형벌을 3일동안 받으셨다는 것이 아니라, 신령의 차원이므로 시공으로 보면 ‘즉각’, ‘순간’이었고, 그 순간 쏟아진 택자의 영원한 지옥의 죄 값을 예수님의 영과 혼이 당하며, 우리의 죄의 영원한 값을 비로소 완전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 사후 3일이라는 것은 완전히 죽으심을 나타나는 하나의 표시였고, 예수님의 이 단번 죽으심으로 이루신 대속이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 전부터 예정된 모든 택자에게 입혀져서, 그 대속을 입은 우편 강도를 데리고 그 날 낙원으로 가신 것입니다.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요 20:17)

    그리고, 3일 후에 부활하셨는데, 그 모습은 이전과 똑같은 신인양성 일위이셨으나, 예수님의 유한한 피조물 되었던 인성이, 전지전능의 신성과 똑같은 무소부재의 그런 인성으로, 그런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택자 사이를 막아놓았던 휘장이 갈라져서 하나님을 향한 길을 열어 놓으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이제 법궤 위, 하나님의 그룹 사이에 하나님을 만나는 그 일로써, 그 부활의 완성으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자리잡는 그 일을 이루시고 난 후에, 다시 내려오셔 가지고 제자들로 더불어 40일동안 같이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신 후, 40일 만에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계시고, 또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3) 그렇다면, 택자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택자는 일단 죽으면, 대속으로 중생된 영과 대속에 피동된 기능은 하나님께로 가고, 대속에 피동되지 못한 모든 기능은 지옥으로 가고, 몸은 땅에 묻힙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하늘에서, 지상에 남아 있는 택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의 구원을 기다리다가, 공중 재림하시는 주님과 함께 공중에서 남은 택자들과 만나게 되고, 이제 주님이 최후 지상 강림하실 때에, 묻혀 있던 몸을 되찾아 신령한 몸으로 변화 부활을 받아, 천년왕국을 보내고, 신령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모시게 됩니다.

  • 2019-06-18 11:13
    공회소속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음부와 낙원이 있는데 음부는 지옥대기소이고 낙원은 천국대기소라고.... 그래서 안믿는 불택자는 죽어서 영육이 분리되는데 육체는 땅에 뭍히고 영이 없는 마음은 지옥대기소인 음부에 가 있고.... 믿는 택자의 육체 역시 땅에 뭍히지만 마음(기능)과 영은 낙원에 있다가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 주님께서 천국건설을 마치시고 재림하실때 안믿는 사람은 땅속에 뭍힌 육체와 음부에 있던 마음이 합쳐 부활하여 공심판으로 지옥으로 가고.....믿는 택자는 순간순간에 이미 사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공심판을 면하고 이미 땅에 뭍혀 세월로 인해 썩어 없어진 육체라도 원소들을 다 찾아서 낙원에 있던 마음(기능)과 영이 합쳐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서 예수님께서 처소를 준비하신다고 한 그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죽어서 영육이 분리될때 가 있는 곳이 음부와 낙원이고 그 분리된 영육이 합쳐서 부활한 모습이 될때 그때 비로소 가는 곳이 천국과 지옥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련한 실체를 논리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교리에 맞지 않는 것인가요? 그 목사님은 백영희목사님 교리를 잘 배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저의 기술이 교리에 맞지 않다면 제가 잘못듣고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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